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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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목소리를 내는 유럽 기업, 침묵하는 한국 기업

목소리를 내는 유럽 기업, 침묵하는 한국 기업

지난달 아우디, BMW, ZF,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독일 연립정부에 구조 개혁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바이에른 금속·전기 산업 노조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노조가 동참했다는 점이다. 노사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메르츠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인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을 발표했고 독일기업들은 2028년까지 6,310억 유로를 투자하는 'made for germany'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1년이 지..

[EE칼럼]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 차등 제도 시행에 대한 기대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 차등 제도 시행에 대한 기대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정부가 지난 8월 26일에 전력 공급 시설이 집중된 영호남 등 남부 지역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0% 정도 낮추는 지역별 차등요금제 설계안을 발표하였다.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으로 지역별 요금제에 대한 시동을 건지 2년 2개월 만에 구체적인 지역별 요금 체계가 제시된 것이다. 지역별 구분은 전력 계통을 고려하여 수도권 남부(서울 남부 및 경기 남부)와 수도권 북부(서울 북부, 경기 북부 및 인천), 중부권(강원 및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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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소상공인 AI, ‘몇 명이 쓴다’보다 ‘어떻게 쓰는가’다

소상공인 AI, ‘몇 명이 쓴다’보다 ‘어떻게 쓰는가’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500곳에 물었다. “지금 디지털·AI 기술을 쓰고 있습니까." 열에 여덟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무엇을 쓰고 있는지 뜯어보면 사정이 다르다. 응답자의 83.3%는 키오스크나 SNS 홍보처럼 이미 익숙해진 도구를 쓰는 입문·기초 단계에 머물렀다. AI가 재고를 알아서 채워 주는 자동발주는 3.3%, AI가 가격을 최적화해 주는 경우는 2.2%에 그쳤다. 활용률 80%는 숫자이고, 실제 역량은 그 숫자가 가린 그림자에 가깝다. 이 착시는 낯설지 않다. 중기중앙회가 별도로 실시한 키오스크 실태조사에..

