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부의 쏠림의 비극

프랑스 고교생들의 시위는 교육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질문으로 끌어냈다. 교사와 학부모, 대학생이 합류했고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항의로 번졌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교육 여건과 긴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거리에서 울려 퍼진 질문은 하나였다. 이토록 부유한 사회에서 왜 다수의 삶은 갈수록 궁색해지는가. 학생들이 요구한 것은 특혜가 아니다. 교사가 제때 수업하고, 교실이 지나치게 붐비지 않으며, 학교가 안전하고 위생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간호사와 사회복지 인력이 부족하고 대학 진학 배정 체계가 불공정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공부하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정작 공부할 조건은 마련하지 않는 모순에 학생들은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요구 앞에서 장부를 펼쳐 보이며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과 의료, 돌봄에 쓸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10월 17일자 칼럼에서 이 논리를 반박했다. “프랑스가 이토록 부유했던 적은 없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오직 분배의 문제다." 피케티에 따르면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1970년 국내총생산의 20%에서 오늘날 약 120%로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민간자산은 국내총생산의 300%에서 600%로 더 크게 불어났다. 정부는 부채를 이유로 공공투자에 여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회에 축적된 부가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민간자산이 늘었다고 정부 금고가 저절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집과 주식의 평가액을 당장 학교 운영비로 쓸 수도 없다. 하지만 사적으로 축적된 부에 얼마만큼 세금을 부과하고, 그 재원을 공동체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지는 정치가 결정할 문제다. 이 선택을 미룬 채 “돈이 없다"고만 한다면, 정책의 책임을 피하고 긴축을 불가피한 자연현상처럼 보이게 만든다. 부유층에 세금을 거두는 대신 그들에게 돈을 빌리면 국가는 채무자가 되고 자산가는 채권자가 된다. 국가는 이자를 지급하고, 그 재원에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비롯한 시민의 세금도 들어간다. 국채 보유자는 연기금과 금융기관, 해외 투자자 등으로 다양하므로 이자가 모두 부유층의 수익으로 돌아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누구에게 얼마를 과세하고 얼마를 빌릴 것인가는 분배의 핵심 문제다. 부채 총액만 앞세우면 시민들은 자신이 누리지 못한 풍요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국가부채가 통치의 언어가 되면 교사 충원과 병상 확대, 돌봄 인력의 처우 개선은 철없는 요구로 밀려난다.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지는 묻지 않은 채 누구의 몫을 줄일지만 논의한다. 긴축은 회계의 형식을 띠지만, 실은 사회가 감당할 희생의 순서를 정하는 정치다. 공공서비스가 줄어든 자리는 구매력이 대신한다. 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부모는 학원을 찾고, 병원 대기가 길어지면 돈을 더 내고 빨리 치료받을 방법을 찾는다. 여유 있는 사람은 공동의 체계에서 빠져나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빠진 조건을 견딘다. 각자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수록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의 능력은 약해진다. 한국의 교육에서도 이 과정은 낯설지 않다.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할 때 어떤 가정은 공교육의 개선을 요구하지만, 다른 가정은 더 비싼 과외와 유명 학원을 찾는다. 공교육의 결핍은 사교육을 살 수 있는 집에 경쟁의 기회가 된다. 부모의 지갑이 만든 격차는 아이의 능력과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공공서비스는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가 아니다. 가족의 재산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결정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마련한 기반이다. 그 기반이 약해지면 불평등은 통장 잔액의 차이를 넘어 누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가의 차이로 번진다. 교육의 실패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시위 현장의 일부 폭력만 부각하면 거리로 나온 다수의 요구는 지워진다. 프랑스에서는 시위 참가자의 폭력과 함께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도 논란이 됐다. 질서를 말하려면 국가가 행사하는 힘도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 깨진 유리창은 눈에 띄지만, 교사 없이 지나간 학기와 치료를 미룬 병, 돌봄 때문에 포기한 일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쇠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의 가능성을 깎아낸다. 