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팔던 엔비디아, AI 모델까지…리플렉션AI 인수 저울질

엔비디아가 미국 AI 스타트업 리플렉션AI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이미 8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추가 지분 확보와 기술 인수까지 논의 중이다. 중국 딥시크 등이 강세를 보이는 개방형 AI 시장에 직접 진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각) 엔비디아가 리플렉션AI 인수 또는 추가 투자 방안을 놓고 초기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도 11일 추가 지분 투자와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 공급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거래 조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리플렉션AI 전체를 인수하는 대신 핵심 연구진을 영입하고 기술 사용권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기업 자체보다 인력과 기술 확보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다. FT는 이 경우 기업 인수에 따른 장기간의 경쟁당국 심사를 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엔비디아는 리플렉션AI의 주요 주주 가운데 하나다.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만 8억달러(약 1조750억4000만원)에 달한다. 리플렉션AI는 지난 3월 투자 유치 당시 기업가치 250억 달러(약 33조5000억원)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이르면 수주 안에 거래에 합의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협상 결과는 불투명하다. 리플렉션AI는 2024년 구글 딥마인드 출신 연구원 미샤 라스킨과 이오아니스 안토노글루가 설립한 기업이다. 두 사람은 구글의 AI 모델 '제미나이' 개발에도 참여했다. 리플렉션AI는 소프트웨어 개발 자동화와 AI 에이전트 업무에 특화된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첫 개방형(오픈웨이트) AI 모델인 '빔(Beam)'을 발표했다. 회사 측은 빔이 중국 AI 기업 Z.ai의 'GLM-5.2'와 비슷한 추론 성능을 더 적은 연산량으로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모델의 핵심 수치인 가중치는 이달 중 공개할 예정이다. 리플렉션AI는 국내 신세계그룹과도 협력하고 있다. 양사는 지난 3월 업무협약(MOU)을 맺고 국내 최대 규모인 250MW(메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엔비디아가 공급할 예정이다. 양사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 AI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엔비디아가 리플렉션AI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는 중국 기업들의 개방형 AI 시장 확대가 있다. 개방형 AI는 모델의 핵심 수치인 가중치를 공개해 기업과 개발자가 자체 서버에서 운영하거나 필요에 맞게 수정할 수 있는 방식이다. 중국 딥시크와 문샷AI 등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의 개방형 AI 모델을 잇달아 내놓으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에서는 오픈AI와 앤스로픽 등 주요 AI 기업들이 핵심 기술을 공개하지 않는 폐쇄형 모델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해 왔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AI 행동계획에서 자국산 개방형 AI 모델의 경쟁력 확보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리플렉션AI는 미국 국방부 및 에너지부와도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도 자체 개방형 AI 모델인 '네모트론'을 개발하고 있다. 리플렉션AI의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면 반도체부터 AI 모델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다. 기업들이 개방형 AI 모델을 자체 데이터센터에서 운영할 경우 엔비디아의 GPU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인수가 성사되면 엔비디아가 자사 GPU를 구매하는 기존 AI 모델 개발사들과 직접 경쟁하게 된다. 대규모 AI 기업 인수에 대한 경쟁당국의 심사 가능성도 거래 성사의 변수로 꼽힌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이슈&인사이트] 작은 기업의 경쟁력은 고객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고 만든 제품 앞에서 고객은 망설였다. 쌀은 씻어야 하는지, 나물은 헹궈야 하는지, 물은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한 간편식 기업 대표가 인터뷰에서 들려준 소비자 반응이다. 만드는 사람은 설명을 넣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포장을 뜯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제품이었다. '간편식'이라는 이름이 간편한 식사를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전자레인지 조리 안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700W와 1000W라는 출력 수치를 제시했지만 낯설어하는 고객이 있었다. 이 기업은 '꼬들밥', '촉촉밥'처럼 고객이 원하는 식감을 기준으로 조리법을 안내했다. 기기의 수치와 조리 결과를 고객의 눈높이에서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제품을 개발한 사람이 익숙하게 쓰는 말과, 바쁜 일상에서 한 끼를 준비하는 사람이 이해하는 말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이 기업은 육아 가정의 먹거리 고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간식 상품을 판매한 뒤에는 수많은 구매 후기를 읽으며 제품 구성을 바꿨다. 출산 후 몸 관리를 내세운 간식에서도 고객은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을 원했다. 판매자는 제품에 담은 기능과 의도를 설명하지만, 고객은 먹는 순간의 맛과 편리함까지 함께 평가한다. 후기는 그 차이를 알려주는 자료였다. 작은 기업은 제품 하나를 내놓기까지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원료를 고르고 포장을 만들고 생산 조건을 맞춘다. 