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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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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탄소중립·화평법에 흔들리는 석유산업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6.22 10:00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이덕환 서강대 교수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원유 가격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와 브렌트유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고, 두바이유도 전달보다 5.4% 치솟았다. 탈원전으로 수입량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천연가스(LNG) 가격도 4배나 뛰어 올랐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진정세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10억 배럴의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난해와 같은 저유가는 소비자에게는 반갑겠지만 정유사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악몽이다. 저유가는 휘발유·경유를 비롯한 석유제품의 소비가 줄어들어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입장에서는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내수도 줄어들고, 수출도 어려워진다. 엎친 데 덮친다고 정유사에게 돌아가는 정제 마진도 줄어든다. 실제로 두바이유가 배럴당 10달러까지 떨어졌던 작년에 정유 4사는 무려 4조 4000억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반대로 다시 시작되는 고유가는 정유사에게 고마운 일이다. 제품의 판매도 쉬워지고, 정제 마진도 늘어난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실제로 원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로 올라선 올 1분기에는 정유사들이 모두 2조 2000억원의 영업 이익을 챙겼다. 물론 지난 2년 동안 누적된 적자를 고려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정유사들이 고유가를 드러내놓고 좋아할 수는 없다. 고유가에 의한 소비자의 부담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활필수품이 돼버린 휘발유·경유 가격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정유사에 대한 정부와 소비자들의 불신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휘발유·경유 가격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요즘 강조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다. 정유사에게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높고 석유 시장의 소비 구조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유류세’(교통에너지환경세)의 개편을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정유사가 극복해야 할 훨씬 더 심각한 과제가 있다. 정부가 작년부터 거세게 밀어붙이기 시작한 ‘탄소중립’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변화를 고려하면 원유를 포함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유산업을 통째로 포기해버릴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하는 휘발유·경유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용제(솔벤트)·섬유·플라스틱·고무 등의 다양한 화학제품의 생산에 핵심 원료로 사용되는 나프타(납사)와 LPG(액화석유가스)도 온실가스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전기차의 경우처럼 화학제품의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 안전을 명분으로 정부가 극단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정유사에서 생산되는 석유제품을 원료로 사용하는 화학산업이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퇴출 압력을 받고 있다. 화학물질의 안전에 대한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한다고 주민 안전과 환경 보호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의 획일적인 규제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생산 현장의 안전성·환경성이 증진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민 안전도 중요하고, 환경을 지키는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국제 사회의 노력에 동참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대의 첨단 기술을 모두 포기하고 거칠고 위험한 ‘야생’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 6위 규모로 발전한 정유산업은 아무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위험하고 더러운 기술을 포기하자는 정책은 비현실적이고 패배주의적인 것이다. 오히려 안전과 환경을 고려한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을 더욱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합리적인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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