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포로 ‘비공개 합의’ 진실공방…靑 “원칙 따라 대응”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을 둘러싼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입장 차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측에서 송환 사실을 비공개하기로 한 합의가 없었다는 반박이 나온 가운데 청와대는 추가적인 공방 대신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다. 26일 청와대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멕시코 국빈방문을 계기로 마련된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측 주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소식통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구체적으로 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자의 의사와 국내법·국제법, 인도주의적 기준을 토대로 사안을 처리한다는 기존 방침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측의 반박에 직접 맞대응하기보다는 북한군 포로 문제에 적용해온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논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두 포로는 지난해 1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뒤 한국행 의사를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튿날 송환 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던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청와대 역시 양국 협의 과정에서 사안을 공개하지 않고 처리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우크라이나에서는 다른 설명이 나왔다. 드미트로 리트빈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소통 담당 고문은 비공개 합의가 존재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의 미디어 고문인 옥사나 토로프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를 비판한 데 대한 답글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토로프는 비공개 협의가 있었다는 취지로 재반박하면서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측의 개별 발언에 추가 대응하지 않고 인권과 인도주의, 국내법·국제법에 따라 북한군 포로 문제를 다룬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트럼프·시진핑, AI 사고 때 ‘핫라인’…이란 핵·호르무즈도 공감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양국 간 소통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란의 핵무장과 국제 수로에 대한 통행료 부과에도 반대 입장을 함께 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첨단기술과 중동 정세 등 일부 현안에서 협력 지점을 확인한 모습이다. 25일(현지시간) 백악관이 공개한 미·중 정상회담 관련 설명자료에 따르면 양국은 AI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점과 잠재적 위험을 논의할 별도 창구를 두기로 했다. AI와 관련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양국이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소통 체계도 구축한다. AI를 부르는 명칭에도 변화가 생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향후 관련 첨단기술을 지칭할 때 AI 대신 '슈퍼지능(SI·Super Intelligenc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중동 현안을 놓고도 공통된 입장을 내놨다. 양국 정상은 이란의 핵무장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특정 국가나 기관이 국제 수로를 이용하는 선박을 상대로 별도의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에도 반대하기로 했다. 국제 수로에 대한 언급은 이란이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사실상의 통행료를 물리는 방안을 주장해왔다.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를 둘러싼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중 정상이 이에 공동으로 반대 입장을 낸 셈이다. 이번 회담을 끝으로 시 주석의 2박3일 미국 국빈방문 일정도 마무리됐다. 시 주석이 미국을 국빈 자격으로 찾은 것은 11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시 주석이 미국에 도착하자 앤드루스 합동기지로 직접 나가 영접했다. 이튿날에는 백악관에서 공식 환영행사와 정상회담이 열렸다. 방미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백악관 차담과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방문 등이 이어졌다. 두 정상은 문서기록관리청 앞에서 악수를 나눈 뒤 사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두 정상의 대면은 지난 5월 베이징 회동 이후 약 넉 달 만이다. 이번 방미 기간 두 정상은 네 차례 만났지만 양국 간 주요 갈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합의까지 도출하지는 않았다. 대신 AI와 중동 문제 등에서 접점을 찾으며 양국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소통 기반을 넓히는 데 무게를 뒀다. 백악관은 이번 회담에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평화와 번영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양국 관계 역시 상호 존중과 공정성, 호혜성을 토대로 전략적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트럼프·시진핑 ‘무역휴전’ 연장…대만·AI 놓고는 입장차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무역전쟁 재확산을 막고 경제·통상 분야의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해 부산에서 마련한 '무역휴전' 기간을 내년 1월까지 연장하면서 양국 관계가 다시 급격히 악화하는 상황은 일단 피했다. 