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익숙해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의 소중함

“연로하신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에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도시락이 아니라 어머니가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에 행복해야 합니다." 최근 퇴근길에 우연히 시청한 유튜브에서 들은 대화다. 늘 함께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해 감사해야 함을 가르쳐준 죽비였다. 우리는 오랜 기간 값싼 전기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나를 새삼 깨닫는다.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격히 올랐다. 2010년까지만 해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 전기요금의 60% 수준에 불과했으나, 2020년 이후 급상승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83원으로, 주택용보다 비싸졌다. 전기요금 인상은 '그리드플래이션(Gridflation)'을 유발한다. 이는 전기요금 등 에너지 요금 상승이 다른 상품들의 가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3.6%로,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고, 외식 물가도 2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리드플래이션'은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높은 에너지 비용은 기업의 운영 경비를 증가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지난 3월 연간 1조 원 이상의 전기요금을 내던 현대제철이 제철소를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산업용 전기 요금이 10% 상승하면, 설비투자는 1.41% 감소하고 GDP는 0.18% 줄어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값싼 발전원 중 하나인 원전을 자체 설계‧건설‧운영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이 다가오면서 탈원전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이를 위한 전력망 확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실제 그렇게 됐을 때, 대다수 국민과 기업이 얼마나 큰 부담을 져야 하는지를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우리가 값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원전이다. 1978년부터 이어온 원전 건설 덕분에 품질 좋은 전기를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전 공급망을 구축했고 우수한 인력을 양성했다. 이들은 국내 원전을 설계‧건설‧운영하는 것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원전을 개발해 냈다. 그 결과, 연구로와 상용 원전을 수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지난달에는 미국에 차세대연구로 설계를 수출하였다. 66년 전 우리나라에 연구로를 공급하고 기술을 전수했던, 원전 기술의 종주국 미국에 역수출하는 쾌거였다. 그러나 원전 산업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지나치게 늘고 있다. 일부는 우리 원전 산업을 폄훼하고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들의 주장대로 원전 산업이 붕괴한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3월 서울에서 열린 한-영 청정에너지 워크숍에서 만난 영국 원자력 전문가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재 영국은 원자력 전공 교수 인력이 부족해 대학별로 독립적인 원자력공학과를 운영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에 대학별로 분산된 교수진을 모아 온라인 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인력 양성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1956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칼더홀(Calder Hall) 원전을 운영한 세계 최고의 원자력 기술 강국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시즈웰 B 원전 운영을 시작한 1995년부터 힝클리 포인트 C 원전 건설을 시작한 2017년까지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원전산업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했다. 결국 힝클리 포인트 C 원전 건설은 프랑스 기업에 맡겨야 했고, 원자력 전공을 가르칠 교수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정치의 과도한 개입으로 원전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킨다면. 우리나라도 결국 영국과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은 원전 문제를 단순히 '줄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활성화하여 국가 전력 공급에 더욱 기여하게 할 것인지', '세계 원전 시장에 어떻게 더 많이 진출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원전 산업이 살아야, 우리가 지금까지 누려온 값싼 고품질 전기의 혜택을 미래에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주현

[EE칼럼] 대선 공약의 불편한 진실: 폐플라스틱은 ‘도시 유전(油田)’인데, 왜 금맥을 끊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플라스틱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국가 차원의 탈(脫)플라스틱 로드맵 수립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다회용 용기 보급을 확대하며, 궁극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제로(0)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플라스틱 제로'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 선진국 도약을 위한 친환경 공약의 하나로 등장했다. 하지만, 공약 의도와 달리, 해당 정책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진정한 친환경 정책은 경제성과 사용자 편의성을 모두 고려할 때 지속가능 해진다. 환경을 생각한 정책이라도 소비자와 산업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용을 수반하거나 대체물의 환경효과가 불투명하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이상적이고 강경한 탈레반 식의 환경 우선주의가 얼마나 일반 국민들의 원망을 들었는지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러니 심지어 정치 이념화되면서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보수층 유권자 전체가 묻지마 반대 식으로 친환경정책 자체에 등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낳았다. 그러니 결국엔 집권하더라도 환경부 장관은 전문성이 없더라도 경제적 균형감각이 있는 외부 수혈만 있는 게 아닌가. 국가 통수권자 입장에서 표 깎아먹는 환경 탈레반을 부처 장관으로 임명하기엔 당연히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국무회의에서도 다른 장관들과는 달리 항상 분위기와 겉도는 보고만 할테고 안 봐도 뻔하다. 아무튼 본 사안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대안 소재의 실효성이다. 예를 들어 일회용 플라스틱을 특수 코팅 종이로 대체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이러한 코팅지 역시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코팅 처리된 종이는 표면에 얇은 플라스틱 층(비닐류)을 입혀 방수성을 확보한 것으로, 재활용 공정에서 일반 종이와 함께 처리하기 어렵다. 실제 제지업계에 따르면 “종이류는 물에 젖으면 잘 녹아내리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종이에는 비닐 성분이 함유된 것"이라고 한다. 즉,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종이는 물에 잘 풀어지지 않아 종이를 재활용하기 위한 해리 공정(물에 불려 섬유질을 분리하는 단계)을 방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코팅지 대부분은 일반 종이처럼 재활용되지 못하고 선별 과정에서 걸러져 소각 처리되고 만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가정에서 배출되는 종이 폐기물 중 재활용이 불가능한 코팅지 등 혼합물의 비중이 약 6%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따라서 아예 재활용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플라스틱 제로' 정책 발표는 의외의 곳에서 즉각적인 파급 효과를 낳기도 했다. 