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소진되는 5월이 공포의 정점”…건설사, ‘중동발 셧다운’ 공포 확산

중동발 전쟁 리스크가 국내 건설현장의 '혈관'을 조이고 있다. 정부는 아직 “멈춘 현장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비축 물량이 소진되는 4월 말~5월 초를 기점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셧다운'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중동전쟁 기업애로 지원센터'를 통해 자재 수급 불안, 공사비 상승, 공정 지연 등 건설업계 애로를 접수·지원할 방침이다. 대한건설협회 등 5개 유관 협회에 설치되는 이 센터는 공급망 이상 여부를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자재 수급 차질이나 공사 중단 사례가 공식적으로 접수된 것은 없다"며 “지원센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공사의 공기 연장은 계약 당사자 간 협의 사항이고, 공공 공사는 발주청 판단에 따른다"며 “정부가 일률적으로 지원 방향을 정한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자재 가격 급등과 관련한 매점매석 등 시장 교란 정황 역시 “확인된 바 없다"고 부연했다. 현장의 위기의식은 정부와 온도차가 크다. 에너지경제신문 취재 결과 복수 대형 건설사들은 공식적으로는 이날까지는 '이상 없음'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건설업계는 현재 상황을 '초기 리스크 단계'로 보고 있다. 건설사 등을 회원사로 둔 주택협회와 대한건설협회는 모두 현재 상황을 '초기 우려 단계'로 보면서도, 구체적인 영향이나 공사비 상승 규모에 대해서는 확인된 자료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중동발 자재값 상승이 분양가나 공사비에 즉각 반영되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현 시점에서 분양가 상승이나 공기 지연이 업계 전반으로 가시화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는 지원센터 역시 업계 애로를 파악하기 위한 초기 단계"라며 “협회 차원에서도 회원사 피해나 수급 문제를 집계한 자료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특정 품목별 수급 불안 수준이나 공사비 상승 폭을 정량적으로 파악한 자료는 없다"며 “혼화제, 단열재, 페인트 등 석유화학 기반 자재를 중심으로 우려가 제기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자재 가격 상승 압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전체 공사비 상승률로 환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건설 현장이 워낙 많고 실시간 집계 체계도 없어 몇 퍼센트 상승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건설업계에서는 이미 자재 가격 상승을 넘어 '공급 리스크'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일부 현장에서는 마감 공정 진입을 앞두고 자재 수급 상황을 점검하거나 일정 조정 가능성을 검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도료업계에서는 일부 페인트와 실란트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 가능성이 통보됐고, 주요 업체들도 최근 두 자릿수 수준의 가격 조정을 단행하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유가 상승이 건설 원가에 미치는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도장재나 단열재 등 석유화학 기반 자재 비중이 높은 공정에서는 체감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4월 말~5월 초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을 지나면 가격 문제가 아니라 실제 물량 확보 경쟁으로 국면이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재고로 버티는 단계지만 이후에는 공사 지연을 넘어 일부 현장에서 공정 중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업계 전반적으로 4월 말에서 5월 초를 하나의 임계 시점으로 보는 분위기"라며 “전쟁이 길어질 경우 그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에 '공사비 원가 상승 및 공기 지연 우려'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는 전쟁 장기화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 불확실성을 반영해 공사기간 연장 가능성이 담겼다. 특히 도급계약상 불가항력 조항을 근거로 공기 연장 및 추가 공사비 보전 협의 필요성을 명시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 나프타 공급 차질이 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전쟁 장기화 여부에 따라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도장용 자재나 접착제 등 석유화학 기반 마감재를 중심으로 납기 지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현장에서는 자재 확보 상황을 점검하거나 일정 조정 여부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영향이 마감 단계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레미콘 생산에 투입되는 혼화제 역시 석유화학 계열 원료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현재는 비축 물량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원료 수급 부담이 점차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건설사들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 공문을 발송해 리스크를 사전 공유하는 한편, 원가율 조정과 자재 확보 전략 점검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재고로 버티는 상황이지만 5월 초가 사실상 데드라인"이라며 “이 시점을 넘기면 레미콘 생산 차질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혼화제 등 화학제품 계열 자재부터 영향이 시작돼 단열재, 플라스틱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건설 자재는 대부분 화학제품 기반이기 때문에 결국 전방위로 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서는 현재 상황의 본질을 '가격 상승'이 아닌 '공급 리스크'로 보고 있다. 가격은 협상 여지가 있지만, 공급이 끊기면 공사는 즉시 중단될 수밖에 있기 때문이다.수익성 압박도 확대되고 있다. 자재 가격 상승이 공사비나 분양가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비용 부담은 즉각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 공사 중단이나 대규모 공기 지연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전쟁이 길어질 경우 영향이 본격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버티는 국면이지만, 향후 공급 상황에 따라 현장별로 체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코로나19 당시 글로벌 공급망 마비로 철근, 시멘트 등 핵심 자재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는 '코스트 푸시(cost push)'가 발생했다. 철근 가격은 평소 톤당 60만~70만 원 수준에서 한때 140만 원대까지 치솟았고, 시멘트 역시 유연탄 가격 상승 영향으로 단기간에 30% 이상 급등했다. 자재를 구하지 못해 공사가 멈추는 사례가 속출했고,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은 공정률 50% 수준에서 2022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여간 공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은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으로 번졌고, 추가분담금이 가구당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까지 늘어나면서 조합원 반발과 소송이 잇따랐다. 결국 상승한 공사비는 분양가로 전이되면서 고분양가 논란과 청약 시장 위축으로 이어졌다. 건설사 관계자는 “전쟁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코로나19 당시에 겪었던 공사비 분쟁 재연이 우려된다"며 “현장별 원가율이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정비사업의 추가분담금 증가나 공공사업의 공사비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때처럼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공사비 상승이나 공정 지연이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며 “원자재 수급이 한쪽으로 쏠리면 가격 상승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상황은 당시와 유사한 '공급 충격' 구조를 보이면서도, 원인은 다르다. 코로나19가 글로벌 물류 마비에서 비롯된 전방위 자재 부족이었다면, 이번에는 유가 상승과 나프타 수급 불안 등 에너지 안보 문제가 출발점이다. 이에 따라 철근·시멘트보다 단열재, 창호, 방수재, 혼화제 등 석유화학 기반 자재가 먼저 흔들리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국내 건설업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 자재 대부분이 석유화학 기반이라 호르몬즈 해협 리스크에 속수무책인 구조라는 것이다. 한 건설사 현장 관계자는 “현재 구조는 중동 원료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단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수입선 다변화 전략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부영, 저출산 해소 위한 ‘출산장려금 1억’ 2026년에도 36억원 지급

