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과 패기로 위기 돌파…새해 재계 ‘말띠 경영인’ 달린다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재계 '말띠 경영인'들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관록을 앞세운 총수부터 패기를 내세운 신진 리더까지 각기 다른 색깔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말띠 경영인의 대표 주자는 1978년생인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이다. 김 의장은 작년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잘 수습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약 3370만명의 고객 정보가 노출된 대형 보안 사고다. 단일 사건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쿠팡은 특히 이를 인지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건 축소, 2차 피해, 책임 회피 등 각종 논란에 휘말렸다. 김 의장은 유출 사실이 알려진지 한 달여만인 지난해 12월28일 처음으로 사과문을 내고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김 의장이 향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유통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일부 고객들을 중심으로 '쿠팡 불매운동'에 불이 붙고 있다. 대형마트 역차별 규제 해소 등이 공론화되며 유통가에 구조적인 변화도 예고된 상태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역시 1966년 말띠 인물로 주목받는다.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진 않지만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재판 등 개인적인 '사법리스크'를 털어내는 방식이 IT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전환이 화두인 시대에 김 창업자가 카카오의 변화를 위해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1978년생인 허희수 SPC그룹 사장은 작년 말 승진과 함께 각종 낭보를 전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허 사장이 국내에 들여온 '쉐이크쉑' 사업을 확장하거나 배스킨라빈스에 '케이크 플랫폼 전략' 등을 구사해 SPC가 고객층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해에는 수익성을 더욱 끌어올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숙제를 먼저 풀 것으로 전망된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총괄사장 역시 1978년생이다. 박준경호(號)는 업황이 불안한 가운데도 영업흑자를 이어오고 지배구조 개편작업에도 속도를 내며 순항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 관심사는 동갑내기이자 사촌지간인 박철완 전 금호석화 상무와의 대결 구도다. 박준경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실적 개선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 최대주주로서 경영진을 압박하며 경영권 분쟁 불씨를 지피는 박 전 상무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가 눈길을 끈다. 상법 개정과 금호석화의 자사주(13.4%) 처리 방식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 경영권 분쟁에도 말띠 경영인이 엮여있다. 1954년생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대립하며 주주총회 표 대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한국·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광윤사 최대주주다. 신동빈 회장은 이에 맞서 롯데지주를 중심으로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1990년생 '젊은 말띠 경영인' 가운데는 CJ그룹 4세인 이선호 미래기획실장(경영리더)가 주목받는다. 이 경영리더는 지난해 인사를 통해 그룹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는 동시에 상위 조직인 미래기획그룹까지 이끄는 방향으로 역할을 확대했다. 전세계적으로 K-컬쳐과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이 경영리더의 행보에 따라 CJ그룹이 '퀀텀점프'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2026 산업 기상도] AI 훈풍 반도체 ‘수출 맑음’, 보호무역·캐즘에 소재·완성차 ‘흐림’

2026년 한 해 한국 경제의 날씨 전망은 '반도체 선방, 소재·완성차 부진'으로 요약된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가 반도체와 전자기기 수출을 견인하며 '맑은 날씨'를 예보하는 반면, 철강과 석유화학 등 소재산업은 공급 과잉과 보호무역의 악재에 벗어나지 못하고 '날씨 흐림'을 보일 전망이다. 조선업은 지난해 한·미 관세협상에서 합의한 MASGA(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한 한국 지원협력)를 토대로 글로벌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자동차와 배터리는 전동화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의 장기화를 돌파할 묘수 여부에 따라 한 해 기상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외적인 요인으로 가장 극복해야 할 과제는 단연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고환율 문제다. 새해에도 고환율 기조가 이어진다면 국내 산업계는 제조비용 부담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 비용 부담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하려해도 정부의 물가 규제로 '냉가슴'을 앓아야 할 처지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산업연구원의 '2026년 경제·산업 전망'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2025년 수출입 평가 및 2026년 전망'의 주요 산업군별 수출 전망치를 바탕으로 올해 산업계가 마주할 수출 환경을 내다봤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13대 주력산업 수출이 지난해보다 0.6% 감소한 5444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역협회는 올해 수출이 711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0% 늘고, 무역수지는 780억달러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와 전자기기 등 IT품목이 수출 증가세를 이끄는 반면, 철강·석유화학과 자동차 산업에서 수출 감소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보통신(IT) 분야는 AI 호재에 올라탄 대표적인 분야다. AI 산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사양 메모리 제품을 원해 미국의 관세 정책 여파에도 수출이 견조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무역협회는 올해 반도체 수출액이 180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5.9% 늘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약 3분의 2인 1250억달러를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 같은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HBM4) 양산 단계에 접어들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납품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뒤처졌다가 올해 들어 부지런히 추격해 내년 중 HBM4 를 납품할 것이라는 업계 전망이 나온다. HBM 이전의 주력 제품이었던 D램도 서버에 탑재할 고사양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고 있다. 지난달에는 삼성전자는 전력 소모량이 적고 대역폭(데이터 전달 통로)가 큰 저전력더블데이터레이트(LPDDR) D램을 쌓아 만든 소캠2을 개발하고 엔비디아에 샘플을 공급했다.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5세대(1b) 32기가비트(Gb) 기반 256기가바이트(GB)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레지스터드 듀얼인라인메모리모듈(RDIMM)이 인텔의 호환성·성능 검증 절차를 통과했다. 