공약 발표 직후 증권시장에서는 관련 업종으로 분류되는 일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2025년 4월 공약 공개 당일 세림B&G, 삼륭물산, 진영, 한국팩키지 등의 이른바 '탈플라스틱' 관련주들이 나란히 상한가를 기록했고, 에코플라스틱과 코오롱ENP 등도 15~22%대 급등을 보였다. 이들 기업은 생분해성 수지로 만든 필름을 생산하거나 플라스틱을 대체할 종이 카톤팩 등을 제조하는 업체들로 분류되어 테마주로 부각된 것이다.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 기대감에 기업과 투자자가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열기와 달리 정작 해당 정책의 환경적 타당성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코팅 종이 용기나 생분해 플라스틱 같은 대안 제품이 생산·폐기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이나 탄소발자국 면에서 기존 플라스틱보다 반드시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친환경 정책의 목표와 시장 기대 사이의 괴리가 드러난 셈인데, 이는 공약의 현실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이는 과거 환경부에서 추진했다가 미운오리 새끼가 되었던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금지 → 종이 빨대 전환'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종이 빨대는 생산·매립·소각 전 과정에서 플라스틱 빨대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5.5배 높고, 독성물질 배출도 더 많다 결론 나서, 정부 발표에 맞춰 설비 투자와 생산 준비를 해온 종이 빨대 제조사만 낭패를 본 사례가 생생하다. 한편 정책이 간과한 현실 중 하나는 기존 플라스틱 폐기물의 가치 재평가이다. 최근 폐플라스틱이 단순한 환경오염원이 아니라 유용한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열분해유 기술이란 폐플라스틱을 무산소 고온 환경에서 가열해 유증기를 만들고, 이를 응축하여 합성 오일을 추출하는 공정이다. 이렇게 얻은 열분해유는 성상에 따라 산업용 중유(벙커C유 등)나 경유로 활용되며, 추가 정제를 거치면 나프타 등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열분해유 기술은 흔히 '도시유전' 사업으로 불릴 정도이다. 실제로 폐플라스틱 1톤으로 약 0.7톤의 열분해유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석유 수입을 대체하고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양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경제성의 급격한 개선이다. 과거에는 생산 단가와 기술 제약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열분해유가, 최근 들어 국제 유가 상승과 기술 효율 향상을 배경으로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초기엔 판매단가가 낮아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정부의 지원과 탄소중립 정책 연계로 경제성이 확보되고 있다.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 대체 원료로 활용할 경우 탄소 배출 저감 실적으로 인정하는 방법론을 국내 최초로 승인하였는데,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열분해유 사용 시 탄소배출권 혜택을 얻거나 재활용 의무 이행 실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보조금, 세제 혜택 등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열분해유 산업의 경제적 채산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즉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한 열분해유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플라스틱 자체에 대한 인식도 '없애야 할 폐기물'에서 '돈이 되는 자원'으로 바뀌고 있다. 플라스틱의 자원화 가치가 부각되면서, 폐플라스틱을 둘러싼 산업계의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멘트업계와 재활용업계 간의 폐자원 확보 경쟁이다. 시멘트 공장이 폐플라스틱을 연료로 대량 소비하면서, 정작 재활용 업계에는 플라스틱 원료 공급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재활용·소각업계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마저 SRF로 몰려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지고 있다"며 시멘트 업계를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하고, 시멘트 업계는 “석탄 대신 폐기물을 연료로 쓰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순환경제"라고 반박하는 등 갈등도 표출되고 있다. 다시 말해, 폐플라스틱 확보 경쟁은 이제 소규모 재활용 업체와 시멘트 공장 간의 다툼을 넘어 정유·석유화학 대기업까지 참여하는 전방위적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플라스틱이 완전히 퇴출되기는 커녕 오히려 산업적 수요를 촉발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저감 역시 일방적인 사용 금지나 단순한 대체에 머물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대신 플라스틱의 순환경제를 구축하고, 신기술 투자로 폐플라스틱을 자원화하며, 소비자에게 편리한 재사용 시스템을 마련하는 접근이 실효성을 가질 것이다. 결국 환경 정책은 이상과 현실의 균형 위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지속가능성은 그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이 이러한 방향으로 보완되어 실행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우려를 넘어 실질적인 친환경 전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종민

[EE칼럼] 균열된 현실, 통합의 가능성: 종교적 지혜와 AI의 만남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우리는 지금, 분열된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늘어선 복도 앞에 서있다. 서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밀밭에서 가자지구의 골목까지 이어지는 있는 전장을 보여주고 남아시아에서는 핵보유국 간의 오래된 갈등이 재점화되면서 새로운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동쪽에는 미국의 트럼프 재집권 이후 배제의 정치가 심화되면서 불법이민자로 낙인 찍은 이들을 추방하고, 고율의 관세 부가 정책은 단순한 경제조치를 넘어서 '미국의 경제적 주권 회복'이라는 국가적 정체성 논쟁으로 연결되고 있다. 디지털 공간은 더욱 우려스럽다. 2023년 Pew Research Center 조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사용자의 62%가 편향된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두가지 편향된 정보 환경을 만든다. 자신이 동의하는 의견만 반복해서 듣게 되는 공명실(echo chamber)과 자신의 기존 성향에 맞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노출되는 정보 거품(filter bubble)을 만들어 같은 사건에 대해 완전히 다른 사실을 소비케 한다.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은 공유된 사실 기반 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의 섬에 고립되어, 생산적 대화와 사회적 합의 도출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세계적 분열의 흐름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상황도 성장률 저하, 가계소비 감소, 자영업자 폐업 급증과 같은 경제 불안으로 인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보수-진보의 진영과 MZ-베이비부머의 세대에서 가치 차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최근 의대 정원 문제에서 드러난 의사와 정부의 입장 차이와 같은 또 다른 사회적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난 6개월간 극심한 사회적 분열의 고통을 겪게한 정치적 혼란과 법적 기준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으로 드러난 민주주의 취약성이다. 