부영그룹이 전 국가적 위기 신호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직원 자녀 1명당 1억원' 출산장려금 지원 제도를 도입한 이래로 사내 출산율이 상승세를 기록죽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부영그룹 등에 따르면 출산장려금 제도가 도입된 2024년 이래로 3년째인 올해에만 부영은 36억원을 지급하며 현재까지 지원금 규모가 누적 134억원을 기록했다. 부영그룹은 지원 첫 해인 2024년에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출산한 직원을 대상으로 총 70억원을 전달했다. 이어 2025년에 28억원을, 올해는 36억원을 지급했다. 부영그룹 사내 출산율은 츌산장려금 제도가 도입된 뒤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출산장려금 도입 첫해, 2021년~2023년 3년간의 연평균 출생아는 23명이었다. 그러나 지원 2회째인 지난해엔 5명이 늘어 28명을 기록했다. 3회째를 맞이한 올해는 작년보다 8명(28%)이 늘어나 연평균 출생아 수가 36명까지 불어났다. 실제로 회사가 출산장려금 제도를 도입하자 사내 출산율이 계속해서 오르면서 출산장려금 제도가 저출생 문제의 실질적인 해법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미 부영그룹의 출산 장려금 지원 제도는 민간 주도 저출생 해결의 모범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2024년 부영그룹이 자녀 1명당 1억원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사회 전반적으로도 파격적인 시도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더해 실질적으로도 사내 출산율 제고라는 실효성이 입증되면서 다른 기업들도 부영그룹의 사례를 따라하는 등 출산장려금 지원 제도는 대표적인 기업의 복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저출생 문제는 정부의 영역이 아닌 민간에서도 나서야 하는 범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특히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회사의 출산장려금 지원제도를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한다는 방침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이 회장은 출산장려책 도입 첫해인 2024년 시무식에서 “대한민국의 저출생 문제가 지속된다면 20년 후 경제생산인구수 감소, 국가안전보장과 질서 유지를 위한 국방 인력 절대 부족 등 국가 존립의 위기를 겪게 될 것으로 보고 해결책으로 출산장려금 지급을 결정했다"며 “우리가 마중물이 되어 국채보상운동과 금 모으기 캠페인처럼 앞으로도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산을 지원하는 나비효과로 번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출산지원금 제도 외에도 부영그룹은 전국에 약 23만 세대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국민 주거 안정에 힘쓰고 있다. 이 밖에 부영은 역사·교육·보훈 등 다양한 분야에서 1조2200억원 규모의 누적 기부금을 내놓고 있다. 이중근 회장 개인도 사비로 2660억원을 기부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앞장서고 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아파트 가고 원전·SMR 온다… ‘회색 콘크리트’ 벗고 ‘에너지 디벨로퍼’ 입는 건설사들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건설업계의 판을 바꾸고 있다. 국내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중동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원전, 소형모듈원전(SMR), 태양광, 수소, 송전망 등 에너지 사업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조달·시공(EPC), 운영, 전력 공급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디벨로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주택 의존 구조로는 불확실성을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에너지 인프라가 사실상 대체 성장축으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GS건설이다. GS건설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및 판매 관련 사업'을 정관상 신규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이는 태양광 발전소를 시공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고 생산 전력을 판매하는 사업자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미 충남 태안 창기 태양광 발전소를 기반으로 기업 대상 직접전력구매계약(PPA) 사업에 나섰고, LG유플러스와 20년 장기 전력 공급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주택사업이 분양 성적에 따라 수익이 흔들리는 구조라면, 장기 PPA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GS건설은 인도 파투르 태양광 발전단지에서도 개발사업자로 참여해 시공과 운영, 전력 판매 경험을 쌓아왔다. 국내외에서 태양광 발전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밸류체인을 직접 쥐겠다는 구상이다. 직접 PPA는 이미 제도화돼 있으며, GS건설 사례는 발전사업자가 기업과 장기 계약을 맺는 민간 조달 모델이 실제 사업화 단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민간 주도의 자율적인 에너지 거래 시장이 열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히 삼성전자 등 RE100 대응이 필요한 대기업들은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GS건설이 태양광 중심으로전기를 공급하면, 기업들은 보다 안정적인 가격에 RE100 대응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다가오는 글로벌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태양광을 비롯한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국내외 신재생에너지 개발 사업권 확보와 수요처 발굴에 주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원전과 에너지 인프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한우 대표는 지난해 3월 '에너지 전환 리더'를 내세우며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 매출 비중을 21%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글로벌 건설사 위빌드와 대형 인프라 및 양수발전 협력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신규 원전 건설 심포지엄을 열며 북유럽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대형 원전뿐 아니라 SMR, 수소, 태양광, 해상풍력 등으로 사업 축을 넓히며 주택 중심 수주 구조를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중심으로 바꾸려는 흐름이 뚜렷하다. 