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재명 대통령式 발전공기업 통폐합의 미래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공공기관 개혁의 방향을 두고 “개혁의 명분 아래 힘 없는 사람을 자르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불필요한 임원 자리를 정리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단순한 조직 축소나 인력 감축이 아니라,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중복 구조를 정면으로 손보겠다는 메시지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수차례 논의만 반복됐던 발전공기업 통폐합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한국전력 산하 발전자회사 5곳(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은 설립 배경과 발전 용량이 거의 동일하고, 사업 구조 역시 화석연료 중심으로 사실상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각 사가 별도 법인으로 존재하면서 과도한 임원 수, 중복된 조직, 지역별 '체급 경쟁'이 이어져 왔다. 경영평가 체계는 이들 5개사를 한 줄로 세워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보니, 필요 이상의 경쟁이 불가피했고 장기적인 투자·안전·정비보다는 '평가 점수 관리'에 매달리는 기형적 행태가 누적돼 왔다. 이 같은 문제는 내부 구성원들 역시 오랫동안 체감해온 현실이다. 현장 직원 사이에서도 “동일한 구조와 사업인데 5개 회사로 나뉘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많은 사외이사·임원 자리, '한전 패밀리'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방만 운영을 정당화한 문화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구조적 비효율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공공기관 개혁=인력 감축'이라는 단순 공식에서 벗어나, 임원·지배구조·평가체계·중복 기능 등 핵심 병목을 손보겠다는 의지가 짙게 반영돼 있다. 공공기관 개혁의 본질이 “힘없는 직원이 아니라, 불필요한 의사결정 구조를 걷어내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발전자회사 통폐합은 결코 단순한 구조조정 작업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반발, 노조의 고용 안정 우려, 임원단의 저항 등이 얽혀 있어 정부의 정치적 리더십 없이는 추진 자체가 어렵다. 더욱이 정부의 탈석탄 기조와 재생에너지·전력망 확충 정책이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발전자회사 개편은 국가 전력정책의 방향과도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 조직만 합친다고 효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원믹스 변화·계통 안정·투자 주기 조정·전력시장 개편과 같은 종합적 관점에서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은 '누구를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국가 전력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밝힌 대로, 임원단을 포함해 기득권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개혁 방향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공기관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다. 구성원들과 지역주민 등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경쟁력있는 국가 발전 책임 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제는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글로벌 브랜드 韓 진출 러시…K컬처 매력의 끝은?

유명세는 물론 강렬한 개성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 브랜드들의 '한국행'이 물밀 듯 이어지고 있다. K-팝, K-드라마, K-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열풍이 K-패션과 K-뷰티, K-푸드 신드롬으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탄생지인 한국에 대한 매력도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수수료 높은 구매대행이나 해외직구 등을 이용하지 않고도 한국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초부터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한국 진출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3월 스웨덴의 명품 니치향수(전문 조향사가 만든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BYREDO)가 팝업 전시회 개최 첫 번째 장소로 한국을 선택했다. 이달 초에는 25년 전통의 영국 유명 소프트 토이 브랜드 '젤리캣'(Jellycat)이 한국에 공식 론칭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는 28일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한국 최초 팝업 스토어 '젤리캣 스페이스'를 운영한다.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우주 콘셉트다. 그동안 젤리캣은 글로벌 시장에서 각기 다른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를 선보였다. 영국 런던 '피시앤칩스', 중국 상하이·베이징 '젤리캣 카페', 미국 뉴욕 '다이너' 등으로 공간을 꾸몄다. 