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주요 기업들이 리더십을 교체하며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고 있다.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과감하게 수장을 바꾸거나 새 인물을 발탁하는 등 의사결정을 발 빠르게 내리고 있다. '복합위기' 국면 위기를 극복하고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반도체 사업부 수장을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으로 교체하는 '원 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구체적으로 전 부회장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에, 전 부회장이 맡고 있던 미래사업기획단장에는 기존 DS부문장이었던 경계현 사장을 각각 임명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황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 삼성전자가 미래 경쟁 패권에서도 일부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DS부문에서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며 급성장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는 경쟁사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사적 역량을 동원해 기술력을 개발해온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등판한 전 부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LG반도체 출신으로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해 D램·낸드플래시 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를 거쳐 2014년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17년에는 삼성SDI 대표를 맡아 회사 체질을 개선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신임 의료기기사업부장 겸 삼성메디슨 대표로 유규태 의료기기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부사장)을 임명했다. 삼성전자의 의료기기 자회사 삼성메디슨은 지난 2011년 초음파 의료기기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벤처업체인 메디슨을 인수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김용관 부사장은 사업지원TF 소속으로 전환 배치했다.
CJ그룹 역시 위기 극복 차원에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수시로 바꾸고 있다. 지난 3일 이건일 CJ프레시웨이 대표를 신규 선임하고 3월에는 윤상현 CJ ENM 커머스 부문 대표를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로 낙점했다.
CJ그룹은 작년 정기 임원인사를 올해 2월 단행했다. 당시 강신호 CJ제일제당 대표, 신영수 CJ대한통운 대표 등에게 지휘봉을 맡겨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재계에서는 CJ가 정기인사 이후 3개월여만에 주력사 리더십을 또 교체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5년만에 계열사 현장 점검에 나서는 등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도 지난 4월 신세계건설 대표를 바꾸는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 정두영 대표를 경질하고 신임대표로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한 것이다. 허 부사장은 '재무통'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룹의 재무 관리를 맡아온 이력이 있는 만큼 향후 신세계건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KG모빌리티(KGM)는 지난 13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해외사업본부장 황기영 전무와 생산본부장 박장호 전무를 대표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이에 따라 KGM은 곽재선 회장을 포함해 3인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경영 효율성 제고와 국내외·서비스사업, 생산 부문에서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게 업체 측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