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찬진 금감원장, ‘과도한 욕구’ 불편하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연일 금융지주 회장과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문제를 직격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달 1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지주 회장들을 향해 “다들 연임 욕구가 많은 것 같다"며 “그 욕구가 너무 과도하게 작동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달 10일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지주 회장 등 8개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자리에서는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등 사외이사 추천 경로 다양화와 사외이사 임기 차등화 등을 통해 독립성을 갖춘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과 공정한 운영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이 거론한 '전 국민을 대표하는 주주'는 사실상 국민연금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돼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이 금융지주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국민연금을 통해 금융사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고, 금융사는 정권에 입맛에 휘둘리는 등의 숱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더 큰 의문은 이찬진 원장이 왜 KB금융지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를 겨냥하는지다. 이 원장이 앞서 발언한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욕구는 근거가 없고 추상적이다. 개인의 욕구는 제 3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일 뿐, 딱 떨어진 정답은 결코 나올 수 없다. 이 원장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 회장이 되면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채워 '참호'를 구축하는 분들이 보인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정관과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따라 정해진 임기가 있고, 임기가 만료되거나 중간에 사정이 생기면 교체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자기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금융지주사와 회장들은 어떠한 절차를 갖춰야 하는가. 금융지주사들은 전임 회장 시절 발탁된 사외이사들의 임기를 규정과 관계없이 계속 연장해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현 회장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차기 회장을 내정하고, 그 회장이 추천한 사외이사들을 이사회에 심어야 한다는 뜻인가. 아무리 공정한 절차와 선거를 통해 조직의 장을 발탁했다고 해도, 그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조직의 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사외이사가 현 회장 재임시절 선임됐다고 해도, 회장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개인마다 다르다. 이 원장의 '자기 사람'과 '참호'라는 표현에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금융당국 수장과 정치권 등 주주와 관계없는 '이해집단'이 주주들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데 있다. 제3의 세력들은 자신의 '욕구'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본인의 입맛에 따라 금융지주사와 회장들, 이사회가 움직이길 원한다. '과도한 욕구'는 금융지주 회장이 아닌 금융당국 수장과 정치권에 어울리는 단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산업용 전기요금 내린다면…‘파괴적 혁신’ 마중물 돼야

전기요금 때문에 산업계가 아우성이다. 지난해 말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h)당 185.5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2022년 1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75.8%나 올랐으니 불만이 나올 만하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산업용보다 더 비쌌던 구조도 어느 순간 역전된 상황이다. 전기요금에 쏟아지는 아우성은 업황 부진에 빠진 철강과 석유화학 업계에서 가장 크게 들린다. 유관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철강은 탄소 배출을 줄이려 석탄을 연료로 쓰는 고로 대신 도입한 전기로 가동으로 전기요금 부담이 늘고 있다. 석화도 설비 규모가 워낙 거대해 전체 매출의 5%가량(2025년 2분기 기준)이 전기료로 빠져나간다. 전기료를 한시적으로라도 깎아주면 철강 및 석화 기업들이 사업 체질을 개선하는 데 힘을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고 전기료 인하가 단순히 철강·석화업계의 '버티기용 수단'이 될 순 없다. 반대 논리가 만만치 않아서다. 당장 발전사들은 내년부터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부담이 커진다.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 구축에 투자해야 하기에 지출 요소가 크다. 또한, 미국 등 주요국가들이 전기료 지원을 국가 보조금 지원으로 간주해 자국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불공정 무역'을 핑계로 제재를 가할 경우 우리 정부와 업계에 통상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이 사실상 철강업계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효과와 같다는 논리로 무역 조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같은 전기요금 인하 반대 논리를 돌파할 만한 유인책으로 국내 철강·석화사들이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수퍼 을(乙)'이 되는 것을 떠올려 본다. 