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우라늄 광산 개발, 개미와 베짱이

한국은 원자력 발전량 기준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다. 우라늄 소비량 역시 세계 5위이다. 우라늄 수요는 중국, 인도의 급속한 성장과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미국, 유렵, 동남아 국가들의 재건설로 급증하고 있다. 원자력은 희석 우라늄 순도 90% 이상인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연료용(3~5%)으로 희석한 것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는 2032년 이후부터는 공급 부족이 시작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여기에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청정에너지인 우라늄 공급망 경쟁은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8개 국가에서 15개 이상의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냉전의 소유물로 전 세계 농축 우라늄의 40% 이상을 소유하고 있지만 몽골 등지에서 우라늄 채굴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자국 내 필요한 수요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우라늄 자주 개발 실적이 없다. 해외에서 우라늄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량을 단순히 수입하고 있다. 한때는 공기업 중심으로 해외 우라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전이 캐나다 우라늄 프로젝트(워터베리 레이크, 크리이스트) 투자 및 장기 공급권 확보를 추진했고,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테기다 우라늄 광산에 참여했으나 최근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했다. 광업공단은 5월 공시를 통해 지난해 12월 10일 아프리카 니제르의 우라늄 사업인 “테기다" 투자 법인 지분 80%를 전량 매각했다고 밝혔다. 인수 주체는 중국 업체 트랜드필드(THL)로 매각 금액은 1000 달러(약 147만원)이다. 2010년 1480만 달러(약 200억원)를 투자해 지분 5%를 확보하고 연간 700톤의 우라늄 생산을 계획 했으나 결국 성과없이 철수했다. 광업공단의 설명은 예상보다 큰 비용이 소요됐고 수익성 마져 낮았다. 하지만 최근 우라늄 가격 급등세를 고려할 때 좀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광업공단에서 운영하는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러시아산 우라늄 퇴출과 원전 수요 확대로 지난해 1분기 파운드당 67.91 달러였던 우라늄 현물 가격은 올 1분기 88.96 달러로 30% 이상 급등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26기의 상업용 원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 전력의 약 30% 이상을 원자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는 작지만 원전 밀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원전 26기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우라늄은 대략 연간 4700톤(우라늄 금속 기준, tU)정도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4700톤은 약 470만kg으로 연 기준 원전 1기당 평균 약 180톤이 사용된다. 하루 기준으로는 약 13톤 정도 소비하는 셈인데 가격은 최근 우라늄 원광 현물 가격이 파운드당 약 80~90달러 수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수요 4700tU는 약 9억~11억 달러(약 1조 6000억원) 정도다. 하지만 실제 원전 연료비는 원광석->정련->전환->농축->핵 연료봉 제작 과정이 추가 비용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실제 원전 사업자가 부담하는 핵 연료 전체 비용은 연간 약 3조원 안팎이다. 흥미로운 점은 원전의 발전 단가에서 우라늄 가격 비중은 생각보다 작다. 천연가스 발전은 연료 가격이 발전 단가에 크게 영향을 주지만 원전은 연료비보다 건설비, 안전설비, 운영비 등의 영향이 더 크다. 그래서 우라늄 가격이 두 배가 되어도 전기요금 영향은 석탄이나 가스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26기를 가동하는데 4700tU(평균 10억 달러)의 우라늄을 수입하고 있으니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 해도 어럼 잡아도 1년에 5000~6000억원의 돈을 써야 한다. 큰 틀에서 생각해 보면 매년 1조 5000억원을 수입 비용으로 쓰는 것 보다 그 비용으로 해외 광산을 미리 확보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왜 우라늄 개발 투자에 부진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요 기업 입장에서는 광산을 개발하는 것보다 단순 구매하는 편이 쉽고 리스크도 적다. 또 우라늄은 폐쇄적 유통 구조로 되어 있어 다른 기업들은 개발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안보 측면에서라도 우라늄의 단순 수입 방식을 개선해 해외 광산 개발에 나서야 한다. 과거 우라늄을 비롯한 자원 대부분은 돈만 주면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괜찮았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그날 그날 먹고 살수 있던 여름이 지나고 우리 앞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bienns@ekn.kr

[EE칼럼] 이란 종전협상 배경이 된 미국의 셰일혁명과 달러 패권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 그리고 백악관에서 들리는 소식은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파키스탄에서 있었던 종전협상 MOU 체결 때에도 양측은 몇 차례 옥신각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협상장에 다시 마주 앉았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작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피시맨의 Chokepoints라는 책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맥락을 짚어 준다. 비핵화와 금융제재 해제를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협상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01년 9·11 사건으로 미국은 테러조직과 적성국가에 대한 금융제재를 강화하였다. 