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베트남 AI 전력 공략… LNG·SMR 단계별 진출 추진

SK이노베이션이 인공지능(AI)과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베트남 시장을 겨냥해 액화천연가스(LNG)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아우르는 단계별 에너지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SK이노베이션은 추형욱 대표이사가 지난 16~17일 베트남을 방문해 산업무역부 및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베트남(PVN), 발전 자회사 PV파워의 주요 관계자들과 만나 에너지 및 첨단기술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협력 논의는 베트남 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대규모 전력을 소모하는 첨단 산업 유치가 본격화함에 따라, 신속하고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 구축이 국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는 판단에서 마련됐다. ◇미국·호주산 LNG 기반 안정적 연료 조달 SK이노베이션은 가파르게 늘어나는 베트남의 전력 수요에 대응할 단기 해법으로 LNG 발전 확대를 제시했다. 베트남은 가스발전 사업 추진 시 국제 LNG 가격과 공급 변동성이 주된 부담 요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미국과 호주에 보유한 자사 가스전 자산과 장기 LNG 계약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경쟁력 있는 가격의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공급 지역을 다변화함으로써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고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추 대표는 “AI의 급격한 발전이 전력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LNG가 에너지 안보를 보장할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테라파워 협력 기반 '차세대 SMR' 도입 중장기적 전력 공급 방안으로는 차세대 SMR 기술 협력이 제시됐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미국 테라파워와 함께 4세대 원자로 기술인 '나트륨(Natrium)'의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나트륨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해 전력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원전 기술이다. 추 대표는 “차세대 SMR 기술 검증 및 상용화가 완료된 후 PVN과 원전 분야에서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석유·가스 중심에서 재생에너지 및 원전 등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 중인 PVN 측 역시 기술성과 경제성이 확보되면 원전 협력을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발전소·AI 데이터센터·산업단지 잇는 '에너지 생태계' 구축 단순한 설비 구축 및 연료 공급을 넘어, SK이노베이션은 LNG 발전소와 산업단지, AI 데이터센터를 하나로 묶는 '특화 에너지-산업 클러스터(SEIC)' 모델도 함께 적용할 방침이다. 현재 추진 중인 베트남 뀐랍 LNG 복합화력발전 사업을 기점으로 인근에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 시설을 유치하면, 발전 사업자는 안정적인 전력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고 베트남은 첨단산업 투자와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향후 재생에너지 및 ESS 영역으로도 협력 범위를 점차 넓혀갈 계획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장원테크, 자동차·IT 부품 품질혁신으로 글로벌 고객 신뢰 강화

자동차 및 IT 부품 제조 전문기업 장원테크(대표 박승구)가 예방 중심의 품질혁신과 스마트 검사 시스템 도입을 통해 제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장원테크는 품질을 단순 검사가 아닌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정의하고, 개발부터 양산·출하에 이르는 전 공정에 고도화된 품질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원테크는 정밀 금속가공 및 경량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자동차·IT 부품을 생산하는 한편,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AI 서버, 전기차(EV) 핵심 부품 등 미래 신산업 분야에서도 품질을 핵심 차별화 요소로 삼고 있다. 과거 ISO 9001 인증을 바탕으로 다져온 품질관리 노하우를 자동화 장비 중심의 스마트 체계로 개편하는 모양새다. ◇LVDT·비전 검사 등 자동화 설비 도입으로 검사 정밀도 극대화 특히 장원테크는 자동화 검사 설비를 적극 도입해 검사 신뢰성과 공정 안정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주요 자동차 부품 공정에는 선형 변위 센서 기반의 'LVDT 자동 평탄도 측정 설비'를 도입해 측정 데이터를 실시간 관리하고 있으며, '방열 패드 자동부착 설비'를 통해 작업자 편차 없는 균일한 조립 품질을 확보했다. 또한, 기존 작업자가 육안으로 진행하던 틈새(GAP) 검사와 전장 부품 체결 홀(Hole) 검사를 '자동 다관절 비전 검사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스펙 상·하한 기준에 따른 자동 판정 체계를 마련해 검사 정확도를 높이고, 작업자 실수로 인한 불량 유출 및 선별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QR코드 자동 인식과 부자재 누락 검사까지 통합 운영해 공수 절감 효과도 거두고 있다. ◇전사적 품질문화 정착… 휴머노이드·AI 서버 등 미래 사업 파트너십 강화 장원테크는 제품 검사 위주의 사후관리에서 벗어나 생산 전 단계에서 리스크를 사전 분석하고, 현장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추적·개선하는 선순환 예방 체계를 완성해 나갈 계획이다. 전사적인 품질교육과 개선활동을 통해 자율적인 품질혁신 문화도 정착시키고 있다. 이 같은 품질 경쟁력은 장원테크가 추진 중인 미래 성장 사업의 핵심 발판이 될 전망이다. 회사는 앞서 휴머노이드 로봇 구조부품, AI 서버용 고방열 부품, EV 배터리팩 부품 등 미래 핵심 부품 분야에 향후 5년간 100억 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박승구 장원테크 대표이사는 “좋은 제품은 기술이 만들지만, 고객의 신뢰는 품질이 완성한다"며 “품질을 최우선 가치이자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고객이 가장 먼저 찾는 신뢰받는 제조 파트너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AI 인재 58만명 공백 경고…통신3사, 정부 전략 발표 앞두고 ‘인재 확보전’

오는 2029년까지 AI·클라우드 등 신기술 분야에서 약 58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통신 3사가 AI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AI 관련 채용 공고가 전년 대비 70% 증가한 데 이어 정부도 AI 인재양성 지원 전략 발표를 예고하는 등 업계의 인재 육성 움직임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통신 3사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과 산학협력, 임직원 재교육 등을 통해 실무형 AI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 AI 인재 확보전…채용공고 70% 늘어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를 바탕으로 발간한 '이공계 인력 부족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9년까지 AI·클라우드·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에서는 약 58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학사급 중급 인력(29만2000명)뿐 아니라 석·박사급 고급 인력(28만7000명) 부족도 심각할 