관세와 희토류, 미국산 농산물 구매, 첨단기술 통제 등 핵심 현안에서는 최종적인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대만과 인공지능(AI) 규제 등 전략 경쟁과 직결된 사안에서도 양국의 입장차가 확인돼 향후 협상 과정에서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 시진핑, 대만 문제 정면 제기…미국에 '신중한 처리' 요구 25일(이하 현지시각) 외신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무역과 AI, 대만, 이란·한반도 문제 등 양국 및 국제 현안을 논의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양국 경제·무역 협상팀이 새로운 공동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양국이 협력 분야는 확대하고 갈등 사안은 줄여 안정적인 경제·무역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기존 무역휴전 기간 연장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에 따르면 양국은 오는 11월10일 종료될 예정이던 무역 관련 합의를 2개월 연장해 내년 1월10일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마련돼 '부산 합의'로 불린다. 당시 양국은 고율 관세를 주고받으며 격화하던 무역전쟁의 확전을 자제하고 추가 관세와 일부 보복 조치를 유예하기로 했다. 당초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휴전 기간을 장기간 연장하거나 보다 포괄적인 무역 합의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일단 2개월의 추가 협상 시간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양국이 풀어야 할 쟁점도 적지 않다. 관세를 비롯해 중국의 희토류 공급,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 통제,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 등이 후속 협상 테이블에 남았다. 미국 측은 중국이 기존 합의에 따른 일부 농산물 구매 약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베선트 장관은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의 약 170억달러 규모 농산물 구매 이행이 예상보다 더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양국은 비민감 품목의 관세 인하와 금융서비스 등 추가 경제 현안도 계속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구체적인 협상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채 “매우 좋은 회담을 했다"고 언급했다. 중국 측 역시 경제·무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데 무게를 뒀다. 경제 분야에서 추가 협상의 공간을 마련했지만 대만 문제에서는 양국의 전략적 입장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미국이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미국이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와 군사적 지원 등에 반발해왔다. 주목할 대목은 중국 측이 미국에 '대만 독립 반대'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표현보다 한층 강한 의미를 갖는 만큼 향후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로이터는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표현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번 회담 직후 백악관이 구체적인 대만 관련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양측이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의견을 주고받았는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 AI 대화 필요성엔 공감…트럼프 '개발'·시진핑 '인간 통제' 강조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AI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두 정상은 미국과 중국이 AI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위험 관리와 관련한 양국 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보였다. 접근 방식에서는 차이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 AI를 넘어선 '슈퍼지능(SI)'을 주요 논의 대상으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규제로 기술 개발을 제약하기보다 현행 체계를 유지하는 데 무게를 뒀다. 시 주석은 AI 기술 발전과 함께 관리·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AI 강국인 만큼 기술의 오용과 악용을 막기 위해 대화를 이어가야 하며 AI가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국은 정상회담에 앞선 고위급 협상에서도 AI 관련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서로 통보할 수 있는 소통 체계 구축 등을 논의했다. AI 경쟁이 안보 문제로 빠르게 확장하는 가운데 경쟁과 별개로 위험 관리 채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란과 한반도, 우크라이나 등 국제 안보 현안도 논의됐다. 시 주석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이란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 6월 종전 방안을 담아 체결했던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로 복귀하는 방안도 지지했다. 중국 측은 양국 정상이 한반도 문제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북한 비핵화나 북미 대화 등 구체적인 의제가 어느 수준까지 논의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만난 이후 약 4개월 만에 열렸다.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은 2023년 이후 3년 만이며 국빈 자격 방미는 2015년 이후 11년 만이다. 시 주석은 이날 오전 백악관에 도착해 공식 환영식에 참석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소인수·확대 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채 비공개로 열렸다. 시 주석이 백악관에 머문 시간은 약 3시간22분이다. 두 정상은 회담 이후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함께 걸으며 최근 완공된 헬리콥터 이착륙장을 둘러봤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헬기 '마린원' 내부도 시 주석에게 소개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지구 종말까지 85초 전…시간 남아있는 한 운명 바꿀 수 있어”