재무부 산하에 TFI(Terrorism and Financial Intelligence Division)를 새로 설립하였고 금융제재를 담당하였던 OFAC(Office of Foreign Asset Control)를 이에 편입시켰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하면서 통합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된 정보를 통하여 TFI는 이후 탄탄한 금융제재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었다. 한편, 미 의회는 이스라엘 로비단체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의 강력한 로비로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대상에 포함하는 법을 만들어서 금융제재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본래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제재에 따른 이란의 원유 수출 감소로 국제유가가 200달러 이상 급등할 것을 우려하여 이란 중앙은행은 금융제재에 포함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마침 진행된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급증한 미국의 원유 생산이 이란의 석유공급 감소를 상쇄하여 국제유가는 안정세를 유지하였다. 이란은 2005년 강경파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또 2009년에 재선되면서 핵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강력한 금융제재 수단으로 전 세계 주요 은행들을 설득하여 이란과의 거래를 대부분 차단하게 되었다. 결국 2013년 협상파 루하니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이란의 민심은 금융제재 완화와 경제문제 해결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2015년 P5+1(미·중·러·불·영+EU)과 이란의 포괄적인 협상(JCPOA)이 타결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오바마 정권 말이어서 그 힘을 잃고 말았다. “다음 대통령이 트럼프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막상 금융제재를 완화한다고 하여도 각국 은행들은 여전히 이란과의 거래를 기피하였다. 그 결과 협정의 효력이 지속될 수 없었다. 이란과의 종전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느냐는 여러 조건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반발, 이란 강경파의 보이콧 그리고 올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나타날 수 있는 트럼프 정부의 조기 레임덕 현상 등은 부정적 요인이다. 반면 이란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정권의 안정을 위해 이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아직 반 이상 남은 트럼프의 임기 그리고 이란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 등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란과의 종전협상 MOU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최소 3천억 달러를 이란의 재건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정도 큰 금액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여러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먼저 미국의 은행과 기업이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미국이 나서지 않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란에 대한 투자에 다른 국가가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과 은행이 참여하는 것을 전 세계 금융기관들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를 조금씩이나마 해제하기 시작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금융제재 해제를 통해 제공할 수 있는 돈이다. 이란이 보유하고 있는 천연가스와 원유는 외국인 투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셰일혁명으로 에너지와 달러패권을 동시에 장악한 미국의 힘이 이란 종전협상의 가장 큰 배경이다. 조성봉

[EE칼럼] 석탄화력 부지의 미래 – 주민이 결정해야

석탄화력발전은 우리나라 전력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는 아직은 가장 비중이 높은 발전 방식이다. 하지만 발전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로 기후위기를 부축일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유연탄의 수입과 용수 확보를 위해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서해안에 집중해 있으며 편서풍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내륙 분지인 충북 지역의 미세먼지가 수도권 다음으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전 세계가 석탄화력발전의 축소에 나서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노후 발전기부터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2040년까지는 완전히 퇴출한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가장 피해가 큰 인근 지역 주민들을 위해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5km 이내 지역의 주민 복리 증진 및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발전소 부지 확보가 쉽지 않은 정부로서는 석탄화력발전을 폐쇄해도 이 부지를 발전소 부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문제는 어떤 발전기를 설치한 것인가 혹은 어떤 전력산업 부지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 2일 인천의 영흥면민간협의체 등 79개 시민단체들은 인천시청 앞에서 '영흥화력의 원전 전환 반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현대건설과 한국남동발전이 맺은 '석탄화력발전소 연계 SMR 연구 및 사업화 공동 추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이 주민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양사는 업무협약에서 기존 발전소 부지와 설비를 유지한 채 핵심 장비를 교체하는 '리트로핏(Retrofit)' 방식의 타당성을 검토해 무탄소 전원 기반의 종합 에너지 플랜트 모델을 구체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고 밝혔다. 