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배출권거래제 4기, 마켓풀(Market Pull) 정책에 달렸다

최근 수년간 톤당 1만 원 수준에서 횡보하던 탄소배출권 가격이 서서히 반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고 그동안 일시적인 가격 상승은 있었으나, 최근의 움직임은 이전과 다른 내·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 우선 배출권거래제 4기(2026~2030년)가 시작되었고, 무엇보다 중동 분쟁 등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중동 분쟁은 일차적으로 에너지 수입선의 다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인 대응일 뿐이며, 근본적으로는 에너지 수입 수요 자체를 줄이는 '일렉트로테크(Electrotech)' 육성이 필요하다. 일렉트로테크는 전력의 공급·연결·수요 전반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기술을 총칭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풍력·태양광·원자력 등 국산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고, 연결 측면에서는 초고압직류송전(HVDC)·분산전원·에너지저장장치(ESS)로 계통의 유연성을 높이며, 수요 측면에서는 전기차와 히트펌프 도입 등 '수요의 전기화'를 통해 에너지 소비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다. 결국 일렉트로테크는 외부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무탄소 에너지 공급을 늘려 가격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일렉트로테크 전환을 이끄는 핵심 정책 수단이 바로 배출권거래제다. 배출권거래제 4기 기본계획상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은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된다. 이렇게 강화된 배출권거래제 부담 하에서 기업은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탄소 고효율의 에너지 신기술에 투자하고 설비 도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고로(용광로) 철강 산업 역시 배출권거래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로 공정에서는 석탄을 코크스로 변환하고, 이를 이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환원)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산업 부문은 4기를 맞아 과거 배출량 기준(GF)에서 시설 효율 기준(BM)으로 할당 방식이 전환되었는데, 이러한 BM 방식 도입으로 철강 업계는 무상할당 업종임에도 10% 이상의 유상할당에 준하는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철강 산업의 탄소 감축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쇳물을 정련할 때 고철(스크랩) 투입 비중을 높이는 방법, 둘째, 코크스 대신 가스로 환원한 직접환원철(DRI)을 전기로에서 녹이는 방법, 셋째, 그린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들이 원료 구입비는 물론 공정 내 전기 사용량이 급격하게 늘어 수익성을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지 않으면 배출권 구매 비용으로 수익성이 저하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철강사의 영업이익률에는 원재료비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저탄소 원료인 DRI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는데, 쇳물 원가 대비 DRI 가격은 110~150%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철강사의 DRI 수입량을 보면 2022년 54.5만 톤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2025년에는 1천 톤 수준으로 99.8% 급감했다. 같은 기간 P사의 영업이익률 또한 2021년 16.7%에서 2025년 5% 내외로 하락했다. 배출권 가격이 낮은 상황에서 수익 상황이 악화하면 기업은 비싼 저탄소 원료부터 비중을 줄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러한 원가 격차를 극복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배출권 가격은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지우는 외부효과(비용)를 제대로 반영해야만 하고, 나아가 감축 노력을 하는 기업은 실질적인 혜택을 보게 해야 한다. 특히 철강과 같은 고배출 산업이 불황을 맞아 신규 투자 여력이 떨어진 지금 같은 시기엔 기업이 배출권 가격과 저탄소 원료 가격 사이에서 저울질하게 두지 말고 저탄소 제품 생산과 판매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투자를 머뭇거리는 기업에게 적정한 인센티브를 제시해 저탄소 제품 시장을 육성(Market Pull)하고, 그 동력으로 저탄소 기술이 축적(Technology Push)되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올해 6월 'K-스틸법'이 시행되고, 상반기 중 녹색전환(GX) 지원을 위한 '전환금융'도 도입될 예정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기업의 과감한 저탄소 투자를 유도한다면, 배출권 부담을 경감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일렉트로테크의 경쟁력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kn@ekn.kr

[EE칼럼] 재생에너지는 산업 연료이고 안보 자산이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반감을 자주 드러냈다. 법원의 저지를 받기는 했지만, 수억 달러에 달하는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무산시키려 했고, 육상풍력 발전 사업도 막으려 했다. 다른 국가들에게 화석연료로 회귀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영국을 향해서는 “나라 곳곳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태양광 패널에 대해서도 경관을 해치는 흉물, 매우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비난했고, 세기의 사기극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화석연료를 우선시 하며 태양광 프로젝트 수백 건의 최종 승인을 막았다. 그러나 최근 기류가 변하고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큰 폭의 전력수요 증가를 겪고 있다. 기술 기업들은 전력 부족으로 인해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여기서 재생에너지의 실용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에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구글은 미시간주 남동부에 계획된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20년간 2.7GW 규모의 태양광,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두 번째 계기는 지정학적 위기와 에너지 안보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이 이를 부각시켰다. 