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손실보전 논의 본격화…정부-정유사 ‘힘겨루기’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에 따른 사후정산 논의 본격화를 앞두고 정부와 정유사 간 줄다리기가 예고됐다. 제조원가에 적정 이익(마진)을 더한다는 큰 틀이 마련됐지만 정유산업의 특성상 원가와 적정 마진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물가 충격 우려로 아직 최고가격제 유지·종료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시행 기간에 비례해 손실 보전 규모가 커지는 점도 정부와 정유사 모두에 부담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손실보전을 위한 재정지원 규정 고시 제정안에 대한 산업통상부 행정예고가 끝나는 29일이 지나면 정산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와 정유사 간 손실보전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지난 3월 보통 휘발유와 차량·선박용 경유, 실내등유 등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시행과 함께 향후 정산위원회를 꾸려 정유사들의 손실을 보전할 길을 열어놓은 이후 산정 기준의 큰 틀이 나온 것이다. 손실보전 규모를 산정하는 기준을 원가로 두되 적정 수준의 마진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고시의 핵심이다. 이에 원가를 어떻게 계산하느냐와 마진을 얼마나 붙여야 합리적이냐는 내용이 논의 과정에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원가 산정을 두고 정부와 정유사 간 논리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사들은 지난해 기준 의존도가 70%에 이르렀던 중동산 원유 수급이 미-이란 전쟁 발발로 어려워지자 급한 대로 대체 수급 물량을 확보하고 나섰다. 공급 부족 요인이 워낙 커 정유사들의 실제 원유 도입 비용은 국제 유가보다 더 높아지는 구조지만, 최고가격제로 인해 내수 가격에 원유 도입 증가분을 반영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이 한정된 데다 손실보전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보전에 쓸 추가경정 예산은 4조 2000억원이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정유업계가 손실 규모로 추산한 4조여원에 대해 “그보다 적을 것"라고 말한 바 있다. 원가 기준에 대해서도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행정 예고된 고시안에는 전체 석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정유사들이 투입한 원유 도입비용과 생산·판매 비용에서 보통 휘발유와 차량·선박용 경유, 실내등유가 차지하는 비율 등을 따져 원가를 산정하도록 돼 있다. 석유제품별 원가 산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이 비율을 따지기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한두 가지 원료를 특정공정에 투입해 갖가지 제품을 생산하는 연산품 성격 때문에 휘발유와 경유만 떼어 놓고 원가를 명확히 계산하기 어렵다. 아스팔트 같은 이른바 '찌꺼기 원유'나 중유 같이 옥탄가가 높은 석유제품을 크래킹(열·촉매 분해) 공정에 투입해 쓰임새가 많은 휘발유나 경유를 생산하기도 한다. 정유사들은 오랜 기간 공급 가격 산정 기준으로 삼은 싱가포르 석유제품 수출가격(MOPS)을 정산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동시에 정산 고시가 원가 기준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지배적이었다. 생산·판매 원가와 달리 MOPS는 원유 가격과 운송 비용 뿐만 아니라 수요-공급 변동에 따른 가격 상승분까지 반영된다. 아울러 MOPS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별로 매겨지기 때문에 계산이 비교적 단순하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고시안에 따른 원가와 적정 마진 개념이 추상적이라 정유사는 정산위원회에 원가 산정 근거가 될 데이터를 제시하고 차분히 소명해야 할 것"이라며 “최종적으로는 정부가 보전 규모를 결정할테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고가격제가 얼마나 길어질지도 변수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에 돌입하며 최고가격제를 종료할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하지만 최고가격제 종료 직후 기름값이 오르면 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MOPS 기준 6월 1~19일 보통 휘발유(92RON)와 경유(황 0.001%) 평균 가격은 각각 리터당 111.68달러와 132.78달러로 전쟁 전인 1월보다 56%, 61% 높다. 