범용 메모리로 성장해 온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미국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고, 반도체 장비 제조사들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현재 모습을 철강과 석화산업이 본보기 삼았으면 하는 '상상'이다. 전기료 감면으로 마련한 '버티기 체력'을 연구개발에 쓰고, 이를 통해 개발한 혁신소재를 해외시장에서 무역 제소를 피할 지렛대로 삼자는 것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속 생존법이 결국 '국내 공급망 강화'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철강과 석화업계는 '파괴적 혁신'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소재 연구개발은 당장에 바짝 투자한다고 성과를 낼 수 없다. 기초·응용 과학 같은 학문적 토대부터 복원하고, 어떤 소재 개발에 집중할 지를 민관이 판단해 과감히 투자하는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기료 감면 정책을 철강·석화산업의 단기성 버티기 수단이 아닌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소재 경쟁력을 강화하는 마중물로 일대 전환하는 '파괴적 혁신'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수퍼 을 전략'의 큰 그림 속에서 전기료 감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기자의 눈] 초고령 사회 진입, 건설업계 대안 있나

우리나라가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의 20%가 고령층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앞으로 20년 후인 2045년엔 고령층 비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령층인 '노인 국가'가 되는 셈이다. 평균 수명은 증가하는 반면, 출산율은 곤두박질 치면서 갈수록 우리나라 고령화는 속도를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늙어가면 사회 전반적으로 타격이 크지만 특히 건설업계 입장에서 초고령 사회는 '재앙'이나 다름 없다. 실제로 공사 현장에선 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아파트 공화국'으로 만들었던 공사 현장의 숙련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신들린 '막노동(노가다)' 노하우는 반드시 현장에서 필요하다. 요즘도 60세를 훌쩍 넘긴 '노인 어벤져스'들이 여전히 공사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눈 감고도 척척 건물을 올리던 현장의 숙련공들도 결국 세월이 지나면 은퇴할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들에게 공사 현장을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노련한 현장의 베테랑들이 가지고 있는 건설 기술과 노하우는 후임들에게 전수되야 한다. 문제는 이미 공사 현장에 이들의 노하우를 이어받을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3D 일자리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청년 현장 근로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가 사라진 공사 현장의 빈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도 현장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말도 안 통하는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노련한 베테랑급 숙련도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들은 K-건설 신화를 써온 건설 숙련공들이 수십 년간 공사 현장에서 익히고, 노하우가 녹아든 '감'이 아닌, FM 메뉴얼을 보며 일을 배우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겨우 노하우를 습득할 때 쯤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공사비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베테랑 숙련공들이 은퇴하고, 빈 자리가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지면서 작업 완성도가 떨어지고 부실 공사가 난무하고 있다. 공사기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 공사비 증가로 이어진다. 고령화가 건설사의 수익 악화·성장 동력·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K-건설의 신화를 지속하기 위해선 신기술과 로봇, 인공지능(AI) 등 외에도 환경개선·인력 양성·소재 및 첨단 공법 등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개미 1500만명 시대, 증권사 규제·처벌은 구시대

주문이 먹지 않고, 잔고가 갑자기 수천만원씩 튀어 오르고, 전혀 모르는 사람의 체결 내역이 내 휴대폰에 뜨는 일. 증권사 전산사고 얘기다. 이제는 놀라울 것도 없다. 개인투자자 1500만명 시대라고 하지만, 이 거대한 투자 기반을 받쳐줄 '인프라와 규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달에만 벌써 두 건의 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지난 2일 메리츠증권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타인의 미국 주식 체결 알림이 사용자들에게 그대로 전송됐다. 실명부터 종목, 수량, 매수가, 체결 시각까지 고스란히 노출됐다. 회사는 '단순 오발송'이라고 설명했지만, 알림을 받은 투자자들에게는 '내 정보도 누군가에게 넘어갔을지 모른다'는 근본적 불신만 남겼다. 이어 4일에는 한화투자증권 퇴직연금 계좌에서 잔고와 수익률이 비정상적으로 부풀려 표시되는 오류가 발생했다. 최대 수천만원 단위로 잔고가 늘어났고, 회사는 과대 계산된 이자를 수정하면서 “실제 손실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손실 발생 여부가 아니라, 시스템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다. 증권사 전산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집계된 증권사 전산장애는 497건. 