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이수페타시스의 55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추진에 재차 제동을 걸면서 이수페타시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해 금감원이 두 번씩이나 정정을 요구한 만큼 사실상 철회 압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3개월 내 정정신고서 미제출 시 철회로 간주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3일 이수페타시스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 관련 증권신고서에 2차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 2일 1차 정정 요구에 이어 두 번째 반려 조치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에 대해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아니한 경우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 기재나 기재되지 않은 경우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정정을 요구했다.
금감원의 이번 조치로 이수페타시스의 기존 증권신고서 효력은 지난 23일부로 정지됐다. 이수페타시스가 3개월 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유상증자 계획은 철회한 것으로 간주된다.
시장에서는 이수페타시스가 금감원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유상증자를 철회할 가능성도 높게 점치고 있다. 최근 금감원의 정정 요구로 사업 계획을 취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서다. 앞서 금감원은 고려아연의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도 제동을 걸어 결국 유증 철회를 이끌어냈다. 지난 8월에도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관련 증권신고서에도 두 번의 정정을 요구하면서 거세게 압박해 계획을 무산시킨 바 있다.
실제 유증 철회 기대감에 금감원의 정정 요구 이후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3거래일째 오름세를 기록하며 이 기간 동안 14% 넘게 상승했다.
유증 주목적인 '제이오 인수' 발목
이수페타시스는 지난달 18일 약 5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유상증자로 발행되는 신주는 총 2010만3080주로 기존 발행 주식 수의 31.8%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이중 3000억원 가량을 이차전지 탄소나노튜브(CNT) 소재 전문 제조기업 제이오를 인수하는 데 사용한다고 밝히면서 투자자들의 반발을 샀다.
투자자들은 인쇄회로기판(PCB) 전문 제조업체인 이수페타시스가 회사의 사업과 전혀 무관한 이차전지 기업을 인수하게 되면 회사가치가 하락하고 주주가치도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최근 전기차 캐즘으로 인한 이차전지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이오 인수에 따른 시너지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회사 측은 인수 이유에 대해 “단일산업 영위에 따른 실적 변동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어 리스크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신규 사업 진출을 적극 모색해왔다"며 “지속 검토 끝에 탄소나노튜브 사업이 회사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업이라고 판단했고 탄소나노튜브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제이오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이오 인수를 통해 중장기적인 신성장 동력을 얻고 미래에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탄소나노튜브 시장을 선도하는 소재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주주들, 유증 철회 촉구…임시주총 제안도
회사의 해명에도 주주들은 “이번 유증 추진과 제이오 인수는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사안"이라며 유증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금감원의 정정 요구 이후인 지난 25일 이수페타시스 소액주주연대는 사측에 공식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주주연대는 공문을 통해 소액주주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고 경영 투명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더불어 △소액주주 소통 전담 직책 신설 △유증 철회 및 대안 논의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에 대한 공식 입장 제시 등도 제안했다.
앞서 주주연대는 지난 13일 국민연금에 유증 반대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는 유증 촉구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이달 초에는 서울 서초구 이수화학빌딩 앞에서 유상증자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엄정식 주주연대 대표는 “이번 면담 요청은 단순히 비판을 위한 접근이 아니라 회사와의 상생과 협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면담 요청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에는 추가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