것으로 분석됐다. AI 인재 확보 경쟁은 채용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잡코리아가 2026년 1~5월 자사 플랫폼에 등록된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AI' 키워드가 포함된 공고는 1만5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채용공고 증가율(10%)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신입직 AI 채용공고도 80% 늘었으며, 업종별로는 IT·정보통신 분야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들도 AI 기술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기존 인력의 재교육(Reskilling)을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Future of Jobs Report 2025'에서 AI와 빅데이터를 향후 가장 빠르게 성장할 기술 분야로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기업의 85%가 기존 직원의 역량 강화를 우선 추진할 계획이라고 답했으며, 70%는 새로운 기술 역량을 갖춘 인재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신업계도 이에 발맞춰 AI 인재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는 AI 데이터센터(AIDC), AI 에이전트, 기업용 AI 등 AI 중심 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 임직원의 AI 활용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 실무형 AI 인재 키우는 통신3사 SK텔레콤은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사회문제 해결형 AI 경진대회 'TECH4GOOD 해커톤'을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AI 에이전트와 앱·웹 기반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며 현업 중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사회적 약자와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AI 서비스를 기획·개발하는 과정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는다. KT는 고용노동부와 함께 운영하는 AI 인재 양성 프로그램 'KT 에이블스쿨(AIVLE School)'을 통해 AI 개발자와 DX 컨설턴트를 양성하고 있다. 2021년 첫 기수 이후 현재까지 약 350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으며 AI·클라우드 기술 교육은 물론 산업 현장의 문제 해결 역량까지 함께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AI 기업 팔란티어와 함께 'Agent Camp'를 운영하며 임직원이 실제 업무 데이터를 활용해 AI 에이전트를 개발·적용하는 실무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생성형 AI를 업무 전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임직원 대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AI 활용 문화를 조직 전반으로 확산하는 한편 AI를 실제 업무와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AX 역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통신업계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 실무형 AI 인재 육성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프로젝트 수행과 현업 전문가 멘토링, 해커톤 등을 통해 산업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역량을 키우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AI를 이해하는 인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AI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라며 “실제 업무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와 현업 중심 교육이 AI 인재 육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AI 인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9일 “AI 기술이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인 만큼 현장형 AI 인재가 필요하다"며 “대학과 기업이 교육과 연구 단계부터 협력해 산업 현장 수요에 맞는 AI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산·학·연 현장 의견을 반영한 'AI 인재양성 지원 전략'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전략에는 산업 수요를 반영한 인재양성 체계와 대학·기업 간 협력 강화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AI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통신사들의 AI 인재 확보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며 “외부 전문인력 확보와 함께 임직원의 AI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재교육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사상 최대 찍고도, 진땀 뺀 SK하이닉스…“피크아웃 아니다”

해외 투자은행(IB)과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메모리 고점론'과 AI 인프라 투자 둔화 우려가 번지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분기 실적과 함께 “우려와 달리 AI 투자는 견조하게 지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생산능력(CAPA) 확대에 따른 공급과잉 가능성부터 중국산 고대역폭메모리(HBM) 위협론까지 시장이 제기해온 우려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반박한 만큼, 이번 실적발표가 투자심리 회복의 분기점이 될지 관심이 모인다. 29일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매출 79조3000억원, 영업이익 60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보다 매출은 51%, 영업이익은 61% 늘어난 수치로 2분기 연속 역대 최대 매출을 새로 썼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3배 넘게(257%), 영업이익은 6배 넘게(557%) 뛰었다. 영업이익률은 전분기보다 5%포인트 오른 76%로, 영업이익과 이익률 모두 역대 분기 최고치를 기록했다. 감가상각비를 더한 에비타(EBITDA)는 64조6000억원, 에비타 마진율은 81%에 달했다. ◇ “AI 투자 축소 아니라 수익화 국면" 이날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JP모건 애널리스트가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임대 사업 검토와 고효율 AI 모델 등장으로 AI 인프라 투자 축소 우려가 있다"고 묻자, 하이닉스 측은 “투자 축소 과정이 아니라 그간 구축한 인프라의 활용도를 높이고 수익화를 본격화하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고효율 모델 역시 “동일 인프라에서 더 많은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돼 오히려 수요 확산을 촉진한다"는 설명이다. ◇ “피크아웃 아니다"…근거는 고객사와의 장기계약 하이닉스가 우려 진화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주요 고객사와 맺고 있는 장기공급계약(LTA)이다. 회사는 현재까지 10여 개 핵심 고객사와 LTA 협상을 마무리했으며, 계약 기간은 통상 5년, 가격은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예치금 등 계약 이행 장치도 포함해 수요의 가시성과 신뢰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최근 발표한 대규모 캐파(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둘러싼 공급과잉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SK하이닉스는 “고객과의 파트너십 강화로 확보된 수요 가시성에 기반한 것"이라며 “장비 투자와 생산 램프업은 고객 수요와 투자 효율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진행할 것이라 곧바로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답했다. 