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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주 칼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박원주 칼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작년 12월 태국 방콕 비즈니스 미팅에서 있었던 일. 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대화하던 중 자연스레 11월 당선이 확정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걱정이 많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외교안보 정책, 우방국들을 타깃으로 하는 관세 전쟁, 기후 환경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극우적, 미국 우선주의적 접근 등... 이후의 국제 비즈니스 환경이 이전과는 전혀 다를 것이고 많은 나라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다가 한 참석자가 한 말. “그래도 태국은 큰 문제가 없을 겁니..

[EE칼럼] 저기는 맞고 여기는 틀리다

[EE칼럼] 저기는 맞고 여기는 틀리다

2025년 3월 24일 미국 대법원은 특별한 판결을 내렸다. 2015년 줄리아나 올슨을 포함하여 미국 청소년 21명이 제기한 '줄리아나 vs 미국' 기후소송이 10년을 끌다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재판 없이 기각됐다. 당시 청년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은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화석연료 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청소년의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미국 대법원은 하급 법원이 2024년 한번 기각한 사건의 원심을 유지하며 원고의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이 미국 행정부에 실질적 해결책을 수립하도록 명령..

이슈&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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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지털 에너지 시대와 Quality 4.0... 품질은 전략이다

[기고] 디지털 에너지 시대와 Quality 4.0... 품질은 전략이다

에너지 산업이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 시대로 전환하면서, 품질의 개념 또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다. 이제 품질은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데이터 활용, 고객 경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조직의 디지털 역량 전반을 포괄하는 전략적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 'Quality 4.0'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품질관리 체계에 융합함으로써, 예측형 대응, 자율적 개선, 실시간 품질관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사후적 품질관리에서 벗..

[이슈&인사이트] 관세, 손자병법의 가르침

[이슈&인사이트] 관세, 손자병법의 가르침

트럼프는 그의 저서 『Think Like a Champion』에서 『손자병법』을 읽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미국의 상호관세와 중국의 강경대응 이어지는 중국 고립전략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략과 매우 닮아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라는 무기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휘둘렀다. 펭귄만 사는 섬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사실은 모든 나라와 싸우려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중국 하나만을 명확히 겨냥한 전략이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상황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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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지털 에너지 시대와 Quality 4.0... 품질은 전략이다

에너지 산업이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 시대로 전환하면서, 품질의 개념 또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다. 이제 품질은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데이터 활용, 고객 경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조직의 디지털 역량 전반을 포괄하는 전략적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 'Quality 4.0'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품질관리 체계에 융합함으로써, 예측형 대응, 자율적 개선, 실시간 품질관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사후적 품질관리에서 벗어나, 오류를 사전에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지능형 품질 혁신을 의미한다. 특히 에너지ICT 산업에서는 이와 같은 디지털 품질 역량이 곧 기업의 플랫폼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 재생에너지 관리, 전력 계통 제어 등 모든 분야에서 정밀한 데이터 품질과 예측 기술이 요구되며, 이를 통해 사용자 경험(UX)과 ESG 관점의 품질 책임까지 실현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주요국은 이미 품질의 디지털 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은 '첨단 제조 파트너십(MEP)', 독일은 '하이테크 전략 2025', 일본은 'Connected Industries', 중국은 '품질강국 전략'을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을 제외하면 여전히 '측정' 또는 '관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특히 중소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품질 디지털화 수준은 낮은 실정이다. 이러한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품질 역량 강화를 위한 인재 육성과 함께, 데이터 기반의 자율적 품질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품질은 더 이상 특정 부서의 몫이 아니라, 전사적 참여와 협업을 통해 완성되는 조직 문화의 결과물이다. 리더십 또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기술과 사람을 잇는 전략적 사고를 가진 융합형 리더십이 요구되며, 이는 에너지 산업이 지속 가능한 전환을 이뤄내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디지털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기 속에서 품질은 단순한 관리 항목이 아닌, 생존과 경쟁력의 핵심 축이다. 지금이야말로, 품질경영의 패러다임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고,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선도하기 위한 담대한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남현