“인류가 직면한 실존적 위험을 추적하고 알리는 것은 우리의 임무 중 일부일 뿐입니다. 위험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알렉산드라 벨(Alexandra Bell) 세계원자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BAS)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1일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청운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구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에 시간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운명을 바꿀 시간도 남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단체에 '세계원자과학자회보' 선정 이날 경희학원은 BAS에 세계평화상인 '제2회 미원평화상'을 수여했다. 미원평화상은 더 나은 인간 실존의 조건, 문명과 평화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 온 인사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국제 평화상이다. 경희학원의 설립자인 미원(美源) 조영식 학원장의 평화 사상과 실천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24년 제정됐다. 이번에 2회 수상기관으로 이름을 올린 BAS는 1945년 설립 이후 80년 넘게 핵무기를 비롯한 인류의 실존적 위험을 알리고 대응 방안을 논의해 온 단체다. 특히 '지구 운명의 날 시계'는 위기의 현실을 상징적 언어로 바꿔 세계의 지도자와 시민사회에 행동을 촉구해 온 대표적 실천이다. BAS는 매년 1월 '지구 운명의 날 시계'를 통해 인류에게 남은 시간을 발표하는데, 올해 기준 시계는 자정 85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 미원평화상 선정위원인 아비로브(Avi Loeb) 하버드대학교 천문학과 석좌교수는 “올해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BAS는 정책 입안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며 “BAS는 후보 선정 초기부터 가장 유력한 후보였고, 모든 선정위원의 만장일치로 이번 수상기관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 출신 외교관이기도 한 벨 회장은 미원평화상 수상을 위해 BAS를 함께 이끌고 있는 다니엘 홀츠 과학·안보위원회 의장(시카고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데이비드 쿨만 이사회 의장(로티스 블루 컨설팅 파트너) 등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 “북핵 문제, 실질적 고민해야"…AI에 따른 위험도 경고 핵 정책전문가이기도 한 벨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반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핵 문제는 가장 중요한 국제 핵 비확산(NPT) 체제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북한 문제의 해결책이 언젠가는 저절로 나타날 것이라고 너무 오랫동안 가정해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도 “한 번의 회의나 악수 등 단발성 정치 이벤트만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라며 “외교관·군사 전문가·과학자·국제 파트너 등 전문가들의 역할을 더 강화하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지속적이고 실무적인 외교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이 인류의 새로운 실존적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벨 회장은 특히 군사 분야에서 AI 활용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데 비해 이를 규율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는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 AI에 대한 법적·윤리적 논의에서 우리가 뒤처져 있다"며 “전문가와 외교관이 함께 위험을 정의하고 국제적 규범과 행동 기준, 나아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홀츠 의장은 “과거 핵 위기를 돌아보면 인류가 파국을 피한 데에는 시스템의 완벽한 통제뿐 아니라 존 F. 케네디 등 당시 지도자들의 판단과 우연이 함께 작용했다"며 “더 이상 문명의 존속이 개인의 판단이나 운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특히 AI가 핵무기 등 고위험 분야의 의사결정에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견고한 시스템과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호르무즈 파병, 노무현의 교훈과 이재명의 숙제

최근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정국과 맞물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정치권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노무현 정권 당시의 이라크 파병 논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여권과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는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핵심 지지 기반인 진보 진영의 반발에 직면하자,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2003년 4월 2일 임시국회 국정연설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굳건한 한미공조가 중요하다"며 파병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한미관계의 갈등 요소를 (투자자들은)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라는 경제적 이유도 함께 제시했다. 한마디로 안보와 경제를 위해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런 노 대통령의 당시 인식은 지금의 상황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이재명 정권 역시 '원활하지 못한' 한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압박도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최근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의 이란 비핵화 노력에 한국이 동참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으나, 한국 측이 “No thanks!"