그 과정을 오래 거칠수록 자신의 제품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제조법을 아는 것과 고객의 사용 경험을 아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왜 이 원료를 썼는지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정작 고객이 포장을 어디서 뜯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은 놓칠 수 있다. 수면용 속옷을 만드는 한 기업의 경험은 이 차이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초기 제품은 몸을 강하게 조이고 잡아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표 자신은 그 점을 장점으로 여겼지만 고객의 반응은 달랐다. “저는 처음에 그게 좋았어요. 그런데 안 팔려요."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잠잘 때 편하게 입고 싶은 사람에게 강한 압박은 오히려 불편함이었다. 이 기업은 압박을 줄이고 편안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품을 수정했다. 고객 의견을 반영해 큰 사이즈를 추가하고 색상도 늘렸다. 그렇다고 이 변화만으로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표는 인터뷰 당시에도 제품을 필요로 하는 고객을 더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례에서 눈여겨볼 것은 성공담보다 제품을 고치는 태도다. 만든 사람의 만족을 잠시 내려놓아야 고객이 원하는 개선을 시작할 수 있다. 상품을 파는 중소기업이라면 누구나 판로를 넓히고 싶어 한다. 온라인몰에 입점하고 새로운 판매채널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살펴야 할 것은 고객이 상품을 만난 뒤의 과정이다. 상세페이지에서 용도를 이해하는지, 배송된 제품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지, 기대했던 맛과 촉감이 실제 경험과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판매채널이 구매의 기회를 열어준다면, 재구매로 이어갈 이유는 상품을 쓰는 과정에서 생긴다. 고객 이해를 위해 처음부터 큰 조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복해서 들어오는 문의를 모으고, 반품 사유를 읽고, 처음 구매한 고객이 제품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때 고객이 설명을 잘 읽지 않았다고 탓하기 전에 같은 질문이 왜 되풀이되는지 물어야 한다. 제조업체에는 당연한 보관법이나 사용 순서가 소비자에게도 당연한 것은 아니다. 기능을 하나 더 넣기 전에 사용 과정의 막힘을 줄이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모든 요구를 제품에 담을 수는 없다. 같은 불편이 여러 고객에게 반복되는지 확인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먼저 바꿔봐야 한다. 안내 문구를 고치거나 포장을 손본 뒤에는 문의와 반품이 줄었는지, 재구매가 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원가와 품질을 함께 확인해야 개선도 지속할 수 있다. 작은 기업의 경쟁력은 제품을 출고하는 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고객이 상자를 열고, 한 끼를 준비하고, 옷을 입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평가받는다. 다음 상품을 기획하거나 광고비를 늘리기 전에 우리 제품이 고객의 하루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설명서 앞에서 멈추는 순간, 입었다가 다시 벗는 순간에 고쳐야 할 이유가 담겨 있다. 고객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순간을 찾아 제품에 반영하는 일이다. bienns@ekn.kr

로보락은 왜 ‘110도 스팀’을 꺼냈나…S10 맥스V 울트라 스팀 국내 출시

로보락이 12일 한국 시장 맞춤형 플래그십 로봇청소기 '로보락 S10 맥스V 울트라 스팀(S10 MaxV Ultra Steam)'을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이 제품은 청소와 위생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높은 눈높이와 한국의 주거 환경을 고려해 개발됐다. 강력한 흡입과 정교한 물걸레질은 기본이다. 여기에 청소 뒤 물걸레와 도크를 관리하는 과정까지 자동화해 청소 전 과정의 편의성과 위생을 함께 끌어올렸다. 로보락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의 높은 청소·위생 기준과 생활 환경을 고려해 스팀 기반 위생 관리 기술과 최신 청소 기술을 집약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핵심은 고온 스팀을 활용한 위생 관리 시스템이다. 먼저 최대 100도의 온수로 물걸레를 빨고, 이어 최대 110도의 스팀을 걸레 섬유 깊숙이 불어넣어 오염물을 불린 뒤 집중 세척한다. 청소를 마치면 최대 63도의 열풍으로 물걸레와 먼지 배출 통로를 말린다. 도크 역시 최대 100도 온수로 스스로 세척한다. 물걸레 성능도 높였다. '비브라라이즈(VibraRise) 5.0' 시스템은 14N의 힘으로 걸레를 바닥에 누르면서 분당 최대 4000회 음파 진동을 일으켜 오염을 닦아낸다. 물걸레 헤드가 바깥으로 확장돼 벽면과 모서리까지 닿는다. 카펫처럼 물걸레질이 필요 없는 곳에서는 브러시를 들어 올리거나 걸레를 떼어내 공간에 맞게 청소한다. 진공 청소에는 최대 출력 3만6000Pa(파스칼)의 '하이퍼포스(HyperForce)' 모터를 달았다. '듀오 디바이드(DuoDivide)' 메인 브러시와 '플렉시암(FlexiArm) 아크' 사이드 브러시로 이뤄진 이중 엉킴 방지 구조는 최대 40㎝ 길이의 머리카락도 감기지 않도록 설계됐다. 먼지 자동 비움과 세제 자동 투입 기능도 갖춰 사용자의 관리 부담을 줄였다. 또 다른 관심사는 주행 능력이다. '어댑트리프트 섀시(AdaptiLift Chassis) 3.0'과 '리트랙트센스(RetractSense)' 내비게이션을 적용해 최대 8.8㎝ 높이의 이중 문턱을 넘는다. 본체 높이는 7.95㎝까지 낮춰 가구 밑으로도 파고든다. 장애물 인식 시스템 '리액티브 AI(Reactive AI) 3.0'은 3중 구조광과 RGB 카메라, 측면 구조광 '버티빔(VertiBeam)'을 조합해 300종이 넘는 사물을 구별한다. 가구와 물건이 많은 실내에서도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판매전도 본격화한다. 로보락은 출시일부터 공식 마이크로사이트와 네이버 등 주요 온라인 채널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출시 당일 저녁 네이버 모바일 라이브 방송으로 신제품을 소개한다. '로보락 WISH 교환권' 같은 소비자 참여형 이벤트도 마련했다. 이후 일정은 △카카오 '쇼핑페스타' 참여(12~25일) △CJ온스타일 홈쇼핑 방송(17일) △네이버 '오늘의 팝업'(19일) △GS홈쇼핑 방송(25일) △네이버 '넾다세일' 참여(26일~11월 8일) 순이다. 구매 고객에게는 방문 설치, 펫 배변 흡입 안심보장, 이사 시 직배수 재설치 등을 지원하는 '로보락 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부 혜택과 조건은 모델과 판매 채널에 따라 다르다. 로보락 관계자는 “청소 성능은 물론 청소 후 관리까지 더 편리하고 위생적인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SK, AI 인재에 통 큰 베팅…2년간 월 300만원 지원