거리에 분노가 드러났을 때는 그 손실이 이미 쌓인 뒤다. 전후 프랑스의 경험은 재건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생각하게 한다. 1945년 프랑스는 전쟁으로 파괴되고 공공부채도 컸지만, 거액 자산에 부담을 지우는 국민연대세를 도입했다. 당시보다 부가 훨씬 커진 오늘, 먼저 해야 할 일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를 공동의 필요에 어떻게 쓸지 묻는 것이다. 부의 쏠림이 낳는 가장 깊은 비극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책임질 이유를 잃어간다는 데 있다. 부유한 사람은 공동의 학교와 병원이 필요 없다고 여기고, 가난한 사람은 공동체가 자신을 버렸다고 느낀다. 그 사이에서 국가는 모두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인내를 요구받는 사람과 풍요를 누리는 사람이 계속 다르다면, 그 말은 얼마나 오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bienns@ekn.kr

트럼프 대패에 美 대선 시계 빨라진다…‘포스트 트럼프’ 누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간선거 참패로 미국 정치권의 차기 권력 경쟁이 예상보다 일찍 막을 올렸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 이후 당을 이끌 후계 구도가, 민주당에서는 정권 탈환을 위한 차기 주자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트럼프 시대 이후를 준비하는 '포스트 트럼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탈환하는 압승을 거뒀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최소 7석을 내주고 하원에서도 대규모 의석을 잃는 등 참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고물가, 이란 전쟁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선거 결과에 반영됐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원한 공화당 후보들도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 그의 당내 영향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공화당에서는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된다. 당초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게 꼽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확인되면서 트럼프와의 차별화가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을 옹호해 온 만큼 책임론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루비오 장관은 밴스 부통령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존재감을 쌓아온 데다 행정부 내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고 있어 공화당 내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밴스 부통령의 출마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당내 역학 구도에 따라 독자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 등도 잠재적 경쟁자로 꼽힌다. ◇ 민주당 당내 노선 갈등이 숙제 민주당에서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대표적인 차기 주자로 거론된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등을 강하게 비판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샤피로 주지사는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와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 존 오소프 조지아주 상원의원 등도 잠재적 후보군으로 꼽힌다. 다만 민주당 역시 과제가 적지 않다. 이번 승리가 민주당 자체의 지지 기반 확대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 따른 반사이익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 중도·진보 진영 간 노선 갈등도 차기 대선까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번 중간선거는 단순한 의회 권력 교체를 넘어 미국 정치의 차기 주도권 경쟁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2년 남았지만, 공화당은 트럼프 이후의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하고 민주당은 반트럼프 정서를 실제 정권교체로 연결할 인물을 찾아야 한다. 결국 2028년 대선의 관전 포인트는 양당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탈트럼프'의 출구를 마련하느냐가 될 전망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바이낸스 해킹’ 배후 지목된 北 김여정의 입장은

