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말 부산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위한 정부간협상위원회(INC) 최종회의에서 당초 소수 나라만 지지하던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제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연합(EU)만 지지하던 제안은 미국까지 지지로 선회했고 여기에 한국과 일본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과 중동, 그리고 전세계 석유화학업계가 이를 강력 반대하고 있어 실제 채택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당선될 시 기후변화협정과 함께 플라스틱협정도 탈퇴가 유력한 상황이다.
19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최근 영국 통신사 로이터는 미국 바이든 정부가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INC 최종회의에서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제안을 지지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소식은 백악관이 입장을 선회한 내용을 관련 업계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세계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 중 하나인 미국이 매년 새로 생산되는 플라스틱 양을 줄이자는 내용의 국제조약을 지지할 예정이라고 미국 협상 측에 가까운 소식통이 본지에 전했다"며 “이는 이전 주장에서 벗어난 변화로, 사우디와 중국 같은 국가들과 대립하게 됐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미국의 입장 선회로 'HAC(high ambition countries)'그룹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HAC그룹은 INC 참여국 중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등 탈플라스틱을 강하게 주장하는 강성그룹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연합 주도로 형성돼 한국과 일본까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축 목표량은 2040년까지 2021년 생산량의 40% 수준이다.
반면 중국, 중동, 러시아, 개발신흥국 등은 '플라스틱 오염 방지'가 목적이기 때문에 재활용율 등을 높이면 되지, 생산량을 감축할 필요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플라스틱을 만드는 석유화학산업은 경제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는 석유 및 가스 생산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생산을 제한하는 것은 결국 개발신흥국들의 경제성장을 억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원래 INC 최종회의에서 제안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되나,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안은 다수결로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석유화학업계는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주장에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플라스틱협회(ACC)는 성명을 통해 “백악관이 극단적인 NGO(비정부기구) 그룹의 바람에 굴복했다. 백악관의 입장 선회로 미국은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잃거나 아웃소싱될 것이고, 전 세계적으로 상품가격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감당할 능력이 가장 없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주장하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기후변화 목표를 달성하려면 세계는 플라스틱에 더 많이 의존해야지 덜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현대 의료에 플라스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INC 최종회의는 11월 말에 개최되는데 이는 미국 대선 이후에 열리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당선되면 파리기후협정과 함께 플라스틱협정도 부정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본지가 환경부와 석유화학업계에 확인해 본 결과 한국이 HAC그룹에 속한 것은 맞지만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국이 HAC그룹에 속했다는 로이터 보도에 “해당 매체가 우리 측에 확인하지 않고 쓴 내용 같다"며 “아직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HAC그룹에 한국이 속한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한국은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에 신중한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이익단체인 한국석유화학협회 측은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주장에 대해 “전세계 석유화학업계와 동일한 입장"이라며 “일회용품 줄이기, 유해화학물질 사용 제한 주장에는 적극 찬성하나, 플라스틱 생산량을 감축하는 주장은 오염 방지에 도움도 안되고 실현 가능성도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INC 최종회의는 결과 내용에 따라 파리기후협정에 버금가는 역사상 최대의 환경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산업적 여파와 국제적 명성을 놓고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NC 최종회의는 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개최되며, 참여국은 유엔 회원국과 동일하다.
한 환경업계 관계자는 “물론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석유화학 강국으로서 생산량 감축은 산업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수 있지만, 중국과 중동의 석유화학 발전으로 우리의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참에 대대적인 산업구조 개편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국제적 명성을 얻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