사실상 '월 10건' 꼴이다. 증권사들이 자체 산정한 피해액은 267억여원에 달한다. 특히 한국투자증권(65억5472만원), 키움증권(60억8105만원), 미래에셋증권(41억672만원) 등 대형사에 피해가 집중됐다. 장애 원인을 뜯어보면 문제는 더 구조적이다. 프로그램 오류가 194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진짜 리스크는 시스템·설비 장애였다. 건수는 128건이었지만 피해액은 무려 145억4640만원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드웨어·인프라 차원의 문제가 한번 터지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가 드러난다. 이처럼 사고는 누적되는데 정작 감독당국의 제재는 미미하다. 최근 5년간 금융감독원이 내린 제재는 7건. 대부분 '주의' 또는 '견책' 수준이었다. 과태료 총액도 5억원 남짓으로 수백억원대 피해 규모와 괴리가 크다. 심지어 제재까지 걸리는 시간도 지나치게 길다. 미래에셋증권 전산사고에 대한 과태료 처분은 확정까지 5년 가까이 걸렸다. 모바일 거래는 초 단위로 움직이는데, 감독의 시계는 여전히 연 단위로 돌아간다. 보상 체계도 허점투성이다. 시스템이 멈춘 순간에는 로그인 기록조차 남지 않아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 잔고·체결 정보 오류는 더 복잡하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보상 기준도 모호하다. '전산 장애 가이드라인'만으로는 1500만 투자자를 지키기 어려운 이유다. 투자자 기반이 커진 만큼 시스템과 규제도 그 규모에 맞게 확장돼야 한다. 문제를 설명하는 데서 끝낼 것이 아니라, 사고를 막는 구조와 책임 체계부터 다시 짜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사건 처리'가 아니라 '시스템 개혁'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무안공항참사 조사위’ 독립성을 흔드는 건 누구인가

지난 4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개최할 예정이던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중간보고·공청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가족협의회와 국회 12·29 특별위원회의 공식적인 연기 요청과 공청회장의 안전 우려였다. 그러나, 사조위의 연기 결정은 독립성이 생명인 조사기구가 스스로 정치권의 압박과 피해자단체의 실력행사에 백기투항한 것이자 대한민국 항공안전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연기 사태의 비판점은 명확하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리더십 부재가 사조위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 유가족과 정치권의 '선 넘는 개입'이 공청회를 무산시켰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대상은 국토부 장관이다. 참사 초기부터 콘크리트 둔덕 설치·관리 등 국토부 책임론이 불거졌음에도 장관은 “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 뒤에 숨어 사조위가 '셀프 조사' 논란에 휩싸이도록 방치했다. 주무부서의 비겁한 회피는 유가족들에게 '국토부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결과적으로 사조위를 여론의 광장 한복판에 고립시켜 동네북이 되도록 만든 꼴이 됐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유가족 협의회와 국회 12·29 특위의 행보다. 이들은 현재 △공청회·중간 보고 중단 △참사 진상 규명 과정에서의 피해자 참여 보장 △이재명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조위의 소속을 총리실로 옮기는 법 개정 논의는 입법부의 권한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나머지 요구 사항들은 명백히 국제 기준을 위반하고 과학적 조사를 무력화하는 '외압'이다.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하는 움직임은 결국 이 사고를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유가족들은 대놓고 “우리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조사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슬픔은 이해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ICAO Annex) 13과 사조위 운영 규정 제29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해당 규정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해 관계자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오직 데이터에 기반해 원인을 분석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조사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유가족이 재판관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작금의 상황은 과거 농민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우리는 전문가인 의사의 의학적 판단인 사망 진단서가 정치적 외압과 여론에 의해 수정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그 방향이 옳았든 틀렸든, 전문가의 영역이 '목소리 큰 진영'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무안공항 참사 조사에서도 유가족들은 블랙박스가 가리키는 '잘못된 엔진을 정지한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만약 유가족의 압력에 밀려 사조위가 데이터가 가리키는 진실을 외면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보잉의 기체 시스템 결함'이나 '시설 책임'으로 결론을 수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2의 백남기 진단서 사태'가 될 것이다. 과거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 사고나 아시아나항공 214편 샌프란시스코 사고 때도 유가족들은 기체 결함을 주장하며 조종사 과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며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가족의 눈물 대신 차가운 팩트를 선택했기에 전 세계 항공업계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더 안전한 하늘을 만들 수 있었다. 