중동 전쟁으로 높아진 원유 도입 비용까지 고려하면 가격 불안 여지가 더 커진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기자의 눈] 정유업계, 중동전 이후 ‘공급망 해답’ 서둘러야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합의가 나오지만 당분간 전쟁 발발로 나빠진 원유 수급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국제 원유시장에서 가격이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중동에서 원유를 실은 선박이 한국 앞바다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미-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에 이어 스위스에서 세부 이행사항을 협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기자가 만난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냉소적인 향후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종전 MOU 서명 소식이 나온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재봉쇄한다는 선언으로 다시 긴장감이 높아지는 형국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협상 중인 이란에 무력행사 위협 발언을 내뱉어 이란 대표단이 협상장을 철수하는 등 여전히 '완전 종전'의 여정이 험난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불안감이 상존한다. 이란은 미·이스라엘과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파급력을 직접 확인하며 해협 봉쇄라는 무기를 쥐었다. 중동산이 전체 원유 수입의 70% 가까이 차지하던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기타 동남아 국가들도 예외없이 원유 수급 위기를 겪고 있다. 그나마 종전 MOU 이후 호르무즈 해협 안에 갇혀 있던 한국 선박 두 척이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소식이나 중동 산유국과 가스 생산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홍해나 푸자이라항 같은 곳에서 자원을 선적할 시설을 확대하고 나선 점은 그나마 위안이자 희소식이다. 그럼에도 국내 정유사들은 종전 MOU 체결 이후 가격보다 안정적 수급에 더 무게를 둔 장기계약 물량을 찾아 나서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이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변동성이 정유사들을 재촉하게 만든 것이다. 대안으로 주목받았던 북미산 원유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이점은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운송거리도 중동산의 2배나 멀어 수입 비중을 더 확대하기엔 부담스럽다. 종전이 완료되더라도 '북미산 확대'라는 단순명료한 방법을 넘어 가격 경쟁력과 안정적 수급, 전방산업 수요에 맞는 유종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수급 해법을 마련하느라 정유사들은 당분간 머리를 싸맬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석유산업 대외 개방으로 정글 같은 국제 원유시장을 마주했던 우리 정유사들이 설비 고도화와 제품 강화로 세계 5위권으로 올라섰던 저력을 다시 발휘해 이번에도 해답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SK에너지, 주유소 석유 공급가격 ‘매주 사전고지’ 전환

SK에너지가 정유업계 처음으로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을 일주일 단위로 사전 고지하는 새 가격정책을 도입한다. 기존 사후정산제도를 폐지하고 사전고지 방식으로 전환해 주유소 기름값의 변동 예측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SK에너지는 22일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 새 가격정책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새 가격정책은 관련 절차를 거쳐 현재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종료되는 시점 이후에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주유소·대리점 등 유통망에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급가격 결정·고지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명확한 가격 결정 기준을 마련하고, 주유소별 거래 조건도 표준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동안 정유사와 주유소 간 거래에서 석유제품 공급 후 일정기간 뒤 시장가격을 반영해 공급가격을 확정·정산하는 사후정산 방식이 활용돼 왔다.