SK가 학위나 취업이 아니라 '도전' 자체를 지원하는 청년 인재 프로그램을 내놨다. 프로그램 이름인 '아이젠(AIGEN)'은 AI와 세대(Generation)를 합친 말로, AI를 익숙하게 다루는 요즘 청년층을 가리킨다. 2년간 매달 성장지원금을 주면서도 수료 뒤에는 어떤 의무도 지우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식 습득과 시험 대비는 AI가 대체하는 시대에, 직접 부딪히고 실패해 본 경험이 인재의 경쟁력이 된다는 판단이다. ◇ “AI시대 역량 키우려는 청년들의 도전 지원" SK는 2년제 비학위 프로그램 'SK AIGEN(아이젠)'을 신설한다고 12일 밝혔다. 참가자가 개인과 기업, 사회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고 AI로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수행하며 필요한 역량을 쌓는 방식이다. 박상규 마이써니 총장은 “SK는 AI시대에 맞는 역량을 키우고 싶은 청년들의 도전을 지원하기 위해 '아이젠'을 준비했다"고 밝혓다. 대상은 2년 과정을 전일제로 소화할 수 있는 만 19∼34세 청년이다. 선발은 SK그룹 인재육성 플랫폼 '마이써니(mySUNI)'가 맡는다. 학력이나 전공보다 기술·연구·문화예술·공공·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풀어내려는 의지와 성장 잠재력을 본다. 1기 모집은 11월 1일부터 15일까지 진행하며, 12월 말 50명 안팎을 최종 선정한다. 첫 과정은 2027년 3월 시작한다. 10월 28일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오프라인 설명회도 연다. 참가자에게는 2년 동안 매달 300만 원의 성장지원금이 지급된다. 역량 교육과 개인·팀 프로젝트 멘토링, 활동 공간도 제공한다. 다만 특정 기업 취업을 보장하거나 학위를 주지는 않는다. 졸업장보다 실제 문제를 풀어 본 경험 자체를 자산으로 남기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과제 먼저' 교육-'조건 없는' 지원, SK식 인재 실험 교육 방식은 기존 학교와 거꾸로다. 교과목을 차례로 배운 뒤 과제에 적용하는 대신, 기업 현장처럼 실제 과제부터 붙잡고 풀면서 필요한 역량을 키운다. 1년 차에는 참가자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AI 활용법과 협업을 익힌다. 2년 차에는 각자 세운 커리어·프로젝트 계획에 맞는 현장에 나가 실제 문제를 해결한다. SK는 이 과정에 필요한 멘토와 전문가를 연결해 줄 예정이다. 서울대 AI연구원도 힘을 보탠다. 사회학·경제학·행정학 등 여러 학문에 AI를 접목해 연구하는 기관으로, 참가자들의 인문학적 시야를 넓히고 구체적인 진로 설계를 돕는다. SK는 AI시대 인재의 기본 소양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 변화에 적응하는 힘, 타인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힘을 꼽는다. 이를 기르려면 직접 도전하고 실패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게 SK의 판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5월 KBS '인재전쟁2' 강연에서 “AI시대에는 지식을 빨리 습득하고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훈련은 이제 AI로 대체된다"며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고 여러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전인적(全人的) 역량을 함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K가 대가 없는 지원을 내건 배경에는 '인재보국(人材報國)' 철학이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워 장학생에게 유학비 전액을 지원했다. 그러면서 나라와 사회를 위한 일꾼이 돼 달라는 당부 외에는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았다. SK는 매년 참가자를 선발해 아이젠을 AI 시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재육성 프로그램으로 키울 계획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LGD “FMM 없앤 ‘FLiPP’으로 기술 해자”…IT OLED 시장 직접 연다

경쟁사들이 IT용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신규 라인 투자에 나서는 동안 신중론을 유지해 온 LG디스플레이가 '판을 바꾸는' 공정 기술을 꺼내 들었다. 10여 년간 중소형 OLED 생산의 표준으로 여겨진 파인메탈마스크(FMM)를 공정에서 아예 없앤 차세대 픽셀 패터닝 기술 'FLiPP(플립)'이다. 신규 설비 대신 기존 8세대 화이트 OLED(WOLED) 인프라를 활용해 성능과 원가를 동시에 잡고, 아직 개화하지 않은 IT OLED 시장을 직접 열겠다는 구상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8일 국내외 언론과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FLiPP 온라인 테크 세미나'를 열고 기술 개발 과정과 강점을 공개했다. 최영석 최고기술책임자(CTO·부사장), 플립 프로젝트를 주도한 조흥렬 차세대 디스플레이 담당(상무), 김응용 FLiPP 전문위원이 참석했다. 플립(FMM-Less innovative Pixel Patterning)은 FMM 대신 포토리소그래피 기술로 화소를 만든다. 기판 전체에 유기 발광재료를 증착한 뒤, 남길 부분은 봉지(인캡) 공정으로 보호막을 씌우고 불필요한 부분은 지워내는 방식이다. 이 '증착→봉지→포토 패터닝' 과정을 적·녹·청 색상별로 반복해 하나의 RGB 픽셀을 완성한다. 수분과 화학물질에 취약한 유기물을 보호하면서 정밀하게 식각하는 것이 핵심 난제였다. FMM이 사라지면서 성능이 크게 올랐다. 픽셀 사이 금속판이 차지하던 공간이 줄면서 개구율이 기존 42%에서 65%로 약 55% 높아졌다. 이를 통해 FMM 대비 휘도를 1.6배 높이거나, 수명을 2.4배 늘리거나, 소비전력을 13% 줄일 수 있다. 최 CTO는 “향상된 개구율을 휘도에 쓸지 수명에 쓸지는 고객사가 제품 콘셉트에 맞춰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녹·청 소자를 개별 최적화할 수 있어 색재현율과 시야각도 개선된다. 조 상무는 “플립 싱글 구조가 FMM 텐덤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플립에 텐덤을 더하면 차이는 상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생산성은 '원장을 자르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다. FMM 방식은 마스크 중앙부 처짐 탓에 8세대 원장을 반으로 자르는 하프컷 공정이 필수다. 플립은 원장을 통째로 쓴다. 23.5인치 패널 기준 면취 효율은 75%에서 93% 이상으로 높아져 생산성이 약 24% 개선된다. 