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조원태 반대한 국민연금의 ‘기괴한 이중 행보’

지난달 26일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지분 5.44%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한진칼의 경영권을 호시탐탐 노리던 호반그룹조차 조 회장의 선임에 찬성표를 던진 마당에 최대 기관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홀로 각을 세운 것이다. 국민연금이 내세운 반대 사유는 '명백한 기업 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 소홀'이다. 아울러 조 회장이 지난해 한진칼·대한항공·진에어·아시아나항공 등 4개 회사로부터 수령한 145억7818만 원의 보수가 경영 성과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됐다며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도 반대했다. 하지만 과연 이 '경영 성과 부족'과 '기업 가치 훼손'이라는 잣대가 합당한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적 과제 떠안은 결단, '경영 성과'로 폄하할 수 있나 정부가 산업은행을 앞세워 조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해주게 됐다는 논란이 존재하긴 하지만 조 회장은 2020년 11월 재무 압박을 감수하면서도 아시아나항공 계열사들을 떠안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만약 대한항공이 국적 대형 항공사 통합이라는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에어서울·에어부산, 협력사 직원들까지 애저녁에 길거리에 나앉는 대규모 실직 사태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이는 기업 논리를 넘어 국가적 사업에 동참하고 동종업계인들의 고용을 지켜낸 막대한 사회적 공헌이다. 더욱이 대한항공의 매출은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가 부진하다'며 반대표를 던진 국민연금의 논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다. 정말 경영상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배임 등의 법적 잣대가 먼저 거론됐어야 마땅하다. ◇투자와 의결권이 따로 노는 기이함 국민연금의 이러한 엇박자는 근본적으로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이원화된 기형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서 기인한다. 기금운용본부는 올해 1월 말 기준 1540조 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굴리며 장기 수익률 제고를 목표로 하는 철저한 '투자' 조직이다. 한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판단이 곤란한 주요 안건의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는데 사용자 단체 2명, 근로자 단체 2명, 지역 가입자 단체 2명, 관계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다. 중대사를 결정하는 조직이 둘로 쪼개져 있다보니 한쪽에선 수익을 위해 투자를 진행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비전문가들이 섞인 위원회가 모여 반대표를 던지는 촌극이 벌어지는 건 예정된 수순일 수 밖에 없다. 노사 대표들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수탁위 구조상 사실상 가입자 대표가 캐스팅 보트를 쥐며 고도의 금융·경영적 판단보다는 정치적·이념적 입김이 작용하기 쉬운 구조다. 국민연금이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글로벌 연기금의 정답은 '독립성'과 '전문성'의 일원화 해외 주요 연기금들은 일찌감치 이러한 리스크를 차단하고 철저히 전문성과 독립성 위주로 지배구조를 짰다. 노르웨이 국부 펀드(GPFG)는 중앙은행 투자관리청(NBIM)이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기관으로 철저하게 수익성 중심의 투자를 지향한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운용 전략과 방향을 확정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제도인 캘퍼스(CalPERS)는 주 정부 산하가 아닌 독립 기관이다. 가입자 선출·주지사 임명 등으로 구성된 13명의 관리이사회가 최고 의사 결정 기구 역할을 하며, 투자와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등 주요 결정을 직접 내려 정치적 중립성과 의사 결정의 일원화를 확보했다. ◇국민연금, 이제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국민이 낸 피 같은 노후 자금을 안전하게 불려 돌려주는 것이다. 투자는 글로벌 3대 연기금 규모로 하며 기업의 명운이 걸린 의결권 행사는 전문성이 결여된 위원회의 입김에 휘둘리는 작금의 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연임이 정기 주총 안건으로 올라올 때마다 반복돼 온 국민연금의 조원태 회장 연임 반대 사태는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분산된 의결권 구조를 정비해 자본시장 이해도가 높은 인력들이 최종 책임을 지는 일원화된 시스템으로 가야 함을 보여주는 명백한 방증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쉐도우 보팅이나 이상한 이중 행보를 멈추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독립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할 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한국 TV산업, 흠집내기보다 응원이 필요한 이유