올해 투자 규모는 당초 계획보다 늘어난 40조원 후반대로 제시했다. 이천·용인은 차세대 D램과 AI 메모리 거점으로, 청주는 낸드·첨단패키징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HBM 경쟁력에 대한 질문에는 “HBM2E 세대부터 축적한 양산·수율·품질·고객 신뢰 전반의 역량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차별화 요소"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HBM4는 2분기부터 양산 출하를 시작해 하반기 본격 확대하며, HBM4E는 상반기 중 주요 고객사 샘플 공급을 마쳤다. 다만 UBS 애널리스트가 물은 2027년 HBM 가격 협상에 대해서는 “고객 수요를 바탕으로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면서도 구체적 가격은 밝히지 않았다. ◇ “빅테크는 검증된 공급사 선호"…중국산 메모리 우려도 불식 SK하이닉스는 중국 업체들의 메모리 시장 잠식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최근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증시 상장과 중국 국영기업·스타트업의 액침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양산 소식이 겹치며 중국 업체들의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고객사들은 공급과 관련해 더 안정적이고 품질 이슈가 없는 공급사를 선호한다"며 품질과 신뢰성을 앞세워 대응했다. HBM은 물론 고성능 D램 영역에서도 중국 기업의 시장 침투가 단기간에 판도를 바꾸긴 어렵다는 취지다. 3분기에는 D램 출하량을 전분기 대비 약 10% 늘리고, 낸드는 한 자릿수 초반 증가를 계획하고 있다. 7월 10일 나스닥에 상장한 ADR은 30일부터 원주 전환이 가능해지며, 전환 한도는 발행 주식 수인 1779만주로 설정된다. 추가 주주환원 방안은 현재 다각도로 검토 중이며 구체적 계획이 확정되는 대로 시장과 소통할 예정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60조 영업이익에도 웃지 못한 SK하이닉스…AI메모리 훈풍 속 ‘어닝 미스’

인공지능(AI) 서버용 메모리 수요 확대에 힘입어 SK하이닉스가 또 한 번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률은 76%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반도체·빅테크 기업을 통틀어도 손꼽히는 수익성을 기록했다. 다만 워낙 높아진 시장 눈높이 탓에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증권가 예상치(컨센서스)에는 못 미치는 '어닝 미스'를 냈다. SK하이닉스는 29일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 당기순이익 93조922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56.8%, 영업이익은 557.2%, 순이익은 1242.5% 늘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매출은 50.9%, 영업이익은 61%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76%로 1분기(72%)보다 4%포인트(p) 높아졌다. 앞서 SK하이닉스는 1분기에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한 바 있는데, 이번 분기 실적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47조2063억원)을 단 한 분기 만에 넘어섰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131조895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원대를 돌파했다. 누적 영업이익은 98조1529억원, 누적 순이익은 134조2685억원으로 집계됐다. ◇ 어닝 미스에도 최고 수익성…배경엔 HBM 비중과 장기계약 역대 최대 실적이지만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증권가 컨센서스(매출 84조원, 영업이익 64조원 안팎)에는 미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우선 SK하이닉스는 경쟁사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비중이 커, 최근 범용 메모리 가격 급등이 이끈 이익 수직 상승의 수혜를 상대적으로 덜 봤다고 본다. 또 D램·낸드 가격이 수개월째 오르며 고점에 다다르면서 2분기 단가 상승폭 자체가 1분기보다 둔화됐다. 범용 D램 상승률은 1분기 60% 중반에서 2분기 약 30%로, 낸드는 70% 중반에서 50% 중반으로 낮아졌다. 여기에 대형 고객사와 맺은 장기공급계약(LTA)으로 판매가격 일부가 고정되면서 가격 상승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 측면도 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LTA로 묶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영업이익률 76%는 마이크론(81.2%)에 이어 글로벌 빅테크 중 2위권으로, 엔비디아(65.6%)와 TSMC(60.3%)를 웃도는 수준이다. 2분기에는 2018년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을 통해 투자했던 키옥시아 지분 일부를 처분하며 영업외이익 62조1660억원이 추가로 발생, 세전순이익이 122조7083억원까지 늘었다. 현금성 자산은 전 분기 말보다 33조6000억원 늘어난 88조원, 차입금은 7000억원 줄어든 18조6000억원을 기록해 순현금이 69조4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최근 'AI 버블론'과 '피크아웃(정점론)' 우려로 반도체주가 조정을 받아온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가 아직은 네 살짜리 어린아이인데 성인이 되려면 메모리가 쓰일 수밖에 없다"며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강조한 바 있다. ◇ HBM4 하반기 본격 확대…10여 곳과 장기계약, 3분기 78조 전망 SK하이닉스는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 형태로 진화하면서 AI 메모리뿐 아니라 일반 메모리 수요까지 함께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핵심 고객을 포함해 10여 개 고객사와 장기공급계약(LTA) 협상을 마무리했고, 다른 주요 고객과도 추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6세대 HBM인 HBM4는 2분기 양산 출하를 시작해 하반기 생산을 본격 확대한다. 회사는 “HBM4는 고객이 요구하는 동작 속도를 구현하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전력 효율과 원가 경쟁력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후속 제품인 HBM4E는 상반기 중 주요 고객사 샘플 공급을 마쳤고, 기술 성숙도와 양산 안정성을 고려해 적용 공정을 확정했다. 차세대 서버 모듈인 SOCAMM2도 2분기 판매가 크게 늘었으며, 10나노급 6세대(1c) 공정을 적용한 제품 공급이 본격화됐다. 낸드에서는 321단 제품이 이미 전체 생산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연말까지 국내 생산능력의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투자도 속도를 낸다. 