또 한국 한정으로 어뮤저블스 스페이스 코멧, 어뮤저블스 젤리소서, 어뮤저블스 플래닛 마스, 질런 에일리언 등 신규 캐릭터 4종을 출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걸그룹 블랙핑크 제니 등이 착용하면서 국내 인지도를 높인 독특한 초승달 모양이 시그니처인 프랑스 패션브랜드 '마린 세르'(Marine Serre)가 첫 번째 글로벌 단독 매장 국가로 한국을 '픽(Pick)'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린 세르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 외에 오픈한 최초의 단독 매장이다. 마린 세르는 지난달 패션기업 무신사의 자회사 무신사 트레이딩을 통해 서울 한남동에 '마린 세르 한남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게다가 최근 2030세대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스킴스'(SKIMS)가 한국에 상륙한다. 이달 21일부터 서울 성수와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공식적으로 한국 소비자들에 첫선을 보인다. 스킴스는 글로벌 셀러브리티 킴 카다시안이 이끄는 란제리 브랜드로, 속옷을 패션으로 승화하며 속옷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한국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의 전략적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는 속도가 굉장하다. 방한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대상으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로도 활용 가능하다. 한국 콘텐츠가 해외로 넘어가 주목을 받는 방식에서 이제는 해외 브랜드가 K-컬처의 탄생지로 직접 발을 들이고 있는 지금이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금융에 ‘냉정함’이 필요한 이유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은 잔인하다"고 연이어 발언하자 은행권은 좌불안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서민금융 금리가 15.9%까지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고신용자는 저금리로 장기, 저신용자는 고금리로 단기로 돈을 빌려준다"면서 “금융이 가장 잔인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는 “한 번 빚지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닌다"며 “왜 가난한 사람들끼리 손실을 다 감당하나. 금융이 너무 잔인하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 대통령의 지적처럼 금융의 냉정함이 때론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 속성에서 비롯된다. 대출 금리에는 차주의 신용프리미엄이 반영된다. 과거 상환·연체 이력 등을 고려해 연체 가능성이 낮은 고신용자는 대출 금리가 낮아지고, 연체 위험이 높은 저신용자는 금리가 높아지는 것이 시장 원리다. 이를 인위적으로 바꾸려 하면 시장 왜곡이 발생한다. 대출 위험이 금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은행들은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하며 대출 문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는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받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은행을 향한 비판이 당장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고신용자에 대한 역차별도 우려된다. 대출을 제때 잘 갚았지만 오히려 금리 등에서 차별을 받으면 차주가 빌린 돈을 성실히 갚아야 할 유인이 사라진다.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금융기관과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 흔들리게 된다. '신용이 낮으면 금리를 높게 받는다'는 기본 원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물론 은행에 대한 서민금융 지원 역할이나,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기업에 대한 은행의 생산적 금융 강화 등의 요구는 타당하다. 그동안 은행들이 가계대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이자장사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온 것에 대한 비판 역시 일리가 있다. 다만 은행의 냉정함을 곧 은행의 잔인함으로 단정하기에는 지나친 부분도 있다. 금융기관은 그 냉정함을 바탕으로 지금의 신용사회와 금융시스템을 유지해왔다. 서민과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금융 때리기만으로는 서민들이 체감하는 잔인한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금융당국 수장, 금융권에 ‘생산적 금융’ 외칠 자격 있나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갭투자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이 위원장은 “뭘 포기하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평생 1가구 1주택, 한 채로 해서 그냥 산다는 그런거다"며 “공직자 임원으로, 더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걸 알고 그런 부분에 대해 더 유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부동산 거래 관련해 국회의원들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았다. 이 위원장은 과거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를 갭투자 방식으로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찬진 원장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해 다주택자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이 위원장은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1가구 1주택을 약속했고, 이 원장은 결국 아파트 한 채를 처분했다. 