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천 서울경마공원과 국군방첩사령부 부지를 활용한 9800호 수준의 주택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식 사업시행자 지정과 경마장 대체 부지, 이전 재원, 기반시설 확충 방안 등 핵심 사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지역사회에서는 공급 물량과 일정부터 앞세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 1월 발표한 주택공급 대책에서 LH를 과천경마장 부지 개발의 예정 사업시행자로 제시했다. 다만 LH는 아직 공식 사업시행자로 선정되거나 지정된 상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본지에 “과천경마장 부지 개발의 공식 사업시행자로 선정된 것은 아니다"며 “현재 관련 내용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정부가 9800호 수준의 공급 규모와 개발 방향을 발표했지만 토지이용계획과 사업성 검토, 주민 협의를 최종적으로 주도할 기관은 아직 공식화되지 않은 셈이다. 본지는 국토교통부에 사업시행자 선정 절차와 9800호 산출 근거, 주민 의견수렴 계획, 교통·하수처리 등 기반시설 대책을 수차례 문의했으나 기사 마감 시점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정부가 공개한 계획상 개발 대상은 과천경마공원 약 115만㎡와 인근 방첩사 부지 약 28만㎡를 합친 총 143만㎡다. 정부는 이곳에 주택 9800호 수준과 자족시설을 조성하고 과천지식정보타운과 서울 양재 인공지능(AI) 특구를 잇는 첨단산업 거점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새 개발지에는 과천지식정보타운보다 높은 수준의 자족용지를 확보한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다만 주거·자족용지 면적과 용적률, 주택 유형별 공급 물량 등 세부 토지이용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주택 착공 목표는 2030년이다. 이후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착공 시점을 2029년 4분기로 앞당기고 경마장 이전 일정을 구체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기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서울경마공원 전체를 한 번에 옮기는 '일괄 이전'을 원칙으로 두고 2026년 이전계획 수립과 한국마사회 이사회 의결, 2027년 대체 부지 확정과 인허가·설계, 2028년 신규 경마장 착공, 2029년 이전과 주택 착공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 이전이 늦어질 경우를 대비한 단계적 개발 방안도 거론된다. 마사 일부가 화성 화옹지구 말조련단지로 먼저 이전하면 방첩사와 인접한 일부 부지부터 우선 개발하는 방식이다. 다만 2029년 4분기 조기 착공 일정과 단계별 개발 방안은 현재까지 공개된 정부 공식 자료를 통해 확정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의 속도전과 달리 실제 사업 절차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LH의 공식 사업시행자 지정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경마장 이전 부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경마장 이전 부지 문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 등 관계기관이 협의할 사안으로 LH의 직접 소관은 아니다. 9800호라는 공급 규모도 도로와 공원, 학교, 자족시설 등의 배치가 확정되기 전 제시된 계획 물량이다. 실제 지구계획 수립 과정에서 주거용지 면적과 개발밀도에 따라 물량이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과천시와 지역 주민들은 정부가 기존 개발사업으로 인한 기반시설 부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과천에서는 과천과천지구와 과천주암지구, 과천갈현지구, 과천지식정보타운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경마장·방첩사 부지 9800호가 추가되면 도로와 상하수도, 학교, 전력시설 등이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기존 과천과천·과천주암지구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기반시설을 별도로 조성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교통망 확충 노선과 하수처리시설 용량, 학교 신설 규모, 사업비 분담 주체와 추진 일정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14일 찾은 과천경마공원 일대에는 경마장 이전과 공공주택 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과 맞닿은 경마장 정문 주변에는 기존 공공주택사업 구역과 노후 주거지, 비닐하우스 등이 혼재해 있었다. 주민들은 추가 주택 공급으로 늘어날 교통량과 하수처리 수요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는 상태에서 9800호라는 공급 규모가 먼저 제시됐다고 지적했다. 과천시도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도로와 교통, 상하수도, 교육시설 등 도시 기반시설의 수용 여건이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며 충분한 사전 협의 없는 추가 공급계획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경마공원 이전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도 사업 추진의 핵심 변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마사회는 건물 공사비와 경주로·마사 등 특수시설 설치비를 포함해 토지 매입비를 제외하고도 최소 1조2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수준의 경마장과 관련 기반시설을 조성할 경우 이전 비용이 2조원을 크게 웃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와 마사회는 과천 부지 매각대금을 이전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관련 법과 재원 운용 방식을 손질하고 레저세 감면, 금융 지원, 규제 완화 등을 병행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레저세 감면이 현실화하면 경기도와 해당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세입이 감소할 수 있어 지방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대체 경마장 부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화성 화옹지구를 비롯해 경기 남부와 북부의 여러 지역이 후보지로 거론되지만 정부는 경기도 내에서 이전한다는 기본 방향 외에 확정된 후보지를 제시하지 않았다. 