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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수소경제의 다음 시장, 군용 에너지에 주목하자

수소경제의 다음 시장, 군용 에너지에 주목하자

지난 8월 14일 육군과 산업통상부, 현대차그룹이 첨단기술 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력 대상에는 수소 모빌리티와 인프라의 활용 논의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군용 에너지는 수소산업이 활용 범위를 넓혀갈 수 있는 분야다. 특히 잠수함에서 축적한 경험을 차량과 기지 전원으로 확장한다면 군의 에너지 전환과 수소산업의 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 군용 차량·항공기와 야전 발전기가 오랫동안 유류에 의존해 온 데는 이유가 있다. 석유계 연료는 작은 부피에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고 급유도 빠르다. 여러 장비가 공통 연료를 사용하면 저장과 수..

[EE칼럼] 전력 공기업 구조조정,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혁신을 기대한다

전력 공기업 구조조정,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혁신을 기대한다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지난 9월 3일 정부가'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였다. 109개에 이르는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시작하겠다는 발표였다. 공공기관 구조조정은 21세기 내내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사실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기에 이번 정부의 발표는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01년 총 6개의 자회사로 분할하였던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 중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5개 발전 자회사를 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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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경찰 개혁 - 후버 FBI 국장을 생각한다.

경찰 개혁 - 후버 FBI 국장을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찰의 뼈를 깎는 내부 자정과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총리실 산하 경찰 개혁 기구와 더불어민주당 경찰 개혁추진단을 통해 조직 쇄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고심은 취임 후 경찰청장을 600일 넘게 공석으로 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검찰 공화국은 해체되는 반면 경찰 공화국이 탄생할 것 같은 국민의 우려가 있다. 2,300여 명에 불과한 검사들의 검찰 공화국의 권력 남용도 문제였는데, 만일 13만여 명의 경찰이 직권을 남용하는 경찰 공화국이 탄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최근 여고생 살해범...

[특별기고] 미국 원전시장에 필요한 ‘마지막 1마일’