[이슈&인사이트]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트럼프를 보다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트럼프를 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였다. 놀란 감독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랬다. 트로이 성벽이 무너지고 불길이 도시를 삼키는 장면에서 나는 3천 년 전의 그리스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떠올렸다. 특히 아가멤논에게서 현대의 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았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익히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함께 떠나자, 형 아가멤논은 동생의 치욕과 그리스의 명예를 내세워 여러 도시국가를 전쟁에 끌어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10년을 끌었..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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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소상공인 AI, ‘몇 명이 쓴다’보다 ‘어떻게 쓰는가’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500곳에 물었다. “지금 디지털·AI 기술을 쓰고 있습니까." 열에 여덟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무엇을 쓰고 있는지 뜯어보면 사정이 다르다. 응답자의 83.3%는 키오스크나 SNS 홍보처럼 이미 익숙해진 도구를 쓰는 입문·기초 단계에 머물렀다. AI가 재고를 알아서 채워 주는 자동발주는 3.3%, AI가 가격을 최적화해 주는 경우는 2.2%에 그쳤다. 활용률 80%는 숫자이고, 실제 역량은 그 숫자가 가린 그림자에 가깝다. 이 착시는 낯설지 않다. 중기중앙회가 별도로 실시한 키오스크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드러났다. 키오스크를 도입한 소상공인의 90% 이상이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지만, 정작 정부 지원을 활용한 경우는 소수였다. 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도구는 보급됐지만, 그 도구까지 닿는 길은 여전히 좁았던 셈이다. 도입과 활용은 처음부터 다른 과제였다. 올여름 정부는 이 문제를 풀겠다며 다시 움직이고 있다. 금융거래 이력이 없어도 매출·업종·상권 정보로 성장성을 평가해 주는 AI 신용평가체계(SCB)가 8월 말부터 16개 은행에서 순차 시범 도입됐고, 정책과 경영, 상권 정보를 대화로 안내하는 AI 도우미 서비스가 9월 문을 연다. 방향은 맞다. 다만 이번에도 '몇 명이 접속했는가'로 성과를 잰다면, 3년 뒤 우리는 또 다른 활용률 80%짜리 착시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더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같은 조사에서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사업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곳은 3.2%뿐이었다.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76.2%는 그런 사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반면 참여해 본 이들의 87.5%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써 본 사람은 만족하는데, 대부분은 써 볼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다. 도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 도구까지 닿는 길이 좁아서 생기는 격차다. 정작 소상공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물으면 대답은 다르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운영비 지원(59.0%)이었고, 맞춤형 교육을 꼽은 비율은 16.6%에 그쳤다. 당장의 현금이 급한 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응답을 그대로 정책에 옮기면, 우리는 다시 돈을 쥐어 주고 활용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는 익숙한 길로 돌아가게 된다. 소상공인이 원하는 것과 진짜 필요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정책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업종별로 들여다보면 격차는 더 뚜렷하다. 교육·여가업의 활용률은 98%에 달했지만 소매업은 46%로 최하위였다. 활용 분야도 회계·문서 작성 같은 경영지원(54.5%)에 몰려 있고, 정작 매출과 직결되는 판매·유통(22.3%)이나 마케팅·홍보(21.3%)는 뒤로 밀려 있었다. 소상공인이 AI를 안 쓰는 게 아니라, 매출에 힘이 되는 곳까지는 아직 손이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근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본다. 결과물을 AI에게 그대로 받아 쓴 학습자는 과제는 빨리 끝내지만 정작 그 내용을 설명하지 못한다. 반대로 AI의 답을 검토하고 고쳐 보고 반박해 본 학습자는 시간이 더 걸려도 실력으로 남는다. 도구를 얼마나 자주 켰는가가 아니라, 그 결과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는가가 진짜 실력을 가른다. 