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올해 말까지 출시할 예정이었던 5세대 실손보험은 동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인용하면서 그간 추진되고 있던 보험 정책도 '브레이크'를 밟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는 등 거시적인 환경이 바뀌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말까지 출시할 예정이었던 5세대 실손보험은 동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를 비롯한 비중증·비급여 항목에 대한 자기 부담률을 높이고, 병행진료 급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비급여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불어나고, 과잉진료 우려도 낳는다는 논리다. 4대 대형 보험사 기준 실손 보험금 수령자 중 상위 9%가 전체의 80%를 탔고, 65%는 한 푼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양극화 현상이 보험시장의 왜곡을 야기한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손해보험사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토로하고 있다. 자동차보험이 다시 적자구간으로 돌아선 데 이어 실손보험 손해율도 커지는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실제로 2022년 117.2%였던 4세대의 손해율은 지난해 상반기 130% 수준으로 상승했다. 보험사가 보험료 100원을 받는 동안 보험금 130원이 나간다는 의미다. 1·2세대는 후발주자 보다 손해율이 낮지만, 이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조정으로 보험료가 상승한 것에 기인한다. 보험금 부담 자체는 적지 않다는 의미다.
앞서 금융당국은 5세대의 보험료가 기존 대비 40% 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임신·출산 관련 급여 진료를 실손보험 보장에 포함해도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만 기존 가입자들의 보험을 강제로 전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발이 컸던 정책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계와 일부 법조인들은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실손보험을 설계·운영하는 회사들이 져야 할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린다는 이유다. 이에 대한 가입자들의 평가도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과반을 차지한 야당 의원들이 이러한 목소리를 담아낼 장을 꾸준히 마련했다는 점도 언급된다. 입법이 필요한 경우 이들의 지원사격을 바랄 수 없다는 뜻이다.
요양사업 규제 완화, 보험 판매 수수료 개편, 보험사 자본건전성 안정화, 사망보험금 유동화,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 일명 '나이롱 환자' 관련 자동차보험 개편 등도 당초 계획 보다 시행이 늦어지거나 좌초될 수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가운데)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같은 사안들은 상대적으로 정권에 따른 영향이 적고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른 필요성도 커지고 있지만, 보험업권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과 소통하며 정책을 만들어갈 주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미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정책인 만큼 큰 틀에서는 유지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계엄·탄핵의 여파로 의료개혁특위가 미뤄졌던 것이 최근의 사례다.
수장 교체라는 파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임기는 오는 6월 만료된다. 김병환 금융위윈장 역시 정권이 바뀌면 그간의 관례 등에 비춰 자리에서 물러날 공산이 크다.
다만 펫보험 활성화를 비롯한 일부 정책은 정국이 안정을 되찾은 이후 다시금 테이블에 올라올 수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1500만명 규모로 불어나는 등 유권자층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초기 단계부터 보험사기 이슈가 불거지는 만큼 반려동물 등록제를 포함한 가이드라인 마련도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 정책은 국민들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정치·환율을 비롯한 이슈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며 “신사업을 육성하고 기존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발걸음이 조속히 재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