유기물 재료 효율은 40%에서 74%로 1.9배 뛴다. 증착 방식도 FMM의 클러스터 방식 대신 유리 원장이 멈추지 않고 이동하는 WOLED의 인라인 방식을 채택해 공정 시간을 약 40% 단축했다. 이론상 하나의 원장에서 1인치대 웨어러블부터 100인치 이상 TV, VR·AR용 패널까지 생산할 수 있는 '원 플랫폼'이 가능하다. 해상도는 도전 목표로 1000ppi까지 보고 있다. 원가 경쟁력도 강조했다. 김 위원은 “FMM은 마스크 제작·관리·스페어 비용에 마스크 처짐이나 이물로 인한 고질적 불량 비용까지 더하면 한 모델에 연간 수백억 원이 든다"며 “이를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CTO는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8.6세대 신규 투자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조 상무는 “기존 설비 중 그대로 쓸 설비와 개조할 설비, 새로 사야 할 설비를 향후 1년간 구분하는 작업을 거칠 것"이라며 “FMM보다는 확실히 싸다"고 말했다. 적용은 태블릿·노트북·모니터 등 IT 제품부터다. 스마트폰은 기존 FMM 라인, 대형은 WOLED 라인을 유지하고 플립과 병행해 운영 효율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다만 양산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최 CTO는 “현재 기술 개발 단계로 양산 시기를 결정하기에는 이르다"며 “고객사가 정해져야 하는 만큼 협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IT OLED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고 밝혀온 것과 관련해서는 “기술과 가격 문제를 FMM으로는 풀기 어려웠다"며 “성숙한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플립으로 IT 시장을 열어가겠다는 각오"라고 강조했다. 경쟁사 기술과의 차별화도 분명히 했다. 일본 JDI의 'eLEAP', 중국 비전옥스의 'ViP' 등 FMM을 쓰지 않는 유사 기술이 있지만, 조 상무는 “콘셉트가 유사한 것과 기술·성능이 유사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8세대 원장으로 구현하는 회사는 LG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본격 개발은 지난해 7월 시작했으며, 가로 2.2m·세로 2.5m 크기 유리 원장의 중앙부터 가장자리까지 균일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최 CTO는 “FLiPP은 LG디스플레이가 OLED 연구 시작 이래 22년간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가 응축된 최고의 기술"이라며 “디스플레이 업계가 도전하기 어렵고 두려움을 느끼게 할 해자(垓子) 역할을 하고, 전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최태원, 호남 반도체 부지 첫 방문…“전력·용수 늦어도 먼저 착공 가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지를 처음으로 직접 찾아 "전력과 용수가 늦더라도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면 먼저 공사에 들어가겠다"며 조기 착공 가능성을 밝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광주 팹을 병행해 건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내놨다. 최 회장은 9일 오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인 광주 군공항을 방문해 "지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장 빠른 속도로 최대한 짓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호남권 반도체 투자 계획 발표 이후 최 회장이 광주 군공항과 핵심 정비 후보지인 탄약고 일대 등 팹 예정지를 직접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에는 민형배 전남광주시장과 SK하이닉스 경영진 등이 동행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 수요가 계속 상당히 빠른 속도로 늘 것으로 추정한다"며 "또 다른 부지와 팹 조성이 더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병행해서라도 지어야 할 사정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일정을 당긴 상황에서도 향후 반도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추가 생산능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 “용인의 3분의 2 규모…더 커질 수도" 광주 팹의 구체적인 규모 확대 가능성도 처음으로 언급했다. 최 회장은 "현재까지는 용인의 3분의 2 정도 사이즈를 계획하고 있다"며 "땅이 더 있고 수요가 더 있다면 이쪽이 더 커질 것도 충분히 예상한다"고 밝혔다. 착공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최 회장은 "언제인지는 좀 더 스터디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답을 못 드리지만 최대한 빨리 갈 것"이라며 "어느 정도 속도로 광주 팹을 지을 수 있는지를 점검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도 열심히 준비해주시고 국가에서도 용수와 전기 등이 갖춰지는 것과 저희가 공사를 병행해 같이 맞물리는 속도를 다시 계산하면 착공 시점이 곧 발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 완공 이전에 공장 건설을 먼저 시작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최 회장은 "설사 용수와 전력이 늦는다고 하더라도 타이밍을 빨리 맞출 수만 있으면 먼저 들어가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 목표는 2030년 첫 양산…전력·용수 구축 속도 주목 정부는 지난 6월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통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호남권에 메모리 팹을 각각 2기씩 총 4기 구축하는 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7월 광주 군공항 일원이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및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확정됐다. 정부와 전남광주시는 2030년 6월 1단계 첫 양산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경영진은 최 회장의 방문에 앞서 10여 차례 광주 군공항을 찾아 지자체와 부지 및 기반시설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왔다. 최 회장이 이번에 공장 건설과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을 병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실제 착공 시점과 전력·용수 공급계획이 사업 속도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민형배 전남광주시장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장을 최적의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건설·운영할 수 있도록 부지·전력·용수 등 핵심 기반시설은 물론 인재 양성과 정주 여건도 확실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현장] 총기 그림 알아보고, 심폐소생술 돕고…국산 AI 반도체의 진화

