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두번째 임기 때도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석탄과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활용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기후변화에서 에너지안보로 정책을 선회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석탄발전에 대해 한결같이 축소·퇴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에너지안보는 물론 저렴한 전력가격을 지탱해 온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19일 최근 임명된 한국전력산하 발전공기업 사장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질서있는 석탄발전 전환'을 발전사의 핵심 경영목표로 삼아달라"며 “폐지 이후 남겨지는 발전설비, 송전선로, 발전소부지 등도 국가와 지역사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지역경제 발전과 국가 전력계통에 기여할 수 있는 적절한 활용 방안을 고민해달라"고 강조했다. 제10차 및 제11차(안)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5년 말 태안화력 1호기 폐지를 시작으로 2039년까지 발전5사가 보유한 석탄발전기의 75% 이상이 폐지될 예정이다. 석탄발전소는 2026년부터 10년 동안 전국에서 총 26기가 폐쇄되고, 액화천연가스(LNG) 연료로 전환된다. 삼천포 1‧2호기는 이미 폐쇄됐고, 3‧4호기는 2026년, 5호기는 2027년, 6호기는 2028년 문을 닫는다. 하동 1호기는 2026년, 2호기는 2027년, 3호기는 2027년, 4호기는 2028년, 5호기는 2031년에 폐쇄된다. 보령, 태안, 당진, 영흥화력발전소도 2026년에서 2031년 사이 폐쇄가 진행된다. 그러나 정부의 기존 발표와 달리 기존 석탄발전소 설비규모와 일자리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대책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발전공기업 노조 관계자는 “정의로운 산업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발전소 폐쇄로 인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라며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지자체도 발전소 폐쇄로 인한 고용충격을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석탄발전 집중적 폐쇄시기인 2025~2028년 사이 가장 많은 고용과 소득충격이 예상된다. 액화천연가스 연료 발전으로 100% 전환하더라도 현재 인원 대비 1/3 정도는 충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지역 내 발전소 폐쇄로 인한 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용 충격을 대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업계 일각에서는 일자리와 지역경제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미국 등 다른 국가들처럼 에너지안보 강화와 한전의 적자 해소,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판매단가가 원전 다음으로 낮은 석탄발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발전 연료원별 킬로와트시당(kWh)당 발전단가는 원전 55원, 석탄 141원, 액화천연가스(LNG) 214원, 신재생에너지 168원이었다. 전력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평균 160원대였다. 즉, 한국전력공사는 원전과 석탄발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사서 팔 때는 손해를 보지 않았지만 LNG와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고 팔 때마다 손실을 본 것이다. 미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저렴하다. 2022년 기준 미국의 메가와트시(MWh)당 산업용 전기요금은 84달러로 프랑스 137달러, 일본 146달러, 독일 203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트럼프 차기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의 전력 요금을 더 낮출 수 있지만 기후변화를 명분으로 하는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한다. 우리나라는 한전이 2021년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에너지위기로 40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했다. 민생을 고려해 가정용은 올리지 못한 고육지책이지만 이로 인해 수출 주도 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악순환 구조 해결을 위해 탄소중립에 앞서 에너지안보를 에너지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미국처럼 새로운 발전원이 아닌 원전과 석탄화력 등 기존의 발전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세력의 반대로 이를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당시부터 미국 내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어렵게 하는 모든 규제를 제거하고, 나아가 필요하다면 환경청(EPA)도 폐지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는 물론 발전공기업 사장들도 최근 취임사에서 일제히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전환 정책을 적극 수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전을 비롯한 발전공기업들의 주력 사업은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이다. 업계에서는 탈석탄 가속화는 한전과 산업계는 물론 이를 추진하는 공기업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승신 C2S 컨설팅 대표는 “한국은 균형 잡힌 에너지믹스 덕분에 유럽이 겪었던 에너지 쇼크를 넘길 수 있었지만 급등한 에너지가격으로 인한 물가급등의 영향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을 비롯해 유럽도 최근 탄소중립 정책의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정책을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전공기업들은 정부의 탈석탄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이 역설적으로 공기업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이미 국정감사에서도 5개 공기업 체제의 비효율과 부작용이 수차례 지적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구조 대부분을 담당하는 석탄화력을 무작정 죽인다면 가장 먼저 사라지기 좋은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