북한이 바이낸스 해킹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데 대해 거듭 반발하면서 미국에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대화 자체가 북한의 국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했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4일 담화를 통해 “평화 수호를 위한 선택지에는 분명 대화가 포함돼 있지만 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국가이익과 반드시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대화에만 매달리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부장은 “지금 미국이 지속적으로 발신해오는 우리 국가에 대한 적대적 신호는 우리로 하여금 미국이라는 실체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재고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 해킹 사건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연결 지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바이낸스 해킹 사건을 그 어떤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사고나 고립된 사안으로 보지 않으며 워싱턴의 변함없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연장선에서 고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악용해 모종의 정략적 수익을 얻으려던 미국의 악의적 기도는 정치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을 향해 적대시 정책 폐기를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김 부장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가 모든 문제 해결의 대전제이며 기본 열쇠라는 데 대해 한두 번만 밝히지 않았다"며 “미국의 이번 행위가 역행성 행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화 제의와 실제 대북 정책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그는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대결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며 평화에 대해 논하지만 전쟁연습과 군사동맹 강화를 무엇보다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주권과 권익에 대한 존중을 회피하는 비신뢰적이고 적대적인 사람들과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명백한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향후 강경 대응 가능성도 내비쳤다. 김 부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 실행에서 새로운 기록들이 세워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의 반사적 대응에서도 새로운 기록들이 창조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바이낸스 해킹 사태를 둘러싼 김 부장 명의의 담화는 지난 2일에 이어 사흘 사이 두 차례 발표됐다. 앞선 담화에서도 김 부장은 미국의 주장을 “정치적 도발"이자 “황당무계한 낭설"이라고 일축하고, 미국의 적대적 태도를 여러 측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이 최고위급 인사의 담화를 잇달아 내놓은 것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해킹 배후 공방을 넘어 대미 압박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대외 관계를 총괄하는 김 부장이 직접 대화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미 간 대화의 가능성 자체는 열어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바이낸스 해킹의 배후가 북한이라면 “북한과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문제 제기에 북한이 반발하면서도 대화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이번 사태가 북미 간 접촉의 계기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EE칼럼] 잠기는 섬, 솟아나는 섬

한쪽에서는 섬이 잠기고, 다른 쪽에서는 섬이 솟아난다. 남태평양 투발루와 카스피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새 섬은 땅이 융기한 게 아니라 호수의 물이 빠져 바닥이 드러나며 생겼다. 물이 넘쳐도, 모자라도 삶의 터전은 사라진다. 지구 역사에 늘 있었던 일이지만, 문제는 너무 빨리 진행되고, 원인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투발루의 평균 해발고도는 불과 2m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이곳 해수면은 2023년까지 30년 새 약 15㎝ 상승했다. 이 낮은 나라에서 몇㎝의 차이는 침수의 빈도와 피해 정도를 크게 바꾼다. 투발루는 석호에서 모래를 퍼 올려 바다를 메우고 방어시설을 세우고 있다. 일련의 매립 사업이 마무리되면 주섬에 약 0.21㎢의 땅이 추가된다. 국토가 약 26㎢인 나라가 고향을 지키려고 벌이는 사투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금세기 말의 전망치보다 오늘 발을 디딜 땅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세계 최대 내륙 수역인 카스피해에서는 거꾸로 물이 줄었다. 카자흐스탄 관할 수역의 수위는 1996~2025년 약 2.45m 낮아졌다. 바다로 나가는 물길이 없는 이곳에서는 기온 상승에 따른 증발 증가에 댐과 취수로 인한 유입량 변화까지 겹친다. 수심이 대체로 3~6m인 북부 연안에서는 조금만 물이 줄어도 해안선이 멀리 후퇴한다. 항만과 어업의 기반이 흔들리고 습지가 줄어든다. 바닷물의 열팽창과 육상 얼음의 융해로 해수면이 오르는 대양과는 조건이 다르다. 같은 온난화가 지형과 물의 순환에 따라 정반대의 풍경을 만든다. 카스피물범의 사정은 땅이 늘어난다고 살 곳이 늘어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2021년 수천 마리가 모였던 섬은 이후 육지와 연결됐다. 섬을 둘러싸고 사람의 접근을 막아주던 물의 울타리가 사라진 것이다. 쉴 곳을 잃은 물범은 더 많은 어업과 선박, 석유·가스 사업에 노출된다. 새끼를 낳을 겨울 얼음마저 불안정해진다. 인간이 지도 위에서 새 땅을 발견하는 동안 물범은 제 집을 잃는다. 근본적인 해법은 온실가스 감축이다. 