[특별기고] 미국 원전시장에 필요한 ‘마지막 1마일’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은 전시회와 상담회에서 적지 않은 기회를 만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바이어의 관심이 기술자료 요청과 공급자 등록, 견적 협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현지 대응이 늦어지면 어렵게 만든 첫 접점도 오래가지 못한다. 미국 현지에서 한국 제조업체의 제품을 수입·판매하며 필자가 자주 마주한 장면이다. 이런 흐름은 미국 원전시장에서 더욱 중요하다.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과 수명연장, 신규 원전 건설 논의, 소형모듈원전(SMR) 공급망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국내 원전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할 기회도 커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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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급 책임자의 대출규제론, 실행력으로 답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주택 조기 대량 공급을 지시했다. 미분양 우려로 착공을 망설이는 사업장을 위해 LH가 미분양분을 임대용으로 매입하도록 매수 확약도 지시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공급계획을 실제 주택으로 연결하는 LH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훈 LH 사장의 대출규제 발언은 공급 책임자의 인식을 돌아보게 한다. 이 사장은 지난달 30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묻는 질문에 공급에는 시차가 있다며 대출규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주무부처와 논의한 내용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좁힐 수 있다는 반발이 뒤따랐다. 주택 건설에 시간이 걸리고 과도한 차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진단은 타당하다. 그러나 공급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이라면 그 시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공급이 늦어지는 동안 대출을 더 조여야 한다는 주장은 자칫 기다림의 비용을 실수요자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투기적 수요를 키울 수 있지만 자산이 부족한 청년에게는 내 집 마련의 수단이기도 하다. 대출 축소가 가격 안정에 미칠 효과와 무주택자의 구매 여력 감소를 함께 따져야 한다. 현금이 충분한 매수자와 소득으로 원리금을 갚는 실수요자를 구분하지 않으면 주거 사다리를 지키겠다는 설명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공공기관 수장의 발언은 개인 의견이라는 단서만으로 무게가 줄어들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추가 규제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발언만으로 가격과 거래가 움직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책 방향에 대한 혼선을 키울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공급 확대와 실수요자 보호를 어떻게 병행할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LH가 답해야 할 핵심은 공급의 실행력이다. 후보지 선정과 지구 지정, 인허가와 착공은 각각 다른 단계다. 인허가를 받아도 사업비를 조달하지 못하면 공사는 시작되지 않는다. 매수 확약 역시 대상과 가격, 품질 기준이 구체화돼야 작동한다. 공공이 위험을 인수하는 만큼 임대 수요와 입지를 따져 사업자의 손실을 대신 떠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의 공조도 실행으로 평가해야 한다. 홍지선 국토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30일 공급 협력을 약속했다. 이제는 사업별 합의 내용과 처리 기한을 제시할 차례다. 용산처럼 쟁점이 많은 곳은 부지별 반환·정화 현황과 기반시설 조건을 구분하고, 추진 가능한 사업부터 진행해야 한다. 사업별 당초 일정과 현재 단계, 지연 사유를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입주까지 기다려야 하는 세입자에게는 공공임대와 주거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공급 속도를 높이더라도 안전과 품질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LH 사장의 리더십은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보다 공급을 앞당기는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더 큰 공급 숫자나 더 강한 대출규제가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들어가 살 집과 믿을 수 있는 입주 일정이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이슈&인사이트] 경찰 개혁 - 후버 FBI 국장을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찰의 뼈를 깎는 내부 자정과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총리실 산하 경찰 개혁 기구와 더불어민주당 경찰 개혁추진단을 통해 조직 쇄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고심은 취임 후 경찰청장을 600일 넘게 공석으로 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검찰 공화국은 해체되는 반면 경찰 공화국이 탄생할 것 같은 국민의 우려가 있다. 2,300여 명에 불과한 검사들의 검찰 공화국의 권력 남용도 문제였는데, 만일 13만여 명의 경찰이 직권을 남용하는 경찰 공화국이 탄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최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과 제주 실종 신고 허위 종결 사건에서 보여준 증조가 국민적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여기서 타산지석의 하나로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을 생각한다. 후버는 미국 FBI 초대 국장으로, 1924년부터 1972년까지 총 48년에 걸쳐 재임했으며, 재임 중 8명의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거쳐 갔다. 이는 미국 내 유명인과 정치인에 대한 약점을 죄다 조사하고 다녔고 정치적 파워가 극에 달해서 그 막강한 권력의 미국 대통령조차도 그를 해임할 수가 없었다. 혹여 정치권에서 퇴진 요구가 있으면 조용히 정계 인물들 관련 비밀 파일을 빌미로 협박을 일삼았다. 후버는 새로운 대통령들이 자신의 FBI 국장 지위와 권력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대통령의 정적들 비리와 불륜 증거를 주기적으로 넘겨주었다. 인권 운동가들의 대다수는 후버를 사탄 취급할 정도로 반(反) 인권의 상징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쏘 냉전 시기에 FBI의 위상을 현재의 위치로 만든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가 죽은 후 FBI 국장의 재임 기간 상한이 10년으로 제한되었다. 미국의 경찰 공화국 예방을 위한 노력은 우리 정부의 경찰 개혁의 지침이 될 것이다. 미국에는 경찰로 분류되는 공무원의 수가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권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핵심은 상급 기관이 하급 경찰을 일률적으로 지휘하는 피라미드식 조직이 아니다. 권력은 집중에서 나오기 때문에, 수직적 조직이 아니라 수평적 조직으로 분산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FBI가 뉴욕시 경찰을 지휘하지 않는다. 연방 정부 경찰은 법무부 소속이다. 각각 법적으로 부여된 관할권과 권한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연방법 위반, 테러, 방첩, 조직범죄, 주요 사이버범죄 등을 다루는 FBI, 불법 마약 관련 범죄를 다루는 DEA, 총기·폭발물·방화·밀수 등을 다루는 ATF, 연방법원 관련 업무, 연방 도피범 추적, 증인 보호 등을 다루는 U.S. Marshals Service, 대통령 등 주요 인사 경호와 위조지폐·금융 범죄 수사를 다루는 Secret Service, 국경·출입국 및 이민 관련 법 집행을 다루는 CBP / ICE로 나눈다. 각 주(state)에는 자체적인 주 소속 경찰이 있다. 명칭도 주마다 다르고 조직과 권한도 다르다. 주 소속 경찰은 고속도로 순찰, 교통법 집행, 광역 수사, 지방경찰 지원 등의 역할을 한다. 예로서 버클리 대학은 앨러미다 카운티, 버클리시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이다. 주립대학이기 때문에 버클리시 경찰(150명 내외) 과 별도로 60명 정도의 캘리포니아주 소속 경찰이 관장한다. 주 밑에 있는 카운티에는 보안관(Sheriff)이 있다. 보안관은 한국 경찰과 달리 주민 선거로 선출된다. 카운티 밑에 있는 시티에는 시티 경찰이 있다. 정리하면, 미국의 경찰 체계는 연방 정부에 법무부 소관의 연방경찰, 주 소속의 주 경찰, 카운티 소속의 보안관, 시티 소속의 시티 경찰과 각종 특수업무의 특수 경찰이 있지만 서로의 지배구조는 없다. 미국 경찰의 핵심은 “하나의 경찰"의 아니고 철저한 분권의 수평적 분권 체계다. 한국도 “견제와 균형", “수평적 분권"이 없으면 13만 경찰의 폭주를 막을 길이 없다. 검찰의 보완 수사권 폐지로 경찰의 수사 권한과 책임이 커졌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일 수 없다. 경찰 개혁을 논의하면서 후버 FBI 국장을 상기하는 이유다. bienns@ekn.kr