[이슈&인사이트] 관세, 손자병법의 가르침

트럼프는 그의 저서 『Think Like a Champion』에서 『손자병법』을 읽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미국의 상호관세와 중국의 강경대응 이어지는 중국 고립전략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략과 매우 닮아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라는 무기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휘둘렀다. 펭귄만 사는 섬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사실은 모든 나라와 싸우려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중국 하나만을 명확히 겨냥한 전략이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상황 하에서 적어도 중국만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알고, 예상했던 대로 중국이 전세계 연합의 선봉장 처럼 강하게 반발해오자 덫을 놓고 기다린 것이다. 트럼프의 전략에 걸려든 중국은 트럼프의 작전대로 보복관세를 연이어 부과했고, 그 결과 미국이 부과한 중국산 수입품 관세는 100%를 훌쩍 뛰어넘는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 트럼프는 중국의 보복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세를 유예하였고, 전 세계 무역 상대국들 사이에서 중국만이 높은 관세의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이는 전형적인 『손자병법』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공격하겠다는 기세를 드러내며 실제로는 중국 한 곳만을 정밀타격한 것이다. 혼비백산했던 국가들은 트럼프의 공격대상이 실제로는 중국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내심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동시에 미국-중국의 치열한 싸움에는 뛰어들기보다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안전과 실리를 챙기는 구도로 흘러가게 되었다. 트럼프의 이러한 전략적 결정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의 무역전쟁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미국과 중국이라는 경제 강국 두 나라가 치열하게 충돌했고, 글로벌 공급망은 재편성되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그 여파를 실감했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한 번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고, 모두가 한 발 물러나버린 평원에 미국과 중국만 남아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 미국에 굴욕적인 협상에 나서지 않는 이상 중국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는 암울한 소식이다. 트럼프 1기 미중무역분쟁 영향으로 2017년~2018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3.2%에서 2.9%로 하락하였고 2019년에는 반도체, 전자기기, 철강,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약 16% 감소하며 성장률은 2.2%로 떨어졌다. 당시에는 무역분쟁을 제외하면 성장세를 견고한 수준이었으나, 성장세가 잠재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는 정말 바닥을 뚫고 내려가야하는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의 '2차 미중무역분쟁' 반드시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미국 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중국에 사전 주문한 물량을 대거 취소할 경우 중국 제조업체들은 생산비라도 회수하기 위해 남은 재고를 전 세계 시장에 저가로 내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저가 중국 제품의 물결은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에게는 일시적이나마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를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들고 한은이 금리인하를 단행할 여력이 생긴다. 최근 경기둔화의 조짐이 점차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한은도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의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은의 금리인하가 실제로 몇 개월 내에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금리인하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은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과의 내외금리차는 여전히 금융시장의 우려로 남을 수 있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트럼프 정부로부터 금리인하 요구를 받고 있으며 미국 재무부는 약(弱)달러를 원하는 상황이므로 금리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격렬한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우리와 같은 국가들은 중요한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분쟁이 심화될수록 연쇄적 충격이 가해질 수는 있지만, 반대로 이 기회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면 장기적 산업경쟁력 강화 및 시장 다변화를 통해 긍정적인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1기의 무역분쟁 당시에도 나타났지만, 미중무역분쟁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발생시킨다. 중국과의 경쟁관계에 있거나, 중국의 공세에 힘을 받지 못하던 산업분야에서는 이러한 분쟁상황 속에서 기회를 찾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트럼프가 손자병법을 활용하였듯이, 우리도 이를 전환점으로 기회삼아 전략과 전술을 활용하여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제질서의 재편에 중장기적 안목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시간으로 24일 저녁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는 우리 대표단에 기대를 걸어본다. 김수현