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 변동성이 큰 시장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국면에서 국내 공급가격 사후정산 구조가 주유소 판매가격 상승에 후속대응 성격이라는 점, 그동안 주유소들의 불리한 계약구조 개선 요구가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정부도 물가 안정을 위해 지난 3월부터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통한 '강제 가격정책'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이에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민간 자율 성격의 사전고지제도로 전환해 공급가격 결정 과정에 대한 고객과 시장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SK에너지는 앞으로 시행될 공급가격 체계에선 명확한 기준과 표준화된 거래 조건을 바탕으로 주유소별 주 단위 공급가격을 사전 확정하고 고지한 뒤 이를 기준으로 주 단위로 정산을 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SK에너지는 생계형 운수사업자를 대상으로 23일부터 한시적으로 SK주유소의 차량용 경유 판매가격을 리터(ℓ)당 50원 할인하는 지원책도 병행한다. 직영주유소 73개소는 판매가를 50원 인하할 예정이며, 자영주유소도 동일한 수준의 가격 인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인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할인은 석유 최고가격제가 종료되는 때까지 한시적으로 최장 한 달 간 운영된다. 앞서 SK에너지는 고유가 상황에서 경영난을 겪는 전국 SK주유소 유통망을 지원하기 위해 매월 최대 200억원 규모의 고유가·위기극복 지원금 지급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SK에너지는 에너지 안보 강화 차원에서 원유 수입처 확대와 다변화 설비 투자 등으로 중동산 도입 비중을 현재 약 70% 수준에서 50%까지 낮추는 동시에 중동외 지역에서 대체원유를 확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SK에너지의 조치들은 시장질서 확립과 민생 안정, 에너지 안보 강화 등 정부 정책 기조와 사회적 요구에 적극 호응하고, 지난 4월 SK에너지를 비롯한 정유4사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산업통상부 등이 마련한 민관합동 정유사·주유소 상생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종화 SK에너지 사장은 “SK에너지는 '책임 있는 에너지기업'으로서 공급가격 결정 구조 개선 및 국민 생활안정 지원, 원유 도입선 다변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K-배터리 소재, 캐즘 극복 전략 ‘냉·온탕’ 뚜렷

글로벌 전기자동차(EV)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배터리 후방산업인 핵심소재의 공급망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비(非)중국시장의 폭발적인 소재 수요 성장 속에서도 원가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운 중국계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공고해지는 '공급망 패권의 역설'도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국내 배터리 핵심소재 기업들이 차세대 폼팩터 선점과 비(非)전기차 어플리케이션 다변화, 탈중국 공급망 재편, 대규모 자산 매각 및 손상 처리를 동반한 고강도 구조조정 등을 적극 추진하면서 미래상승 사이클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22일 SNE리서치의 2026년 1~4월 동향에 따르면,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4대 핵심소재 시장 전반에서 비중국 지역 수요 성장률이 24~38%를 기록하며 전체 평균(14~17%)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장악력은 여전히 중국계 기업들이 87~94%의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양극재 부문을 살펴보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 핵심 원자재법(CRMA) 등 규제 효과로 비중국 시장 적재량이 32만 9000톤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27.2%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실상은 탈중국 기조와 궤를 달리한다. 글로벌 완성차(OEM) 업계가 전기차 캐즘 극복을 위해 '반값 전기차' 출시에 사활을 걸면서 원가 경쟁력이 높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채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중국 시장의 수요 성장세 이면에는 중국 후난유능 등 중국계 기업들이 LFP 양극재 시장 1위를 독식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오히려 더 강하게 장악해 나가는 '공급망 패권의 뼈아픈 역설'이 자리 잡고 있다. 음극재 시장 역시 중국계 점유율이 94.4%에 이르며, 분리막(89.6%)과 전해액(87.4%) 시장도 중국 지배력이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다. ◇ 양·음극재, 극한의 성능 한계 돌파로 승부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국내 양극재 3사인 엘앤에프·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비엠은 올해 1분기 뚜렷한 '전략 차별화'를 보여줬다. 