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측이 공개매수 종료일까지 가격을 83만원에서 추가 인상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분쟁 상대방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공개매수 가격을 89만원으로 상향 조정한 것과 전혀 다른 전략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승자의 저주'에 대한 책임을 최 회장 측에 떠넘기고 그간 다소 불리했던 여론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격을 인상하지 않더라도 상대측의 법적 리스크를 부각시켜 지분 확보 싸움에서도 승리하겠다는 속내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최윤범 회장 가격 인상에도 기존 가격 고수···“출혈 경쟁 그만"
13일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공개매수 가격 인상에 대해 “지난 9일 밝힌 입장에서 변화는 없다"고 답변했다. 앞서 MBK는 “우리가 제시한 고려아연 주당 83만원은 현재 적정가치 대비 충분히 높은 가격"이라며 “공개매수 가격을 추가로 올리지 않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한 바 있다.
반면 경영권 분쟁 상대방인 최 회장 측은 11일 기존 83만원이었던 자사주 공개 매수 가격을 89만원으로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 MBK·영풍 측이 최 회장과 동일한 가격으로 맞춰가기 위해 추가 인상을 고려했음에도 기존 가격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놓고 MBK·영풍의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시장 안팎에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너무 과열되고 있다는 지적을 의식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최 회장 측에 넘기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대한 책임이 최 회장 측에 있다는 점을 지적해 그동안 다소 불리했던 여론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8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대한 즉각적인 불공정거래 조사 착수를 지시했다. 이날 이 원장은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도외시한 지나친 공개매수 가격 경쟁은 종국적으로 주주가치 훼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사법 영역서 승부 보기로···사법 리스크 감안하면 지분 확보도 승산 점쳐
동시에 MBK·영풍 측은 기존의 가격을 고수하면서 법정 다툼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기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의 출혈 경쟁보다는 사법 영역에서의 승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MBK·영풍은 2일 서울중앙지법에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심문기일은 오는 18일로 예정돼 있다.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결의가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해하는 배임 행위이기 때문에 중지돼야 한다는 게 이번 가처분의 골자다.
MBK-영풍은 지난달 13일에도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된 바 있는데, 이번 2차 가처분과는 별개의 건이다. 1차 가처분의 쟁점이 '고려아연이 공개매수자인 영풍과의 특별관계를 해소하고 별도의 주식 매수를 할 자격이 있느냐'였다면, 2차 가처분에서는 '고려아연이 시세보다 높은 주당 83만·89만원에 자사주를 공개매수하는 것이 배임인지' 여부를 따진다.
마지막으로 업계에서는 MBK·영풍이 14일 공개매수 종료일 상대방인 최 회장 측의 사법 리스크를 최대한 부각시켜 지분도 최대한 확보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가처분 결과가 MBK·영풍의 손을 들어준다면 기존 주주들은 고려아연에 주식을 매각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14일 종료되는 MBK·영풍의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확산하려 한다는 시각이다.
MBK·영풍 측은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고려아연은 2조7000억원의 부채를 떠안게 되는데, 그 대가로 회사가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대규모 차입방식의 자기주식 공개매수로 인해 고려아연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발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에 진행 중이던 소송절차를 통한 구제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