[EE칼럼] 수소경제의 다음 시장, 군용 에너지에 주목하자

지난 8월 14일 육군과 산업통상부, 현대차그룹이 첨단기술 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력 대상에는 수소 모빌리티와 인프라의 활용 논의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군용 에너지는 수소산업이 활용 범위를 넓혀갈 수 있는 분야다. 특히 잠수함에서 축적한 경험을 차량과 기지 전원으로 확장한다면 군의 에너지 전환과 수소산업의 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 군용 차량·항공기와 야전 발전기가 오랫동안 유류에 의존해 온 데는 이유가 있다. 석유계 연료는 작은 부피에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고 급유도 빠르다. 여러 장비가 공통 연료를 사용하면 저장과 수송이 단순해진다. 그러나 연료를 계속 운반하고 보급로를 지켜야 하는 부담은 남는다. 공급시설이나 수송망이 끊기면 장비의 성능과 관계없이 임무가 멈출 수 있다. 군이 에너지 공급을 다변화하고 보급 부담을 줄일 방법을 찾는 배경이다. 외국군은 이에 대응해 에너지전략을 세우고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영국 국방성은 작전에너지전략에서 공급 다변화와 새로운 에너지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검토하며 수소를 선택지에 포함했다. 미국에서는 육군 연구기관 등이 재난지원 차량 H2Rescue의 개발과 실종에 참여했다. 미 육군에 따르면 이 시제차는 2023년 실증에서 왕복 약 290km를 주행한 뒤 25kW의 전력을 72시간 공급했다. 현장까지 이동한 차량이 도착 후에는 전기를 공급하는 장비로도 쓰인 것이다. 우리군은 잠수함에서 수소를 활용해 왔다. 손원일급과 장보고-Ⅲ급 잠수함은 외부 공기 없이 전력을 생산하는 공기 불효추진체계에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한다. 이때 연료전지는 디젤발전기·배터리와 함께 잠수함의 전력체계를 구성한다. 이를 통해 수중에서 필요한 전력을 공급해 잠항 시간을 늘려준다. 지상에서는 기아가 수소 동력 경전술 차량(ATV)을 개발했다. 현대차그룹은 이 차량이 2025년 5월 군과 함께 시험평가를 마쳤다고 밝혔다. 군이 수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치는 소음을 줄이면서 임무에 필요한 전력을 오래 공급하는 데 있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하며, 내연기관보다 소음과 진동을 줄일 수 있다. 정숙성은 배터리 전기구동도 가진 장점이다. 수소는 보급체계를 갖춘 곳에서 연료를 보충하며 장시간 전력을 공급하는 데 강점을 찾을 수 있다. 정차 중 통신·감시장비를 가동하거나 정전 때 기지의 필수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용도가 그 예다. 전력과 물, 수전해·저장설비를 갖춘 기지에서는 수소를 미리 만들어 저장할 수도 있다. 저장한 수소는 연료전지를 통해 비상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군의 수요는 수소산업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수 있다. 차량과 전원장비를 지속적으로 운용하려면 수소 공급·충전·저장시설과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잠수함 연료전지의 예비품 공급계약은 후속 군수지원 시장이 이미 존재함을 보여준다. 여러 용도에서 성능과 운용성을 검증하고 정식 조달을 확대한다면 대규모 군사용 시장으로 성장할 잠재성이 있다. 군의 엄격한 운용 조건에 맞춰 제품을 개선하면서 기업의 기술과 정비 역량도 높일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실현하려면 장비와 공급체계를 함께 검증해야 한다. 수소의 생산·저장·수송·충전에 드는 비용과 정비 부담을 따져야 한다. 저장용기와 보조설비를 포함한 전체 장비의 무게와 부피도 중요하다. 특히 같은 임무 조건에서 디젤·배터리·하이브리드 방식과 성능·총비용을 비교해야 한다. 공급거점 인근의 이동형 전원이나 기지 비상 전원부터 실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용 범위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군용 수소를 국가 수소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 군의 수요와 적용 우선순위를 담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방부·방위사업청이 공동 실행 과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군은 임무와 성능 기준을 제시하고, 관계부처는 기술개발과 공급 인프라를 연계해 지원해야 한다. 실증 결과를 후속 예산과 조달 판단에 연결하는 절차도 갖춰야 한다. 군의 수요를 개발·실증·조달로 이어주는 범부처 협력이 수소산업의 새로운 시장을 여는 기반이다. bienns@ekn.kr

