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2026년 다보스 포럼이 보여준 에너지 의제의 이동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매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은 국제사회의 문제 인식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 중 하나다.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대화의 정신(A Spirit of Dialogue)'이라는 주제로 각국 정상과 기업·국제기구 관계자 등 약 3,000명이 참석한 2026년 다보스 포럼에서 확인된 가장 분명한 변화는 에너지와 기후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축이 더 이상 '이상적인 전환'이 아니라 '안보와 회복력'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다보스의 에너지 논의는 탄소중립 목표, ESG 금융, 재생에너지 확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2026년 포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키워드는 공급 안정성, 지정학 리스크, 자국 중심의 에너지 전략이었다. 이는 기후 의제가 후퇴했다기보다는, 에너지 전환이 더 이상 안보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국제사회 전반에 확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변화는 기후 의제가 밀려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2026년 다보스 포럼은 '기후 vs 에너지 안보'라는 이분법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다수의 정부 관계자와 글로벌 기업들은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방향이 국가 안보, 산업 경쟁력, 사회적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력망의 안정성, 연료 공급의 다변화, 핵심 광물과 원자재 공급망 관리가 기후 목표만큼이나 중요한 전략적 의제로 다뤄진 것이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에너지 전환이 시장 논리가 아니라 안보 전략의 일부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이는 에너지 정책이 더 이상 환경 부처나 산업 부처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외교·안보 정책과 긴밀히 결합되고 있는 경향을 보여준다. 공급 안정성과 지정학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면서, 에너지 분야에서는 '전략적 자율성' 담론이 또 하나의 핵심 변화로 떠올랐다. 2026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공급망의 글로벌화가 언제든 지정학적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었고, 이에 따라 에너지와 자원 분야에서의 자국 생산 확대, 우호국 중심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주요 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역시 국제 협력의 붕괴를 의미한다고까지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2026년 다보스 포럼에서 나타난 흐름은, 보편적 규범 중심의 협력에서 '선별적이고 전략적인 협력'으로의 이동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에너지 전환과 공급망 안정은 여전히 국제 공조 없이는 달성될 수 없지만, 그 방식은 훨씬 더 정치적이고 선택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섬'인 한국에 특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2026년 다보스 포럼이 보여준 국제 의제 변화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 역시 '전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자, 동시에 지정학적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국가 전략이어야 한다. 에너지 믹스, 전력망 투자, 해외 자원 협력, 그리고 동맹과의 에너지 협력이 하나의 전략적 패키지로 재정렬될 필요가 있다. 2026년 다보스 포럼은 에너지 전환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기후 위기와 지정학적 불안정이 동시에 심화되는 이 시대에, 에너지 정책은 이미 국가 생존 전략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이제 질문은 “에너지 안보 전략 위에서 어떻게 에너지 전환을 설계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속도가 조정될 수도 있고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보를 외면한 전환은 지속될 수 없고, 전환을 외면한 안보 역시 장기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26년 다보스 포럼은 바로 그 현실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고 하겠다. bienns@ekn.co.kr

[EE칼럼] 충분한 전력 확보 위해 시간과 공간도 고려해야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마션'은 화성에 홀로 남겨진 NASA 우주인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생존하여 지구로 돌아오는 내용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화성 우주 기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는 물, 공기, 감자와 같은 재배 가능 식물 등 얼마 안 되는 각종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마크 와트니가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원은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주어진 시간과 좁은 공간 속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충분한 전력의 확보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 필수적 고려사항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도 최근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하기로 확정하고 부지 선정 작업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과 공간이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10년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천지 원전을 추진하였던 영덕을 비롯해 울진, 울주 등 여러 곳이 신규 원전 부지를 유치할 것으로 전망되어 부지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므로 신규 원전은 지금부터라도 당연히 추진해야 할 옵션이다. 좁은 국토에서 불과 몇 년 후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발전설비의 건설과 함께 필요한 것은 전력망의 건설이지만 현재 전력망의 건설은 곳곳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강원지역에서 백두대간을 건너 수도권으로 연결되는 HVDC와 하남시 변전소 건설이 늦어지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 전북과 충청권을 거쳐 수도권 반도체 단지로 연결되는 전력망의 건설도 아직 불투명하다.