카메라 앞에 권총 그림을 들어 올리자 화면에 'gun 0.75'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인공지능(AI)이 그림 속 물체를 권총으로 인식하고, 판단 결과를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이어 노트북을 비췄을 때는 앞서 인식했던 물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도 나왔다. 부스 관계자는 전시에 사용한 공개 AI 모델의 정확도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I 페스타 2026'의 AI 반도체 특별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직접 개발한 칩과 이를 활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카메라 영상을 분석하고 심폐소생술(CPR) 교육을 지원하는 장비부터 데이터센터의 처리 속도를 높이는 기술까지 전시됐다. AI 반도체 특별관에는 딥엑스와 모빌린트, 디노티시아, 파네시아 등 국내 기업 4곳이 참여했다. AI 연산을 기기 내부에서 처리하는 신경망처리장치(NPU)와 데이터 검색 전용 반도체, 서버 간 연결 기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모빌린트의 영상 인식 시연이었다. 카메라에 비친 사람과 휴대전화에 각각 사각형이 표시됐고, 화면에는 물체의 종류와 인식 점수가 나타났다. 권총 그림을 비추자 AI가 이를 총기로 분류했다. 다만 같은 물체를 다시 비췄을 때는 인식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다. 모빌린트 부스 관계자는 전시에 사용한 AI 모델이 외부에서 공개한 모델이라며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용도에 맞게 별도로 학습하거나 성능을 개선한 모델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영상 인식 결과가 AI 반도체 자체의 성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모빌린트는 AI 반도체 '에리스(ARIES)'와 '레귤러스(REGULUS)'를 전시했다. 에리스는 기업 내부 서버 등에 설치해 AI 연산을 처리하는 제품이다. 레귤러스는 로봇과 폐쇄회로(CC)TV, 드론 등 소형 기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외부 클라우드에 연결하지 않고도 AI 추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다만 상용화는 진행 중이다. 모빌린트는 드론과 AI CCTV 업체 등과 제품 개발 및 검증을 진행하고 있으며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딥엑스 부스에서는 스마트글라스를 착용한 채 마네킹의 가슴을 압박하는 CPR 교육을 체험할 수 있었다. 스마트글라스를 쓰자 눈앞에 체험 화면이 나타났다. 가슴 압박을 시작하자 박시은 달구(DALLGOO) 대표가 “더 깊게", “속도가 더 빠르게"라고 안내했다. 이 장비는 달구가 개발한 CPR 교육 솔루션이다. 카메라 등을 이용해 사용자의 자세와 압박 동작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AI를 활용하면 교육자가 체험자 옆에서 일일이 동작을 확인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체험 장비도 마련됐다. 달구는 내년 초 교육 패키지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초기에는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번 CPR 시연에서 딥엑스 반도체가 정확히 어느 장치에 탑재돼 어떤 연산을 맡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딥엑스는 별도로 영상 인식용 AI 반도체 'DX-M1'과 관련 제품을 전시했다. 카메라와 의료기기, 산업용 장비 등에서 적은 전력으로 AI를 구동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전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용 반도체도 눈에 띄었다. 디노티시아 부스에는 검은색 카드 형태의 'VDPU V110'이 전시돼 있었다. 벡터 데이터 처리장치(VDPU)는 AI가 대량의 문서와 이미지 등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 데이터 검색을 가속하는 반도체다. AI 모델의 연산을 담당하는 NPU와는 역할이 다르다. 디노티시아 부스 관계자는 VDPU가 데이터베이스 처리 부담을 줄여 CPU와 GPU를 다른 연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제공한 자료에는 기존 CPU 기반 방식보다 검색 속도가 최대 10배 빠르고, 동일 성능 기준 총소유비용은 80%, 설치 공간은 87% 줄일 수 있다는 수치가 제시됐다. 디노티시아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연구 데이터 플랫폼과 신한라이프의 보험 관련 데이터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가 밝힌 VDPU 대량 양산 예정 시점은 내년 4월이다. 파네시아 부스에는 투명 덮개를 씌운 서버 장비가 놓여 있었다. 내부에는 'CXL CPU'라고 표시된 부품이 보였고, 옆에는 작은 반도체 칩도 전시됐다. 부스 관계자는 칩만으로는 기술의 역할을 이해하기 어려워 데이터센터 내부 연결 구조를 보여주는 장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파네시아가 개발하는 것은 서로 다른 반도체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를 활용해 CPU와 GPU, NPU, 메모리 등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도록 한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서버 내부와 서버 간 데이터 이동량이 늘어나는데, 연결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연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파네시아 부스 관계자는 여러 서버가 나눠 처리한 데이터를 다시 모을 때 가장 느린 구간이 전체 성능을 좌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네시아는 SK텔레콤 등과 데이터센터 수준의 기술 실증을 준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AI 페스타 2026'은 지난 6일부터 사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국내외 기업과 기관 350여 곳이 500여 개 부스를 마련했다. LG AI연구원과 업스테이지, SK텔레콤 등이 독자 개발한 AI 모델을 선보였으며, 피지컬 AI와 국방 AI 등 산업별 기술 전시와 국제 콘퍼런스, AI 정책 토론회도 진행됐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김윤정 인턴기자

