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표적 찾고 지휘관이 결심”…공군-서울대, 강남 AX 거점서 ‘실전형 국방 AI’ 연구 돌입

대한민국 영공 방어 패러다임이 인공 지능(AI)을 만나 혁명적인 진화를 앞두고 있다. 민간 기업과 대학이 공동 개발한 첨단 AI 기술을 실제 작전 현장에 즉각 투입하는 '실전형 국방 AI 생태계'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일 서울대학교 국방AI인재양성사업단과 공군 항공우주전투발전단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 AI 허브 메인 센터에서 '공군 AX 거점 소개 및 연구 과제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양 기관은 민·군 협력 AI 연구·개발(R&D) 개시를 알렸다. 미래 항공·우주 작전의 판도를 바꿀 국방 AI R&D에 대한 산업계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당일 현장에는 70여 명의 AI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공군은 '공군 비전 2050' 실현을 위해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오는 8월 서울 AI 허브 산업 AX 혁신 센터 내에 '공군 AX 거점'을 개소한다. 이 거점의 심장부 역할을 할 '공군 AX 협력 센터'는 김재완 서울대학교 공군 AX협력센터장(교수)이 운영을 총괄하고, 공군 실무진이 상주해 기술 기획부터 보안성 검토와 전력화 연계까지 전 과정을 밀착 지원한다. 센터는 ▲공군 소요 AI 기술 개발 ▲국방 데이터 안심존 기반 실증 플랫폼 운영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방식의 실전형 AI 인재 양성 ▲민군 협력 생태계 조성 등 4대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장병탁 서울대 국방AI인재양성사업단장(교수)은 개회사를 통해 “공군 AX 거점은 서랍 속 연구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군이 실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기업과 함께 개발하고 그 결과를 작전 현장에 즉각 적용하는 실전형 민군 협력의 전초 기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된 '2026년 공군 소요 기술 AI 연구 과제' 3건은 공군이 실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들로 구성됐다. 대학의 전담 교수진과 민간 AI 기업이 원팀(One-Team)을 이뤄 수행하며, 군사 작전의 특성을 고려해 AI의 오류를 방지하고 작전 결과의 무결성을 보장하기 위한 강력한 기술적·제도적 안전장치가 함께 적용된다. 우선 장 교수 연구팀은 탄도탄 발사 직후 움직이는 표적의 예상 경로와 은닉 위치를 AI가 자동 식별해 추적하는 'AI 기반 이동 표적(TEL, Transporter Erector Launcher) 위치 추적 모델'을 개발한다. 각종 융합 정보와 지식을 고성능 GPU 클러스터로 분석해 지리 정보 시스템(GIS) 기반으로 실시간 시현하는 고정밀 자동화 분석 체계를 구현하는 것이 과제의 핵심이다. 이와 더불어 곽노준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영상 정보와 텍스트를 결합한 멀티 모달(Multi-modal) AI와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법을 활용해 'AI 기반 표적 자동 식별 모델'을 고도화한다. 방대한 영상 데이터 베이스(DB)에서 적의 활동 패턴을 찾아내고 비정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적을 식별하는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는 적의 가짜 기만체(디코이)를 오탐지하는 이른바 'AI 환각(Hallucination)'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김 센터장은 “환각 현상은 주로 텍스트 기반의 생성형 AI에서 불거지는 문제"라며 “도입을 추진하는 영상 기반 표적 자동 인식 기술은 정교한 라벨링 데이터를 활용한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 방식이므로 애초에 환각 우려가 적고 정확도가 매우 높다"고 답변했다. 또한 “지속적인 데이터 정제로 오탐지를 원천 차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멀티 모달·RAG 분석 시 작전 결과의 무결성 보장 방식에 대해서도 “AI의 판단을 100% 맹신해 즉시 타격 등의 결정을 내리는 일은 결코 없다"며 “AI가 최적의 분석과 추천을 제공하더라도 반드시 공군의 담당자가 이를 한 번 더 교차 검증하고 최종 확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유영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통합 작전 지침서에 따른 전력 배당·표적 개발·임무 및 무장 추천 등 방대한 전투 계획 수립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AI 기반 항공우주 작전 전투 계획 작성 모델' 연구를 이끈다. 임무 수행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지만 무장 추천 등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요구되는 만큼 지휘관이 AI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 최첨단 기술도 병행 도입된다. 김 센터장은 “AI가 작전과 무장을 추천하더라도 최종 결심은 오롯이 지휘관의 몫"이라며 “결심 중심전(Decision-Centric Warfare)에서 지휘관이 완벽히 납득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AI가 특정 결론을 도출한 논리적 근거와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 주는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기술 도입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차별점은 '기획→개발→실증→전력화'로 이어지는 전 주기가 하나의 통합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참여 기업은 비공개 이하의 실제 군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관된 '국방 데이터 안심존' 실증 환경에서 보안 요건을 준수하며 AI 모델을 고도화할 수 있다. 개발된 기술은 공군 현장 실증을 거쳐 기술이전 및 방산 사업화로 직결돼 참여 기업에게는 국방 AI 시장 진입의 결정적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공군과 서울대는 오는 6일부터 17일까지 이번 혁신을 함께 이끌 민간 참여 기업을 모집한다. 스타트업·중소기업·방산기업 등 AI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면 지원할 수 있고 과제별 서류 평가를 거쳐 서울대 주관 위원회의 심층 평가를 통해 이달 말 최종 선정된다. 본격적인 연구 착수는 8월 초로 예정돼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한화오션, ‘7조8000억’ KDDX 우협 선정…“적기 전력화 사활”

총 사업비 7조8000억 원에 달하는 단군 이래 최대 수상함 사업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Korea Destroyer Next Generation)'의 조타수는 결국 한화오션이 쥐게 됐다. 한화오션은 그간 축적해 온 첨단 함정 기술력을 총동원해 2년 넘게 표류하던 KDDX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고 '적기 전력화'를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2일 방위사업청은 전날 업체 선정 평가를 거쳐 KDDX 상세 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한화오션을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입찰 공고 이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현장 실사와 제안서 평가를 진행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이른바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KDDX 사업은 7000톤급 최신예 구축함 6척을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초대형 국책 프로젝트다.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최초로 국산 이지스급 함정을 확보하는 핵심 전력 증강 사업으로 꼽힌다. 조선·방산업계에서는 한화오션의 이번 수주 배경으로 오랜 기간 뚝심 있게 다져온 '초격차 기술력'을 꼽는다. 대한민국 대표 '함정 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연구·개발(R&D)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온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다. 실제 한화오션은 일찍이 KDDX 개념설계를 주도하며 ▲통합 전기 추진 체계 ▲통합 마스트 ▲통합 네트워크는 물론, 인구 절벽 시대에 대비한 병력 절감 자동화 기술 등 차세대 함정의 뼈대가 되는 핵심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왔다. 나아가 신개념 함정 설계와 생존성 극대화를 위한 독자 연구를 거듭하며 선도함 건조를 위한 만반의 채비를 마쳤다. 