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행정가의 문건을 보면 비전, 목적, 목표, 원칙이 뒤죽박죽 사용된다. 비전으로 되어 있지만 목표인 경우도 있고, 목적이라고 되어 있지만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다. '이번 인사의 원칙은…'에서도 방침이라는 표현이 맞다. 원칙은 바뀌지 않는데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하면 수용하기보다 덤비는 것이 보통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기도 한다. 이 표현은 항상 지체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하는 표현이고 소통실패의 책임을 말을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 '공정성', 그리고 '신뢰성'이다. 이런 단어는 별도로 정의되지 않았다면 국어사전에 있는 정의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원자력 안전규제에 부합하는 정의는 사전적 의미의 정의와는 다르다.
원자력안전규제는 우리가 경험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심지어 원자력공학 전공자도 그 분야의 종사자가 아니라면 철학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우리 원자력기술은 기초없이 도입국의 규정과 체제를 베껴오는 것에서부터 출발했고 기초를 채울 시간도 없이 진도를 뽑아야 했기 때문에 노하우(Know-how)는 있지만 노와이(Know-why)가 부족하다.
원안위가 홈페이지에서 제시하고 있는 안전규제의 원칙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의 원칙을 비교해 보자.
원안위는 전문성(Excellence)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경험 축적'으로 정의한다. US NRC는 이를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건 기본이기 때문이다.
원안위는 독립성(Independence)을 '국가와 국민만을 고려하는 흔들림 없는 업무추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NRC는 윤리적 성과기준(Highest possible standards of ethical performance)으로 정의한다. 담당자가 흔들리는게 아니라 업무의 결과가 윤리적으로 바르면 된다는 것이다.
원안위의 이상한 정의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 출신이거나 이들 기관에서 연구비와 강의료를 받은 인사들을 모두 비독립적인 인사로 분류하고 원안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전개되었고 결국 전문가를 배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또 같은 기준이라면 걸러져야 할 탈핵운동가들은 거르지 않는다.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학회활동에도 제한을 두는데 이에 대해서도 NRC는 독립성이 격리(Isolatio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안위는 투명성(Transparency)을 '안전규제 전 과정을 의혹없이 수행'으로 정의한다. NRC의 원칙인 공개성과 솔직함(Openness)과 유사하지만 업무상 도덕성에 더 비중을 둔다.
원안위엔 없지만 NRC는 효율성(Efficiency)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규제결정은 부당한 지연없이 즉시 내려져야 한다'로 되어 있다. 이것이 없었기 때문에 신한울1호기 운영허가는 심사를 마치고도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12회가 넘는 위원회를 개최하면서 1년 이상 지연시켰고, 이로 인해 국가적으로는 1조 원의 손실이 있었을 것이다.
원안위는 공정성(Impartiality) 원칙을 '불편부당(不偏不黨)의 객관성 견지'로 정의하고 있다. NRC는 명료성(Clarity)을 제시하는데 이 원칙은 '일관성, 논리성, 실제성'으로 풀이한다. 이것 역시 다르다. 전자는 윤리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나 후자는 업무추진의 방식으로 접근한다.
원안위는 신뢰성(Reliability)을 '원칙을 준수하고 명확성과 일관성 유지'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NRC는 '가용한 최신 기술에 기반'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 원자력안전규제는 미국의 규제를 모태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실행차원에서 그리고 법제화 차원에서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목적과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원안위의 규제원칙은 미국과 유사하나 내용은 원자력 안전규제 차원에서 특화된 정의가 아니라 사전적 정의 또는 담당공무원의 상식선에서 풀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합리적 실행의 차원이 아니라 담당자의 윤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칙이 흔들리면 이행의 방향과 방식도 흔들린다. 그게 우리 원자력안전규제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