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발생한 화재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우선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추진한다. 이에 현대자동차와 기아, BMW코리아에 이어 벤츠까지 속속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단행하고 있다.
향후 일부 수입차 업체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중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전기차 생태계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긴급 회의서 '배터리 제조사 공개' 우선 논의···현대차·기아 등 공개 나서
1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 회의를 열어 전기차 화재 대응방안 대해서 논의한 결과 국내 보급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정보를 모든 제작사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또 정부는 다음달 전기차 안전관리를 위한 대책이 발표되기 전까지 주요 차량 제조사를 중심으로 전기차 특별 무상점검을 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환경부 차관 주재로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이 참석했던 전기차 및 지하 충전소 화재 관련 긴급 회의를 열기도 했다. 12~13일 진행된 회의에서는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이후 확산되는 '전기차 포비아'를 잠재우기 위한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이 논의됐다.
회의에서 가장 우선 논의된 대책으로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꼽힌다.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를 일으킨 전기차는 당초 알려졌던 것과 다른 제조사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의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그동안 전기차 관련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이에 대한 제조사의 정보를 영업 비밀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화재로 인한 인명·재산 손실 위험이 주목을 받으면서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한 완성차 업체들도 속속 배터리 제조사 공개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9일 홈페이지를 통해 전기차 13종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현대차의 계열사인 기아도 지난 12일 자사 전기차 7종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또 지난 12일 BMW코리아도 자사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3개사는 당초 소비자가 문의할 경우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해왔으나 최근 전기차 포비아 확산으로 문의가 크게 늘어나면서 홈페이지 공개를 단행하게 됐다.
◇화재 전기차 벤츠도 공개로 입장 선회···해외서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 확산 추세
13일에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의 수입사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서 자사 전기차 8종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전격 공개했다. 벤츠는 화재 사건 이후 소비자의 문의가 폭주하는데도 배터리 제조사가 영업 비밀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또 최근 국토부 정밀조사로 화재 전기차의 배터리 제조사가 중국 '파라시스'인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뚜렷한 입장 표명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들의 지적이 거세지면서 결국 배터리 제조사 공개하기에 이르게 됐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거부해왔던 벤츠까지 공개를 단행하면서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베터리 제조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마케팅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지만 대부분 업체들이 공개하기로 나선 마당에 혼자서만 영업 비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아울러 해외에서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국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중국은 지난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통해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고 있다. 또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일부 주들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 BMW에 이어 벤츠까지 공개하기로 하면서 향후 다른 업체들도 모두 공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며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전기차의 화재 발생율이 오히려 낮은 편이지만 소비자들의 공포심이 너무 큰 상황이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