한국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 업계는 미국의 15% 관세를 극복하는 동시에 전기자동차(EV)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하이브리드 전기차(HEV), 내연기관 차 사이에서 대응 전략을 고심하는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무역협회는 올해 자동차 수출이 712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0% 줄고, 자동차 부품은 211억달러로 0.5%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 관세 15%는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주요 자동차 생산 국가들도 부과받는 수준이라 그나마 한국 완성차 기업들이 북미 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GM과 스텔란티스, 포드 등 미국 기업들과는 가격 경쟁력 면에서 불리해 수출 감소가 불가피한 것이다. 전기차의 일시적 수요 부진(캐즘)이 길어지는 점도 한국 완성차 업계에 부담이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전기차 보조금 폐지와 화석연료 정책 강화가 나타나고, 유럽연합(EU)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운행을 전면 금지한다는 정책을 지난달 17일(현지시간) 거둬들였다. 북미와 EU에서 전동화가 주춤한 사이, 강력한 중앙정부 지원과 배터리 생산 경쟁력에 힘입어 선두에 선 중국이 이 틈을 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가 더 커졌다. 내연기관을 넘어 HEV와 EV 기술력으로 글로벌 3위 자리에 오른 현대차·기아에게는 세계 EV 정책 변화로 고민이 깊다. 올해 2~3분기 들어 미 관세 영향이 영업 실적에 반영됐다는 점도 고민이다. HEV와 EREV로 캐즘 극복과 전동화 미래 준비를 같이 해나가고,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비롯한 미 현지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을 120만대로 확대할 예정이다.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을 구성하는 부품 업계는 전동화 지연으로 한숨 돌린 모양새다. 내연기관과 전기차는 에너지 저장부터 동력 전환까지 부품이 전반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완성차 기업들이 미 관세로 받는 영향이 고스란히 부품사들에게 이어지는 만큼 수출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해 글로벌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선방했던 선박 수출은 올해 들어 증가세가 주춤할 전망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올해 선박 수출이 28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2.8% 늘 것으로 내다봤다. 액화천연가스(LNG)선이 선종별로 가장 비중이 큰(48%) 135억달러로 수출을 견인하고, 컨테이너선은 42억달러(15%)의 수출 실적을 낼 전망이다. 전 세계 조선사들의 선박 신조 수주가 줄어드는데도 미국이 중국의 해양패권 부상과 조선업 성장을 견제하는 조치를 내릴 가능성 때문에 한국이 반사 이익을 볼 전망이다. 영국 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지난해 1~11월 선박 수주량이 4499만CGT(표준선환산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줄었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2664만CGT를 수주해 47% 감소한 반면, 한국은 1003만CGT로 5%만 줄었다. 지난해 11월 한미 무역협상 팩트시트를 통해 명문화한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도 올해 토대를 다져놔야 한다. 미국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범위에 동맹국 조선소를 포함하는 법안 마련과 협력 내용과 투자 세부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제를 올해 어떻게 푸느냐가 마스가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올해차(2025년 10월~2026년 9월) 미 국방수권법(NDAA)의 경우 조선 분야 신규 투자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을 우선시하라는 내용이 지난해 10월 상원을 통과했지만, 하원과 조율하는 과정에서 빠졌다. 이에 마스가가 순항하기 위한 미국 내 법적 제약을 풀기 위한 조선업계와 정부의 설득 작업이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조선3사의 개별 활동은 이미 시작됐다. 한화오션은 지난해부터 미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 고도화 작업과 인력 교육에 나섰다. HD현대는 헌팅턴 잉걸스와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 등 미국 조선사들과 공동 건조 같은 방안을 준비 중이고,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같은 학계와도 연구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계기로 나스코와 콘래드 등 주요 조선소와 협력하기로 했다. 위기감이 큰 분야는 철강과 석유화학, 배터리 분야다. 중국 산업의 전방위적 공세에 더해 보호무역 기조,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 시도로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아서다. 무역협회가 전망한 올해 철강과 석화산업 수출은 각각 296억달러와 400억달러다. 지난해보다 2.0%, 6.1% 줄어든 수치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서 철강 완제품 수요가 8억3110만톤으로 지난해보다 1.0% 줄어드는 반면, 중국을 뺀 나머지 전세계에서는 3.5% 늘어난 9억4140만톤의 수요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수요 증가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인도 같은 주요 수요 국가들이 무역장벽을 세우면서 호재로 만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해 4월부터 부과한 철강 고율 관세를 완화할 여지를 남기지 않아 철강사들이 여파를 입고 있다. 미국 내 차량용 강판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철강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추가 악화를 방어하는 상항이다. EU는 철강 같은 탄소 다배출 품목을 중심으로 생산 과정에서 나온 탄소량을 계산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올해부터 시행한 데다, 빠르면 하반기부터 국가별로 철강제품 저율관세 할당량(TRQ)을 축소하는 동시에 TRQ를 넘어선 물량에 부과하는 관세를 50%로 높일 계획이다. 인도는 지난해 4~11월에 걸쳐 12%의 철강 관세를 일시적으로 부과했는데, 2030년까지 연간 3억톤의 철강 생산 능력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만큼 관세 정책을 다시 펼 가능성이 크다. 석유화학은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공급 과잉에 따른 생산설비 감축을 내걸었지만, 고부가가치 소재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큰 틀을 잡고 있어 마냥 긍정적이지만 않다. 당장은 산업단지별 사업 재편 문제부터 매듭 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석화기업들은 NCC 감축과 합작기업(JV) 설립을 통한 설비 통합 방안을 중심으로 구조재편 자구안의 큰 틀을 마련해 지난달 19일 산업통상부에 제출을 마쳤다. 석화사들은 전체의 18~25%인 270만~370만톤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줄이기로 자율협약을 맺고 사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기자들에게 석화 기업별로 논의 과정이 다르다면서도 “(2026년) 1분기 안에 (사업 재편 최종안 제출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석화·정유업계 중 논의 속도가 가장 빠른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충남 대산 산업단지 내 사업 재편안은 이달 중 산업부 승인까지 마칠 계획이다. 배터리는 생각보다 길어지는 EV 캐즘에 고민이 깊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수출 전망치가 62억달러로 전년보다 12% 줄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SDI와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3사가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대비해 배터리 기술과 생산 역량을 고도화했는데, 전기차 보급에 적극적이었던 미국과 EU에서 보급 속도 조절이 일어나면서다. 