라고 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산 천궁-II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칼럼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한마디로 '한국은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불만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인식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야만 한미 공조를 통해 안보 불안을 완화하고, 경제적 차원의 문제 역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라크 파병 당시 노무현 정권과 현재 이재명 정권이 직면한 고민 사이에는 분명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결정한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었다면, 지금의 대북정책 기조는 당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3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북한 비핵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선 비핵화'론을 사실상 폐기하고, 핵 동결을 의미하는 '우선 중단'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정 장관의 언급에 비추어 보면, 과거 노무현 정권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파병을 결정했던 반면, 지금은 북한의 즉각적인 비핵화보다 우선적인 핵 활동 중단을 추구하는 국면에서 파병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한데, 핵무기가 없는 우리로서는 파병을 통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혹은 전략 핵무기의 한국 배치를 확실히 보장받는 것을 반드시 관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국방력이 세계 5위 또는 6위 수준이라는 점을 자주 언급하지만, 이는 재래식 무기만을 기준으로 한 순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래식 무기에 핵무기까지 더해 국방력 순위를 다시 계산하면, 오히려 북한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진보 세력 일각에서는 미국의 '침략 전쟁'에 우리나라가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마도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전략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핵 방어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미국의 요구마저 들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실효적인 방어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평화가 이상주의만으로 구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고대 플라톤부터 나온 이야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말자는 식의 이상주의적 주장에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호응할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트럼프를 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였다. 놀란 감독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랬다. 트로이 성벽이 무너지고 불길이 도시를 삼키는 장면에서 나는 3천 년 전의 그리스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떠올렸다. 특히 아가멤논에게서 현대의 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았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익히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함께 떠나자, 형 아가멤논은 동생의 치욕과 그리스의 명예를 내세워 여러 도시국가를 전쟁에 끌어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10년을 끌었고, 마침내 트로이는 불탔다. 한 여인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의 끝은 한 문명의 파괴였다. 전쟁에는 늘 명분이 있다. 국가의 명예, 안보, 정의, 평화…. 그러나 그 명분이 언제나 전쟁의 진짜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힘을 가진 자의 욕망은 종종 그럴듯한 명분 뒤에 몸을 숨긴다.영화를 보면서 트럼프가 떠오른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스스로를 '평화의 대통령'이라 부르지만 세계는 좀처럼 평화로워지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죽음이 이어지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북한군까지 끌어들이며 장기화됐다. 이란과의 전쟁 역시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고, 이제는 동맹국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마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위해 가져야 할 땅처럼 말한다. 전쟁을 끝내겠다던 대통령 아래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고, 세계의 불안은 오히려 다른 곳으로 번져간다. 물론 3천 년 전 아가멤논과 오늘의 트럼프를 그대로 겹쳐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의 욕망을 공동체의 명분으로 바꾸는 방식이다.아가멤논에게는 '그리스의 명예'가 있었다. 그는 그 명분 아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왕과 전사들을 한 줄로 세웠다. 오늘의 명분은 '미국의 이익'과 '안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는 관세를 부과하고, 제재를 가하며, 필요하면 군사력까지 동원한다. 적대국만이 아니다. 오랜 동맹국에도 더 많은 비용과 복종을 요구한다. 다른 나라의 영토와 자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까지 거대한 거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현대판 아가멤논의 능구렁이 같은 탐욕을 본다. 그러나 의 진짜 이야기는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 시작된다. 