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송전망도 2029∼2038년까지 호남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중 수도권으로 전력이 제대로 공급되는 시기는 2030년 중반 이후로 예상된다. SMR은 공간을 아낄 수 있고 또 추가적인 송전망 건설 없이 반도체 단지나 데이터센터에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직 SMR 모델과 안전규제 프로토콜이 확정되려면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인근 주민들의 동의 같은 입지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말이다. LNG 발전소는 어떤가? 건설 기간은 4년 정도 예측해야 한다. 그렇지만 최근 가스터빈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AI에 따른 전 세계 전력 부족으로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이 급증하여 지금 주문을 넣어도 GE, 미쓰비시, 지멘스 등 빅 3는 2030년 이후에나 납품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공급 부족으로 가스터빈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두산 에너빌리티는 호황을 맞고 있다. 이런 점에서 4년 후라는 전제를 둔다면 LNG 발전소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수도권에 추가로 지을 수 있는 발전설비는 수도권의 좁은 지역에서 높은 밀도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도권이 발전설비가 입지하기 어려운 지역임을 감안하여 주민 수용성이 좋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LNG를 이용한 열병합 발전설비는 지역난방을 통해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지역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비용도 고려해야 하나 연료전지를 통한 발전과 열의 공급은 시간을 앞당길 수 있고 공간도 적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에 따른 일시적 전력부족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된다. 이미 그 틀이 잡힌 에너지 전환의 시간 제약 안에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시간표를 다시 짤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석탄발전소의 문을 닫는 시간이 연장된다. 이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석탄발전소의 남은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유력한 방안이다. 전력 공급을 위해 모든 선택지를 다 검토할 수밖에 없다. 조성봉 bienns@ekn.kr

[EE칼럼] 에너지 전환의 그늘: 취약한 광물·원자재 공급망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1986년 말 석유 위기가 종식되자마자 국내 유일 부존 에너지원이던 무연탄 산업을 합리화한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률이 50% 수준에서 3% 수준으로 급락하였다. 에너지수입의존도는 1997년 98.3%까지 상승하였으며 30여 년이 지난 2024년에도 93.6%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 덕분에 세계에너지협의회(WEC)의 2024년 보고서에 평가된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정 공급(Energy Security) 부문의 점수는 세계 50위권 수준이다. 그런데 높은 수입의존도 문제는 광물 등 원재료 부문으로 가면 더욱더 심각해서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주요 원재료 수요의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공급망(supply chain) 이슈이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무역분쟁에 더하여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우리나라의 공급망 문제를 더욱 심각한 문제로 만들 수 있다. 정책의 미래가 더 많은 광물과 원재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에너지전환정책은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설비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설비로 바꾸는 단계와, 전기의 생산 방법을 이른바 '탄소중립발전'으로 전환하는 단계 등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경제학 분석에서 자주 사용하는 생산함수의 형태로 바꾸어 보자. 일반적인 생산함수에 사용하는 주요 투입 요소로는 자본(K), 노동(L) 및 에너지(E)와 원재료(M) 등이 있다.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방식에서 전기로 전환하는 단계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사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두 생산품의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K, L, E, M 간의 변화는 매우 적다. 그러나 늘어난 전기자동차에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의 변화는 매우 다르다. 화석연료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이 증가하는 것은 전기의 생산과정에서 에너지(E)가 물질(M)로 대체되는 과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알루미늄, 실리콘, 구리 등과 원자력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은 물론 배터리 등 전력저장장치의 생산에 필요한 광물수요 역시 많이 늘어난다. 또한 전기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추가적인 전력 생산과 송배전에 필요한 구리와 철 등의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또한 화석연료 발전시설에 비하여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초기 자본(K)이 많이 투입되지만, 시설을 가동하기 위한 비용은 적게 드는 형태임을 고려하면, 에너지전환정책은 국가 단위의 에너지 생산과정에서의 투입 요소가 에너지(E)에서 물질(M)과 자본(K)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2019년 유럽의 탄소중립 선언 직후에 출간한 『Net-Zero Europe』보고서에서 유럽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탄소중립발전이 44%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현재 총에너지소비 중 21% 수준인 전력이 50%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고 또 이를 탄소중립발전으로 공급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산업, 상업, 가정에 있는 에너지 사용설비 역시 상당 부분 교체될 것임을 의미한다. 