즉 석탄 보일러를 소형모듈원자로(SMR)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SMR은 발전용량 300MW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말한다. 1400MW인 신한울1·2호기에 비해 소형이라는 말이지 엄연히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로이다. 핵분열 시 발생하는 열과 방사능 물질이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기본 과제는 여전하다. 현재 SMR 운영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뿐이다. 러시아는 바지선에 35MW급 2기의 원자로를 설치하여 극동지역 페베트 항구에서 2020년부터 상업운전을 하고 있다. 중국은 산동성 스다오만의 원전 내에 2기의 가스냉각식 원자로로 210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파일럿 수준의 원전으로 아직 보급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SMR이라는 용어가 일반화한 것은 197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다. 원전은 그 동안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여 1400MW급까지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발전용량을 10분의 1로 줄인다고 하여 원전의 규모나 설치비용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원자로 크기만 해도 아직 절반 수준밖에 줄이지 못했다. 부수되는 안전 설비를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원천 기술을 가지지 못한 원전 후발국으로서 세계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원전산업계의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특정 지역에 SMR을 설치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 간의 협력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주민들에게는 안전한 삶과 생활 터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사전 모집 과정을 거쳐 지난달 17일 부산 기장군을 SMR 부지로 결정한 바 있다. 그 동안 한국남동발전은 석탄발전소 폐쇄 이후의 방향을 신재생에너지 전환과 주민상생으로 홍보해왔기에 주민들은 약속을 어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30년 전 주민을 희생시켜 석탄발전소를 세웠던 것처럼 이제 다시 핵발전소로 영흥주민을 희생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영흥면민간협의체장의 말은 향후 양사가 이 계획을 밀어부칠 경우 발생할 상황을 예상케 한다. 주민들의 오해를 막고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피하는 길은 투명한 행정과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에 달려 있다. 원전이건 SMR이건 주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은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bienns@ekn.kr

[EE칼럼] 대도약, 그리고 맨 나중에 불려온 지역 사람들

지난달 정부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발표한 '대도약' 계획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반도체에 800조 원, AI 데이터센터에 550조 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지금의 3배로 늘리고, 전국에 새 송전선로를 깐다고 했다. 숫자가 워낙 커서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만 그 내용 어딘가에, 앞으로 몇 년 동안 내가 만나게 될 얼굴들이 숨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늘 그렇듯, 맨 나중에야 불려 나올 지역 사람들이었다. 지난 13년 동안 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지역을 수백 곳을 다녔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지역이 등을 돌리는 이유는 기술이 무서워서도, 보상금이 적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순서였다. 사업자가 어디에 얼마만큼 지을지 다 정해놓고, 인허가까지 받아둔 다음, 맨 마지막에야 형식적으로 주민을 부른다. 그렇게 불려 나온 사람은 이미 정해진 일을 통보받는 사람이 된다. 자기 마을 일인데 맨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 그 서운함이 반대가 되고, 반대가 싸움이 된다. 내가 조사한 사업의 열에 아홉이 그렇게 멈추거나 엎어졌다. 지난 3월 용인의 송전선로에 반대하며 광화문에 모인 5천 명도 다르지 않았다. 이득은 도시가 챙기고, 견디는 일은 늘 지방의 몫이었다. 고치는 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순서를 뒤집으면 된다. 주민을 맨 뒤가 아니라 맨 앞에 세우는 것이다. 어디에 얼마나 지을지 그 첫 단추를 함께 끼우면, 설명회는 통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된다. 전기와 물을 어디서 끌어올지, 감춰둔 정보를 먼저 알려주면 된다. 그리고 주민을 돈 받고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 그 발전소의 투자자 중 하나로 초대하면 된다. 반대할 이유가 참여할 이유로 바뀌는 데는, 그 자리 하나면 충분했다. 먼저 함께하고, 그 다음에 짓는다. 현장을 오래 돌다 저절로 몸에 밴 순서다. 신기하게도 지구 반대편에 나와 똑같은 결론에 이른 사람이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로 유명한 환경운동의 대가 '에린 브로코비치'다. 그는 요즘 미국에서 데이터센터를 상대로 싸우는데, 그 방식이 내가 걸어온 길과 놀랍도록 닮았다. 그는 높은 사람을 찾아가 제도를 바꿔달라 조르지 않는다. 대신 지역사회부터 찾아간다. 지방정부에 가서 환경영향평가 서류를 내놓으라 하고, 필요한 전기와 물을 대체 어디서 가져올 거냐고, 안 그래도 모자란 우리 동네 것을 빼다 쓸 셈이냐고 따져 묻는다. 그렇게 공식 정보를 어렵게 손에 쥔 뒤에야 주민들을 불러 모아 함께 의견을 낸다. 사업 계획이 다 끝난 뒤 얼마를 보상할지 흥정하는 게 아니라, 사업 계획이 시작될 때 주민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그가 흘리듯 남긴 말이 오래 마음에 걸린다. 예전 힝클리 사건 때는 3억 달러 남짓으로 합의가 되었지만, 이제는 수십억 달러는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순서를 어기고 미뤄둔 값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난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이 그 계산서를 받아 들고 있다. 