계엄령 논란은 헌법 해석을 둘러싼 치열한 대립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락하였다. 그러나 대통령 권력 공백으로 인한 대행 체제의 역할과 기능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는 가운데, 특히 지난 5월초 대법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은 이례적으로 빠른 재판 진행과 함께 2심에서의 무죄 판결을 뒤집은 파기환송으로 법조문과 사실관계에 대해 상반된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오랜동안 존중해왔던 사법부의 법 해석 태도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는 '해석'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같은 가치, 같은 원칙, 같은 법문에 대해서도 상반된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적 해결책으로 AI의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해석'의 본질을 질문해 본다. 해석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기계적 행위가 아니다. 해석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우리가 텍스트를 들여다 볼 때,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법문을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객관적 진리를 발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가치관, 경험, 세계관을 투영하는 과정이다. 아이가 구름에서 다양한 형상을 보듯, 같은 법조문을 두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주관성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통합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해석이 절대적 진리가 아닌 하나의 관점임을 겸허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해석을 경청하고 다양한 시각을 통합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해석의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어떻게 포용하고 공존의 방식을 모색할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분열의 시대에 종교적 지혜는 통합적 해석을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성경의 '코이노니아(koinonia, 통공)' 개념은 단순한 집단적 연대가 아니라, 깊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성 속에서 하나 됨을 지향한다. 최근 새로 선출된 레오14세 교황(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이 강조한 '시노달리타스(함께 걸어감)' 정신 역시 교회가 대화와 포용으로 분열된 세상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개인적 이익을 위한 독단적인 판단이 아닌 공동체적 이해과 열린 소통의 가치를 강조한다. 법 해석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해석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더 높은 공익과 공동체의 화합을 향한 열린 대화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종교적 지혜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 기술인 AI 역시 사회적 분열을 치유하는 새로운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즉 AI는 가치, 원칙, 법문을 둘러싼 갈등과 단절의 영역에 중간에 서서, '해석의 조정자'로 작동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모으고 보여주기: AI 대시보드가 판결문·뉴스·여론을 자동으로 모아 진보·보수·전문가 시각을 한 화면에 나란히 띄운다.(예로써 “의대 정원 갈등에서 AI가 양측 주장 정리") 둘째, 사실 확인하기: 실시간 팩트체커가 각 주장에 판례·통계 링크를 달아 “근거 있는 말인지" 바로 알려 준다. 셋째, 대화 정리·중재하기: 회의나 공청회에서 AI 중재 시스템이 발언을 요약해 쟁점·공통 관심사·타협안을 화면에 정리한다. 넷째, 공존 스토리 만들기: AI 스토리 메이커가 갈등 서사를 재조립해 “서로 수용 가능한 합의문 초안"을 작성한다. 다섯째, 기록 투명화: 모든 프롬프트와 출처 및 결정 과정을 자동 로그로 공개해 시민이 언제든 AI 편향을 체크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AI가 신속한 정보처리와 다각적 관점을 제공하고, 인간이 지금 보다 높은 수준의 공익적 가치 판단과 책임을 맡는다면, 서로 다른 입장의 해석은 더 이상 분열의 거울이 아니라 공동체를 잇는 다리가 될 것이다. 김한성

[EE칼럼] 에너지와 AI/로봇은 상호 대체관계? 아니면 보완관계?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미국발 트럼프 정부의 관세(tariff) 폭탄선언들이 이어지면서 제조업의 기계화 및 자동화 투자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제조공장을 짓기로 한 기업들은 미국의 높은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크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AI 및 로봇으로 대표되는 첨단 자동화 설비를 들여 인건비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들 역시 높아진 원자재 가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높아진 인건비 및 원자재 비용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하여 너나 할 것 없이 기계화 및 자동화 투자에 나서고 있다. 기계화(mechanization) 및 자동화(automation)는 일부 내용이 다르지만 둘 다 제조 공정에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목표에서 진행된 변화이다. 또한 기계화 및 자동화는 제2차 및 제3차산업혁명의 중심 기술(core technology)이기도 하다. 제2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특징이 기계를 사용한 대량생산과 소비의 등장이며, 제3차산업혁명의 기반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있음을 생각해 보면 둘 간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화 및 자동화 투자는, 경제학 이론을 빌려 이야기하면, 자본의 투자를 늘려서 노동의 투입을 줄이는 형태, 즉, 자본의 투입을 통해 노동을 대체(代替)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기계화가 한창이던 제2차 산업혁명 시절 선진국에서 노동조합들이 대거 결성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한편,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20세기 말부터 일어난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이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에서 엄청난 양의 자본 투자가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반도체 제조업이 되겠다. 그러나 이때는 오히려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면서 신규 노동 수요를 증가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통신, 검색엔진, 게임, 온라인 거래 관련 산업들이 바로 그들이다. 즉, 경우별로 자본의 투입이 노동과 보완(補完)적인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 기계화와 자동화에 대한 투자가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나타나는 양상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본 유입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제조업 부문의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이 관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주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에너지는 어떨까? 전통적으로 자본이 추가로 투입되어 기계화 및 자동화가 진행되면 에너지사용량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에너지와 자본이 보완적인 관계를 보여온 것이다. 이는 에너지가 주로 제조업에 사용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도 발전소와 같은 기계와 시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최근 AI의 발달로 인하여 전력 사용량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도되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라고 보겠다. 