여기에 필요한 광물과 원재료의 양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광물 및 원재료의 공급망 문제가 매우 중요한 정책 이슈로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은 에너지 쪽보다 광물과 원자재 쪽이 더욱 취약하다. 이러한 구조적인 이슈는 정부의 재정과 예산 및 정부 구성에 아직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행인 것은 광물은 재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우리나라는 철은 물론 비철금속 분야의 리사이클링산업이 잘 발달하여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하지만 옆 나라 일본은 광물 등 원재료의 확보와 재활용 부문에서도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있다. 유명한 대기업 상사조직들이 여전히 국제적으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자원은 미쯔이, 전력은 마루베니, 그리고 모두 다 잘하는 미쓰비시 등 여러 대기업 상사조직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도 상당하다. 일본은 왜 대기업들이 정부의 지원과 제도를 통하여 이 부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정부는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의 종점이 어떠한 모습일지 세밀하게 예측하고 분석하여야 함은 물론 구성원 모두가 차근차근 함께 준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허은녕 bienns@ekn.kr

[EE칼럼] 대규모 정전… 에너지 고속도로와 가스 터빈 발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61% (2023년 기준)인 스페인에서 2025년 4월 28일 대규모 정전 사태가 있었다. 스페인 전력망 공사는 대정전 사태 이후 유사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강화된 관리 체계를 시행하였는데 2025년 5~10월간 천연가스를 이용한 복합화력 발전량이 2024년 동기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었다. 2021년 여름 영국에서는 이 전년도 평균 9.1m/s이던 풍속은 2021년 7월 5.7m/s에서 9월 약 3m/s로 떨어졌었다. 이 풍속의 저하로 풍력 발전이 감소하여 출력 변동성 대응에 활용하던 가스 발전의 출력을 높혀 전력량을 확보했었다.영국 가스 발전량의 증가는 천연가스 가격을 그해 12월 6배까지 오르게 하였다. 천연가스 요금의 폭등은 다음 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10배로 오르는 결과로 진행되었었다. 전력망 안정과 천연가스 수급 관리는 국가 에너지 안보상 전략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가스터빈 발전기가 유연성 전원으로 활용되는 데는 기계공학적인 특성 때문이다. 터빈엔진은 고온 고압의 기체를 금속 회전체에 부착된 터빈 블레이드로 분사하며 동력을 얻는 방식인데 증기터빈은 그 기체가 물을 가열한 고압 증기이며 가스터빈은 압축공기에 연료(천연가스)를 분사하여 연소한 기체란 점이 다르다. 증기터빈은 물의 상태 변화를 사용하여 열 에너지에서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장치로 보일러, 배관, 드럼 등 열저장체가 있고 출력 증가를 위해 증기를 만들어내야 하므로 열적 관성(Thermal Inertia)이 높아서 반응 속도가 늦다. 반면 가스 터빈은 연료가 기체 형태여서 분사, 혼합, 연소 제어가 빠르다. 회전체 동력 출력제어는 연료밸브의 개폐로 조절이 가능한데 마치 자동차의 가속기를 밟으면 바로 속도가 높아지는 것과 같다. 자동차 엔진과 가스터빈 엔진과의 차이는 자동차 엔진은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크랭크 샤프트 같은 장치가 있어 복잡하고 작동 시 소음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유연성 전원으로는 전기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ESS)도 있는데 반응 속도는 빠르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어서 저장 용량에 의해 수요 대응 역량이 제한된다. 대규모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전력 발전량이 전력 수요를 넘어서 전력 수요/공급 균형이 깨지는 경우 전기저장장치는 잉여 전기를 저장하고 추후 사용함으로 출력제한의 손실을 방지하는데 유용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같이 도심 지역에 대규모 수요처에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력 공급하면서 기존의 전력망에 영향을 주지 않는 독점적인 전력선으로 송배전망을 구성하려고 하는 것이 에너지 고속도로라 할 수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와 함께 전기저장장치와 전력 발란스 제어 시설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니 투자 규모는 커지며 장기적인 사업 기간이 요구된다. 한편, 가스터빈 발전은 송배전망 증설 없이 수요처에서 건설 운영이 가능하고 소형 모듈향원자로(Small and Medium Reactor: SMR)에 비해 주민 수용성 면에서 유리하며 단기적 실행이 가능한 방안이 된다. 최근의 피지컬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 양상을 보면 제조업 부문에서 근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에너지만 투입되면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된다. 전력 수요 패턴 면에서 현재와 전혀 달라지는 양상이 예상된다.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생산 라인이 아니라 24시간 365일 운전되는 공장이 가동된다면 상시적 에너지 수요를 위해 공급의 안정성이 더욱 중요해 진다. 이 경우 제조사들은 스스로 전력원을 설치 운영하는 것이 더 경제성이 있게 될 것이다. 전력 가격과 천연 가스 가격 차이에 따라서는 가스터빈 발전기를 설치하고 상시 운전으로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중장기 목표를 달성하는데도 가스터빈 발전은 단기적으로 열병합 운전 시 에너지 소비량 대비 온실가스배출계수는 현재보다 50% 이상 줄일 수 있으며 중기적으로는 수소 혼소를 통해 추가 감축이 가능하다. 문제는 온실가스감축 제로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부터 무탄소 전력망 인프라 투자로 방향을 잡는 다면 앞으로 10-20년간의 국제 시장에서의 한국의 경쟁력 우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불확실성이다. 전 세계 무역 시장의 구조가 재편되는 시기에 한국 제조업의 탄소중립의 길은 원리적인 접근이 아닌 실용적이어야 할 것이다. bienns@ekn.co.kr

[EE칼럼] 세계적 전력공급 부족의 원인