이번 정부 계획도 꼭 그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서남권 반도체 단지는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그 발전소와 전선은 결국 누군가의 마당 앞에 선다. 18GW까지 확대된다는 데이터센터는 어마어마한 전기와 냉각수를 필요로한다. 브로코비치가 지금 미국에서 던지는 그 질문이, 머지않아 우리 앞에 그대로 놓일 것이다. 물과 전기를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정부도 이대로면 첫 삽 뜨기까지 십 년이 넘게 걸린다고 인정했다. 그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은, 주민을 건너뛰고 서두르는 순간 오히려 갈등의 불씨가 된다. 순서를 바꾸면 정말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 현장이 먼저 보여주었다. 강원도 태백에서는 주민을 먼저 모셨더니 2년 넘게 걸리던 인허가가 넉 달로 줄었다. 내 집 앞은 안 된다던 목소리가, 제발 우리 마을에 지어달라는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을 나는 두 눈으로 보았다. 정부의 계획서에는 전기와 물과 땅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지역 사람들이 어느 대목에서 참여하는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비워둔 채로 밀고 나가면, 몇 해 뒤 우리는 한국의 브로코비치가 지역 관공서 문을 두드리며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장면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지역 사람이 먼저 그 땅에 뿌리를 내려야, 그 위에 줄기가 서고 비로소 전기가 흐른다. 대도약이 끝내 도약으로 남느냐, 아니면 또 한 번의 갈등으로 주저앉느냐는, 결국 누구를 맨 앞에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ekn@ekn.kr

[EE칼럼] ‘반도체 클러스터’, 대한민국호의 시험대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에 반도체, 피지컬 AI, 그리고 데이터센터가 포함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선두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규모 국내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혔으며, 특히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각각 400여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또한 충청권은 첨단 패키징 산업 육성을 통해 수도권과 호남을 연결하리란 전망이다. 요컨대 수도권에서 충청권을 거쳐 서남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반도체 산업축이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거대한 계획이 발표되면서 기대가 커지는 만큼, 전력과 용수, 그리고 인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셋 다 만만치 않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생각한다면 개별적인 사안에 함몰되기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연 대한민국호(號)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인프라 금융 전문가인 마이클 베넌(Michael Bennon) 연구원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제도, 그리고 거버넌스의 문제로 바라본다. 그의 연구는 발전소, 철도, 항만, 송전망과 같은 대규모 사업은 기술 자체보다 인허가 절차, 금융 조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 환경 규제, 주민 수용성 등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AI 시대를 맞이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도체 공장은 그저 첨단제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 설비로만 이해할 수 없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대규모 용수, 초고압 송전망, 데이터센터, 교통망, 연구개발 및 생산 인력, 대학과 기업의 협력 체계까지 함께 구축되어야 하는 국가 단위의 초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다. 실제로 AI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이러한 국가적 실행 역량, 즉 국가책략(statecraft)이 경쟁의 승부를 가르는 변수일 것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 벨리라고 불리는 거대한 지식공동체이자 혁신 산업의 클러스터가 AI 혁명을 주도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건설, 송전망 확충과 같은 실질적인 집행 단계에서 수많은 법적 분쟁 등에 봉착하며 속도를 내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편 중국은 첨단 반도체 공급에 있어 여러 제약을 맞닥뜨리고 있으면서도, 전력망과 산업단지, AI 인프라, 인재 육성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속도감 있게 통합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AI 시대의 경쟁은 이미 개별 기술의 우위를 넘어 복합적인 국가 프로젝트를 얼마나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지의 경쟁으로 변화하였는데, 두 초강대국의 치열한 경쟁이 향후 어떤 결말로 귀결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에너지 정책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필자는 지난 5월, 이 지면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AI 시대 전력의 중요성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전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국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핵심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전력원을 충분히 확보하더라도 송전망이 부족하면 전력은 공급되지 못한다. 용수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런 거대 사업들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금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허가 역시 중요하다. 지연되면 될수록 첨단 산업 전략은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중요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역시 인력이다. 전문적인 인력이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의 경쟁력은 이러한 국가적 비전을 얼마나 속도감 있게, 그리고 얼마나 착실하게 실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일은 산업 정책에만 머물 수 없으며, 에너지 정책, 국토 정책, 교육 정책, 금융 정책, 규제 정책이 하나로 연결되는 국가 프로젝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충돌하는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한국 역시 반도체 제조 설비를 짓는 것을 넘어, 미래 산업을 뒷받침할 국가 인프라를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와 함께 국가적 비전을 위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대한민국호가 이번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지는 기술력 자체보다 국가적 실행 역량에 달려 있다. bienns@ekn.kr