해커가 며칠씩 찾던 ‘약한 고리’…AI는 순식간에 훑는다

해커가 며칠씩 걸려 찾던 보안 취약점을 인공지능(AI)이 단시간에 찾아내고 있다. 취약점 탐색부터 침투 시험까지 AI가 대신하면서 공격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줄고, 한꺼번에 노릴 수 있는 대상은 늘어나는 것이다. 최근 국내 금융권을 공격한 해커의 서버에서도 AI 침투 테스트 도구가 발견돼, 보안이 취약한 외부 서버까지 해킹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온다. 8일 보안업계에 따르면 미국 사이버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최근 국내 금융회사들을 공격한 해커의 서버에서 AI 침투 테스트 도구 '아르텍스(ARTEX)'의 설정 파일을 발견했다. 공격자는 이 도구에 중국 AI 모델 딥시크를 연결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실제 금융회사 침투 과정에서 AI가 어느 정도 활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르텍스는 기업의 보안 취약점을 점검하기 위해 개발된 오픈소스 프로그램이다. 점검 대상을 지정하면 AI가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취약점을 분석해 침투 가능성을 시험한다. 기업이 보안망의 허점을 찾는 데 쓰는 도구지만, 해커가 활용하면 공격 준비부터 취약점 탐색까지 자동화할 수 있다. 기존에도 취약점을 찾는 자동화 프로그램은 있었다. 다만 정해진 작업을 반복하는 방식이어서 결과를 분석하고 다음 공격 단계를 결정하는 것은 해커의 몫이었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다음 작업을 결정하고 필요한 도구까지 활용할 수 있다. 사람이 단계마다 지시하던 작업을 AI가 연속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안랩이 지난 7일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아르텍스의 새 버전은 전체 작업을 계획하는 '플래너'와 개별 작업을 수행하는 여러 '워커 에이전트'로 구성됐다. 플래너가 작업을 나누면 워커 에이전트들이 각각 취약점을 탐색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방식이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결과를 종합할 수 있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AI가 해킹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로 속도와 비용을 꼽는다. 기존에는 공격자가 대상 기업을 조사하고 취약점을 찾아낸 뒤 공격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까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AI가 반복적인 조사와 분석을 대신하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시스템을 살펴볼 수 있다. 곽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해킹은 공격자가 취약점을 찾고, 도구를 만들어 제대로 동작하는지까지 봐야 했다"며 “AI 도구를 사용하면 취약점을 찾는 속도가 빨라지고 시간과 비용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AI 에이전트는 여러 시스템을 동시에 탐색할 수도 있다. 해커 한 명이 서버 하나를 조사하는 동안 AI는 다른 서버의 취약점까지 함께 찾는 식이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AI 에이전트는 압도적으로 속도가 빠르고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공격 대상도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해커가 직접 취약점을 찾을 때는 조사할 대상을 선별하고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하지만 AI를 이용하면 규모가 작거나 외부에 흩어져 있는 시스템까지 폭넓게 탐색할 수 있다. 기업의 핵심 전산망뿐 아니라 외주업체의 업무용 프로그램과 오래된 서버도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주변부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히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며 “AI 에이전트가 이런 탐색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기아 노동조합과 티빙 등에서도 보안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업이 운영하는 각종 서비스와 정보 관리 체계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아 노조의 경우 외부 위탁업체에서 발생한 해킹 사고가 다른 기관과 단체의 개인정보 유출로까지 이어졌다. 외부 시스템을 노리는 공격 자체도 새로운 수법은 아니다. 곽 교수는 “예전에도 취약한 고리를 공격자가 찾게 되면 그쪽으로 공격이 이루어졌다"며 “지금은 자동화된 도구나 인공지능 기반의 도구를 사용하니까 예전에 미처 찾지 못했던 취약점들을 더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SK쉴더스도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업이 제대로 파악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는 외부 시스템을 주요 보안 위험으로 지목했다. 기업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정보기술 자산인 '섀도 IT(Shadow IT)'와 외부에 노출된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등이 대표적이다. 김병무 SK쉴더스 사이버사업부문장(부사장)은 “AI는 새로운 취약점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공격을 증폭시키는 도구"라며 “기업은 보유 자산의 가시성을 확보하고 API를 비롯한 외부 노출 영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해킹 도구가 공격에 필요한 전문지식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랩은 비숙련자도 AI의 도움을 받아 공격을 시도할 수 있고, 숙련된 해커는 반복 작업을 자동화해 공격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방어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기존에는 정상적으로 로그인하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제는 로그인한 사람도 계속 검증해야 한다"며 “접근권한을 작업 단위로 나누고 주변 시스템의 보안 수준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방어자도 미리 AI 취약점 점검 도구를 사용해 취약점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며 “공격자가 같은 도구나 방식으로 취약점을 찾더라도 이미 보완했다면 공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이수진 인턴기자