로봇의 사용 증가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저감 활동을 위한 자본투자의 경우, 석탄 등의 화석연료 사용량은 자본투자와 대체 관계에 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에너지전환 및 에너지절약 투자의 효과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최근 자본 투자가 전통적인 제조업의 축소로 나타나고 있음은 에너지사용량의 감소를 의미하며, 향후 4차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인해 새로이 나타날 산업들이 과연 제조업만큼 에너지를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크게 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4차산업혁명에 맞추어 산업은 물론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산업은 아직도 제3차산업혁명 시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적자로 인하여 연구개발을 비롯한 신규 투자가 위축되어 있으며 정부의 간섭과 규제도 여전히 강하다. 그 덕분에 지난 21세기 25년 동안 국내 에너지기업의 국제적 경쟁력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번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투자 및 혁신정책을 도입하여야 하겠다. 선진국 에너지산업이 이미 활발히 인공지능을 적용한 신규 서비스를 창출하고 무인 로봇을 활용한 원가절감 투자를 진행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산업 혁신 측면에서도 할 일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자동화 투자의 물결에 국내 에너지산업이 또다시 뒤처지지 않으면 한다. 허은녕

[EE칼럼]희토류 전후방 밸류체인 구축해야 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통계에 따르면 2023년말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은 1억 1000만톤에 달한다. 하지만 중국, 브라질, 베트남, 러시아, 미국, 미얀마, 호주 등 극히 일부 국가에 93%가 몰려 있다. 이 중 40%에 달하는 4400만톤이 중국에 매장돼 있다. 중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희토류를 국가 전략 자원으로 지정하고 희토류 개발과 관련된 본격적 기술개발을 시작했다. 1992년 중국 주석 덩샤이핑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희토류가 중국의 전략적 자원임을 공식화 했다. 희토류는 글자 그대로 “희귀한 원소"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붙여졌으며, 희소금속의 한 종류이다. 희토류 원소란 주기율표에서 제3족에 해당하는 란타넘족(원소번호 57번 란타넘(La))부터 71번 루테튬(Lu)까지의 15개 원소와 이들과 화학적 특성이 유사한 21번 스칸튬(Sc), 39번 이트륨(Y) 등 2개 원소를 포함한 총 17개 원소를 총칭하는 말이다. “희토류"는 매우 희소량만 존재하는 물질로 오해를 받고 있지만 이름처럼 실제 존재량이 적은 희소자원은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가들은 환경적인 이유로 희토류 생산 시설을 폐기 했다가 최근 희토류가 자원 무기화 조짐이 벌어지자 광산 개발 및 채굴. 생산 가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환경적 문제는 희토류 채굴 후 추출. 분리 과정에서 사용하는 화학 약품 등 부산물로 희토류 1톤 추출 시 황산이 포함된 6300만 리터의 독성가스와 20만 리터의 산성 폐수, 1.4톤 가량의 방사성 물질 함유 폐수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는 대체재가 없어 다양한 산업에서 필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희토류는 첨단 전자기기, 미사일과 레이더 시스템 같은 첨단무기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필수 원료로 쓰인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2014년 보고서에서 희토류의 전략적 중요성을 크게 세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대체할 물질이 없다. 둘째, 재활용 비율이 현저히 낮다. 셋째, 소수의 국가만이 생산.공급한다는 점을 들어 희토류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 했다. UNCTAD는 세계 희토류 수요량의 90%가 중국의 생산으로 충족되기 때문에 국제 사회가 중국의 희토류 생산 및 산업 정책에 높은 민감성과 취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 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광산 개발과 가공 시설 확충 등 중국의 희토류 자원 무기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 실효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이 희토류 7종의 수출을 통제하기로 한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7종의 희토류는 AI 서버와 스마트폰 전원 공급 장치의 핵심 재료로도 쓰이며, 전 세계 공급량의 99%를 중국이 생산하고 있다. 중국의 조치는 세계 AI 반도체 공급망 속에서 희토류로 인한 부품 조달 문제가 생기면 우리 기업들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으로 수입된 희토류의 51% (수입액 기준)가 중국산이다. 만약 중국이 우리에게도 수출을 제한할 경우 당장 국내 전기차 와 반도체 업체는 큰 타격이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벗어 나려면 해외 희토류 개발에 나서야 한다. 한 때 우리도 희토류 사업에 성과가 있었다. 2010년 6월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는 포스코와 공동으로 희토 자성재료 업체인 중국 포두영신 희토 유한공사에 투자해 지분 60%(광물공사 29%, 포스코 31%)를 인수했다. 나머지 40%는 중국 포두영신이다. 중국 내 희토류가 가장 많이 부존돼 있는 내몽고 포두시에 위치한 포두영신는 영구자석의 원재료인 네오듐(Nd) 금속을 생산, 판매해 왔다. 광물공사는 중국이 희토재료 수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영구자석의 수요 급증에 대한 대비책 차원에서 투자를 했다. 2012년 4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광물공사 등이 중국 서안맥슨, 포두영신 희토 사업에 진출해 1000톤의 희토류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1000톤은 당시 기준으로 국내 연간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 한다. 광물공사는 이 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잔드콥스드리프트 희토류 투자사업을 통해 6000톤을 확보키로 했다, 현재 서안맥슨 외 모두 매각했다. 문제는 더 있다. 희토류 산업의 핵심은 채굴 후 원석을 분리. 정제. 가공 하는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기술을 제대로 국산화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자원안보 차원에서라도 탐사부터 개발-채굴-가공-완제품-재활용에 이르는 희토류 산업 전후방 밸류체인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처럼 희토류 비축으로는 글로벌 자원 무기화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글로벌 관세 전쟁과 함께 진행되는 자원전쟁에 대비해 희토류의 자립적 밸류체인 구축이 필요하다. 강천구