그러나 배출을 줄인다고 내일 당장 수면이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바다에 축적된 열과 빙상의 느린 반응 때문에 해수면 상승은 오래 이어진다. 감축의 효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살아야 하므로 적응을 함께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투발루의 해안 방어와 안전한 거주지 확보, 카스피해 유역의 물 사용 조정과 물범 피난처 보호가 모두 시급하다. 다만 방조제와 매립으로 커지는 위험을 감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적응은 감축을 미루는 구실이 될 수 없고, 감축 약속도 당장의 생존을 대신할 수 없다. 이 생존에는 돈과 권력이 필요하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앞칸 승객들이 호사를 누리는 동안 꼬리칸 사람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딘다. 같은 열차에 탔다고 같은 재난을 사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책임이 없는 물범, 배출에 기여한 몫이 작은 태평양 빈국이 먼저 삶의 자리를 빼앗기는 현실은 그 장면을 닮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지킬 자원과 결정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사회가 감축의 속도를 흥정하는 사이, 협상력이 약한 이들은 살아남을 비용부터 치른다. 그러므로 적응을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주문으로 남겨두면 안 된다.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부를 축적한 나라들이 감축을 서두르고 취약국의 적응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적응 지원금을 내고 화석연료 사업을 계속 늘린다면, 한 손으로 방조제를 쌓으며 다른 손으로 물을 밀어 넣는 셈이다. 기후협상에 대표를 보낼 수조차 없는 생물들의 서식지도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방조제의 높이만큼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누가 보호받느냐다. 투발루와 물범에게 함께 버티자고 하면서 앞칸의 생활을 고집한다면, 지키려는 것은 지구인가, 특권인가. bienns@ekn.kr

김정은 北 국무위원장 24일 전격 방중…건재함 과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1년여 만에 전격 방중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도착했다. 해당 매체는 “김 위원장의 방중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북미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가운데 선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며 “최근 사망설이 돌기도 한 김 위원장이 방중길에 올라 건재를 과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단둥의 일부 지역에서 이날 엄격한 교통 통제가 실시됐으며, 이 지역의 호텔 숙박 예약이 불가능해진 상태라고 보도했다. 오는 25일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이 북한에 지원군을 보내 참전한 지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신압록강대교는 북중 최대 교역 거점인 단둥과 평안북도 신의주를 잇는 왕복 4차로·총 길이 3026m 교량이다. 지난 2014년 완공됐지만 북한 측 연결도로와 통관시설 미비 등의 이유로 개통이 미뤄지다 지난 15일 공식 개통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美, 중동 4개국 대사관 인력 감축…추가 공격 가능성은 부인

미국 정부가 요르단·레바논·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주재 대사관 인력을 감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미국인 대상 공격 위협이 커졌다는 정보가 공개된 가운데,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미국·이스라엘의 추가 대이란 공격을 위한 사전 조치라는 해석을 부인했다. 23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제이 클레이턴 미 국가정보국장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이란이 미국인 인력을 겨냥하려는 노력을 상당히 강화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이란이 미국 시민을 상대로 꾸미는 치명적 음모는 중동과 일부 다른 국가 모두에서 상당히 진전된 단계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루비오 장관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직원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의 기밀 등급을 낮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한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클레이턴 국장이 '치명적 음모'와 관련해 구체적인 표적이나 중동 바깥의 대상국, 계획의 성격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 계획이 '이란의 암살 음모'라고 평가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21일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사관의 비필수 인력과 그 가족에게 출국을 명령했다. 다만 인력을 감축 중인 요르단·레바논·카타르·UAE 주재 대사관 직원들은 아직 출국 명령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국가는 이번 이란 전쟁에서 이란의 집중 공습을 받았거나, 레바논처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격화한 지역이다. AP통신은 미국 관리들이 대사관 인력 감축이 미국·이스라엘의 추가 대이란 공격 가능성과 관련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고 전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언론의 확신이 만든 거짓의 시대