현대건설이 제시한 'H-로드(H-Road)' 전략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넘어선다. 2030년까지 에너지 매출 비중을 21%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은 주택 경기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독립적인 성장 엔진을 확보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과거 건설업 매출이 분양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주택·건축 부문에 집중돼 있었던 만큼, 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원전과 해상풍력 등 국가 단위 장기 프로젝트가 실적의 하방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건설 역시 대형 원전과 SMR, 원전 해체 등 전 주기 밸류체인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에너지 사업은 원전과 해상풍력, 수소 등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며, 특히 원전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실제 수주나 매출은 계약 체결 여부에 따라 가시화되는 만큼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규모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잠재적 사업 기회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DL이앤씨는 한 단계 더 들어가 기술 축적형 사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DL이앤씨는 미국 엑스에너지와 약 1000만달러 규모의 'SMR 표준화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건설사가 SMR의 표준화 설계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표준화 설계는 발전소 내 각 설비의 연계 구조를 정형화해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방식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같은 설계를 반복 적용해 공기와 비용을 낮출 수 있어 향후 후속 프로젝트 확장성도 높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 역량과 기술 내재화를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DL이앤씨가 추진하는 SMR 표준화 설계의 핵심은 모듈러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방식을 기존의 현장 중심 토목공사에서 공장 제작과 현장 조립 중심의 '제품 조립형' 모델로 바꾸는 시도다. 기존 대형 원전이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며 수년간 건설되는 구조라면, SMR 모듈러 방식은 주요 부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레고처럼 조립하는 개념에 가깝다. 이 경우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고, 금융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 번 표준화된 설계를 완성하면 동일한 품질의 발전소를 여러 프로젝트에 반복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DL이앤씨 관계자는 “4세대 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외 프로젝트 참여 및 수주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며 “이번 사업은 단순 설계를 넘어 표준화·모듈화 기반의 SMR 개발·설계 모델을 구축하는 단계로, 글로벌 SMR 시장에서 신뢰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역시 카타르 태양광 프로젝트와 탄소 압축·이송 설비(CCS 인프라), 호주 HVDC(초고압직류송전) 등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동시에 SMR 분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바탕으로 루마니아 등 동유럽 SMR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AI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글로벌 신재생 에너지 수요 확대에 대응해 관련 기술과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왔다"며 “SMR과 수소, 재생에너지 등 분야를 향후 전략 사업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와 에너지업계에서는 최근 대형 건설사들의 사업 재편을 두고 “단순한 신사업 추가가 아니라 생존 방식 자체를 바꾸는 흐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로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주택 사업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금리와 PF 부담, 분양 심리 위축까지 동시에 작용하면서 사실상 주택만으로는 실적을 방어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국가 단위 발주가 이어지는 원전과 전력 인프라 쪽으로 사업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국내 주택 시장은 사이클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데다, 중동 변수까지 겹치면서 건설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한꺼번에 터진 상황"이라며 “이제는 공사를 따내고 끝나는 구조로는 수익을 유지하기 어렵고,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단계까지 들어가야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EPC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운영·유지보수(O&M)나 전력 판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면 향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중동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건설사들의 전략 전환을 앞당긴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전력의 '안정적 확보' 자체가 기업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AI 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대규모 전력을 끊김 없이 써야 하는 산업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건물을 짓는 수준을 넘어 전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핵심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원전, 재생에너지, 송전망 같은 전력 인프라의 전략적 가치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건설일용직 퇴직금 ‘노사정’ 첫 역사적 합의에도 현장선 ‘아쉬움’

현장을 옮겨 다니며 1년 미만으로 일해 법정 퇴직금을 받지 못하던 건설 일용노동자를 위한 퇴직공제부금 하루 적립액이 8700원으로 인상된다. 건설 현장에서는 기존 공사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아쉬워하면서도 반기는 분위기다. 다만 부당하게 누락된 퇴직공제부금을 직접신고해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지만 현장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31일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의 노후 보장을 위한 퇴직공제부금이 기존 1일 6500원에서 8700원으로 인상된다. 이번에 인상된 퇴직공제부금은 4월 1일 이후 최초 입찰 공고 하는 건설공사부터 적용된다. '퇴직공제제도'는 사업주가 노동자의 근로일수에 따라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부금을 적립하면 향후 노동자가 건설업을 퇴직할 때 이를 퇴직금 형태(퇴직공제금)로 지급 받는 제도다. 이번 인상은 노사정 최초 합의사항이다. 한국노총·민주노총과 대한건설협회·대한전문건설협회, 정부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정책협의회 논의를 거친 결과다. 건설업계의 고령화와 인력난 해소를 위해 건설노동자 처우개선에 뜻을 모았다는 설명이다. 적용 대상은 근로계약 기간 1년 미만의 임시·일용 건설노동자다. 상용 노동자나 1년 이상 기간제, 1일 4시간 미만이고 1주 15시간 미만 근로한 자는 제외된다. 또 1년 미만으로 고용됐던 노동자가 동일 사업주에게 1년 이상 다시 고용되는 경우 해당일부터 퇴직공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퇴직공제금 지급에는 조건이 있다. 적립일수가 252일 미만이면 65세에 도달하거나 사망한 경우여야만 받을 수 있다. 적립일수가 252일 이상이면 건설업에서 퇴직, 60세에 도달하거나 사망한 경우면 받을 수 있다. 퇴직공제부금은 퇴직공제금과 부가금으로 구성된다. 퇴직공제금은 건설노동자 몫이고, 부가금은 공제회 사업·운영비로 쓰인다. 이번 결정으로 퇴직공제금 2000원, 부가금 200원이 추가로 인상됐다. 건설노동자가 법정 지급 요건을 갖추면 공제회는 적립된 퇴직공제금 납부원금에 이자를 더해 지급한다. 부가금 재원은 청년층 대상 기능 향상 훈련 확대, 노동자 상조 서비스, 취업지원 거점센터 운영, 스마트 안전 장비 지원 등 건설근로자 복지·고용환경 개선 사업에 집중 활용할 예정이다. 퇴직공제제도는 1998년 1월 1일부터 시행돼왔다. 1998년 공제부금은 2100원에서 시작해 6차례 인상됐다. 연도별 공제부금과 전년대비 인상률은 2007년 3100원(47%), 2008년 4100원(32%), 2012년 4200원(2%), 2018년 5000원(19%), 2020년 6500원(30%), 2026년 8700원(33%)이다. 올해 인상률은 제도 시행 이래로 두 번째로 크다. 정부와 공제회는 이번 사례를 바탕으로 정책협의 과정을 상시 기구화할 계획이다. 4월 초에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첫 회의가 마련될 예정이다. 