[EE칼럼] 자원빈국의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외치며 에너지전환에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탄소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탈탄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또 기존의 탄소 중심의 경제구조와 연관성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각국의 에너지자원 부존 현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화석연료가 전 세계 일차 에너지원의 80%를 담당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2050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목표달성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지구에서 기후변화는 언제나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기후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급격한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으로 인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이 급증하여 급격한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생존의 문제인 기후 위기가 닥친 것이다. 결국 에너지원의 구성이 저탄소로 변화해야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데 이 에너지전환이 오래 걸릴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들어서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적인 전망이다. 그렇다면 에너지자원 빈국인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에너지원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주로 인구수가 많고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의 에너지원 구성과 탄소중립 정책 동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한국의 역할과 방향을 잘 설정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주 에너지원인 화석연료의 구성에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예상으로는 이산화탄소 발생이 많은 석탄의 수요는 감소하고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는 자동차의 전기화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지만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천연가스의 경우엔 소비량이 증가할 수 있다는 예측이 현실적이다. 이런 예측은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 국제협력이 필수적인데 각국이 자국의 어려운 경제 현실을 희생하며 탄소중립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에너지원의 구성은 선진국이 원하는 대로 급격한 탈탄소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세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에너지 소비량이 선진국에 비해서 현저히 낮다는 사실과 30억 인구의 중국과 인도의 미래 에너지원 구성과 소비량 예측이 아마도 세계 기후변화와 탄소 중립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에너지 소비와 에너지원 구성, 산업 발전 속도에 따라 세계 에너지원 공급망이 좌지우지될 것이 불 보듯 명확하다. 이들의 에너지원 구성이 세계 이산화탄소 방출량과 직결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만 열심히 한다고 기후변화와 탄소 중립 목표가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측면에서 화석연료의 사용은 수십 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그중에서도 석유와 가스는 연료 및 원료로서의 역할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석유 가스산업이 자체적인 탄소중립이 가능한 이산화탄소 저장소(CCS)로서의 역할과 수소를 생산하는 원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천연가스의 경우 가스전의 높은 회수율 때문에 생산을 모두 마친 고갈 가스전을 CCS 저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도 2021년 생산이 종료된 동해 가스전을 활용한 CCS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 국가와 사회를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분야, 꾸준히 시간과 자본 및 기술 축적이 필요한 분야, 인프라가 필요한 분야, 꾸준한 준비와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분야, 안 하고 손 놓고 있어도 당장은 티가 나지 않지만 소홀히 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는 분야. 바로 국가의 안정적 에너지자원 공급망 구축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멀리 보고 미리 준비하여 꾸준히 실행해야 한다. 에너지 자원개발 정책, 새로운 정부 정책에 따라서 “가다가 잠시 길을 멈출지라도 뒤집어엎지는 말자". 신현돈

[EE칼럼] 대정전의 위험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며칠 전 발생한 스페인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사태는 현대 사회에서 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전 국민이 며칠씩이나 생활에 불편을 겪은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이번 사태로 인해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생명에 관련된 기능을 전기의 힘으로 보조받고 있던 환자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을지 걱정이 앞선다. 빨리 회복되고 원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빈다. 이런 사태가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여년 전 미국의 뉴욕주를 포함한 북동부와 캐나다에서 대정전이 발생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오하이오의 송전선로 문제와 경보 소프트웨어의 버그가 겹쳐진 것이 주원인이었다. 이번 스페인 포르투갈 정전에서는 15기가와트의 전력이 갑자기 상실된 것이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엄청난 양의 발전원이 갑자기 전력망에서 탈락한 것인지 그 이유는 아직도 조사 중이라고 한다. 이 사태는 우리가 예전에 겪었던 다른 재난관련 일을 떠오르게 한다. 2016년에 우리나라 경북 지역에서 지진을 겪은 일이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상당히 규모가 큰 지진이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리히터 지진규모로는 5.1에 해당한다. 실제 구조물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계산하는 공학자들은 각 시설에서의 지진가속도 계측값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가까이 있던 월성원전에서 계측된 것은 0.0981g였다. 하늘에서 자유낙하하는 중력가속도의 약 10%에 해당하는 것이니 작은 값이 아니다. 그러나 원전은 그 정도로는 안전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보통 0.2g나 0.3g의 지진에 아무 문제없이 견딜 수 있도록 설계기준치를 설정한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때 후쿠시마 원전에서 계측된 지진가속도가 0.335g였지만 지진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는 없었다. 실제로는 지진 1시간 후에 들이닥친 쓰나미로 인해 전기 공급이 중단된 것이 결국 최악의 사고로 연결된 것이다. 따라서 0.0981g 지진 정도는 원자력발전소 안전에 영향이 거의 없는 경미한 자연재해인 것이다. 재난이 정치적 이슈와 연결되면 과학적 분석은 뒷전 그런데 이것이 정치적인 이슈로 연결 되면 과학적인 분석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당시에 지진으로 인한 주택파손과 이재민 대량 발생으로 재난 안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되자, 국민들에게 안전을 중요시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당국에서 지진 대책으로 내 놓은 것이 자동 정지 시스템의 설정치를 아주 낮게 잡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이상의 지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반응하는 이 자동 정지 시스템에서 설정치를 낮게 해 놓으면 작은 지진이 와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원자로를 정지시키고 안전모드로 들어가니 안전성이 향상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경제성을 희생시키고라도 안전성을 향상시키려는 충심이었겠지만 꼭 의도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들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정말 무서운 재앙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만약 0.0981g 정도의 지진에도 자동 정지가 되도록 해 놓은 상태에서 그 값을 넘는 지진이 동해안 어딘가에 일어나면,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들이 대부분 동해안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지진을 감지한 원자력 발전소들이 일시에 정지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스페인 포르투갈 대정전의 직접 원인이 15기가와트의 전력공급 일시 상실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우리나라 