[박원주 칼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작년 12월 태국 방콕 비즈니스 미팅에서 있었던 일. 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대화하던 중 자연스레 11월 당선이 확정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걱정이 많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외교안보 정책, 우방국들을 타깃으로 하는 관세 전쟁, 기후 환경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극우적, 미국 우선주의적 접근 등... 이후의 국제 비즈니스 환경이 이전과는 전혀 다를 것이고 많은 나라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다가 한 참석자가 한 말. “그래도 태국은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태국이 타일랜드인지 타이완인지도 구별 못할 거에요." 참석자들이 모두 웃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말에 필자의 마음이 갑갑해졌다. “한국은 다르지요. 세계적인 무역 대국이고 미국과 이해관계가 맞닿는 지점이 많잖아요. 게다가 계엄령 사태로 국가의 리더십도 부재중이고." '줄도 운'이라는 말이 있다.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타일랜드, 타이완 운운하는 말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자국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태국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대통령이 뜬금없이 계엄사태를 일으키고, 탄핵소추에 휘말리면서 우리나라에 트럼프가 협박할만한 대화상대가 사라져 버린 것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물론 턱도 없는 소망이다. 리더십 공백으로 우리가 제자리를 맴도는 동안 전 세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탄핵 국면의 권한대행 체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정부는 부처 하나 하나가 자기 멋대로 국가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단일체가 아니다. 끊임없는 조정과 조율, 지휘로 이해관계의 충돌을 제어하고, 국민경제 전체가 당초 목적했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리더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전 두 번의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뼈아프게 겪어 보았듯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상유지'고 '자율주행'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내수 경제는 회복의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거리의 상점가에는 공실이 넘쳐나고 있다. 작년 말 이후 단 두 달 사이에 20만 명의 자영업자들이 폐업했다는 통계까지 나오고 있다. 소비심리도 크게 위축되어 있고 기업들의 경기 전망도 최악의 수준이다. 경제성장 전망치도 하향 조정을 거듭하고 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내일 모레의 우리 경제가 더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계엄 당시 1,400원대였던 대미 달러 환율은 1,470원을 훌쩍 넘긴 이후 최근 살짝 떨어지긴 했지만 살얼음판이다. 정치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발을 빼거나 신규 투자를 주저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당장 그 투자 여부로 생사가 오가는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죽을 맛일 것이다. 일부 위정자들이 그토록 목을 매던 견고한 한미 동맹이 어디로 갔는지 미국 에너지부가 우리를 민감국가로 지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또한, 미국의 관세 캠페인에서 우리를 콕 찍어서 특별하게 요구하는게 없다고 해서 우리를 봐주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냥 무시할 뿐이다. 앞장서서 우리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협상을 걸어야 할 한국정부가 부재중인 것이다.국민들간의 갈등과 분노도 치유가 어려울만큼 심각하다. 거리에서, 전철안에서, 온라인에서, 온 국민들이 연령, 지역, 성별, 종교로 분열되어 다투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런 분열을 돈벌이 기회로 삼는 유튜버들까지 횡행하는 우리 상황은 세기말 그 자체인 것 같다. 우리가 멈춰 있다고 세계도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글로벌 트랜드로부터 역주행한다고 해서 전 세계 역사의 흐름이 함께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계엄이라는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우리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안 전 세계는 차근차근 다음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가 기후 협약을 파기하고, 화석연료 시대의 재래를 설파하고 있지만 그는 미래를 여는 선지자도 예언가도 아니다. 그냥 과거의 프레임에 갇힌 노쇠한 정치인일 뿐이다. 트럼프가 없을 10년후의 세상에선 친환경, Net-Zero, CBAM, RE100 같은 글로벌 환경 규제가 우리 기업들의 시장 성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제자리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국민의 갈등을 조장하고 악용하여 자신의 이익으로 삼은 이들, 그것으로도 부족해 국가의 운명을 송두리째 위난에 빠뜨린 이들, 피와 땀으로 일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오염시킨 이들, 국민경제와 서민들의 삶을 위기에 빠뜨린 이들. 그들에게 언젠가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당장은 시시비비를 연연할 때가 아니다. 상황을 수습하고 리더십을 다시 세워서 위기를 탈출하는 것이 더 급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다. 이끌어 줄 이가 없다면, 국민 모두가 뜻을 모으면 된다. 과거 일본 식민통치기, 일제의 경제적 폭압 앞에서 민족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언론과 국민들이 힘을 모았던 물산장려운동처럼, 우리는 우리를 지켜줄 정부가 없어도 스스로 공동체의 살길을 찾아나갔던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분열을 벗어나 번영의 역사를 되찾는 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박원주

