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가 미래 경제패권을 가를 수 있는 핵심 기술로 급부상하면서 우리 정부가 기업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관련 시장 성장세가 워낙 가파르다보니 미국, 중국 등이 자국 기업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3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AI 반도체 시장 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 2022년 411억달러(약 56조원)에서 2028년 1330억달러(약 182조원)로 연평균 21.6% 성장할 전망이다.
AI 반도체는 AI 알고리즘을 실행할 능력을 갖춘 제품을 뜻한다. PC·스마트폰 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가전, 자동차 등 수요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온디바이스 열풍과 사물인터넷(IoT) 기술 발달에도 AI 반도체의 역할이 상당하다.
전세계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고객사 확보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엔비디아, AMD, 인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뿐 아니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 빅테크들도 참전한 상태다. AWS(Amazon Web Service)는 세계 1위 클라우드로 2018년부터 AI 반도체를 개발해왔다. 다른 클라우드 사업자 대비 자사 칩 개발 및 사용에 적극적인 편이다.
MS는 세계 2위의 클라우드 기업이다. 지난 2019년부터 AI 반도체를 개발했다. 작년 11월 처음으로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를 공개하기도 했다. 구글은 보다 앞선 2016년 관련 제품을 발표하고 5세대 제품까지 개발을 완료했다. 이밖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태동하며 시장 변화를 이끌고 있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은 삼성·SK·LG를 포함해 10여개 수준이다. 모바일, 가전 등 온디바이스 부문에서 일부 제품을 상용화했으며 데이터센터 부문은 사업을 본격화하는 단계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해당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이 아직 미국 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기술력을 100으로 놨을 때 한국은 80으로 기술 격차가 2.5년 정도 난다고 진단했다. 이는 중국(90), 유럽(85)에도 밀리는 수치다.
주요국들은 육성 정책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민간기업이 AI 반도체 개발을 주도하며 국방부는 차세대 반도체 리더십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기술과제 해결을 지원하고 있다. 상무부는 국내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 등을 지원 중이다.
산·학·연 중심 중장기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며 기업의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시행된 '칩스법' 역시 산업 생태계 조성 등 관련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현금을 살포하고 있다. 정부가 AI 반도체 설계와 제조 역량 확보를 위해 화웨이, SMIC 등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 등으로 AI 연산을 위한 컴퓨팅 자원 확보가 어려워지자 자국 AI 반도체 육성 지원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만·일본도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 2020년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2030년 글로벌 시장 점유율 20%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경기 화성시 소재 반도체 기업 에이치피에스피 본사에서 진행된 소부장 기업 간담회에서 “반도체 지원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규모는 10조원 이상 대규모로 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업계는 정부가 직접적 재정 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길 기대하는 모습이다. 올해 일몰 예정인 국가전략기술투자세액공제 일몰 연장 등도 국회에서 논의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나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며 AI 반도체는 성장 초기 단계로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제고할 기회"라며 “AI 반도체 경쟁력 제고는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휴대폰, 자동차, 조선, 가전 등을 똑똑하게 만들어 산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개발자금 지원, 레퍼런스 구축, 수요산업과 협력 강화, 팹리스-파운드리의 유기적 협력관계 도모 등이 요구된다"며 “중동·유럽 등이 국가안보, 지정학적 이슈로 AI 반도체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에 대한 정부의 외교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