배터리 3사 뿐만 아니라 고려아연이나 포스코퓨처엠 같은 배터리 소재 기업들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전기차 성장이 두드러지는 중국은 CATL 등 자체 배터리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을 장악해 국내 기업들이 성장 돌파구로 삼기 어렵다. 이에 올해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으로 국내외 시장을 공략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갈수록 전력을 많이 소비하면서 안정적인 전원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ESS는 용량이 거대한 배터리 같은 것이기 때문에 전기 에너지를 전달할 양·음극재와 전기 저장체인 전해질, 배터리팩 등 제품 구성과 작동 원리가 같다. 배터리 3사가 기존 공정을 ESS에 맞춰 개조하면 돼 캐즘 돌파구로 여겨진다. 올해 전 산업에 걸친 부담요인으로는 '고환율'이 꼽힌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이 한때 1480원선을 넘으면서 고환율 기조가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60개 교역상대국과 비교한 원화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이 10% 하락하면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실질실효환율이 낮아지면 원화의 실질가치가 저평가된다는 뜻으로, 같은 제품을 수입할 때 더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한다. 철강과 석유화학, 정유 등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군은 고환율이 제조 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완성차와 조선, 배터리 등 수출 비중이 큰 산업군에게도 기자재 구매 부담 같은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고환율로 원화 기준 매출이 늘어나는 현상이 옛말이 됐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고환율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위해 정해진 원달러 환율로 해외직접투자(FDI)를 하거나 장기간 원료 구매 계약을 하는 등의 환율 헷지 대책을 마련해놓는다"며 “이 같은 고환율 대책으로 당분간은 방어가 가능하지만, 상황이 더 길어져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게 되면 고환율 여파를 완전히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산업계 관계자는 “달러로 대금을 결제하는 조선사들도 기자재 구매를 비롯한 해외 조달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고환율의 부정적 영향은 조선사들에게도 마찬가지"라며 “고환율 장기화 가능성을 반영해 환헷지 비율을 정해놓는 식으로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이슈&인사이트] 다크 팩토리와 어쩔수가 없다

2025년의 화제작 중 하나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는 제목부터 체념과 강박 정서를 드러낸다.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구직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중산층 가장의 폭주를 그린다. 예민한 관객이라면, 그 폭주보다 다른 데에 주목할 법하다. 주인공의 살의보다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음산한 풍경에 등골이 서늘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자동화해 인간의 숨결이 사라진 공간, 즉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를 연상시키는 곳을 주인공 만수(이병헌)가 거니는 묵시록적 마감에서 말이다. '다크 팩토리'는 '다크' 자체에서 뭔가 음울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다크'는 원래 '스마트'에서 시작했다.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장밋빛 미래가 그려졌다. 효율적이고 깨끗하며, 데이터가 흐르는 지능형 공장이다. 하지만 '스마트'는 종국에 '다크'를 지향한다. '스마트'의 본질은 '다크'이다. '다크 팩토리'는 “불 꺼진 공장"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말이다. 기계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조명이 필요 없다. 적외선 센서와 데이터 전송으로 움직이는 공장에서 조명은 불필요한 비용이다. 1980년대 GM의 로저 스미스 회장은 '라이츠 아웃(Lights-out)' 제조 공정을 꿈꾸며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기계들끼리의 충돌을 막지 못해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반 세기가량이 지나면서 지금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은 그 '어둠'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마트'가 경영의 언어라면, '다크'는 실존의 언어다. 노동자의 눈을 위해 켜두었던 불이 꺼지는 상황은, 그 공간에서 인간의 자리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의미하는 섬뜩한 선언이다. 로봇은 야근이나 잔업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어둠도 상관하지 않는다. 한데 이 대목에서 다급한 문제는 철학이 아니라 생존이다. '다크 팩토리'는 인간 존재에 관한 첨예한 논쟁을 불러올 테지만, 당장은 에너지 충당을 발등에 불로 떨어뜨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어두운 공장은 전기라는 뜨거운 문제로 야기한다. 노동자는 밥을 먹지만, AI와 로봇은 전기를 먹어 치운다. 특히 데이터 센터와 결합한 현대의 '다크 팩토리'는 과거의 공장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전력을 요구한다. 불 꺼진 공장이 불을 켠 공장보다 전기를 더 필요로 한다. 한국 경제의 곤란을 예감한다. 글로벌 시장은 한편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며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를 강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AI와 '다크 팩토리' 시대를 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전력를 갈망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은 세계 수준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숙제와, 폭증하는 산업용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해 화석 연료를 줄이면서도,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불 꺼진 공장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쥐어짜내야 하는 현실은 연극 같다. 박찬욱의 영화 속 주인공이 직장을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한 일터가 결국 인간의 빛이 꺼진 '다크 팩토리'라는 설정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AI를 도입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을 지워내는 '다크 팩토리'를 건설한다. 국가적으로는 이 거대한 기계 장치를 돌리기 위해 에너지 전쟁을 벌인다. 전기 문제를 해결하고, AI 주권과 제조 경쟁력을 확보해 4차산업 혁명에서 살아남는 것은 국가의 과제다. 그러나 AI, 빅데이터, 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결합한 '다크 팩토리'에 더 없이 인간적인 전력인 재생에너지를 공급해 마주할 세상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아름다운 곳일까. 당장은 공장의 불을 꺼야 하는 처지이긴 하다. 그것도 남보다 빨리.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일단 가야 하는 길일까. 안치용

韓 수출 사상 첫 7천억달러 돌파…반도체 견인