그리스는 전쟁에서 이겼다. 난공불락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트로이를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오랫 동안 바다를 떠돈다. 동료들은 하나둘 죽고, 자신도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대가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는 승전가라기보다 승리의 대가를 묻는 이야기로 읽힌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인간도 승리한 것인가. 트로이를 없애버린 뒤 그리스는 더 행복해졌는가. 가자를 폐허로 만들면 이스라엘은 더 안전해지는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계속 전장으로 보내면 유럽에는 평화가 찾아오는가. 이란을 폭격하고 베네수엘라를 힘으로 굴복시키면 미국은 더 위대한 나라가 되는가.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쩌면 여기에서 갈린다. 문명은 얼마나 강한 군대를 가졌는가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영토와 자원을 차지할 수 있는가에도 있지 않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지 않으며, 힘이 있어도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문명이란 힘을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아가멤논에게는 트로이를 파괴할 힘이 있었다. 그는 그 힘을 사용했고 한 문명은 사라졌다. 하지만 승리한 그리스인들에게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아가멤논은 고향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20년을 떠돌았다. 호메로스는 어쩌면 그 긴 세월을 통해 전쟁의 오래된 진실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파괴하는 것보다 돌아가는 일이 더 어렵다고. 놀란이 오늘의 트럼프를 염두에 두었을 리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좋은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넘어 관객이 사는 시대와 만난다. 나는 스크린에서 3천 년 전 아가멤논을 보고 있었는데, 자꾸 트럼프가 어른거렸다.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늘 도발하고, 질서를 말하면서 세계를 불안하게 하며, 동맹을 말하면서 동맹국을 줄 세우는 권력자.영화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3천 년 전 사람들은 트로이를 불태우고 그것을 승리라고 불렀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신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 세계에서 얼마나 멀리 온 것일까. 성일권

美·이란 사이 낀 韓…호르무즈 파병 검토에 긴장 고조

미국이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기여를 거듭 요구하는 가운데 이란이 한국의 참여를 자국에 대한 군사행동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비전투 전력을 포함한 파병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에 들어가면서 미국의 동맹 압박과 이란의 반발 사이에서 외교·안보적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5일 외신 등에 따르면 이란 고위 안보·정치 당국자는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에 참여할 경우 이를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이 한국에 군사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에 동참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이란의 경고는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4일(현지시간) 한국이 중동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한국의 역내 자원 전개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위한 역할을 요구해왔다. 정부는 파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일 한반도 대비 태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군사적 기여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군사적 기여에는 전투뿐 아니라 비전투 임무와 수색 등 여러 선택지가 포함될 수 있다고도 했다. 현재는 해상초계기나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 전력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해 진전된 결정은 없다면서도 여러 가능성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파병이 추진되면 국내 절차도 넘어야 한다. 정부 차원의 검토를 거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논의와 국회의 동의 등이 필요하다. 청와대는 아직 국회와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할 단계는 아니며 어떤 방식의 기여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네팔, 한국인 실종지역 도보 수색 전면 중단…조현 외교장관 ‘급파’

조현 외교부 장관이 대홍수로 한국인 9명이 실종된 네팔을 찾는다. 현지 정부에 실종자 수색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고 피해 복구와 재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5일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이날부터 오는 7일까지 네팔을 방문한다. 시시르 커날 네팔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한국인 실종자 수색과 관련한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조 장관은 출국에 앞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직 소식이 없는 우리 근로자들의 가족과 만나고 함께 대책에 관해 논의해보겠다"며 “현장 구호팀과도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은 현지 수색 작업이 지형과 기상 여건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한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는 전날 네팔군에 한국인 실종 추정 지역에 대한 도보 수색을 제안했지만 안전 문제로 허가받지 못했다. 