이 원장이 아파트를 처분하는 과정도 전혀 매끄럽지 않았다. 이찬진 원장은 아파트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실거래가보다 높은 금액에 매물로 내놔 정부 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일었고, 결국 가격을 다시 낮췄다. 금융당국 수장들의 부동산 거래 내역이 구설에 오른 건, 그만큼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이유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강도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과 민심 모두 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출 규제로 현금 부자들만 로또 청약의 기회를 얻었고,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는 끊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자신감과 관계없이 강남 아파트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이 와중에 금융당국 수장들은 금융권을 향해 생산적 금융을 주문하고 있다.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 생산적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가구 1주택을 그냥 살겠다"라고 했고, 이 원장은 실거래가보다 높은 가격에 아파트를 내놨다. 금융권 입장에서, 국민의 관점에서 금융당국의 정책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수장들부터 언행일치의 품격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 원장을 향해 “내로남불 원장의 리더십이 시장에 먹히겠냐"고 쏘아붙였다. 그들이 내로남불 정책, 내로남불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이, 강남 아파트 가격은 지금도 신고가를 경신 중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코스피 4000 돌파와 ‘파이 키우기’ 믿음

창조주 신(神)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던 중세시대에는 피조물인 인간이 자본을 대량으로 투입해 더 큰 발명과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관의 중심이 인간으로 옮겨온 인본주의의 르네상스 시대가 발흥하면서 새로운 발견과 기술 개발으로 전체 생산과 부를 늘리는 '발전'과 미래 성장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자본시장에서 돈을 끌어오기 위한 '신용' 개념도 나왔다. 주식시장은 이처럼 개인이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탄생했다.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는 개인이나 법인이 특정 기업의 성장성을 믿고 자본을 투자하는 메커니즘이다. 최근 국내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뛰어넘었다. 이재명 정부가 기업 가치 제고에 힘을 실은데다 최근 인공지능(AI) 붐과 한·미 조선업 협력 같은 대형 호재들이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다. 주식시장 활성화는 저평가 해소뿐 아니라 미래성장 동력에도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미래성장 동력에 대한 우리 경제계의 근심과 걱정이 크다. 지난 3분기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증가했지만 반도체와 자동차로 대표되는 '자본재'와 '소비재'에 의존이 높은데다 수출상위 10대 기업이 전체 실적의 40%를 차지하는 쏠림현상 때문이다. 여기에 저성장 국면 속에서 미래산업을 이끌 국내 고급인재들이 처우와 지원 부족 환경에 떠밀려 경쟁국인 중국을 포함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차세대 인적 인프라 부족 및 취약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 같은 소재산업이 생존의 기로에 처하면서 한국 제조업을 떠받치는 공급망의 위기, 인구 감소와 기후 위기, 정치 양극화 같은 사회문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들이다. 코스피 4000 돌파로 자본시장 중심의 '파이 키우기' 희망이 높아졌지만 앞서 열거된 대한민국 경제 현실은 일회성 '반짝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밑바닥에 깔고 있다. 미래 경쟁력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한국시장이 국내외 투자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주식시장 밸류업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시장의 핏줄인 자본의 활성화 못지 않게 시장의 뼈대인 제조업이 건강해야 대한민국 경제 몸체가 '무병장수'할 것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기자의 눈] 부동산정책 성공, 국토균형발전에 달렸다