특히 지난해 처음 공개한 '차세대 전략수상함'은 한화오션의 기술적 진보를 여실히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한화오션이 자체 기본설계를 수행해 세계적 권위의 영국 로이드 선급(LR)으로부터 설계 인증(AiP)을 획득하며 글로벌 무대에서도 기술력을 공인받았다. 이 함정은 미래 해전의 핵심인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MUM-T)를 구현했고 레이저 함포와 자폭 드론을 아우르는 다층 방어 체계까지 품고 있다는 게 한화오션 측 설명이다. 극한의 지능형 무인화 기술을 적용해 운용 인력은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전투 효율과 작전 지속 능력은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한화오션은 이러한 혁신 스마트 기술을 KDDX에 이식해 기존 국산 함정의 한계를 뛰어넘고, 전 세계 선진 해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 수준의 구축함을 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사업이 당초 계획보다 2년 이상 지연된 만큼 한화오션은 신속한 사업 궤도 진입과 전력 공백 최소화에 모든 역량을 쏟을 방침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KDDX 상세 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당사의 첨단 함정 기술력과 사업 수행 역량을 바탕으로 향후 정부와의 협상에 성실히 임해 사업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단독] 작전 보고서 치면 심해 전장이 눈 앞에…한화오션-LIG D&A, ‘AI 잠수함 훈련 체계’ 확보

해군 교관이 채팅하듯 대화창에 텍스트만 몇 줄 치면 즉시 복잡한 해저 전술 시나리오가 3차원(3D) 전장 시뮬레이션으로 구축되는 첨단 국방 인공지능(AI) 기술이 국내 기술진에 의해 독자 개발됐다. 이로써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무기 수출 외에도 K-방산이 대규모 데이터와 AI 기반의 '소프트웨어 중심전(SDW)' 생태계를 주도할 역량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본지 취재 결과, 함정 플랫폼 건조를 선도하는 한화오션과 국방 전투·훈련 소프트웨어(SW) 명가인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는 '사전 정보 기반 잠수함 훈련 시나리오 생성 장치 및 방법' 등 지능형 훈련 체계의 공동 특허를 획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스템은 해군 전술 기획의 오랜 난제를 해결해 나아가 초대형 글로벌 방산 수출전의 판도를 바꿀 '비대칭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잠수함 전술 훈련장의 시나리오 작성기는 훈련 교관에게 수작업을 요한다. 잠수함 작전의 눈과 귀가 되는 수중 음파는 수온·염분·해류 등 해양 환경에 따라 탐지 거리가 천차만별이다. 과거에는 교관이 해역의 상태·자함(우리 잠수함)의 무장·적 선단 구성 등 수백 개의 변수를 컴퓨터 시스템에 일일이 수동으로 입력해야 했다. 만약 '서해에서 작전하던 적 선단을 동해로 옮겨 훈련한다'는 조건을 부여하면 해양 데이터를 처음부터 다시 찾아 세팅해야만 했다. 전문 지식이 없는 초급 장교는 현실적인 훈련 시나리오 구성 자체가 불가능했다. 종래에도 시나리오 일부 모듈을 자동 생성하는 '기계-인간 상호 작용' 기반 기술이 존재하긴 했지만 이는 결국 인간 운용자가 수많은 선택 분기점을 일일이 검토하고 선택해야 하는 '반쪽짜리 자동화'에 불과했다. 한화오션과와 LIG D&A는 '비전문가인 경우에도 일상적인 언어(자연어)로 작성된 훈련 개요를 바탕으로 잠수함 시나리오를 자동으로 용이하게 생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인지 컴퓨팅 모델 개발을 완성했다. 겉보기엔 채팅창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비전문가의 일상 언어를 정밀한 시나리오 코드로 탈바꿈시키는 4단계 딥러닝 파이프라인을 구동한다. 우선 교관이 복잡한 다이얼 조작 대신 대화창에 '10월 중순 독도 서부 3km 지점에서 270도로 기동하는 북한 호위함 2척 출현. 자함은 심도 50m에서 5노트 기동, 중어뢰 2발 장착'이라고 평문의 시나리오를 텍스트를 치면 시스템 내부의 '전처리부'가 조사나 문장 부호를 걷어내고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숫자(벡터) 형태로 변환(토큰화)한다. 이어 복잡한 패턴과 문맥 파악에 탁월한 딥러닝 알고리즘인 '합성곱 신경망(CNN)'이 투입된다. CNN은 전체 문장을 분석해 ▲선단(적 함정 구성) ▲해역(바다 환경) ▲자함 조건(아군 초기 상태)이라는 3대 핵심 의미 단위로 정밀하게 해부한다. 여기서 국방 AI의 생명인 '안전 장치'가 작동한다.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가 가짜 전장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AI가 임의로 창작하게 두지 않고 추출된 키워드를 군이 축적한 '기밀 실측 데이터 베이스(DB)'에 1대 1로 매핑한다. '10월 독도'로 실제 동해의 그 시기 수온 실측 데이터를, 'O국 호위함'으로 실제 적함의 엔진 소음 제원을 끌어오는 식이다. 취합된 팩트 기반의 방대한 실측 데이터들은 시뮬레이터 시스템이 즉각 읽고 구동할 수 있는 기계어 표준 규격(XML)으로 자동 변환돼 단 수 초 만에 하나의 3D 전장 시나리오 파일로 최종 합성된다. 이 기술의 특기할만한 요소는 훈련 준비의 편의성 외에도 사후 전술 복기(디브리핑) 기능이다. 한화오션과 LIG D&A 관계자들은 문서로 작성된 기존 실제 작전의 개요에 대해서도 “사람에 의한 별도의 해석 없이 시나리오로써 재현이 가능해 작전 이전 작전 브리핑 혹은 작전 이후의 디브리핑 용도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했다. 함장은 칠흑 같은 심해 해상 임무에서 귀환한 뒤 사령부에 제출하기 위해 텍스트로 작성한 '작전 보고서'를 시뮬레이터 창에 복사해서 붙여넣기만 하면 된다. 불과 수 시간 전 벌어졌던 대잠전 교전 궤적이 사이버-물리 시스템(CPS) 기반의 '디지털 트윈'으로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다. 인간의 희미한 기억이나 평면적인 종이 해도에 의존하던 전술 복기가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3차원 워게임으로 진화해 즉각적이고 과학적인 대안 전술 검증을 가능케 한다. 이는 서구권 군사 학계가 훈련 시뮬레이션의 미래 트렌드로 주창하는 '인간-AI 협업 시나리오 설계(Collaborative Scenario Development)' 방법론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는 AI가 훈련 통제관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방대한 해양 데이터 검색과 지루한 스크립트 코드 변환을 전담하는 '공동 설계자(Co-designer)'로 대우하는 개념이다. 덕분에 인간 교관은 시스템 입력 작업에 얽매일 필요 없이 오직 훈련생의 성취 목표 달성과 교리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본질적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교관의 비정형적인 일상 언어를 인지 컴퓨팅을 통해 구조화된 기계어 코드(XML)로 번역해 내는 기술적 궤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최신 동향·첨단 자율 주행 산업의 메가 트렌드와도 평행하게 진화하고 있다. 현재 나토 워킹 그룹은 기존의 분리되고 경직된 MSDL·C-BML 등의 훈련 통신 규격을 하나로 통합한 차세대 상호 운용성 군사 언어인 'C2SIM'을 도입하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활용해 지휘관의 일상적 전술 지시를 기계어 코드로 자동 변환하는 체계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가 실측 데이터를 참조해 코드를 짜내는 한화오션과 LIG D&A의 독자적인 AI 훈련 체계 메커니즘은 글로벌 기술 학계가 환각 방지를 위해 연구 중인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철학과 보조를 맞춰가는 셈이다. 방산업계는 이 지능형 훈련 솔루션이 한화오션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초대형 글로벌 잠수함 수출전에서 가장 치명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총 수명 비용까지 80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캐나다 차기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CPSP)와 같은 초대형 수출전에서는 잠수함 선체의 철강 스펙만큼이나 육상 훈련 시설 패키지의 수준이 수주의 향방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 신규 도입국들은 당장 첨단 잠수함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전문 교관과 숙련된 해군 인력이 고질적으로 부족한 현상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양 지식이 얕은 초급 장교라도 자국어로 텍스트만 치면 인공지능이 현지 앞바다의 해양 환경을 불러와 실전 훈련 조건을 자동 세팅해 주는 K-지능형 시뮬레이터는 독일·노르웨이 등 유럽의 경쟁국들 대비 세일즈 포인트로 기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현장] 수소 저상 광역 버스부터 AI 항공 정비까지…K-하이 테크 모빌리티의 향연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2026 국토교통기술대전이 막을 올렸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하고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이 주관한 이 행사에서는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대한민국 기술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전시 관람에 앞서 진행된 개막식에서는 우리 국토교통 분야가 맞이한 패러다임 전환과 미래 비전이 선명하게 제시됐다.