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자회사들을 활용해 이른바 ‘채권깡’을 하면서 자회사의 경영 부실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전이 채권발행을 못하니 자회사들이 채권을 대신 발행해주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한전은 저조한 전기요금 인상으로 채권발행한도가 예상보다 일찍 임박하자 자회사들에게 급히 중간배당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회사들도 요구액을 맞출 만큼 보유한 현금이 충분치 않아 채권발행이 필요한 실정이다.
3분기 기준 한전의 6개 발전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이 중간배당에 시용할 수 있는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은 약 2조 772억7760만원이다.
반면 한전의 요구액은 약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발전자회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중간배당 수준을 수천억원으로 시작했는데 회의를 할 때마다 1조, 2조로 늘더니 최대 4조원까지 커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3분기까지 발전자회사들의 잉여현금흐름 총합이 2조 770억원 수준이니 2조원 가량의 채권발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법상 중간배당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주주배당 등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잉여현금흐름이 있어야 한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 중 세금과 영업비용, 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하고 남은 현금을 의미한다. 철저히 현금 유입과 유출만 따져 돈이 회사에 얼마 남았는지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투자와 연구개발 등 일상적인 기업 활동을 제외하고 기업이 쓸 수 있는 돈이다.
우선 한전의 자회사들은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요청으로 지난 주 일제히 이사회를 열고 중간배당이 가능하도록 관련 정관 규정을 신설했다.
이어 이르면 금주 중으로 한전이 구체적인 중간배당금액을 요청하면 자회사들은 다시 이사회를 개최해 최종 배당금액을 결정할 예정이다.
12월 현재 한전 채권 발행액은 80조 1000억원이며 자본적립금의 5배수인 발행한도는 104조 6000억원이다.
그러나 올해도 한전의 영업손실은 기정사실화 한 상황이다. 현재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액은 약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경우 한전의 자본적립금은 14조 9000억원으로 줄어들고, 덩달아 내년 발행한도는 74조 5000억으로 대폭 축소된다.
한전이 자회사로부터 4조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받을 경우 자본적립금은 18조9000억원로 상승해 내년 채권발행한도는 94조5000억원로 늘어나게 된다. 현재보다 채권발행 규모가 14조원 더 늘어난다는 의미다. 이는 한전이 4조원의 중간배당을 요구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한전 자회사 내부에서는 회사마다 여유 자금 사정이 다른 만큼 이를 고려해 배당금액이 정해져야 한다는 의견과 모두 동일한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많은 2조원의 중간배당금액을 요청받은 한수원의 경우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 1조원이 넘는 상황이다.
남부발전도 잉여현금흐름도 86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한 한전 자회사 관계자는 "자금이 부족해 채권발행을 해야 하는 경우 연말 전까지 촉박하게 해야 하는 만큼 높은 금리로 빌릴 수밖에 없다. 진작 전기요금을 올렸어야 했는데 총선, 여론 등을 의식하느라 눈치보기식으로 찔끔찔끔 인상해 결국 한전은 물론 자회사들까지 동반 부실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발전공기업들은 이익잉여금이 발생하면 쌓아두는 게 아니라 대부분 발전설비 투자, 유지보수는 물론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정책과제 수행 및 신규 채용에 소진한다. 그런데 여유자금은 물론 빚까지 내어 가면서 모회사에 중간배당을 하면 신규 설비투자나 채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빚더미 회사에 누가 오려고 하겠느냐"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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