공제회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매 5년마다 수립하는 '제5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 중 퇴직공제제도 제도개선 부분과 관련해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는 이번 인상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건설근로자 A씨는 “한 달 30공수(노동량) 하면 월에 26만원씩 쌓이니까 1년이면 313만원"이라며 “이제 진짜 퇴직금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퇴직공제부금이 6500원이었을 땐 1년에 쌓이는 금액이 약 240만원이었다. 연간 80만원 가까이 퇴직공제부금이 더 쌓이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4월 1일 이후 입찰 공고하는 건설공사부터 인상액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근로자 B씨는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P4·P5,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첫 번째 팹(Fab) 공사는 이미 진행 중이라 인상 대상이 아니"라며 “P6와 용인 두 번째 공장 들어가야 해당될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퇴직공제부금 적립 과정에서 누락이나 과소신고가 발생했을 때 근로자가 직접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현장 인지도는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건설근로자 C씨는 “연장 근무나 야간 근무를 해도 현장 관리자가 실제 일한 공수(노동량)가 아닌 출력(출근 일수)으로 적립하는 경우는 여전히 불만"이라고 말했다. 공제회는 부정 신고를 막기 위해 전자카드제를 운영 중이다. 근로자가 현장에 설치된 단말기에 전자카드를 태그하면 현장 관리자는 전자카드 기록대로 퇴직공제부금을 신고해야 한다. 만약 관리자가 카드 기록보다 적은 일수를 신고할 경우 그 사유를 입력해야 한다. 공제회 관계자는 “현장 관리자가 고의나 실수로 신고를 누락하더라도, 근로자가 직접 공제회에 신고가 누락되었음을 알리는 '근로자 직접 신고 제도'를 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신고 후에 며칠이 신고됐다고 알려드리기도 하고 모바일 앱으로 확인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BS한양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2차’ 4월 공급

BS한양이 경기도 김포시 풍무역세권 도시개발사업 B1블록에 조성되는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2차'를 오는 4월 분양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2차'는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 167-1번지 일원(풍무역세권 도시개발사업 B1블록)에 지하 2층~지상 28층, 7개동, 총 639세대(▲84㎡ 509세대 ▲105㎡ 130세대)로 조성된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일대 시세 대비 저렴한 분양가로 공급될 전망이다. 풍무역세권은 최근 김포 내에서도 청약 성적이 우수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B2블록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1차를 포함해 지난해 공급한 3개 단지가 평균 약 10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조기 완판에 성공한 바 있다.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2차는 김포골드라인 풍무역과 사우역을 모두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더블역세권 입지를 갖췄다. 단지 인근에 사우초와 사우고가 위치해 도보 통학이 가능하다. 서울 접근성도 강점이다. 풍무역을 중심으로 지하철 5호선 연장 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5호선 연장 시 마곡지구를 비롯해 여의도, 광화문 등 서울 주요 업무지구로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용 59㎡, 84㎡ 타입이 공급된 1차와 달리, 2차는 전용 84㎡와 105㎡ 타입으로 공급돼 중대형 수요층을 겨냥했다. 특히 전용 105㎡는 일반 아파트(주상복합 제외)로서는 풍무역세권 내 마지막 대형 타입으로 분양된다. 단지는 전 세대 4베이 판상형 설계를 적용해 채광과 통풍을 극대화했고, 실거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다자녀 가구를 대상으로 공간 확장이 가능한 옵션도 제공한다. BS한양 관계자는 “서울 공급 감소와 가격 부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풍무역세권은 비규제·분상제·서울 접근성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갖춘 계획도시로서 주목받고 있다"며 “앞서 공급한 1차가 흥행에 성공한 만큼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2차 역시 분양 전부터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2차'의 견본주택은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 571-8 일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르포] 기대는 재건축, 현실은 화재 공포…장미·주공5의 ‘민낯’

“오밤 중에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몸만 겨우 피한 채 헐레벌떡 피신 나왔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지난 23일 밤 화재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현장을 27일 직접 찾았다. 이날 단지 내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자녀 가족이 화재가 발생한 동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당시 상황을 위와 같이 전했다. 실제로 단지 안은 아직 화재의 흔적이 선명했다. 밤 사이 불길은 잡혔지만, 화재가 발생한 12층과 피해를 입은 13층에는 그을음과 잿더미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지 게시판에는 '화재 세대 피해 보상 안내' 게시물이 부착돼 있었다. 관리사무소 측은 피해 규모와 소방 안전 점검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개인정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화재로 주민 70여 명이 대피했고, 소방은 사고 당일 오후 9시 8분 신고 접수 후 1시간여 만인 오후 10시 17분께 완진했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소방안전 체감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 주민은 “스프링클러는 없고 경보기만 설치돼 있다"며 “평소 소방훈련이나 경보기 작동 시험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경비원은 “오래된 아파트라 스프링클러는 없지만 매달 정기 소방점검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대피한 입주민도 “경보는 정상적으로 울렸고, 주민들은 복도에서 울린 경보를 듣고 비상계단으로 대피했다"고 전했다. 장미아파트는 현장에서 본 것만으로도 화재 취약 요소가 적지 않았다. 외벽 쪽 비상구 계단 출입부에는 생활 물품이 쌓여 있었고, 이는 유사시 주민 대피 동선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어 보였다. 복도마다 소화기와 소화전이 설치돼 있었지만, 설비 존재만으로 초기 대응 여건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여기에 단지 내 주차장은 이중주차 차량까지 겹쳐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 구간이 눈에 띄었다. 대형 소방차의 신속한 진입과 회차를 고려하면, 실제 화재 발생 시 진입로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제기된다. 이번 화재는 그나마 도로변과 가까운 동에서 발생해 소방차 접근이 가능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안쪽 동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훨씬 큰 혼선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공통됐다. 송파소방서 관계자는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지역에 대해서는 소방차 전용구역을 설치하고, 불법 주정차 여부를 사전에 단속·점검하고 있다"며 “다만 장미아파트처럼 이중주차가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단지는 매일같이 현장에 나가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사시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해 강제 처분이 가능하며, 필요할 경우 차량을 밀고 진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며 “최근에는 이러한 상황을 가정한 대응 훈련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차량 손상에 따른 민원이나 보상 문제 등 현실적인 부담이 있어 적극적인 집행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문제는 이런 불안이 장미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장미아파트와 더불어 재건축 수혜 단지로 각광받는 잠실주공5단지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노후가 확인됐다. 