소상공인의 AI 활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성과 지표를 활용률에서 활용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몇 명이 로그인했는지가 아니라, 몇 명이 재고관리나 가격 결정처럼 실제 경영 판단에 AI를 쓰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둘째, 지원사업의 존재를 알리는 일 자체를 별도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열 중 여덟이 모르는 사업은 없는 사업과 같다. 셋째, 맞춤형 교육을 예산의 뒷전이 아니라 설계의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 사장님이 원하는 것이 당장의 현금이라 해도, 정책이 함께 챙겨야 할 것은 그 현금을 내년에도 벌어들일 수 있는 역량이다. AI 신용평가와 AI 도우미가 문을 여는 지금이 이 질문을 던지기 좋은 시점이다. 80%라는 숫자에 안심하기 전에, 그 뒤에 숨은 83%의 '입문 단계'를 먼저 봐야 한다. 도구를 나눠 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지금 정책이 답해야 할 진짜 질문이다. bienns@ekn.kr

[EE칼럼] 목소리를 내는 유럽 기업, 침묵하는 한국 기업

지난달 아우디, BMW, ZF,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독일 연립정부에 구조 개혁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바이에른 금속·전기 산업 노조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노조가 동참했다는 점이다. 노사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메르츠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인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을 발표했고 독일기업들은 2028년까지 6,310억 유로를 투자하는 'made for germany'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은 메르츠 정부에 구조개혁의 빠른 실행이 아니면 독일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할까. 2021년 9월 북해의 풍력이 멈추면서 시작된 유럽발 에너지 위기는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부족으로 모든 것의 비용을 빠르게 올리면서 기업을 압박했다. 그해 12월 철강, 비료, 시멘트 등 11개 유럽 에너지 집약기업 협회는 5배나 급등한 에너지 비용과 3배 이상 오른 탄소 가격으로 경쟁력과 수익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공장 폐쇄와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속한 대처를 요구했다. 그러나 유럽 정치권은 뚜렷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줄이지 못한 채 2022년 러우 전쟁으로 인한 최악의 에너지 위기로 이어졌다. MWh당 평균 20~40유로 수준이던 도매전력가격은 최대 500배가 넘는 1만 1천 유로를 돌파했고 독일 경제성장률은 0%를 기록했다. 2024년 유럽기업들은 '앤트워프 선언'을 통해 높은 에너지 비용 해결과 탈산업화를 통한 탈탄소화는 유럽에 솔루션이 될 수 없다며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치권은 자신들이 만든 기후의제를 포기하지 못하며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자 유권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와 극우 정당에 표를 몰아주며 기존 정당을 심판했다. 2026년 이란 전쟁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6,350억 유로 매출과 120만 명을 고용하던 유럽 석유화학 기업은 2022년 이후 9%의 생산시설이 폐쇄되었고 2만 명의 직접고용이 사라졌으며, 바스프는 에너지비용이 저렴한 중국 잔장 등으로 비즈니스 거점을 옮겼다. 1,300만 명을 고용하는 유럽 자동차산업 생산은 20%나 감소했고 초기 3천 명이던 폭스바겐 예상 구조조정 인력은 최대 15만 명으로 늘어났다. 니더작센 주지사는 일자리 보존을 위해 중국 자동차 조립이 필요하다 주장했으며, 스텔란티스 렌 공장은 중국 둥펑 자동차를 조립할 예정이다. 2008년 이후 1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독일 철강산업도 높은 에너지비용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발루렉 뒤셀도르프 공장은 브라질로 이전했다. 유럽의 기간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며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뒤늦게 반응했다. 2035년 전기차 100% 목표를 포기했으며, 기업공급망 실사지침과 가장 강력한 기후의제 수단인 배출권 거래제(ETS)를 약화시켰다. 폴리티코는 그린딜에서 벗어나 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이후 유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했다. 반면 한국기업은 조용하다. 유럽기업처럼 앤트워프 선언같은 산업경쟁력 향상을 위한 성명 발표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기후의제와 글로벌 에너지위기에 아무 데미지가 없는가. 이미 중국의 2배, 미국의 1.5배나 높은 전기요금을 내고 있고 철강산업은 높은 전기요금으로 공장 가동중단과 폐쇄가 이어지고 있으며, 석유화학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전환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서 기업은 침묵과 조용한 탈출이 더 나은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은 제조업 인프라가 에너지 부족과 위기 탈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현 정부도 에너지정책에 실용주의를 견지하는 분위기다. 한 번 떠나간 공장과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럽은 이미 늦었지만, 한국은 아니다.