대내외 불확실성 속 지난해 한국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이 호조를 띄면서 전체 수출 실적을 끌어올렸다.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5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은 전년 대비 3.8% 증가한 7097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기존 역대 최대였던 2024년 수출 기록(6838억달러)를 다시 경신한 것이다. 우리나라 연간 수출액이 7000억달러를 넘은 것은 2018년 6000억달러를 달성한 이후 7년 만이다.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1년 만에 갈아치운 배경에는 반도체·자동차 등 핵심 수출 품목의 강세 덕분이다.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보다 22.2% 증가한 1734억달러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자동차도 전년 대비 1.7% 증가한 720억달러 역대 최대 실적을 썼다. 미국 관세 문제로 대미 수출은 줄었지만 하이브리드·중고차 수출 호조로 유럽연합(EU), 독립국가연합(CIS) 등에서 수출이 증가한 영향이다. 이 밖에 바이오헬스 수출(163억달러, 7.9%), 선박(320억달러, 24.9%) 컴퓨터(138억달러, 4.5%), 무선통신기기(173억달러, 0.4%) 등이 수출 강세를 나타냈다. 한류 영향에 K-푸드·뷰티 선호도 커지면서 농수산식품(124억달러), 화장품(114억달러), 전기기기(167억달러) 등의 수출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수출은 695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4% 늘면서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달성했다. 한국의 월간 수출은 지난해 2월 증가세로 전환된 뒤 11개월 연속 늘어나는 수출 플러스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신년사]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AI 에너지원 SMR·수소연료전지로 기회 살리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1일 새해에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새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형원전, SMR(소형모듈원전), 수소연료전지 분야에 주력하겠다는 경영 의지를 밝혔다. 이날 발표한 신년사에서 박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전자소재, 가스터빈 같은 분야에서는 기술력에 자신감을 갖고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고 추가 고객 확보에 힘쓰자"고 그룹 구성원들에게 당부했다. 박 회장은 “AI 기반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머지않아 완전히 다른 선상에 있게 될 것"이라며 “빠른 인공지능 전환(AX) 추진을 통해 기존 제품의 지능화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포트폴리오 확장을 도모하자"며 AI 에너지산업에서 기회 창출을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가 자체 개발한 가스터빈을 미국 시장에서 첫 수출한 성과를 언급하며 임직원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올해 경영환경과 관련해 통상 갈등, 무역 장벽, 지정학적 분쟁, 주요국 정책 변화 등 불확실성을 전망하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시대를 관통하는 확실한 성공 방정식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사실"이라고 지속적인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두산은 발전 기자재, 건설기계, 로봇 등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제조 역량과 하드웨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피지컬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면서 “빠른 AX 추진을 통해 기존 제품의 지능화는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포트폴리오 확장을 도모하자"고 주문했다. 연합뉴스

[AI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나라도, 기업도 ‘AI 패권 경쟁’…한국 ‘3강 도약’ 사활 걸었다

새해에도 인공지능(AI) 시장은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빅테크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AI 열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제조업 분야에서도 본격적으로 AI를 공급망 전반에 접목하기 시작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만큼 민·관·학 협력에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주요국은 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미국이 기술력과 자본 측면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가운데 중국이 뒤를 추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강 도약'을 목표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지난해 기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의 AI 관련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55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아마존 한 곳의 연간 투자액만 놓고 보면 미국 전체에서 석유·가스 시추 등을 위해 쓴 에너지 섹터 총지출보다 큰 수준이다. AI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라는 거대 물리 인프라를 독점하려는 '에너지 및 영토 전쟁'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AI 연산 능력을 H100 환산 수치로 비교해 보면, 미국이 약 3970만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은 약 510만개 수준으로 글로벌 4~5위권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다만, 지난 2024년 AI 민간 투자액 상위 10위를 국가별로 뽑았을 때 우리나라는 10위권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이 시기 미국의 AI 민간 투자 규모가 1090억달러로 한국(13억달러)의 80배를 넘는 수준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중국, 영국, 스웨덴, 캐나다, 프랑스, 독일, UAE,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등이 경합하고 있다. 전세계 우수 인력과 자본이 집중된 미국 실리콘밸리는 AI를 통해 재도약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경제연구소인 The Bay Council Economic Institute 소속 션 란돌프 시니어 디렉터는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와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개최한 '한-미 혁신생태계 및 AI 미래전략' 세미나에 참가해 미국의 현 상황을 전했다. 란돌프는 “2024년 전세계 벤처투자액 중 AI분야가 37%를 차지하며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특히 미국 내 AI 투자의 76%가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집중됐다"며 “2024년 전세계 AI 투자 유치액 기준 상위 5위를 기록한 기업들도 모두 이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등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161개사 중 64개사(40%), 펜타콘 기업(기업가치 50억달러 이상) 79개사 중 45개사(57%)가 소재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혁신생태계가 가장 잘 구축된 지역으로 꼽힌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안정적인 정책 환경에서 AI에 자본을 집중 투자해 왔다. 