“경쟁을 두려워해선 나아갈 수 없다", “최상의 솔루션을 선보이기 위해 멈추지 않겠다." 최근 LG전자의 TV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 나온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다. 중국 제조사의 거센 공세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LG전자의 '정면 돌파' 의지를 확연하게 읽을 수 있었다. 냉정하게 보면 현재 LG전자의 TV사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TCL·하이센스 같은 중국 가전업체들은 초대형·초저가 전략을 앞세워 글로벌 TV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며 점유율 상위권(출하량 기준)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미니 발광다이오드(LED)를 기반으로 한 '가성비 프리미엄' 공세까지 더해지며 국내 가전사와 매출 기준 점유율 격차도 빠르게 좁히고 있다. 이는 LG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TV시장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 역시 중국의 거센 추격과 가격경쟁 압박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K-TV산업 전반이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점은 삼성·LG의 K-가전이 위기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경쟁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기술 혁신으로 정면 대응에 나서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공개된 LG 올레드 에보(W6)가 상징적인 사례로, 9㎜대 두께에 모든 부품을 내장한 무선 월페이퍼 TV, 4K·165Hz 영상과 오디오를 지연 없이 전송하는 무선 기술,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 개인화 콘텐츠 기능까지 더해졌다. TV는 여전히 국내 전자산업의 핵심축이며, 디스플레이·부품·콘텐츠로 이어지는 거대 생태계를 떠받치는 기반산업이다. 특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쌓아온 기술 리더십은 여전히 견고하다. 지난해 '글로벌 TV 시장 20년 연속 1위', 'OLED 시장 13년 연속 1위'의 성과를 거뒀다. 안타까운 점은 시장에서 '중국 약진'과 '한국 위기'만을 부각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냉정한 진단과 비판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위기 담론은 글로벌 선도산업의 사기와 도전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생존게임에 내몰린 한국 TV기업에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비관론이 아니라 기술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다. 무한경쟁을 피하지 않고 부단한 혁신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에 응원의 박수를 보낼 때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에너지 절약 정책,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이번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 대비해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절약 방안을 보면 국민에게 불친절하다. 차량 5부제, 대중교통 이용하기,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 타기, 샤워 시간 줄이기 등 모두 생활에 제약을 거는 방안들이다. 요즘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전기차·휴대폰은 낮 시간에 충전하기, 세탁기·청소기는 주말에 사용하기 등이 새롭게 등장했다. 해가 쨍쨍한 낮 시간과 산업용 전력 수요가 적은 주말에 태양광 전력이 남으니 이때 전기를 써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린 날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낮 시간도 오후 3~4시 이후부터는 효과가 떨어진다. 전력시장 원리를 아는 전문가들은 이해하겠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설다. 동기부여가 생길 턱이 없다. 중동 전쟁이 악화되면서 자원안보 위기 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계로 격상되면 민간에 차량 5부제 도입이 검토되는 등 일상생활에 대한 제약은 더 커질 전망이다. 2주 단위로 재산정되는 석유 최고가격제도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영향은 비교적 늦게 나타나겠지만 오는 6월부터가 걱정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4월 16일부터 산업용 요금에 적용하는 '계절·시간대별 전기요금 개편안'이 힌트가 될 수 있다. 계시별 요금제는 이번 중동 전쟁과는 별개로 태양광 발전 확대에 따라 도입됐다. 평일과 주말 낮 시간대 전기요금을 낮추고 평일 저녁 시간에는 높였다. 태양광 발전이 활발한 시간대에 전기 소비를 유도해 화석연료 발전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계시별 요금제는 현재 산업용에만 적용되고 가정용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계시별 요금제는 경직된 전기요금 체계에 그나마 유연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요금제가 나올 수 있음에도 못하는 점은 아쉽다. 우리나라 전력 소매시장은 개방된 여러 선진국과 달리 한국전력의 독점 구조로 인해 다양한 요금제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예컨대 오후 1시에 태양광 전력이 급증하면 전력도매가격이 '0원'까지 떨어지며 가격 편차가 킬로와트시(kWh)당 100원 이상 벌어진다. 올해 안에 제도 개편이 이뤄지면 마이너스 전력도매가격도 나오게 된다. 전력시장이 좀 더 유연하다면 할인 수준이 아니라 오후 1시 무료 전기요금제가 출시되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다. 낮에 태양광 전기를 공짜로 쓰고 저녁에는 절약하면서 국민이 보다 즐겁게 에너지 절약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공급체계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경직된 전력시장으로는 추진하기 어렵다. 무조건 아끼라는 식의 에너지 절약 정책도 한계가 분명하다. 가격과 인센티브를 통해 소비를 유도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中자동차, 가성비보다 ‘고객 신뢰’가 먼저다

