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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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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과학, 비과학, 그리고 과학적 사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31 08:29

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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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재현성이 있을 때 과학이라고 하고, 없을 때는 비과학이라고 한다. 비과학을 과학으로 변조 또는 조작해서 정신적,물질적 이득을 취할 때는 과학적 사기라고 한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피어 리뷰가 없는 웹사이트 ‘아카이브’(2023년 7월22일자)를 통해 발표한 임계온도 섭씨 127도(400K)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 ‘LK-99’ 개발 소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언론은 노벨상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수천 조 원에 달하는 상업적 가치를 추정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초전도체 관련주로 거명된 주식 묻지마 투자가 몰리며 폭주했다. 초전도체 관련주로 거명된 기업들이 초전도체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공시를 하지만 묻지마 상한가 행진이 계속됐다. 그러다가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리이론센터(CMTC)가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다’고 발표(8월9일) 하면서 주가는 폭락했다. 이후 김인기 보나사피엔스 대표가 SNS를 통해 "LK-99는 상온 초전도체도 맞고 새로운 강자성체도 맞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관련주의 상한가 행렬이 이어졌다. 최근에 네이처(8월16일자)에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라는 확정적 표현의 기사가 나오자 다시 하한가를 쳤다. 부정적 기사와 긍정적 기사가 반복되면서 주가는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여기서 초전도체 개발 소식을 사기로 단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관계자들이 이 과정을 통해서 이득을 편취한 사실이 명확하다면 사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상온에서의 초전도체 개발은 과학기술계의 꿈이다. 1911년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카멜린 온네스 교수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은 이후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수많은 과학자가 밤낮으로 실험실을 지켜왔지만 모두 허사였다. 2019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미하일 에레메츠가 수소화 란타넘으로 영하 23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발표한 것이 상온에 가장 근접한 연구다.

연구는 무수한 실패 과정을 거치며 진보한다. 그래서 과학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할 때 과학계는 실패에 관용을 가진다. 연구 부정행위는 그 경중에 따라서 사기, 변조, 표절로 대별 된다. 사기는 명백하게 데이터를 날조하고 실험 결과를 조작하는 것이고 변조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표절은 다른 사람의 문장이나 데이터를 적절한 인용처리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과학적 사기의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오도와 편향, 그리고 의도적 왜곡이 있다. 골프에서 홀인원이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까운 것과 같이 과학도 필연보다는 우연에서 찾아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연구 전체가 가설검정처럼 정돈되고 엄정한 절차들에 따라 신중하게 기획되고 이뤄진 것처럼 편집된다. 편향의 문제는 과학자들의 문제보다는 연구비 지원자의 입김에 좌우된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CA(Chemical Abstracts·화학 논문 요약)에 기술된 화학 논문의 80%가 기술된 대로 실험하면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사기보다는 지적재산권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이다. 식품의 경우 조리법을 곧이곧대로 공포하면, 바로 유사품이 출시되기 때문에 조리법을 약간 변조해서 발표하는 게 그 예다.

엄격한 의미에서 지금까지 과학은 한 번도 진실인 적이 없었다. 모든 과학 이론은 후진 과학자에 의해서 부정된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부정됐다. 그러나 누구도 뉴턴의 사기성을 말하지 않는다. 뉴턴은 당시로 가장 과학적이었고,정직했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은 금전적 이득과 무관했다.

그러나 최근의 초전도체, 꿈의 신소재라고 하는 맥신 사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연구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식 시장에서 광풍을 일으키게 되면 과학의 사기성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 과학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는 상온 초전도체의 진위에 상관없이 한국의 이름 없는 벤처가 초전도체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꿈과 열정 그리고 끈기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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