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김정희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장은 “지금 우리는 디지털 전환·인공 지능(AI)·로봇·자율 주행·하이퍼 스케일 AI 데이터 센터·신재생 에너지 수소 등 기술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며 “레벨 3 자율 주행차와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속철도 기술·자동화 무인 로봇 등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이번 대전이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희망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운을 뗐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우리 부는 고속철도 기술을 발전시키고 얼마 전 초정밀 위성까지 쏘아 올리는 등 국토와 교통 분야의 첨단 기술을 연구·실증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맨 앞에서 개척하는 부처"라고 말했다. 그는 대항해시대와 산업 혁명을 언급하며 “과거에 안주하는 사람 아닌 새로운 기술과 미래를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역설했다. 기조 강연에 나선 박민우 현대자동차·기아 AVP 부문장(사장) 겸 포티투닷 대표이사는 화면 밖 현실 세계로 나온 '피지컬 AI'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박 본부장은 “기존 AI가 텍스트나 코드를 다뤘다면 이제 AI는 스스로 주변 상황을 파악해 도로를 달리고 로봇의 형태로 사람과 같이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지컬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비 오는 밤의 젖은 도로나 불법 주정차 등 현실 세계의 수많은 예외 상황에 직접 부딪히며 방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축적하느냐에 달렸다"며 “전남광주특별시에서 200대의 자율 주행차를 투입하는 국토부의 선도적인 대규모 실증 지원과 매년 약 800만 대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탄탄한 양산 체계가 결합한다면 '데이터 플라이 휠'을 구축해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쟁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한항공의 무한 비행…정비사 조수가 된 AI와 하늘을 수놓을 무인 편대 특히 지상에서 항공기 하부를 누비며 촬영을 전담하는 검사 로버(Rover)는 대한항공의 협력사인 지상형 로봇 전문 기업 'HIM'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독자 개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2세대 신형 로버는 크기를 910x686x430mm(가로x세로x높이)로 재설계하며 전고를 430mm까지 대폭 낮춘 것이 특징이다. HIM 관계자는 “기존 1차 시제품은 전고가 700mm를 넘어 보잉 737 등 엔진이 낮게 깔린 협동체(소형기) 하부에 투입하기 어려웠다"며 “엔진 나셀 밑 여유 공간인 500mm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전고를 430mm로 납작하게 낮춰 광동체는 물론 협동체까지 사각지대 없이 모두 검사 가능하도록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성능과 기동성도 돋보인다. 무게 약 62kg인 이 로버는 초속 1.3m(시속 4.68km) 속도로 최대 4시간 동안 구동한다. 옴니 휠(Omni Wheel)을 장착해 지게차처럼 부드러운 제자리 회전(Zero-radius spin-turn)이 가능하며, 사람이나 지상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회피한 뒤 원래 경로로 복귀하는 자율주행 기능도 탑재됐다. 장착된 5000만 화소(50MP) 카메라는 유지 보수와 상용 업그레이드가 쉽도록 내장형 교체 구조로 설계됐다. 실전 배치 시에는 상부 검사용 드론 4대와 지상의 검사 로버 2대가 한 조(크루)를 이뤄 비행기를 동시에 군집 점검하게 된다.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정비사가 육안으로 대형 비행기를 점검하면 8~12시간이 걸리지만 이 시스템을 통하면 약 50분으로 단축된다"고 귀띔했다. 로봇이 수집한 사진을 바탕으로 AI가 1mm급 결함까지 정확히 판독해 낸다는 설명도 따랐다. 여기에 국방 분야에서 객체 탐지 기술을 쌓아온 전문 업체 '데이터 메이커'와 협력해 만든 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의 'AI 에이전트'가 한몫 한다는 전언이다. 두꺼운 정비 교범과 이전 정비 이력을 '리-아이디(Re-ID)' 기술로 연결해 경험이 부족한 신입 정비사가 결함 대처법을 물어도 마치 챗GPT처럼 최적의 매뉴얼을 즉각 쏟아낸다. 새로운 검사 시스템 도입에 발맞춰 '디지털 트윈' 기반의 정비사 훈련용 시뮬레이터도 함께 마련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태블릿 화면과 완벽하게 동일한 가상 통제 환경을 구현해 정비사들이 미리 숙달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라며 “시뮬레이터 상에서 원하는 항공기 기종을 선택할 수 있고, 가상 기체 표면에 임의로 상처나 결함을 생성하거나 껐다 켤 수 있어 다양한 상황에 대한 실전 같은 대응 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무인 항공체계 코너도 붐볐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 임무를 수행하는 자율 임무 수행 시스템 'AI 파일럿'이 적용된 저피탐(스텔스) 무인 편대기 모형이 전시됐다.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우크라이나제 엔진을 개조해 활주로 비행 시험 중이지만 향후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하는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라며 “글로벌 방산 기업 안두릴과의 기술 협력을 바탕으로 무인기 4대가 한 편대를 이루는 유·무인 복합 체계(MUM-T)를 2030년대 실전 배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UAM 생태계 선점을 위한 통합 교통관리 솔루션 '어크로스(ACROSS)'의 청사진도 돋보였다. 운항사의 비행 계획부터 관제사의 모니터링까지 아우르는 이 시스템은 현재 개발이 50% 이상 진행됐다. 대한항공 측은 “내년에는 영국의 버티포트 전문 기업 스카이포츠(Skyports)와 협력해 두바이 공항-시내 외곽 지역을 잇는 해외 실증 비행 연계를 준비 중"이라며 글로벌 진출 의지를 다졌다. ◇우주 공간부터 지상 인프라까지 촘촘해진 모빌리티 핏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에서는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개발 중인 수직 이착륙 미래형 모빌리티(AAV) 콘셉트 모델이 위용을 뽐냈다. KAI가 체계 종합을, 현대차가 파워트레인을 맡는다. 흥미로운 점은 기체 곁에 놓인 '저궤도 위성' 모형이었다. KAI 관계자는 “추후 무인화된 AAV가 고도 8000피트 상공을 날 때도 통신이 끊기지 않도록 6G 네트워크를 공중에서 지원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국토위성센터와 함께 내놓은 초고해상도 '국토 위성 2호' 모형도 주목받았다. 픽셀당 50cm(0.5m급) 크기를 식별해 지상의 차종과 주차선까지 구분이 가능한 이 정밀 위성은 KAI 주도로 지난 5월 발사됐다. 현재 초기 성능 검증 중이고 오는 9월 경 국토위성센터로 관제권이 이관되면 즉시 대국민 재난 대응·국가 시설 관리 서비스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국공항공사는 UAM 비행 중 GPS가 단절되는 비상 상황 시 지상의 특수 차량 두 대가 양쪽에서 무선 주파수(RF) 빔을 쏴 대체 가상 항로를 만들어주는 관제 시스템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유인 헬기 사전 실증은 이미 완료된 상태다. 또한 김포공항 검문소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해 차량 내 30개의 위해 물품을 찾는 가상 현실(VR) 기반 검색 훈련 시스템도 시연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도심 내 적층형 버티포트 환경에 맞춰 2년여의 개발 끝에 탄생한 '소형 기체 이송 로봇' 시스템을 공개하며 다가올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했다. ◇'바닥 탈출구' 뚫은 최장 수소 버스와 3MW급 '괴물 기관차'의 등장 지상 모빌리티 부문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대형 부스를 꾸려 로보틱스와 수소 에너지로 한계를 돌파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로보틱스 랩 부스에서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과 '아틀라스' 목업, 상부에 다양한 구조물을 얹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모바일 플랫폼 '모베드'가 관람객을 맞았다. 