[기자의 눈] 나으리,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막내기자 시절 작성했던 칼럼을 뒤적이다 '우문현답'이란 단어가 훅 들어왔다.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愚問賢答)'이란 뜻을 지닌 성어를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사행시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국민 여론을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겠단 의지를 함축한다. 그날따라 유독 네 글자가 눈에 밟힌 건 최근 두 차례에 걸친 국회의 기업 방문 행보에서 느꼈을 산업계의 실망감과 무관치 않다. 현장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의례적으로 쓰이는 역두문자어조차 공염불이 될 수 있단 우려가 적잖아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인공지능(AI) 기술 현주소를 살펴보겠다며 올 상반기 네이버·LG유플러스를 잇따라 찾았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파동 이후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요구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밑그림에 그쳤던 AI가 국가 의제로 부상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골든타임'만은 놓치지 않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인원 구성을 본 후 반응은 다시 냉담해졌다. 현장을 찾은 과방위원의 절반 이상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탓이다. 물론 조국혁신당·국민의힘 위원들도 각 1명씩 참석했지만 '보여주기식'이란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이를 인지했는지 한 위원은 최근 “기업을 직접 찾는 것도 좋겠지만, 줌(ZOOM)으로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선 현장 세팅을 위해 전사 인력이 동원돼 번거롭고, 과방위 역시 모든 구성원의 일정이 빈 시간대를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업무효율과 실용성을 높이는 측면에선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진정성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기술 개발 여건이나 발전 속도는 서비스를 직접 써 봐야, 업계 애로사항은 현장 종사자들과 눈을 마주보고 소통해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향후 제정될 법·제도에 대한 신뢰·정당성 확보로 귀결된다. 그래서일까. 과방위는 기업 방문 때마다 전방위 지원사격에 나서겠다고 강조했지만 산업 진흥 전략 방향성은 안갯속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약 경쟁이 한창인 정치권의 상황과도 다르지 않다. 여야 예비후보들이 표심잡기를 위해 저마다 AI를 1호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로드맵·투자 방식 등은 구체화되지 않아 내실이 부족하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많은 기업이 정치·행정가의 갑작스러운 발걸음을 반기는 건 업계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더 경청하고, 시의적절한 정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미 두세 걸음 늦은 AI 산업의 발전을 앞당길 근본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4년 전 비슷한 주제로 쓴 막내기자의 칼럼은 이렇게 끝맺음한다.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계도를 촘촘히 짜기 위해 필요한 걸 찾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답은 현장에 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고래싸움에 새우가 등 터지지 않으려면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기는 법,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 미국, 일본보다 뒤늦게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의 “고래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길 방도는 없겠나?"라는 질문에 대한 손자 진도준의 대답이다. 2022년 12월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오랜만에 돌려보다 정신이 번뜩인 순간이었다. 미국과 중국이란 거대한 고래 싸움에 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시기적절한 대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한국은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뽐내는 두 나라 모두 한국에 중요한 시장이자 국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간 군사적, 경제적으로 미국에 많이 의지해왔다. 8.15 광복과 6.25 전쟁 이후 돈독한 사이를 이어왔고 2000년대엔 한미 FTA를 통해 자유로운 무관세 무역도 이끌어 왔다. 세계 패권을 쥔 초강대국과의 친밀한 외교는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이에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최대 고객으로 두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한국에도 전례 없던 25%란 관세가 부과됐지만 이는 세계 모든 국가에 매겨진 세금인데다 아직 협상의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중국 역시 마냥 등 돌릴 수 없는 국가다. 미운 점도 많지만 결국 한국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모든 곳에 중국의 부품과 원자재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최근엔 중국의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AI 모든 시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전기차와 배터리 쪽에선 중국을 따라올 곳이 없을 정도다. 이젠 단순히 덩치만 큰 고래가 아니라 사냥도 잘하는 똑똑한 고래로 변모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의 말처럼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특히 우리 기업의 체력과 체급을 키워 고래 싸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와 민생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에 절실한 것이 정부 차원의 기업 지원이다. 예를 들어 국내 배터리 기업에 직접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국판 IRA'가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지금처럼 국내 배터리 산업을 방치하다간 중국에 완전히 밀려 묻혀버린 디스플레이 업계의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점유율이 10% 초반대로 떨어졌고 캐즘이 끝나지 않은 지금,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EE칼럼] 저기는 맞고 여기는 틀리다