[EE칼럼] 재생에너지 기본계획과 전력수요 전망 발표에 나타난 변화 읽기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7월 들어 국제유가가 60달러대로 진입하면서 호르무즈 사태가 확실한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전 세계가 공급망 위기, 에너지 안보 등으로 심각해 하던 지난 5월, 정부는 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였으며 같은 날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내용중 먼저 확정된 수요 전망(안)을 함께 공개하였다. 그런데 이번 두 발표는 지난 계획들과는 사뭇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먼저 이번 재생에너지기본계획은 지난 3월 개정된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따라 수립하는 첫 기본계획이다. 사실 재생에너지 부문을 별도로 다루는 기본계획은 20세기 말에 처음 수립되었는데, 그때는 대체에너지라고 불렸으며, 주로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었다. 이후 곧바로 우리가 익숙한 신·재생에너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기본계획이 2003년부터 진행되어 지난 2020년 제5차 기본계획까지 수립, 이행되어 왔다. 그 동안 FIT, RPS 등의 보급확산제도를 도입하고 기술개발과 산업육성 방안을 담아왔다. 이번에 이름과 내용을 바꾸었는데, 먼저 이름에서 신에너지를 제외하고 재생에너지만 남긴 부분이다. 사실 신에너지가 정부의 계획에 들어간 것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에너지원이라기 보다는 에너지분야의 신기술이며, 그 당시 온실가스 저감대책의 상당부분이 화석연료의 청정화에 맞추어져 있었음을 고려하면 수소, 연료전지, IGCC등으로 대표되는 신에너지가 재생에너지와 함께 정부지원의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미 2021년에 수소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되어 신에너지에 대한 부분이 별도로 고려되고 있음을 감안하여 재생에너지만의 계획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번 계획을 1차 기본계획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제 재생에너지가 주요 에너지원의 위치에 올라섰으며, 앞으로 재생에너지가 중심이 된 국내 생산 에너지원들을 통하여 전기화 및 에너지전환을 추진할 것임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 담긴 5대 과제와 10대 전략 중 가장 큰 변화로는 현행 RPS 제도의 개편 및 지자체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 증대 등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석유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태양열온수기, 태양광발전 등에 지원이 시작되었을 때의 정부 지원 제도는 설비를 설치하는 국민에게 직접 설비비용의 일부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FIT 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부는 이를 사업자에게 융자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고 국민에게 직접 지원하는 보조금을 차츰 줄여 나갔다. 정부의 예산 측면에서 보면 이는 예산의 감축이었다. 이는 RPS제도로 변경되면서도 유지되었고 정부지원금의 출처가 전기요금과 석유수입 비용에 추가하여 걷어 만든 전력기반기금 및 에특회계로 확대되었으며, 국민에게 직접 지원하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줄여 갔다. 이번에 RPS제도를 입찰제도로 변경하는 것은 이제 충분히 커진 국내 재생에너지공급산업계에 추가적인 경쟁을 유도하여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햇빛마을, 바람마을, 계통소득 등으로 불리는 지자체 지원방안은 재생에너지가 설치되는 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유럽의 지원제도와 유사하며 재생에너지의 주민수용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자가설비 인증서(REGO) 도입을 통해 자가용 설비에 추가 수익을 제공하는 등 국민에 대한 직접 지원을 증가한 것은 재생에너지가 가진 분산형 에너지원이자 개별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라는 본연의 특성을 잘 반영한 변화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날 발표된 전력기본계획 수요전망(안)에 나타난 변화는 데이터센터 및 AI 붐, 그리고 전기화 진행으로 인한 추가 전력수요를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예전 정부는 원자력 억제에 목표가 맞추어져 있어 미래 전력수요 전망치를 줄여 발표한다는 의혹을 받고는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데이터 센터 추가수요 26.5TWh, 2035 NDC의 전기화 정책으로 인한 추가수요 119.4TWh 등을 인정하고 이를 발표에 추가한 것이다. 지난 주 정부와 주요 기업은 1천조가 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다. 추가적인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임이 불을보듯 분명하다. 전력망이 모자라는 것을 넘어 전력생산시설까지 부족하게 된다면 이는 심각한 정부정책 실패이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원자력발전의 추가 설치 역시 찬성하고 있어 지난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력화의 추진이 국민의 에너지수요 변화와 온실가스감축에 모두 효과적임을 고려한다면 전력생산시설 및 전력망의 건설에 보다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bienns@ekn.kr

[EE칼럼] 아직도 RE100인가?