에너지를 외부의 장거리 운송이나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반면 태양과 바람은 특정 국가가 독점할 수 없으며, 운송로 봉쇄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이번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이 글로벌 시장을 흔들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그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인 MAGA 진영도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 보좌관인 스티븐 밀러의 아내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추종자인 케이티 밀러는 최근 “태양에너지는 미래의 에너지이다. 우리는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을 빠르게 확대해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토니 파브리치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 등 트럼프의 주요 측근들도 전력수요 급증과 에너지 가격 부담이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름에 따라 태양광발전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어조조차 바뀌었다. 그는 미국의 에너지 비용 인하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태양광 발전이 해결책의 원동력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의 징후는 그동안 중지시켰던 여러 대규모 프로젝트의 허가 절차를 재개한데서 나타났다. 태양광발전을 전력망에 기생하는 존재라고 비판했던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역시 어조를 바꿨다. 그는 태양광 발전이 전력망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업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변화는 통계로 증명된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2026년 미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약 86GW의 발전 설비를 새로 추가할 계획이다. 이는 2025년의 53GW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주목할 점은 그 구성이다. 신규 설비의 절반 이상(43.4GW)이 태양광이며, 배터리 저장장치(24.3GW), 풍력(11.8GW)이 그 뒤를 잇는다. 천연가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약 6.3GW이다. 재생에너지가 미 전력망 확충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탄소중립의 수단이라는 명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전력수요가 폭증하는 시대에 재생에너지는 선택이 아닌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재로 재정의되고 있다. AI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산업 연료이자,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안보 자산인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속도와 자립에 있다. 우리처럼 화석연료 매장량이 부족한 국가들에게 있어 태양광과 풍력이 이를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조차 실용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미 수립된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할 때, 비로소 AI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에너지 자립이라는 국가적 숙제 해결을 위해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ekn@ekn.co.kr

[EE칼럼] 다시 생각해 보는 자연독점사업자의 의무

자연독점산업을 경쟁에 맡기게 되면 여러 사업자가 나누어서 생산하게 되어 평균생산비가 올라가고 이에 따라 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자연독점 사업의 경우 독점사업자를 지정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독점사업자로 지정되고 나면 독점의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즉, 가격을 높게 받고 품질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며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수준도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공급하기 어려운 곳에 있는 소비자에게는 여러 핑계를 대며 공급을 거절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정부는 자연독점사업의 경우 가격 규제와 보편적 공급의무를 부과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연독점 규제는 진입 규제, 가격 규제, 보편적 공급의무의 세 가지 규제가 하나의 묶음으로 규정되게 마련이다. 에너지 분야에 있어서 이와 같은 자연독점 규제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 있는 법은 전기사업법, 도시가스사업법 그리고 집단에너지사업법이다. 일반적으로 독점사업자 외에는 진입을 금지하는 진입 규제 규정은 사업에 대한 허가제(전기사업법 제7조, 도시가스사업법 제3조, 집단에너지사업법 제9조)를 통하여 나타나 있다. 가격 규제는 전기사업법에서는 전기의 공급약관(제16조)으로, 도시가스사업법과 집단에너지사업법에서는 공급규정(각각 제20조 및 제17조)으로 규정된다. 보편적 공급은 공급의무라는 표현(전기사업법 제14조, 도시가스사업법 제19조, 집단에너지사업법 제16조)으로 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막강한 자연독점 사업자는 바로 한전이다. 발전자회사 6개를 통하여 발전설비 60% 가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송배전과 판매에 있어서는 사실상의 순수 독점사업자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진입 규제로 보호받고 있는 한전에 대하여 정부는 제대로 가격 규제와 공급의무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지는 자성해 봐야 한다. 가격 규제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규제를 했다고 판단된다. 이 때문에 한전은 제대로 그 원가를 보상받지 못했다. 그 결과가 200조 원이 넘는 한전 부채다. 