2025년 3월 24일 미국 대법원은 특별한 판결을 내렸다. 2015년 줄리아나 올슨을 포함하여 미국 청소년 21명이 제기한 '줄리아나 vs 미국' 기후소송이 10년을 끌다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재판 없이 기각됐다. 당시 청년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은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화석연료 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청소년의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미국 대법원은 하급 법원이 2024년 한번 기각한 사건의 원심을 유지하며 원고의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이 미국 행정부에 실질적 해결책을 수립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없는 만큼 기각 결정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이 대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린 이유이다. 미국 사법부는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하거나 사실관계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기각하고 행정청의 의견을 수렴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미국 사법부는 기후소송과 같은 과학적, 정치적 논쟁에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과 달리 2024년 8월 2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녹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탄녹법 제8조 제1항은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헌재의 판단 논리는 정부가 2030년 이후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량적인 기준이 없어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없어서 해당 조항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다"라며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4건의 소송이 병합된 것으로 소송 주체들은 기후위기비상행동, 녹색당, 아기기후소송단(5세 이하 39명, 6~10세 22명, 20주 차 태아 1명)과 환경단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정부는 헌재의 판결에 따라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년도별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야 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한국 법원은 행정부가 해야할 일에 대한 법적 판단을 위한 법원의 검증능력에 대해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판단의 결과로 우리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205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매년도 감축목표를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목표가 년도별 수치로 제시되면 기본법에 적혀 있기 때문에 무조건 모든 정부부처, 지자체, 공공기관과 민간까지 이를 지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발전시설과 산업시설 등은 가능한지 모를 목표를 위하여 현존하지 않는 과학적 기술까지 할수 있다고 가정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모두 이를 지켜야 하고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특히 정부가 매 2년 마다 향후 15년 동안 필요한 전력설비 계획과 발전원별 비중을 정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이를 따라야 한다. 상위법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후 탄녹법) 제 8조에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전기사업법 제 25조에 의거하여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하여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탄녹법이 더 상위법이기 때문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력부문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무탄소 전원을 확대해야 한다. 전력시스템이 60Hz를 맞춰야하고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목표 자체가 될 수 없다. 유럽은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하여 지속가능실사와 탄소국경조정 등을 연기하거나 현실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의욕이 충만한 목표는 매우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리한 계획의 파급효과는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홍종

[이슈&인사이트]트럼프 관세의 득실과 협상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관세 폭탄을 퍼부으면서 세계 각국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WTO와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상호 시장을 개방하고 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만연해지고 있다. 심지어 자유무역주의가 쇠퇴하고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여 1930년 대공황 직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큰 흐름에 주목할 여유도 없이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대비하느라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품목별 관세, 보편관세, 상호관세 등 다양한 종류의 관세 부과를 계속해서 발표하였다. 과연 어느 나라(지역)가 미국의 우방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캐나다, 멕시코에서 시작하여 EU, 한국, 일본 등에 대해서도 가혹한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들 국가의 주력 수출품인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였으며, 향후 반도체, 바이오 등 그 동안 관세에서 제외한 품목에 대해 추가로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특히 지난 4월 2일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상호관세는 전 세계 주식시장을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별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리라 기대했던 우리나라도 예상보다 높은 25% 관세 부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일찍부터 미국과 정상회담, 기업인의 투자 약속 등을 통해 낮은 관세를 기대했던 일본도 24%라는 관세에 충격을 받았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개도국도 30~40%대의 상호관세에 경악하였다. 베트남은 서둘러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0%로 낮추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상호관세는 지난 4월 9일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보편관세 10%만 부과하겠다고 하면서 각국은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34% 상호관세에 대해 중국이 같은 수준의 대응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은 50%를 추가하고 중국도 50%를 추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럼트 정부는 21% 관세를 추가하여 기존 관세율과 펜타닐 관련 관세 20%를 포함하여 최종 145%(후에 245%로 수정)의 관세를 부과하였다. 결국 트럼프는 관세 전쟁 중에 우군을 확보하면서 중국과의 관세 전쟁에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품목별 관세는 미국에 수출하는 경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로컬 기업에 비해 우리나라에 불리하다. 보편관세를 포함한 상호관세는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된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미국 로컬 기업에 비해 우리나라에 불리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에 245%의 가공할만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품목에서 미국 내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제3국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다. 3개월 유예기간에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최대한 낮추어야 할 것이다. 관세율을 낮추면서 지나치게 내어주지 않도록 관세율 인하와 양보안 사이에서 득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너무 서두르다 졸속 합의에 이르지 않도록 다른 국가들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며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해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구기보

