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서 지식재산(IP)을 둘러싼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게임물 간 유사성 존재 여부와 인정 범위가 핵심 쟁점인 가운데 저작권 침해 기준을 명확히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IP 관련 법적 공방을 치르고 있는 게임사만 최소 8곳에 달한다. 엔씨·넥슨·크래프톤·카카오게임즈·웹젠·레드랩게임즈·엑스엘게임즈·아이언메이스 등이 영향권에 포함됐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6일 웹젠을 상대로 모바일 게임 'R2M' 서비스 중단과 총 600억원의 배상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지난 2021년 웹젠의 'R2M'이 자사 대표작 '리니지M'을 모방했다며 제기한 저작권 침해 중지·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송의 연장선이다. 1심은 웹젠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엔씨 측 청구를 받아들였다. 판결 후 웹젠이 법원에 낸 강제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 당시 '리니지M'의 일부 게임 구성요소가 저작권법이 규정한 저작물 보호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따라 저작권 보호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설정할지가 쟁점화될 전망이다. 양사는 12일 오후 진행된 첫 변론기일에서도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엔씨는 지난 2월에도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한 '롬(ROM)'이 자사 '리니지W'를 표절했다며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서비스 중지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한 '아키에이지 워'에 대한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저작권 침해 및 무단도용에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의 눈은 다음달 24일 결판이 예정된 넥슨과 아이언메이스 간 '다크앤다커' 저작권 침해 소송에 쏠려 있다. 소송 결과가 향후 게임 저작권에 대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IP를 활용한 크래프톤의 '다크앤다커 모바일'이 연내 출시가 예고돼 있다는 점도 업계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아이언메이스의 '다크앤다커'가 넥슨의 미공개 사내 프로젝트 'P3'을 표절했는지 가리는 게 골자다. 넥슨은 과거 신규개발본부에서 'P3' 개발팀장으로 있었던 A씨가 소스 코드 등 데이터를 유출한 뒤 아이언메이스를 창립, 다크 앤 다커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이언메이스는 게임을 초기 단계부터 직접 개발했으며 부적절한 영업 비밀을 사용한 바 없다고 맞섰다.
핵심은 게임물 간 유사성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다. 넥슨 측은 '다크앤다커'가 장르적 특성 및 개발 목적을 비롯해 게임 구성 요소, 캐릭터 세부 표현 등이 'P3'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이언메이스 측은 동종 장르에서 넥슨이 표절을 주장하는 요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P3'에 없던 새로운 요소가 다수 추가됐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게임업계가 소송전을 불사하는 이유는 글로벌 영토 확장을 위해 IP를 강화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의 갈등 양상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작권 침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기술 유출 및 침해 범위가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캐릭터나 스토리, 세계관 등 시각적 요소에 대해서만 유사성을 판단했기 때문에 게임 장르 및 규칙, 사용자 인터페이스(UI)·사용자 경험(UX) 등 시스템·아이디어 요소는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이 이같은 판결 기조를 바꾸고 있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에 업계 안팎에선 저작권의 기준과 표절 범위를 명확히 세우고, 제작자의 창작 윤리 강화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법원 판례가 그동안 표절 여부를 가리기 어려웠던 경우에 대한 참고 사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 중"이라며 “궁극적으로는 IP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