반면, 한국은 AI 투자 속도가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가 최근 1만3000여장의 최신 그래픽장치(GPU)를 확보한 것과 달리 미국은 민간기업인 오픈AI 한 곳에서만 2024년 기준 GPU 모듈 H100를 72만장을 가동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부문은 2026년부터 AI와 제조업의 접목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인력·자본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형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504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말 발간한 '기업의 AI 전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82.3%가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대기업(49.2%)보다는 중소기업의 활용도(4.2%)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투자비용에 대한 부담 수준을 묻는 질문에 기업의 73.6%는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AI 전환 수요가 늘면서 '인재 구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AI 활용을 위한 전문인력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80.7%가 '없다'고 했다. 'AI 인력을 어떻게 충원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기업의 82.1%가 '충원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대한상의 보고서는 한국의 AI 인재가 2만1000명 수준으로 △중국 41만1000명 △인도 19만5000명 △미국 12만명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 우리 정부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단 오는 2030년까지 피지컬 AI 분야 1위 달성을 목표로 핵심 기술과 데이터를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최근 'AI 액션플랜'을 발표하고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은 제조업 등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분야의 인공지능전환(AX)을 가속화하고 AI 전주기와 연관된 수출 확대에 힘쓴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방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국방 AX를 가속화하고, AI 기반의 K-콘텐츠 창작·제작 생태계를 활성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AI 학습에 필요한 원본 개인 정보와 저작물 활용이 권리 침해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하기로 했다.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여러 부처에 걸친 중복 사업을 효율화하고 초·중·고 학교의 연속적인 AI 필수 교육 체계를 수립하기로 했다. 나아가 'K-AI' 특화 시범도시를 단계적으로 조성하는 한편 노동, 복지, 교육, 기본 의료 등을 포함한 'AI 기본사회 추진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글로벌 성과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부대행사 'APEC CEO 서밋'에 참석한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국가 차원의 AI 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AI 동맹에 따라 엔비디아는 우리나라 정부 및 4대 기업에 블랙웰 등 최신 GPU 총 26만장 이상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전세계 국가 단위 인프라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엔비디아도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AI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당시 젠슨 황 CEO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으로부터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웨이퍼를 선물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는 “삼성의 제조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로봇 칩 생산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정상회의 결과물로 채택된 'APEC AI 이니셔티브'도 눈길을 끈다. 당시 회의에서는 21개 회원국이 사상 최초로 AI 공동 비전에 합의했다. 그 중심에 한국의 제조 역량과 엔비디아의 기술력이 결합된 모델이 제시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놓고 격돌하는 가운데 한국이 엔비디아와 결속을 통해 AI 중립 지대이자 핵심 거점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는 평가로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일단 한국이 AI 벤처투자 유치 세계 9위인데 글로벌 시장 비중은 1%에 그친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운영하는 'AI정책저장소'(AI Policy Observatory) 자료를 보면, 지난해 1~3분기 기준 전세계에서 AI 분야에 투입된 벤처투자액은 총 1584억달러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5년 400억달러에 비해 약 4배 증가한 수치다. 전체 벤처투자액 중 AI 분야에 투자된 비중은 2015년 20%에서 지난해 55.7%까지 뛰었다. 생성형 AI가 본격화된 2023년을 기점으로 급증했으며, 글로벌 벤처투자의 절반이상이 AI로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별로 보면 2025년 AI분야 벤처투자액 1584억달러 중 72%인 1140억달러가 미국기업에 투자됐다. 직전 2024년에 해당비중이 64.4%였는데 쏠림이 더욱 커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AI 분야 벤처투자 유치 2위 국가는 영국으로 115억달러를 기록했다. 3위는 90억달러의 중국이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5억7000달러로 9위를 기록했고, 이는 미국의 약 1.4%, 중국의 17.4% 수준에 해당한다.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우리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내 여건을 고려한 스타트업 집중 육성과 규제환경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자현 KDI 연구위원은 “AI 반도체 팹리스와 로보틱스·제조 현장에 결합된 피지컬 AI 등 우리나라가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중심으로 유망한 AI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 연구위원은 “거대언어모델(LLM) 및 AI 활용 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부의 보다 과감한 선구매를 통해 기업들이 실질적인 트랙 레코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글로벌 대규모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선도적인 스타트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모험자본의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AI시대 기술 발전 속도에 맞는 경쟁정책 패러다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해 11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한국산업조직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AI·디지털 혁신과 경쟁정책' 정책심포지엄에서 정철 한경연 원장은 “AI가 산업지형을 바꾸는 만큼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공정하면서도 유연한 경쟁의 새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적극 공감했다. 유민희 한경연 연구위원은 “복잡한 경쟁 이슈로 인해 시장 불확실성 확대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며 “정부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원칙으로 하되 산업계의 자율규제와 공동협약을 병행해 혁신과 공정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AI 경쟁정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리 경쟁당국이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높여 혁신을 지원하는 파트너로 발전하고, AI 산업의 특성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독자들의 선택”…숫자가 말해준 2025 에너지경제 주요 이슈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6·3 조기 대선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귀환, 그리고 코스피 사상 첫 4000돌파까지. 2025년은 대한민국 정치·경제를 뒤흔드는 굵직한 대형 이벤트들이 끊이지 않았던 다사다난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런 격변의 한 해 속에서 독자들의 관심은 에너지경제신문이 취재한 주요 콘텐츠들에 더욱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본지 기자들이 쓴 기사 가운데 월별 조회 수를 기준으로 독자들이 가장 많이 주목한 기사를 정리했다. 