중국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의 한국 상륙을 앞두고 긍정과 부정의 엇갈린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소비자들의 '중국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해소가 흥행의 관건이라는 지적이 높다. 이같은 중국산 평가절하의 인식이 존재하지만 국내 시장의 분위기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단순한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의 확산으로 상품성과 함께 합리적인 가격까지 갖춰진다면 더 이상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커 역시 이런 한국시장의 변화를 기회로 삼고 있다. 지커는 지난해 한국법인 지커코리아를 설립하고 한국 진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빠르면 오는 5월 공식 출시와 함께 국내 시장에 첫발을 내디딜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커코리아는 속도보다 완성도를 택한 분위기다. 무리한 일정으로 시장에 진입하기보다 상품 경쟁력과 서비스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뒤 안정적으로 브랜드를 안착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지커의 한국 첫 출시 차량으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7X'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전기차 브랜드를 넘어 '프리미엄 그 이상'을 추구하는 지커가 △우아함(Elegance)을 강조한 디자인 △전기차에 최적화된 첨단기술 △가족 친화적 감성 등을 브랜드 핵심 가치로 내세워 한국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동시에 중국 제품들이 전매특허로 내세우는 합리적인 가격을 강조하는 '가심비'까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커 7X는 유럽에서 5만 2990유로(약 9228만원)~6만 2990유로(약 1억 969만원)에 팔리고 있지만 한국에선 5000만~60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 고유가 여파로 친환경차에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 역시 지커에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산' 우려에도 지난해 한국시장에 안착한 비야디(BYD) 사례는 지커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중국산'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결국 지커코리아가 한국 소비자에 성능 믿음과 고객소통 진정성을 얼마나 빨리 심어주느냐에 따라 브랜드 신뢰 구축 및 시장 안착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한국시장의 중국산 포용 여부는 중국산 브랜드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기자의 눈] ‘AI 무기화’ 윤리적 기준, 우리도 고민할 때다

전쟁에 인공지능(AI)을 쓰는 시대가 왔다. 최근 미군이 이란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AI가 사실상 두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공습하면서 생성형 AI 클로드의 개발사 앤트로픽(Anthropic)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앤트로픽은 AI 사용에 나름의 '윤리적 제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미 국방부는 민간기업의 윤리 기준이 국가 안보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트럼프 행정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기업으로 지정하며 제재에 나섰지만, 실제 군사작전에서는 여전히 클로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기술의 침투가 윤리와 정치적 판단을 앞지른 장면이다. 미군은 이번 전쟁에서 타깃을 구분해 선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AI를 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간을 돕기' 위해 개발된 AI가 '인간을 살상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며 비판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기술의 비완결성, 오판 가능성 등은 윤리적 기준에 대한 더 명확한 레드라인(red line)을 요구하는 근거다. 이번 사태를 보며 떠오른 책이 있다. 미래학자 후안 엔리케스의 저서 '무엇이 옳은가'이다.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엔리케스는 '인간성'을 절대적 가치나 최후의 안전장치로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강조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윤리적 기준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증기기관 같은 기술은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노예제에 대한 비판을 불러왔고,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공공장소 금연이 표준이 됐다. 또 유전학과 뇌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성적 지향의 생물학적 근거가 생기면서 동성애에 대한 기준도 바꾸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쟁에 AI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기준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후대에는 어떻게 전쟁을 치르면서 AI에게 정확한 판단을 맡기지 않고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냐는 윤리적 비판이 역설적으로 제기될 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시점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다. 후안 엔리케스는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고집하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논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는 이미 전쟁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어떤 윤리적 기준을 가져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전기차 충전소 늘어도 소비자는 불편…‘보조금 개혁’ 절실