그러나 2022년의 러-우 전쟁 발발 이후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뒤늦게 반영하기 위해 정부가 2024년 하반기에 올린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특히 2천7백만이 넘는 주택용 수용가 대신 전체 수용가의 1.7% 수준의 산업용 수용가를 대상으로 급하게 올린 산업용 요금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결정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공급의무 측면에서도 정부의 규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가장 심각한 결과는 만성적인 송전망 공사의 지연이다. 물론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반대가 심각했다는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는 독점사업자가 제대로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제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진입 규제는 한전이란 독점사업자가 누릴 수 있는 특혜이다. 그렇지만 이런 특혜는 그냥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가격 규제와 공급의무가 특혜를 누리는 사업자가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이다. 전력이 모자랐던 2010-2013년 기간 동안 정부와 한전은 민간사업자들에게 석탄발전소를 빨리 지어달라고 5, 6차 전기본을 통해 부탁하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2019년까지는 동해안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오는 송전망을 준공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송전망 공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가동률 저하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민간사업자들을 위해 전기사업법을 개정하여 송전제약 지역에 대해 PPA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지만 아직 정부는 관련 고시조차 제정하지 않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가 심사 중인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 쟁점은 전력 직접거래와 PPA 허용 여부인데 담당부처는 한전의 독점사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에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전이 자신에게 주어진 공급의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는 진입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ekn@ekn.kr

[EE칼럼] 다시,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충남 공주시에서 관광버스 22대가 올라왔다. 예산, 금산, 홍성, 당진 주민들도 뒤를 따랐다. 전북, 경기, 광주에서도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 100여 개 단체 5,000명이 광장을 채웠고, 무대 위에서는 삭발식이 거행되었다. 마이크 없이도 한 말이 퍼졌다. “밀양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 이들이 반대한 것은 반도체가 아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전북 14개, 충남 15개 시군구를 관통하는 345kV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추진 중이다. 전북에서만 627km 노선이다. 완전 가동 시 필요한 전력은 최대 15GW, 원전 10기에 맞먹는 규모다. 경제적 이익은 수도권과 대기업에 귀속되고, 송전탑은 농촌 논밭 위에 세워진다. “에너지 식민지"라는 말은 감정적 수사가 아니라 구조의 정확한 묘사다. 같은 날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SNS에 정반대 방향의 글을 올렸다. “국가 전략산업이 불확실성 속에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추진 의지를 천명해 달라." 두 메시지는 모두 대통령을 향했지만, 요구의 방향은 정확히 달랐다. 갈등의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한편 SK하이닉스는 바로 그 시점에 21조 6,000억 원 추가 투자를 공시했다. 이미 투자된 돈이 많다는 사실은 재검토를 더 어렵게 만들고, 주민들을 더 조급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갈등을 찬반의 문제로 보면 해법이 없다.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순서가 틀렸다. 산단 입지 확정, 전력 수요 산출, 송전 경로 결정, 입지선정위원회 구성이 순서가 모두 끝난 뒤에야 주민 설명회가 열렸다. 공주시 주민이 “입지선정위원회는 이미 결정된 노선을 정하는 요식 행위"라고 말한 것은 정확하다. 밀양도 그랬다. 2005년 계획 이후 10년간 이어진 갈등, 수천억 원의 추가 공사비, 노인들의 분신 그 모든 것의 뿌리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절차적 배제였다. 지금 충남과 전북에서 그 경로가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송전망 국민펀드는 이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한전 적자와 전력망 투자 재원 부족을 보완하면서, 주민을 보상 수령자가 아닌 투자자로 전환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옳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되면 또 다른 실패가 된다. 사업에 대한 이해와 학습 없이 제공되는 금전은 결국 “돈으로 무마하려 한다"는 불신만 키운다. 광화문 집회의 진짜 요구는 사업 철회가 아니었다. “우리를 처음부터 참여시켜 달라." 이것이 핵심이다. 그러므로 순서는 이래야 한다. 먼저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성한다. 경과 지자체 대표, 주민 대표, 한전, 기후에너지환경부, 갈등 전문가가 함께 노선 대안과 분산에너지 도입 규모를 논의하되, 실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미 결정된 것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설계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 과정이 선행될 때 비로소 주민들은 사업을 강요된 인프라가 아닌 함께 만든 인프라로 인식한다. 그 다음, 국민펀드를 지역 우선 구조로 설계한다. 경과 지역 주민에게 우선 투자권을 부여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에 연동된 20~30년 연금형 이자소득을 지급한다. 단기 보상금이 아니라 장기 투자 구조다. 기초 지자체에서 광역, 전국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맞다. 주민이 학습하고, 스스로 투자 여부를 판단하고, 이해당사자가 되는 과정이 선행될 때 비로소 펀드는 “돈 봉투"가 아닌 신뢰의 매개가 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정확한 숫자를 제공해야 한다. 대통령께서 “생산된 전기를 외지로 보내는 것은 원시적 방법"이라 했다면, 분산에너지로 장거리 송전 의존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공개해야 한다. 용인 산단 인근의 지붕 태양광과 수요반응(DR)·ESS를 조합하면 345kV 회선 수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그 숫자가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올라올 때 선언은 비로소 신뢰가 된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과 지역 공동체 수용성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대화 없는 보상은 실패하고, 참여 없는 소득은 신뢰를 만들지 못한다. 순서를 바로잡으면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밀양이 남긴 교훈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광화문의 5,000명은 그 교훈을 다시 되새길 기회를 정부에 주고 있다. ekn@ekn.kr