[기자의 눈] 집단대출 완화가 남긴 혼란

최근 금융당국의 집단대출 완화는 시장에 질문을 남겼다. 수분양자의 입주 차질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실수요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히려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잔금대출 규제가 완화된 계기는 지난 7월 23일 열린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였다. 수원 '매교역 팰루시드'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잔금대출 규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은행권에 대책 마련을 주문하며 잔금대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예외적인 구제 정책은 형평성 논란을 키웠다. 같은 시기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다른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청약에 당첨돼 잔금을 치르는 사람들은 한숨 돌린 것과 달리 기존 주택을 거래하려는 차주들은 여전히 높은 대출 문턱을 마주해야 했다. 둘 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이 필요하지만, 주택 마련 방식에 따라 다른 한 쪽은 예외를 인정받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으면서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존 주택을 매수하려는 차주 부담은 늘어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서울 구축 아파트 평균 거래가격은 10억5167만원이다. 단순히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를 적용할 경우 대출 가능액은 약 4억2000만원 수준이다. 6억원 이상의 현금이 있어야 서울에서 구축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할 경우 대출 한도는 더 감소할 수 있다. 반면 선호도가 높고 가격 상승 기대가 큰 신축 단지는 잔금대출 공급이 확대되며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들은 자금 부담은 한층 완화됐다. 정책은 현실에 맞춰 조정될 수 있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가계대출 관리를 강조하며 규제를 강하게 조이다가 특정 상황에서 예외를 두면 시장은 정책 방향을 신뢰하기보다 다음 완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은행들도 혼란스럽다. 총량 규제에 맞춰 가계대출을 조였다가 집단대출에 예외가 생겼고 총량 목표치도 2배로 늘어나며 대출 기준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마저도 당국의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은행권에서도 난처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은행이 대출 방향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소비자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지금 정책은 정부가 실수요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또 일관되지 않은 정부 정책에 시장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내 집 마련은 하루아침에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자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는 인생의 큰 선택 중 하나다. 내 집 마련 계획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이슈&인사이트]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트럼프를 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였다. 놀란 감독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랬다. 트로이 성벽이 무너지고 불길이 도시를 삼키는 장면에서 나는 3천 년 전의 그리스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떠올렸다. 특히 아가멤논에게서 현대의 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았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익히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함께 떠나자, 형 아가멤논은 동생의 치욕과 그리스의 명예를 내세워 여러 도시국가를 전쟁에 끌어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10년을 끌었고, 마침내 트로이는 불탔다. 한 여인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의 끝은 한 문명의 파괴였다. 전쟁에는 늘 명분이 있다. 국가의 명예, 안보, 정의, 평화…. 그러나 그 명분이 언제나 전쟁의 진짜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힘을 가진 자의 욕망은 종종 그럴듯한 명분 뒤에 몸을 숨긴다.영화를 보면서 트럼프가 떠오른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스스로를 '평화의 대통령'이라 부르지만 세계는 좀처럼 평화로워지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죽음이 이어지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북한군까지 끌어들이며 장기화됐다. 이란과의 전쟁 역시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고, 이제는 동맹국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마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위해 가져야 할 땅처럼 말한다. 전쟁을 끝내겠다던 대통령 아래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고, 세계의 불안은 오히려 다른 곳으로 번져간다. 물론 3천 년 전 아가멤논과 오늘의 트럼프를 그대로 겹쳐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의 욕망을 공동체의 명분으로 바꾸는 방식이다.아가멤논에게는 '그리스의 명예'가 있었다. 그는 그 명분 아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왕과 전사들을 한 줄로 세웠다. 오늘의 명분은 '미국의 이익'과 '안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는 관세를 부과하고, 제재를 가하며, 필요하면 군사력까지 동원한다. 적대국만이 아니다. 오랜 동맹국에도 더 많은 비용과 복종을 요구한다. 다른 나라의 영토와 자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까지 거대한 거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현대판 아가멤논의 능구렁이 같은 탐욕을 본다. 그러나 의 진짜 이야기는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 시작된다. 그리스는 전쟁에서 이겼다. 난공불락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트로이를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오랫 동안 바다를 떠돈다. 동료들은 하나둘 죽고, 자신도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대가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는 승전가라기보다 승리의 대가를 묻는 이야기로 읽힌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인간도 승리한 것인가. 트로이를 없애버린 뒤 그리스는 더 행복해졌는가. 가자를 폐허로 만들면 이스라엘은 더 안전해지는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계속 전장으로 보내면 유럽에는 평화가 찾아오는가. 이란을 폭격하고 베네수엘라를 힘으로 굴복시키면 미국은 더 위대한 나라가 되는가.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쩌면 여기에서 갈린다. 문명은 얼마나 강한 군대를 가졌는가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영토와 자원을 차지할 수 있는가에도 있지 않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지 않으며, 힘이 있어도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문명이란 힘을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아가멤논에게는 트로이를 파괴할 힘이 있었다. 그는 그 힘을 사용했고 한 문명은 사라졌다. 하지만 승리한 그리스인들에게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아가멤논은 고향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20년을 떠돌았다. 호메로스는 어쩌면 그 긴 세월을 통해 전쟁의 오래된 진실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파괴하는 것보다 돌아가는 일이 더 어렵다고. 놀란이 오늘의 트럼프를 염두에 두었을 리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좋은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넘어 관객이 사는 시대와 만난다. 나는 스크린에서 3천 년 전 아가멤논을 보고 있었는데, 자꾸 트럼프가 어른거렸다.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늘 도발하고, 질서를 말하면서 세계를 불안하게 하며, 동맹을 말하면서 동맹국을 줄 세우는 권력자.영화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3천 년 전 사람들은 트로이를 불태우고 그것을 승리라고 불렀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신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 세계에서 얼마나 멀리 온 것일까. 성일권