실종자들이 근무했던 상부댐부터 발전소 터빈이 있는 파워하우스까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른 산악지형이다. 네팔군은 도보 접근 대신 헬기를 활용한 항공 수색에는 협조하고 있다. KDRT는 네팔군 헬기를 지원받아 위어댐과 파워하우스, 옐로브릿지 일대를 살폈다. 드론 4대도 투입했지만 현재까지 한국인 실종자와 관련한 특이사항은 확인하지 못했다. 기상 상황을 고려해 항공과 드론을 활용한 수색을 이어갈 예정이다. 조 장관은 지난달 27일과 31일에도 네팔 외교장관과 통화하고 실종 추정 지역을 집중적으로 수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현지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과 한국 기업 관계자를 만나고 수색에 참여 중인 KDRT도 격려한다. 조 장관은 홍수 피해 이후 복구와 재건 지원 방안도 네팔 정부와 논의한다. 그는 “네팔과 우리는 오랜 관계를 맺어온 우방"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 네팔 정부 요인들과 논의하고 한국 정부의 지원·재건 참여 방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네팔과 중국 티베트자치구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네팔 바그마티주 라수와 지역의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는 한국인 직원 9명이 실종됐다.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6명과 한국남동발전 소속 3명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트럼프 압박에 ‘백기투항’ 靑 “군사적 기여”…호르무즈 파병, 최우선 방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사태와 관련한 한국의 비협조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으며 “이 일을 기억하겠다"고 경고하자, 청와대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군사적 기여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그동안 '실질적 기여'라는 표현에 그쳤던 정부가 처음으로 '군사적 기여' 방안을 밝히면서, 1일 개회한 정기국회는 시작부터 안보 현안에 휩싸이게 됐다. 파문의 발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다. 그는 “미국은 나토와 한국 같은 나라를 돕는 데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다"며 “한국의 경우 4만 명의 미군이 그곳에 있어 이란과 관련해 조금만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안 하는 편이 좋겠다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 주한미군 규모는 약 2만8500명이다. 앞서 지난달 16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란 비핵화 노력 동참 의향을 물었으나 한국이 “사양하겠다"고 답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또한 한미연합훈련 비용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며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규모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혔는데, 공교롭게도 발언 당일은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가 시작된 날이었다. 동맹 균열 우려가 커지자 청와대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는 글로벌 해상 물류망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통항의 자유를 위한 실질적·군사적 기여 방안은 한반도 대비태세와 국내법상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지난 4월 이 대통령이 관련 화상회의에서 '실질적 기여'만 언급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처음으로 '군사적' 기여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온도 차가 있다는 평가다. 군 당국에서는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기뢰탐지장비 등 투입 가능 자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투입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아덴만 해역의 왕건함을 활용하려면 작전 범위와 임무를 새로 설정해야 하고, 해외 파병 성격이라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2020년 작전 범위를 한시 확대한 전례가 있지만, 이번엔 임무 자체가 미국·이란 간 군사적 긴장과 직접 맞물려 있어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은 원유 수송과 직결돼 한국 선박·국민 안전을 위한 참여 필요성이 있는 반면, 미군 주도 작전에 직접 참여하는 모양새가 되면 이란과의 외교 마찰과 장병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 정부의 고심 지점이다. 정기국회 개회와 맞물려 이 사안은 곧바로 여야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청해부대 우회 파병'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여당은 정부의 신중한 기조가 정당하다면서도 한미 공조 파열음을 막을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한국을 공개 저격했다. 정확하게는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비난"이라며 “한미동맹은 그 자체로 국방이고 경제이고 민생이다. 한미동맹 무너뜨리면 국방도 경제도 민생도 온전할 리 없다"고 반발했다. 앞서 이 대통령이 연합훈련 축소 결정에 공감을 표했을 때도 국민의힘은 한미동맹 약화를 우려한 바 있다. 방위비 문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2026~2030년 적용돼 호르무즈 기여를 곧바로 증액 협상과 연결하긴 어렵지만, 미국이 군사적 역할과 훈련 비용, 동맹 부담 분담을 함께 제기하며 압박 수단을 넓혀가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외통위·국방위 등에서는 청와대의 의사결정 과정과 국회 동의 여부를 두고 정기국회 내내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자산을 제공할지는 미측 협의와 국내 정치권 논의를 거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이슈&인사이트] 최근 한국 안보 상황의 혼란과 문제