[EE칼럼] 이란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격 공습하며 중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에 놀랐던 세계는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지도부가 하루 만에 제거된 것에 경악했다. 이후 세계는 중동 석유와 가스가 움직이는 호르무즈로 옮겨갔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배럴당 60달러로 올해를 시작한 브렌트유는 전쟁 이후 최대 120달러 가까이 급등했다 9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 TTF 가스 가격은 단 2일 만에 100% 가까이 급등한 60유로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카타르 최대 LNG 시설 라스라판은 이란 공격으로 LNG 생산을 중단했고 마지막 레드라인이던 해수 담수화시설 쌍방 공격으로 공격 대상은 제한이 없어졌다. 전쟁은 온통 석유와 천연가스에 집중되어 있지만 호르무즈 봉쇄 일주일 만에 세계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빠르게 깨닫기 시작했다. 천연가스 생산이 중단되면서 카타르 LNG를 공급받지 못하는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국가의 비료생산이 줄어들거나 공장 가동 중단 위험에 빠졌다. 몬순 시즌이 시작되는 6월까지 비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면 이 지역 식량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다. 인도는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며 설탕, 밀, 면화 2위 생산국이다.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은 세계 2위 비료 수출국이며, 반도체 생산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세계 2위 헬륨 생산국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나프타 운송이 차질을 빚을 경우 여수·울산 등 국내 석유화학 단지 가동률이 낮아지고 이는 곧 반도체 공정용 소재 공급 지연으로 이어진다. 중동산 중질유 부족은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에 치명타를 주고 황산 부족을 야기해 구리, 코발트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망과 전기차 생산에 차질을 줄 것이다. 전 세계 공급량의 8%를 차지하는 연간 620만 톤의 중동 알루미늄 제련소 공급 중단은 전쟁이 끝나도 정상화까지 최대 1년이 걸린다. 이란 전쟁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에너지 '전환' 시대엔 화석연료를 악마화하며 마치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이 없이도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란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탄화수소 수송로가 막히자 산업을 움직이는 동력, 식량 공급에 필수적인 비료, 반도체 산업을 움직이는 헬륨,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송전선과 재생에너지에 필요한 핵심 광물까지 우리 삶에 필수적인 거의 모든 것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있으며 가격의 기록적 상승을 목격하고 있다. 이는 이미 2021년 유럽발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서 일어났던 현상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간과했다. 이란 전쟁 이후 세계는 다시 에너지 안보 전략을 다듬을 것이며 한국 역시 이번 기회에 값비싼 교훈을 얻을 것이다. 첫째, 이제 에너지 믹스를 결정할 때 반드시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수십 년간 막대한 의존을 했던 중동 비중 감소와 미국 비중 증대를 의미한다. 둘째, 무리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중단하고 기저 발전에 필요한 안정적이고 저렴한 연료 조달에 힘써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중국의 시큐리티 위안이며 이의 확장은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 공멸과 중국 지정학적 가치 상승에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자국 에너지 지배를 동맹국이 정면으로 훼손하는 일이다. 전력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서는 원전과 석탄 발전 가동을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최대로 올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안보의 가장 최우선은 수입선 다변화가 아닌 국내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이다. 이미 유럽은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을 선택했지만 다시 러시아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들이 북해 등 역내 개발을 꾸준히 했더라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고 미국이 무리한 관세정책으로 에너지 수입을 강요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IEA는 2050년까지 석유 수요에 정점이 없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수입 다변화 정책은 에너지 자립이며 에너지 주권 확립은 역설적으로 중동과 미국 탄화수소 의존도를 줄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E칼럼] 에너지 위기에서 원전 가동률 높이기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기 때문에, 봉쇄가 단행되면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물류비·물가·금융시장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원유뿐이 아니다. 천연가스(LNG) 공급에 병목을 만들 우려도 있다. 