‘분기 영업익 100조’ 새 역사 쓴 삼성…엔비디아 추월도 눈앞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을 거두며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고지를 밟았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과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회복이 맞물린 결과로, 엔비디아·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의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넘어서는 규모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삼성전자가 올해 연간 영업이익에서도 엔비디아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8일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잠정 영업이익이 107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12조1700억원)보다 782.50% 급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195조원으로 전년 동기(86조600억원) 대비 126.59% 늘었다. 직전 최대 기록이던 2분기 실적(매출 171조5000억원·영업이익 89조4900억원)과 비교해도 매출은 13.70%, 영업이익은 20.01% 증가해 한 분기 만에 기록을 다시 썼다.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성과급 충당금을 빼고도 100조원을 넘긴 성적이다. 1~3분기 누적 실적도 가파르게 불어났다. 누적 매출은 500조37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239조7700억원)보다 108.69% 늘었다. 누적 영업이익은 254조1300억원으로 1년 전(23조5300억원)의 10배가 넘는 980.03%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날 사업부문별 실적은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는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영업이익이 11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DS 부문 안에서는 D램 사업이 약 80조원, 낸드 사업이 30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영업이익률은 D램이 약 80%, 낸드가 70~75% 수준으로 메모리 전체 이익률이 70%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적을 끌어올린 것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였다. 전 세계적으로 투자가 확대되며 D램·낸드 등 메모리 전반의 공급이 달리자 가격 오름세가 이어졌다. 여기에 HBM 판매가 늘면서 이익 증가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분석이다. 가격 지표도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제품 평균 가격은 26달러로 6개월 연속 올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메모리카드·USB용 낸드 범용제품 평균 가격 역시 30.6달러로 21개월째 상승하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차세대 AI 메모리인 HBM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힌 것이 실적 개선의 핵심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HBM4(6세대)를 양산 출하했고, 약 4개월 만에 관련 매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넘어섰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는 3분기 HBM4 매출이 전 분기의 3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점유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21%에서 2분기 33%로 12%포인트 상승했다. 하반기 HBM4 출하가 본격화하면 점유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투자증권은 “HBM4는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량이 한 제품 안에서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첫 세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기술 경쟁력과 실적을 모두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삼성전자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이번 영업이익은 엔비디아(637억달러·85조4000억원)와 애플(509억달러·68조2000억원)이 각각 기록한 역대 최대 분기 영업이익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세계 민간기업 가운데 1위에 해당한다. 증권가가 예상하는 엔비디아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평균 전망치)는 710억달러(95조원)다. 삼성전자가 2분기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단 얘기다. 이번 실적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라 추정한 잠정치다. 결산이 끝나기 전에 투자자 편의를 위해 미리 공개한 수치로,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확정 실적과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사회 승인 시점에 3분기 실적을 다시 공시할 예정이다.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앞두고는 경영 현황 등에 대한 주주들의 질문을 미리 받고 있으며, 콘퍼런스콜에서 관심이 높은 사안을 골라 답변할 계획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영업익 107조 삼성전자, 성과급은 ‘두 회사’…DS·DX 갈등 더 커진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에 힘입어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실적 신기록의 중심은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이다. 