특히 스팟은 RGB와 적외선 카메라 등을 달고 이미 실제 산업 현장의 안전 인스펙션에 투입돼 활약 중인 사례를 뽐냈다. 그 옆으로는 12.5m 길이의 '저상 수소 전기 광역버스'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했다. 2027년 광역 버스 대폐차와 저상화 의무화에 발맞춰 올해 말 양산을 앞둔 이 버스는 수소를 45.6kg 충전해 910km 이상을 달린다. 또한 잔고장과 느린 구동으로 현장 운수사들의 불만이 컸던 자동형 휠체어 리프트 대신 직관적이고 가벼운 수동형 슬라이드 램프를 채택한 실용성도 빛났다. 현장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는 “저상화로 인한 승차감 저하를 막기 위해 전륜 독립 현가장치와 유압 댐퍼를 적용했다"며 “전복 사고에 대비해 세계 최초로 지붕뿐 아니라 차량 바닥에도 비상 탈출구를 마련했다"고 했다. 철도의 거인 현대로템은 전작 대비 출력을 46%나 끌어올린 560kW급 견인 전동기와 함께 '3MW급 수소 전기 기관차'의 1대1 스케일 연료 전지(FCTS) 모듈 목업을 선보였다. 각 축당 410kW 출력을 내는 모터 6개와 100kW급 수소 연료전지 모듈 6개, 그리고 배터리가 결합해 화물 견인만을 위해 강력한 동력을 내뿜는 구조다. 현장 관계자는 “국토부 연구 과제를 거쳐 내년 하반기면 실제 차량 조립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캐나다 80조원 잠수함 한-독 수주전…메가 옵션 ‘물량 공세’

캐나다 연방정부가 추진하는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CPSP)'은 자국 해군 수중전력의 세대교체라는 1차원적인 목표를 넘어 국가 산업 지형 전체를 뜯어고치는 거대한 거시경제 지렛대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030년대 중반 퇴역을 앞둔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최대 12척의 신형 플랫폼을 도입하는 CPSP는 총 수명주기 전체 비용이 최대 800억 캐나다달러(약 80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업이다. 이 천문학 규모의 예산을 집행하는 마크 카니 총리의 캐나다 행정부 정책 의지는 험난한 국제 정세와 밀접하게 결부돼 있다. 북극해 빙하의 해빙에 따른 러시아와 중국의 해양 팽창을 억제해야 하는 안보적 위기, 미국의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 아시아발 저가 공세에 밀려 붕괴 직전에 내몰린 캐나다 자동차·철강 산업의 구제라는 거시경제적 과제를 고려한 프로젝트다. 현재 CPSP의 최종 후보로 맞붙은 한국의 한화오션과 독일의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 주도 연합 간 진검승부는 잠수함의 잠항 심도나 무장 탑재량 같은 장비 제원에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승패의 향방을 결정지을 최대 변수는 한·독 두 나라가 자국의 자동차·철강·에너지·항공우주 등 비(非)조선 분야 대기업들을 동원해 캐나다에 제시한 '거시경제적 절충교역 패키지'의 파급력과 실현 가능성이다. ◇ 캐나다 실물경제로의 환원 이번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 입찰의 가장 엄격한 채점 기준은 캐나다 정부의 '산업·기술 혜택(ITB, Industrial and Technological Benefits)' 정책이다. 국방조달 계약을 따낸 국가는 수주금액의 100%에 상응하는 비즈니스 창출·재투자를 캐나다 영토 내에 의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캐나다 연방 ITB 평가위원회는 입찰국이 제출한 가치 제안이 캐나다 산업 체질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지를 △방위산업 육성 △공급망·중소기업 개발 △연구·개발(R&D) 역량 증진 △수출 확대 △기술교육 등 5대 전략 기둥을 기준으로 두고 있다. 카니 정부가 잠수함 도입을 지렛대 삼아 방위산업과 무관한 승용차 조립공장 신설이나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거세게 종용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글로벌 무기 획득 사업이 이종산업 간 국부를 교환하는 거대한 장으로 진화한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기발생 투자(Banked Investment)' 제약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입찰 이전에 이미 캐나다 현지에서 진행 중인 민간기업의 투자는 가치 제안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며, 엄격한 조건부 승인 아래 최대 50% 한도 내에서만 부분수용된다는 것이다. 이번 잠수함 입찰을 매개로 새롭게 유발된 부가가치만을 평가하겠다는 깐깐한 잣대인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쟁국인 독일 진영의 득점 전략에 구조적인 제동을 거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韓, 수소 생태계부터 내륙 철강 부활까지…전례 없는 '하향식 생태계 창조' 우리 정부는 전폭적인 외교 지휘 아래 현대자동차·한화·HD현대·대한항공·LIG D&A 등 국가경제를 견인하는 최고위 제조기업들을 일사불란하게 결집시켰다. 이들이 캐나다에 약속한 총 700억 캐나다달러(약 70조 원) 규모의 경제활동 창출과 50만 개 장기 일자리 조성 청사진은 캐나다 핵심 산업의 '체질 부활'을 조준하고 있다. 당초 캐나다 정책 결정자들은 내심 완성차업체의 전기자동차 조립공장 신규 유치를 열망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북미시장의 복잡다단한 역학관계를 고려해 31억 캐나다달러를 투입해 캐나다 전역에 '수소 상용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 비버(Project Beaver)'로 화답했다. 이는 고도로 계산된 지정학적 판단의 산물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압박으로 인해 전기차 최종 조립거점을 캐나다에 두는 것은 관세 폭탄의 위험을 내포하는데 캐나다 내수시장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공세에 취약하다. 반면에 '수소 화물트럭'은 대량생산보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해 캐나다 현지 부품 조달 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온타리오주에 전용 제조시설을 세우고 전국 192개 충전소 거점을 깔겠다는 이 계획은 ITB 정책의 핵심인 '캐나다 공급망 개발' 부문에서 만점에 가까운 가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제안 중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쇠락하는 내륙철강산업의 피를 수혈하는 이종산업 융합 모델이다. 한화오션은 캐나다 자동차부품제조협회(APMA)와 현지 굴지의 철강기업 알고마와 연합해 51% 캐나다 자본 중심의 합작법인(JV)을 세운다. 이들은 100% 캐나다산 군용 등급 철강 소재를 활용해 온타리오주 현지에서 K-9 자주포와 K-10 탄약 운반차를 전량 조립 생산하기로 확약했다. 미국 철강 관세 여파로 자동차공장 가동률이 예년 대비 30% 급락한 상황에서 이 딜은 해상전력 획득 예산을 내륙의 육상 방산·자동차 부품소재산업 육성 예산으로 치환한 절충교역의 획기적 사례로 꼽힌다. APMA는 합작법인 설립 하나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 완성차 공장을 짓는 것과 맞먹는 3만 개의 고용 창출이 일어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더해 HD현대오일뱅크의 연간 최대 2000만 배럴 규모 캐나다산 원유 장기수입 확약과 퀘벡·노바스코샤 최고 조선소들에 대한 최상위 군함 건조 지식 재산권(IP) 이전, LIG D&A의 현지 어뢰 생산공장 구축, 대한항공의 캐나다 봄바르디어 제트기 G6500 교차 구매까지 더해졌다. 해양·육상·항공·에너지를 망라한 전방위적 국가 개조 패키지의 완성인 셈이다. ◇獨 TKMS 컨소시엄, 구조적 거버넌스 한계 속 'EU 방산망 편입' 제시 반면에 독일-노르웨이 연합을 이끄는 TKMS는 '잠수함 건조는 곧 국가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1600억 캐나다달러의 거시경제 유발과 65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다. 그러나 독일의 접근법은 한국의 다부문 융합 생태계와는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독일 연방정부는 입찰 초반에 자국 대표기업 폭스바겐의 자회사 파워코(PowerCo)가 온타리오주에 건설 중인 70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잠수함 사업의 최대 경제적 혜택이라고 홍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CEO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장 투자는 주주 이익과 글로벌 전략에 따른 독자적 결정일 뿐 국가 간 국방 계약과 무관하다"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자유시장 경제에 깊이 뿌리내린 거대 다국적 민간기업의 의사 결정을 정부의 방산 수주 로비에 억지로 종속시킬 수 없다는 서구 경제 시스템의 명확한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더욱이 폭스바겐 배터리 공장은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인 만큼 캐나다 ITB의 '기발생 투자' 제약 요건에 걸려 신규 유발 혜택으로 온전히 채점받기 어려운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거시경제 대기업 동원에 난항을 겪는 독일은 곁눈질 없이 고도화된 하이테크 방산부품 생태계의 내재화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퀘벡의 초정밀 하이엔드 제조사 마르멘에 최고난도 압력 선체 제조 권한을 전면 이양하고, 글로벌 인공 지능(AI) 선도 기업인 코히어와 잠수함 전술 워크 플로우를 공동 설계하여 수중 인지 부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청사진을 그렸다. 