엘앤에프는 1분기 1173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국내 양극재 3사 중 가장 극적인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뤄냈다. 광물 가격 반등에 따른 926억 원 규모의 재고자산 평가 충당금 환입 효과가 컸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본업에서의 확실한 체질 개선을 증명했다. 비결은 '초격차 기술력'과 '미래 먹거리 선점'에 있다. 엘앤에프는 주행거리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제조 난이도 최상위 제품, 즉 니켈 비중 90% 이상의 '울트라 하이니켈(Ultra Hi-Ni)'로 전체 하이니켈 출하량의 88%를 채우며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했다. 여기에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차세대 핵심 폼팩터로 꼽히는 '46파이(지름 46mm) 원통형 배터리용' 양극재 출하까지 선제적으로 본격화하며 양적 팽창을 넘어선 압도적인 질적 성장으로 캐즘의 파고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하이엔드 단결정 양극재를 통해 에너지 소재 부문 손익 분기점을 회복했고, 에코프로비엠은 전동 공구·AI 데이터 센터향 ESS 등 비 전기차 부문 매출을 전분기 대비 20% 성장시키며 방어에 성공했다. 음극재 시장에서는 '충전 속도' 혁신을 앞세운 실리콘의 매서운 추격이 눈에 띈다. 중견기업 대주전자재료의 1분기 실리콘 음극재 매출(약 120억 원)이 포스코퓨처엠의 범용 흑연 음극재 전체 매출(149억 원) 턱밑까지 쫓아왔다. 업계는 하이엔드 전기차 시장의 수요가 실리콘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 동박의 턴어라운드…“EV 쏠림 벗고 AI 가속기·ESS 정조준"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동박업계는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규 캐시카우를 발굴하며 가장 먼저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올해 1분기 매출 1598억원을 기록했다. 또, 말레이시아 공장 생산성 향상과 구리 가격 상승에 따른 레깅 효과로 영업손실을 50억원까지 대폭 축소했다. 당기순이익도 39억원 올려 전분기(364억원 적자)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동박업계의 핵심전략은 'EV 의존도 축소'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전체 매출 중 67%에 달하던 EV 비중을 올들어 38%까지 낮추는 대신 북미 ESS(BBU 포함) 비중을 22%, 하이엔드 모바일 및 전동공구 비중을 23%로 각각 크게 늘렸다. 특히, AI 가속기에 사용되는 초저조도 회로박(HVLP)의 폭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전북 익산공장의 생산능력을 올해 6700톤, 내년 1만6000톤 수준으로 올려 회로박 매출 비중을 16%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용 음극 집전체인 '니켈도금동박'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전고체 배터리 시장의 상업화를 주도하고 있다. 솔루스첨단소재 역시 AI 가속기용 초극저조도 동박 수요가 전년 대비 53.5% 폭증하며 올해 하반기 강력한 실적 턴 어라운드를 예고했다. ◇부진 소재사 '빅배스'와 구조조정 반면에 수요 둔화와 막대한 고정비 부담을 이기지 못한 일부 소재사들은 대대적인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충북 증평공장의 가동 중단, 중국 자회사 매각을 선언했다. 동박 제조사 SK넥실리스도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을 단행했다. SK넥실리스의 2025년 매출은 5060억원에 달했으나 고정비 증가와 시황 악화로 영업손실 1918억원을 감수했다. 이에 SK넥실리스는 부실 자산을 일시에 털어내는 '빅배스'를 실행했다. 가동률이 저하된 유휴기계장치 등 유형자산에 대해 1289억원 , 영업권 등 무형자산에 대해 1147억원 등 총 24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손상차손을 장부에 반영하며 2025년 544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확정지었다. 더불어 2025년 4월 말 비핵심 자산인 박막 사업부를 플렉시온(구 어펄마캐피탈)에 매각 완료하며 현금 확보와 주력 사업 재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제이오(JEIO)의 경우, 전지소재 부문 가동률이 10%대로 하락하자 반도체 EUV 펠리클·방탄용 신소재를 대안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전쟁이 바꾼 원유 수급구조…호르무즈 불안에 당분간 이어질 듯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직전까지 정유사의 원유 수급 구조가 비중동산 다변화로 향하다 멈칫했다. 