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ATM 줄이는 은행, 금융 접근성은 누가 지키나

현금 사용이 줄고 모바일뱅킹이 일상화되면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ATM이 줄어들수록 고령층과 디지털 금융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금융 접근성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금융권의 책임도 커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용률이 낮은 ATM을 유지하는 비용을 줄이고 디지털 금융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현금 사용 감소와 비대면 금융 확산이라는 변화 속에서 오프라인 채널을 효율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모든 금융 소비자가 디지털 금융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실제 ATM 감소세는 뚜렷하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2만9321개였던 전국 은행 ATM은 올해 6월 말 2만4711개로 3년 반 만에 4610개, 15.7% 줄었다. 은행 영업점 역시 같은 기간 5657개에서 5381개로 276개 감소했다. 특히 지역별 감소폭을 보면 금융 접근성 문제를 단순히 은행의 점포 효율화로만 보기 어렵다. 울산의 ATM은 21.5%, 경남은 20.8%, 제주도는 18.2% 줄었다.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ATM이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인구와 거래량이 적은 지역일수록 은행이 오프라인 채널을 유지할 유인이 작기 때문이다. 문제는 ATM이 단순히 현금을 인출하는 기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소비자에게는 ATM 한 곳이 사라지는 것이 큰 불편이 아닐 수 있다. 반면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현금 사용이 필요한 소상공인에게 ATM은 여전히 중요한 금융 인프라다. 특히 지방에서는 ATM 하나가 사라질 때 이를 대신할 시설을 찾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은행에 모든 ATM과 영업점을 과거처럼 유지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이용률이 낮은 시설까지 일률적으로 유지하면 은행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결국 금융서비스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은행의 효율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접근성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다. 금융위원회도 금융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우체국을 통한 은행대리업을 시범 운영하고 은행권 공동 ATM 확대를 추진하는 등 대체 금융채널 마련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은행이 줄인 금융 인프라를 공공 영역이 어디까지 대신할 것인지, 공동 ATM을 어느 지역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앞으로는 ATM의 절대적인 숫자보다 지역별 금융 접근성을 기준으로 시설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고령층 비중과 인구 규모, 주변 대체 금융채널의 유무 등을 고려해 금융 취약지역을 정하고 최소한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은행별로 따로 ATM을 유지하기보다 금융권이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디지털 금융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고 그 변화의 비용을 금융 취약계층에 일방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은행의 효율성과 금융의 공공성이 충돌하지 않도록 사라지는 ATM의 빈자리를 누가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기자의 눈] 콜버스와 닥터나우…낡은 규제와의 투쟁 10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스타트업 콜버스랩이 선보인 심야 호출형 버스 서비스 '콜버스'가 난관에 봉착했다. 콜버스는 밤늦게 택시를 잡기 어려운 사람들을 앱으로 모아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승객들을 한 대의 버스에 태워 보내는 서비스로, 이용자 입장에서는 택시보다 저렴하면서 승차 거부도 피할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택시업계가 크게 반발하며 콜버스의 운행 중단을 요구했고, 결국 정부가 심야 콜버스 운행 자격을 버스·택시 면허사업자 중심으로 제한하면서 콜버스랩의 사업모델은 크게 바뀌게 됐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김봉진 당시 우아한형제들 대표(코리아스타트업포럼 초대 의장, 현 그란데클립 대표)에게 연락했다. “우리가 한데 모여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장면은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이 생겨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으로 불린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닥터나우는 환자가 앱으로 의사에게 비대면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약국에 전송할 수 있도록 연결한 서비스다. 닥터나우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의약품 도매업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안은 편법행위가 우려된다며 해당(의약품 도매업) 사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코스포는 “혁신의 성패가 시장과 이용자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의 목소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며 약사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반발했다. 콜버스와 닥터나우는 스타트업 규제사(史) 10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봉진 코스포 초대 의장은 지난 9일 서울 강남 팁스타운에서 열린 '코스포 10주년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규제 문제 때문에 스타트업이 모이게 됐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규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게 현재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원 현 의장은 코스포의 숙원으로 규제 혁신을 꼽았다. 스타트업을 위해 규제를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 혁신의 속도에 제도의 속도를 맞춰달라는 주문이다. 김 의장은 “시장을 움직이는 규칙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혁신은 성장할 수 없다"며 “갈등이 생겼을 때 몇 년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더 빨리 조정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10년은 낡은 규제와의 투쟁사였다. 다가올 10년은 스타트업의 혁신과 제도의 혁신이 발을 맞춰 함께 가기를 바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명절은 간소화됐는데, 왜 지갑은 가벼워질까