특히 LNG는 파이프라인 우회가 거의 불가능해 선박 운항이 멈추면 공급이 즉각적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고, 이들 원유가 대부분 호르무즈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의 석유비축량은 약 200일 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소비량을 감안하면 약 2개월 분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LNG는 45일 그리고 석탄은 15일 분 정도이다. 반면 원자력발전을 위한 우라늄은 3년 분 정도가 비축되고 있다. 당장의 경제상황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정도에 따라서 민감하게 바뀔 것이다. 에너지 당국도 호르무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대응이고 정책은 아니다. 에너지 정책에서는 이미 이런 상황이 고려되었어야 한다.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는 목적이 이러한 급변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여년의 우리 에너지정책은 LNG를 지속적으로 늘렸다. 민간발전사 우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의 안정화 등은 결국 LNG 발전량의 증가로 이어졌다. 온실가스 간접배출분을 포함하면 석탄발전과 LNG발전은 비슷한 수준임에도 석탄발전을 퇴출시키고 LNG발전을 늘린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탈원전 정부에서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인 것도 재생에너지보다는 LNG 발전소 증가로 이어졌다. 천연가스 공급의 취약성 그리고 액화천연가스의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빈번하다는 사실은 당연히 에너지 정책에 반영되었어야 할 것들이다. 지금 제시되고 있은 대응책은 석탄발전량과 원자력발전량을 늘리는 것이다. 석탄발전은 석탄발전량 80% 상한제를 해제하면 늘일 수 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량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법률과 규제가 허락하는 최대치로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자력발전량을 더 늘리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원전가동률은 80% 수준이지만 더 오래된 원전을 운영하는 미국의 가동률은 90%가 넘는다. 원전 1호기당 불시정지횟수 등의 안전운전을 확인할 수 있는 간접적인 지표들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동률이 낮은 것은 규제의 문제이다. 규제의 문제는 규제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규제는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규제기관이 강하면 규제의 수준은 높아진다. 더 안전해진다고 볼 수 있다. 사업자가 강하면 규제의 수준이 낮아 지지만 경제성은 더 좋아진다. 이 양자의 팽팽한 밀고 당김이 당사자에게는 피곤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최적의 안전성과 최고의 경제성을 얻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통제 본능이 있다. 즉 감독자는 피감기관을 점점 더 감독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통제의 욕구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검토하여야 한다. 30년쯤 전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원자력발전사업자인 당시 한국전력이 구매하는 핵연료에 대해 검사하고 검사필증을 부여하였다. 문제가 있는 핵연료를 구매하면 운전상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는 어련히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인수검사의 차원에서 검사할 것이었다. 그러나 규제담당자는 한사코 해당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후 검사필증을 부여했던 핵연료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규제를 폐지했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폐지하는 과정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당 규제자의 밥줄 또는 다른 전문성의 부재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 원자력발전소 정기점검중 규제기관의 입회가 필요한 시점에서 규제자가 빨리 입회를 하거나 정기검사를 마치고 재가동 승인을 하는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으로 안전성을 훼손하지 않고 가동률을 높일 방안이 있을 것이다. 계속운전 심사 때문에 멈춰있는 원전이 있다면 심사를 가속할 방안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기술적인 규제는 그대로 두더라도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것 등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또 미국은 어떻게 하길래 가동률이 90%가 넘는지를 보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면 원자력계는 이에 부응하여야 한다. 정범진

[EE칼럼] 신규 원전 부지는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지난 1월 21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다는 응답률이 60.1%, 60.5%, 기존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신규원전계획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69.6%, 61.9%라는 두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 정책을 뒤집으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신규원전 건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침내 1월 26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제11차 전기본의 신규원전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한국수력원자력은 1월 30일 신규원전 2기와 소형원전 1기의 부지 확보를 위한 유치공모에 착수하여, 희망하는 지자체는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아 3월 30일까지 신청하도록 공지하였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하였다. 풍경 하나. 2003년 7월 22일 전북 부안군 수협 앞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 '핵폐기장 반대 부안군민 궐기대회'를 열었다. 