중동 불안으로 수급처 다변화가 필요해졌지만 중동산이 주는 경제적 이점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이란산 원유 제재 해제가 가시화됐는데도 전쟁 전 수준으로 물동량이 회복되기 어려운 데다 사실상의 통행세 부과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19일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수입된 원유 가운데 중동산이 549만1100톤으로 전체의 약 57%를 차지했다. 4월에도 중동산 원유의 비중은 51%(434만1366톤)이었다.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4월 214만6366톤으로 국가 기준 가장 많은 25.4%를 차지했지만, 5월에는 193만404톤을 수입해 19.9%로 줄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 중동 국가들로부터 원유를 확보하고, 홍해 같은 대체 경로를 통해 수입하는 노력의 결과로 해석된다. 중동산 원유는 70%, 미국산 원유는 16.3%였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중동산 비중이 줄어든 모습이다. 중동 전쟁의 교훈으로 원유 수급 다변화가 필요하다지만, 미국을 비롯한 다른 원유 생산지에서 수입하는 비중을 막 늘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급처 비중 변화는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종전에도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과정이 더딜 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통행세 부과까지 거론되면서다. 양국 간 공식적인 양해각서(MOU) 교환이 오는 19일 이뤄지면 호르무즈 해협은 일단 재개방되지만, 전쟁 기간 묶여있던 선박들이 빠져나가야 해서 선박 적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선박의 경우 묶여있는 선박 수가 24척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가시화되는 동시에 MOU 60일 후 사실상의 통행료 부과 가능성이 커진 점도 변수다. MOU에는 상업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60일에 한해 통행료 없이' 안전하게 통항하도록 한다고 명시됐다. 서명 이후 60일만 통행료가 없다는 대목 때문에 이후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화하기 위해 이란에 비용을 내게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사우디와 UAE, 카타르 등 주요 중동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교훈 삼아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홍해 같은 곳으로 원유 운반 경로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만 파이프라인 확장 등 인프라 구축이 필요해 이 마저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에 중동산과 비중동산 비중을 어떻게 맞춰나갈지가 정유사들의 과제가 됐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했지만, 2020년 이후 미국산 도입도 늘렸다. 지난해 기준 중동산과 미국산 비중이 대략 70%, 20% 수준에 가까웠다. 미국-이란 전쟁이 초래했던 원유 수급 차질이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교훈을 고려하면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내 정유사들이 중동산 비중을 크게 둬왔던 이유는 원유 가격과 운송비용 등 가격 경쟁력과 경유·중유 같은 산업용 석유제품의 필요성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산 원유는 한국까지 운송하는 거리와 시간이 중동산의 2배가량 되는데, 원유 생산지와 연결되는 항구가 대서양 연안에 있어 태평양 항로를 이용할 수 없다. 게다가 규모가 큰 원유 운반선은 운하를 통과하기 어려워 대서양에서 아프리카 대륙 희망봉을 거치게 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정유사들이 원유 수급 다변화에 나서긴 하겠지만, 그동안 국내 정유사들이 중동산에 크게 의존해온 것은 낮은 도입 비용과 국내 원유 수요 특성 때문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미국산 원유를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운송하는 거리가 중동산의 2배가량이고, 가격도 좀 더 높다는 점에서 미국산을 무작정 늘린다는 것이 수급처 다변화의 답이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종 특성 면에서는 주로 중질유(中質油) 특성을 띠는 중동산과 달리 미국산이 경질유(輕質油)의 특성을 띤다. 정제 설비에 원유를 투입했을 때 생산하는 석유 제품별 비율이 달라지거나 생산 효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종전 합의로 수출 재개가 유력해진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는 방안도 정유업계에서 거론된다. 