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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8명 희생’ 전세사기, 선구제 후회수 대책 절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5.20 14:06

이현주 건설부동산부 기자

이현주 건설부동산부 기자.

▲이현주 건설부동산부 기자.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아닙니까?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힘 없으면 죽어나가야만 하나요?"


지난 1일 대구 남구 남영동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남긴 말이다. A씨는 현행 특별법 사각지대였다. 다가구주택 후순위 임차인이자 소액임차인에 해당되지 않아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없었다. 이의신청 끝에 그는 숨진 날이 되어서야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로부터 '피해자'로 뒤늦게 인정받았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목숨을 끊은 사례는 이번이 벌써 8번째다. 안타까운 사례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실효성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여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우선 구제하고, 향후 우선매수권·우선변제권 등을 보유한 상태로 경·공매를 통해 피해주택을 매각, 비용을 회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법 개정 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경우라면 모두 소급적용된다.


반면 정부·여당은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구제하는 방안이 전례가 없어 다른 사기범죄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17일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1만5433명이다. 정부는 이 속도라면 내년 5월까지 피해자 3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최소 1조원, 최대 4조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제도의 실패가 낳은 사회적 재난이다. 이번 전세사기는 부동산 시장이 과열기에 접어든 2020년 전후에 집중됐다. 이 시기에는 임대업이라는 포장으로 갭투자 사기꾼이 등장해 깡통전세가 난무했으며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은 늘 시장보다 한발 느린 모습을 보였다.


전세사기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도 아쉬움이 남는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13일 기자차담에서 “전세를 얻은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장관의 경솔한 발언은 전세사기 피해자들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오는 28일 열릴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여야 입법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해 뒷짐을 지지 말고 구제 등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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