동해안의 원자력 발전량만 20기가와트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전력망을 운영하는 기술진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20기가와트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쩔 방도가 없이 전력망이 붕괴되어 초유의 국가정전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애초에 건설할 때부터 설계기준에 반영하여 그것보다 훨씬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입장에서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 그런 경미한 지진이 우리나라 전체 전력망 붕괴를 불러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관련 과학기술자들 덕분에 자동 정지 설정치가 그렇게 낮게 설정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간담이 서늘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일이 없으려면 반드시 과학적인 분석을 기초로 하여 판단을 내리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0.0981g의 지진에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기능이 파손되어 중대사고로 연결될 위험성(확률론적으로 0에 가깝다)과, 그 지진에 동해안 모든 원전을 정지시켜서 온 나라가 대정전을 맞게되는 위험성(확률론적으로 1에 가깝다)을 비교해 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다. 물론 과학적인 것만 가지고 모든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위험은 피하게 해 준다. 전문가의 정확한 과학적 정보, 국민에게 전달이 중요 요즈음 전력망에 관련한 이슈가 자주 대두되고 있다. 단순한 송전선 설치하는데 몇 년이 걸렸는데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풍력과 태양력 등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의 생산 사이클과 소비 사이클을 조화시키는 문제, 넓은 부지가 필요한 전력 생산자와 도시에 밀집한 소비자간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서 생기는 병목 현상 같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해결책 없이 문제만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 소규모 지역적으로 견고하고 안정된 에너지망을 갖추고 광역에서는 약간씩 보완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스마트 시티나 넷제로 시티 개념이 그 기초가 된다. 소형모듈원전도 이런 목적에 매우 잘 부합한다. 그리고 모든 정보가 인터넷으로 쉽게 유통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확한 과학적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감상에 젖어서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 국민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대 전제이지만, 일단 그 배경 지식은 진짜 전문가가 제공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 인프라의 위험성도 체계적으로 분석해 나가야 하고 이를 전 국민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미국과 유럽의 기후 전쟁

미국 베센트 재무부 장관은 4월 23일 세계은행과 IMF가 기후변화 같은 허영심 가득한 프로젝트에 빠져 거시경제 안정과 개발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소홀했다며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40억 달러의 세계은행 기금 기부 약속은 핵심 목표 성과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스벤야 슐체 독일 경제협력개발부 장관은 미국의 압력에도 기후변화 문제를 포기할 수 없고, EU 회원국이 미국 이상의 은행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피력했다. 미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의에서도 청정 전력과 넷제로 글로벌 전환 업무를 압박하며 '화석연료가 아닌' 모든 프로젝트 중단을 요구했다. 한 프랑스 관료는 폴리티코에 익명을 전제로 '탈탄소화는 에너지 안보이자 도구로 프랑스 입장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IEA가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백한 충돌이자 글로벌 기후의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전운은 2025년 1월 20일 '국제 환경 협약에서 미국 우선'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이 행정명령은 미국 경제를 손상시키거나 억압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국제 협정 개발과 협상에서 미국과 자국민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미국에 부당하게 또는 불공정하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파리협정 탈퇴는 물론이고 개도국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한 45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제기후금융을 철회했다. 또한 국제 에너지 협정을 계획·조정하는 모든 부서와 장은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모든 대외관계에서 경제적 효율성, 미국 번영 증진, 소비자 선택권, 재정 절제를 우선시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이 원칙에 따라 전선을 조정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수세에 몰렸다. 에너지 위기 이후 유럽 전역을 휩쓴 농민시위는 유럽 국민들의 피로감이 겹쳐 기후의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녹색당 등 좌파를 몰락시켰고 이 틈을 우파와 극우가 파고들었다. 올해 초 유럽의회는 공급망실사지침(CSDDD)의 시행을 연기했고 탄소국경세 기업 부담을 대폭 완화했다. 이 흐름을 주도했던 건 국내외 언론이 그린딜에 우호적이라고 불렀던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이다. 여기에 트럼프 2기의 기후의제 압박이 추가된 것이다. 무게의 추가 기운 이유다. 이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는 여론과 참여다.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에너지 전환 수용의사와 지불의사가 다르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GDP의 2% 미만인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시위에 대중이 움직였던 이유는 정치인들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약자를 에너지 정책으로 핍박한다는 호소가 먹혔기 때문이다. 에너지 위기가 불러온 인플레이션은 4년 넘게 지속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생활비 위기로, 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보조금이 갈수록 늘어나는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미 우선순위는 국방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는 저렴한 에너지 비용을 원하고 있는데 거의 모든 에너지 집약산업이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에 비해서 5~7배가 넘는 에너지 비용을 지불하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COP28에서 금융기관들은 수익성이 없는 녹색 전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제주체의 참여 인센티브가 없는 정책은 보급물자 없는 전쟁과 같다. 이 기후 전쟁은 아프리카의 손에 달려있을 수 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올 3월 CERA 컨퍼런스에서 아프리카 정부의 화석연료 투자를 지지했고 아프리카엔 석탄을 비롯한 모든 연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막대한 자금지원을 시사했다. 반면 유럽은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아프리카 대륙 화석연료 개발을 막으면서도 에너지 위기에서 자신들만 예외로 두고 그들의 대륙에서 천연가스와 석탄을 수입해가는 모순을 보여줬다. 여론과 경제주체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진영이 이번 기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번 폭염과 한파를 지나며 전 세계 국민들은 에너지 요금 고지서를 보고 승자를 결정할 것이다.