전기차 운전자들 사이에서 충전 이용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주로 이용하는 완속충전기 요금이 가파르게 오른다는 이유에서다. 차를 산 지 2년여 만에 유지비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원인으로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지목된다.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스마트 제어 완속 충전기' 보급을 활성화하고 있는 게 문제다. 보조금을 수령하기 위해 설치된 지 얼마 안 된 정상적인 충전기를 철거하고 새 설비로 교체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이 과정에서 운영 주체가 요금을 크게 인상하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전기차 충전기 사용자 경험 개선 토론회'에서도 관련 내용이 논의됐다. 발제자로 나선 조현민 이볼루션 대표는 “사용 가능한 충전기까지 교체해 기존 100원이던 요금이 200~300원 수준으로 상승해 사용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전자청원에는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 정책 재검토 요청에 관한 청원'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스마트 제어 완속 충전기 보급 정책이 잘못됐다는 내용이다. 작성자는 정상 설비까지 바꾸는 관행을 없애고 부실 운영·불량 앱 업체에는 '보조금 회수' 등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당 의견은 지난달 게시 이후 한 달여 만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로 인해 국회 상임위원회(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공식 회부된 상태다. 공공주택·아파트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특정 사업자가 요금 결정권을 쥐는 형태로 운영된다. 설비가 설치되면 이용자는 사업자를 선택할 수 없다.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인 셈이다. 요금 체계도 불투명하다. 한국소비자원이 작년 12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같은 완속 충전임에도 회원·비회원 간 요금 차이가 최대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요금을 안내하지 않는 사례도 빈번했다. 정부는 그동안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얼마나 많이' 설치했는가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 결과 설비는 늘었지만 이용 경험은 오히려 후퇴했다. 보조금은 시장을 키우는 대신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책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 단순한 보급 확대가 아니라 가격, 운영, 이용자 경험까지 포함한 관리 기준이 필요하다. 이대로 두면 전기차 확산 정책 자체가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보조금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이유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

3월 28일, 2050년 탄소중립 감축경로와 탄소중립기본법의 입법 방향을 논의하는 첫 토론회가 열린다. 헌법재판소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경로가 부재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지 19개월 만이다. 그 사이 정부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61% 감축으로 상향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순하다.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어떻게 줄일 것인가"다. 감축 목표는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난방비로 직결되고, 기업에는 생산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에너지 비용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일수록 동일한 요금 인상에도 훨씬 큰 충격을 받는다. 탄소중립은 환경 정책이면서 동시에 분배와 생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탄소중립은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은 국가 경제뿐 아니라 포항·광양·여수·서산 같은 지역경제와 일자리의 기반이다. 그러나 공정 전환과 설비 교체, 신기술 도입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과 자금, 제도적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결국 감축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속도와 수단'이다. 같은 목표라도 어떤 속도로 추진하느냐, 이를 뒷받침할 기술과 인프라가 준비돼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수소환원제철, 전기가열로, 탄소포집·저장(CCUS) 등 주요 전환 기술은 아직 상용화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비용 부담만 앞서면 기업은 투자 확대보다 투자 유보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생활비와 생산비 상승,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지연과 산업 경쟁력 약화, 지역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목표와 수단이 함께 설계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력망 확충, 저장장치, 무탄소 전력원, 유연성 자원, 기술 공급망, 투자 지원과 점검 체계가 동시에 작동할 때 감축은 현실이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에너지 전환의 성패가 발전원 확대가 아니라 전력망·저장·유연성·공급망·인력 등 '시스템 구축'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이 단순히 더 높은 감축률을 법에 적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행되지 않는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기반 없이 추진되는 감축은 산업을 약화시키고 전환을 지연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세대는 기후위기뿐 아니라 줄어든 일자리, 약해진 산업 기반, 불안정한 생활 여건까지 떠안게 된다. 그래서 지금 시민대표단과 국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더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탄소를 줄이면서도 미래세대의 일자리와 생활 기반을 함께 지킬 수 있는가다. 국회의 역할도 분명하다. 2031년 이후 감축경로를 법에 채우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단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전력망, 무탄소 전력, 산업 전환 투자, 지원 제도, 이행 점검 체계가 함께 움직일 때 법은 비로소 현실을 바꾼다. 지구를 지키는 길과 아이들의 삶을 지키는 길은 따로 있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높은 목표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전환의 설계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잇따른 플랫폼 금융 전산사고…편리함 뒤 드러난 불안