미국 PJM이 지난달 실시한 용량 경매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이 경매는 미국 13개 주와 6,500만 명에 공급할 피크 전력 자원 가격을 결정한다. 2027~2028년 공급용량 가격은 16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로 인해 2026년 일부 PJM 고객 전기요금이 최대 5% 상승할 것이며 추가 상승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전기요금 상승 요인은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급증에 기인한다. PJM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최대 수요가 32기가와트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 중 2기가와트를 제외한 전량이 데이터 센터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급용량 충족은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7월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전력 공급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2030년 광역정전 위험이 100배 증가할 것이라 경고했는데 209기가와트의 신규 발전용량 중 기저발전이 22기가와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신뢰성 위험요소로 짚었다. 에너지부가 또 하나 지적한 중요한 점은 104기가와트의 기저 용량 폐지 경고였다. 이 안정적 공급원을 적시에 대체 없이 폐지하게 되면 풍력과 태양광이 기대했던 전력을 공급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정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 미국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발전소를 총동원해 공급부족에 대응하고 있음에도 전력수요 충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 공급부족은 바다 건너 유럽에서 먼저 경고등이 켜졌다. RWE 마르쿠스 크레버 CEO는 2024년 11월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도매전력가격이 메가와트시 당 800유로 이상 상승한 이유로 바람과 햇빛이 없는 '둥켈플라우테'를 메꿀 전력 공급원이 10기가와트 이상 부족한 상황을 언급하며 공급 안보 구축을 위해 발전소 용량을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과 독일은 실제로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으로 기존 발전소를 다른 안정적 대체원 없이 폐지하면서 이를 태양광 풍력발전용량 증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건 정전위험과 전기요금 상승이었다. 결국 2023년 탈원전을 감행한 독일의 선택은 2031년까지 석탄발전 폐지 금지와 함께 10기가 이상의 가스발전소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올해 4월 대정전이 발생했던 스페인은 아예 '안전모드'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출력을 크게 줄이고 이를 기존의 가스 발전으로 메꾸고 있는데 산체스 정부는 이 안전모드를 2026년 내내 운용할 예정에 있다. 스페인의 이베르드롤라와 엔데사는 알마라즈 원자력발전소 수명연장을 신청했는데 이들은 정부가 연장을 허가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신규용량 확보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적해있다. 빠른 건설이 가능한 가스발전소의 경우 공급망 비용상승으로 건설비용이 3배 이상 올랐으며 가스 터빈 보틀넥으로 대기시간이 최대 7년 소요될 수 있다. 신규 원전 역시 인허가부터 건설까지 10년이 걸리며 SMR은 당장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재생에너지를 24시간 365일 초단위 정전도 용납하지 않는 데이터센터의 연료로 생각하는 사업자는 거의 없다. 결국 세계는 기존 발전소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 사회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는 중국 에너지 정책 대원칙인 선립후파(先立後破)와 일맥상통한다. 2024년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수석 협상가 쑤웨이는 이 원칙을 설명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기도 전에 전통 에너지를 퇴출하는 것을 경계한 바 있다. 중국은 기존 발전소를 유지하면서 올해에만 80기가와트의 신규 석탄발전을 승인했다. 전력수요 급증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공급부족의 원인은 하나같이 신뢰할 수 있는 기존 발전소의 대안 없는 폐지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유일하게 탈원전과 탈석탄, 탈가스를 한꺼번에 실행하려 하고 있으며 이를 간헐성 자원인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발 정전 위험 해소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한국은 단 하나의 기존 발전소도 함부로 성급히 폐지해서는 안 된다. 이 간단한 교훈을 잊은 세계는 전력부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EE칼럼]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신뢰와 실행으로 함께 해야

우리나라 원자력이 한동안 지속된 진영싸움의 볼모에서 벗어나, 이제는 현실과 필요에 기반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것 같다. 에너지 사용의 전기화와 AI·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수요는 과거의 예측 범위를 넘어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와 산업경쟁력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안전성이 확인되는 가동원전의 계속운전과 함께 신규원전 건설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원전의 필요성과 안전성, 건설 필요성에 대해 국민의 높은 지지가 확인된 점도 정책 추진의 사회적 기반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핵추진 잠수함 관련 합의는 원자력 산업기반을 한 단계 격상시킬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정부와 에너지 산업계의 첫 과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의 설계'로 다루는 것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전기요금 안정은 어느 하나만 강조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원자력은 기상 조건과 무관한 안정적 전력 공급과 계통 안정성에 강점을 갖고, 재생에너지는 분산형 전원 확대와 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 하락 가능성을 지닌다. 핵심은 이 둘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통의 현실과 산업경쟁력을 고려하여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있다. 정부는 단순한 발전원 비중 목표를 넘어 예비력, 저장, 수요관리, 송전망 확충을 포함한 통합적인 전력시스템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인허가·규제·지역수용성 문제를 '시간 비용' 관점에서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안전규제는 최신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최적화하고, 사업 추진 과정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기준과 일정이 불확실한 상태가 이어지면 투자도, 지역사회 신뢰도 쌓기 어렵다. 