충북 청주 M15X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내년 초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클린룸 가동에 맞춰 설비를 신속히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첨단 패키징 공장 P&T7과 낸드 생산기지 M17, 신규 클러스터 조성 등 중장기 투자는 고객 수요와 투자 효율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회사는 고객 수요가 공급 역량을 웃도는 상황에서,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하는 능력이 앞으로 사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하반기 실적이 더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분기 SK하이닉스 매출은 약 100조원, 영업이익은 7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신형 AI 가속기 '베라 루빈' 양산이 본격화하면서 여기에 탑재되는 HBM4 매출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AI 에이전트 활용도가 높아지며 메모리 수요가 더 커지는 데다, 하반기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까지 겹치면 메모리 공급 부족은 한층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일선 CXO연구소장은 “AI가 아직 초입 단계이기 때문에 반도체 수요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하반기 실적도 나름대로 선방할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는 “실적이 좋다고 해서 이게 바로 주가에 반영되기는 당분간 힘들 수도 있다"며 환율 변수와 최근 투자자 관심을 끌고 있는 중국 반도체 업체의 부상, 여름철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 여력 약화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어 “6월보다 점점 내려가고 있는 추세인데 실적 말고 뭔가 더 획기적인 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다"며 “당분간은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단독] 삼성전자, 평택 LNG 발전소 수소로도 돌린다…AI·탄소감축 일석이조

삼성전자가 평택캠퍼스 P5 펩1,2 생산라인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추진 중인 1기가와트(GW)급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 수소 혼소를 적용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사업 참여를 검토하는 민간 발전사들에 입찰 제안서 제출 시 수소 혼소 목표와 단계별 이행 방안을 함께 제시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생산시설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을 LNG로 적기에 확보하면서도 향후 수소 비중을 높여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글로벌 탄소 규제 등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수소 혼소 발전은 LNG와 수소를 함께 연소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LNG 발전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소 비중을 높여 탄소배출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탄소감축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AI·반도체 경쟁력과 탄소중립 사이에서 현실적인 접점을 찾으려는 첫 대형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중 평택캠퍼스에 500MW급 발전설비 2기, 총 1GW 규모의 LNG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업 방식은 GS와 E1, 한화에너지 등 민간 발전사업자가 건설·운영하는 형태와 삼성전자가 직접 사용하기 위한 자가발전 형태가 함께 검토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산업부 출신 공무원들과 한국전력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한 만큼 자가발전 방식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주목되는 부분은 삼성전자가 단순한 LNG 발전소가 아니라 수소 혼소를 전제로 한 설비와 운영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 참여를 검토하는 발전사들은 설비의 수소 혼소 대응 능력뿐 아니라 목표 혼소율과 향후 수소 비중 확대 경로, 연료 조달 및 설비 전환 방안 등을 제안서에 담아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발전소는 초기부터 수소 혼소가 가능한 가스터빈과 부대설비를 갖추는 방향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운전 초기에는 LNG를 주연료로 사용하되 수소 공급망과 경제성, 관련 제도가 갖춰지는 시점에 맞춰 실제 혼소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설비의 수소 대응 능력뿐 아니라 실제 혼소 목표까지 요구한 것은 장기간 LNG 전소 방식으로 발전소를 운영하는 데 따른 탄소배출 부담을 의식한 조치로 분석된다. 신규 LNG 발전소는 한 번 건설하면 30년 안팎을 가동하게 되는 만큼, P5에 필요한 전력만을 기준으로 사업을 설계할 경우 향후 탄소 감축 비용과 규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국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뿐 아니라 해외 고객사들의 RE100·CF100 요구와 공급망 탄소관리 기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LNG 발전으로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전환 경로를 사전에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평택캠퍼스 P5는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와 연결되는 핵심 시설로 꼽힌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전력 공급이 필요하고 순간적인 전압 변동이나 정전에도 생산라인과 수율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발전원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형 원전은 건설 기간과 입지 문제로 증설 일정에 맞춰 공급하기 어렵고,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조합도 현 단계에서는 1GW급 반도체 공장 전력을 상시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소형모듈원전(SMR) 역시 중장기 대안이지만 상용화와 인허가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업계에서 LNG 발전을 적기 전력 공급을 위한 현실적인 수단으로 보는 배경이다. 수소 혼소는 LNG 발전의 안정성을 활용하면서 탄소배출을 단계적으로 줄이기 위한 방안이다. 다만 혼소율이 높아질수록 수소 조달 비용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질소산화물 배출 관리, 가스터빈 성능 유지 등의 과제도 커진다. 이 때문에 발전사들이 제안하는 혼소 목표와 실행 가능성이 사업자 선정 과정의 주요 평가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업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반도체 산업 육성과 탄소중립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조율될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의 속도전을 강조하면서도 NDC 상향과 화석연료 감축 기조를 함께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수소 혼소 목표를 입찰 조건에 포함한 것도 정부와의 인허가 협의에 대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평택 발전소가 LNG 전소가 아닌 수소 혼소형으로 추진될 경우, 적기 전력 공급과 중장기 탄소 감축을 결합한 절충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 향후 SK하이닉스와 AI 데이터센터, 대규모 제조업체들의 자가발전 및 분산전원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P5에 필요한 전력을 제때 공급하려면 현 시점에서는 LNG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며 “다만 장기간 LNG만 사용하기는 어려운 만큼 삼성전자가 설비 단계부터 수소 혼소를 요구하고 실제 혼소 비중 확대 방안까지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발전사 입장에서는 단순한 건설비와 전력단가뿐 아니라 어느 수준의 혼소율을 언제부터 구현할 수 있는지, 수소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까지 제시해야 한다"며 “이번 입찰은 국내 대형 산업용 발전사업에서 수소 전환 경쟁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속보] SK하이닉스, 2분기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작년보다 557%↑