[윤석헌 시평] 레버리지 ETF 사태의 교훈

작년 6월 하순 3000선 수준의 코스피가 1년 2개월 반 만인 지난 9월 4일 종가 기준 6687을 찍어 당초 목표 5000 달성은 물론이고, 두 배 이상 성장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방선거 직전인 지난 5월 27일 도입한 '단일종목 레버리지(leverage) 상장지수펀드(ETF)'(레버리지 ETF)가 문제를 일으켰다. 도입 후 코스피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9000선을 넘더니 6월 하순 하락하기 시작하여 7월말 5000대 중반까지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일반투자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거졌다. 정부는 코스피 목표 5000 달성에 성공했으나 추진 비용을 일반투자자에게 떠넘긴 셈이 되었다. 결국 레버리지 ETF가 변동성 확대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물러났다. 한국증시의 특징으로 박스권과 변동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변동성은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편 박스권은 변동성 기조 위에 재벌과 규제가 각각 상방향 및 하방향을 제약하여 형성한다. 상방향 제약은 재벌과 대기업의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등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간 괴리를 초래하여 발생하는데,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주요 부분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하방향 제약은 규제, 감독과 보호가 제공한다. 주가가 급락하면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작동하고, 기업 형편이 악화되더라도 거래정지와 상장폐지 등의 적용은 유연하다. 이제 주가부양과 변동성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지수 8000을 가정하자. 한달 기준 변동성을 15%로 가정하면, 지수는 6800~9200 구간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변동성을 30%로 키우면, 지수는 5600~10400 구간에서 움직일 것이다. 결국 지수 10000 달성이 가능해졌는데, 변동성 확대가 주가부양 수단임을 알려준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서 한국증시는 레버리지 ETF의 레버리지(지렛대) 특성이 주가 변동성을 확대하는 것을 경험했다. 레버리지 목표 배수 2배를 전제로, 운용사는 매일매일 기초자산 가격이 오르면 100%를 추가 매수하고 내리면 50%를 매도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을 시행함으로써 변동성 확대에 기여한다. 변동성은 긍정적 영향이 크지만 부정적 영향도 많다. 긍정적 영향은 가격의 움직임이 정보를 전달하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이끄는 부분이다. 부정적 영향은 우선, 위험을 키워 주식의 투자 상품 매력도를 낮춘다. 다음,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상품이나 제도의 레버리지 특성으로 변동성이 내생적으로 확대되어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을 촉발하는 문제가 있다. 즉, 주가 하락시엔 경기침체를 그리고 주가 상승시엔 경기과열을 초래하여 경기순환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증시 시총에서 삼전닉스가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감안할 때 이들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효과가 클 것이고 따라서 시스템리스크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도입을 서두른 책임이 가볍지 않은 이유다. 레버리지 ETF 사태 이후 지난 7월 말 정부는 기본 예탁금을 3000만원으로 인상하고 기본 매매수량을 20주로 늘렸다. 그 결과 거래대금이 크게 감소했으나 이러한 수요억제 방안은 단기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에 한국증시 위험관리 역량 강화를 위해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정부는 주가 부양이나 변동성 조정 등 직접 개입을 지양하고 금융사 스스로 위험관리 강화에 나서도록 이끌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여 공정한 주주환원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발행시장 활성화로 생산적 금융의 생태계 지원에 나서야 한다. 둘째,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과정에서 생성되는 경기순응성 완화를 위해, 리밸런싱 물량의 관리, 장 마감 주문 구조 개선, 알고리즘 거래 감시 등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추진으로 예상되는 한국증시의 삼전닉스 의존도 심화에 사전 대비하는 의미도 있다. 마지막으로, 레버리지 ETF 도입 당시 코스피가 8000을 넘었다. 감독당국이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는데 가속페달을 밟았다. 금융의 산업정책이 감독정책을 압도한 것으로, 금융정책의 실패 사례다. 이 정부 출범시 시작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 마무리가 필요하다. bienns@ekn.kr