국내 정유사들이 이란산 원유를 정제설비에 투입한 경험이 있는 데다 비교적 가격이 낮고 운송 거리가 짧다는 중동산의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대(對)이란 금융제재로 달러 결제가 막히면서 이란산 원유는 중국 등 일부 국가로만 시세 대비 낮은 가격에 공급됐다. 한국도 마지막으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한 때가 2019년이다. 다만 대이란 제재가 완화되면 이란산 원유가 일부 국가로만 향하는 '그림자 시장'에서 벗어나 국제 석유시장에서 거래된다는 점이 변수다. 제재 전 수준으로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회복된다 해도 증가 폭이 크지 않고, 국제 시장에 공급될 중동산 원유가 확대된다는 점에서 가격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란산 원유는 '그림자 물량'이라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제재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입하지 못하면서 낮은 가격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란산이 국제 석유시장에 풀리면 낮은 가격 프리미엄이 사라지게 되겠지만, 전체 중동산 석유 공급이 확대되는 효과도 있다“며 "그간 한국과 일본 등에 기준 가격에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했던 사우디아라비아산의 프리미엄을 전보다 덜 붙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정성호 법무장관 “유가담합 실체 밝히고 책임 묻겠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최근 석유제품 가격 담합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 국내 정유사 임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인용된 것과 관련해 “유가담합의 실체를 밝히고 상응한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19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석유제품 가격을 조작하는 행위는 물가를 왜곡하고 국민경제를 흔드는 중대 범죄"라며 이 같이 말했다. 정 장관은 “대검찰청에 엄정 대응을 지시하고 관련 수사비를 추경을 통해 확보했다"며 사안의 엄중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를 대상으로 미-이란 전쟁을 전후로 사전에 석유제품 가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가격을 담합한 의혹을 두고 수사를 벌여왔다. 이후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 부동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 부서의 현직 부서장 A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부서 팀원 B씨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검찰이 중동 전쟁을 틈타 일주일 만에 휘발유 가격을 200원 폭등시킨 혐의로 정유사 임직원을 구속했다"며 “유가담합으로 국민이 입은 피해는 14조원 대에 이른다"고 짚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아침, 점심, 저녁 가격이 다르고 심지어 리터당 200원 가까이 올리는 곳도 있다"며 단호히 대응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SKC “‘美 유리기판 2공장 백지화’ 검토한 적 없어”

SKC가 미국에서 추진 중인 유리기판 생산공장 증설 계획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SKC는 18일 입장문을 내고 자사의 반도체 유리기판 사업 투자사 앱솔릭스가 미국 유리기판 2공장 증설을 백지화했다는 보도에 대해 “현재까지 이를 백지화하거나 무산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거나 검토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SKC는 “앱솔릭스의 2공장 증설은 당사의 중장기 성장 전략과 사업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유리기판 사업 현황에 관해서는 “유리기판은 세계 최초로 상용화를 추진하는 신공정인 만큼 철저한 검증과 공정 안정화가 필수"라며 “현재 앱솔릭스는 1공장의 상용화 준비 및 글로벌 고객사 대상 신뢰성 검증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2공장 증설 시기, 투자 규모 등은 상용화 진척 상황, 고객 수요, 시장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중동전 끝나자…석화업계, 고도화·구조개편 ‘신발끈 다시 맨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 교환을 앞두고 있지만 석유화학 기업들이 전쟁 전 불황으로 돌아갈까 내심 걱정하고 있다. 