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승 유통중기부 기자. |
고용노동부는 지난 13일 제조업, 건설업, 연구·공학, 보건·의료직 등 일부 직종에 한해 현행 주 52시간의 근로시간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안은 지난 3월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국민의 거센 반발을 사 실패한 지 약 8개월 만에 내놓은 수정안이다.
지난 3월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일까, 고용노동부는 이번 시도에서 지난 6∼8월 국민 약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시간 관련 대면 설문조사 결과를 추진 근거로 내밀고 정부 일방진행이 아닌 노사 간 합의를 거쳐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한다는 형식적 절차를 갖췄다.
대국민 설문조사가 아니더라도 정부가 근로시간제도 개편 작업에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로부터 주 52시간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중소 제조업체 대표는 "제조업은 일반업종과 특성이 다르다"면서 "추석·설 등 명절 대목을 맞아 일감이 들어왔을 때 납품 기한을 맞출 수 있도록 바짝 일하고, 일감이 없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며 주 52시간제 개편 필요성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일반국민들의 반대가 꺾이지 않는 이유는 한국이 최장근로시간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을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기업친화정책에 상응하는 근로자가 체감할 수 있는 노동정책이 없는 가운데 근로시간 개편으로 ‘일하는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근로 비율이 17.5%로 유럽연합 국가들의 수치인 7.3%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전체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도 지난해 기준 1901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가운데 튀르기예·콜롬비아를 제외한 나라 중 멕시코(2226시간), 코스타리카(2149시간), 칠레(1963시간)에 이어 상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지난 13일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불리며 주52시간제 개편의 최대 걸림돌로 꼽혀온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법제화도 좌절되는 등 ‘보상 없는’ 연장근로를 근절할 법적 개선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장시간 근로가 필요할 때 바짝 일하고 쉴 때 몰아쉴 수 있어 근로자에게도 좋은 제도라며 전형적인 ‘탁상행정 논리’를 펴고 있다. 가뜩이나 워라밸(일과 여가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20~30대 MZ세대들이 노동시장 편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근로자의 편의를 보장할 수단 없는 근로시간 개편안 추진은 연장 근로의 명분을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계에서 연장근로를 계속 요구하는 만큼 정부가 정말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 근로시간 개편안을 추진하고 싶다면 강제 연장노동 금지 관련 법제화 등 일반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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