[특별기고] 미국 원전시장에 필요한 ‘마지막 1마일’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은 전시회와 상담회에서 적지 않은 기회를 만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바이어의 관심이 기술자료 요청과 공급자 등록, 견적 협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현지 대응이 늦어지면 어렵게 만든 첫 접점도 오래가지 못한다. 미국 현지에서 한국 제조업체의 제품을 수입·판매하며 필자가 자주 마주한 장면이다. 이런 흐름은 미국 원전시장에서 더욱 중요하다.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과 수명연장, 신규 원전 건설 논의, 소형모듈원전(SMR) 공급망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국내 원전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할 기회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은 전시회에 참가하거나 한 차례 상담을 했다고 열리는 곳이 아니다. 공급자 등록부터 기술 질의, 견적 협의, 샘플 관리와 추가 자료 요청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수개월, 때로는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KNA)는 수출 준비부터 계약까지 컨설팅, 시장조사, 바이어 발굴, 인증·등록, 입찰 자문 등을 지원하고 있다. KOTRA의 해외 네트워크와 한수원의 원전산업 네트워크도 시장 진입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다. 관건은 이미 만들어진 기회를 현지에서 실제 거래로 이어갈 실행 기능을 갖추는 데 있다. 국내 중소기업이 이 일을 혼자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본사는 생산과 기존 고객 대응으로 바쁘고, 미국 고객은 자신의 업무시간에 맞춰 답을 받기를 원한다. 법인을 세우고 창고를 마련했다고 거래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운영사, EPC, SMR 개발사마다 구매 절차와 공급자 등록 요건이 다르고, 품질보증 문서와 기술자료에 대한 요구도 품목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과정에서 고객의 연락을 받고 기술자료와 샘플을 보내며 견적과 납기를 다시 확인할 사람이 현지에 있어야 한다. 이 연결이 끊기면 어렵게 만든 첫 접점도 명함 교환으로 끝날 수 있다. 그 실행 기능의 한 가지 해법으로, 여러 기업이 함께 쓸 수 있는 '공동 현지 실행 거점'을 시범 운영해 볼 수 있다. 이는 새로운 기관이나 대형 물류센터를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기존 사무·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바이어 연락, 기술자료 전달, 샘플 관리, 공급자 등록과 견적 후속 조치를 맡을 현지 실무 기능을 두자는 것이다. KOTRA의 해외공동물류센터와 해외지사화사업도 참고할 수 있다. 원전 분야에서는 단순한 물류나 상담 지원에 더해, 원전 구매 절차와 미국의 물류·엔지니어링 환경을 이해하는 외부 전문인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KNA나 한수원 등은 참여기업 선정과 사업 관리, 네트워크 연계를 맡고, 기술 판단과 품질보증 문서의 승인·관리, 계약에 대한 책임은 각 기업이 갖도록 하면 된다. 우선 미국 진출 준비가 된 5개사 안팎을 선정해 1~2년간 시범 운영해 볼 수 있다. 성과도 상담 건수나 명함 수보다는 공급자 등록, 견적 요청, 첫 구매주문, 반복 거래처럼 실제 거래 과정에서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KNA, 한수원, KOTRA가 열어놓은 수출의 문을 통과한 기업이 미국 현지에 뿌리내려 사업을 키워갈 수 있도록 '공동 현지 실행 거점'과 같은 시범사업을 검토해볼 시점이다.

[EE칼럼] 전력 공기업 구조조정,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혁신을 기대한다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지난 9월 3일 정부가'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였다. 109개에 이르는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시작하겠다는 발표였다. 공공기관 구조조정은 21세기 내내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사실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기에 이번 정부의 발표는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01년 총 6개의 자회사로 분할하였던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 중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5개 발전 자회사를 가칭 '한국발전'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번에는 상당한 수준의 전력 분야 공기업 혁신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1년'전력산업 구조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구)한국전력공사의 분할은 사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화점이었다. 대량의 외화가 필요하였던 정부는 외국 자본이 눈독을 들이던 발전사업을 매각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주요 발전소를 하나씩 쪼개어 매각하려 하였다. 이후 주제는 매각보다 분할과 경쟁 또는 민영화로 넘어갔는데, 김대중 정부는 학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자 하였다. 그 덕분에 막 대학에 자리를 얻었던 필자를 포함 수십명의 학자들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학술대회와 토론회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토론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였다. 즉, 전력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 때 전력 생산단가가 가장 낮은가 하는 논의다. 발전 부문의 분할에 찬성하는 쪽은 그시절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이 너무 커서 몇 개 기업으로 나누어도 충분한 규모가 되며 경쟁을 통해 단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분할에 반대하는 쪽은 규모가 더 커야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으며 특히 원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에 나누어 수입하게 되면 구매단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어놓았다. 김대중 정부는 분할과 경쟁이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2015년 파리협정 등 기후변화협약으로 인한 국제적인 압박이 강해지자 정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로 한다. 또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발전원에 대한 국민 갈등이 깊어졌다. 이러한 변화들은 기존의 '규모의 경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이슈였기에 학계는 전력산업의 구조와 역할에 대한 추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번 제기하였으나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기존 구조개편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연구개발이 그 하나이다. 2001년 구조개편 이전에는 발전 및 송배전 기술의 연구개발이 하나의 회사에서 이루어졌다면, 이후에는 발전 자회사 6개와 송배전을 담당하는 한국전력공사 등 총 7개의 회사로 나누어 진행하다보니 제대로 된 신기술 개발이 부족해졌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또한 자원개발비리 등으로 정부가 공기업의 해외투자를 억제하자 세계 최고 수준이던 국내 전력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으며, 정부의 전력요금 억제 정책의 지속으로 부채가 200조원이 넘는 부실기업이 되었다. 이제는 매물로 내어놓아도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기업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력 공기업의 개혁 목표가 단순히 2001년의 구조개편 이전으로의 원상복구여서는 부족하다. 통합을 통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은 물론 AI, IoT, Big Data 등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력 공기업에 쌓여있는 빛더미를 해결할 방안은 더욱 더 찾기 어려울 것이며 그 미래는 크게 어두워질 것이기 떄문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이번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에 포함된 또 하나의 공기업인 대한석탄공사가 좋은 사례이다. 대한석탄공사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가장 잘나가는 공기업이었지만 천연가스 등 새로운 에너지원도 함께 담당할 기회를 거부하고 석탄만 고집하다가 잊혀진 기업이 되었으며, 이름만 겨우 유지하다가 이번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다음 기회는 없다. 정부와 전력 공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는 투자와 혁신을 이루어내어야 할 것이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신규원전 건설만큼 폐기물 해법도 절실