생산설비 감축과 고부가가치 소재 비중 확대 등 석화 산업구조 개편을 전쟁 기간만큼이라도 미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전으로 돌아가면 범용 소재 중심으로 공급 과잉과 스프레드(판매 가격과 원가 간 차이) 축소가 나타나 석화사들의 영업실적에 부담 요인이 커질 수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악재를 피하기 위해 석화업계의 사업 구조 고부가화 전략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과 석화업계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나프타 가격은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 16일 싱가포르 석유시장(MOPS)에서 나프타 가격은 배럴당 70.24달러로 전쟁 직전인 2월의 평균 가격 65.70달러에 접근했다. 2월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3월 중순부터 100달러선을 넘기고 한때 140달러선에 가까워질 정도로 높은 가격을 유지했지만, 지난달 22일 100달러선 아래로 내려온 이후 전날까지 하락세가 유지됐다. 최근 양국이 종전 합의에 이르고 19일 MOU 문서를 주고받기로 하면서 원유와 석화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중동 국가들이 원유 생산 뿐만 아니라 정유 사업도 확대하면서 국내 석화사들은 중동산 나프타 가운데 국내 정유사들보다 가격이 낮은 것을 찾아 종종 구매해 왔다. 이에 국내 석화사들이 전체 나프타 가운데 약 45%를 수입산에 의존해왔고, 이 중 대부분이 중동에서 왔다. 전쟁 후에는 미국산이나 알제리산 등 비중동산 비중이 더 커졌고, 구매 가격도 더 높았을 정도로 나프타 수급 구조가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석화사들은 이 같은 상황에 한숨 돌리면서도 마냥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나프타 가격 하락이 수급 안정과 공급 확대라는 신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에는 나프타 공급 차질이 석화기업들의 생산을 조금이나마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종전 분위기에서 석화기업들의 생산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면 시장 공급 과잉이 재현될 우려가 커진다. 이란 역내 상황 안정이 중국 석화산업에 유리해지는 점도 변수다. 중국이 원유를 저렴하게 조달하는 창구 가운데는 서방의 금융 제재를 받는 국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란도 중국의 주요 원유 수급처 중 하나다. 이번 종전협상으로 금융 제재 해제가 가시화된다면 중국의 석화산업에 반사이익이 갈 것이라는 것이다. 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에틸렌 가격은 톤당 870만달러로 전쟁 전인 1월과 2월 평균 675달러와 663.75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다만 종전 가시화로 향후 가격이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게다가 전쟁 중 비싸게 주고 산 나프타로 석화제품을 생산한 뒤 종전으로 낮아진 가격으로 판매하는 구조 때문에 실제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재고 효과와 래깅(원료 구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의 차이로 나타나는 손익) 효과가 반대로 나타나는 수순도 우려된다. 지난 1분기 주요 석화사들은 나프타 가격 상승으로 원료 제조 재고가 재평가되면서 재고이익이 발생했고, 석화소재 가격이 폭등한 만큼 래깅 효과가 실적에 크게 반영됐다. 2분기까지는 전쟁에 따른 재고 효과와 래깅 효과가 이어지더라도 오는 하반기 유가와 석화제품 가격 하락에 따른 역래깅 효과가 나타나며 영업실적 적자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나프타 수급이 회복된다는 긍정 요인이 있지만, 전쟁 이전 시황으로 돌아가 중국발(發) 석화 공급 과잉과 스프레드 축소, 판매 가격 하락 같은 부담 요인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종전 후 재건 같은 수요 확대 요인이 커져 시장에서 공급 대비 수요가 얼마나 뒷받침될지가 석화사들이 하반기 체력을 확보할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국내 석화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학계, 업계와 함께 석화산업 구조 재편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화학산업포럼을 출범하기도 했다. △공급망 안정화 △생태계 고도화 △지역 경제·고용을 중심으로 성장 기반을 논의하고, 논의 내용을 토대로 올해 10월 발표를 목표로 '화학산업 생태계 종합 지원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코오롱인더스트리, 서울시립대와 AI·소재 ‘산학협력’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 16일 서울시립대학교와 인공지능(AI)·소재 분야 산학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양 기관은 △AI·소재 분야 공동 연구 체계 구축 △최신 기술·첨단 산업 정보 공유 △대학 연구 인프라·기업 기술 자원 공동 활용 △인공지능 융합 기반 전문인력 양성 등의 협력을 추진한다. 이번 협약으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자체 고기능성 소재 기술과 개발 역량에 서울시립대의 최첨단 AI 연구 역량을 접목할 계획이다. 그동안 추진해온 신소재 개발 프로세스의 인공지능 전환(AX)도 가속화한다. 허성 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이사는 “서울시립대의 우수한 연구 인프라와 긴밀히 협력해 신소재 개발을 가속화하고 시장을 선도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정승현의 소재 탐구] 양극·음극 결합 차단 기능…캐즘 뚫고 미래 전동화 ‘견인’

