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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여하튼 걸어보기로 했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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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여하튼 걸어보기로 했다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남들은 울고 웃으며 즐겁게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저자는 죽상을 하고 쫓기듯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이 마음에 꼭 든다고 말한다. 딱히 대단한 깨달음도 없으며, 그리 성장하거나 성숙했다는 그럴듯한 서사도 없었다. 다녀와서 ‘내가 다녀온 방법은 올바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좋은 여행도 아니었단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걷고, 걷고 또 걸으며 그 속에서 만난 사람, 감정, 사유 등이 솔직하게 담겼다.

신간은 단순한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도 아니고 여행가이드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에는 산티아고 여정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나와 있지 않다. 한 청년이 필사적으로 알고 싶었던 자신과 세상의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치열하게 가설을 세우고 폐기하고, 다시 새로운 생각을 들여다본 과정이 빽빡하다. 저자가 길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과 그린 그림들이 가득하다. 담대하고 낭만적이면서 동시에 찌질하고 피곤한, 우리 인생살이와 같은 글이 그립다면 책을 펼쳐보면 된다.

주체적인 삶, 주인이 되는 삶,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삶. 인생을 사는 그럴듯한 방법은 많고 많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수많은 사람이 자기다운 삶을 찾으려 하지만 쉬울 리 없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기력함에 빠지고 만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떠나야 한다."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떠난 저자는 "내가 지금 딱 그랬다. 내 인생 재부팅이 절실했다. 망가진 인생을 피해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스타트업에서의 하차, 출간의 무기한 연기, 연인과의 이별, 무너지는 건강.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찬 시작이 아니라 권태와 좌절로 시작한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떨지는 저자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저자는 꽤 후련하게 책의 끝을 맺는다. 인생은 여하튼 걸어보는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걷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음을, 걷기로 했으니 아무튼 오늘도 한 발자국 내디뎌야 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사실은 떠나기 전에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역시 당연한 말이라며 웃을지 모른다.

제목 : 여하튼 걸어보기로 했다 - 121만 보쯤에서 깨달은 어느 순례자의 찌질한 기록
저자 : 보
발행처 :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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