두 단지는 사실상 잠실 내 마지막 재건축 노른자위로 평가받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사업 기대감보다 노후 설비가 드리운 안전 불안에 더 가까웠다. 이곳은 1978년 준공돼 소방법상 전 세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일부 주민은 “장미아파트와 달리 주공5단지는 전 세대에 각각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복도마다 소화전이 갖춰져 있고, 관리사무소 측은 “수시 점검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전 세대에 화재경보기도 나눠줬다"고 해명했다. 겉으로 보면 장미아파트보다 안전장치가 보강된 듯 보였다. 하지만 공용부를 들여다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복도 벽면에 붙은 소화전함은 겉면부터 녹이 슬어 있었다. 문을 열자 내부에는 호스와 밸브가 있었지만 설비 주변엔 먼지와 거미줄이 엉겨 있었다. 상부 경보장치 부근에는 정리되지 않은 배선이 노출돼 있었고 용도가 분명치 않은 ON/OFF 버튼까지 달려 있었다. 본지가 확인한 설비 상태는 주민들에게 즉각적인 신뢰를 주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실제로 작동하여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방화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쪽 벽면에는 '방화문 항상 닫힘 유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다른 구간에서는 문이 열린 채 벽돌처럼 보이는 고정물에 받쳐져 있었다. 평소 통행 편의를 위해 열어둔 것일 수 있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방화문은 단순한 출입문이 아니라 연기와 유독가스 확산을 막는 핵심 차단막이 된다. 주민들의 불안도 제각각이었다. 한 입주민은 “화재경보기 설치 방법을 몰라 그대로 두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입주민은 “리모델링한 세대의 경우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송파소방서 측은 “아파트 내부 소화기, 소화전, 경보설비 등은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이 관리 주체"라고 밝혔다. 이어 “소방서에서도 점검과 지도는 하고 있지만, 수백·수천 개에 달하는 시설을 일일이 직접 점검·관리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며 “결국 관리사무소와 관계인의 자발적인 이행이 없으면 유지·관리가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비상계단 적치물이나 방화문 개방 등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점검 시 시정기한을 부여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한 내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질문은 현장 불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숫자로 봐도 현실은 무겁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서울 아파트 179만808세대 중 27.1%(48만4511세대)가 준공 30년을 넘겼다. 특히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최근 5년간 분석에 따르면, 주택화재 사망자(116명)의 압도적 다수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노후 주택에서 발생했다. 스프링클러의 유무가 곧 '생존의 경계선'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후 아파트 스프링클러는 법적으로 어떻게 돼 있을까. 현행 제도는 기존 노후 아파트 전체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현재 소방시설 설치 기준은 6층 이상 특정소방대상물의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두도록 강화돼 있지만, 기준은 원칙적으로 신축·증축·개축·재축·이전·용도변경 또는 대수선의 허가·신고 시점 이후부터 적용된다. 다시 말해 예전 기준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지금 기준을 자동으로 다시 맞출 의무가 없다. 이 구조 때문에 은마나 장미 같은 구축 단지는 법적으로 스프링클러 공백이 생긴다. 1992년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관련 조항이 의무화되기 전 착공된 아파트 상당수는 여전히 화재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다만 “설치 의무가 없다"는 것이 “아무 의무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3조에 따르면 아파트 등 특정소방대상물 관계인은 자체점검 결과 중대위반사항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수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점검 결과와 이행계획도 관할 소방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시행규칙은 그 보고 시한을 점검 종료 후 15일 이내로 정하고 있다. 즉 기존 단지라도 경보설비, 소화전, 방화문, 피난로 관리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장미아파트와 주공5단지가 보여준 풍경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 장미는 애초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구조적 공백이고, 주공5는 설비는 있으나 유지·관리의 신뢰가 충분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사례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기존 공동주택에도 법 시행 후 2년 이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기존 아파트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설치하려면 수조, 펌프, 배관, 세대 내 공사 공간 등이 모두 걸림돌이 된다. 기존 수도배관을 활용하는 간이 스프링클러 같은 대안도 거론되지만 비용과 공간 제약이 만만치 않다. 결국 국회 안에서도 '일괄 의무화'와 '현실적 보강' 사이에서 논의가 멈춰 있는 상태다. 정부도 아직 기존 노후 아파트에 대한 전면 소급 의무화 방침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지난해 부산 아파트 화재 이후 '스프링클러가 없는 아파트 전수 점검과 보강'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무조정실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스프링클러 미설치 아파트 2만5212개 단지를 대상으로 지자체, 전기·가스안전공사와 함께 긴급 화재안전점검을 진행했고, 2025년 8월 29일 기준 93.1%인 2만3460개 단지 점검을 마쳤다. 보강책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는 취약세대에 대해 3년간 약 150만 세대에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보급하고, 화재 발생 시 취약가구에 전화를 돌리는 '화재대피 안심콜' 도입, 세대 내 감지기 등 소방시설 설치에 장기수선충당금 사용 허용 등을 추진 중이다. 즉 스프링클러 소급 의무화 대신 감지·경보·대피 체계를 먼저 강화하는 방향이다. 전기적 화재 대책도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노후 공동주택 스프링클러 미설치 세대에 대해 지난해 말까지 특별 전기안전점검을 진행하고, 올해부터는 전기안전공사의 세대 내 전기설비 점검 대상을 기존 '25년 이상·1000kW 미만'에서 '스프링클러 미설치 공동주택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점검 항목 역시 누전·절연·접지뿐 아니라 콘센트·멀티탭 과부하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이런 보강책만으로 세대 내 초기 화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본지 질의에 “현재 안전 대책을 마련 중이며, 정리되는 대로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재건축을 기다리는 서울의 오래된 단지들은 그렇게 서로 다른 표정으로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다. 시장은 이들 아파트를 볼 때 입지, 사업성, 대지지분, 용적률을 먼저 따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그런 숫자가 아니다. 녹슨 소화전 문, 거미줄 낀 설비, 열린 방화문, 빽빽한 주차장, 그리고 “불 나면 괜찮겠느냐"는 주민들의 짧은 한마디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포스코이앤씨 ‘오티에르 반포’ 입주·분양 ‘급물살’…관처 변경 가결