정부는 설계와 운영 안전성을 철저히 확보하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주민소통을 제도화해 갈등을 사후에 수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중간저장과 최종처분의 로드맵을 국가 책임의 관점에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원전 생태계의 산업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원전산업은 건설뿐 아니라 설계·제조·연료·정비·해체까지 이어지는 장기산업이다. 공급망과 인력은 한 번 흔들리면 복원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규 원전 건설 재개라는 중요한 신호에 이어, 혁신기술 R&D와 인력 양성, 핵심부품 공급망, 수출 금융과 국제협력까지 포함한 산업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원자력의 미래는 기술경쟁력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산업 운영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리더십 강화를 위해 원전 수출의 리더십과 책임체계를 정비하여, 사업 추진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불필요한 갈등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또한 원전 건설·운영에서 민간기업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고, 특히 SMR의 사업화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양날개' 전략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편 원자력계가 할 일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국민 신뢰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안전은 전문가 내부의 확신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므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고에 대비해 어떠한 대응체계를 갖추었는지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언어와 데이터로 설명해야 한다. 질문을 피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신뢰를 만든다.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현실화하기 위한 원자력 연구계와 학계, 산업계의 체계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원자력계가 지혜를 모은다면 정말 어렵게 마련된 기회가 결실로 이어져서 에너지 및 국가 안보 기반을 크게 강화시킬 것으로 믿는다. 재생에너지와의 협력은 구호가 아닌 실무로 보여줘야 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를 위한 상호보완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면,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 산업계의 동반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 믹스의 최적화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결정은 출발점이다. 이제 정부는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원자력계는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실행력을 증명해야 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활용하는 길은 어쩔 수 없는 타협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bienns@ekn.co.kr

[EE칼럼] 에너지고속도로의 필요성, 제주 출력제어 횟수가 말해준다

최근 RE100 산단 이전 논란과 더불어 이번 정부의 핵심 구상인 에너지고속도로 역시 덩달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주로 지산지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에너지고속도로를 짓기 보다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RE100 산단 등 더 많은 생산시설을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산지소와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은 필자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런 논의에서 에너지고속도로가 단순한 '송전망 확대 사업'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는 현 시점에서 에너지고속도로의 의미는 훨씬 본질적이다. 재생에너지의 높은 변동성과 간헐성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특정 지역에 고립될 때보다 오히려 전국 단위에서 실시간으로 순환될 때 더 비용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연간 몇 GW인지를 따지는 '설비 용량'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의 가장 큰 병목은 재생에너지와 연결된 계통이 이를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이다. 정부는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하며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2035년 37%로 제시했고,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역시 2024년 누적 34GW에서 2035년 140GW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현재 많은 지역에서 계통 미비로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의 계통 접속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조치는 전력망 증축과 계통 안정화 투자이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과 기후 의존성으로 인해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가 빈번한데, 전력은 순간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면 계통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이 구조적 긴장을 해소하지 못하면 잦은 출력제어는 불가피하다. 제주도는 이러한 현실을 가장 먼저 경험한 지역이다. 제주에서는 이미 2023년에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전체 전력 설비의 40%를 넘어섰고, 일부 기간에는 전력 공급의 60% 이상을 재생에너지가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의 부작용으로 출력제어가 빈번히 발생했다. 실제로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2021년 61회, 2022년 132회, 2023년 181회로 해마다 급증했고, 2024년에도 83회의 출력제어가 발생했다. 계통 및 유연성 자원 보강 속도가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그러나 이 흐름은 2024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급변했다. 