특히, 눈에 띄는 혜택은 유지·보수·운영(MRO) 인프라 구축에 있다. 212CD 잠수함을 공동 운용할 파트너 국가 노르웨이가 자국의 핵심 잠수함 수리기지 청사진을 캐나다에 무상으로 전격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캐나다가 시행착오나 과도한 추가 비용 없이 자국 동·서부 연안에 세계 최고 수준의 수리 기지를 복제할 수 있는 파격적인 국가 간 연대다. 독일이 제안하는 혜택은 '유럽 안전보장 조치(SAFE, Security Action for Europe) 체계로의 직접 편입'이다.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진영 재래식 잠수함 함대의 70% 가량은 TKMS가 장악하고 있다. 캐나다가 212CD 잠수함을 도입할 경우 캐나다 현지의 방산 중소기업들은 이 거대한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감으로써 약 2400억 캐나다 달러 규모의 EU 방산 프로그램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통로를 얻게 된다. 이는 불확실한 약속이 아닌 ITB '수출 역량 강화' 항목에서 즉각적으로 수치화해 증명할 수 있는 실질적 이권이라는 평이다. ◇마크 카니 내각의 고차원 방정식…'조건부 전면 도약' vs '검증된 심층 통합' 수십조 원의 경제 파급력을 자랑하는 한국과 독일의 화려한 제안 이면에는 거버넌스의 구조적 차이와 리스크 관리라는 묵직한 과제가 놓여 있다. 캐나다 연방 ITB 평가위원회는 이 약속들의 '증빙 수준과 담보력'을 가장 날카로운 잣대로 심사할 전망이다. 한국 제안의 결정적 아킬레스건은 현지 산업투자가 '잠수함 사업 수주 성공 시 발효'라는 조건부에 묶여 있어 입찰 결과에 따라 공중 분해될 여지가 있는 유예된 약속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특사로 나서 민간기업 최고위층을 대동하고 국가가 대외 신인도를 걸고 이행을 보증하기에 일단 계약만 체결되면 이탈 없이 실행될 것이라는 굳건한 신뢰를 제공한다. 반대로 독일은 비방산 민간 투자를 인위적으로 끌어오지 못하는 체제의 한계를 명확히 수용했다. 대신 이미 수십 년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입증된 범대서양 방산 공급망 네트워크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캐나다를 안전하게 이끌고 가겠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단독] LIG D&A 탑승객 맞춤형 ‘스마트캐빈’, 민간항공시장 노린다

유도 무기와 군용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LIG D&A가 상업용 여객기 객실 통합제어 시스템을 내세워 민간항공 시장에 진입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방산 분야 전파 제어기술을 상용 항공산업에 접목해 탑승객 기내 진입 시 디스플레이로 좌석을 안내하는 체계와 기내식 물류 재고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하나로 묶어 '스마트 캐빈(Smart Cabin)' 사업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구상이다. 22일 본지 취재 결과, LIG D&A는 지식재산처에 항공기 서비스 제공 시스템 및 방법 특허를 출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정보에 따르면, 해당 기술은 우주항공청(KASA)과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발주한 '스마트 캐빈 기술 개발 사업'의 결과물이다. 세부 과제명은 '항공기용 대형 플렉서블 OLED 디스플레이 시스템 개발'이며, LIG D&A의 사명 변경 전 방산기업 LIG넥스원이 지난 2024년부터 과제수행기관으로 참여해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LIG넥스원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항공기 인테리어 엑스포 2024(AIX)'에 참가해 보잉, LG디스플레이와 함께 3사가 공동 개발한 스마트 캐빈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3사는 OLED 패널을 항공기용으로 적용하고 제어하는 데 주안점을 두며 기술 상용화의 초석을 다졌다. 시스템은 무선주파수 식별(RFID) 기술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연동해 기내 통신망을 구축하는 구조다. 기내 하드웨어 단말기와 데이터베이스(DB) 서버를 이더넷 기반 유선통신과 무선 와이파이 망으로 연결해 승객 동선과 객실 물류 데이터를 처리한다. 기술은 승객 탑승 안내 체계를 전산화하는 구성을 포함한다. 여객기 출입구 주변 하드웨어와 중앙서버 연동으로 작동한다. 탑승객이 기내 입구를 통과할 때 게이트 주변에 설치된 티켓 인식 안테나가 탑승권에 내장된 태그를 스캔한다.DB가 정보를 수신해 통합 디스플레이 처리 모듈(IDPM)로 분배하면 출입구 55인치 대형 OLED 패널이나 객실 칸막이에 설치된 30인치 투명 OLED 화면에 개별승객의 탑승 안내 이미지가 표출된다. 디스플레이에는 △승객 영문 이름 △지정 좌석 번호 △시각화된 기내 좌석 위치도 △사전 주문 기내식 종류가 나타난다. 이와 함께 기장 메시지, 기내 면세품 판매 내용, 기상 상태 등 다양한 정보는 물론 항공사 브랜딩 등을 패널에 담아 승객 경험 혁신에도 일조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객실 승무원이 입구에서 개별 탑승권을 확인하고 좌석 방향을 구두로 안내하던 방식을 시각 자료 표출로 교체한다. 개별 탑승객이 통로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여객기의 지상 체류 시간(TAT, Turn Around Time)을 단축하기 위한 목적이다. 통로가 좁고 내벽이 둥근 항공기 객실 구조를 고려해 기체 벽면 곡선에 부착할 수 있는 플렉서블 OLED와 반대편 시야를 가리지 않는 투명 OLED를 하드웨어로 채택했다. LIG D&A가 비중 있게 다분 분야는 기내식 재고 파악 시스템이다. 여객기 기내식 준비실에 비치되는 밀카트와 컨테이너는 화재 예방을 위해 알루미늄 등 금속 재질로 제작된다. 밀폐된 금속 공간 내부에서 다수 RFID 태그 전파를 송출하면 신호가 내벽에 반사돼 얽히는 '다중경로 페이딩' 현상이 발생한다. 물류 창고에 쓰이는 전파 식별 장비를 항공기 카트에 적용하기 어려웠던 원인이다. LIG D&A는 방공 레이더·전자전 신호 처리 기법을 도입해 기내 전파 간섭 현상을 통제했다. 전파 노이즈가 발생하는 환경에서 표적 신호 강도를 분석하는 수신 신호 강도 지표(RSSI) 알고리즘을 시스템에 반영했다. 기내식 포장에 부착된 소형 태그 수백 개가 좁은 공간에서 전파를 방출하며 빚어지는 충돌 현상을 억제해 개별 식별 부호 수신율을 높였다. 밀카트와 컨테이너 내부 각 층에 스캐너 안테나가 장착되며 적재되는 기내식 단위마다 소형 태그가 부착된다. 사용에 따라 태그 개수에 변동이 생기면 카트 내부에 내장된 리더기가 신호를 해독해 네트워크 스위치를 거쳐 중앙 데이터 서버로 전송한다. 승무원은 준비실에 부착된 고정형 디스플레이나 휴대용 태블릿 단말기를 통해 기내식 잔여수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특허, 도면에 따르면 승무원 단말기 화면에는 특정 통신 연결 상태·여객기 내 준비실 위치·개별 컨테이너와 밀카트 기호가 나타난다. 화면에서 카트 아이콘을 누르면 내부에 수납된 도시락·면세품 품명·형상·잔여 수량이 그래픽으로 표시된다. 비행 중 승무원이 카트 문을 열고 적재 물품 수량을 파악하는 절차가 전산망으로 전환된다. 탑승 마감 시각이 임박했을 때는 단말기에 탑승을 완료한 승객과 미탑승 승객 좌석 위치를 색상으로 구분해 표시하며 기내 인원 점검 업무를 돕는다. 수집된 재고 데이터는 항공사 운항 비용 감축을 위한 분석 자료로 활용된다. 단말기에 구현되는 데이터 분석 화면에는 전체 기내식 사용 수량과 함께 미사용 중량 데이터가 누적 표시된다. 항공기 탑재 중량은 비행 시 항공유 소비량에 비례한다. 수요 예측 오차로 인해 승객에게 제공되지 못하고 남는 기내식이나 음료 하중은 기체 무게를 늘려 연료 소모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시스템은 운항 구간·시간대·좌석 등급별 기내식 소진 통계와 미사용 중량을 클라우드 서버에 기록한다. 항공사는 누적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 운항편에 필요한 적정 기내식 탑재량을 역산해 여유분 명목으로 실리는 기체 잉여 하중을 덜어낼 수 있다. 상용 항공기 제조사와 항공사들은 여객기 객실 공간을 정보통신망과 연결하는 사물 인터넷(IoT) 설비 도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항공기 인테리어·기내 네트워크 부품 시장은 대형 항공기 제조사와 인가를 받은 부품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LIG D&A는 자사가 보유한 통신망 설계 기술과 국내 산업계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기술을 결합해 상업용 여객기 부품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OLED 패널 시스템 운용을 위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직접 개발하고, 기내 엔터테인먼트용 네트워크와 연동이 가능한 시스템 체계 장착을 지원한다. 특히 항공기 운용 환경에 최적화되도록 장비를 저전력 고효율로 설계해 시장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LIG D&A 관계자는 “해당 네트워크 시스템을 민간 항공기에 국한하지 않고 선박·크루즈·대형 전시회·공연장 등 탑승권을 기반으로 입장을 제어하는 다중 밀집 시설물 전반에 확장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찬란한 K-방산의 이면, 그리고 참사의 기억법