[데스크 칼럼] 시장에 미리 정해진 답은 없다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정부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앞서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고금리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연체와 경매 물건 증가 등을 거론하며, 주택가격이 폭락할 경우에 대비해 일정 기준 이하의 주택을 대량 매입하는 시스템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금리와 가계부채가 주택시장에 미칠 충격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판단이다. 정책은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지금 시장에서 확인되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재 주택시장에서는 규제강화가 수요의 방향을 바꾸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출과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고가주택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자 수요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강남·서초의 거래가 둔화하는 사이 성북·중랑 등 서울 외곽 중저가 지역에서는 오히려 집값이 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규제가 주택 수요의 편중을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물론 추가 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은 분명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까지 올린 상황에서 대출을 많이 보유한 가계일수록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금리 상승이 장기화하면 상환 능력이 취약한 차주를 중심으로 연체가 늘고, 경매와 급매물도 증가할 수 있다. 특히 담보가치 변동에 민감한 다세대 주택은 금리 부담이 커질수록 대출 부실 위험도 빠르게 높아진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대목 역시 주택가격 전망과는 별개로 금융안정 차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금융 리스크를 주택시장 전체의 방향과 어떻게 연결해서 볼 것인가다. 금리 상승으로 일부 차주의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주택가격의 급락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주택가격은 공급 여건과 소득, 집값에 대한 기대, 인구와 일자리의 이동, 전월세 가격, 대출 규제의 강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금리가 올라도 공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매수세가 버틸 수 있고, 반대로 금리가 낮더라도 경기와 고용이 급격히 악화되면 거래가 얼어붙을 수 있다. 금리의 수준과 주택가격 사이에는 여러 변수가 놓여 있다는 의미다. 공공의 주택 매입 확대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도 따져봐야 한다.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저가 주택을 확보해 공공임대로 활용한다면 주거 안전망을 확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관건은 이 정책을 실제로 작동시킬 구체적인 기준이다. 어떤 주택을, 어느 가격에, 얼마나 매입할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정부가 시장의 가격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하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잡으면 정작 필요한 시점에 매입할 주택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만큼, 어떤 가격에 어디까지 사들일지부터 명확히 정해둬야 한다. 이런 원칙은 주택 매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금과 대출 규제 역시 예측 가능한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규제를 강화하고 시장이 위축되면 다시 완화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시장 참여자들은 현재의 정책보다 다음 조치를 먼저 계산하기 마련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쌓이면 정책의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는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 늘 존재한다. 시장의 방향을 바꾸려는 정책은 그만큼의 반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흐름을 대신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정부를 믿고 판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정책의 힘은 경고의 강도에 있지 않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EE칼럼]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 차등 제도 시행에 대한 기대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정부가 지난 8월 26일에 전력 공급 시설이 집중된 영호남 등 남부 지역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0% 정도 낮추는 지역별 차등요금제 설계안을 발표하였다.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으로 지역별 요금제에 대한 시동을 건지 2년 2개월 만에 구체적인 지역별 요금 체계가 제시된 것이다. 지역별 구분은 전력 계통을 고려하여 수도권 남부(서울 남부 및 경기 남부)와 수도권 북부(서울 북부, 경기 북부 및 인천), 중부권(강원 및 충청), 남부권(경상 및 전라) 등 4개 광역권으로 구분했으며, 여기에 균형성장 요소를 반영한 4개 권역을 다시 조합해 전국을 11개 지역으로 세분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송전망 건설 부담을 줄이고 지역 균형발전도 유도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를 위하여 비수도권 요금만 낮춘다고 한다. 수도권 남부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남부권은 kWh당 13~18원, 중부권은 10~15원, 수도권 북부는 6~10원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남부 지역의 제조업 시설은 연간 최대 1백억 원 이상 전기요금을 적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인센티브로 기업의 지방 이전과 투자를 촉진하고 특히 반도체 등의 3대 메가프로젝트의 시행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위한 추가 부담은 약 2조 8천억원으로 추산하였다. 사실 서울에는 일부 재생에너지 시설을 제외하면 발전시설이 없어 사용 전력의 거의 전량을 중부 및 남부지역의 발전시설과 전력망에 의존하고 있으며 경기도 역시 상당량을 타 지자체의 발전시설에 기대고 있다. 수도권 중 인천은 그러나 수요보다 많은 발전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도권이 절반에 가까운 전기를 소비하고 있기에 오래전부터 전력 요금의 차등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업 분류에서 전기는 수도, 가스와 함께 산업(industry)이 이니고 공공(utility)로 분류된다. 이들의 서비스는 가격(price)이 아닌 요금(fare)으로 매겨진다. 그런데 이미 수도 요금은 오래전부터 지역별로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상수도 요금의 경우 일단 상수도 시설이 광역상수도외 지방상수도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지방정부 별로 별도의 규정과 조례로 요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스(도시가스)요금 역시 한국가스공사가 수입한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각 지역별 도시가스 회사에 의하여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배관망 및 운송 비용의 차이 등을 고려한 것이다. 도시가스 요금의 경우 배관망이 잘 구축된 수도권이 지방보다 저렴하며 상대적으로 배관망이 적고 운송비용이 높은 강원도 영동 지역 및 제주, 충북 지역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각 지역별 전력 공급 시설과 수요량, 그리고 전력망 비용 등이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국 단일 요금 체계로 운영되어 왔다. 그것이 이번에 변경되는 것이다. 늦었지만 크게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무엇보다 전력 인프라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남과 호남 등 남부 지역에서는 곧바로 적극적인 환영을 표시하였다. 국가 전체적인 송전망 건설 부담을 근본적으로 덜고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다. 지역요금 차등 제도의 효과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수도권에서 인천은 발전시설이 상당히 많이 있음에도 서울과 경기에 묶여 있다는 점, 현재 제시된 최대 10% 수준의 인하 폭으로는 기업의 입지 선택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장기적인 예산 반영이 없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마침 (사)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8월에 발표한 국내 반도체 및 데이터 센터 재직자 8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에 대한 혜택만으로는 기업의 입지 선택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우며, 그 조차도 30% 정도의 요금 차등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보고서는 추가적인 지원은 지역별 제도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지역에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에 맞추어 맞춤형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제도로 인하여 전력 분야의 비효율을 크게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더 많은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의 세밀한 추가 검토와 보완을 기대한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2030男 지지율 바닥인데 ‘용혜인 카드’라니