플랫폼 기반 핀테크 기업과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전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네이버페이의 결제 장애에 이어 토스뱅크에서 엔화 환율이 절반 수준에서 거래되는 오류가 발생했으며, 카카오뱅크 역시 모바일 앱 접속 장애를 겪었다. 앞서 지난 2월 빗썸에서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가 발생한 후 불과 얼마되지 않아 전산 사고가 잇따르며, 국내 주요 플랫폼 기반 금융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 기업은 그동안 뛰어난 정보기술(IT) 기술력을 바탕으로 '플랫폼'이란 영토 위에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오프라인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변화를 주도해 왔다. 간편결제, 송금, 환전 등 다양한 기능이 온라인에서 손쉽게 가능해지며 금융의 진입장벽도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최근의 연이은 사고는 이런 '비대면'의 특수성이 지닌 취약점을 드러냈다. 전통적인 은행에서 디지털 장애가 발생하면 영업점을 이용해 일정 부분 대응이 가능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시스템이 복귀되기 전까지 이용자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 곳에 오류가 생기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어려워져 이용자의 불편도 커진다. 이번 사고를 통해 플랫폼 기업의 시스템 장애는 불확실성이 더욱 크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 같은 상황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한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논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인의 발행 주체를 두고 은행과 비은행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 주도 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은행에서도 디지털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축적된 금융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믿음이 부각되며 은행이 유리한 자리를 점하게 된 것이다. 핀테크 기업과 인터넷은행은 그동안 혁신을 앞세워 은행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혁신은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서비스가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는 어렵다. 플랫폼 금융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김 없고 정확한 서비스를 위한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금융당국, 목적 없는 지배구조 개선...아집버려라

금융당국이 작년 말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가 시간이 갈수록 명분도, 목적도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이달 12일 최고경영자(CEO) 경영승계절차의 공정성·투명성 제고, 이사회 독립성 및 다양성 강화 등을 뼈대로 한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하겠다고 공지했다가, 4시간여만에 돌연 취소한 것을 두고 숱한 뒷말이 나온다. 당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바젤은행감독위원회 최고위급 회의와 유럽 금융감독당국 최고위급 면담을 위해 스위스, 독일 출장 중이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그간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 원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금융위가 이를 기습 발표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번 건은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불화설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됐다. 또한 금융위가 금융지주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배구조 개선에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평가된다. 이미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를 향해 칼을 빼들기 전부터 지배구조 개선의 명분과 타당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숱하게 나왔다. 금감원은 올해 1월 8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관련 특별점검을 실시했는데, 해당 검사에서 어떠한 문제점을 발견했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이찬진 원장이 지난달 시중은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권이 먼저 지배구조 혁신에 과감히 나서달라"고 당부한 것도 실체가 모호하다. 은행권이 어떤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지배구조를 혁신해야 하는지 세부적인 메시지는 쏙 빠져있다. 이 원장의 발언은 지금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금융당국의 의중을 금융사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있게 이행하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상이 불분명한 금융당국의 칼날은, 금융시장 혼란으로 귀결된다. KB금융지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만 해도, 금융시장 환경 변화와 시대에 맞춰 지배구조도 끊임없이 발전돼야 한다는 기본원칙은 공감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금 금융지주사에 보여줘야 할 건 으름장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타당성이다. '지배구조 개선'의 목적이,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꽂는 식의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에너지 위기 극복, 국민 협조도 필요하다

선박이 통과하는 좌우 폭의 실제 길이가 3㎞에 불과한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사태'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초기인 이달 초까지만 해도 2주 정도면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이란의 거센 반격에 따른 전쟁 장기화 흐름과 맞물려 호르무즈 해협 봉쇄사태도 길어지면서 원유를 비롯한 주요 국제 원자재의 수급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동발 원유 운반선이 다음주까지만 들어오는 상황에 급기야 우리 정부와 정유사들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가 나서 아랍에미리트(UAE)산 원유 2400만톤을 긴급 확보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석유화학(석화)업계도 나프타 수급 차질에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 가능성을 고객사에 알리고 있으며, 정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했다. 석화사들이 생산하는 플라스틱은 산업용 소재로 안 쓰이는 데가 없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생산원가를 자극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생각지 못한 데서도 중동발 불씨가 튀고 있다. 반도체는 생산 과정에 쓰이는 헬륨의 절반 가까이를 카타르에 의존하고, 조선사들은 선박 용접을 위해 에틸렌을 가져다 쓰고 있어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가뜩이나 1400원대 후반에 고착화된 고환율에 원유수급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물가에 상승 압력까지 가중됐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1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원유 수급 차질의 직격타를 받는 석유제품의 생산비가 6.30%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화학제품과 고무·플라스틱 제품의 생산비용 증가폭은 각각 1.59%, 0.46%다.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원유 수급 등 현안을 한국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고,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 수호를 위한 군사지원을 요구하는 '다국적 해법'도 현재까지 호응이 적다는 점이다. 그만큼 원유 수급 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경제와 기업에 피해를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국가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수급 걱정을 했던 때처럼 한국도 '혹독한 쇼크'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주유소 휘발유·경유 최고가격제 시행을 넘어 비축유 방출, 대체원유 물량 확보, 차량 5부제 등 정부의 비상대책 못지 않게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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