인공지능(AI) 시대 원자력 발전의 역할을 공론화하는 작업을 정부가 시작했다. 2040년까지 해당하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서 공론화가 진행되는데다 AI발(發)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해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 나온 터라 원전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탄소 배출량 감축이 목표대로 잘 안되는데 AI 붐까지 일면서 무탄소 전원으로서 원전의 역할이 불가피해졌지만, 방사성 폐기물이 나온다는 한계가 과제로 뒤따라온다. 원자력 발전의 부산물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습식 저장소에 수년 동안 임시 보관한 뒤 건식 저장소로 옮겨 영구 보관하는 식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지어진 원전들도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습식 저장소가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건식 보관소는 주민 반발 여론이 워낙 커 월성원전을 제외하고 지어진 곳이 없다. 발전을 계속 해야 하는데 방사성 폐기물이 오갈 데가 없어지는 상황이 가능해졌다. 폐기물 문제는 원전뿐만이 아니다. 일반 쓰레기 처리 문제도 아슬아슬하다. 서울과 경기, 인천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향하는 인천 서구의 수도권 매립지가 거의 꽉 찬 데다 인근 주민들의 환경 피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종량제 쓰레기 직매립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쓰레기를 소각한 뒤 땅에 묻으면 쓰레기의 양이 직매립의 약 15%로 줄어든다. 서울·경기·인천 등 광역자치단체들은 공공 소각장 확충에 나섰지만 주민 반발로 추진이 쉽지 않다. 수도권 매립지 문제는 1·2매립장 포화가 임박하자 사용 연장을 둘러싸고 2010년경 시·도끼리 맞선 것이 시작이다. 이때는 3매립장 추가 사용으로 가닥을 잡아 해결했을 뿐이다. 주민들은 포화가 안됐더라도 2025년 이후 매립 중단이 필요하다고 요구 중이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와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로 주민들이 우려하는 피해 유형은 다르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두 유형의 폐기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원전 공론화 과정에서도 원전 인근 주민들이 우려하는 폐기물 처리 문제가 가장 큰 쟁점으로 논의될 것이다. 건식 저장시설을 확대하며 관리 감독 체계를 강화하거나, 포화가 임박한 습식 저장시설이라도 당장 증설에 나서거나, 아니면 AI를 포기해 전력 수요 '폭증'을 막는 3방향 중 하나로 정해질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그간 미루기만 했던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 포화 문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해결책 도출이 절실하다. 방사성 폐기물은 쓰레기보다 관리가 더 어려운 만큼 대충 매듭지을 일이 아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EE칼럼] 원전종주국이 인정한 K-원전, 이제 준비의 시간이다