본지는 2026년에도 격변하는 에너지·경제·정치 환경 속에서 독자들이 놓치지 쉬운 변화를 빠르고 깊이 있게 전달하겠다는 원칙을 지켜갈 방침이다. ☞ 1월 : “비싼 보험료 수십년 냈는데"...실손 1·2세대 '강제전환' 날벼락 1월에는 정부가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개혁을 놓고 논란이 크게 일었다. 정부는 보험 재정 악화를 이유로 1·2세대 실손보험을 '재매입' 방식으로 정리하고 5세대 실손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의 진행 방식과 타당성에 있어 보험계약자와 의료계 등을 중심으로 극심한 반발이 일어났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논란의 핵심 요지와 소비자·보험업계·금융당국의 입장을 조명해 주목을 받았다. ☞ 2월 : [한반도가 물에 잠긴다] 가팔라지는 해수면 상승…“2030년 한반도 5% 침수" 예상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상승 속도가 크게 빨라지면서 2030년까지 한반도 국토의 약 5%가 침수되고 수백만 명이 피해를 입을 것이란 경고가 제기돼 주목을 받았다. 환경단체는 특히 인구 밀집도가 높은 서울, 수도권은 물론 공항, 항만, 발전소 등 주요 인프라가 침수될 위험이 커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및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이 기사는 기후 위기가 국토·인구·인프라 차원의 국가 리스크로 전환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3월 : 동해심해 가스전 가능성 여부 곧 판명난다…석유公, 해외투자 유치 착수 동해 심해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가능성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는 한국이 명실상부한 산유국 대열에 합류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첫 탐사시추 결과 경제성 있는 가스전으로 개발할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석유공사는 해외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해 국제 입찰 절차에 나서기로 했다. 이 입찰은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이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 판가름하는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당시 주목을 받았다. ☞ 4월 : [단독] 태양광·풍력 고정가격계약 기간 20년 고정 풀린다 에너지경제신문은 태양광·풍력 발전 사업자들이 전력당국과 전력을 판매하는 고정가격계약을 맺을 때 계약기간을 20년만이 아닌 다른 기간도 선택할 수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태양광·풍력 고정가격계약이 20년 계약기간만 있던 것에서 15년, 10년, 25년 계약기간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동안 발전 사업자들은 계약 기간을 조정해달라는 입장을 피력해온 만큼 해당 보도는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 5월 : [에너지경제 여론조사]깜깜이 직전, 이재명·김문수간 격차 더 커졌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지난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와 함께 정기적으로 후보들의 지지율을 조사·공개해 왔다. 특히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 직전까지 조사를 실시해, 유권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공식 지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 조사는 이후 선거판의 방향에 영향을 미쳐 대선의 막판 판세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작용했다. ☞ 6월 : 이스라엘의 강력한 힘…배경에는 가스전이 있다 지난 6월 이스라엘이 앙숙인 이란의 군, 핵시설 등에 대한 선제공격에 나서면서 중동 갈등이 전면전으로 번질 것이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스라엘이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과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압도적인 첨단무기도 있지만, 에너지안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스전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에선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를 둘러싼 경제성 등의 논란이 지속됐지만 에너지경제신문은 10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가스전 확보 사례를 조명해 큰 주목을 받았다. ☞ 7월 : [단독]“코스피 5000 가자는 의원들, 실제론 부동산 '몰빵'"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의 증시 부양 기조에 발맞춰 '코스피 5000시대'를 실현하겠다며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이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정작 '부동산 부자'들로 주식 투자는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었다. 에너지경제신문이 당시 입수한 자료 결과 소속 의원 10명의 총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한 비중은 50%에 육박한 반면 주식 자산은 2.5%에 불과했다. ☞ 8월 : 비공개 원전 합의문 유출, 배후는?…산업부·한수원 논란 확산 지난 1월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와 2022년부터 2년 넘게 끌어온 지식재산권 분쟁 절차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합의문은 체결 당시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계약 조건에 한전·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원전 1기 수출마다 1조원이 넘는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 및 로열티를 제공하고, 유럽 등 선진 시장 독자 진출을 포기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불공정 합의'에 대한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합의문이 외부로 유출된 배경을 짚어보면서 이러한 논란이 과도하게 정치적 프레임으로 소비되는 것 아니냐는 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목을 받았다. ☞ 9월 : 오는 10일 전후 부동산대책 나온다…세제 빠지고 3기 신도시·정비사업 속도낼 듯 에너지경제신문은 국토교통부가 9월 10일 이전에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도해 건설부동산 업계는 물론, 내집 마련 수요층 중심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는 와중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집값 상승이 우려된 상황이었다. 특히 이번 대책은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라 향후 추진될 전체적인 주택 공급 정책의 얼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었다. ☞ 10월 : 외국인, 삼성전자만 산 게 아니었다…1년 새 지분 쓸어 담은 종목은? 국내 증시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충격에 짓눌렸다. 그러나 6월 조기 대선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한국을 떠났던 외국인 자금이 복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연속 순매수를 이어가고 있었고, 이들의 지난 9월 순매수액은 6조680억원에 달했다. 외국인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집중 매수하면서 코스피 지수 상승을 견인했지만 에너지경제신문은 이들이 주목한 다른 주식들에 대해서도 조명해 관심을 받았다. ☞ 11월 : 주담대 30년 고정금리?...