포스코이앤씨가 서울 서초구 신반포21차를 재건축하는 '오티에르 반포'가 관리처분계획 변경을 가결하면서 이달로 예정된 일반분양과 오는 7월 입주가 순항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포스코이앤씨 등에 따르면 신반포21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 18일 총회를 열고 관리처분계획 변경안을 약 93%의 찬성률로 의결했다. 특히 이번 가결로 입주에 있어 주요 장애물로 거론되던 공사비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돼 향후 일정도 안정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우선 이번 가결을 통해 후분양을 진행하면서 조합원 부담을 낮췄다. 후분양 방식은 준공 시점의 시장 여건을 반영해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다. 단지가 위치한 반포 지역의 높은 지가 상승률에 따라 분양가를 책정하면서 수익성을 높인 것이다. 이번 후분양을 통해 일반분양 수입은 약 497억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조합원 분담금도 기존 예상 대비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오티에르 반포 조합원 평균 1인당 분담금이 6억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에서 이번 후분양을 통해 40평형 조합원이 신축 40평형을 선택할 경우 분담급이 약 1억8000만원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 또 '오티에르 반포'는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의 하이엔드 아파트 브랜드인 '오티에르'가 반포 일대에서 처음 적용되는 단지다. 아파트 내엔 3800㎡ 규모의 커뮤니티와 스카이카페, 프라이빗 시네마 등 차별화된 주거 공간이 조성된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후분양 전략을 통해 조합원 체감 이익을 높인 대표 사례"라며 “반포 지역을 중심으로 오티에르 브랜드 경쟁력을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공사비 급등 파고에 대우건설, 미국서 선별수주 전략 ‘주목’

미국 주택시장에서 대우건설이 부지 매입부터 사업 기획, 운영까지 책임지는 디벨로퍼가 되기 위한 밑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 프로스퍼 지역 복합개발사업 참여에 이어 올해는 뉴욕과 뉴저지로 사업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주택사업을 시작으로 미국내 에너지·인프라 기업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중장기적 목표 속에서 확실한 수익성을 얻을 수 있는 부촌 위주의 선별수주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미국에서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총 20건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수행하며 5400세대 주택을 개발하고 1억7000만 달러(약 2300억 원) 투자 경험을 쌓았다. 뉴욕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 프로젝트 투자가 대표적인 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대우그룹 분할이 있으면서 신규사업이 없었다가 다시금 미국 주택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다시 미국일까. 북미 중에서도 텍사스, 뉴욕, 뉴저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이 활성화된 지역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에너지 분야에도 진출하기 위한 장기포석이라고 설명한다. 유입 인구가 많은 부동산 선진시장에 뛰어들어 디벨로퍼로 성장하고 그것을 기반 삼아 입지와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설명이다. 텍사스와 같은 신흥 성장 거점과 뉴욕·뉴저지 같은 전통적인 성장 거점을 순차적으로 공략했다. 텍사스는 석유, 가스 기업들이 모여 있는 전통 에너지 산업의 중심이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인구와 경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주이지만 꾸준히 새로운 인구가 유입돼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서 발전이 두드러진다. 2020년 이후 텍사스 인구는 5년 만에 약 200만 명 증가했다. 이는 미국 모든 주 중 가장 큰 수치로 현재 인구는 약 3200만 명이다. 테슬라, 쉐브론, 오라클 등 주요 대기업들이 본사를 텍사스로 옮기면서 2024년 기준 연간 28만 건의 일자리가 신규 창출됐다. 대규모 산업 투자, 인재 공급 등 구조적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텍사스는 반도체·에너지·우주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텍사스가 신흥 성장 거점이라면 뉴욕·뉴저지는 전통적인 성장 거점이다.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금융 심장부로서 미국 경제를 주도해왔다. 뉴욕 부동산 시장은 코로나19로 일시적 침체를 겪었으나 작년 8월 기준 뉴욕 평균 주택 가격은 약 81만8000달러(약 11억3600만 원)이다. 맨해튼과 브루클린 주요 지역은 가격이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고가 주택 중심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 대우건설이 접촉한 미국 주요 디벨로퍼인 쿠슈너 컴퍼니(Kushner Companies), 톨 브러더스 시티 리빙(Toll Brothers City Living), 이제이엠이(EJME)는 고가 주택을 주로 건설하는 디벨로퍼들이다. 쿠슈너 컴퍼니는 2010년대에 투자이민 비자를 광범위하게 활용하여 고급 미국 주거 부흥을 촉진했다. 톨 브라더스는 2020년 기준 주택 건설 수익 기준으로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주택 건설사다. 이제이엠이는 월드 파이낸셜센터를 건립한 세계적인 개발 실적을 보유한 디벨로퍼다. 대우건설은 부촌 위주의 선별수주를 염두에 두고 이들과 공동 투자와 개발 협력을 논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이란 전쟁 여파로 인한 고유가·고금리 압박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공사비 상승과 부동산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국내 주택시장에서 건설사들은 리스크가 적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서울 핵심 지역 재개발·재건축에만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 주택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해 대우건설이 시행사로 참여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 프로스퍼 지역 복합개발사업은 신흥 부촌 수요를 겨냥한 행보다. 프로스퍼시는 미국 내에서도 성장 가능성을 인정 받아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제리 존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구단주 등 억만장자들이 토지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프로스퍼는 중위가구 연평균 소득수준은 약 19만 달러(약 2억8000만 원), 평균 주택가격은 85만 달러(12억7300만 원)다. 전문가는 해외 진출 전략의 종착점은 '현지화(Localization)'라고 설명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도시 중심으로 시장 진출을 조금씩 타진하고 장기적으로 해외에 안정적인 사업모델을 안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이 한국계 기업들과 만나 복합개발 사업과 공동 투자기회를 협의한 것은 현지화 추진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8일 에이치마트(H-Mart), 인코코(Incoco) 등과 만나 그들이 보유한 핵심 상권과 개발부지에 주거와 상업시설을 결합한 복합개발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에이치마트의 경우는 마트 사업의 특성상 부지에 대한 이해가 높기때문에 현지화에 적합한 파트너라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업의 성패는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개발사업은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어도 분양이나 임대가 안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디벨로퍼가 리스크가 크다고 말하는 이유다. 자금조달·사업계획·분양·운영 전 과정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있음에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이은형 위원은 “해외 건설의 경우 중동이나 아시아에서 플랜트 사업을 하는 것이 주류이고 고부가가치 산업이나 선진 건설사업은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아직은 약세"라면서 “사업다각화를 통해 사업성을 개선 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원전株 거듭난 현대건설…설계 주도권 ‘숙제’