단상에는 삭발을 한 여성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1990년 안면도, 1994년 덕적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다 실패한 정부는 2003년 울진, 부안 등 7개 지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핵폐기장 부지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7월 2일 부안군의회는 유치신청을 부결시켰으나 7월 14일 부안군수가 산자부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7월 24일 산자부는 부안군 위도를 최종후보지로 발표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초중학생 등교 거부와 주민결의대회, 차량시위, 해상시위, 삼보일배 등 반대 운동을 확대해나갔다. 정부의 강행과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는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절정에 달했다. 정부는 주민투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선관위가 선거 관리를 거부하여 투표는 민간의 주관으로 시행되었다. 2004년 2월 14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91%의 반대가 확인되었다. 새로운 부지를 물색하던 정부는 2005년에 '3000억 + α'라는 지역지원 대책을 내세워 포항, 영덕, 군산 세 곳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한 뒤 89.5%로 찬성률이 가장 높은 경주를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결정했다. 풍경 2. 2014년 8월 20일 김양호 삼척시장은 원전건설 신청 철회를 위한 주민투표 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그해 6월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시장의 공약이었다. 전임시장은 '원전건설은 국가사무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는 안전행정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주민투표를 반대하다 그해 선거에서 현 시장에게 패했다. 삼척시민들은 삼척핵발전소 유치백지화 투쟁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반대 활동에 돌입했다. 원전 유치를 추진해온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2012년 10월 31일 실시되었으나 정족수 미달로 개표도 하지 못하였다. 삼척시의 주민투표 요구는 2014년 9월 1일 안행부의 '국가사무' 유권해석을 내세운 삼척시 선관위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삼척시는 2012년 10월 석탄화력발전소 유치를 추진하던 경남 남해군이 주민투표를 실시해 사업을 백지화한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결국 민간기구들이 중심이 되어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10월 9일 주민투표에 들어갔다. 투표에는 67.9%의 유권자가 참석하여 84.9%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주민투표가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무시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원전 건설 추진은 어려워졌고, 5년 뒤인 2019년 5월 31일이 되어서야 산자부가 전원개발사업추진위원회에서 삼척시 대진원전 예정구역 지정 철회를 의결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불과 21세기 20년 동안 이런 전철을 겪고도 이번에 한수원이 공지한 후보부지 유치 공모를 보면 자치단체장이 해당 지방의회의 동의서를 첨부하여 신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 지원 대책을 내세워 주민들을 달래려 할지는 모르겠으나 원전 건설은 주민들의 생명 및 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사항이므로 주민투표를 통해 의견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 설령 신청은 현재 공지한 대로 받더라도 후보지 결정 과정에서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현지의 갈등과 대립을 줄이고 정책 수행 과정도 원활해질 것이다. 정부가 여론조사를 내세워 원전 건설을 추진하려면 다음 질문이 들어갔어야 마땅했다. “귀하가 사는 지역에 원전을 건설한다면 찬성하시겠습니까?" 신동한

[EE칼럼] 호르무즈 위기와 에너지전환의 새로운 조건

중동 정세가 긴장되면서 국제 에너지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통로 가운데 하나로, 이 해협을 통해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 해상 원유 거래량의 약 25%가 이동한다. 또한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지난다. 좁은 해협 하나가 원유와 천연가스를 동시에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르무즈는 세계 최대 에너지 요충지이자 대표적인 병목지점(chokepoint)으로 평가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국제유가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에도 국제 원유 가격은 여러 차례 급등했다. 1970년대의 석유위기는 공급 충격이 중심이었다. 산유국의 실제 공급 감소폭은 제한적이었지만 당시 국제 사회는 석유 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대체 수단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네 배 가까이 상승했다. 당시 위기의 핵심은 공급량 자체보다 공급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반면 2008년 국제유가 급등은 다른 구조였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원유 수요가 빠르게 증가했고, 여기에 금융시장 자금이 유입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147달러까지 상승했다. 공급 감소보다 수요 확대와 금융 요인이 가격 상승을 주도한 사례였다. 즉 1970년대의 유가 상승은 공급 중심 충격이었다면, 2008년은 수요 압력이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이 두 사례와 모두 다르다. 공급 차질 가능성과 함께 공급망 전체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원유뿐 아니라 LNG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중동산 LNG는 아시아 시장의 핵심 공급원이며, 이 경로가 흔들리면 한국과 일본, 중국 같은 LNG 수입국의 전력 생산 비용도 직접 영향을 받는다. 동시에 선박 보험료 상승, 우회 항로 확대, 운임 증가가 발생하면 석유화학 원료와 산업용 자재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움직인다. 즉 현재의 에너지위기는 특정 연료의 가격 문제가 아니라 원유, LNG, 해상운송, 전력 생산 비용, 산업 원료 가격이 함께 연결되는 복합적 에너지 시스템 충격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외부 충격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다. 