SK하이닉스가 올해 2분기에도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메모리 수요가 계속 늘면서, SK하이닉스는 지난 1분기 기록한 최고 실적을 한 분기 만에 다시 넘어선 것이다. SK하이닉스는 29일 올해 2분기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영업이익률 76%), 순이익 93조9226억원(순이익률 118%)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K-IFRS 기준이다. 전분기(매출 52조5763억원·영업이익 37조6103억원)와 견주면 각각 51%, 61% 늘었다. 어닝쇼크 수준이었던 지난해 2분기(매출 22조2320억원·영업이익 9조2129억원)와 비교하면 매출은 257%, 영업이익은 557%, 순이익은 1242% 급증했다. 이로써 상반기 누적 매출은 사상 처음 100조원대에 올라섰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전분기에 이어 큰 폭의 가격 상승을 기록한 영향이 컸다. 회사는 “HBM과 AI 서버용 D램, e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판매를 늘려 최고의 수익성을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실적 호조에 힘입어 2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전분기 말 대비 33조6000억원 늘어난 88조원, 순현금은 69조4000억원으로 확대돼 재무 여력도 크게 강화됐다. SK하이닉스는 향후 성장 기반도 다지고 있다. 핵심 고객을 포함해 10여 개 고객과 장기공급계약(LTA) 협상을 마무리했고, 차세대 제품인 HBM4는 2분기 양산 출하를 시작해 하반기 생산을 본격 확대한다. 상반기 샘플 공급을 마친 HBM4E도 준비를 마쳤다. 낸드는 321단 제품이 이미 생산량 비중 1위에 올랐고, 연말까지 국내 생산능력의 50%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M15X 양산 일정을 앞당기는 한편, 내년 초 용인 1기 팹 클린룸 오픈에 맞춰 생산능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최근 발표한 첨단 패키징 공장 P&T7과 낸드 생산기지 M17,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중장기 투자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다만 회사는 “설비투자 원칙(CapEx Discipline)을 유지하며 생산능력과 재무 건전성을 함께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인터뷰] “국가 전폭지원 中 반도체, 韓 턱밑까지 추격” 前 삼성전자 부사장의 섬뜩한 경고

“내가 볼 때는 거의 낙동강까지 갔다고 봐요." 15년간 삼성그룹 중국본사에서 반도체 투자를 진두지휘했던 이병철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전선에 지금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빗댄 것이다. 최첨단 반도체 일부 분야만 겨우 지키고 있을 뿐, 범용 반도체는 이미 중국이 턱밑까지 따라왔다는 얘기다. AI 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하는 사이, 중국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지난 27일 상하이증시에 상장한 창신메모리(CXMT)는 거래 시작 1시간 만에 거래대금 1000억위안(21조원)을 돌파하며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허페이시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연구개발 인력과 반도체 기업이 집결하면서 허페이는 중국 메모리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연구소에서 10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위원은 이러한 흐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한국 반도체 호황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을 떠난 뒤 연구자의 시선으로 산업을 바라보게 된 그는 중국발 반도체 위기를 미리 경고하는 '늑대가 왔다'는 사람을 자처하고 있었다. - 반도체가 지정학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9년 트럼프 1기 때 미국이 중국 화웨이를 제재하기 시작했어요. 명목상은 '이란 제재 위반' 등 국가안보 또는 외교정책 이익에 반하는 활동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거였죠. 제재 목록에 올려 반도체 기술이나 장비를 못 팔게 한 게 그때부터예요. 그다음 해에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기술을 쓰는 제3국 기업도 동참하도록 강제했어요. 그때부터 삼성이나 하이닉스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죠. 원래 정상적인 기업 간 거래에 미국이라는 국가가 들어와 간섭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걸 보면서 느꼈죠. '반도체가 이제 전략의 문제가 됐구나.'"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칩스법)과 AI 시대의 개막이 겹치며 반도체는 산업을 넘어 국가안보의 핵심 품목이 됐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이 흐름 속에서 한국 메모리 업계가 얻은 반사이익도 짚었다. AI 발전 초기에는 GPU의 연산 성능이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AI 모델이 급속히 커지면서 GPU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폭증했고 기존 D램으로는 데이터 공급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병목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HBM이 부상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시장에서 합산 약 80%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AI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 최근 애플이 중국산 D램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이 중국산 반도체를 채택할 경우 실제로 메모리 가격 급락 사태가 일어날 수 있나.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애플 입장에서는 공급업체가 하나 더 늘어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 있어 메모리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국 업체의 기술 향상입니다. 애플이 CXMT 제품을 채택하면 품질과 성능에 대한 까다로운 피드백을 제공하게 되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CXMT의 기술력도 빠르게 발전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 메모리 기업들은 높은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가 대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해 저가 물량 공세에 나서면 이러한 수익구조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중국의 가장 큰 강점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막대한 자본을 장기간 투입하며 단기 손실도 감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격보다 시장점유율 확보를 우선하는 물량 공세가 시작되면 개별 기업은 물론 메모리 산업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EUV 노광장비를 비롯한 최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제한되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확보한 DUV 장비를 활용하고 국산 장비와 공정기술의 수준을 높이면서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 증설분의 약 절반이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2~3년 안에 중국산 반도체 공급 물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중국은 현재 '중국판 맨해튼 프로젝트'로 불리는 EUV 장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UV 장비까지 개발된다면 최첨단 반도체 분야도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반도체에서는 수율이 중요합니다. 