정치에 통 관심이 없던 친구들에게서 요즘 카톡이 쏟아진다. “야, 용혜인이 진짜 장관으로 온다고?"라는 질문과 함께 첨부된 뉴스 캡처본이다. 원래 정치 뉴스라곤 야구 스코어보다 안 보던 애들이 이 정도로 반응한다는 건 민심의 기류가 확실히 이상하다는 신호다. 최근 2030 세대 남성들의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앞자리가 '2' 자리에 턱 걸쳐 있다. 취업 문은 좁아지고 자산 격차는 벌어지는데, 현장의 절박함을 달래줄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 등이 쌓인 결과다. 그런데 이 시점에 정부가 던진 카드가 하필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다. 21·22대 국회에서 페미니즘 담론과 젠더 갈등 최전선에 서 온 상징적 인물을 2030 남성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처의 수장으로 올려놓은 셈이다. 재밌는 건 이 '왼쪽 챙기기' 카드가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대통령 지지세력이 대립각을 세워온 방송인 김어준 씨는 “의원직을 내려놓을 이유가 없다"며 옹호했고, 최민희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비례대표를 두 번이나 할 정도면 실력이 있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용 후보자를 옹호하기 위해 진영 내 일시적인 통합이 이뤄진 것이다. 여권의 일방적인 옹호가 이어질수록 2030 남성들이 느끼는 거부감은 배로 불어난다. 소수정당인 기본소득당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용 후보자는 젠더 갈등을 자극하고 페미니즘 진영의 입장을 대변해 오며 비례위성정당 특혜를 반복적으로 누려온 '벼락출세'의 수혜자로 비칠 뿐이다. 당리당략을 이유로 장관직과 비례대표 의원직을 모두 누리려 하는 모습에서, 입각 시 사퇴로 승계를 보장하던 최소한의 관례마저 저버린 모습에서 상식과 공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의원직을 포기할 수 없었다면 장관직은 탐내지 말았어야 했다. 최근 2030 남성 지지율이 바닥을 친 건 그들이 극우화되거나 고집을 부려서가 아니다. 취업난과 자산 격차라는 이중고 속 젠더 정책에서 만큼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최소한의 평등이라도 지켜달라는 마지막 신호였다. 그 신호를 읽지 못하고 왼쪽 챙기기에 급급한 채 '용혜인 카드'를 밀어붙인다면, 2030 남성 지지율의 앞자리는 '2'마저 깨지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 민심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신교근 기자 shin1948@ekn.kr

[기자의 눈] “왜 명령 거부 안 했나”…정치 논리와 軍 상명하복 딜레마

12·3 비상계엄에 휘말린 군인에 대한 최근의 수사와 재판을 지켜보면 딜레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차 종합특검은 서강대교에서 병력을 회군시켜 내부고발자로 평가받던 조성현 전 제1경비단장마저 내란 가담 혐의로 기소했다. 최초 출동 당시 계엄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다. 정치인 체포 지시 폭로자인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국회에 진입했던 김현태 전 707특수임무단장에게 징역 12년, 이상현 전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장 징역 10년,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은 징역 5년을 선고해 법정구속됐다. “명백히 불법한 명령까지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게 재판부의 논리다. 헌법과 형법의 잣대로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잣대가 군대라는 특수한 무력 집단의 현실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이 시사점을 준다. 지난 1월 현장에 투입된 미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작전의 정치적·법적 논란은 명령권자인 대통령과 행정부가 감당했고, 명령을 수행한 군인을 법정에 세우지는 않았다. 그것이 법치국가가 군이라는 물리력을 대우하는 방식이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판단을 할 수 있는 장군급이 계엄의 위법성을 알고도 동조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실무 지휘관에게 명령의 헌법적 정당성까지 스스로 따져 복종 여부를 결정하라고 요구하면, 그 명령 체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급박한 상황에서 '항명'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내란의 고의'를 물어 중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실제 국회에 투입된 군인들은 계엄 해제 의결을 막는 시도를 하다가 철수했다. 대치 과정에서 부상 입은 민간인은 있었으나 심한 무력을 쓰진 않았다. 12·3 계엄의 주동자들과 헌정 질서를 유린한 세력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작전이 성공했다면 끔찍하다. 그러나 그 정치적 사태의 단죄가 군대 상명하복 체계의 불신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명령권자의 책임과 명령을 받은 군인의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그 기준 없이 사후적으로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면, 군인들은 다음 명령 앞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이슈&인사이트] 신의 축복과 저주는 동전의 양면