국회 12·29 특위와 유가족에게 묻는다. 사조위가 국무총리실로 가든 대통령 직속이 되든, 사고 당시 조종사가 멀쩡한 엔진을 껐다는 블랙박스의 기록이 바뀔 수 있는가? 국내 항공 사고 처리 인력풀은 매우 협소한데 그 어디에도 전문가가 없어 결국 국토부에서 조사관들을 파견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생겨났던 항공사고 조사 결과들은 어떻게 수긍해 왔나? 사조위의 상급 기관이 바뀐다고 해서 과학적 사실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사고 조사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의 영역이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사조위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배가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할까 우려스럽다. 유가족이 사건사고의 재판관이 될 순 없지 않은가. 전문가를 배척하고 감성이 과학을 지배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사조위의 독립성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가장 원한다는 유가족들과 그들 곁에 선 정치인들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혁신신약 생태계, 약가개편안 속 공백부터 메꿔야

제약업계의 근심이 한층 커졌다. 보건복지부가 제네릭(복제약)의 약가산정률을 현행 오리지널 대비 53.55%에서 40%대까지 인하하는 내용의 약가개편안을 지난달 28일 공개하면서다. 복지부의 목표는 뚜렷하다. 산업계에 '혁신 신약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궁극적 목표는 복지부와 업계 모두 동일하다. 앞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지난 10월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오는 2030년까지 매출의 15%를 R&D에 투자하는 '신약 개발 선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복지부의 방법론에서 발생한다. 제네릭 약가산정률이 과도하게 높으니, 이를 낮춰 제네릭 사업의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업계가 신약 개발에 뛰어들도록 유도한다는 방식이다. 매출 대비 R&D 비율 경쟁에 기반한 기업간 줄세우기식 '혁신형 제약기업' 약가우대 장치는 덤이다. 이는 한 가지 근본적인 맹점을 가지고 있다. '제네릭 매출 감소'와 '혁신신약을 통한 매출' 사이 공백을 메꿀 정책적 대안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늘 몇백억 때려넣으면, 내일 신약 개발이 완료되나"라며 코웃음을 쳤다. 신약 개발은 천문학적 투자 규모만큼이나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농담 섞인 설명이었다. 실제 가장 최근 국내 출시된 국산 신약 세노바메이트(SK바이오팜)은 미국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계획(IND) 승인부터 품목허가까지 14년이 소요됐다. 기술이전으로 공백을 메꾸면 된다지만, 후보물질 발굴과 경제성을 입증할 비임상 연구도 최소 연(年)단위 기간이 소요된다. 매출 감소에 따른 재무악화는 온전히 기업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셈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중소제약사에서 더 크게 발생한다. 본지 집계에 따르면 국내 14개 상장 중소제약사의 올 1~3분기 누적 매출은 평균 534억원, 영업실적은 10억원 손실로 적자 환경이다. 중소제약사 평균 제네릭 매출은 전체 매출의 70%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감안하면 제네릭 약가 인하가 현실화했을 때 중소업계는 혁신 시도는 고사하고 적자 심화로 존폐 기로에 서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복지부가 진정 산업계의 혁신 생태계 대전환을 원한다면, 최소한 이 같은 공백을 메꿀 실질적 대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황금 찾자고 거위의 배만 갈라선 안된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기자의 눈] 高환율 주범이 된 ‘서학개미’를 위한 변명

최근 당국에서 고환율의 배경으로 개인 해외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를 지목하는 흐름이 있다. 실제로 개인들의 해외주식 매수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11월 두 달간 개인은 약 123억달러(18조699억원)를 순매수했다.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보관 금액도 작년 말 1587억1500만달러(233조1999억원)에서 최근 2221억9200만달러(326조4667억원)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 숫자만을 근거로 개인투자자를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비약이다. 환율은 다양한 주체의 움직임과 글로벌 환경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 데이터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일반정부'의 해외주식 투자는 245억달러(35조9978억원)로, 개인 투자자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사실상 국민연금의 매수 규모를 뜻한다. 같은 기간 비금융기업의 해외투자도 지난해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단순 금액만 놓고 보면 환율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서학개미보다 국민연금과 기업 쪽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이 개인만을 향해 '과열', '유행', '쿨해서 한다'는 식의 언급을 내놓는 것은 책임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가는 처사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해외투자를 위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국민연금의 규모는 국내 최대 수준이며, 이는 환율 상승 압력으로 연결된다. 환헤지는 이러한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도구다. 