10개를 생산해 9개가 정상 제품이면 수율이 90%이고, 3개만 정상이면 30%입니다. 중국 업체들은 아직 수율과 품질 안정성에서 격차가 있지만, 생산 경험이 축적되면서 그 차이를 계속 좁혀가고 있습니다." ◇ 낙동강 전선, 그리고 희토류라는 반격 카드 -왜 '낙동강 전선'이라는 표현을 썼나. “반도체는 AI·국방·자동차·통신 등 모든 첨단산업의 기반입니다.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의 75% 수준까지 커지고 기술 격차도 좁혀지자, 미국은 이를 산업 경쟁이 아니라 안보 문제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첨단 장비·설계도구를 미국과 동맹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이 통제 수단으로 전환한 것이죠. 국제정치에서는 이를 '무기화된 상호의존'이라 부릅니다. 공급망의 핵심 길목을 쥔 나라가 그 지위를 압박 수단으로 쓰는 겁니다. 중국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자립에 나섰고, 이 경쟁이 시작된 지 벌써 7~8년입니다. 문제는 그 결과가 미국보다 우리에게 먼저 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중국은 최첨단 공정에선 여전히 제약을 받지만, 성숙공정과 범용 메모리엔 막대한 투자를 이어왔습니다. 그 결과 생산능력이 빠르게 늘고 있고, 본격 공급이 시작되면 우리가 주도해온 범용 D램·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 확실한 우위를 가진 건 HBM 등 최첨단 메모리뿐입니다. 그런데 범용 메모리 수익이 무너지면 그 돈으로 HBM·차세대 기술에 투자해온 선순환 구조도 약해집니다. 결국 우리 우위가 최첨단 일부만 남을 수 있다는 거죠. 아직 그 단계까지 온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중국 생산능력이 계속 커지는데 우리가 대비하지 못하면 마지막 핵심 경쟁력만 남기고 나머지 시장을 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이 위원은 미국의 카드가 반도체라면 중국의 반격 카드는 희토류라고 짚었다. “희토류는 첨단산업과 무기 생산에 반드시 들어가는 '산업의 비타민'입니다. 쓰이는 양은 적지만 없으면 산업 전체가 마비됩니다. 핵심은 채굴이 아니라 분리·정제인데, 중국이 이 공정의 글로벌 80% 안팎을 장악한 대표적 초크포인트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총리의 대만 유사시 관련 발언 이후 희토류를 비롯한 희귀광물 공급에서 중국의 제재·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미중 갈등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 중국이 지난해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를 발표하자 트럼프는 100% 관세로 맞섰고, 중국도 관세 인상으로 맞불을 놨습니다. 이후 부산 정상회의에서 1년 휴전에 합의했고, 올해 5월 정상회담에서는 희토류를 포함한 통상 현안을 다룰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11월 중순 휴전 종료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휴전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휴전을 연장하면서 양국이 갈등을 관리해 나갈 것이라 보이지만 그 와중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희토류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협상의 교환 카드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이 '반도체 제재를 계속하면 희토류 공급을 제한하겠다'고 압박하면 미국도 일부 수출통제를 조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 확보와 시장 진입이 빨라져 한국 기업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반도체를 단순한 산업이나 통상 문제가 아니라 기술·공급망·외교·안보가 연결된 전략산업으로 봐야 합니다. 미·중 관계의 변화 자체보다 어떤 제재가 완화되고, 그것이 중국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반도체 경쟁은 이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술·인재·자본·외교·통상·안보가 총동원되는 국가 간 총력전입니다."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이 침몰했던 상황과 지금 한국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경고도 있다 “일부 비슷한 점은 있지만 본질은 다릅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을 직접적 경쟁상대로 보고 시장점유율·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통상압박을 가했습니다. 일본 반도체의 경쟁력을 낮추고 미국 산업을 회복시키는 게 정책의 핵심 목적이었죠. 반면 지금은 중국을 상대로 한 기술패권 경쟁입니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 수출상품이 아니라 AI·군사력·경제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습니다. 그래서 미중 모두 국가의 명운을 걸고 경쟁하고 있고, 통제 대상도 가격·점유율을 넘어 첨단장비, AI칩, HBM, EDA, 첨단인력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경쟁의 강도와 범위가 1980년대보다 훨씬 치열하고 장기적입니다. 한국의 위치도 당시 일본과는 다릅니다. 한국은 미국이 경쟁력을 낮춰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핵심 동맹이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입니다. 그래서 일본처럼 한국 산업 자체를 약화시키는 정책이 전면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봅니다. 다만 이것이 한국에 반드시 유리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동맹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역할과 부담을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 확대와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며 한국 기업에 미국 투자 확대, 대중 기술이전 제한, 중국 사업 조정, 공급망 재편 참여 등을 계속 요구하고 있고, 이런 요구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일본이 미국과의 산업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두 시장·두 공급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공급망 관리와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력까지 핵심 경쟁력으로 갖춰야 할 겁니다." -주 52시간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반도체는 AI와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고, 각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연구개발을 일반 사무직과 동일한 근로시간 기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유레카'처럼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 실험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집니다. 연구가 중요한 고비에 이르면 하루 이틀 몰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일률적으로 시간을 제한하면 연구의 흐름이 끊길 수 있습니다. 저는 장시간 노동을 일상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반도체 연구개발과 같이 국가 경쟁력이 걸린 분야만큼은 프로젝트 특성과 연구 단계에 따라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경쟁 환경입니다. 