정부가 지난 9·7 대책을 통해 전국에 주택 135만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집값을 잡는데 실패했다. 시장에 진짜 주택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은 현실적으로 정부가 시행하기 어려워졌다. 과거처럼 계획경제 하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주택 공급책을 수행하기엔 현재 대한민국은 민간 자본의 지배력이 절대적인 상황이다. 일단 소비자들부터 정부가 짓는 집이 아닌 민간 건설사가 짓는 집을 원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을 만족시킬 수 없다. 결국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이상적인 대규모 공급책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부동산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른 방법의 대표적인 것이 국토균형발전이다. 물론 우리나라 모든 재원과 인프라가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당장 지방을 살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현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이다. 정부가 행정부 대부분을 세종시로 보냈지만 여전히 대통령이 서울에 상주하고 국회가 여의도, 사법부가 서초동에 있어 행정수도 이전 효과가 미미한 상황이다. 또 행정부가 세종에 내려갔지만 여전히 행정부 수반과 주요 정부 기관은 서울에 있어 수많은 공무원들이 서울과 세종을 왕복하고 있다. 가족들은 서울에 거주하고 공무원만 세종과 서울을 오가는 꼴이 되면서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효과가 감소됐다. 공무원 가족이 서울에 계속 거주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교육' 문제다. 직장은 멀더라도 부모가 좀 고생하고 말지, 자녀 교육은 서울에서 시키겠다는 것이다. 공기업 대부분이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여전한 것도 결국 부모는 얼마든지 직장이 멀어도 이를 감수하고, 자녀 교육은 서울에서 시키겠다는 '맹모민국' 마인드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나라 교육시장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명문대, 그 중에서도 국립 교육기관인 서울대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서울대와 같은 입시 서열 최상위 대학이 전국 지방 각지에 10곳이 생기고, 입학 시 해당 지역 학생에게 메리트를 제공한다면 가족 단위로 이주하는 이들이 상당히 생길 것이다. 이렇게 거주 수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 현 부동산 시장의 근본 문제인 서울 주요 지역에 치중된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해소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교육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골자로 한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향(안)'을 12월에 공개할 예정이다. 내달 발표될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의 해결점이 보일 것이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오너의 ‘개인은행’이 된 비상장사

“상장사 오너에게 비상장사는 개인을 위한 작은 은행에 가깝다." 수많은 경영권 분쟁을 다뤄온 한 법조인의 말이다. 비상장사가 오너 일가의 '사금고(私金庫)'로 전락하는 현실을 압축한 표현이다. 특히 코스닥 시장처럼 지배구조 감시가 느슨한 곳에서는 이런 구조가 더 깊게 뿌리내려 있다. 수법은 단순하다. 오너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비상장사에 배우자나 자녀를 대표이사·사내이사로 앉힌다. 이들은 실제 업무에 관여하지 않지만, 매달 급여를 받아간다. 외부에서는 합법적 급여로 보이지만, 실상은 회사 돈을 가족에게 이전하는 통로다. 세무상 손금처리로 위장된 사익편취의 한 형태다. 또 다른 방식은 '자금 순환'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분기 초 비상장사 자금을 끌어다 쓰고, 분기 말 재무제표 결산 직전에 다시 넣는다. 2~3개월간 오너의 자금창구처럼 이용되는 셈이다. 겉보기엔 문제없지만, 만약 돌려막기에 실패하면 부실로 전이되고 급하게 채권채무로 돌려 재무상태를 꾸민다. 더 심한 경우엔 그룹 총수의 개인 채무 상환에까지 비상장사 자금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런 비상장사는 대부분 상장사의 출자금으로 세워진다. 결국 상장사의 돈이 오너 개인의 현금흐름으로 흘러드는 구조다. 비상장사가 사금고로 변질되는 순간, 피해는 상장사로 전이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주의 몫이 된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합법의 외피'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거래 신고 기준(100억원)에 미치지 못하면 공시 의무가 없다. 사실상 시장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구조다. 그 틈을 이용해 수년간 반복적으로 '돈 돌리기'가 이뤄진다. 거래 상대방이 계열 비상장사라면, 외부 감사도 실질 내용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감시 시스템의 사각지대는 결국 제도 미비에서 비롯된다. 오너 일가가 이사로 이름을 올릴 때, 실제 근무나 경영 참여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는 없다. 등기이사로만 올라 있으면 세법상 급여 지급도 가능한 구조다. 근로제공이 없거나, 명목상 이사에게 급여를 지급하면 '인건비 손금산입 불가'하지만, 현실적으로 근무 실태를 입증·조사하는 절차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 틈새를 악용해 세금 절감과 자금 유출을 병행하는 '가족회사식 경영'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코스피는 '오천피' 시대를 논하지만, 코스닥은 여전히 외면받는다.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고, 투자심리가 위축된 배경에는 이런 지배구조 리스크가 깔려 있다. 투명한 회계와 책임경영 없이 시장 신뢰는 회복될 수 없다. 코스닥이 성장의 무대가 되려면, 이런 사금고식 경영부터 바로잡는 것이 출발점이다. 감사 강화와 내부통제 실질화, 그리고 주주가 지켜보는 시장 문화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방산 수출 확대, 수은법 개정에 그쳐선 안 된다