헤지 비율을 늘리면 선물환 매도나 달러 매도를 통해 시장에 달러가 공급돼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환헤지 확대가 항상 '국민연금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2015년 이후 장기적으로 '100% 환노출(언헤지)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전략적 환헤지를 0%로 유지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기적으로는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2015년 환율이 1100원대였던 시점과 비교하면 환차익만으로도 20% 이상의 추가 수익을 얻었다. 장기 투자자인 국민연금 입장에서 환헤지는 비용이 발생하는 데 비해 기대수익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지금의 고환율이 일시적 과열인지, 새로운 기준선(뉴 노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환율이 일시적이라면 높은 환율에서 달러를 매입할 경우 향후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현 수준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과도한 헤지는 오히려 연금 수익률을 깎을 수 있다. 이 균형을 잡는 것이 최근 외환당국이 내놓은 '뉴 프레임워크' 논의의 핵심이다. 결국 고환율의 책임을 특정 집단에 돌리는 방식으로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구조적 달러 수요, 기업의 해외투자 확대, 글로벌 통화 환경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환율 안정은 개인 투자자나 특정 기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구조적 이해와 일관된 정책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뤄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주체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힌 진단이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기자의 눈] 기본자본 킥스 도입, 늦더라도 현실성 높여야

2025년의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다. 금융당국이 연기했던 기본자본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 도입 시기가 또다시 다가왔다는 의미다. 업계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양새다. 자본의 질 향상이라는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는 이유다. 본업 업황 등 펀더멘탈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다. 실제로 올 1~3분기 생명·손해·재보험사들의 보험손익은 8조5871억원으로 전년 동기(12조2833억원)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주력 상품군의 손해율 악화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업권별로 봐도 상반기 보다 3분기를 포함한 수치의 감소폭이 더 컸다. 기본자본의 뼈대를 이루는 이익잉여금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보험사들의 기본자본 킥스 비율이 전분기 대비 소폭 올랐으나, 삼성전자 주가 상승을 비롯한 외부 요인을 빼면 낮아졌다는 인식이 강하다. 초대형사를 제외하면 자본성증권의 일부를 기본자본으로 인정 받는 것도 힘든 탓이다. 2023년 3월말과 비교하면 다수의 보험사에서 절반 가량 하락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업계에서 꾸준히 보험계약마진(CSM)을 기본자본에 반영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선 기본자본 확보 난이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는 보험사의 미래 이익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정 부분 정해진 현금흐름이라는 점에서 보험사의 체력으로 봐도 된다는 것이다. IFRS17과 킥스 도입을 계기로 건강보험 등 CSM 확보에 유리한 보장성보험을 중심으로 판매를 집중하면서 불어난 보험금이 요구자본 확대를 가속화하는 점도 언급된다. 바뀐 규정으로 인해 생긴 변화인 만큼 '정상참작'을 해야하지 않냐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당국이 빠르게 노선을 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같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로 풀이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당 성향 축소 등 그간 정책적으로 추진했던 사안과 반대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선'을 어디에 두느냐도 관건이다.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초기 기준과 목표지점을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 이를 맞추지 못하는 보험사들은 난관에 봉착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구조조정 및 초대형사로의 집중도 일어날 수 있다. 보험사 뿐 아니라 금융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보험 관련 정책은 특별한 신중함이 요구된다. 시행 후 '샤워실의 바보'처럼 오락가락하는 경우 현장의 혼란도 가중될 수 있는 만큼 타임라인에 집중하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정책을 만드는데 힘쓰기를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 눈] 원화 가치 끝없는 하락에…내국인에게만 비싸진 집값