2018년 5월 29일 폭발 사고(5명 사망), 2019년 2월 14일 폭발 사고(3명 사망), 그리고 2026년 6월 1일 폭발 사고(5명 사망·2명 부상). 불과 8년 새 국내 방위산업 현장에서는 도합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들이 유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사업장에서 반복됐다. K-방산의 눈부신 기술 발달과 전례 없는 수출 호황으로 매 국면마다 수조 원대 수주 잭팟 소식이 삽시간에 퍼지고, 국가 경제를 견인한다는 장밋빛 전망들이 판을 쳐 정부가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이런 호황 속에서 중심을 잡고 현장의 안전을 객관적으로 통제해야 할 방위산업체 경영진과 유관 기관은 실질적인 유해·위험 요인 파악을 소홀히 해 무기체계 생산 실적과 시험 평가 일정에 목을 맨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비극이 채 잊히기도 전인 이달 1일, 추진제를 닦아내는 56동 세척공실에서 또다시 원인 미상의 폭발이 일어났다. 지난 8년간 무려 44건의 배기 장치 교체 등 안전 개선 요구를 받고도 묵살하고 배관이 막힌 잔류 화약 찌꺼기(슬러지)에 작업자들이 직접 손과 공구를 대도록 사지로 내몬 상황이 누적된 결과다. 왜 K-방산의 이면에서는 피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가. 최근 학계에 발표된 방위산업 안전 관련 3편의 내용을 깊이 교차 분석해 보면 이 비극은 철저히 구조화된 인재(人災)임이 명백해진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법과 제도의 방관'이다. 2024년 '안전문화연구(31호)' 실증 연구에 따르면 민간 방산 종사자들은 무기체계 시험 평가와 정비를 위해 군사 통제 구역에 들어가 위험천만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현행 안전 지침인 '국방 안전 훈령'의 적용 범위는 국방부·소속 군 기관으로만 한정돼 있어 방산 종사자들은 철저한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온전한 적용은 커녕 사고 발생 시 명확한 피해 보상 제도조차 붕 떠 있는 실정이다. 방산 현장의 민낯은 더 처참하다. 2025년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안전보건융합공학과에서 발표된 박사 학위 논문의 '지오르기(Giorgi) 현상학적 심층 면담' 결과를 보면 종사자들은 “시험 평가 일정이 최우선이라 사소한 안전 문제는 무리하게 감수해야 한다", “사전 안전 점검은 서류상으로만 끝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또 시야가 차단돼 위험한 장갑차 내부를 다루면서 작업자 간 의사소통 오류를 방치하거나 폭우·폭염과 같은 기상 상황 악화 속에서도 무리하게 야외 일정을 강행하는 부끄러운 행태도 목격됐다. 방산 특성을 반영한 실질적 외부 안전 교육이나 전담 통제 인력조차 없이 사고가 터져야만 사후 대처가 이뤄지는 환경에서 작업자들은 매일같이 극도의 불안감을 안고 화약고로 출근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아가 방산업체들은 무거운 기계 장비를 옮기거나 폭발물을 취급하는 시험 평가 현장에 전담 안전 인력도 없이 종사자들을 반복적으로 내몰아 위험천만한 작업을 강행했다. 때문에 현업자들에게 큰 위험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지만 이 같은 관행은 10년간 1570건의 방산 사업 현장에서 산업 재해가 발생했다는 통계로 이어졌다. 당연하게도 방위산업 조직 내 안전 관리 활동의 핵심은 '경영층의 확고한 안전 책무'를, '방산 현장에 맞춘 실질적 안전 교육'을, '투명한 의사소통'을, '사전 유해·위험 식별'을, '페널티가 아닌 포상 중심의 안전 문화'를 명시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무시되기 일쑤다. 시간이 지나도 실적 앞에서 참사를 대하는 업계의 자세는 변하지 않아 '현장 안전제일'은 공염불에 불과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고질적 병폐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2025년 '한국안전학회지(40권 1호)'에 게재된 연구는 279명의 방산 종사자 데이터를 구조 방정식(PROCESS Macro Model 7)으로 분석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연구는 조직의 겉치레식 안전 관리 관행이 실제 작업자의 '안전 행동'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이를 매개하고 조절하는 경영진과 관리 감독자의 실천적인 '안전 리더십'이 절대적임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학계는 이를 억지로라도 끌어내기 위해 강력한 외부 통제력을 주문한다. 방위사업청과 산업통상부가 직접 나서 방산업체 정기 안전 점검을 제도화하고, 규정 위반 업체에는 정부 방위사업 입찰 시 치명적인 타격이 될 '감산점(Penalty Point)'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진이 스스로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실적으로 직결되는 압박을 통해서라도 통제해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다. 나아가 현장 종사자들에게는 처벌(페널티)에만 급급한 문화를 넘어 자발적 안전 준수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포상 문화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러한 안팎의 엄중한 지적과 잇따른 참사 비판에 직면하자 사고 당사자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지난 14일 회사는 화공 분야 권위자인 연세대 문일 명예 특임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독립기구 '안전문화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외부 전문가 11명과 노조가 추천한 현장 직원 2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를 통해 화약 등 위험물 취급 사업장의 표준 작업 절차를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안전·보건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2단계 종합 진단을 거쳐 오는 9월 노사 합동 '신(新) 안전 문화 혁신 선포식'을 개최하겠다는 구상이다. 안전 환경 개선을 위한 대규모 자본 투입도 약속했다. 2023년 538억 원, 2024년 1114억 원, 2025년 2470억 원으로 안전 투자비를 매년 배 이상 늘려왔으며, 올해는 무려 4524억 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신속한 개선 조치를 취하고, 막대한 예산과 외부의 객관적 시선을 수혈해 무너진 현장의 신뢰를 재건하겠다는 경영진의 늦었지만 절박한 결단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러한 천문학적인 예산 투입과 화려한 위원회 출범 그 자체가 온전한 '안전 리더십'을 단번에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 거창한 계획이 과거 종사자들이 토로했던 '서류상으로만 끝나는 요식 행위'로 또 다시 전락하지 않으려면 앞서 지적된 '44건의 배기 장치 교체 요구 묵살'과 같은 안일한 실적 지상주의부터 철저히 뜯어고쳐야 한다. 새롭게 개편될 시스템이 현장 최말단 작업자의 투명한 의사소통과 실질적 안전 행동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면 선포식 역시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일부 엄격한 통제 구역에서는 크레인 취급 인원 제한 등 철저한 규정 강화를 통해 대대적인 사고 예방 효과가 나타났고, 안전 선진 기업들은 대형 참사 이후 재해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혁해 이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문화를 구축했다. 참사를 기억하고 예방하는 방식이 곧 그 사회와 산업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법이다. 그런 만큼 제도적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서류로만 남기는 요식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K-방산의 찬란한 금자탑이 언제까지 근로자의 피와 땀 위에 위태롭게 서 있어야 하는가.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E칼럼] 한・미 원자력 협상, 선장이 필요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이 있다. 