[EE칼럼]의원입법과 수권정당의 길

국회는 법을 만든다. 법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국회의원이 발의해서 법을 만드는 경우가 있고 행정부가 발의한 법을 국회에서 의결하는 정부입법의 방식이 있다.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영향평가, 다른 부처와 의견조율, 규제심사 등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완성도가 높다. 반면 의원 입법은 국회의원 몇 명이 동의해주면 이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넘어간다. 언제부터인가 의원 입법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우선 비교적 간단한 법제정과정으로 인하여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용어의 정의가 불충분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거나, 행정적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법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국회의원은 법안을 만들었다는 실적은 얻을 수 있으나 이후 이행에 어려움을 낳는다. 둘째로는 국회가 만들지 않아야 할 법안이 탄생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중요한 사항은 법으로 제정되지만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시행에 관한 사항은 정부의 시행령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행정부가 해야 할 것까지 법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법을 의뢰한 누군가가 있는 것으로 의심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로는 이미 있는 법안의 조항 한 두 개를 바꾸면 되는 사항을 독립법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법질서가 파괴된다. 관련한 법들이 모여있어도 어려운데 유사한 법안의 개수만 많아져서 옥신각신하게 된다. 예컨대 소위 '민식이법'은 도로교통법의 일부를 개정함으로써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별도의 법으로 만들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법안들이 난립하면서 국민은 그 모든 법을 다 읽어야 되는 상황도 생긴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당리당략 차원의 것들이 법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한시적으로 사용될 것들이고 법리에도 맞지 않은 것인데 전투적 목적으로 생성하는 것이다. 즉 국회가 정치로 해결할 것을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다. 법질서가 어지러워짐은 당연하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이러한 의원 입법의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모 의원이 '선발주 금지법'이라는 것을 발의하려고 하였다. 물론 아직까지 발의되진 않았다. 반발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선발주라는 것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때 허가를 받기 전이라도 미리 주문을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건설일정에 차질이 없게 부품이 조달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법안을 준비했었던 국회의원은 이러한 선발주가 진행되면 안전규제자가 압박을 받게 되어 허가를 쉽게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안전규제자를 관리하면 될 일이지 사업자를 관리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이러한 선발주를 통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원전건설 경쟁력의 원천인데 바로 그 부분을 못하도록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법안은 행정부가 입법했다면 법제화의 첫단계도 통과하지 못할 사안이다. 고준위폐기물법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고준위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을 법제화함으로써 장차 고준위폐기물 처분을 위한 부지선정의 투명성과 주민과의 약속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 법률제정의 취지였다. 이 법이 있으면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필수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원전 계속운전을 저해하는 독소조항이 슬며시 삽입되었다. 원전 계속운전이 불만이라면 이에 대한 별도의 논의의 장을 만들어서 논의해야 하는데 고준위폐기물 법안을 만들면서 그것과 관련없는 조항을 슬쩍 끼워넣은 셈이 된 것이다. 매우 치졸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원입법이 그 당이 수권정당이 되는데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대선후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 발전을 노래 부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발의되고 있는 법안은 여전히 탈원전 시대라면 적절한 법안인 것이다. 도무지 공약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수권정당이 돠고 싶다면 이에 버금가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표를 얻으려고 돈이나 뿌리는 포퓰리즘에 더 이상 속을 국민이 아니다. 트집 잡고, 끌어내리고, 국고를 나눠먹고, 평등이니 뭐니 하면서 사회적 생산성과 역동성을 파괴해서는 지지자의 박수는 받을지언정 수권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 정범진