명절이 예전보다 간소해졌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차례상을 차리는 가정이 줄고 가족 규모가 축소됐다. 명절 음식을 직접 장만하기보다 필요한 만큼 사서 먹는 경우도 늘었다. 유통업계가 추석을 앞두고 '소포장'을 확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명절을 간소하게 보낸다고 지출 부담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올해 추석 선물세트 시장을 보면 이런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1++등급 한우와 특수부위를 200g 단위로 나눈 소포장 상품을 확대했다. 한우 선물세트에서 소포장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25%에서 지난해 34%까지 높아졌고, 올해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핵심은 '적게'가 반드시 '싸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포장은 필요한 만큼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고급 상품을 소량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200g 단위의 1++ 한우와 함께 수백만원대 최고급 한우 선물세트도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 등 다른 백화점들도 프리미엄 식품과 희소성 높은 상품, 소포장 제품을 앞세우고 있다. 과거처럼 선물세트의 크기와 구성품을 늘리기보다 품질과 취향, 희소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소비 변화가 물가 부담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일 기준 한우 등심 100g당 소비자가격은 지난해보다 22.6% 올랐다. 안심은 19.9%, 양지는 17.7% 상승했다. 한우 사육 마릿수 감소로 공급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결국 명절 소비는 '많이 사서 풍성하게 차리는 방식'에서 '필요한 만큼 사고, 대신 좋은 것을 고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통업계가 달라진 소비 방식에 맞춰 소포장과 프리미엄 상품을 내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소비자 역시 적은 양이라도 품질 좋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소포장'과 '프리미엄'이 가격 부담을 정당화하는 수식어가 돼서는 곤란하다. 적게 사는 것이 반드시 지출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얼마를 지불하느냐'다. 올해 추석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변화다. '간소화'가 소비자의 부담을 줄인 것인지, 아니면 부담의 방식을 바꿔놓은 것인지 돌아볼 때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기업에만 ‘초과이익’ 배분? 고위공직자 부동산 차익은?

정부가 기업의 초과이익을 사회적으로 나누자는 화두를 던졌고 이로 인한 기업들의 노사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AI)·반도체 호황으로 일부 대기업에 막대한 이익이 집중되는 만큼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성과를 함께 누릴 방안을 찾자는 취지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다만 정부가 기업에 '초과이익'의 사회적 배분을 요구하려면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그 원칙은 기업에만 적용되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부인 김혜경 여사와 공동 보유해온 분당 아파트를 약 29억원에 매각했다. 1998년 약 3억6000만원에 매입한 주택으로, 단순 매입·매각가격만 비교하면 25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이를 부당한 이익이라고 할 이유는 없다. 20년 넘게 보유하고 실제 거주한 집의 가격이 오른 것이고, 매각에 따른 세금도 법에 따라 내면 된다. 그렇다면 기업은 다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오랜 연구개발과 천문학적인 설비투자를 거쳐 반도체 호황기에 큰 이익을 낸다. 법인세를 내고 남은 이익을 다시 공장과 기술에 투자한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익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초과이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회적 배분을 논의하자고 한다. 최근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과천 아파트를 17년간 보유하면서 실제 거주 기간이 짧았다는 '비거주 1주택' 논란에 휩싸였다. 이 후보자는 “거주 중심 주택시장 정착은 확고한 원칙"이라면서 현재 해당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멸실 중이며 자세한 경위는 청문회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10억500만원에 사면서 주택담보대출 3억6700만원과 장모에게 빌린 1억7000만원을 활용했다. 해당 평형의 최근 거래가격은 14억원대로 올랐다. 홍 후보자는 현 정부 출범 전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했고 실제 거주하고 있다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역시 위법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다. 개인이 주택을 사고 가격이 올라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 잘못이 아니듯, 기업이 투자하고 경쟁해 많은 돈을 버는 것 역시 그 자체로 문제일 수 없다. 물론 기업 영업이익과 개인의 부동산 차익은 경제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 조세제도를 넘어 '많이 얻은 이익은 사회적으로 더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업의 이익은 노동자와 협력업체, 사회 인프라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배분론의 논거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 상승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도로와 지하철, 학교 등 공공 인프라와 정부 정책, 시중 유동성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더구나 반도체 기업의 이익은 미래 경쟁력의 재원이기도 하다. 오늘 번 돈으로 연구개발과 신규 팹에 투자하지 않으면 다음 반도체 사이클에서 뒤처질 수 있다. 무엇보다 '초과'의 기준부터 불분명하다. 어느 정도까지 정상 이익이고 어디서부터 초과인가. 반도체 불황기에 기업이 수조원대 적자를 내면 그 손실도 사회가 나눠 부담할 것인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의 정상적인 이익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불공정한 납품단가와 기술 탈취를 바로잡고 원·하청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조세와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면 된다. 대통령도, 고위공직자도 시장에서 형성된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기업 역시 시장에서 경쟁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초과이익의 사회적 활용을 논의할 수는 있다. 다만 기업에만 '초과'라는 이름표를 붙인다면 정책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가 아니라, 같은 원칙을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느냐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집단대출 완화가 남긴 혼란