1978년 4월,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첫 원전이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주도했다. 우리는 공사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1990년대 한빛 3·4호기에서 기술자립의 첫발을 뗐고,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에 이어 지난해에는 체코 신규 원전 사업까지 수주했다. 고리 1호기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가 원전의 본고장 미국에 원전을 짓는 길을 열었다. 지난 1일 한미 양국은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최대 1200억 달러를 들여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짓는다. 이 중 2기가 우리 APR1400이다. 한국형 원전이 미국 본토에 들어서는 첫 사례다. 원전 기술을 배워 온 나라가 이제 원전종주국의 시장에 진출하는 셈이다. 우리 원자력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상징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한국의 원전 기술력과 시공 역량을 인정하고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한 것이다. APR1400은 이미 2019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받았다. 외국 노형으로는 처음이었다.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4기를 성공적으로 지은 실적도 있다. APR1400 2기가 전부가 아니다. 나머지 AP1000 6기에도 국내 설계·시공 기업과 기자재 기업의 참여가 추진된다. 노형 하나를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원전 공급망과 건설시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미국 역시 무너진 원전 공급망과 건설 역량을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기술력과 건설 경험이 미국의 원전 확대와 맞물리는 이유다. 원전은 이제 국가 전략기술이 됐다. 필요한 기술과 공급망을 가진 나라는 협상장에서 목소리가 커진다. 반도체와 조선에 이어 원전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미 원자력협력과 원전 외교에서도 우리의 발언권은 한층 커질 것이다. 그러나 기회의 문이 열렸다고 결실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국내 신규 원전 건설과 체코 원전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미국 사업까지 더해진다. 여러 사업을 함께 해내려면 우리 기업의 역량을 키우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미리 갖춰야 한다. 첫째, 미국의 품질보증과 인증 체계를 갖춰야 한다. 미국 원전에 기자재를 공급하려면 연방규정이 정한 원자력 품질보증 요건과 관련 인증을 충족해야 한다. 안전 관련 결함을 규제기관에 보고할 법적 의무도 따른다. 대기업은 미국 원전에 주기기를 공급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수많은 중소 협력사다. 정부가 이들 기업의 인증 취득 비용과 품질 전문인력 양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둘째, 현지 법과 건설제도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은 연방법뿐 아니라 주(州)별로 건설과 노동 관련 제도가 다르다. 인허가 절차, 현장 안전기준, 노무 관행도 우리와 다르다. 사업 초기부터 현지 법률과 인허가, 노무제도에 정통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공기와 비용의 불확실성을 제도로 관리해야 한다. 미국 보글 3·4호기는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가 신규 원전 사업의 가장 큰 위험임을 보여줬다. 미국 정부가 신규 원전 인허가 기간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힌 만큼, 이를 이번 사업에 실제로 적용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원전 사업 부지에 적용되는 연방법과 주법, 인허가 절차와 규제기관 간 관계를 미리 정리해야 한다. 불필요한 중복 절차를 줄이는 특례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기업 역시 설계 확정과 기자재 조달을 철저히 준비해 공기를 지켜야 한다.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의 위험을 어느 한쪽에 떠넘기지 않는 합리적 분담 체계도 필요하다. 넷째, 우리 근로자를 보호할 제도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불거진 한국인 근로자 비자 문제는 해외 대형 사업에서 근로자의 법적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원전은 장기간 고도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착공 전에 기술인력의 입국과 근무를 보장하는 비자·취업허가 체계를 양국이 합의해야 한다. 현지 산업재해 보장과 법률 지원 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반세기 전 우리는 배우는 나라였다. 이제 미국과 함께 원전을 건설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나라의 몫이다. 정부는 제도로, 기업은 역량으로 답해야 한다. 미국 원전시장 진출의 성패는 계약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되는 준비에 달려 있다. 이제는 준비의 시간이다. 문주현