전동화가 지연되면서 배터리 시장의 일시적 수요 침체(캐즘)가 길어지고 있지만 배터리 안정성을 좌우하는 분리막 사업에 대한 국내 화학업계의 의지가 여전하다. 전기차 확대 기조가 분명해 당장 수익성 부진을 이유로 정리하기보다 생산 구조를 효율화하고 연구개발 역량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다른 석화 소재처럼 범용 분리막은 저가 대량 생산에 유리한 중국이 잡고 있지만, 분리막 사업에 일찍이 뛰어든 국내 기업들이 더 얇으면서도 고도의 안정성을 갖춘 배터리 분리막 개발·생산에 집중하면서 미래 시장을 준비 중이다. 15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분리막 기업들은 자사의 생산 구조를 효율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미래 전동화에 대비하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지난달 말 중국 사업장을 현지 기업에 매각하고 충북 증평 공장에서 생산을 더 이상 안하기로 결정했다. 대신에 폴란드에서 진행 중인 12억㎡ 규모의 2~4공장 증설에 집중해 고도화된 생산 설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LG화학도 헝가리 공장의 원단 분리막 사업을 정리하고 기술 난이도가 높은 분리막 생산에 집중한다. 분리막은 배터리 안에서 움직이는 전해질 이온을 통과시키면서도 양극과 음극이 맞붙는 현상을 막는 소재다. 배터리 내부는 전자의 흐름에 따라 양극과 음극으로 나뉘는데, 두 극이 붙으면 큰 폭발이 발생하기 때문에 분리막이 필수다. 리튬을 전해질로 쓰는 배터리의 분리막은 리튬배터리분리막(LiBS)으로 부른다. 대표적인 석유화학 소재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 필름이 분리막의 주 재료다. PP나 PE 필름을 적절히 당겨 찢는 건식 공법이나 유기용제를 첨가해 압착하는 습식 공법을 이용해 전해질 이온만 통과시키는 기공(구멍)을 만든다. 분자의 통과를 막으면서 전자의 흐름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미세한 수준까지 관리되는 공정이 필요하다. 건식공정보다는 습식공정이 안전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필름을 찢는 방식으로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전해질 분자가 통과할 정도로 큰 기공이 생겨 양극과 음극 간 분리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습식공정은 PP·PE 필름에 유기용제를 첨가해 압착한 뒤 용제를 제거하는 방식이라 덩어리가 큰 분자의 이동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석화기업들이 분리막 제조 기술에 뛰어든 건 2000년대부터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2007년 국내 최초, 세계에서 3번째로 리튬전지 분리막을 개발한 뒤 국내와 중국, 폴란드 세곳에 생산 거점을 구축했다. LG화학도 2021년 LG전자에서 분리막 사업을 넘겨받은 뒤 사업을 영위해왔다. 다만 배터리 분리막 사업도 배터리 캐즘 영향에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SKIET는 지난 1분기 73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지난해에도 영업적자를 이어갔다. LG화학도 분리막 사업이 수익성 개선에 기여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을 놓아버리면 전동화 기조에 따른 전기차 사용과 전력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크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처럼 무게를 어떻게든 최소화해야 하는 배터리에는 더 얇으면서도 안정성이 우수한 분리막을 쓰는 것이 유리하므로 범용 단계를 뛰어 넘은 국내 분리막 기업들이 앞설 수 있는 요인이 남아 있다. 대중국 배터리 공급망 견제 움직임도 기댈 수 있는 요인이다. 유럽연합(EU)이 최근 배터리를 포함한 전략산업의 역내 제조를 촉진하기 위한 산업가속화법안을 내놓으면서 배터리 주요 부품도 EU 주요 원산지 요건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특히 법안 시행 3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 중 셀과 관리 시스템, 양극재를 포함한 5개의 주요 부품이 EU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도록 규정하게 된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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