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투자에 힘입어 반도체 호황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판단이 한층 분명해졌다.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반도체 고점론'에 대해선 현재의 업황이 과거와 다른 구조적 요인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13일 한국은행이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에 따르면 한은은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당분간 확장 국면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AI 확산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공급은 기술적 제약으로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한은은 현재 반도체 시장을 과거 사이클과 동일한 잣대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AI 인프라 구축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의 투자 규모와 속도가 이전 확장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번 확장기는 AI 확산에 따른 산업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쟁적 투자가 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확장기와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공급 여건도 호황이 장기화하는 배경으로 꼽았다. 한은은 고성능 반도체는 양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데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처럼 고객 주문에 맞춰 생산하는 제품 비중이 커지면서 공급 확대 속도가 제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비해 공급 증가가 상대적으로 더딘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수급 구조가 반도체 업황을 지탱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업황의 지속 기간도 과거 평균을 웃돌고 있다. 한은은 이번 반도체 경기 확장 국면이 2023년 3월 이후 40개월째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다섯 차례 확장기의 평균 지속 기간인 29개월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망도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한은은 주요 해외 투자은행들의 분석을 인용하며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적어도 내년까지는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이는 그동안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던 기존 평가보다 한 단계 연장된 전망으로 해석된다. 다만 AI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고 봤다. 한은은 AI 기술 확산 속도와 수익성, 적용 범위 등에 따라 업황 흐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변수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반도체 업황에 대한 낙관적 시각은 꾸준히 제시돼 왔다. 이지호 당시 조사국장(현 부총재보)은 지난해 11월 경제전망 브리핑에서 반도체 사이클이 2026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고, 이창용 전 총재도 올해 1월 AI 버블 논란과 관련해 “AI 산업에서 누가 승자가 되더라도 반도체는 써야 한다"며 “관련 산업이 적어도 1년 시계에서 전망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반도체 수출이 예상치를 웃도는 증가세를 이어가는 점은 한은의 판단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통관 기준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월 171.4%, 5월 167.7% 증가했고, 월간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선 6월에는 증가폭이 더욱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오는 16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경제 여건과 함께 반도체 업황에 대한 추가 진단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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