완도–동제주 간 제3해저연계선 HVDC가 본격 운영에 들어가면서, 2025년 이후 현 시점까지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제3연계선은 총 98km 구간으로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는데, 앞선 두 연계선과는 달리 양방향 실시간 송전을 가능하게 했다. HVDC 개통 전에는 제주에서 육지로 송전할 수 있는 전력이 시간당 30MW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완도–동제주 HVDC가 가동된 이후에는 이 용량이 180MW까지 확대되었다. 남는 전력을 즉시 외부로 보내고, 필요 시 다시 받아오는 구조가 마련되면서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해소된 것이다. 동시에 제주도에만 시범적으로 도입된 재생에너지 가격입찰과 실시간 도매시장 역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출력제어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HVDC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은 육지 계통에서는 출력제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육지 출력제어는 2023년 2회, 2024년 83회로 급증했고, 2025년에는 데이터가 공개된 5월까지 이미 90회가 발생했다. 특히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출력제어가 집중된 현상에서 육지의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속도를 계통과 유연성 자원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재생에너지를 특정 지역에서 모두 소비하겠다는 급진적인 지산지소 접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호남권 내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지역 내 소비로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계절성을 고려하면, 대규모 잉여 전력이 발생하는 시점에 지역 수요만으로 이를 흡수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재생에너지는 고립된 소비가 아닌 전국 단위 순환을 전제로 설계돼야 하고 결국 에너지고속도로는 바로 이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비용 효율적인 인프라이다. 제주도에서의 실증을 통해 검증된 선택지이기도 하다. bienns@ekn.co.kr

[김성우 시평] 주식과 AI vs 기후변화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기후대응기금 운용심의위원 요즘 새해 인사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공통적인 대화 주제는 주식과 AI가 압도적이다. 주로 주식 투자 리스크와 AI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우려로 결국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이다. 기후변화가 전공인 필자 생각에는 미래 리스크로 따지자면 크기로 보나 확률로 보나 기후변화가 더 위협적인 이슈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실체적 위협만큼 걱정하고 논의하지 않는 이유가 늘 아쉬웠다. 아마도 기후변화는 장기 위협이니, 비교적 단기 위협인 주식 투자 손익이나 AI로 인한 일자리 변화를 더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다만, 이는 기후변화 대응을 조금 미루었다가 나중에 해도 대응이 가능할 경우를 전제로 하는데, 지금의 기후 측정치는 그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아 문제이다. 지구 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5도 상승'이라는 제한선이 단기 통계로는 이미 무너졌고, 2030년이면 장기 통계로도 무너질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4일 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 변화 서비스(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 C3S)는 2025년을 포함해 지난 3년 간의 평균 기온이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런던대학교 교수인 빌 맥과이어(Bill McGuire)는 “1.5도 상승 제한선은 이미 가망이 없어 돌이킬 수 없는 리스크에 직면했음에도 전 세계가 심각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 과학자들은 1.5도 제한선 돌파가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지구 변화의 시작을 의미함을 경고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1월 7일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 중 하나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탈퇴를 선언해,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협력의 기본 체제마저 흔들고 있다. 주목할 것은 1981년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백악관 참모진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화석연료 연소를 즉시 줄일 것을 권고했고, (파리협정 보다 35년 먼저) 2도 상승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발표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기후변화는 현안인 경제 및 안보 등 다른 이슈들 보다 우선시되지 못했고 화석연료의 사용도 오히려 늘어났다. 그 결과 오늘 우리는 비가역적 기후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후변화가 장기적으로 엄청난 위협이니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만을 반복하기 보다는, 사회가 이미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단기 현안들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AI확산에 필요한 에너지는 빠른 공급이 핵심인데, 현재 태양광이 다른 어떤 에너지원 보다 더 빨리 신규로 공급될 수 있는 옵션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에너지수입 의존도가 큰 국가는 최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는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자립이 가능한 청정에너지 확산이 필요하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침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후기술이 점차 정책이나 정치 보다는 시장과 경제에 의해 추동되고 있어, 기후변화 대응이 재무 성과를 동반하는 신사업 기회는 물론이고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기업에도 분명한 기회다. 우선, 에너지수요 증가에 기반한 수출 기회다. 선진 전력시장에서 사업자 선정 기준은 AI 등으로 인한 빠른 수요 증가를 충족시켜 줄 속도와 신뢰 그리고 가격인데, 우리 기업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미 경쟁력을 갖춘 전력기기나 원자력건설은 물론이고, 필수 브릿지 설비인 가스터빈까지도 수출할 장이 서는 것이다. 더욱이, 대중 견제 강화를 활용한 미국시장 공략도 가능하다. 