기보도에 따르면 마사회는 현재 과천 부지보다 넓은 토지와 대중교통 접근성, 철도역 설치, 경영 안정 대책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옹지구는 넓은 평지와 기존 말조련단지 계획을 갖췄다는 점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반면 간척지 특성상 연약지반 보강에 추가 비용이 들 수 있고 대중교통 접근성이 과천보다 떨어진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경기 북부 미군 반환공여지 등은 서울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주거지와의 거리, 산악지형, 환경 훼손 가능성 등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마사회 노동조합과 마필관리사, 조교사 등 말산업 종사자들도 고용 불안과 산업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경마공원은 단순한 공공기관 부지가 아니라 경주마 훈련과 관리, 말 생산농가, 운송업체, 마주·기수·조교사 등 다양한 종사자가 연결된 산업시설이다. 과천 시민단체와 마사회 노조는 대체 부지와 이전 재원, 고용 및 산업 유지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 착공 일정부터 앞당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마장 정문 맞은편 '꿀벌마을'에서는 신규 9800호 공급계획과 별개로 기존 과천과천 공공주택지구 사업에 따른 보상과 이주,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공개한 경마장·방첩사 개발 대상은 두 시설 부지 약 143만㎡로, 현재 공개된 계획상 꿀벌마을은 신규 공급 대상지에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주민들은 향후 9800호가 추가될 경우 기존 과천과천지구의 도로와 하수처리시설 등 기반시설 계획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천과천 공공주택지구는 경기도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주택도시공사(GH), 과천도시공사가 공동 시행한다. 이 가운데 꿀벌마을을 포함한 구간의 보상과 이주는 GH가, 보상과 이주가 끝난 건축물의 철거는 LH가 담당한다. GH에 따르면 꿀벌마을 일대 토지보상은 100%, 지장물 보상은 97%까지 진행됐다. 현재 조사가 가능한 가구에 대한 보상은 마무리됐지만, 조사를 거부했거나 소유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일부 지장물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태다. 다만 토지소유자와 세입자, 무허가 건축물·비닐하우스 거주자 등에 대한 법정 이주대책과 생활대책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 GH는 향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책을 마련한 뒤 자격요건을 충족한 대상자에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이 '약 8평 규모의 임대주택만 제시받았다'고 주장한 데 대해 GH는 과천시와 성남·의왕 등 인근 지역에 전용면적 16~46㎡ 규모의 임시사용 임대주택을 세 차례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보증금과 임대료는 공급 유형별로 국토교통부 고시 등 관련 기준에 따라 산정됐다는 입장이다. 다만 가장 작은 16㎡형은 약 4.8평 규모로, 주민들이 체감하는 주거면적과 생활 여건을 둘러싼 불만은 이어지고 있다. 주민대책위는 고령층과 장기 거주자들의 생활 방식과 가구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이주대책이라며 원주민 재정착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과 GH는 협의가 충분했는지를 놓고도 입장이 엇갈린다. 마을 관계자는 본지에 “주민 전체를 상대로 한 충분한 설명보다 고령자 등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주 절차가 진행됐다"며 “원주민의 생활 여건과 재정착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GH는 2024년 6차례, 2025년 13차례에 걸쳐 자치회 임원과 주민 3~7명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었으며,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고 반박했다. 임대주택과 전세임대 공급도 안내문 발송과 현수막 게시 등을 통해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철거는 보상과 이주가 모두 끝난 공가로 한정된다. GH와 LH에 따르면 2025년 8월11일 지장물 해체공사 계약이 체결된 뒤 공가 철거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이주하지 않은 주민이 남아 있어 철거 실적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보상금에 이의를 제기한 경우에는 관련 법령에 따른 재결 절차가 진행된다. 현재 사람이 거주 중인 주택은 실제 이주 완료 여부를 확인한 뒤에만 철거한다는 게 사업시행자 측 설명이다. 다만 꿀벌마을이 향후 경마장·방첩사 9800호 개발에 필요한 도로와 하수처리시설 등 기반시설 부지로 추가 편입될 가능성에 대해 GH는 “GH가 담당하는 사업과 무관해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토지와 지장물 보상은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주민들의 최종 정착 방안을 담은 법정 이주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보상과 이주는 GH, 철거는 LH가 나눠 맡는 구조에서 주민들은 업무별로 서로 다른 기관을 상대해야 한다. 신규 경마장 개발의 시행주체가 공식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바로 맞은편 기존 공공주택사업에서도 보상과 철거, 이주대책의 책임 창구가 분산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