뱃길을 잘 아는 사람이 여럿이어도 방향을 정하고 책임지는 이가 없으면 배는 결국 목적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정부 간 협상도 다르지 않다. 여러 부처가 저마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방향을 잡고 끝까지 밀고 나갈 선장이 없다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6월 첫 주 한·미 안보 분야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농축과 재처리를 포함한 핵연료주기 전반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미 협상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93.4%를 수입했다. 원전 연료인 농축우라늄은 전량 수입한다. 2025년 기준 약 37%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여기에 고리와 한빛 등 주요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핵연료주기의 앞단인 연료 공급과 뒷단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모두 국내외 제약에 묶여 있는 셈이다. 이번 협상에서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에 실패하면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려되는 것은 협상 자체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국가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만, 핵심 의제인 농축과 재처리 관련 업무는 다수 부처에 걸쳐 있다. 이렇게 분절된 방식으로는 미국을 설득할 촘촘하고 강력한 논리를 짜기 어렵다. 핵연료주기는 우라늄 확보와 농축, 핵연료 제작과 사용, 사용후핵연료 저장·재처리·처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된 체계다. 어느 한 부분만 떼어놓고 접근해서는 국가 전략이 될 수 없다. 이 전체를 한눈에 꿰는 범부처적 밑그림이 있어야만 비로소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부처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나라와 범부처 합의를 바탕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단일한 전략을 제시하는 나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신뢰를 얻겠는가. 협상 테이블에서 신뢰는 말이 아니라 준비된 국가 체계로 증명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준비다. 한·미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우리나라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국가 차원의 핵연료주기 전략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일본이 1988년 포괄적 사전동의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도 수십 년간 유지된 장기계획이 미국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 재처리 추진 중단, 2004년 미신고 핵물질 실험 파동 등을 거치며 비확산 분야에서 적지 않은 불신을 자초해 왔다. 이번에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협상에 임한다면 결과는 선언적 합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기껏해야 구색 맞추기용 성과에 그칠 뿐, 실질적 에너지 자립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 원자력협정의 유효 기간은 수십 년에 이른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나라의 농축우라늄 공급망 취약성은 장기간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발 공급 부족이나 지정학적 위기 가운데 어느 하나만 발생해도 원전 운영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유용한 물질을 회수하고 처분 부담을 줄이는 선택지 역시 상당 기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대책은 분명하다. 범부처를 아우르는 '핵연료주기 자립 통합 태스크포스'를 조속히 구성하고 총괄 부처를 지정해야 한다. 대외협상 창구는 외교부가 맡더라도, 기술·산업·안전 논리를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할 총괄 부처가 꼭 있어야 한다. 아울러 올해 수립될 「제7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에 농축·재처리 통합 로드맵을 반영하고, 이를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국가 정책으로 확정해야 한다. 이러한 법정 계획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미국도 우리 정부의 정책적 지속성과 이행 의지를 신뢰할 것이다. 핵연료주기 자립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의 마지막 퍼즐이다. 그 퍼즐을 완성할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항로가 열렸다고 해서 목적지에 자동으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사공이 아니라 선장이다. 국가 명운이 걸린 협상을 앞두고 선장 없이 배가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bienns@ekn.kr

“비싼 미사일 대신 AI가 부딪힌다”…LIG D&A-니어스랩 대 드론 요격 체계, 글로벌 방공 시장 정조준

수만 달러에 불과한 소형 드론이 수백만 달러짜리 지대공 미사일 방어망을 위협하는 현대전의 '비대칭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K-방산을 대표하는 체계 종합 명가와 최고 수준의 AI 자율 비행 스타트업이 뭉쳤다. LIG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efense&Aerospace, 이하 LIG D&A)는 자율 비행 유도 기술 기반의 드론 AI 기업 '니어스랩'과 손잡고 실전형 대드론 하드킬(Hard-kill) 솔루션 고도화에 나선다. 13일 LIG D&A는 제2 판교 하우스에서 신익현 LIG D&A 대표와 최재혁 니어스랩 대표 등 주요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요격 드론 분야 사업 협업 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지난 2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지난해 열린 ADEX 2025에서 하드킬 체계를 공동 전시해 시장의 큰 주목을 받은 바 있고, 이번 협약을 통해 본격적인 무기체계 공동 개발과 글로벌 수출 확대를 위한 전략적 융합에 돌입한다. ◇전파 교란 뚫고 오는 적 드론, AI 기반 '초고속 직충돌'로 잡는다 초기 대드론 방어는 전파 교란이나 스푸핑 같은 전자전 중심의 소프트 킬 방식에 의존했다. 그러나 최근 전장에 투입되는 자율비행 공격 드론은 외부 통신이나 위성 항법 장치(GPS) 없이 자체 비전 AI로 지형을 인식해 침투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는 방어가 어렵다. 결국 요격체가 표적에 직접 충돌해 형태를 완전히 파괴하는 물리적 '하드킬' 방식이 최후의 방어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LIG D&A는 자사가 오랜 기간 구축해 온 세계적 수준의 레이더 탐지·지휘 통제(C4ISR) 인프라에 니어스랩의 AI 요격 드론 '카이든(KAiDEN)'을 플러그 인(Plug-in) 방식으로 이식하는 '개방형 혁신'을 택했다. 카이든은 최고 시속 250km의 기동력으로 전술 무인기를 속도에서 압도한다. 표적 반경 1km 내에 진입하면 전면에 장착된 비전 AI가 활성화돼 스스로 표적을 식별하고, 적 드론의 회피 기동까지 예측해 순수 운동 에너지로 직접 충돌하는 지능화된 킬 체인을 구현한다. 실제로 최근 군 시범 시험에서 카이든은 시속 60km로 비행하는 고정익 드론을 완벽히 격추하며 실전 능력을 입증했다. ◇170억 방사청 신속 시범 사업 정조준… 육·해·공 아우르는 라인 업 확장 양사 협력의 최우선 당면 과제는 방위사업청이 주도하는 총 170억 원 규모의 '대 드론 하드 킬 근접 방호 체계 신속 시범 사업' 수주다. 단 2년 안에 직충돌 전용 요격 드론을 개발하고 실전 운용성을 입증해야 하는 강도 높은 프로젝트다. 수많은 비행체 중 적 드론만 정확히 식별해 교전을 지휘하는 LIG D&A의 고도화된 체계 종합 역량과, 민간 상업 시장에서 검증된 니어스랩의 신속한 소프트웨어 중심 무인기 설계 역량이 결합된 이 컨소시엄은 수주전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양사는 이번 사업을 교두보 삼아 전차·장갑차 상부에 장착하는 '차량 탑재형'과 해상 극한 환경을 견디는 '함정 탑재형', 보병 휴대형 등 다목적 파생형 플랫폼으로 개발 영역을 전방위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26조 원 글로벌 시장 공략…중동 사막부터 북미 대륙까지 패키지 수출 글로벌 대드론(C-UAS) 시장은 연평균 25.8% 폭발적으로 성장해 2035년 약 190억6000만 달러(한화 약 26조 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양사의 시선 역시 궁극적으로 이 거대한 글로벌 무대를 향해 있다. LIG D&A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중동 시장에서 조 단위 수출 대박을 터뜨린 '천궁-II'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등 기존 대형 플랫폼에 니어스랩의 저비용 AI 요격 드론을 묶어 '다층 방공 패키지' 형태로 제안할 방침이다. 