[기자의 눈] 실수도 말 못하게 만드는 조직이 항공 안전을 위협한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보고하면 조직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히거나 관리자들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만연해 묻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공정 문화(Just Culture)'라는 단어가 있다. 고위험 산업군에서 직원이 실수나 오류를 보고하더라도 처벌하기보다 학습의 기회로 삼고, 조직 전체의 안전성을 제고하려는 문화와 그에 목적을 둔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부속서 13을 통해 공정 문화 도입을 권장하고, 유럽항공안전청(EASA)도 고의·중과실이 아닌 이상 면책 원칙을 보장하고 있다. 과거보다 개선됐다고는 하나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실수를 보고하면 인사 불이익이나 징계 우려가 여전하고, 실수와 위반의 경계가 모호해 관리자 재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아직도 있다는 게 현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잘못된 게 있어도 입도 뻥긋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전언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작년 12월 29일에는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를 들 수 있다. 당시 여객기는 새떼와 충돌했고, 양쪽 엔진이 먹통인 상태로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끝의 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고 완파돼 179명 사망·2명 중상이라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계기 착륙 장치(ILS)는 잘 부서지는 속성을 지녀야 한다는 ICAO와 국토부 지침에도 어긋나게 콘크리트를 타설한 사람이 누구였느냐는 질타가 끊이질 않았고,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와 공항공사, 무안공항 측을 변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관계자들 중 그 누구라도 문제 의식을 갖고 제대로 보고했다면 책임을 면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희생 제물만을 찾는 데에 혈안이 된 처벌 일변도의 분위기에서는 그 어느 것도 바뀔 수가 없다. 베넷 앨런 월시 대한항공 항공안전전략실장은 “한국엔 더욱 강력한 면책 기반 자발적 보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국내에는 아직 공정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음을 점잖은 방식으로 지적한 것인데, 이 마저도 외국인이기에 가능했던 발언이다. 분명 대한민국 항공 산업은 양적 규모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지만 안전에 대한 시각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듯 하다. '누가 했느냐?'는 추궁보다 '무엇이 부족했나?'와 같은 자성에 가까운 질문이 먼저 나와야 ICAO 파트 1 또는 2와 같은 항공 선진국 그룹 일원으로의 도약이 가능해지는 법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눈] 합성니코틴 규제, 이권 다툼에 ‘하세월’

국내에서 담배임에도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 게 바로 '합성니코틴' 액상전자담배다. 기존 연초형 담배·천연니코틴 궐련형 전자담배와 달리 화학물질로 만든 합성니코틴은 현행법으로 '담배'가 아니라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공산품으로 분류돼 있는 탓에 담뱃세·부담금에서 자유롭고, 지정된 소매상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판매가 가능하다. 특히, 무인자판기·온라인몰 등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돼 청소년 조기흡연의 주범으로 꼽힐 만큼 부작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합성니코틴을 법 테두리 안에 들이려는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합성니코틴을 담배 원료로 포함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2016년 처음 발의됐으나 9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올해 3월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경제소위를 열어 관련 개정안을 심사했지만 법안 통과가 불발됐다. 한 담배제조사 관계자는 “업계 출입하는 다수의 기자들이 의결된 방향으로 미리 기사까지 써둘 만큼 이번에는 통과가 유력시된다고 말이 많이 돌았다"면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니 시장에서도 의아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3월 입법 불발이 의아함을 넘어 큰 아쉬움을 낳은 이유는 올해가 입법 공백을 메울 적기로 판단한 나름의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합성니코틴 원액에 발암성·생식독성 등 유해물질이 상당량 존재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보건복지부의 용역 결과가 나오면서다. 그동안 규제에 소극적이던 기재부도 태도를 달리해 입법 작업에 시동을 거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무산됐다. 업계 간 의견차로 공회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 액상전자담배 대표단체는 불법 합성니코틴 대상의 실태조사·단속에 무게를 두고 개정안을 반대하는 반면, 또다른 담배업계 관련 단체는 청소년 건강권 보호를 이유로 신속한 입법 과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 간 기싸움도 입법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거리 제한 유예기간(2년) 동안 합성니코틴 판매자들의 일반담배 판매 여부를 놓고 기재부와 국회가 이견을 보이면서 입법 논의가 중단된 것이다. 책임 소재를 떠나 하루가 멀다 하고 합성니코틴과 관련한 청소년 범죄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부모 신분증으로 꼼수 구매하는 아이들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같은 세태를 방치한 업계와 정부, 국회가 궁극적인 원인 제공자들이다. 개인과 집단의 이권 때문에 청소년 건강권을 계속 방치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