[EE칼럼] 불안정한 세상과 다시 올 녹색성장

세상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우리가 오래 당연하게 생각해온 안전하고 좋은 세상이 온다는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의 골격은 2차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7월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약(Bretton Woods Agreement)이다. 이 협약은 세계 대전의 시련을 딛고 공존-공영의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주요 내용은 1) 금(金) 본위 기조 아래 미국 '달러'화의 기축(基軸) 통화 지위 합의와 고정 환율제의 채택, 2) 환율 안정과 국제 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설립으로 요약된다. 이 협약은 전후 세계 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환율의 변동성이 최소화되어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었고, IMF와 IBRD의 지원 활동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미국의 대외 부채가 증가하고,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에 기본을 둔 '달러'화 기축 통화 지위를 포기하여, 이 협약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여기서 석유파동이라는 에너지 위기가 '브레튼우즈' 체제 종식의 큰 요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실물자산인 석유-에너지가 가상자산인 '달러'화 기축체제 종식을 유도한 셈이다. 이 결과로 글로벌 가치 교환체제가 붕괴와 인류문명 지속 가능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금 세계가 처한 가장 큰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과 불합리한 정치권 행태라는 '골드만 삭스' 등 여러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이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독불 장국 '트럼프' 정부 재집권 등 정치 위험은 두 번째이다. 관세 부과를 통한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트럼프' 정책은 석유파동으로 훼손된 '달러'화 가치를 지금 보전받으려는 염치없는 행태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논리의 경시에 따라 '트럼프'취임 100일 만에 미국민 지지도는 40% 수준으로 하락하는 등 변화가 불가피하다. 아마 시장 논리에 따른 정상적 보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과 불합리한 정치권행태 그러나 우리는 정치외교 전문지인 'Foreign Affairs'가 지정학 위험의 주요 원인으로 '인프라 네트워크' 취약성을 꼽은 점에는 여전히 유의해야 한다. 국가 간 연계 증가와 공통 기술 의존성 증대로 인해 다양한 글로벌 상호연계가 급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상호연계 사례가 에너지산업과 통신일 것이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에너지, 통신 부문을 필두로 필수 민생서비스 제공을 완전보장할 수 없다. 대신 민간기업과 일부 공기업들이 정부와 연계하여 민간 필수재 공급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기업과 공기업 간의 역할 일부 혼돈과 이해 충돌은 누적되어 에너지-기후문제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에너지 부문의 주된 해결과제는 전통적 에너지 생산-유통-소비 체계가 아니다. 1980년대부터는 에너지 절약/이용 합리화가 주요 관심이었으나 지금은 기후변화대응이 압도적이다. 더욱이 기후변화 감축 효과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2100년까지 지구 대기 온도상승을 섭씨 1.5 도 이하 유지라는 UN'파리'협약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세계 최고 과학자들은 영국 '가디언'지 설문 조사에서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최소 2.5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았다. 현존 지구 문명 소멸 수준이다. 이들 중 거의 절반은 최소 3C 이상 상승을 예상했다. 아마 갈수록 비관적 견해가 커질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기후 유발 '디스토피아(Dystopia; 극단적 암울한 미래)가 우려된다. 따라서 시장경제의 한계, 글로벌 정치와 시장통합의 파행(Fragmentation), AI 등 신기술의 역할 강화 등으로 에너지 부문의 역할과 가치는 급변할 수 있다. 이에 에너지 수급 취약성이 매우 큰 우리나라는 신중한 에너지 연구방법론이 요구된다. 기후변화대응, 에너지분야의 주된 해결 과제 사실 기후변화 '이슈'는 갈수록 지정학 주요 과제에서 밀려나고 있다. 재무장 및 AI 우위를 향한 경쟁과 같은 지정학 과제들이 관심의 초점이다. 해수면 상승, 장기 무더위 등은 단순한 위험이 아니라 인류문명 지속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사실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사실 기후 변화위협은 과학적 기준에서는 분명히 커지고 있지만, 기업은 물론 기후 혁신운동가조차도 효율적인 대처방안 모색 없이 단지 어색한 침묵을 지킬 수 있다. 민간 경제주체들이 재정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환경적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행태를 '그린 허싱'(greenhushing)이라 한다. '그린 허싱'의 증가는 기후대책, 안보, 시장경제 문제해결과정에서 우선순위 설정 과정에서의 갈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왜곡된 정보와 부정적 주장의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바로 '정책실패' 이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새로운 정책 시도를 통해서 왜곡된 시장과 시민들의 관념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책실패를 고려해야 한다. 바로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이다. 작년 11월 발간된 '이코노미스트( Economist)'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보도하였다. 한국 선출직 정치인의 1/3이 박사학위(PhD) 소지자이란다. 그러면 우리 국정운영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가? '웃으면서 답은 하지 않는다.'라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지적 수준이 높은(?) 우리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반 국민복지와 국리민복 고양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근 우리 대선 과정에서 주요 정당의 유력 후보들은 앞다투어 에너지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어느 유력 후보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활용 증대에서 필수적인 '에너지 고속도로' 추진과 RE100 (신-재생에너지 자급) 산업단지 100개 이상 조성 등을 약속하였다. 다른 후보들도 에너지 부문의 숙원인 기후경제부 신설, 기후산업 400조 원 투자, SMR(소형 '모듈러' 원전) 상용화 추진 등을 공약하였다. 왜 모두들 에너지대책에 관심이 큰가?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이 미흡이 그 큰 이유 중 하나로 필자는 생각한다. 