값비싼 미사일 소모에 부담을 느끼는 해외 고객국들에게 촘촘한 하층 방어망을 함께 제공하는 강력한 맞춤형 수출 전략이다.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 진출 시너지도 크다. 니어스랩의 무인기 시스템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에 중국산 기술을 철저히 배제한 독자적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미국의 까다로운 안보 심사 기준을 충족한다. 여기에 올해 초 미국 현지 독자 법인을 설립하고 유도 로켓 '비궁'으로 미 국방부 시험(FCT)을 전발 명중 통과한 LIG D&A의 굳건한 영업망이 더해지면 미군 획득망 진입도 빠른 시일 내에 가시화될 수 있다. ◇“단순 하청은 끝났다"… 2000억 상생기금으로 K-방산 생태계 혁신 이번 파트너십은 K-방산 생태계가 기존의 수직적 하도급 구조를 탈피하고 대기업과 딥테크 혁신 스타트업이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상생 협력'의 최고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깊다. 이를 증명하듯 LIG D&A는 이번 MOU 직후 방산업계 최초로 전담 최고위급 조직인 '상생추진단'을 신설하고, 올해 총 2000억 원 규모의 파격적인 대규모 상생 기금 운용 계획을 발표했다. 저금리 무역금융(1600억 원) 및 예금 지원(300억 원)은 물론, 대규모 해외 수출 사업 성공 시 막대한 영업 이익의 일부를 부품 협력사와 현금 인센티브로 공유하는 '수출 사업 성과 공유제(30억 원)'까지 방산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유망 스타트업을 1차원적인 하청업체가 아닌 글로벌 공동 진출의 '핵심 파트너'로 대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신익현 LIG D&A 대표는 “올해 새로운 사명과 함께 종합 항공우주·방산 기업으로 도약하는 LIG D&A의 여정에 니어스랩과의 협력은 미래 성장을 가속할 혁신적인 동력이 될 것"이라며 “양사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통합방공망 시장에서 대드론 요격 분야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재혁 니어스랩 대표는 “대한민국 방산의 주역인 LIG D&A와 글로벌 공동 전선을 구축하게 되어 책임감이 크다"며, “LIG D&A의 통합방공망에 니어스랩의 AI 요격드론 역량을 더해, 실전형 통합 대드론 솔루션을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박규빈의 경영 Scope] 영업현금 -5884억·부채비율 440%…LIG D&A의 ‘계산된 돈맥경화’

LIG넥스원이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기업 간판을 'LIG D&A(LIG 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로 바꿔 달았다. K-방산 4대장 중 하나인 LIG D&A는 사명 변경 당시 우주항공과 글로벌 방위산업체로의 담대한 도약을 선언했다. 그런 만큼 이 회사의 재무 상태는 격동기를 맞았다. ◇PGM과 '수출'의 쌍끌이…'영업이익률 14.6%' 쾌거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LIG D&A는 올해 1분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 1조1679억원, 영업이익 1711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된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 28.7%, 영업이익 56.1% 급증한 '어닝 서프라이즈'다. 외형 성장보다 매서운 것은 '수익성의 질적 개선'이다. 지난해 1분기 12.1%였던 영업이익률은 올 1분기 14.6%로 뛰었다. 비결은 1분기 매출의 59.0%(6890억 원)를 차지한 정밀타격(PGM) 부문의 호조, 그리고 내수 대비 마진이 월등히 높은 수출의 폭발적 증가에 있다. 과거 관급사업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LIG D&A의 올 1분기 수출액은 3777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2.3%를 차지했다. 2024년 23.6%, 2025년 19.9%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극적인 체질 변화다. 사우디아라비아(약 4조3000억원)와 이라크(약 3조7000억원) 등으로 수출된 대규모 천궁-II(M-SAM) 물량이 본격적으로 매출로 인식되면서 고수익 수출이 전사 이익을 강하게 견인하는 구조로 재편된 것이다. ◇부채비율 440%의 역설…부채 절반 이상이 '착한 빚' 눈부신 실적을 뒤로 하고 LIG D&A의 재무상태표를 열어보면, 올 1분기 말 기준 총부채는 6조8480억원, 자본 총계는 1조556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440.11%에 달하는 것을 볼 수 다. 일반적인 제조업이라면 당장 유동성 위기를 우려해야 할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방위산업 특유의 회계 기준이 만든 '착시 효과'다. 부채의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전체 부채의 54.4%인 3조7272억원이 '유동계약부채'로 묶여 있다. 계약 부채란 방위사업청이나 해외 발주처로부터 무기 제작을 위해 미리 받은 '선수금' 성격이다. 이는 금융 기관에 이자를 내야 하는 악성 채무가 아니라 향후 무기를 제작해 인도하면 고스란히 매출로 치환되는 확정된 미래 수익이어서 '착한 부채'로 통한다. 오히려 재무적으로 면밀히 살펴야 할 부분은 이자발생 부채의 증가다. 유동 차입금 8629억원과 비유동 차입금 5931억 원을 합친 실질적 차입금 규모는 약 1조4560억원으로 전년 말 8588억 원 대비 급격히 늘었다. 다만, 1분기 금융 원가 약 91억원 대비 영업이익 규모를 감안할 때 이자 보상 배율은 약 18배에 달해 채무 상환 능력 자체에는 여전히 파란 불이 켜져 있다는 분석이다. ◇이익 났는데 현금은 -5884억 원 이번 1분기 보고서에서 시장이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지점은 바로 '현금 흐름표'다. LIG D&A는 135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업활동 현금 흐름은 마이너스(-) 5884억원이라는 막대한 순유출을 기록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45억원가량 악화됐다. 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역시 작년 말 기준 1252억원에서 올 1분기 말 150억원으로 급감했다. 돈을 쓸어 담고 있다는데 현금 창고가 빈 이유는 소위 '흑자기업의 돈맥경화' 현상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무기를 생산하며 발생한 '운전 자본(Working Capital)의 증가'다. 작년 말 재무 상태표의 '유동 계약 자산' 계정에는 1조7068억원이 기록돼 있는데 올 1분기 말엔 1조5637억원으로 3개월 만에 4930억원이나 늘었다. 방산업체는 투입된 원가에 비례해 수익을 인식하는 투입법을 쓴다. 계약자산이란 회사가 원자재를 사고 공장을 돌려 회계상 매출로는 올렸지만 아직 발주처와 약정한 청구 마일스톤에 도달하지 못해 대금을 받지 못한 '미청구 공사대금'을 뜻한다. 다시 말해 무기를 만들기 위해 부품값과 인건비로 현금은 먼저 쏟아붓고 있는데 정작 대금 수금은 나중에 이루어지는 시차 때문에 현금 흐름이 꼬인 것이다. 실제로 영업 현금 흐름 세부내역을 보면 '매출 채권 및 계약 자산의 증가'로 무려 3957억원의 현금이 장부에 묶였고, 협력사 결제 등으로 '매입채무'가 1733억원 줄어들며 현금 유출을 가속화했다. ◇외부 수혈로 지은 공장과 美 진출…25조원 잔고가 쥔 '빅 픽처' 영업에서 묶인 막대한 운전자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LIG D&A는 대규모 외부자금 조달 카드를 꺼내 들었다. 1분기 재무활동 현금 흐름은 5842억원이다. 단기차입금을 2662억원 늘려 급한 불을 끄고, 지난 2월에는 공모시장에서 3391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 대규모 장기 실탄을 확보했다. 이렇게 끌어모은 빚은 미래를 향한 천문학적 자본 투자의 밑거름이다. 1분기 투자 활동 현금 흐름은 -1066억원으로, 구미 퓨처 파크2 등 생산시설 인프라 선행 확보(총 예상 4236억원)와 김천 2공장 유도 무기 조립장 구축(총 예상 1126억원) 등 K-방산 르네상스를 소화하기 위한 굵직한 설비투자(CapEx)가 진행 중이다. 글로벌 지배구조 개편도 눈여겨봐야 한다. 2024년 인수한 미국 사족보행 로봇 기업 고스트 로보틱스(Ghost Robotics)를 품은 데 이어 올 2월에는 아예 미국 현지 지배회사 격인 'LIG 디펜스아메리카스'와 'LIG 디펜스U.S.'를 잇달아 100% 자회사로 신규 설립했다. 우주항공과 융합된 첨단 무기체계를 들고 세계 1위 방산시장인 미국 본토의 심장부로 진격하겠다는 강력한 포석이다. 다만, 고스트 로보틱스 인수 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FI)에게 동반 매각청구권 등을 부여하며 발행한 교환사채(EB)와 관련해 61억원의 파생상품 부채가 계상돼 있는 점은 향후 고스트 로보틱스의 상장(IPO) 여부와 연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필요로 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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