요즘 슬금슬금 RE100(Renewable Energy 100)이 다시 나온다. 재생에너지를 옹호하거나 확대하자는 주장에는 전가의 보도처럼 RE100이 나온다. 그런데 그게 이미 한물간 캠페인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RE100은 2014년 런던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 '기후그룹(The Climate Group)'이 시작한 캠페인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하자는 것이다. 여러 기업이 이에 동참하였다. 애플(Apple), 구글(Google), 페이스북을 포함한 많은 기업이 참여했다. 시작 단계에서는 의무가 없기 떄문에 참여 선언 그 자체는 매우 쉬웠기 때문이다. RE100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 RE100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원자력발전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자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1킬로와트시(kWh)의 전기를 생산하려면 석탄발전은 이산화탄소 약1000g(그램)을 배출한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700g, 원자력은 10g, 재생에너지는 50g이다. 이에 필요한 비용은 원자력은 55원, 재생에너지는 270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둘째, RE100은 실제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REC(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만 구매해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즉 RE100만을 위해서라면 재생에너지가 많은 특정 지역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어디에 있더라도 REC만 구매하면 RE100을 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셋째, 구글의 태도가 바뀐지 오래다. 구글은 이미 2018년 이산화탄소배출이 없는 전력원을 사용하자는 'CF100(Carbon Free)' 계획을 내놓았다. 구글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하루 24시간, 주 7일 무탄소 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글은 '원전도 무탄소 에너지원'이라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넷째, 정작 RE100의 진원지인 기후그룹의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기후그룹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RE100도 여전히 살아있지만, 24/7 CFE(Carbon-free Energy) 이니셔티브도 인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24/7 카본프리 에너지 콤팩트(24/7 Carbon-free Energy Compact)의 공동 출범 주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즉 기후그룹이 RE100만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여기저기서 'RE100을 해야 한다'. 또 'RE100을 하지 않으면 우리 무역하는데 장벽이 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던지 뭘 모르는 얘기다. 원자력발전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도 인정된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로 바뀐 상황에서도 조선은 여전히 명나라를 모셨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정작 RE100 캠페인을 시작했던 기후그룹은 원자력발전을 인정하는데 지구 반바퀴 떨어진 우리나라에서는 원래의 RE100을 그대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RE100은 소개될 당시부터 옹색한 주장이었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억제하자면서도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배제한 것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입맛에는 딱맞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위상도 잊은 채로 기후그룹이라는 작은 환경단체의 주장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차관이 따라했다. 그 당시에도 UN에서는 원자력발전도 무탄소에너지로 인정하는 CFE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UN을 버리고 NGO를 택했다. 그것 말고는 과학과 합리를 막아낼 방패가 없었던 것이다. 2년 전에는 삼성전자에 노광장비를 공급하는 네덜란드의 ASML(사)가 RE100을 하기로 했다는 오보가 나오면서 우리도 RE100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는 가짜뉴스였다. ASML의 정책보고서와 연례보고서 그리고 직접 담당자와 연락해봐도 그런 주장은 나온 바가 없었다. 삼성전자를 몹시 위해주는 척하며 RE100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AI 데이터 센터나 반도체 공장은 모두 원전 5기 내지 10기분의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한다. 또 고정밀의 민감한 시설이기 때문에 생산이 들쭉날쭉한 간헐적 전기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전기요금이 낮아야 한다. 그게 정부보조금이나 다른 국민이 더 감당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제 RE100 주장은 그만할 때가 됐다. bienns@ekn.kr

[EE칼럼] 원전의 미래는 장기안전운영에 달려 있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에너지 안보 시대를 맞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의 장기화, 인공지능 산업과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성장, 전기화(Electrification)의 가속화는 안정적이고 대규모의 전력공급 능력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값싼 에너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언제나 공급 가능한 에너지의 확보가 국가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원자력은 다시 세계 에너지정책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를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신규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존 원전의 성능 향상과 장기 운전(Long-Term Operation, LTO)에 대규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세계 원전산업의 관심이 신규 건설만이 아니라 기존 원전의 장기적 활용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이미 운영 중인 원전은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운전 경험과 기술적 검증, 그리고 막대한 투자비가 반영된 국가적 자산이다. 충분한 안전성 검증과 체계적인 노화 관리 아래 이러한 자산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경제성, 환경성,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모두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 운전을 단순히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제도로 이해한다면 그 본질을 놓치게 된다.장기 운전은 노후 원전을 오래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다.그것은 노화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기술이며, 안전여유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운영전략이고, 더 나아가 국가 자산을 미래세대에 안전하게 계승하는 경영 철학이다. 