또한 우리 산업의 핵심인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은 에너지 가격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같은 국제 연료 가격 상승이라도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생산비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난다. 국제 연료가격 상승이 산업 경쟁력 문제로 직결된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단기적인 공급 충격으로만 볼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이라는 장기적 과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 에너지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에너지복원력(energy resilience)이다. 이는 단순히 연료를 더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공급망 충격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World Energy Outlook」에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시스템의 복원력이 에너지정책의 핵심 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복원력 있는 전환(resilient transition)이라는 개념도 중요해지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목표는 유지하되, 외부 충격이 반복되더라도 전환 자체가 중단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저장장치, 송전망, 전략비축, 수입선 다변화가 함께 논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반복되는 공급 충격 자체가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수입 화석연료 의존 구조는 외부 충격이 반복될수록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반대로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전원과 전력망 유연성은 장기적인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Reuters 등 주요 국제 언론은 이번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냈으며, 에너지전환은 더욱 견고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큰 경제에서는 공급 안정, 가격 관리, 산업 경쟁력, 탄소 감축이 동시에 고려될 수밖에 없다. 단기적 대응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이라는 방향을 유지하면서 시스템의 복원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위기가 의미하는 것은 더 많은 연료를 확보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 충격 속에서도 전환의 방향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번 위기가 시사하는 에너지전환의 새로운 조건이다. ekn@ekn.kr

[EE칼럼] K-원전 수출은 기술 전쟁이 아니라 ‘금융·외교’ 전쟁이다

'기술 역량'의 단계를 넘어 '금융 역량과 'PPA 전략'으로 승부할 때 최근 이재명 정부의 국내 원전 2기 추가 건설 결정은 침체돼 있던 원전 생태계 복원은 물론 해외 원전 수출 전선에 강력한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제 시선은 해외로 향한다. 체코를 넘어 미국, 베트남, 튀르키예, 사우디, 폴란드까지 K-원전의 영토 확장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이제 원전 수출은 '누가 더 안전하게 짓는가'라는 기술 경쟁을 넘어, '누가 더 유리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설계하는가'라는 금융·계약·외교의 총력전으로 전장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기술력은 이미 '상수(Constant)', 변수는 금융 주권이다 대한민국 원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On time, Within Budget, With Proven Quality'**를 입증한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의 성공은 이를 전 세계에 증명했다. 하지만 원전은 건설 기간만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초(超) 자본집약적 사업이다. 수십 조 원에 달하는 건설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원전 총사업비의 대부분이 건설 기간 중 투입되며, 균등화발전비용(LCOE)에서 금융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35~45%에 달한다. 이 구조에서는 자본조달비용(WACC)을 1%포인트만 낮춰도 LCOE를 약 7~10% 이상 절감 효과와 Project IRR을 최대 1%까지 높일 수 있어 가격 경쟁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핵심 열쇠가 되며, 이는 곧 수주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 국가는 단순한 수출금융(ECA)지원을 넘어, 정부보증, 후순위 대출, 수익보장 장치(CfD, RAB), 장기 저리 자금 조달 구조를 정책 패키지에 제공한다. 즉, 해외 원전 발주국 질문은 명확하다. “누가 더 싼 돈으로,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이 아니라 금융 구조다. 금융 주권 확보를 위한 정부의 결단과 PPA 전략 정부는 이제 원전 수출을 단순한 산업 지원이 아닌 '국가 안보' 차원의 금융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의 자본금을 확충하고, 'K-원전 펀드' 조성 등 파격적인 금융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원전을 우리 돈(금융)으로 제어하고 수익을 가져오는 권리인 금융 주권을 확보하여야 한다. 특히 금융 조달의 담보가 되는 전력구매계약(PPA, Power Purchase Agreement) 전략이 중요하다. 정부가 상대국가와 협상을 통해 미리 원전 건설 전, 60년 동안 생산할 전기를 누가 얼마에 살지 도장을 찍어 두는 안정적인 PPA 체결을 보증하고 신용을 보강해준다면, 원전 금융은 단순한 대출을 넘어 향후 60년 이상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국가적 자본 주권의 초석이 될 것이다. 글로벌 표준인 '단일 수출 기구' JV 구성 시급 글로벌 시장의 경쟁자들은 이미 국가 차원의 단일 대오를 갖추고 있다. 러시아의 Rosatom, 중국의 CNNC와 CGN, 그리고 프랑스의 EDF는 모두 국가가 주도하는 단일 수출 기구를 통해 설계부터 금융, 시공까지 통합 대응하고 있다. 우리 역시 한전, 한수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및 민간 시공사가 결합한'통합 원전수출 합작법인(Joint Venture)'을 구성해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원전 수출이라는 거대 함선을 지휘할 단일화된 책임과 권한을 가진 통합 기구가 출범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수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금융의 물꼬가 곧 수출의 물꼬다 올해 이재명 정부 출범하면서 원전 실용주의에 방점을 두고 있어, 대형 원전은 물론 소형 원전에서도, 해외 수주영역 확대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어, 원전 수출의 다시 오기 힘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도래하고 있다. 원전 수출 관련 공기업과 주기기 제작 및 시공사는 '원팀'으로서 통합 팀 코리아JV로 결집하고, 정부는 이념과 진영을 초월한 범국가적 협력과 지원으로 후대의 백년 먹거리인 원전 수출의 기회를 반드시 움켜쥐어야 한다. 이제 K-원전 수출은 공학의 영역을 넘어 경제와 외교가 맞붙는 총력전이다. 우리가 기술 강국을 넘어 '금융·외교 강국'으로 체질을 개선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진정한 원전 수출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EE칼럼] 청와대가 에너지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돼야 한다

