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봤던 아들에게 일자리가 생겼다…가족이 다시 살아났다 [장애인, 일자리로 세상을 만나다③]](http://www.ekn.kr/mnt/thum/202608/news-p.v1.20260805.dd3fe1b0986541b5ac94baaa80c30478_T1.jpg)
장애인에게 절실한, 최상의 복지는 결국 일자리다. 일은 생계를 넘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사회와 연결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이 일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찾았다. 지속 가능한 장애인 고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①출근, 세상에 내딛는 첫 발걸음 ②직장, 인생에서 얻은 유일한 배울 기회 ③가족, 직장인 아들…돌봄받다 돌봄으로 ④회사, 장애인과 일하는 이유…지속해야 할 이유 ⑤일터, 끊어진 일감 앞에 연이어 휴업 ⑥제도, 장애인 일자리 지탱할 우선구매 제도 '유명무실' ⑦외국, 우선구매 제도 철저…'살 품목'부터 정해 ⑧지금, 방치된 우선구매제도 개정안…숫자놀음 벗어난 개혁 필요 “성진이가 오기 전에 얼른 들어와 밥이라도 해놔야죠." 양회순씨는 아들 조성진(43)씨의 퇴근 시간부터 살핀다. 볼일이 남아 있어도 성진씨가 돌아오기 전 집으로 향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돌아오는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기 위해서다. 양씨가 아들의 퇴근을 기다리게 된 것은 성진씨가 일을 시작한 뒤부터다. 일자리가 없던 시절,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퉜다. 일자리가 생긴 지금은 다툴 일이 없다. 성진씨와 양씨는 함께 밖을 나설 때면 자연스럽게 손부터 맞잡는다. 조성진씨는 중증 장애 3급(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장애로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직접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다. 그 중 하나가 장애인 취업 박람회 방문이었다. 취업 박람회에서 일자리를 알게 됐고 2017년 11월 일을 시작했다. 성진씨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정에서 맡는 역할이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허리를 다친 어머니까지 일을 그만두면서 성진씨 월급이 가족 생계를 떠받치는 기반이 됐다. 성진씨는 월급을 받는대로 어머니에게 건넸다. 먹고사는 데 보태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현재 사는 전셋집 보증금 1억원 가운데 6000만원은 대출금이다. 성진씨는 10년 가까이 회사를 다녔지만 원금을 좀처럼 줄이지 못했다. 성진씨는 “10년을 다녔어도 제자리걸음"이라며 “그냥 밥만 먹고 살수 있는 수준이고, 빚은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성진씨와 어머니는 훨씬 더 불안하다. 일감 부족으로 공장이 휴업에 들어가면서 오는 8월 31일까지 무급으로 쉬고 있다. 당장 생활비도 문제지만, 직장을 잃으면 재직증명서를 요구하는 전세대출 연장도 장담하기 어렵다. 성진씨는 “여기가 마지막 회사라고 항상 생각한다“며 "이 회사를 관두면 갈 데가 없다. 일을 못하면 뭘로 먹고 사느냐"고 심경을 토로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어머니 양씨도 아들의 일터에 나와 일손을 보태려 한 적이 있었다. 양씨가 맡은 일은 아들을 도와 완성된 옷의 실밥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평소 자신도 실밥을 꼼꼼하게 따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진씨는 어머니가 손질한 옷을 보고는 곧바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 실장에게 알렸다. 양씨는 “실도 없는데 귀신같이 찾아내더라"며 “없는데 뭘 그러느냐고 했더니 '여기 있잖아, 있잖아'라면서 나보고 퇴근하라고 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양씨의 공장 일은 이틀 만에 끝났다. 이야기를 듣던 동료들은 “아들에게 해고당했네"라며 장난스레 말을 보탰다. 일을 하고 나서야 성진씨도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출퇴근을 시작한 뒤에야 오랜 세월 생계와 집안일을 함께 감당해온 어머니의 고단함을 알게 됐다. 하루 대부분을 출퇴근과 일터에서 보내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설거지와 빨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부터 챙겼다. 쉬는 날이나 잠시 틈이 생기면 과일을 사 오고, 몸이 아픈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렀다. 성진씨는 “이거라도 도와주면 엄마가 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라며 “설거지를 해주고, 빨래 돌려주고 그런 엄마 도와주는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생긴 뒤 아들의 하루는 더 바빠졌지만, 그 바쁜 하루 끝에는 늘 어머니를 위한 시간을 남기게 됐다. 이동민(36)씨의 어머니 유만순씨는 아들의 장애를 이야기할 때마다 자신을 먼저 탓했다. 임신 당시 먹었던 멀미약 때문은 아니었는지,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수없이 되짚었다. 동민씨는 선천적으로 중증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가족이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였다. 아들에게 사고가 생길 때마다 유씨의 자책은 깊어졌다. 어린 동민씨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제때 멈추지 못해 크게 다친 뒤부터였다. 그날 이후 걱정은 유씨의 일상이 됐다. 아들이 또 다칠까 봐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 하면 먼저 막았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하면 위험한지를 먼저 생각했다. 동민씨는 고용공단을 통해 여러 차례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그러나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침묵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아들의 침묵마저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유씨는 “엄마가 사고 날까, 다칠까 봐 아무것도 안 시켜서 그런가 싶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아들의 가능성을 막은 사람도 결국 자신이 아니었는지 “오래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돌아봤다. 걱정과 자책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것은 동민씨가 취업한 뒤였다. 그전까지 동민씨는 집을 나서거나 들어올 때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문을 나섰다. 유씨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퇴근 뒤에도 변화는 이어졌다. 동민씨는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뒤를 자주 서성였다. 유씨는 아들이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 대표님이 제 어깨를 주물러주셨어요." “오늘 회사에서 박스를 접었어요." 동민씨가 먼저 자신의 하루를 어머니에게 들려준 것은 처음이었다. 2020년 10월 한국장애인중심기업협회 피복사업본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동민씨의 말수는 조금씩 늘었다. 동민씨는 처음 입사했을 당시 회사에서도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동민씨의 변화에는 일터에서의 꾸준한 훈련도 한몫했다. 신경자 한국장애인중심기업협회 피복사업본부 완성팀장은 “일부러 말을 하도록 심부름을 시켰다"며 “다른 팀장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면서 반드시 '두 장'이라고 말하고 오도록 연습시켰다"고 했다. 신 팀장은 단순히 물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 경험을 쌓게 도왔다. 유씨는 동민씨의 변화를 동생들이 무엇보다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씨는 “동생들이 '엄마,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며 “무슨 일이 있으면 형 편부터 든다"고 말했다. 유씨는 “(동민이가)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가족 모두를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처럼 유씨에게는 비로소 마음 놓을 수 있는 날들이 생겼다. 유씨는 그 변화를 한마디로 말했다. “이제 가족도 편안해요." 성진씨네에도, 동민씨네에도 이제 아들은 집안의 든든한 울타리가 됐다. 걱정으로 채워졌던 두 집의 하루에는 기다림과 대화가 생겼다. 이들에게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었다. 가족 전체의 삶과 일상을 바꾸는 거대한 전환점이 됐다. 정원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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