은행권 “수요 없는데" 한숨 에너지경제신문은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초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 출시를 유도했다고 보도해 업계와 대출 수요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은행권에선 주로 고정형 주담대로 5년 주기형이나 혼합형 상품을 운영해왔는데 당국은 최소 10년 이상, 최대 30년에 달하는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를 출시하는 방안을 고안했던 것. 다만 소비자들의 수요 부족, 자금 운용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은행들이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 상품을 선보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은행권은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수요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인 만큼 당국이 이를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었다. ☞ 12월 : 금·은값 상승세 끝이 아니다?…“내년엔 시세 더 뛴다" 올해는 주식·비트코인 등 위험자산과 금과 같은 안전자산이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 현상이 일어났다. 이 중에서도 귀금속인 금·은 가격 상승세가 두드려져 투자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올해 금값은 사상 처음으로 3000달러, 4000달러선을 연이어 넘어서면서 연 상승률이 60%를 넘어선다. 가격 변동성이 커 '악마의 금속'으로 불리는 은값 상승폭은 금을 뛰어넘는다. 투자 업계에서는 금·은 가격 상승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소식을 에너지경제신문이 전해 주목을 받았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휴무일 미리보기] 2026년 대체공휴일 4번 적용…쉬는날은 며칠?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 다가오면서 대체공휴일, 휴무일 등에 관심이 쏠린다. 2026년에 대체공휴일이 적용되는 날은 3·1절, 부처님 오신 날, 광복절, 개천절 총 네 번이다. 이에 내년 3월 2일(월), 5월 25일(월), 8월 17일(월), 10월 5일(월)에 대체공휴일이 각각 적용된다. 주 5일제를 기준으로 내년 실제 휴일 수는 118일로 올해보다 1일 줄어든다. 주말을 포함해 3일 이상 쉴 수 있는 2026년 연휴는 총 8번이다. 구체적으로 △2월 14~18일(설날 연휴, 5일) △2월 28~3월 2일(3·1절, 3일) △5월 23~25일(부처님오신날, 3일) △8월 15~17일(광복절, 3일) △9월 24~27일(추석, 4일) △10월 3~5일(개천절, 3일) △10월 9~11일(한글날, 3일) △12월 25~27일(성탄절, 3일)이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설 연휴(설날 전날, 설날, 설날 다음날)와 추석 연휴(추석 전날, 추석, 추석 다음날)는 일요일과 겹치는 경우에만 대체공휴일이 적용된다. 2026년 설 연휴는 월~수요일임으로 연휴 다음날인 2월 19일(목)엔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2월 19~20일에 연차를 사용하면 14일부터 22일까지 최대 9일을 쉴 수 있다. 마찬가지로 2026년 추석 연휴도 9월 24~26일(목~토)에 해당됨으로 9월 28일(월)은 대체공휴일이 아니다. 근로자의 날(5월 1일·금요일)이 휴무일로 지정되고 5월 4일(월)에도 연차를 활용하면 5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다. 1월 2일(금)에도 연차를 활용하면 총 4일을 쉴 수 있다. 현충일(6월 6일)은 토요일이지만 신정(1월 1일)과 함께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6월 8일(월)은 휴무일이 아니다. 다만 6월 3일(수)은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따른 법정 공휴일로, 이날 전후로 2일간 연차를 활용하면 5일을 쉴 수 있다. 10월의 경우에도 6~8일(화~목)에 연차를 모두 사용하면 최대 9일을 쉴 수 있다. 2026년 공휴일이 없는 달은 4월, 7월, 11월 등이다. 한편, 내년에는 휴일이 최소 하루 더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제헌절(7월 17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18년 만에 제헌절이 공휴일이 된다. 만약 공휴일이 된다면 2026년 제헌절은 금요일임으로, 3일의 연휴가 생긴다.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 특별 성명을 통해 제안한 '국민주권의 날' 제정에 관해 “국경일과 법정 기념일, 법정 공휴일이 다 다른 개념인 만큼 입법 과정을 꼼꼼히 챙겨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코레일 개혁]① 만성적자 왜 바뀌지 않나…‘방만경영의 민낯’

연말을 맞은 12월 한 달간 국민들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총파업 예고로 혼란스러웠다. 이달 11일과 23일 철도노조는 연이어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가 파업 당일 예고했던 파업 시간 직전에 파업을 유보했다. 노조가 파업을 실행하지 않으면서 우려됐던 교통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달에 노조가 약 열흘 간격으로 전국 단위 규모의 철도 파업을 연달아 예고하면서 국민들은 출근길 걱정에 애를 태워야 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두 차례 대규모 철도 파업 예고의 배경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성과급 지급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코레일이 흑자를 낸 가장 최근 시기는 2015년이 마지막이다. 이 해 코레일은 당기순이익 5776억원을 거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코레일은 현재까지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코레일은 9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코레일은 2016년 당기순손실 2044억원 적자를 낸 데 이어 2017년(-8623억원), 2018년(-1393억원), 2019년(-853억원)까지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해 2020년(-1조2381억원)과 2021년(-1조1081억원)엔 손실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엔데믹 이후인 2022년(-3104억원)과 2023년(-5425억원)엔 이전 해보다 적자 폭을 줄였지만 여전히 수천억원대 순손실을 입었다. 작년에도 코레일은 적자 5167억원을 기록하면서 부진한 실적을 기록 중이다. 코레일이 이처럼 만성적자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방만한 사업비 지출 구조 때문이다. 코레일은 사업비로 최근 5년간 3조원에서 5조원 규모를 지출했다. 코레일 사업비는 시설 개량 사업 및 철도 차량 구입 등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이다. 2020년 3조97억원이었던 코레일 사업비는 2021년 3조5308억원으로 껑충 뛰더니 2022년엔 4조2957억원으로 4조원 선을 돌파했다. 2023년 사업비 지출 규모는 4조7899억원으로 5조원을 넘봤고, 작년에도 코레일은 사업비로 4조9023억원을 지출하면서 5조원 가까운 사업비를 썼다. 대국민 교통 수단의 큰 축을 이루는 철도 서비스 품질의 향상을 위해 코레일이 열차를 구입하고 시설을 개량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다. 그러나 코레일이 지난 5년간 3조원에서 거의 5조원까지 사업비를 대폭 늘려 지출하는 동안 국민이 체감하는 철도 서비스 만족도의 향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KTX 지연율은 2023년 20.89%로 열차 다섯 대 중 한 대 꼴로 지연됐고, 2024년에도 지연율 22%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선 지난 8월 경부선 청도군 철도 사고로 지연율이 더욱 상승해 10월 경부선 기준 KTX 지연율이 36.7%로 더욱 급증했다. 작년에만 5조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시설 개선과 열차 구입에 쓴 코레일이 철도 서비스의 가장 기본인 정시 운행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코레일 성과급이 공기업 평균 수준을 하회하긴 하지만 코레일은 10년 연속 수천억원씩 적자를 내면서 이미 부실 공기업 낙인이 찍힌 상황이다. 철도노조가 대국민 교통 서비스를 볼모로 한달에 열흘 간격으로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전국적인 대규모 열차 파업을 예고하고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성과급을 받아내는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초리는 차갑다. 