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취임하는 가운데 망 사용료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빅테크 책임론자로 꼽히는 브랜든 카(Brendan Carr) 연방통신위원회(FCC) 상임위원이 차기 위원장으로 내정되면서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빅테크의 국내 망 무임승차 문제 해결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7일(현지시간) FCC 위원장에 카 위원을 내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당 위원회는 미국의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카 FCC 위원장 내정자는 빅테크의 망 무임승차 현상에 반대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뉴스위크 기고를 통해 “빅테크들은 공짜로 광대역망 수혜를 누리면서 2020년에만 1조달러 넘는 매출을 창출했다"며 “우리는 빅테크가 공정한 몫을 지급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의 통신 정책 기조가 국내 망 사용료 납부 이슈와 망 무임승차 방지법 통과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 IT업계에선 빅테크의 망 사용료 납부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망 투자 부담은 국내 통신사만 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통신망 트래픽 사용량은 구글(28.6%), 넷플릭스(5.5%), 메타(페이스북) 4.3%, 아마존 3.2%, 애플 0.3% 등 순이다. 망 사용료는 넷플릭스·구글 등 콘텐츠 사업자(CP)가 인터넷망을 이용한 대가로 통신사 등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뜻한다. 그러나 글로벌 CP들은 망 중립성을 내세워 분담 의무를 거부해 왔다. 다만 업계에선 망 중립성과 망 사용료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1심 소송에서 법원은 망 중립성과 망 사용료는 상호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핵심은 글로벌 CP와 국내 ISP 간 협상력 불균형으로 인한 공정성 훼손과 시장 실패다. 현재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 CP와 ISP의 협상 구조는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CP에 유리한 상황이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CP는 언제든 ISP와 연결을 끊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이용자 이익 저해로 ISP가 처벌되기 때문. 이에 따라 협상력 차이가 벌어지면서 빅테크가 망 사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지난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김영섭 KT 대표는 구글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망 사용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구글이란 거대한 기업과의 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와의 협상력 차이에 있어 국내 통신사가 밀릴 수밖에 없음을 내포한 셈이다. 따라서 글로벌 CP의 과도한 교섭권 행사를 억제해 공정하고 자율적인 협상을 촉진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22대 국회에선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이정헌 민주당 의원이 각각 망 무임승차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두 법안 모두 정보통신망을 이용할 경우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망 사용료 갈등과 관련해 전체적인 시장 질서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개별 기업 간 협약 사항인 만큼 해결되지 않은 지점들이 남아 있다"며 “근본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트래픽 점유율 격차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입법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 원칙을 감안하면, 결론적으로 미국에 한정된 규제로 귀결되며 현지 통신사가 유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빅테크 입장에선 미국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 망 사용료 의무를 피해갈 명분이 생기기 때문. 특히 빅테크의 대부분이 미국 기업임을 고려하면,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장치를 함께 마련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의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카 위원장 내정자의 망 사용료 이슈에 대한 관점을 고려하면, 해당 문제는 자국 산업 보호·우선주의 정책에서 열외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앞장서서 국회 입법 논의에 협조해야 한다. 미온적 자세보단 명확한 입장 표명을 통해 관련 법안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