우리가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것이 버거운 상황에서, 핵심 청정기술인 에너지저장장치나 태양광 발전설비의 경우 미국의 관세 정책이 오히려 기회다. 특히 미국 전력시장에서는 기술 공급자의 신뢰도가 시스템 안정화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 셋째, 국내수요기반 미래기술을 조기 상용화할 기회다. 탄소감축이 절실한 상황에서 AI를 활용해 초고효율 탄소포집 소재를 발견하거나, 단기적으로 확대되는 태양광 보급을 통해 초고효율 태양광 설비 상용화를 앞당김으로써, 글로벌 탄소중립에 필수 분야에서 미래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다. 주식과 AI라는 사람들의 주요 대화 주제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여기에 기후변화를 추가하는 방법은 주식과 AI에 기후변화를 연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이슈들 보다 기후변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반 세기 정도 해 본 결과 1.5도 제한선 돌파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bienns@ekn.co.kr

[EE칼럼] 기후위기라는 ‘면죄부’를 거둘 때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든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의 원인을 '기후변화' 혹은 '기후위기'라는 한 단어로 환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폭우, 유례없는 폭염, 대형 산불, 한겨울의 극한 한파까지—언론과 국민 대다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주범을 기후위기로 지목한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기후 탓'으로 돌리는 거대한 담론 뒤에, 정작 우리가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들이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후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이미 변했고,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무엇인지 짚어보자. 그것은 '경험하지 못한 위험기상 현상의 빈번한 출현'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실제로 기후변화 때문에 야기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지금보다 더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 합리적인 결과를 토대로, 자연재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상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기후 탓'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응 기반을 먼저 갖춰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포함한 기후 대응책 역시, 막연한 위기감과 정서에 앞서 정밀하게 설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감성이 정책을 앞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어렵지만 분명하다. 위험기상과 그에 뒤따르는 재난 속에서 '기후변화'라는 거인의 실체를 가능한 한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기후위기 이전에도 최고기온, 일 최대 강수량, 시간당 강수량과 같은 극값은 시간이 지나며 갱신되어 왔다. 이는 자연현상의 한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기후위기 시대에 극값 그 자체보다, 그 빈도와 강도가 과거의 추세와 비교해 어떤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는지이다. 충분히 축적된 기상·기후 데이터를 근거로, 그 변화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기후변화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인지 가려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만약 어떤 현상이 오로지 기후변화로만 설명될 수 있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대로 위험기상과 재난에 자연현상의 요소가 일부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즉시 취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단기간에 실행할 수 있는 대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2년 8월 8일, 서울 동작·관악·강남 일대에 시간당 141.5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세 명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이 폭우는 지금까지도 기후변화 없이는 과학적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한 걸음 뒤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는가? 만약 서울이 지금까지 경험해온 약 110mm 수준의 시간당 강수량에 머물렀다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인가? 강남 한복판이 침수된 상황에서 2010년대 초반부터 계획되었던 강남 일대 '대도심 터널' 사업이 왜 지연되었는지, 그 이유라도 명확히 밝혀야 하지 않는가? 기후변화는 인류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거시적 과제다. 그러나 눈앞의 폭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행정의 영역이다. '기후 탓'이 행정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재난 대응과 더불어, 기후위기 시대에 숙고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은 에너지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정책 역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급히 삼킨 음식이 머지않아 강력한 소화제를 요구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국가 경제의 체력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포함해, 현실성과 실용성에 기반한 정밀한 검토와 계획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관리하고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다.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이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충분한 점검과 준비 없이 세금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 대응과 에너지 정책은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진단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 위에서 비로소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이제는 '기후 탓'이라는 면죄부를 거둘 시간이다.