지난해 2월 말, 국회는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증액하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2차 방산 수출 계약이 금융 지원 한도에 막혀 좌초될 수 있다는 업계의 절박한 호소가 6개월 만에 수용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K-방산의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된 듯 보이지만 이는 '응급처방'일뿐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K-방산이 진정한 '세계 4대 강국' 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수은법 개정 너머의 구조적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특정국가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한 핵심 규정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10조원 증액은 또 다른 리스크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K-방산이 제2의 폴란드급 수주에 성공하면 K-방산은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또한 이 10조원은 즉각 활용 가능한 실탄이 아니라 정부가 예산으로 채워 넣어야 할 '그릇'을 늘린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신임 국방부 장관이 “금융 조건이 수용 가능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듯 K-방산의 금융 지원 역량 한계가 전 세계에 노출됐고, 향후 협상 비용만 영구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핵심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가장 큰 문제다. K-방산의 대표 상품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는 오랜 기간 엔진과 변속기(파워팩)를 독일산에 의존해 왔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의 수출 허가 없이는 우리가 수주한 물량도 팔지 못하는 기술종속 상태에 놓였었다. 최근에야 엔진 국산화에 성공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현대로템 K-2 전차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등 여전히 많은 주력무기체계가 핵심부품 해외 의존도라는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폴란드 원 툴'이라는 심각한 편중 현상도 해소해야 한다.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K-방산 수출 물량의 46%가 폴란드 단 한 국가에 집중됐다. 이는 K-방산 전체의 지속 가능성이 폴란드의 정치·경제 상황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실제 2023년 폴란드 정권 교체 후 계약 재검토 가능성이 거론되며 업계 전체가 흔들렸다. 중동·미주 등 시장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정부의 역할 재정립도 시급하다. 수출 규모가 커지며 기업 간 각개전투나 갈등이 발생해도 방위사업청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조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경우 대외 군사 판매(FMS)를 통해 정부가 계약을 보증하고, 이스라엘은 SIBAT을 통해 마케팅과 G2G 계약을 직접 지원한다. 이처럼 우리 정부도 K-방산 '수출 전담 기구'로서 전면에 나서야 한다. 수은법 개정은 K-방산이 넘어야 할 수많은 허들 중 첫 번째를 넘은 것에 불과하다. '금융·기술·시장·거버넌스' 네 바퀴가 함께 굴러가지 않는 한 'K-방산 르네상스'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산업부가 자초한 ‘톡신 카르텔’ 논란, 깜깜이 행정 불신만 키워

보툴리눔톡신(톡신) 국가핵심기술 논란에 '행정카르텔 의혹'이 공식 추가됐다. 올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서다. 주로 산업계 일각에서 주장했던 논란이 이번 국감을 계기로 정치권까지 확산한 것이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이 산자위 국감에서 제기한 행정카르텔 의혹은 산업통상부 산하 '전문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이 특정 이해관계와 결탁해 톡신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데 이어, 업계의 지정 해제 요구를 반복 무산시키고 있다는 의심이다. 톡신, 특히 미생물인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은 지정년도인 2016년 이후 약 10년간 꾸준히 지속됐다. “균주 상용화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국가핵심기술이므로 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 업계의 글로벌 진출을 가로막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작용하기에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 모두 타당성이 있다. 공개 연구와 공청회, 토론회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점을 도출하면 된다. 정책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문제는 규제기관 역할을 맡은 산업부와 전문위원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가핵심기술 지정 유지 일변도인 전문위원회의 공정성과 결정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국회측이 제기한 질의에 산업부는 '비밀유지'를 근거로 사실상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올해 국감에선 일부 내용이 공개됐는데, 지정 해제·유지 결정의 키를 쥔 전문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등 2인이 균주 국가핵심기술 지정 당시인 2016년부터 올해까지 5회(회당 2년)에 걸쳐 유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임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문위원회에서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반대해온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귀띔했다. 