최근 들어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이곳 저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른 국가 대비 더 빠르게 원화 가치가 나빠질 만큼 상황이 심각한 가운데 내국인에게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근 5개월간(지난 7월 초~이달 말) 원·달러 환율은 지속해서 상승 추세를 이어오고 있다. 1350원대에 머물렀던 환율은 1470원대 수준까지 올랐다. 과거 경제위기 당시 수준인 1400원대 환율은 두 달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원화 가치가 베트남 '동'이나 태국 '바트'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 실제로 이달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의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줄줄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원화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이들 국가들이 -0.02%부터 많게는 -1.83%의 약세폭을 보이는 동안 원화가치 하락 폭은 -3.38%였다. 미국은 차치하고 신흥국과 비교해서도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자 동남아 여행마저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뼈아픈 상황은 부동산 시장이다. 정부가 상반기 시작한 '집값 잡기' 정책에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최근 5개월간 6% 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환율은 8% 이상 오르면서 달러를 쓰는 외국인에겐 오히려 집값이 싸진 상황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국인들의 시선에서 서울 아파트는 점차 손에 닿기 어려운 '미지의 세계'가 되어가는 형국이다. 각종 대출규제로 중산층마저 대출에 제동이 걸리면서 그나마 자유롭게 아파트를 사고 팔 수 있는 건 증여를 많이 받은 금수저 청년층 혹은 현금 부자들만의 이야기가 됐다. 문제는 외국인 구매력 증대라는 환율 상승 효과가 연쇄적으로 서울 집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원화 약세가 지속될수록 건축비나 분양가에도 영향을 주면서 집값의 상승 요인이 된다. 고환율은 원자재나 소비자 물가도 끌어올리게 된다. 차량 기름값부터 장바구니 물가까지 모두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수입 원자재가 많은 중소기업에도 부담이 커지고, 외국인 투자 이탈은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이다. 생활물가와 금리 부담이 높아지는 와중 내국인은 집값을 포함해 삶 전체가 비싸지고 있다. 글로벌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과도한 재정 지출 축소나 국내 투자환경 강화 등을 통해 환율이 더 오르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정부는 재정, 경제 구조 개선으로 원화 가치 방어를 위해 여러 밸런스를 고민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눈] 부동산 정치 공방, 결국 실수요자만 피해 본다

주택 공급을 둘러싼 여야 간 이견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선호해 왔고, 국민의힘은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 확대를 지향해 왔다. 현재 정부와 대통령은 민주당이 맡고, 서울시는 야당장이 이끄는 만큼 접근법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린벨트 해제, 토지거래허가구역 조정, 정비구역 지정 권한의 구청장 이관, 용산정비창 주택 규모 등 각종 정책을 두고 충돌이 빚어지는 것 역시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단순한 정책 이견을 넘어선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이 가장 뜨거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정권을 내준 경험이 있는 만큼, 부동산 문제는 여당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야당 입장에서는 공세를 멈출 이유가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야 모두 공세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그 중심에는 서울시장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있다. 야당 소속 현직 오세훈 시장은 명태균 게이트라는 변수 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후보며, 나경원·한동훈 등의 가능성도 있는 상태다. 여당에선 박주민, 서영교, 박홍근 의원이 공개적인 출마 선언을 했고, 전현희 최고위원, 홍익표 전 의원, 정원오 성동구청장 등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자연스레 여당 예비 후보들은 최근 종묘 앞 초고층 개발 논란을 비롯해 오 시장의 전반적인 부동산 정책을 겨냥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일부 정책도 역시 오 시장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오 시장도 공공주택 확충 필요성이 분명한 상황이나,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시을 유지하고 있다. 한강버스처럼 랜드마크 성과로 이어질 개발 사업에 과도하게 집중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로 인한 피해를 떠안을 이들이 청년과 신혼부부를 비롯한 서민층이라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내년 수도권 공급 물량이 예년 대비 20~30%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가 26일 기존 계획보다 2000호 증액을 발표했지만 이는 아직 계획 단계일 뿐, 시장이 체감할 만한 확정 공급으로 보기 어렵다. 이처럼 불협화음이 커지면 시장 불안이 심화되고 공급 효과도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최근 김윤덕 국토부 장관과 오 시장이 만찬 회동을 갖고 화합 메시지를 내놨지만, 정작 실수요자가 궁금해하는 핵심 현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아 아직 기대감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는 권력투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지키려는 수단이다. 서민층 주거 불안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여야가 공세와 대립에만 매몰된다면, 그 책임은 결국 정치권 전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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