“신문에 나왔으니 진실인가? 여러분이 보도했다고 진실은 아니다." 매체의 본질·실체의 정곡을 찔렀다. 늘 그들을 상대하는 고위 관료가. 최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물었다: “국무부는 외국 정부들에게 마차도(노벨평화상 수상)의 베네수엘라 귀국을 돕지 말라고 계속 요청할 건가?" “누가 그러던가? “널리 보도됐다" “누가 널리 보도했나?" “'월스트리트저널'이다". 루비오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거짓 기사들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누가 흘려준 것 그대로 쓰고는, 진실을 입증한 것처럼 질문한다. 거짓을 가지고 묻는데 어떻게 답변하나. 질문 전제가 틀렸다." '진짜 보수주의자' 루비오는 좌파 매체의 목표가 오로지 보수우파 증오·타도임을 잘 안다. 진실보도를 하지 않는 그들과 상원의원 때부터 싸우는데 이골 났다. 이제 유력 대통령 후보라 눈치보고 몸 사릴 법도 하다. 그러나 그들을 믿지 않으니 거침없이 면박했다. 한국의 '가짜 보수주의자'들은 루비오 정공법을 흉내도 못 낼 듯. 혀끝에 칼만 단, 내용 없는 독설에 앞서 그들은 좌파의 본질·실체를 정면 공박하는 용기부터 배워야 한다. 일론 머스크는 “미국 매체 97%가 좌파"라 했다. 허투루 그러지 않았다. 선거 숫자가 증명. 1964년 대선. 매체 종사자 94%가 민주당 존슨 투표. 공화당 골드워터 6%. 2016년 대선. 이들의 기부금은 힐러리 96%. 트럼프 4%.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머스크는 좌파의 매체 장악을 그냥 두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했다. 평가액보다 38% 더 비싼 44억 달러에 '트위터'를 인수, 'X'로 바꾼 이유. '보수주의 혁명 선봉장'이었다. 객관·공정·정확 보도. 희망일 뿐이다. 매체는 자신들 이념만을 따른다. 중립성·신뢰성·책임감을 스스로 던져버렸다. 신문 발상지 영국과 미국 등 세계 모든 매체가 그렇다. 매체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 혁명전사'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급진 좌파 목표를 완벽하게 따르는 '문화혁명 선전원·집행자.' 마르크스주의를 “진보"란 말로 위장한 채, 이견을 이단으로 취급하는 그들 보도는 좌파 교리교육이다. 좌편향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행태는 왜곡·조작·날조. 러-우 전쟁 ·이란전쟁·미국정치 등의 가짜보도 실상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그래서 '뉴욕Times'-'뉴욕Slimes(쓰레기),' '월스트리트Journal'-'월스트리트Urinal(소변기), 'NBC'-'Nothing But Crap(오직 엉터리)'라 비판받는다. 그들은 소련 옹호에 이어 늘 중국도 두둔한다. 뉴욕타임스는 모택동을 “낭만의 민중 운동가"로 미화. “코로나 우한 봉쇄 방역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극찬. CNN도 중국 통계만 인용, 중국식 통제를 칭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은 적이 아니다"고 했다. 친 공산주의 전통 탓에,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와 지역 강 이름을 따 타임즈-'허드슨 프라우다,' 포스트-'포토맥 프라우다'라 불린다. AP는 'American 프라우다,' CNN은 'Xi-NN,' 'Communist News Network.' 그들은 가짜보도도 반복하면 결국 다들 믿게 된다고 확신한다. 한국은 미국 등의 좌파 매체를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좌편향 정보·지식에 지배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깊게 물들어 있다. “무지는 최적의 사회주의 온상." 좌파 매체를 분별하지 못하고, 가짜 보수주의자를 솎아내지 못하면 한국은 사회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

고물가·주택난에 유럽 전역 ‘분노의 시위’…프랑스 55만명 거리로

고물가와 주거비 급등, 교육환경 악화에 대한 불만이 유럽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생활비와 연료 가격 상승에 반발한 시민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2018년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노란조끼' 운동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벨기에·포르투갈·스페인 등에서도 주택난과 임금 정체,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집회가 잇따르면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18일 AFP통신과 AP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마르세유·리옹·툴루즈·낭트·스트라스부르 등 주요 도시에서 노동자·학생·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내무부는 이날 오후 7시 기준 전국 110곳에서 행진이 진행됐으며, 파리 11만명을 포함해 총 55만명이 참가했다고 집계했다. 반면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전국 1750곳에서 집회와 시위가 열렸고 참가자가 80만명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1일부터 이어진 고등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가 출발점이다. 