현대건설이 북미와 북유럽을 중심으로 원전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형 원전뿐 아니라 소형모듈원전(SMR), 용융염원자로(MSR) 등 차세대 원자로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글로벌 원전 EPC(설계·조달·시공) 시장 공략에 나선 모습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협력 구조 속에서 설계 주도권과 수익 배분 구조를 둘러싼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최근 핀란드와 스웨덴을 중심으로 원전 협력 논의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해 대형 원전(AP1000) 프로젝트 참여를 추진하는 한편, 스웨덴에서는 홀텍(Holtec)과 SMR 사업 협력을 검토 중이다. 네덜란드에서는 MSR 기술 기업과 협력하며 차세대 원전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언급된 '원전 40조원' 규모는 확정된 수주잔고가 아니라 향후 수주 가능성을 반영한 '수주 예정 프로젝트 및 파이프라인' 규모로 해석된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 이후 현대건설의 원전 관련 수주 파이프라인을 약 40조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는 SMR, 유럽 원전 프로젝트, 북미 사업 등을 포함한 중장기 전망치다. 실제 전자공시 기준으로 확인되는 주요 원전 관련 계약은 신한울 3·4호기와 UAE 원전 등으로, 전체 수주잔고(약 90조원 대) 대비 원전 비중은 제한적인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파이프라인과 확정 수주를 혼용할 경우 사업 규모에 대한 시장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유럽의 정책 환경도 원전 확대에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스웨덴은 탈원전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신규 원전 건설 규제 완화와 재정 지원 방안을 추진 중이고, 2035년까지 2기, 2045년까지 10기 이상 건설을 목표로 설정했다. 핀란드 역시 원자력법 개정을 통해 SMR 전용 인허가 체계를 도입하는 등 원전 확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에너지 안보 전략이 주요 배경이다. 다만 이러한 정책 변화가 단기간 내 실질 수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제시한 수주 파이프라인의 경우 향후 본계약 체결 및 착공 시점에 따라 실제 매출 인식까지 시차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일부 프로젝트는 협력 또는 초기 검토 단계일 가능성도 있어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 측 역시 사업별 금액이나 해외 원전 비중에 대해서는 “대외비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해외 원전 사업에서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 영역까지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회사 측은 “설계 기술은 자체적으로 확보한 상태이며 현재 기본설계(FEED)를 수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사업에서도 기본설계를 담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독자 원전 모델 개발 계획은 없다고 밝혀, 글로벌 기술 기업과의 협력 기반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두고 원전 설계 영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원전 설계는 원자로 핵심 계통(NSSS)과 건설 및 계통 설계(BOP·FEED)로 구분되는데, 현재 해외 프로젝트에서는 원자로 설계와 핵심 기술은 주로 글로벌 기술 기업이 담당하고, 국내 건설사는 계통 설계와 시공을 수행하는 역할 분담 구조가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김규태 동국대 교수는 “건설·플랜트 엔지니어링 영역에서는 독자 수행이 가능하지만, 원전의 핵심은 원자로 설계"라며 “노심 설계는 고도의 전문 영역으로 별도의 기술 축적이 필요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전 사업은 기술과 동시에 지적재산권이 결합된 산업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구조와 관련해 김 교수는 보다 직설적인 분석도 내놨다. 그는 “원전은 기술 산업이면서 동시에 특허 산업"이라며 “스마트폰 산업처럼 설비를 완공한 이후에도 기술 사용 대가 문제가 제기될 경우 수익성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현재 한국 원전 산업은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지적재산권 구조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태"라며 “이로 인해 해외 기술 기업과 협력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건설의 기술 역량에 대해서는 “격납건물 등 건설 영역(BOP)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원자로 설계는 여전히 글로벌 기술 기업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며 “원천 기술 보유 기업이 로열티를 요구할 경우 사업 수익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수력원자력 간 지식재산권 분쟁은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APR1400)이 자사 기술 기반이라고 주장하며 제3국 수출 시 자사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기했고, 체코 원전 사업 등을 둘러싸고 법적 대응에 나선 바 있다. 한국 측은 독자 기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분쟁 자체가 수출 협상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원자력 전문가는 “북미와 유럽은 규제와 감리 기준이 매우 엄격하고 발주처 요구 수준도 높다"며 “공급망, 인증, 인력 등 다양한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술력뿐 아니라 제도 대응 능력과 파트너십 구조가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협력 구조가 단기적으로는 해외 시장 진입과 수주 확대에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천 기술 보유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독자적인 시장 확장성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대건설의 해외 원전 사업 확대 전략에 대해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기술 협력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북미나 유럽에서 추진되는 대형 원전은 사실상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계열 기술이 중심"이라며 “이 구조 안에서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국내 원전 산업의 전략적 방향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이미 APR1400이라는 완성된 원전 모델과 '팀코리아'라는 통합 수출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이 체계를 통해 설계부터 시공, 운영까지 전체 밸류체인을 확보하는 것이 국익 측면에서는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SMR 시장에서는 기존 '팀코리아' 중심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형 원전 수출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설계·시공·금융이 결합된 패키지 방식으로 추진돼 왔지만, SMR 분야에서는 건설사들이 각기 다른 해외 기업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홀텍, 삼성물산은 뉴스케일, DL이앤씨는 엑스에너지와 협력하는 등 개별 협력 모델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30년 경력의 한 원자력 기술사는 “원전 산업은 설계·기자재·운영·연료까지 결합된 통합 산업"이라며 “해외 기술 기업과의 협력 구조가 확대되는 만큼, 국내 산업 생태계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 전략 없이 개별 기업 중심으로 시장에 접근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개별 기업이 해외 기술 기업과 협력해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방식이 확대되면, 기존에 축적해 온 산업 생태계가 분산될 수 있다"며 “결국 설계는 해외 기업이 맡고 국내 기업은 시공 중심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이 원전 '하도급형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 문제는 단순히 기업 차원의 전략이 아니라 국가 산업 전략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팀코리아 체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글로벌 원전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은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공 및 FEED 설계 역량을 세계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독보적인 공기 준수 능력과 시공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원전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단독] “고발로 멈춘 4구역, 5구역은 굴착”…세운지구 개발 기준 ‘충돌’