[EE칼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에너지안보의 기준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해 2026년 1월 현재까지 길어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공격 방식도 달라졌다. 전선의 이동과 별개로 전력·난방 같은 '생활 인프라'를 반복해서 때리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한 번 파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복구할 만하면 다시 공격한다. 복구 자원을 계속 소모시키고, 전력 공급의 불확실성을 일상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실제로 겨울철에는 정전이 난방·상수도까지 흔들어 시민 고통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응의 초점을 “완전 정상화"가 아니라 “최소 기능 유지"로 옮겼다. 1월 14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너지 부문 '비상사태' 선포 방침을 공식화했다. 수도 키이우에 상설 조정본부를 두고, 전력·설비를 가능한 한 빨리 수입하라고 지시했다. 응급복구, 수요관리(순환정전), 필수시설 우선공급 같은 운영 조정도 함께 돌렸다. 핵심은 하나다. 정전의 '규모'를 줄이는 것만큼, 정전의 '길이'를 줄이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에너지안보의 기준이 바뀐다. 우리는 흔히 에너지안보를 “연료를 얼마나 확보했나?"로 설명한다. 석유·가스 비축이 충분한가, 수입선을 다변화했는가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전쟁처럼 전력망 자체가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는 이 질문만으로 부족하다. 연료가 창고에 있어도 송전망·변전소가 손상되면 전기는 못 보낸다. 특히 송전·변전 설비는 대체가 쉽지 않고, 부품 조달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복구 지연'이 곧 '안보 손실'이 된다. 결국 논점은 물량이 아니라 '복원력(resilience)'으로 옮겨간다. 복원력이란 충격을 받았을 때도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손상 지점을 우회하거나 빠르게 복구해 공급 중단 시간을 줄이는 능력이다. 단단하게 버티는 힘(견고성)만이 아니다. 고장 나도 돌아갈 길을 여러 개 만들어 두는 중복성, 인력·장비·자원을 동원하는 능력, 그리고 복구 속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또 중요한 전제가 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원래대로 만드는 '정상화'가 아니라, 의료·통신·상수도·전력 같은 필수 서비스부터 최소 수준으로 먼저 살리는 '단계적 복원'이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이 문제의식은 국제 의제에서도 커지고 있다. 영국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4월 런던의 '미래 에너지안보 정상회의'에서 전통적 공급안보(다변화·비축)와 함께 '회복탄력성(복원력)'을 별도의 과제로 끌어올렸다. 배경은 단순하다. 위협이 지정학·연료 수급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극한기상은 송전망을 직접 흔들고, 디지털화·연결성 확대는 사이버 위험을 키운다. 즉 “연료가 있느냐"를 넘어 “전력망이 제대로 기능하느냐"가 에너지안보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에너지안보는 평시의 수급과 가격 안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는 가격 충격뿐 아니라, 공급 중단과 복구 지연처럼 '시간의 충격'이 핵심 피해로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전력망이 촘촘히 얽힌 수도권에 수요가 집중된 구조에서는 특정 구간의 장애가 광범위한 기능 저하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전력·통신·상수도·데이터가 서로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하나가 멈추면 연쇄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책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연료 비축이 충분한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충격이 발생했을 때 언제까지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복원할 수 있는가"가 목표로 명시돼야 한다. 의료·통신·상수도와 함께 에너지 같은 핵심 서비스는 복구 목표 시간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 시간표를 기준으로 운영·투자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용량·비축의 규모가 중요하듯, 피해가 지속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수다. 안보의 언어를 물량에서 시간과 기능으로 옮겨야 한다. 결국 복원력은 구호가 아니다. '복구 목표시간'과 '최소 서비스 수준'을 기준으로 예비자원, 조달체계, 훈련을 숫자와 절차로 관리하는 국가 역량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에너지안보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김재경 외부기고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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