학교 시설과 교육 여건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고물가와 연료비 급등, 임금 정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합류하면서 시위 규모가 급격히 확대됐다. 특히 2018년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던 '노란조끼' 운동의 일부 핵심 인사들까지 시위에 가세하면서 대규모 반정부 운동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노란조끼 운동은 2018년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 조치에 반발해 시작됐다. 이후 생활비 부담과 경제적 불평등,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결합하면서 수개월간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생활비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시민들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에 따른 연료비 급등과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공공서비스가 악화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학생과 노동자, 일반 시민들이 공동 전선을 형성하는 모습이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잇따랐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후드와 마스크를 착용한 일부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폭죽 등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동원해 해산에 나섰다. 도심 주요 도로가 통제되고 지하철역 여러 곳이 폐쇄되면서 시민들의 이동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파리 서부에서는 보수 성향 방송사 CNews 등 언론사 시설을 공격한 시위대 약 20명이 체포됐다. 파리에서만 약 100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대가 도심 상점과 경찰서를 파손했으며,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시청 건물에 진입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프랑스 제3의 도시 리옹에서는 시위대가 던진 폭죽 등으로 관광안내소에 화재가 발생했다. 남서부 리모주에서는 시청 건물이 시위대의 공격으로 불길에 휩싸이는 등 공공시설을 겨냥한 공격도 이어졌다. 프랑스 전역에서 발생한 충돌로 경찰관 약 150명이 다치고 시위 참가자 1200여명이 체포된 것으로 보도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시위의 권리를 존중한다면서도 폭력과 공공시설 파괴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공기물을 파손하고 상점과 시청 등을 공격한 행위자들을 기소하고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반면 CGT는 정부에 시위 진압 중단과 사회적 요구에 대한 대응을 촉구했다. 노동계는 임금과 연금 인상, 물가 안정, 공공서비스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시위를 둘러싼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시위에 지지를 표명했다. 정부 측은 일부 정치세력이 학생들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내년 프랑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고물가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가 주요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이태원 참사 판박이’ 인도 힌두교 축제 최소 19명 사망

인도 동부의 힌두교 축제 행사장에서 좁은 통로로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최소 19명이 목숨을 잃는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사전 인파 관리 실패와 현장 통제 부재가 참극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국의 10·29 이태원 참사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에 마련된 힌두교 축제 '두르가 푸자'의 임시 행사장 밖에서 군중이 비를 피하기 위해 몰리며 도미노처럼 바닥에 넘어졌다. 이 사고로 7세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9명이 숨지고 25명 정도가 다쳤다. 현지 경찰 고위 관계자는 밤사이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안내방송과 함께 현장 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현장 CCTV 영상을 확보해 당국의 군중 통제 조치가 미흡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이번 참사는 2022년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참사와 발생 구조가 유사하다. 두 사고 모두 수많은 인파가 한정된 공간에 밀집한 상태에서, 경사가 있거나 병목이 발생하는 좁은 통로로 인파가 쏠려 군중 유체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사고 직후 SNS를 통해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부상자들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했다. 아울러 서벵골주 정부가 피해 가족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에서는 대규모 종교행사 때마다 부실한 안전관리와 미흡한 통제로 인해 인명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힌두교 축제 쿰브 멜라 행사장 등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바 있다. 인파 밀집 행사에서 특정 지점으로 군중이 갑작스럽게 몰릴 때 이를 분산할 사전 가이드라인이나 현장 통제 인력이 부재할 경우 대형 참사로 직결될 수 있다. 인도 정부를 향한 부실한 안전관리 규탄과 현장 통제 실패에 대한 비판 여론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EE칼럼] 파키스탄이 K-GX에 던지는 질문