예너지 정책의 성공 요체는 정확한 미래예측 어느 후보가 검토 결과를 제시하니 다른 후보들이 검증 없이 급히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에너지 부문의 특성은 장기 규모 장기 투자와 긴 선행기간이 요구되어 대규모 단기적 부가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급히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릇 국가 에너지대책은 '인과관계의 규명'과 반복적 실험과 검증을 통한 '일반화' 그리고 정립된 이론을 통한 '미래예측 능력의 통제' 과학적 연구방법론 이행과정을 엄격히 거쳐야 한다. 이래야만 미래예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70년대 석유파동보다 더욱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여건에서 우리 정치권의 '무책임성'이 갈수록 두렵다. 더욱이 우리는 지난 정부의 과시적 '녹색개발(green developments)'의 후과(後果)를 청산해야 한다. 온난화 방지와 성장과 복지를 동시 증진할 수 있다는 이 논리는 여러 논리적 한계로 지금은 그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적정 탄소 가격의 부재와 민간기업의 시장진입 한계가 가장 큰 제약이다. 이에 선진 학계에서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 녹색성장 논리가 차기 정부 에너지대책 기반 논리가 될 소지가 있다. 지역균형 발전, 분배 중시 등의 정치 이념을 '녹색성장'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더욱이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에 한계가 있는 에너지 부문의 특성을 활용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10년쯤 뒷걸음칠 수 있는 우리 에너지 부문을 생각하면 되돌아가기도 하는 세월 흐름의 무게를 되새길 따름이다. . 최기련

[EE칼럼] 슈뢰딩거의 석유: 줄어들까, 늘어날까, 아무도 모른다

1970년대 석유파동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당시 인류가 느낀 석유 고갈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영화 시리즈를 통해 극적으로 시각화됐다. 1979년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석유 부족으로 문명이 붕괴하고 무법 세계가 된 미래를 그렸다. 이는 석유 생산이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라는 '피크오일(Peak Oil)'론의 경고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피크오일론은 1956년 미국 석유 지질학자 M. 킹 허버트(M. King Hubbert)가 미국 내 석유 생산이 1970년 무렵 정점을 찍을 것이라 예측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후 셰일 혁명으로 비전통 석유 생산이 급증하고,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하면서 기존 피크오일론은 사실상 폐기됐다. 오늘날 주목받는 것은 공급 한계가 아니라 수요 변화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탄소중립 정책 확산으로 석유 소비가 구조적으로 감소하면서, 석유 수요가 공급보다 먼저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른바 '수요 피크(Demand Peak)' 시대가 논의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놓았다. IEA는 'Oil 2024' 보고서에서, 세계 석유 수요가 2030년 하루 약 1억 500만 배럴을 정점으로 이후 감소해, 2050년에는 최소 2,300만 배럴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OPEC은 World Oil Outlook을 통해, 인도·중국 등 비OECD 국가를 중심으로 수요 증가가 지속돼 2050년에는 하루 1억 2,00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세계 시장에서는 석유 수요 피크 시점을 늦출 변수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전기차 보급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보조금 축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목표(2035년)마저 규제 완화 압력에 직면했다. 미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하며 기후정책이 후퇴하고, 화석연료 회귀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시장에서 에너지 전환이 지연된다면, IEA가 제시한 2030년 수요 피크 시점은 뒤로 밀릴 수 있다. 심지어 OPEC이 주장하듯 당분간 수요 정점이 오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지금 이 순간 '글로벌 석유 수요 피크'가 시작됐는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는지는 확정할 수 없는 상태다. 이는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제시한 사고 실험처럼, 관찰하기 전까지 고양이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닮아 있다. 시간이 지나 구체적 데이터가 축적되기 전까지는 석유 수요가 증가할지 감소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4년 장기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석유제품 소비는 2021년 1억 2,130만 TOE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에 들어섰다. 다만 감소 속도는 연평균 0.6%에 그쳐, 2035년에도 2020년 수준과 비슷한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이를 반영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훨씬 급격한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해당 계획에 따르면 2035년 한국의 석유 수요는 2020년 대비 45.6% 감소, 사실상 반 토막 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석유 수요의 미래는 여전히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것은, 석유 수요 정점과 이후 감소가 단순한 예측 문제가 아니라 국가 투자 전략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미래가 불확실한 산업에는 민간 투자가 위축되기 마련이고, 이는 에너지 안보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석유비축계획은 수요 전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030 NDC가 가정한 급격한 수요 감소를 고려한다면, 이제 정부는 비축유 매각 여부와 그 속도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2030 NDC는 실현 가능성 검토가 부족했으며, 감축 목표의 절반 이상이 수단 부족이나 현실성 결여로 이행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목표 자체의 과학적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된 만큼, 앞으로 발표될 2035년 NDC는 더욱 객관적이고 실현 가능한 계획 위에 설정되어야 한다. 특히, 석유 수요와 직결된 무공해차 보급 목표(850만~1,000만 대 수준)에 대해서는 실제 달성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목표는 시장 혼란만 초래하고, 국가 에너지 전략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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