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으면서 경영계가 애를 태우고 있다. 업종별 임금 차등적용 등을 두고 노동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며 인상폭 등에 대한 의견 조율은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등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법안이 무더기로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 불확실성이 또 생겼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감돈다.
26일 경제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5차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날 회의부터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차등) 적용'이 논의됐지만 노동계가 이를 '레드라인'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구분 적용이 최저임금 취지를 완전히 무너뜨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급여력'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다.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이날 회의에서 “최저임금 고율 인상 누적과 일률적 적용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현재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렵다"며 “숙박업과 음식업은 주휴수당까지 반영하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미만율이 50%를 넘는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심의 기간이 역대 최장이었던 작년보다 더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 법정 심의 시한이 27일까지지만 아직 구분 적용 여부도 정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이 원하는 최저임금 수준도 제시가 안된 상태다.
다급해진 소상공인들은 거리로 나섰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소상공인 2000여명은 전날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최저임금 동결'과 '업종별 구분적용'을 반영해달라고 호소했다.
유기준 소공연 회장 직무대행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티는 동안 50% 이상 늘어난 대출원금과 이자비용이 소상공인의 숨을 죄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부담까지 가중되면 소상공인은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음식·숙박업의 경우 사업체 월평균 매출액까지 하락하며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며 “최저임금위원회는 한계 업종에 구분적용에 필요한 과학적인 통계 확보를 위해 필요한 연구 용역을 시행하고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과반(54.4%)은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43.4%) 또는 '인하'(11.0%)해야 한다고 답했다.
적정 최저임금 인상 수준에 대한 의견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결(43.4%), 1% 이상 3% 미만(17.2%), 3% 이상 6% 미만(13.4%), 인하(11.0%), 6% 이상 9% 미만(8.2%) 순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변동폭은 고용 시장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동 조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시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서 자영업자의 절반(48.0%)은 현재도 이미 고용여력이 없다고 응답했다. 최저임금을 1~3% 미만 인상 시 9.8%, 3~6% 미만 인상 시 11.4%가 고용을 포기하거나 기존 직원 해고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날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최저임금 차별적용시도 즉각 중단과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 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고물가, 내수부진 장기화 등으로 가계소비가 위축돼 자영업자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경영 애로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최저임금의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 사용자의 지불능력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하며 업종·지역별 차등적용 논의가 구체화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