에너지 전환은 정부의 목표 발표가 아니라 개인의 계산기에서 시작된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실린 와지드 이슬람(Wajid Islam) 등의 연구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태양광 발전량은 2019년 2.6TWh에서 2025년 36.6TWh로 14배 늘어 전체 발전량의 22.5%에 이르렀다. 2026년 1분기에는 12.1TWh로 전체의 32.3%를 차지해 석탄·가스·원자력·수력을 제치고 단일 최대 발전원이 됐다. 이 변화를 이끈 것은 국가 태양광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수백만 가구와 기업이 저마다 패널을 사들인 개별 결정이 쌓여 만든 결과다. 동력은 경제성이었다. 파키스탄의 평균 전기요금은 2022 회계연도 약 16.9루피/kWh에서 2025 회계연도 35.5루피/kWh로 3년 만에 두 배 이상 올랐다. 여기에 전력 부족으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하루 8~10시간, 길게는 12~15시간 이상 정전이 이어졌다. 모듈 가격이 급락하면서 옥상 태양광은 2~4년 안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투자가 됐다. 물론 한국이 요금 폭등과 정전을 겪을 우려는 없다. 그러나 설치자가 스스로 움직이는 조건이 '확실한 경제성'이라는 점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은 정부보다 빨랐다. 2020년 이후 2026년 8월까지 파키스탄이 수입한 중국산 모듈은 56GW가 넘지만, 엠버(Ember)·EI(Energy Institute) 등이 집계한 2025년 말 누적 설치 용량은 3.7GW에 그쳤다. 수입 규모가 통계상 용량의 약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상당 부분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채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전력 회사는 이런 속도에 대비하지 못했다. 자금력이 있는 가구와 기업이 태양광을 도입해 전력망을 이탈하자 전력 회사는 수익 감소와 고정비 부담 가중, 이른바 '유틸리티 데스 스파이럴(Utility Death Spiral)'에 직면했다. 잉여 전력을 소매 요금으로 보상하는 순계량(Net Metering)이 태양광을 설치하니 않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문제로 불거졌고, 파키스탄 당국은 2025년 12월 신규 연결부터 순청구(Net Billing)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산하 PVPS의 2026년 보고서는 소규모 분산형 태양광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025년 신규 설치 상위 10개국 중 6개국에서 분산형이 절반을 넘었다. 파키스탄 98.6%, 프랑스 67.6%, 브라질 65.8%, 이탈리아 59.7%, 일본 59.3%, 독일 52.3%다. 한국은 신규 설치 13위에 머물렀고 분산형 비중은 23.3%, 중앙집중형이 76.7%다. 국토가 좁은 데다 산지·농지 규제와 주민·계통 수용성 문제가 겹친 한국에서 대규모 태양광 모델은 입지 갈등과 인허가 지연에 부딪힌다. 실제로 한국의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2025년 8월까지 2.47GW에서 2026년 8월까지 2.38GW로 약 3.6% 줄었다. 새 정부 출범 후 보급 확대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현장의 수치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정책 선언이 시장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출범 16개월 만에 설계를 끝내고 집행 단계에 들어섰다.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53~61%, 배출권 4기 할당과 이를 뒷받침할 법률 대부분이 9월까지 확정됐고, 이를 묶는 총괄 전략인 K-GX(10년 1,000조 원)를 10월 7일 발표했다. 아쉬운 점은 태양광 정책의 무게가 상당 부분 대규모 사업, 특히 공기업 중심의 대형 프로젝트에 실려 있다는 점이다. 경쟁입찰은 규모의 경제를 가진 대형 사업자에게 유리하고, 소규모 사업자는 입찰 부담과 계통 접속 비용 등을 떠안는다. 투자 회수 기간이 불투명한 사업에 소규모 사업자가 나설 유인은 줄어든다. 파키스탄에서 시장을 연 것이 개인의 경제성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반대로 소규모 사업자의 경제성이 제도 안에서 약해지고 있다. 해법은 소규모 사업자의 경제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하 설비에는 경쟁입찰 대신 장기 고정가격 계약 같은 예측 가능한 수익 구조를 제공하고, 소비지와 가까운 분산형 설비는 계통 접속 순서와 비용에서 우대해야 한다. 시간대별 보상과 자가소비, 저장 장치 연계를 처음부터 제도 설계에 넣어야 한다. 소규모 시민참여 전용 물량을 확보하고 입찰 부담을 덜어야 하며, 공급 의무자의 보급 의무 이행 인정 범위도 직접 건설과 지분투자에 한정하지 말고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와의 PPA까지 넓혀야 한다. 공기업은 마중물에 그치고, 소규모 주택, 시민참여 협동조합 등이 공공 지붕과 유휴 공간을 활용하고 수익이 지역에 돌아가게 해야 한다. K-GX의 재생에너지 목표는 경제성과 함께 비용 분담의 설계가 갖춰져야 달성할 수 있다. 시장이 커진 뒤에는 고치기 어렵다. 파키스탄은 K-GX에 묻는다. 소규모 태양광의 경제성을 확보했는가? 분산형 비중이 23.3%에서 일본이나 독일 수준으로 올라설 때 K-GX는 구호에서 현실이 될 것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