[이슈&인사이트] 건배는 끝났고, 경쟁은 계속된다

건배사는 대개 지루하다. 우정과 협력을 말하고 서로의 건강을 빈다. 그러나 9월 24일 백악관 만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0년이 넘는 미·중 관계를 몇 분의 연설에 담았다. 조지 워싱턴이 구입한 중국 도자기에서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의 험프 항로, 마오쩌둥과 리처드 닉슨의 관계 정상화, 중국 사막에 나무를 심은 미국인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날 낮 협상장에 놓였던 관세와 반도체, 희토류는 이 역사에서 빠져 있었다. 시진핑이 고른 첫 단어는 중추절이었다. 워싱턴에서 만찬이 열린 24일 밤, 베이징은 이미 가족이 다시 모이는 명절을 맞고 있었다. 그는 두 나라의 관계도 그렇게 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역사를 어디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식탁의 풍경은 달라진다. 2018년에서 시작하면 무역전쟁이다. 시진핑은 더 먼 과거의 도자기와 교역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교의 건배사는 역사를 편집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설의 끝에서는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자신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나란히 놓았다. 두 목표가 서로를 북돋울 수 있다고도 했다. 상대의 구호를 반박하는 대신 옆자리를 내준 셈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바라는 '다시'가 언제까지 같은 식탁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은 건배사보다 산업정책에 가까이 있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한때 중국을 세계경제에 편입하면 경제뿐 아니라 정치도 변하리라는 기대에 기초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그 기대의 정점이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트럼프 1기의 관세와 기술 제재,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수출통제를 거치며 워싱턴의 무게중심은 관여에서 경쟁으로 옮겨갔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중국의 기술적·군사적 부상을 견제하려는 방향은 이어졌다. 트럼프 2기가 그 경쟁을 멈춘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거래를 끊는 대신,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는 장벽을 세우고 나머지 교역은 관리하려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미·중 무역위원회를 통해 안보상 민감하지 않은 상품의 교역을 논의하면서도 경제·국가안보를 위한 관세는 계속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봉쇄를 포기했다기보다 압박과 거래를 함께 쓰는 쪽으로 전술을 조정한 것이다. 중국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냉전기의 소련과 달리 중국은 세계 제조업과 공급망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국이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면 중국은 핵심광물과 제조업 공급망을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 미국의 기술통제가 중국에 비용을 안기듯, 중국의 수출제한도 미국과 동맹국에 비용을 안긴다. 서로를 밀어붙일 수는 있어도 그 충격에서 자신만 벗어날 수는 없다. 두 나라가 거듭 협상장으로 돌아오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백악관의 건배와 협상장의 긴장은 모순되지 않는다. 두 정상은 경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경쟁의 비용을 관리하려 했다. 미국은 중국과 대화하는 동시에 반도체와 인공지능, 조선과 핵심광물에서 자국의 우위를 지키려 한다. 중국 역시 관계를 안정시키는 동안 기술자립과 공급망의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악수는 화해의 결론이 아니라, 계속될 경쟁을 다루는 방식이다. 한국에도 기회와 부담이 함께 온다. 미국이 전략산업에서 중국 의존을 줄이려 할수록 한국의 반도체와 조선, 배터리와 방산 역량은 중요해진다. 그러나 그 가치는 미국 내 투자 요구와 공급망 재편 비용을 동반한다. 중국 시장과 소재 공급망도 하루아침에 지울 수 없다. 미·중 경쟁이 길어질수록 한국은 더 필요해지는 동시에 더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는다. 시진핑은 건배사에서 두 나라의 오랜 우정을 말했다. 그러나 한국이 주목해야 할 것은 잔을 든 손보다 협상장에 남은 계산서다. 어느 쪽 잔에 먼저 부딪칠지 묻기 전에, 두 나라 모두 쉽게 빼놓을 수 없는 산업과 외교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건배는 끝났다. 복잡한 계산은 이제부터다. 성일권

[EE칼럼] “한전 전력망 25조 선납, 깔세인가?”

얼마전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앞으로 5년 치 전기요금 총 25조원을 미리 받아 전력망을 건설하려 했던 사안을 다시 되짚어보자. 사실 본 사안의 핵심은 사실 돈의 규모나 업황의 문제이기 전에 '권리'의 문제다. 돈은 대라면서 망에 대한 권리 (재산권)는 주지 않기에, 애초에 받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부채에 허덕이는 (주)한국전력 입장에선 전력망을 제때 깔아보려고 짜낸 고육지책이란건 안다. 하지만, 전력망의 소유권과 운영권은 전혀 포기 않으면서, 수십조원의 자금조달 위험과 건설 부담은 통째로 민간에 넘기겠다는 시도이다. '민영화'라는 말이 나올 틈은 원천 봉쇄해 두고 돈만 끌어오겠다는 건데, 경제학적으로 당연히 유인 불합치(incentive incompatibility)가 발생하게 된다. 왜 선납은 기형적인가. 정상적인 인프라 투자를 떠올려 보자. 투자자가 돈을 대면 그 대가로 무언가가 남아야 한다. 재무제표에 자산(asset)이 잡히고, 감가상각이 되고, 장기 운영권이나 배당·리스료 같은 수익 흐름이 따라온다. 반면 선납은 어떤가. 25조원을 넣어도 장부에는 '선급금'이라는 채권 한 줄이 남을 뿐이다. 송전탑 한 기, 변전소 한 곳도 내 것이 아니다. 자본은 잔뜩 묶이는데 생산적 자산은 커녕 경비처리 하나도 못하는 구조다. 부동산 거래에서 속칭 '깔세'라고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선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걸 투자라 부르긴 어렵다. 깔세 세입자는 흔히 계약 상 매우 열등한 위치인 경우가 많으며, 여튼 뭔가가 아쉬워서 담보 없이 집주인에 목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자를 쳐주지 않았느냐고? 국고채 2년물보다 조금 높은 금리를 얹어 반기마다 요금에서 깎아 주겠다는 조건이 붙긴 했다. 하지만 그 이자로 무엇을 담보받는가. 지자체 인허가가 막히고 주민 반발로 공기가 밀려도, 전력이 제때 들어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권리는 제로에 가깝고 위험은 사실상 무한대인 비대칭 계약이다. 반도체 경기의 사이클과 글로벌 설비투자 경쟁을 감안하면, 이런 계약에 도장을 찍는 경영진은 주주 앞에서 배임 시비를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전과 정부는 왜 BTO(수익형)나 BTL(임대형) 같은 정통 민자 방식을 놔두고 이런 우회로를 찾았을까. 답은 뻔하다. '전력망 민영화'라는 프레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노조가 이 네 글자를 꺼내는 순간 논의는 산으로 간다. 그래서 망 소유권은 성역으로 남겨두고 돈만 끌어올 궁리를 한 것이다.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전력망 특별법 개정안도 같은 뿌리다. 민간이 송전망을 짓되 준공과 동시에 소유권을 한전에 넘기고, 투자 원금과 약정 수익을 나중에 정산받는 BT(Build-Transfer) 방식이다. 정부 스스로 “민간은 정산만 받을 뿐 운영권은 없다"고 못 박았다. 건설 위험은 지고, 자산은 못 갖고, 돈은 나중에 받는다. 과연 연기금이든 인프라펀드든 대형 외국계 자본이든, 소유도 운영도 없는 사업에 대규모 자본을 장기간 묶어둘까 싶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자본이 흐르게 하려면 정당한 반대급부, 곧 재산권(property rights)을 제도로 인정하면 된다. 첫째, BTL 방식의 도입이다. 민간이 망을 짓고 소유하되, 한전이나 정부가 이를 장기 임차해 확정된 시설임대료를 지급하는 구조다. 운영과 급전은 지금처럼 한전이 맡는다. 민간에는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이 생기고, 그 현금흐름이 자산으로 잡히니 금융투자자(FI)가 붙게 된다. 학교와 군 관사, 하수관거를 이미 이 방식으로 지어 왔다. 유독 전선만 안 될 이유가 없다. 둘째, 대형 첨단 산단에 한해 발전소와 공장을 잇는 전용 사설 송전망의 민간 소유와 직접 급전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전국 계통을 쪼개자는 게 아니다. 수용가가 제 돈으로 짓고 제 책임으로 관리하는 “전용선"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반도체 단지 하나 때문에 나라 전력망 전체가흔들릴 일은 없다. 기간산업이 전기가 없어 멈추지 않도록 망을 제때 까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시급한 공공성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망 없이는 신기루다. 한전의 텅 빈 곳간과 민영화 금기라는 이중의 제약조건에 갇혀 있는 한 해결은 요망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소유권 없이 돈만 대라'는 발상을 접고, 전력망 투자에 합당한 소유권과 운영권을 보장해 자본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수백쪽 내고도 모르는 금감원 유증 심사 기준

