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학 서울마주협회 회장. 사진=서울마주협회
“최근 싱가포르와 마카오가 경마 폐쇄를 결정해 우리 경마업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반면 일본과 홍콩은 전례없는 경마산업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경마는 싱가포르·마카오의 길을 갈 것인지 일본·홍콩의 길을 갈 것인지 기로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최근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 서울마주협회장실에서 만난 조용학 서울마주협회 회장은 기자에게 지금 한국경마는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경마선진국' 싱가포르·마카오 경마폐쇄…한국경마 '닮은꼴'
조용학 회장은 지난 2월 서울마주협회 정기총회에서 제13대 서울마주협회장에 당선됐다.
지난 2021년 제12대 회장에 취임한 조 회장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 경마중단 등 존폐위기 속에서 온라인 마권발매 법제화 등 경마산업의 위기극복에 기여한 공로로 마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조 회장은 코로나 기간동안 경마 정상화를 위한 마주들의 희생이 컸던 만큼 이번 2기 임기에는 마주들의 권익 향상에 주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조 회장은 지금 한국경마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말하고 세제개혁 등 경마산업 선진화를 위한 현안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국내 경마는 코로나 이전의 방문객 수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를 계기로 온라인 마권발매 제도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정부는 '안전장치'라는 명목으로 2중 3중의 중복규제를 채워두고 있으며, 무엇보다 불법경마가 여전히 합법경마의 1.5배 수준으로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 회장은 최근 싱가포르와 마카오가 더이상 경마산업을 유지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에 국내 경마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카오는 지난 3월 31일, 싱가포르는 오는 10월 5일 마지막 경주를 끝으로 경마장을 폐쇄하고 더이상 경마산업을 유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경마산업 정책이 지원보다 규제에 치우쳐 있었던 점, 이에 따른 투자 미흡과 시설 낙후, 고객 이탈, 매출 감소, 경마 경시 분위기가 주된 원인이죠."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마카오는 말 생산농장 등 말산업 기반이 없어 경주마를 전량 수입해 경마를 시행한다. 또한 싱가포르와 마카오 모두 불법도박이 성행해 합법경마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아 왔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와 마카오 정부당국도 비교적 쉽게 경마산업 포기를 결정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말산업육성법에 따라 농어촌 경제 활성화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말산업 육성 책무가 부과돼 있다.
말산업 육성을 위한 재원은 대부분 경마산업에서 창출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경마산업 정책이 지원보다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경마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싱가포르나 마카오와 닮은꼴이라는 설명이다.
조 회장은 “마카오와 싱가포르는 카지노산업의 성장과 경마를 경시하는 정부의 태도가 경마산업 몰락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1일 경기 안성팜랜드에서 열린 명예경주마 '백광' 휴양목장 입사식 및 동물명의 기부협약식에서 조용학 서울마주협회 회장이 김진갑 한국마사회 말복지센터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서울마주협회
◇일본·홍콩경마, 도박세개혁-불법근절-팬클럽확산 '선순환'
반면 조용학 회장은 싱가포르·마카오와 대조적으로 일본과 홍콩의 경마산업은 전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찍부터 온라인 마권발매 제도를 운영해 온 일본과 홍콩은 코로나 기간동안 아무런 타격이 없었고 오히려 매출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지난해 경마매출액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31조6000억원에서 38조9000억원으로 늘었고, 홍콩은 19조9000억원에서 22조5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마매출액이 2019년 7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5000억원으로 코로나 종식 후에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조 회장은 일본과 홍콩 경마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로 '높은 환급률을 통한 불법경마 흡수'와 '국제대회 선전을 통한 국내 경마팬 확산'을 꼽았다.
“홍콩은 지난 2006년 경마환급률을 81%에서 84%로 높이고 도박세율을 낮추는 세제개혁을 통해 불법경마 이용객을 합법경마로 끌어들여 합법경마 매출과 세수입을 모두 늘리는 동시에 불법경마를 근절하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일본(75%) 역시 우리나라(73%)보다 높은 환급률과 효과적인 불법도박 단속으로 불법경마가 활개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은 풍부한 경주마 육성 인프라를 바탕으로 사우디컵, 두바이월드컵 등 세계 최고 경마대회에서 잇따라 자국 경주마가 우승하면서 일본 젊은층 사이에 인기 경주마 팬클럽이 늘고 있는 점이 경마 대중화에 한 몫 하고 있다.
조 회장은 우리나라가 싱가포르, 마카오처럼 말산업이나 경마산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일본, 홍콩 사례를 벤치마킹해 경마 선진화·레저화와 말산업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마주협회와 정식교류를 시작한 일본 큐슈마주협회 관계자들이 서울경마공원을 방문해 관람대 1층에 있는 '놀라운지'(2040세대 연인·가족고객 전용 관람공간)와 경마장 응원문화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경마를 고급 레저산업으로 승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용학 회장은 "우리나라도 경마관련 세제개혁 논의가 시작돼 불법경마 근절과 경마인프라 투자재원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길 바란다"며 “마주들도 경주마 경기력 향상은 물론 동물명의기부 등 기부문화 확산과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 활동, 동물복지 강화 등을 통해 경마에 대한 국민인식 제고에 노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