일방적 주장인데다 산업부가 관련 내용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구체적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산업부의 깜깜이 행정으로 업계 내 행정 불신이 깊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톡신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 관련 토론회에선 산업부의 장관 축사 철회 요청 논란도 있었다. 업계 내 의견 대립이 첨예한 사안으로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관 축사 철회를 요청했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공개된 김정관 산업부장관의 축사는 “균형있는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골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확언한 김정관 장관과 산업부는 빠른 시일 내에 사안을 살피고 경과를 공개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전문위원회 임기가 이달 만료되는 탓이다. 깜깜이 행정은 불신만 키울 뿐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기자의 눈] 적자 기업만 떠본 예비입찰…홈플러스, 농협만 바라보는 신세

청산 위기에 몰렸던 홈플러스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매각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시장 평가에도 지난달 31일 마감한 공개입찰에서 복수의 원매자가 홈플러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해서다. 당장 급한 불을 끄면서 홈플러스 매각전이 새 전환점을 맞은 한편,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정부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거세다. 홈플러스와 매각 주관사는 비밀 유지를 이유로 입찰 참여 업체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AI) 전문 업체 '하렉스인포텍', 부동산 개발회사 '스노마드' 2곳으로 알려졌다. 다만, 인수 의향을 드러낸 후보 업체들의 자금 조달 능력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인수 주체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상장주식 거래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에 따르면, 하렉스인포텍은 지난해 33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둔 데다, 매출도 3억원 수준인 중소기업이다. 해당 기간 부채도 28억원으로 자산(10억원)보다 큰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이 회사는 미국 아나리 캐피털로부터 약 2조8500억원을 조달해 홈플러스를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스노마드의 재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스노마드는 매출 116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거뒀지만 7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채무 합계 금액이 1375억원임에도 자본총계가 222억원으로 부채비율만 약 619%에 이른다. 두 회사 모두 재무안정성이 낮은 상황에서 4조원(청산가치 3조6816억원)에 가까운 홈플러스 몸값을 감당하기에 무리라는 해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트 노동자들의 반응도 회의적이다. 홈플러스 공동대책위원회 측은 지난 달 3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름이나 알려보자고 뛰어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홈플러스를 인수할 능력도 없고 경영할 의지도 없는 자들임은 너무나 분명하다"면서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홈플러스는 청산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국민의 일자리 청산이자 지역경제의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간 노조 측은 홈플러스 사태의 원인으로 MBK파트너스의 차입매수(LBO) 방식 인수·장기투자 없는 부동산 매각·구조조정 등을 짚었다. 이 같은 투기자본의 횡포를 정부가 방치한 폐해가 홈플러스 사태라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홈플러스가 매수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정치권에서는 공익적 책임 관점을 이유로 농협이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다만, 농협은 하나로유통·농협유통이 각각 연간 400억원의 적자를 보는 터라 재무상태가 열악하다. 앞서 공개 예비입찰에서 농협은 불참한 가운데, 오는 26일 본입찰이 남아있는 만큼 참여 가능성도 제기된다. 홈플러스가 매수자 찾기에 난항을 빚는 이유로는 어려운 대형마트 실태와도 무관치 않다. 이커머스에 밀려 성장세가 과거만치 못한 데다, 의무휴업·영업시간·신규 출점 제한 등 해묵은 과제로 인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M&A 거래 당사자들의 충분한 협의와 조율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유통망 붕괴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요구되는 때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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