중국은 매년 약 500만 명의 이공계 인력을 배출하는 반면, 우리는 10만 명대 수준입니다. 절대적인 연구개발 인력 규모에서 이미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연구개발의 유연성까지 부족하다면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따라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따라오느냐'의 문제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개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초격차의 본질은 무엇인가. “권오현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초격차』라는 저서에서 초격차를 '상대적 우위가 아니라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절대적 수준의 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오늘날 초격차의 본질은 대체 불가능한 초크포인트(Choke Point)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TSMC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3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에서는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닙니다. 세계 어느 기업도 단기간에 TSMC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고 부르고,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라는 표현도 씁니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이 곧 대만의 외교적·전략적 자산이 된 것입니다. HBM도 같은 사례입니다. AI 반도체에는 HBM이 필수이고, 현재 한국 기업들이 세계 공급망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HBM 공급이 중단되면 AI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크포인트입니다. 결국 초격차는 단순한 점유율 자체 격차가 아니라 '이 기술이나 제품이 없으면 산업 전체가 움직일 수 없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점유율은 그 결과일 뿐입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로봇 전담 조직을 신설한 것도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로봇 산업은 반도체처럼 대량 생산능력만으로 승부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결국 삼성만이 제공할 수 있는 AI, 소프트웨어, 핵심 부품 또는 플랫폼 등 대체 불가능한 초크포인트를 어디에서 만들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 '우아한 도태'를 경계하며 인터뷰 말미, 그는 정책 결정자와 산업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 “이건 국가 총력전입니다. 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반도체는 이제 AI와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고, 각국이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AI 반도체 호황으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지만, 이러한 독점적 이익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도 막대한 자본과 인재를 투입하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기술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좁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논리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기보다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을 우선해야 합니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고, 수많은 협력업체와 지역경제가 함께 연결된 국가 산업 생태계입니다. 정부와 기업, 임직원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힘을 모아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아한 도태'입니다. 저녁이 있는 워라밸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국가 총력전이 벌어지는 산업에서 경쟁국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지금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그 많은 인력이 밤새도록 일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같이 경쟁하면 결국 우아하게 도태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이건희 회장님께서 늘 위기의식을 강조하실 때 '왜 저렇게까지 위기를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업 현장을 떠나 연구자의 입장에서 세계 반도체 경쟁을 지켜보니 그 심정을 이제는 이해하게 됩니다. 밖에서 보면 기술패권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위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프로필〉 이병철 전 부사장은 다른 직장을 거치지 않고 2022년까지 삼성전자 한 곳에서만 근무했고, 그중 절반가량인 15년을 중국 주재원으로 보냈다. 삼성그룹 중국 본사 소속으로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SDI·삼성디스플레이, 삼성물산 등 그룹 전체의 중국 투자·현안을 총괄했으며, 특히 시안 반도체 공장 투자를 초기 단계부터 현지에서 팔로업했다. 퇴임 후 아주대에서 미중 기술패권 속 반도체 기업 생존 전략을 주제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기초로 『K-반도체 초격차 전략』을 펴냈다. 현재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이자 경기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신은서 인턴기자

[김한성의 AI시대] 더 큰 AI보다 더 나은 판단

김한성 투비유니콘 최고철학책임자(CPO) 지난 7월 14일, 인공지능 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뉴스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미국의 데이터센터 개발·운영사들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허깅페이스 통계에서는 가중치를 공개한 중국계 AI 모델, 이른바 오픈웨이트 모델이 올봄 다운로드의 41%를 차지했다. 반면 IBM은 이례적인 실적 경고를 내놓은 뒤 주가가 25% 급락했다. 한쪽에서는 AI 인프라를 향한 투자가 이어지고, 다른 쪽에서는 비용이 낮고 통제하기 쉬운 모델이 확산되는 동안 전통적인 기업용 기술의 강자는 시장의 혹독한 질문을 받았다. 세 뉴스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AI 경쟁의 질문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크고 똑똑한 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제는 “어떤 문제에 어떤 모델을 적용해, 얼마의 비용으로 어떤 성과를 낼 것인가"를 묻는다. 최첨단 모델은 고난도 업무에 쓰이는 프리미엄 수단으로 남겠지만, 일상적인 서비스는 더 작고 저렴하며 맞춤화하기 쉬운 모델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선택해야 할 것은 가장 뛰어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와 비용 구조에 가장 적합한 조합이다. 양자컴퓨터 경쟁조차 개별 큐비트 수보다 반도체·광통신·냉각·제어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 더 근본적인 경고도 나왔다. 