최근 한국 외교·국방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문제는 현재 한국이 큰 안보 혼란 상황에 부닥쳤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과거 한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주요 요소는 북한의 도발이라던가 우크라이나, 이란 전쟁과 같은 국제 분쟁으로 초래되는 경제·외교적 부담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과 상황은 과거와 달리 매우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 같은 양상이다. 실오라기 하나를 푼다고 해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북한이 현재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약 8천500명의 병력을 배치했으며, 향후 최대 3~4만 명이 전선에 투입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공병과 지뢰 제거 인력 1천 명 그리고 드론 운용병 400명이 포함된 수치다. 북한 드론병 중 상당수는 고도의 실전 운용 경험을 보유했고 우크라이나 내부 목표물 공격에 투입될 수도 있다고 한다. 북한은 2024년 10월부터 약 1만~1만2천 명 규모의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했고, 이중 2천300명 정도의 전사자를 포함해 전체 누적 사상자 7천 명이 발생하는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 큰 희생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불굴의 의지로 전투에 임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공격력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았다. 이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현금, 기름 및 최신 군사 기술을 제공하여 북한 경제는 연 3% 이상의 성장을 달성했다. 북한의 전쟁 수행 능력도 크게 개선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패트리어트 대공미사일 공급을 요청하여 한국의 안보딜레마가 커졌다.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며 한국 안보를 위협했지만, 한국은 큰 인연이 없는 우크라이나를 직접 지원하여 더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한다. 한국이 러시아에 대응해야 하지만,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은 답답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의 연합 군사훈련 축소와 조기 종료 조치를 단행했다. 이란 전쟁에서 무기와 장비 재고 및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미국이 한미 훈련 축소로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이익은 충분하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이란 전쟁 지원 거부와 쿠팡 문제 등으로 초래된 양측의 갈등을 이 배경으로 내세웠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북한의 환심을 사려고 한미 훈련 축소에 나섰다는 의심도 있다. 이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회담 성사를 통한 업적을 쌓기 위해 한미 관계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봐야 한다. 국내 상황도 매우 혼란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6·25 전쟁 이후 지속된 정전 상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남·북·미·중 등이 참여하는 다자간 종전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 와중에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80~120개 정도"로 본다면서도 북한을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모순된 발언을 했다. 북한과 종전하면 북한 핵에 대한 대응 능력과 억지력 확보가 필요 없다는 판단과 다름없다. 이런 국가 안보적 중대사가 인사청문회에 병적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탈영병 출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 방위병 출신 안규백 장관이 주도하고 있다. 탈영병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군 보안 및 군기 관련 사건·사고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국방부의 육군 지휘통신 화상회의 시스템에 보안 우려가 있는 중국산 부품이 쓰인 사실이 국회 국방위원회 감사에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우리의 작전 상황이 중국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는 중대 사건이다. 중국이 한국 통신 감청과 해킹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이다. 더불어 최근에 해병대 부사관의 총기·탄약 무단 반출 후 사망, 육군 1군단의 '실탄 미장착(빈총) 경계작전' 수행, 육군 부대 내 가혹행위로 인한 병사 중증 질환 발생 등 군기 사건이 벌어졌다. 이제는 단순 군기 부실이 아니라 군의 자정 능력을 의심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다. 최근 혼란의 정점은 육군·해군·공군사관학교를 통합해 단일 '국군사관학교'를 창설하는 통폐합 시도다. 국방부는 합동성 강화, 미래전 대비, 그리고 과거 육사의 쿠데타 역사 및 순혈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수조 원 이상의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국군사관학교 신설 명분이 될 수 없으며 안보적 필요가 빠진 정치 보복과 군 전문성 약화 시도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으로 초래된 안보와 경제 위기 확대, 북한 위협 및 협박 노골화, 한미동맹 균열과 미국의 북한 접근, 북한 핵 문제를 간과한 종전 추진, 탈영병 의혹을 받는 국방부 장관 아래 벌어지는 각종 군기 문란 및 사건·사고, 그리고 국론 분열적인 사관학교 통폐합 논란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한국 안보의 미래를 결정할 여러 중요한 사안들을 깊은 고민과 논의 없이 진행하는 것은 국가적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국가 안보는 성급하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고민이 많을수록 숨을 돌리고 돌다리를 하나씩 두들기며 물을 건너 심정으로 다시 확인하고 재고하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한국 안보 관련 논의는 너무 급하고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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