서울 종묘 인근 세운지구 재개발 현장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정반대 공정'이 확인됐다. 세운4구역은 고발 이후 중장비가 철수되고 사업 인가 절차도 중단 요구가 내려진 반면, 세운 5-1·3구역은 발굴과 토공 작업이 병행되며 공정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세운지구 안에서 한쪽은 '위법', 다른 한쪽은 '정상 진행'이라는 상반된 상황이 공존하는 것이다. 19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세운4구역은 국가유산청의 고발 이후 사실상 공정이 중단된 상태다. 현장은 넓게 비어 있는 부지에는 중장비나 차량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고, 잡초가 듬성듬성 올라온 황량한 공터만이 펼쳐져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굴착기나 트럭, 작업 인력의 움직임은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국가유산청이 지난 16일 발굴조사가 행정적으로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추가 이뤄졌다며 매장유산법 위반 혐의로 SH를 고발한 이후, 장비가 철수되며 공정이 사실상 중단된 모습이 현장에서 확인됐다. 반면 바로 인접한 세운 5-1·3구역에서는 굴착기 가동과 잔토 정리, 지반 정비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현장에서는 발굴조사 안내문이 설치된 상태에서 토공 작업이 병행되고 있었고, 일부 구간은 부지 평탄화와 흙막이 준비까지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였다. 다만 타워크레인이나 골조 공사는 확인되지 않아 본공사 직전 단계로 평가된다. 중구청은 “현재 착공 신고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본공사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문화재 발굴 과정 이후 이뤄지는 작업으로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은 단순한 공정 차이가 아니라 규제 적용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세운4구역은 종묘 인접 지역으로 문화재 보호 기준이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적용되는 구역인 반면, 세운 5-1·3구역은 발굴 결과와 입지 조건에 따라 개발이 가능한 상태로 전환된 구역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세운 5-3구역은 이미 발굴조사가 행정적으로 완료된 구역이다. 해당 구역은 지난해 9월 발굴 허가와 12월 변경 허가를 거쳐 조사가 진행됐고, 올해 2월 완료 신고 이후 학술 자문을 거쳐 지난 4일 최종 완료 조치가 내려졌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출토된 유구는 기록으로 보존하고, 유물은 국가 귀속 절차를 거친 뒤 사업 시행이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이 일대는 전반적으로 유적이 나오는 지역이지만, 세운 5-3구역의 경우 세운4구역과 유사한 유구가 확인됐음에도 보존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기록 보존 후 발굴 완료 조치가 내려졌다"며 “출토된 유구는 기록으로 남기고 유물은 국가 귀속 절차를 거치며, 기본적으로 조사가 완료된 만큼 사업 시행에는 무리가 없는 구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운지구는 하나로 이어진 지역이지만 발굴 허가와 행정 절차는 구역별로 구분돼 있다"며 “임의로 나눈 것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관리되는 구역 단위"라고 설명했다. 결국 하나의 재정비촉진지구 안에서도 발굴 결과와 행정 절차 진행 수준에 따라 규제 강도와 적용 방식이 달라지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논란의 핵심은 '공사를 했느냐'가 아니라 발굴이 끝났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있다. 국가유산청은 세운4구역을 행정적으로 완료되지 않은 '발굴조사 중 유존지역'으로 보고, 보존조치 심의와 완료 신고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11개 지점, 최대 약 38m 깊이의 시추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매장유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고발했다. 또한 복토 이후 행위 역시 별도 허가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세운4구역은 현장 조사와 별개로 보존조치 대상 유구에 대한 심의와 완료 신고 절차가 남아 있어 법적으로는 아직 발굴조사가 종료되지 않은 상태라는 게 국가유산청의 판단이다. 특히 이문(里門)과 배수로 등 일부 유구에 대해 보존조치가 요구됐지만, 이에 대한 이행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발굴조사는 현장 작업이 끝났다고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완료 신고와 행정기관의 확인을 거쳐야 종료된다"고 강조했다. 복토 승인 범위를 둘러싼 해석도 쟁점이다. 국가유산청은 복토 승인은 안전 조치를 위한 것이며, 이후 시추 등 추가적인 현상 변경 행위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세운4구역에서 이뤄진 시추를 별도 허가 없는 현상 변경 행위로 보고 있다. 반면 SH는 사실관계 자체를 다르게 보고 있다. SH에 따르면 세운4구역은 2022년 5월 발굴 허가를 받아 2024년 7월까지 현장 조사를 완료했고, 같은 해 8월 복토 승인 후 11월 복토까지 마친 상태다. 발굴 과정에서 확인된 이문, 건물지, 석축 배수로 등 유구는 모두 이전 보존 조치돼 현재 공주·가평·양주 소재 시설에 보관 중이라는 설명이다. SH 관계자 이를 근거로 “현장에는 더 이상 매장유산이 남아 있지 않다"며 국가유산청의 '유존지역' 판단에 반박하고 있다. 또한 문제 된 11개 지점 시추에 대해서도 “건축 설계를 위한 지반조사로, 공사가 아닌 설계 단계 행위"라고 규정했다. SH는 이번 시추가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를 위한 구조설계 자료 확보 목적이며, 직경 약 80mm 규모의 소규모 시추 11공을 최대 약 38m 깊이로 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시추는 현지 보존 유구와 약 33m 이상 이격된 위치에서 진행됐고, 지하수법에 따른 신고 절차도 완료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SH 관계자는 “이미 정밀 발굴조사 완료와 복토 승인 이후 진행된 조사 행위인 만큼 매장유산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이번 작업은 본공사가 아닌 설계 단계 조사이며, 본공사는 매장문화재 심의와 행정적 완료 조치 이후 착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양측은 같은 행위를 두고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행정 절차 완료 여부를 기준으로 발굴 종료를 판단하는 반면, SH는 현장 조사 완료와 유구 이전 여부를 기준으로 보고 있다. 시추 행위를 두고도 국가유산청은 '현상 변경', SH는 '설계 조사'로 해석하면서 법적 판단 기준 자체가 엇갈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의 SH 고발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3자 논의 제안에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협의 참여 의사를 밝혔다. 세계유산 보존과 도심 정비사업의 균형 있는 해법 마련을 기대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세운4구역의 조속한 정상화와 사업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며 관계기관과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시계획 전문가와 정비업계 관계자는 “동일 사업권 내에서 규제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으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불명확해지고, 행정기관 간 해석 차이가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정책 신뢰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세운지구처럼 대규모 도심 재개발 사업에서는 문화유산 보존과 개발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만큼, 기준의 일관성과 적용의 명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유사한 분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행정 절차와 현장 판단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통합적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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