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단통법 폐지로 가닥을 잡은 상황에서 법 개정까지는 시일이 많이 소요되는 만큼, 그 전에 시행령을 손봐 통신 물가를 잡는 정책효과를 빠르게 달성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해당 조치가 이통사 간 경쟁을 활성화하기보다 오히려 이용자 차별을 심화하고, 이용자 부담만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단통법 폐지 전 시행령부터 손 본다…“통신사 경쟁 활성화 취지"
업계에 따르면 이르면 다음 달부터 새 스마트폰을 사는 고객이 '번호 이동'을 통해 통신사를 옮기면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더 많은 지원금을 주는 것을 허용하기로 해서다.
현행 단통법은 △가입유형(번호이동·신규가입·기기변경) △이동통신서비스 요금제 △이용자의 거주 지역, 나이, 신체적 조건 등에 따라 지원금을 부당하게 차별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는 기존 시행령의 지원금 차별 금지 예외 조항에 '이통사 기대 수익과 이용자 전환 비용 등을 고려해 방통위가 고시하는 가입 유형에 따른 지급 기준에 따라 지원금을 주는 경우'를 추가하기로 했다. 사실상 통신 3사에 보조금 지급으로 경쟁사의 가입자를 뺏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방통위는 시행령 개정 이유에 대해 “예외 기준 신설을 통해 이동통신사업자 간 자율적인 지원금 경쟁을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입법예고 된 시행령은 26일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이르면 다음 달 적용된다.
고가 요금제 가입자 지원금만 늘 듯…일각선 실효성 지적도
업계 안팎에서는 예외조항 신설이 오히려 이용자 차별을 심화하고, 이용자 부담만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행령 개정으로 통신사가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더 많은 지원금을 쓸 수 있게 되면, 결국 고가 단말에 고가 요금제로의 번호이동만 유발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는 이용자 차별을 금지하는 상위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통신업계는 일단 이에 관한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고, 시행령 개정 이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 입장에선 기대수익이 큰 '고가 요금제' 이용자 중심으로 지원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단통법 이전의 상황과 같은 현상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단통법 시행 이후 이통사 간 과열 경쟁이 일부 해소되고, 소비자 입장에서 정보격차에 따른 구매가 차이가 줄어드는 등 단통법의 순기능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 않느냐"면서 “개인적인 견해일 뿐 회사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법에서 가입유형별 차등을 금지하고 있는 만큼, 시행령 개정 이후 고시 제정 단계에서 법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이 당초 취지대로 실제 이통사 간 경쟁을 활성화 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롱텀에볼루션(LTE) 전환기에는 이통사 간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했으나, 현재는 5세대(5G) 이동통신 가입자 증가세도 급격하게 둔화되는 등 통신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불법 보조금을 법의 테두리 안에 가져온다고 해도, 정작 이통사가 과거만큼 지원금을 뿌릴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저가 5G 요금제 출시 등 요금 규제가 강하게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통사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이통사의 기대수익이 적기 때문에 번호 이동 보조금을 늘린다 해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알뜰폰업계도 시행령 개정안 이후의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통신사들이 지원금 규모를 확대하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약한 알뜰폰업계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이통사가 지원금을 많이 살포하면 소비자들이 지원금을 많이 주는 통신사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며 “이통사에서 중저가요금도 확대하는 분위기인데, 여기에 단말 지원금까지 늘어나면 알뜰폰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