다만 기록적인 이익이 성과급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가전·TV를 담당하는 DX(디바이스경험)부문과의 보상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성과를 낼 때는 하나의 삼성인데, 성과를 나눌 때는 DS와 DX가 다른 회사가 된다"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이 회사 전체의 축포가 아니라 사업부 간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8일 연결기준 올해 3분기 잠정실적으로 매출 195조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약 127%, 영업이익은 약 783% 증가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매출은 171조5000억원에서 13.7%, 영업이익은 89조5000억원에서 20% 늘었다. 시장이 예상한 영업이익 105조~107조원도 웃돌거나 상단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네 분기 연속 분기 기준 최대 영업이익을 갈아치웠다. 잠정실적에는 사업부별 성적이 공개되지 않았다. 세부 실적은 이달 말 발표된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일반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 AI 서버용 고부가 메모리와 HBM 판매 확대가 실적 개선을 이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DX부문은 스마트폰과 TV·가전 판매에도 부품 가격 상승과 마케팅 비용 등의 영향으로 반도체만큼 큰 폭의 수익성 개선을 기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반도체가 번 107조…내년 3월 '성과급 청구서' 실적이 급증하면서 DS부문 직원이 받을 특별경영성과급 규모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5월 DS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하는 임금협약에 최종 합의했다.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지급하며, 특별성과급은 자사주 형태로 제공된다. 합의안은 조합원 투표에서 73.7%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특별경영성과급은 DS부문과 각 사업부 성과를 각각 반영해 산정한다. 반도체 전체 실적이 좋더라도 메모리와 파운드리·시스템LSI 직원의 지급액은 달라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전날 DS부문 특별성과급을 정기주주총회 직후인 내년 3월 말 지급한다는 계획을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연간 DS부문 실적과 주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부 추산에서는 연봉 8000만원인 메모리사업부 직원이 기존 OPI를 포함해 최대 7억원대의 보상을 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는 확정 지급액이 아니라 연간 실적과 성과급 산식 등을 전제로 한 추정치다. DX부문 직원에게는 상생협력 명목으로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가 지급된다. DS와 DX 직원 간 보상 차이가 수십 배에서 많게는 100배 가까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이유다. 회사는 사업부별 이익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입장이다. 반도체가 대규모 적자를 냈던 시기에는 DS부문 직원의 성과급도 급감한 만큼 사업 성과와 보상을 연동하는 원칙 자체가 불합리하지 않다는 논리다. 그러나 DX 직원들은 반도체 불황 당시 스마트폰과 가전 사업이 회사 실적과 현금흐름을 떠받쳤고, 삼성전자라는 단일 법인의 제품·브랜드·유통망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 “성과 창출은 하나의 삼성"…2027년 공동교섭 요구 DX부문을 중심으로 조직된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은 2026년 임금협상에서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DX 직원들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동행은 지난 6일 국정감사 현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성과 창출에는 하나의 삼성을 말하면서 성과를 나눌 때는 DS와 DX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신임 집행부는 2027년 임금협상부터 DS와 DX 직원 모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공동교섭 틀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동행 조합원은 9월 말 기준 3만명을 넘어 DX부문 전체 인력의 약 63%에 이른다. 지난달 선출된 손용호 신임 위원장도 공동교섭 구조 마련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쟁점은 '같은 회사의 사업부별 성과를 어디까지 분리해서 보상할 수 있느냐'다. 회사가 DS와 DX의 임금·성과급 협상을 사실상 분리해 운영하면 조직별 실적 책임은 명확해진다. 반면 특정 사업부의 업황에 따라 직원 보상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져 협업과 조직 통합을 해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특히 삼성전자가 AI 기기와 반도체, 스마트폰·가전을 결합하는 '원 삼성' 전략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보상체계만 사업부별로 분리되는 것은 경영 전략과 인사제도 간 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달 말 공개될 사업부별 실적에서는 DS부문의 정확한 영업이익과 특별성과급 충당 규모가 핵심이다. DX부문의 수익성, 사업부별 인건비 반영 방식, 내년 3월 실제 지급 규모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보상하는 원칙은 필요하지만 격차가 구성원이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벌어지면 실적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조직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2027년 교섭에 앞서 DS와 DX의 성과를 연결하는 보완책을 제시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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