국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결정 짓는 액화천연가스(LNG) 도입단가가 러-우 전쟁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정상대로라면 두 요금도 내려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총부채가 250조원에 달해 요금을 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올려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 때문에 벌어진 국제 가격과 국내 요금의 엇박자는 순기능보다는 심각한 부작용만 일으키고 있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과 6월 국내 LNG 도입단가는 MMBtu(100만 열량단위)당 각각 11.18달러와 11.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2월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파이프가스(PNG) 수입을 끊고 LNG로 대체하면서 LNG 현물가격이 기존 10달러에서 거의 100달러로 10배 가까이 치솟았다.
국내 LNG 도입단가는 2022년 2월 16.27달러에서 그해 9월 28.26달러로 73.7% 급증했다. 이후 단가는 점차 하락해 2023년 3월 처음으로 20달러 아래인 17달러대, 2023년 12월 동절기임에도 안정적인 14달러대, 그리고 현재 11달러대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LNG 도입물량 중 중장기계약 비중이 대부분이고, 현물계약 비중은 적어 평균 도입단가는 상대적으로 크게 오르지 않았다. 반면 비싼 현물 중심으로 LNG를 수입한 유럽에서는 이를 즉시 요금에 반영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요금이 500%나 폭등하는 등 극심한 에너지 대란을 겪기도 했다.
유럽은 에너지 대란 이후 강력한 에너지 수요절감 프로그램 시행, 히트펌프 등을 통해 에너지효율 향상, 재생에너지의 대량 보급, 천연가스 공동구매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에너지 수요 및 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제 유럽과 우리나라의 에너지 사정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나라는 LNG 도입단가가 대폭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요금은 계속 오르고 있다. 전쟁 이후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은 18%, 도시가스요금은 61% 올랐다. 이 인상폭도 모자라 LNG를 수입·공급하는 한국가스공사와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은 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공기업은 심각한 재정상태이다. 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해 한전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총 43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총부채는 올해 1분기 기준 200조원이 넘고 있다.
가스공사는 3년 동안 5조2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으나, 미수금 15조3955억원을 감안하면 사실상 약 10조원의 적자 상태이다. 미수금은 원래 올렸어야 할 요금을 올리지 않고 나중에 받기로 한 금액을 말한다. 총부채는 올해 1분기 기준 47조원에 달한다.
두 공기업의 총합부채만 250조원에 달하고 이로 인해 이자비용만 하루평균 167억원에 달하고 있다. 아직도 두 공기업의 금융비용은 계속 커지고 있고, 지금까지 오른 요금도 아직 총합원가 이하 수준이어서 추가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의 요금인상 지연 정책은 당초 목표로 한 물가안정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요금의 추가 인상은 인플레이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석유, 가스, 전기 등 에너지 소비만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에너지·환경 학자는 “정부의 요금인상 지연은 에너지를 넘어 경제 전반에 엄청난 부작용을 남겼고, 지금도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에너지 독립기구 설립 등을 통해 요금을 정상화시켜 탄소중립 체제로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