케임브리지대와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연구진은 특정 동적 시스템에서는 데이터가 무한히 주어져도 어떤 알고리즘도 안정적으로 학습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보였다. AI가 무용하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실패를 데이터 부족이나 모델 규모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풀 수 있는 문제라도 과도한 메모리와 전력, 냉각을 요구한다면 비용과 사회적 부담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실제로 해야 한다는 결론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19세기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의 통찰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퍼스에게 의미는 말 속에 고정된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이 실제 경험과 행동에서 만들어내는 차이를 통해 분명해진다. 탐구는 이미 아는 답에서가 아니라 예상과 현실이 어긋나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그 어긋남을 설명할 가설을 세우고, 예상되는 결과를 추론한 뒤, 현실과 다시 대조해 믿음을 고친다. 이 관점에서 AI의 답은 완성된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 후보'다. 생성형 AI는 그럴듯한 문장과 관계를 풍부하게 만들지만, 현실은 그 문장에 저항한다. 따라서 좋은 AI는 오류가 전혀 없는 AI가 아니다. 출처와 현장 데이터, 실행 결과와 반례에 연결되고, 인간의 비판을 받아 판단을 고칠 수 있는 AI다. 검증할 수 없는 확신보다 수정할 수 있는 추론이 더 높은 지능이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AI 도입 전에 세 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첫째, 이 문제는 AI가 학습하고 풀 수 있는가. 둘째, 기대 성과가 비용과 위험을 넘어서는가. 셋째, 그 결과는 어떤 업무 습관과 제도를 남기는가. 그다음에야 어떤 모델을 쓸지 결정해야 한다. 화려한 성능 시연보다 시간 단축, 오류 감소, 위험 통제와 서비스 품질을 측정해야 한다. 중단 조건과 인간의 판단 권한을 정하고, 검증된 결과를 표준 절차와 정책, 조직의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 성과를 내지 못한 시도도 원인을 기록해야 같은 오류에 다시 비용을 쓰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모델 연결기가 아니라 '판단 체계'다. 사실과 가설을 구분하고, AI가 생성할 것과 도구가 계산할 것, 사람이 결정할 것을 나누는 운영 구조다. 개인의 학습도 마찬가지다. AI가 핵심을 요약해 주면 낯선 분야에 빠르게 들어갈 수 있지만, 요약은 이해의 입구일 뿐이다. 반례를 찾고 실제 문제에 적용하며 자신의 질문을 고칠 때 비로소 지식은 판단 능력이 된다. 한국의 기회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최고 모델 순위와 데이터센터 규모만 좇기보다 오픈웨이트 모델과 최첨단 모델, 현장 데이터와 규칙, 인간의 판단과 감사 기록을 연결하는 '판단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모델이 더 우수한지를 넘어, 어떤 조건에서 누구의 판단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축적하는 국가적 학습 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기술 경쟁에서 물러나는 길이 아니라 기술의 가능성을 실제 가치로 전환하는 길이다. AI 시대의 수준은 얼마나 큰 모델을 가졌는가보다, 그 모델이 틀렸을 때 얼마나 빨리 현실로 돌아와 판단과 제도를 고칠 수 있는가에서 드러날 것이다. AI의 다음 경쟁은 더 많은 답을 생산하는 경쟁이 아니다. 현실의 저항 앞에서 답을 수정하고, 그 경험을 더 나은 습관과 제도로 축적하는 능력의 경쟁이다. bienns@ekn.kr

로봇 ‘눈’ 넘어 ‘피부’까지…LG이노텍, 피지컬AI 정조준

LG이노텍이 로봇의 시각(Vision) 기술에 이어 촉각(Tactile)까지 영역을 넓힌다. 스마트폰용 비전 센서로 쌓은 광학·초정밀 설계 기술을 로봇용 멀티 센싱 모듈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LG이노텍이 일본 전자부품 기업 TDK와 피지컬 AI 분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는 LG이노텍의 광학·초정밀 설계 기술과 TDK의 센서 기술을 결합해 '차세대 비전 센싱 모듈'과 '촉각 센싱 모듈'을 공동 개발한다. 최근 로봇 업계에서 비전 센싱 모듈 안에 다양한 기능을 결합하는 추세가 확산하면서, 기존 비전 센싱 모듈 사업을 하던 LG이노텍도 다른 센서를 추가로 결합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압력·온도·위치 등 광범위한 센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TDK가 파트너로 낙점된 배경이다. LG이노텍 관계자는 “수십여 종의 센서 기술을 보유한 TDK와의 시너지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차세대 비전 센싱 모듈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먼저 비전 센싱 모듈은 로봇의 '눈' 기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존 비전 센싱 모듈이 시각 정보 위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면, 이번 협력으로 개발되는 차세대 모듈은 TDK의 관성·위치 센서와 마이크 등을 결합해 움직임·방향·음향 데이터까지 통합 처리한다. 예컨대 관성 센서(IMU)를 장착하면 로봇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영상 데이터의 흔들림을 보정해 주변을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로봇 제조사 입장에서도 여러 센서를 개별 구매·연결하는 부담 없이 하나의 통합 모듈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관성 센서 탑재 모듈은 내년 개발 완료될 계획이다. 촉각 센싱 모듈은 로봇의 '피부'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손(Hand)뿐 아니라 팔·몸통 등 여러 부위에 장착돼 접촉 여부와 압력을 인식하게 해주며, 초정밀·초박형·유연 구조가 요구돼 개발 난도가 높은 고부가 부품으로 꼽힌다. 양사는 내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LG이노텍의 모듈화 및 디지털 신호 처리 기술과 TDK가 소비재·자동차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쌓아온 초정밀 촉각 센싱 기술을 결합해 로봇 작업환경에 최적화된 고성능 촉각 센싱 모듈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LG이노텍은 이미 글로벌 최고 수준의 카메라·라이다(LiDAR)·레이더(Radar) 등 센싱 부품을 결합해 피지컬 AI 센싱 시장을 적극 공략해왔다. 카메라·라이다·레이더를 모두 자체 기술로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 경쟁력을 발판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들과 활발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향후 양사는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은 LG이노텍의 로봇 사업 확장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비전 센서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온 연장선에서 로봇용 비전 센서 사업을 하다가, 촉각 센서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는 셈이다. 로보틱스 사업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메인 축 중 하나로 꼽히며 그 비중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로보틱스 사업이 거의 메인 축에 있다"며 “점차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고, 앞으로 더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문혁수 LG이노텍 사장은 지난 1월 7일(현지시간) CES 2026 전시장을 찾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LG이노텍은 지금 단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솔루션 제공자로 가고 있다"며 사업 구조 재편 방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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