필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원전의 연구개발, 건설, 운영, 정비, 정책수립, 국제협력, 그리고 최고경영자의 역할까지 다양한 위치에서 원자력 산업을 경험해 왔다.그 과정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원전의 장기적 안전 운영은 특정 설비나 특정 기술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안전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노화 관리가 체계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경험과 지식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어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 전체가 장기적 관점에서 안전과 신뢰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실제로 장기 운전의 가장 큰 위험은 설비의 노화가 아닐 수도 있다.조직의 노화와 지식의 단절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과 암묵지는 한 세대의 퇴직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장기 운전은 설비관리 프로그램인 동시에 지식관리 프로그램이며,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고, 리더십 프로그램이기도 하다.최근 디지털 트윈과 인공지능, 예측 정비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트윈의 가치를 가상모델 자체에서 찾지만, 실제 가치는 의사결정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있다. 기술의 목적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현명한 경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장기 운전은 기술의 문제를 넘어 경영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 문제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장기 운전에 대한 시각을 한 단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그동안 우리는 신규 원전 건설과 수출 경쟁력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건설 역량과 운영 실적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 시장은 신규 건설 시장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백 기에 달하는 기존 원전의 장기 운전, 성능 향상, 디지털 전환, 노화 관리, 지식관리 시장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러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험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축적했던 높은 이용률, 우수한 설비 신뢰도, 체계적인 정비 기술, 안전 문화, 그리고 인적자원 개발 경험은 향후 글로벌 장기 운전 시장에서 매우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장기 운전을 단순한 규제 절차나 발전소 운영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가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산업 경쟁력, 원전 수출 전략을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핵심 의제로 인식해야 한다.이를 위해 정부, 규제기관, 운영기관, 연구 기관, 공급망 기업, 정비 산업계, 학계가 참여하는 국가 차원의 장기 운전 전략과 실행 체계를 조속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각 기관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립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장기 운전은 특정 기관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적 자산을 미래세대에 안전하게 계승하기 위한 공동의 책무이다.원전의 미래는 단순히 더 많은 원전을 건설하는 데 있지 않다.이미 보유한 자산을 얼마나 안전하고 현명하게 활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대한민국은 신규 원전 건설 강국을 넘어 장기 운전과 원전 자산 관리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비전이다. 장기 운전에 대한 국가적 함의를 분명히 정립하고, 모든 원전 산업 참여자들의 역할과 책임을 체계적으로 연계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장기 운전은 노후 원전을 오래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다.그것은 안전과 지식, 자산과 신뢰를 미래세대에 전달하는 책임 있는 경영철 학이며,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다음 30년을 결정할 국가전략이다.

[EE칼럼]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러나 강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6월이 끝나가는 무렵에 해외로부터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베네수엘라의 지진 소식이다. 진도 7.5가 넘는 이중 강진이 발생하여 1900년 이후 120년 만의 대 재난을 가져왔다. 불과 39초의 위력이 이럴 정도로 강할지는 상상 조차 못했다. 미국 지질 자원국은 막대한 인명 피해와 대규모 재산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며 사망자 수가 1만 명에서 10만 명에 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부디 인명 피해가 작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베네수엘라는 한 국가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수출의 95% 이상을 석유가 차지하는 기형적 경제 구조였는데 차베스, 마두로 정권의 포플리즘은 막대한 석유 자금을 바탕으로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말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는 만고의 진리다. 2010년 이후 유가가 급격히 하락하는데도 복지는 그대로 유지하고 기업 국유화는 진행하고, 가격 통제를 강행했다. 이런 결과 민간 기업은 도산하고, 고급 인력은 외국으로 나가고, 설비 투자 부족을 겪은 석유 산업은 원유 생산량마저 급감하게 되었다. 정책 실패도 있었다. 자금이 없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인 중앙은행에게 돈을 마구 찍어내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화폐 가치는 휴지 조각이 되었고, 물가가 폭등하는 이른바 하이퍼 인플레이션(Hiper-Inflation)을 겪게 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수십만 퍼센트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현재도 연간 물가 상승률은 500%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로 엄청난 물가 상승이 예상된다. 결국 오랜 독재로 인한 부정부패는 국가 존재를 무의미 하게 만들었다.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대 지진에도 의료 체계가 이미 무너져 버린 상황이라 인명구조라던가 치료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결국 외국의 다양한 지원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해야 하다. 이 같이 전 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자연 재난으로부터 속수무책 당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데 있다. 분노한 자연의 역습일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베네수엘라 지진의 경제적 피해액이 GDP의 10%인 18조 원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일본 토목학회는 향후 30년 내 발생 확률이 80%에 달하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의 경우 20년간 약 1경 3,800조 원의 경제적 피해와 20년 동안 경제 회복기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피해액이다. 