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발 위기 장기화에 정부가 사실상 비상경제 체제를 가동하자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외교 일정을 접고 민생·경제 대응 전면에 나섰다. 정치권 안팎에선 월가와 중동을 누비던 '투톱'이 동시에 내치로 돌아선 것을 두고 “총리와 비서실장을 사실상 '분신'처럼 활용해 직접 지휘하는 이재명식 업무 스타일이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외교·내치를 넘나드는 행보가 차기 주자급 '체급 키우기'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김 총리는 25일 비상경제 대응체계 브리핑에서 “대통령 지시에 따라 민생·경제 전반의 위기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비상체계를 가동했다"며 “정부는 비상한 상황에 맞춰 비상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컨트롤타워로, 총리 주재 '비상경제본부'를 중심으로 범부처 원팀 대응에 나서고, 기존 경제부총리 주재 회의를 격상해 주 2회 운영한다. 거시경제·에너지·금융·민생복지·해외상황 등 5개 대응반을 통해 전방위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김 총리는 기존 외교 일정도 접고 민생을 챙기고 있다. 당초 24일부터 27일까지 중국 하이난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Boao Forum for Asia)' 기조연설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를 취소했다. 기조연설까지 예정됐던 국제행사를 직전에 취소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총리실은 “중동 분쟁 격화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에서 비상경제 대응을 직접 지휘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보아오행을 접은 김 총리는 같은 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K-국정설명회'에 참석해 “비상한 상황,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의 주례 보고 내용을 소개하며 “2주 만에 진행된 주례 보고에서 최근 경제 상황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내치 전선에 즉각 가세했다. 강 실장은 지난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에너지 위기 관련 추가경정예산이 확정되는 당일부터 현장에서 즉시 집행될 수 있도록 전달 체계를 사전에 철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중동 사태로 고물가와 원자재 공급난이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피해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 대응하라는 취지다. 강 실장은 재난·복지 분야까지 직접 챙겼다. 대전 대덕구 공장 화재 유가족들이 정보 부재를 호소하며 이 대통령에게 SNS 메시지를 보낸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국가위기관리센터와 행정안전부에 '재난 초기 소통 매뉴얼' 신설을 지시했다. 또 6년간 방치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아동보호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관계기관의 위기 정보 통합 관리 체계 수립도 독려했다. 두 사람의 행보는 불과 며칠 전까지 글로벌 외교 무대에 맞춰져 있었다. 김 총리는 1월에 이어 두 달 만에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했고, 차기 미국 대선의 유력 공화당 후보로 거론되는 JD 밴스 부통령과 두 번째 만남을 갖고 신뢰를 쌓았다. 귀국 후인 23일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마이클 해리스 뉴욕증권거래소(NYSE) 부회장과 자본시장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NYSE 부회장이 방한해 정부 고위급 인사를 면담한 것은 처음이다. 총리실은 정부의 강력한 자본시장 개선 노력에 대해 부회장이 깊은 관심을 보이며 만남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강 실장은 지난 15일 이란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아랍에미리트(UAE)를 직접 방문해 1800만 배럴의 원유 긴급 도입을 확정 지었다. '무박 2일' 일정이 공항 미사일 공격으로 '무박 4일'로 늘어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강훈식 비서실장을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로 임명한 뒤, 각국을 오가며 방산 수출과 경제 협력 업무를 맡기며 역할을 확대해왔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비서실장과 직접 소통 채널을 구축하는 등 전면에 나선 행보를 이어갔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차기 지도자 육성'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김어준 씨는 강 실장의 잇따른 해외 행보를 두고 “비서실장이 민항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국정 운영 경험을 폭넓게 쌓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보수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단독 해외 출장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앞서 김 총리의 방미를 두고도 “차기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언급했지만, 김 총리는 “언론은 무협지 공장이 아니다"라며 이를 일축했다.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외교·경제 경험을 폭넓게 쌓도록 하려는 이 대통령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임종석 비서실장이 UAE 외교 현안 해결을 위해 전용기를 타고 방문한 정도가 예외적으로 꼽힌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를 의도된 후계자 육성이라기보다 이 대통령 특유의 통치 스타일로 해석한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이 대통령은 장악력과 직접 지휘 성향이 강해 총리와 비서실장을 사실상 '분신'처럼 활용하는 스타일"이라며 “외교와 내치를 넘나드는 역할 확대는 의도라기보다 업무 방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규모가 커진 만큼 대통령이 모든 현안을 직접 챙기기 어려워지면서 가장 가까운 공식 라인의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정치적 체급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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