최근 금융당국의 집단대출 완화는 시장에 질문을 남겼다. 수분양자의 입주 차질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실수요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히려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잔금대출 규제가 완화된 계기는 지난 7월 23일 열린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였다. 수원 '매교역 팰루시드'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잔금대출 규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은행권에 대책 마련을 주문하며 잔금대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예외적인 구제 정책은 형평성 논란을 키웠다. 같은 시기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다른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청약에 당첨돼 잔금을 치르는 사람들은 한숨 돌린 것과 달리 기존 주택을 거래하려는 차주들은 여전히 높은 대출 문턱을 마주해야 했다. 둘 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이 필요하지만, 주택 마련 방식에 따라 다른 한 쪽은 예외를 인정받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으면서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존 주택을 매수하려는 차주 부담은 늘어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서울 구축 아파트 평균 거래가격은 10억5167만원이다. 단순히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를 적용할 경우 대출 가능액은 약 4억2000만원 수준이다. 6억원 이상의 현금이 있어야 서울에서 구축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할 경우 대출 한도는 더 감소할 수 있다. 반면 선호도가 높고 가격 상승 기대가 큰 신축 단지는 잔금대출 공급이 확대되며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들은 자금 부담은 한층 완화됐다. 정책은 현실에 맞춰 조정될 수 있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가계대출 관리를 강조하며 규제를 강하게 조이다가 특정 상황에서 예외를 두면 시장은 정책 방향을 신뢰하기보다 다음 완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은행들도 혼란스럽다. 총량 규제에 맞춰 가계대출을 조였다가 집단대출에 예외가 생겼고 총량 목표치도 2배로 늘어나며 대출 기준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마저도 당국의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은행권에서도 난처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은행이 대출 방향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소비자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지금 정책은 정부가 실수요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또 일관되지 않은 정부 정책에 시장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내 집 마련은 하루아침에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자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는 인생의 큰 선택 중 하나다. 내 집 마련 계획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2030男 지지율 바닥인데 ‘용혜인 카드’라니

정치에 통 관심이 없던 친구들에게서 요즘 카톡이 쏟아진다. “야, 용혜인이 진짜 장관으로 온다고?"라는 질문과 함께 첨부된 뉴스 캡처본이다. 원래 정치 뉴스라곤 야구 스코어보다 안 보던 애들이 이 정도로 반응한다는 건 민심의 기류가 확실히 이상하다는 신호다. 최근 2030 세대 남성들의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앞자리가 '2' 자리에 턱 걸쳐 있다. 취업 문은 좁아지고 자산 격차는 벌어지는데, 현장의 절박함을 달래줄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 등이 쌓인 결과다. 그런데 이 시점에 정부가 던진 카드가 하필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다. 21·22대 국회에서 페미니즘 담론과 젠더 갈등 최전선에 서 온 상징적 인물을 2030 남성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처의 수장으로 올려놓은 셈이다. 재밌는 건 이 '왼쪽 챙기기' 카드가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대통령 지지세력이 대립각을 세워온 방송인 김어준 씨는 “의원직을 내려놓을 이유가 없다"며 옹호했고, 최민희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비례대표를 두 번이나 할 정도면 실력이 있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용 후보자를 옹호하기 위해 진영 내 일시적인 통합이 이뤄진 것이다. 여권의 일방적인 옹호가 이어질수록 2030 남성들이 느끼는 거부감은 배로 불어난다. 소수정당인 기본소득당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용 후보자는 젠더 갈등을 자극하고 페미니즘 진영의 입장을 대변해 오며 비례위성정당 특혜를 반복적으로 누려온 '벼락출세'의 수혜자로 비칠 뿐이다. 당리당략을 이유로 장관직과 비례대표 의원직을 모두 누리려 하는 모습에서, 입각 시 사퇴로 승계를 보장하던 최소한의 관례마저 저버린 모습에서 상식과 공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의원직을 포기할 수 없었다면 장관직은 탐내지 말았어야 했다. 최근 2030 남성 지지율이 바닥을 친 건 그들이 극우화되거나 고집을 부려서가 아니다. 취업난과 자산 격차라는 이중고 속 젠더 정책에서 만큼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최소한의 평등이라도 지켜달라는 마지막 신호였다. 그 신호를 읽지 못하고 왼쪽 챙기기에 급급한 채 '용혜인 카드'를 밀어붙인다면, 2030 남성 지지율의 앞자리는 '2'마저 깨지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 민심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신교근 기자 shin1948@ekn.kr