“수차례 정정 요구를 받아 수백 페이지의 자료를 추가로 제출했지만, 아직도 금융감독원의 심사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유상증자를 추진한 한 상장사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금감원이 요구하는 자료를 그때그때 보완했지만 어느 수준까지 소명해야 충분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했다. 담당 직원에 따라 요구사항과 자료의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금감원으로부터 수차례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받았다. 요구에 맞춰 보완한 자료만 수백 페이지에 달했다. 그럼에도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기재해야 심사 기준을 충족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다른 코스닥 상장사 대표의 얘기도 비슷했다. 정정 요구 자체보다 기준을 사전에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담당 직원에 따라 요구하는 자료와 설명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기준에 맞춰 신고서를 작성하기보다 심사를 받으면서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는 구조에 가깝다는 얘기다. 금감원의 설명은 투자자 보호에 맞춰져 있다. 투자자가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업에 최대한 많은 근거를 제시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자금 사용 목적과 사업계획의 실현 가능성 등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에는 이견이 생기기 어렵다.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할 수 있다. 재무상태가 취약하거나 자금 사용 목적이 불분명한 기업이라면 더욱 면밀한 심사가 필요하다. 부실한 증권신고서를 걸러내는 것도 감독당국의 역할이다. 문제는 '충분한 근거'의 기준이다. 어느 정도의 자료를 제출해야 충분한지, 어떤 경우 추가 소명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기업들의 지적이다. 금감원이 요구할 때마다 자료를 추가하는 방식이라면 기업은 정정 요구를 받은 뒤에야 필요한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증권신고서 심사는 자금조달 일정과도 직결된다. 정정이 반복되면 당초 계획했던 발행 일정도 늦어진다. 시장 상황과 주가에 따라 발행 조건이 달라지는 유상증자에서는 일정의 예측 가능성 역시 중요하다. 실제 시장에서도 반복적인 정정으로 자금조달 일정이 흔들리는 데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모든 기업을 하나의 잣대로 심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재무상태와 자금 사용처, 사업계획이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의 판단과 재량이 필요한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재량이 곧 모호한 기준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복수의 상장사 대표가 수차례 정정을 거친 뒤에도 다음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심사의 예측 가능성은 짚어볼 문제다. 담당자에 따라 요구사항이 다르다는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금감원이 기업에 충분한 근거를 요구하는 만큼 기업에도 판단의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반복적으로 정정이 요구되는 사항을 유형화하거나 주요 사례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것도 방법이다. 투자자가 제대로 판단하려면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증권신고서를 작성하는 기업 역시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알아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수백 페이지를 추가로 제출하고도 “기준을 모르겠다"는 말이 반복된다면 심사 기준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