이란전쟁이 길어지면서 중동산 원유와 기타 산업용 원자재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원료가스, 비료 생산용 암모니아, 석유화학 원재료 등이 중동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태를 대비한 정부 차원의 전략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이란전쟁와 관련해 반도체 기업들이 사용하는 가스 수급이 문제다. 헬륨가스는 반도체 핵심인 웨이퍼를 냉각하는데 사용된다. 지난해 국내 수입량의 65%가 호르무즈 해협쪽에 있는 카타르에서 공급 받았다. 그런데 최근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플랜트 시설이 이란의 공격을 받아 멈췄다. 이 뿐만 아니라 농업분야에서 사용되는 질소 비용인 암모니아와 인산비료의 원료인 황의 주요 수출국은 대부분 중동 국가들로 원유와 LNG를 정제하고 처리하는 과정의 부산물로 생산된다. 요소 수출량의 35%, 황의 45%가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한다. 더 중요한 것은 석유화학의 핵심 원재료인 나프타 수입이다. 국내 나프타 재고는 1개월 물량도 안된다. 석유화학은 통상 원유를 정제해 제조한 나프타를 NCC(나프타 분해 시설)에 투입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생산한다. 그런데 최근 2~3년 간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에틸렌 가격이 급락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구조조정이 단행 되었다. 국내 나프타 공급량 중 절반은 국내 정유사가 생산하고 나머지를 수입하는데. 수입량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들어온다. 문제는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대책으로 첫째, 다변화가 필요하다. 중동 아닌 미국이나 인도 등에서 확보하는 외교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국내 나프타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 이번 이란전쟁이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해 온 반도체, 석유화학, 배터리 등의 성장에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중동 위기가 길어지고 원료 생산 시설이 파괴되는 상황과 이 후 복귀까지를 대비해 제1, 제2 전략 뿐만 아니라 단기, 중기, 장기 마스터 플랜도 마련되어야 한다. 또 정부는 이번 이란전쟁에서 원유 수급과 가격 상승에 따른 대책만을 집중해 생각하는데 자세히 보면 가스 도입도 문제다. 가스는 국내 전력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전력망을 떠받치는 LNG 공급망이 문제다. 국내 전력 시스템의 상당 부분은 수입 LNG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계약된 물량의 가스가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전력사들은 가격이 급등한 현물시장에서 대체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가스 발전은 가정용 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조, 첨단 전자제품 생산과 데이터센터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장은 전력 비축 물량과 LNG 교역의 가격 탄력성이 공급 차질의 기간을 제한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란전쟁이 장기화 되면 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취약성은 원유 뿐만 아니라 가스에도 있는 만큼 전력망과 산업 엔진을 움직이는 가스 공급에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자동차의 경우 중동 내 판매 감소 및 물류 불안으로 수출 차질이 예상되며 연료비 급등으로 인한 자동차 판매 감소도 우려된다. 항공 분야는 중동 항공사 운항 중지로 유럽행 항공 노선 공급석 감소가 우려 되며, 특히 유류비 증가로 항공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번 이란전쟁으로 우리나라 에너지 위기관리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이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 기능을 이관 받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움직임은 산업통상부 만큼 크게 움직임이 없다, 이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급 및 안보 업무는 산업통상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란전쟁 이 후 산업부는 긴급 대책반을 가동해 석유와 가스 수급 상황을 비롯한 비축유 방출 및 대체 물량 도입 등 에너지 전반의 현안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기후에너지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기후에너지부가 이재명 정부의 부처 조직개편에서 기후와 환경, 에너지 정책 등을 총괄하는 공룡 부처로 출범 했지만 이란전쟁 같은 상황이 발생할 시 에너지 위기관리 대응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석유.가스 등 자원산업과 원전 수출 정책 기능은 산업부에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이란전쟁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중요한 현안 문제다. 봉쇄가 장기화 될수록 에너지 수급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따라서 정부는 현상황을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청와대가 직접 컨트롤 타워가 돼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문 총력 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 정부의 발빠른 대응만이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ek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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