[기자의 눈] “왜 명령 거부 안 했나”…정치 논리와 軍 상명하복 딜레마

12·3 비상계엄에 휘말린 군인에 대한 최근의 수사와 재판을 지켜보면 딜레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차 종합특검은 서강대교에서 병력을 회군시켜 내부고발자로 평가받던 조성현 전 제1경비단장마저 내란 가담 혐의로 기소했다. 최초 출동 당시 계엄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다. 정치인 체포 지시 폭로자인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국회에 진입했던 김현태 전 707특수임무단장에게 징역 12년, 이상현 전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장 징역 10년,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은 징역 5년을 선고해 법정구속됐다. “명백히 불법한 명령까지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게 재판부의 논리다. 헌법과 형법의 잣대로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잣대가 군대라는 특수한 무력 집단의 현실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이 시사점을 준다. 지난 1월 현장에 투입된 미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작전의 정치적·법적 논란은 명령권자인 대통령과 행정부가 감당했고, 명령을 수행한 군인을 법정에 세우지는 않았다. 그것이 법치국가가 군이라는 물리력을 대우하는 방식이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판단을 할 수 있는 장군급이 계엄의 위법성을 알고도 동조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실무 지휘관에게 명령의 헌법적 정당성까지 스스로 따져 복종 여부를 결정하라고 요구하면, 그 명령 체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급박한 상황에서 '항명'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내란의 고의'를 물어 중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실제 국회에 투입된 군인들은 계엄 해제 의결을 막는 시도를 하다가 철수했다. 대치 과정에서 부상 입은 민간인은 있었으나 심한 무력을 쓰진 않았다. 12·3 계엄의 주동자들과 헌정 질서를 유린한 세력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작전이 성공했다면 끔찍하다. 그러나 그 정치적 사태의 단죄가 군대 상명하복 체계의 불신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명령권자의 책임과 명령을 받은 군인의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그 기준 없이 사후적으로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면, 군인들은 다음 명령 앞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기자의 눈] ‘공급 못 해 미친 것처럼’…속도전에 가려진 것들

“'공급 못 해 미친 것'처럼 최대한 신속하게 공급을 늘리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각 발표 직후 이같이 언급하며 신속한 주택 공급 의지를 드러냈다. 새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홍지선 국토부 차관 역시 후보자 지명 후 출근길 첫 메시지로 '속도'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홍 후보자의 발언은 정부의 주택정책이 공급 계획을 발표하는 단계에서 실제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는 단계로 접어든 상황과 맞물린다. 정부는 김윤덕 장관 체제에서 9·7 대책, 1·29 대책에 이어 이번 8·13 주택 신속공급방안을 내놓으며 수도권 공급 확대 방안을 구체화했다. 8·13 대책에는 수도권 23만가구 이상의 추가 공급과 함께 신규 공공택지 사업 절차를 대폭 단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신규 공공택지는 후보지 발표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기간을 기존 68개월에서 37개월로 절반 가량 줄이는 '최단기 착공 모델'을 도입했다. 지구 지정과 지구계획 수립, 보상, 부지 조성 등 사업 절차를 단축해 공급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기존 공공택지의 착공 시점도 1~2년 앞당긴다.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절차 합리화'와 '여러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이다.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절차는 걷어내고, 토지소유자·지자체 등 이해관계자와의 조율은 오히려 더 촘촘하게 이뤄져야 한다. 절차를 줄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용산공원 개발이 대표적이다. 용산공원을 주택 공급에 활용하려면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녹지 보존 등을 이유로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법을 개정한다고 하더라도 미군으로부터 부지를 반환받고 정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정부가 단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이 진행 중인 민간 사업지도 마찬가지다. 경기 광주시와 민간이 2018년부터 추진해 온 광주역세권 2단계 도시개발사업은 8·13 대책에서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다. 토지주는 물론이고 지자체도 이 사실을 대책 발표 이후에서야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 환지를 위해 민간 사업자와 계약을 맺은 토지주들은 기존 계약이 유지되는지 조차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주택 공급에서 속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정책 과정에서의 책임 있는 설명이다. '공급 못 해 미친 것처럼' 공급하겠다는 대통령의 표현만큼이나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결정했느냐'보다 그 결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실행하느냐'일 것이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기자의 눈] 성장 기다리기엔 짧은 모험자본의 ‘유통기한’