“신은 저주하는 사람에게 3번의 승리를 안겨 준다"라고 한다. 이는 '성공이 가져오는 함정'과 '오만함이 초래하는 파멸'에 대한 경구다. 동양의 병법서에는 교병필패(교만한 군사는 반드시 패한다) 라고 해서, 적이 함정에 걸리지 않을 때 먼저 3번 일부러 패함으로써 상대를 교만하게 하여 함정에 빠뜨리는 전략을 낳기도 한다. 이를 1999년 앤드루 로렌스는 마천루 저주의 가설로 표현했다. 세계 최고 높이의 마천루가 건설되거나 완공되는 시점에 경제 위기가 닥친다는 개념이다. 이는 마천루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경기 호황의 정점에서 과잉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점과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사례로 1929년 대공황 전후로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언급된다. 한국의 사례로는 대한생명 그룹을 파산에 이르게 한 63빌딩이나 롯데그룹을 유동성 위기로 몬 월드타워가 있다. 신의 축복이 신의 저주가 되는 또 다른 사례로 승자의 저주를 든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할 때만 해도 신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인수 비용으로 인한 자금난으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고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는 신의 저주가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웅진그룹 극동건설의 인수는 신의 축복이었다. 그런데 무리하게 인수한 것이 문제가 되어, 지주회사인 ㈜웅진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고 핵심 계열사인 코웨이를 매각하고 해체되는 신의 저주가 된다. 최근의 사례로는 중앙그룹이 있다. JTBC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올림픽/월드컵 독점중계권 계약을 체결한 것은 신의 축복으로 보였지만 지상파 방송사에 중계권 재판매에 실패하면서 JTBC 채무 불이행 및 중앙그룹 계열사 회생절차 신청 사건이 발생하는 신의 저주가 되었다. 신의 축복이 신의 저주가 되는 사례의 모음집이라면 1997년에 방영된 MBC '성공시대'가 있다. 4년간 189회로 종영된 동 방송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 등의 성공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새겨줬다. 그러나 본 방송은 우연히 겹친 IMF 사태를 거치면서 거평그룹 나승렬 회장이나 중소기업협동중앙회 박상희 회장처럼 방송 직후 회사가 부도나거나 불명예 퇴진한 것은 '성공시대'의' 신의 축복이 신의 저주로 변모되는 사례를 통해서 축복과 저주가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 주었다. 최근 SK하이닉스 노사가 두 달간의 교섭 끝에 마련한 임단협의 잠정 합의안이 노동조합 투표에서 부결한 것은 국민을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임금 6.3% 인상과 함께 성과급인 초과이익분배금(PS)의 40%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60%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을 250조로 추정하고 상응하는 PS를 추정하면 1인당 7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PS 지급 방식을 이유로 임단협의 합의 사항을 부결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배반한 위험한 발상이다. SK하이닉스 노사는 IMF 사태 때 그들의 회생에 수조 원의 국민 혈세와 외환은행의 희생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정당한 노력에 대한 PS 지급의 타당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PS의 1/10의 박봉에 시달리는 유사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자괴감을 자극하면 안 된다. SK하이닉스 뒤에는 중국의 YMTC(양쯔메모리)와 CXMT(청산 메모리) 가 버티고 있다. 언제라도 미국의 견제가 없다면 SK하이닉스를 삼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신은 인간이 자신을 돌아볼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성공의 탑 꼭대기에 그를 올려놓은 뒤,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실수로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신의 축복과 신의 저주가 동전의 양면인 이유다. bienn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