한반도라고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나 정부는 한반도는 지진 위험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 틀렸다. 우리도 이미 포항과 경주, 부안 지진을 경험한 바 있다. 강도도 해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홍수의 경우 포항제철 인근의 하천 범람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이번을 기회로 우리도 다시 한번 세밀하게 재난에 대해서 안전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진 관련 해서는 원자력이나 다른 발전 시설 등은 물론이고 모든 에너지 시설에 대한 점검과 보강이 반드시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산업단지 에너지 저장시설에 대한 지진 안전성 평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신종화교수는 설계기준(KBC2016)에 근거한 결과, 기둥이나 보 등에 대해 구조물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지진 이외에 산불이나 홍수 등의 재난에도 점검과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송배전 등 전력 관련 설비 및 시설들은 산에 위치하여 대형 산불이 전력망 공급에도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음을 울진 산불로 보았다. 경기도 및 강원‧경북 지역에만 송전탑 4,300여 기와 변전소 900여 곳, 그리고 가공선로의 70% 가 밀집돼 있다는데 산불의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강건너 불구경 하다가 자칫 집안이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비무환. 정치에서든,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이 없다는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김성우 시평] AI 관련 대화에 에너지가 등장하다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지난 1월 필자는 본지에 'AI와 주식 vs 기후변화'라는 기고를 했었다. 새해 인사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주식과 AI에 대한 우려를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더 위협적인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아쉬움으로, AI와 주식 관련 대화에 기후변화를 접목시켜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모이면 여전히 AI와 주식에 대한 이야기가 공통 화제인데, 그 사이 달라진 점은 AI와 주식이 밀접하게 연결된 점과 AI가 에너지와도 강하게 접목된 점이다. AI가 반도체 수요를 늘려 관련 주식에 영향을 미치고, AI를 학습시키고 활용하는데 필요한 전력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은 누적기준 220GW에 달해 2020년 대비 6배가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관련하여, 이달 초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을 지난해보다 26% 증가한 565TWh로 예상하고 내년에도 702TWh로 추정해, 수요 전력량의 폭발적 증가를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우리나라의 2025년 기준 전력 소비량인 625TWh와 비교해 보면 그 증가세를 실감할 수 있다. 더욱이 2030년에는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1,200TWh를 넘어서, 2025년 기준 일본은 물론이고 러시아 보다 더 전력을 소비한다는 추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대한 전력을 적기에 필요한 만큼 확보하는 것이 AI 경쟁에서 새로운 핵심 요소로 등장해 AI개발회사 입장에서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수십조 달러가 걸려있는 AI시대의 화려한 투자 발표 뒤에 에너지 수급이라는 도전적 과제가 함께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미국 기술 매체 테크크런치는 전력 수급 이슈로 현재 발표된 데이터센터 건설의 최대 절반이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발전소를 짓거나 별도의 전력 구매 계약을 맺는 이유도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AI 분석 전문기업 신맥스도, 지난 4월 기준 미국내 올해내 완공 목표였던 데이터센터 중 40%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고, 내년까지 완공 예정인 데이터센터 중 60%는 아직 착공을 하지 못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지만 최적의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손쉽게 전력망에서 끌어다 사용하자니 핵심설비가 부족하고, 안정적인 가스발전을 활용하자니 주문이 밀려 5년 이상 기다려야 하며, 무탄소 전력을 공급하는 소형모듈원자로도 상업성 이슈로 203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편, 최근 대안으로 부상하는 연료전지는 우선은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점과 가격 부담이 걸림돌이고, 가장 친환경적인 태양광이나 풍력은 간헐성 때문에 24시간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는 AI의 특성과 맞지 않고 에너지저장장치로 보완해도 다른 전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AI개발회사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이미 약속했다는 점이다. 자발적 목표이기 때문에 목표 변경이 가능하지만 미래세대 소비자나 장기 투자자 등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변경 사유를 설득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 따라서, AI사업에 필수인 에너지를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 화석연료로 공급받는다면 이는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당장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대규모 전력 수요를 단기간내에 충족할 최선의 대안은 없고, 차선의 대안을 선택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법뿐이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를 통해 주요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싱글사이클같은) 저효율 가스발전이나 전력망으로부터 보조 전력만 충당하는 방안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이 밝힌 2026년 신규 발전소 계획용량 중 93%가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라는 점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요즘도 사람들이 모이면 여전히 AI와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6개월 전 보다 AI가 사람들과 더 밀착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AI전망에 따라 반도체 주식의 등락이 갈리는데 많은 사람들의 주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수급이 AI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화되자 사람들의 대화 주제에 에너지라는 화두가 따라 등장하기 시작했다. 6개월 전에 희망한 대로 이러한 관심이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촉진하길 기대해 본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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