경영진의 방만한 사업 관리도 큰 문제다. 특히 최근 열차 구입 및 시설 개량을 명목으로 코레일이 한 해 수조원씩 비용을 지출했지만 제때 납품을 받지 못하는 등 엉터리로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 전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실제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와 이달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철도 차량 납품 계약을 맺은 열차 제작업체 '다원시스'로부터 코레일이 제 때 열차를 수령받지 못했음에도 선급금을 회사 측에 4000억원이나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코레일은 다원시스와 2019년 6720억원 규모의 ITX-마음 358칸 납품 계약을 체결했지만 현재까지 수령한 차량은 일과 6720억원 규모의 ITX-마음 358칸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절반 이상인 210칸 규모의 차량 납품이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코레일은 납품 부실을 일으킨 다원시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는 커녕 ITX-마음 116칸을 추가로 계약했다. '한 푼 한 푼' 소중하게 쓰여야 할 사업비를 사실상 부실 업체에 그대로 가져다 바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코레일이 자사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철도 관련 업무를 다수의 자회사를 만들어 분사시킨 것도 방만 경영의 대표 사례다. 사장 등 임원 자리를 최대한 늘려 자사 또는 국토부 출신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용도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액의 인건비 낭비는 물론 비효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코레일은 현재 코레일유통과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로지스, 코레일테크 등 5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코레일유통은 과거 철도 내 편의점, 가판기, 먹거리 등을 판매하던 홍익회를 전신으로 하는 회사다. 현재도 코레일유통은 역내 편의점인 스토리웨이와 역내 가판기를 관리하고 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역내 매표 서비스와 주차장을 관리하는 회사다. 코레일관광개발은 코레일과 연계한 여행상품 판매 및 열차 내 승무원들이 소속돼 있는 조직으로 대고객 승무 서비스를 관리한다. 코레일로지스는 열차와 관련한 물류서비스를 관장한다. 코레일테크는 철도차량 정비 및 청소, 철도선로 유지관리 등 철도 관련 기술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업무는 코레일이 2004년 공기업으로 전환되기 이전 정부 기관이었던 철도청이었던 시절에 대부분 담당했던 업무들이다. 당시 경영 효율화를 위해 철도 서비스 일부를 쪼개 자회사를 만들고 이 업무들을 맡겼지만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오히려 이런 문어발식 자회사 경영이 코레일의 방만 경영을 부채질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코레일의 이러한 자회사 경영에 대해 “이렇게 (열차 관련) 서비스들이 많이 쪼개진 것이 효율적인가. 경쟁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서비스별로 자회사들을) 분리해 놓으면 관리 비용만 더 늘어난 것이 아닌가"라며 지적하기도 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이혜훈, 李 정부 ‘깐깐한 곳간지기’ or ‘제2의 홍남기’?

확장재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첫 예산사령탑으로 '건전재정론자' 이혜훈 전 의원을 선택했다. 예산 편성 권한을 둘러싼 정부 조직 개편과 맞물려 재정경제부와의 힘겨루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새 정부 재정 운용의 첫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지나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재창출 기회를 '삭제'해버렸다는 평가를 받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의 전철을 밟을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 후보자는 지난 29일 첫 출근길에서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로 퍼펙트스톰 상태에 있다"며 “고물가·고환율의 이중고 속에서 국민의 생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불필요한 지출을 과감히 줄이고 민생과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며 “세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대표적 재정건전론자로 꼽힌다. 특히 나랏빚을 늘려 예산을 확대하는 방식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200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시절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으로 실패한 재정정책을 지목한 바 있다. 이 후보자는 “막대한 재정지출이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 개혁을 뒤로 미루게 하는 걸림돌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과 어느 정도 수준에서 '재정 코드'를 맞출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확장재정론을 주창하는 이 대통령과도 대척점에서 맞선 일이 잦아서다. 이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인 2020년 3월 방송에서 “재난기본소득은 헛돈 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3월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며 '소비 승수 효과'를 언급하자 “반쪽짜리 얘기"라고 일축했다. 대선 공약이던 '25만원 민생지원금' 정책을 두고 “포퓰리즘의 대표적 행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 완화 행보 속에서 이 후보자가 강경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주목된다. 이 후보자는 과거 SOC 사업 타당성 평가 시 중장기 재정전망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온 인물로, 불필요한 사업과 재정 누수를 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예타 대상 총사업비·국비 기준을 각각 현행 500억·300억원에서 1000억·500억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후보자가 확장재정 기조 속에서도 예산 총량 관리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현행 바텀업 방식의 예산 편성 관행을 바로잡고, 분야별 총액을 먼저 정한 뒤 세부사업을 배분하는 탑다운 방식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총지출 규모는 국민적 합의로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효율적 배분은 장관의 전문성으로 수행해야 한다"며 “이 후보자가 현 정부와 재정 철학이 다른 만큼 예산 총량을 임의로 결정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복지·SOC 등 분야별 총액을 먼저 확정하지 않으면 특정 지역 사업이 누적돼 전체 지출이 불어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기존 기획재정부를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예산처로 분리한다. 기획예산처는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로 흡수된 이후 18년 만에 부활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재부의 '예산 갑질'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기획처 분리를 추진했다. 기존 조직은 구윤철 부총리가 총괄하는 재정경제부가 되고, 현재 기재부 내 예산실과 미래전략국, 재정정책국, 재정관리국이 기획예산처로 이관된다. 핵심 역할은 '국가 예산 편성'이다. 다음 달 2일 공식 출범한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와 '힘겨루기' 양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산 배분 권한이 이동하면서 두 부처 간 미묘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