모험자본은 위험을 감수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자금이다. 투자자는 당장의 실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돈을 맡긴다. 정부가 모험자본 공급 확대에 힘을 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신기업이 성장하려면 실패를 딛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기업의 도전을 격려하고 자본을 투입하면서 정작 그 결과를 기다릴 준비는 돼 있는지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 했지만 투자자가 부담스러워했다고 털어놨다. 투자자의 펀드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대신 기업공개(IPO)를 앞당겨 투자자의 기대수익을 충족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토로한 셈이다. 숫자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초기 투자를 받은 뒤 IPO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3년이다. 반면 벤처캐피털(VC) 펀드의 평균 운용 기간은 7~8년에 그친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시점이 5~6년 먼저 찾아오는 구조다. 물론 무작정 기다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VC 역시 투자금을 맡긴 출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줘야 한다. 펀드에는 만기가 있고 투자에는 회수가 필요하다. 기업의 성장을 기다린다는 명분으로 자본을 무기한 묶어두기란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의 시간표가 기업의 성장 전략까지 흔들기 시작할 때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지, IPO를 서두를지 결정하는 기준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보다 투자자의 회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모험자본이라는 이름도 무색해진다. 성장을 위해 들어온 자본이 정작 그 성장을 기다리지 못하는 역설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만기가 임박한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새로운 펀드로 넘겨 투자 기간을 연장하는 '컨티뉴에이션 펀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와 지적재산권(IP) 유동화 등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통로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할 시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이다. 스타트업의 성장은 계획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고 예상보다 성과가 늦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감수면서 기업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 모험자본의 역할일 것이다. 모험자본 확대가 혁신기업 육성으로 이어지려면 자금을 공급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이 성장하기 전에 투자금부터 찾아오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모험자본이 의미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기다려줄 시간도 자본이다. 김태환 기자 kth@ekn.kr

[기자의 눈] 40년 전 잣대로 넷플릭스와 싸우라는 나라

글로벌 OTT는 시장 상황에 맞춰 요금을 조정하고 서비스 정책을 신속하게 바꾼다. 반면 국내 유료방송 사업자는 신규 부가서비스 하나를 출시할 때도 수개월간 사전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동일한 거실 화면을 두고 경쟁하지만 1980년대 제정된 방송법 규제 틀이 유지되면서 영업 자율권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민관협의체를 가동해 규제 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유료방송 관계자는 “단순한 규제 완화로 대응할 타이밍은 이미 지났다"며 “기존의 낡은 틀을 완전히 걷어내는 '규제 혁파'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글로벌 OTT 진입 당시 정립했어야 할 공정경쟁 환경을 방치한 채 행정 절차 몇 개를 다듬는 수준으로는 기울어진 규제 구조를 바로잡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제도적 역차별은 플랫폼의 수익성 악화를 넘어 국내 미디어 생태계 전반의 재원 고갈로 직결된다. 유료방송 구독료와 VOD 매출은 중소 방송채널(PP)과 제작사로 흘러드는 미디어 산업의 핵심 자금원이다. 플랫폼의 재원이 줄어들면 콘텐츠 제작 현장으로 들어가는 돈줄이 함께 마르는 구조다. 주요 방송사들 역시 경영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JTBC가 실적 악화와 제작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개국 이래 첫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플랫폼의 재원 축소가 콘텐츠 제작 현장의 인력 감축이라는 직격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생존 갈림길에 선 사업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신규 서비스와 거래 기준을 제때 세울 수 있는 자율성이다. 사전 승인처럼 운영되는 '유보적 신고제'를 절차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자기완결적 신고제'로 바꿔 최소한의 영업 속도를 보장해 달라는 취지다. 셋톱박스 시청 데이터를 검증해 콘텐츠 대가를 산정하자는 제안 역시 불투명했던 거래 관행을 객관적 기준 위로 올리자는 요청이다. 통합미디어법의 핵심은 방송과 OTT를 가르던 낡은 법적 경계를 허물고, 동일한 서비스에는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데 있다. 사업자의 형식이 아니라 시장에서 행사하는 실질적 영향력에 따라 그에 걸맞은 권리와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민관협의체가 세부 조항을 미세 조정하는 데 그친다면, 안방 거실의 주권은 물론 콘텐츠 생태계의 주도권마저 넷플릭스에 영구적으로 내줄 수 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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