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Energy&Environment]

더보기 +
[EE칼럼] 북극항로와 에너지 이슈

[EE칼럼] 북극항로와 에너지 이슈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북극항로(NSR·Northern Sea Route)가 이번 새 정부 들어 에너지고속도로와 함께 에너지 분야의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과해 아시아(특히 동북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로를 말한다. 우리나라가 속한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보면 미국/캐나다 위를 지나 유럽으로 가는 북서항로와 유라시아 대륙(주로 러시아) 북쪽을 지나 동쪽으로 베링 해협까지 가는 북동항로 등 2개로 나뉜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신..

[EE칼럼] 알뜰폰처럼 ‘알뜰전기’? 전력시장 혁신이 열어갈 길

[EE칼럼] 알뜰폰처럼 ‘알뜰전기’? 전력시장 혁신이 열어갈 길

전력 구매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독점적 공급 구조에 길들여져 있던 기업들이 더 이상 안주하지 않고, 직접 거래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이 여수공장에서 도매시장을 통해 전기를 사들였고, SK어드밴스드가 제도 첫 신청자가 되면서 포문을 열었다. 세아베스틸은 한화큐셀과 20년 계약을 맺어 장기 직거래의 신호를 보냈다. 한화솔루션이 뒤를 따를 기세이고, 코레일 같은 공기업까지 눈길을 주니, 변화는 산업 전반으로 번질 태세다. 이는 단순히 거래 방식의 변주가 아니라, 전력시장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웅변하..

이슈&인사이트

[Issue&Insight]

더보기 +
[박영범의 세무칼럼] 유명 점술가도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폭탄은 몰랐다

[박영범의 세무칼럼] 유명 점술가도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폭탄은 몰랐다

여러 다른 사람의 문제는 잘 해결하지만,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점 또는 점술은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과거 일을 알아맞히거나 미래의 운수와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남의 운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으로 유명한 점술가는 점술에 대가를 받는다면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몰라 수년간 받은 점술료에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수천만 원 세금폭탄을 받은 일이 일어났다. 유명 점술가 A 씨는 2014년 11월 국사당에서 신의 제자가 되겠다고...

[윤석헌 시평] 금융감독체계 개편 마무리해야

[윤석헌 시평] 금융감독체계 개편 마무리해야

“이번엔 되는 줄 알았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해 한 말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기대를 모았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대통령의 주담대 6억원 규제 칭찬 후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인사 후엔 방향성과 추진 여부까지 헷갈린다. 핵심인 금융위 해체설은 약화되고 소비자보호기구 분리설만 명맥을 유지하면서, 초심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수차례 반복된 금융감독개편 논의가 빛을 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모피아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사고와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던 이유 역시 모피아와 무관하지...

데스크 칼럼

더보기 +
[박영범의 세무칼럼] 유명 점술가도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폭탄은 몰랐다

여러 다른 사람의 문제는 잘 해결하지만,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점 또는 점술은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과거 일을 알아맞히거나 미래의 운수와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남의 운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으로 유명한 점술가는 점술에 대가를 받는다면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몰라 수년간 받은 점술료에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수천만 원 세금폭탄을 받은 일이 일어났다. 유명 점술가 A 씨는 2014년 11월 국사당에서 신의 제자가 되겠다고 신고하는 의식으로 무당의 증서와 내림을 받았고, 2015년 8월 별도 사업장에 신당을 마련하고, 불상, 무신도 등 준비하여 점술 용역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2017년부터는 점술 용역에 대한 수입이 증가하였고, 2018년 6월에는 별도 사업장에 법인으로 보는 단체 승인을 받아 점술업을 하고 있었다. A 씨는 물적 시설 없이 직원을 고용없이 독립된 자격으로 점술 용역을 공급하고 대가를 받는 인적용역은 면세 사업으로 부가가치세 과세사업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점집을 사업장으로 점술 용역을 제공하였다면 사업에만 이용한 건축물이므로 물적 시설을 갖춘 과세사업에 해당되지만, 거주지에서 점술 용역을 제공하면서 주거용으로도 사용하여 과세사업이 아닌 면세사업이 분명하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점술 용역과 관련한 물적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된 업무에 대한 노무 등을 제공한 사실이 입증된 근로자 또는 노무자가 있어야 하는데 세무서에서는 이에 대한 과세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세무서는 KBS에서 방영된 방송영상과 유튜브 영상이 사업장에서 촬영되었고, 신당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서 사업장에서 점술 용역이 제공되었다고 말했다. A 씨는 영상은 거주지에서 광고·홍보 영상을 촬영할 수 없어 단순히 촬영 장소로만 신당을 사용한 것으로 사업장이 아니라고 했다. 세무서는 A 씨의 주장에 대해 2015년 2월 인터넷 신문의 기사 내용에 2015년 1월부터 거주지에서 물적 시설인 신당을 마련하여 점술업을 영위하다가, 2015년 10월부터 사업장으로 신당을 이용했고 2016년 6월 방송에 출연하여 별도 사업장에서 점술 용역을 제공한 사실이 있어 최소 2016년 6월 이후에는 별도 사업장에서 점술 용역을 제공하였음이 확인된다고 주장하였다. A 씨와 세무서의 세금 다툼에 대하여 조세심판원은 A 씨는 유명한 방송인으로서 별도 사업장에서 최소 2017년부터 점술 용역을 제공한 사실이 각종 방송 및 유튜브에서 확인되고, 네이버 지도에서도 B 라는 간판이 부착된 사실을 근거로 세무서에서 점술 용역을 과세 대상으로 보아 부가가치세와 사업 소득세를 부과한 것에 잘못이 없다고 결정하였다. 한편 국세청은 영화 파묘의 퇴마사(굿을 해서 몸에 들어있는 귀신을 빼낸다는 무속인)도 과세 대상이라고 답변하였고, 종교 시설로 등록한 00암자의 지주로 등록하여도 계속적·반복적으로 점술·무속 행위를 하였으면 종교 활동과 관련 없다고 과세한 적이 있다. 이처럼 점술가, 무당, 관상가는 종교인으로 등록하고 점술 용역이 종교 활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종교 단체는 종교 활동으로 받는 금전을 단체의 기부금으로 처리하면 비과세하고 개인 종교인 활동으로 직접 대가를 받으면 과세 대상이다. A씨도 집에서 대가를 정하지 않은 개인 가사 활동이라며 세금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개인이 신당 등 사업 시설이 있고 반복적으로 점술 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면 한국표준사업분류에서도 개인 서비스업으로 분류하는 것처럼 부가가치세와 사업소득세 과세 대상이 맞다. 박영범

[기자의 눈] 의원님들 무슨 법이 만들어지는지 아시나요?

1923개. 지난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지난 달 30일까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법안의 갯수다. 87일이니 3개월도 안 됐는데 국회의원 300명이 1명당 평균 6.41개씩 법안을 쏟아낸 셈이다. 상임위원회별로 무슨 법안을 냈는지 살펴봤더니 황당한 경우도 왕왕 보였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은 최근 풋살장 규제법안을 내놨다. 내용을 살펴보면, 규제를 받는 등록 또는 신고 체육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풋살장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이용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소음과 조명 탓에 인근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거지역에서 이격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식이면 어느 누가 도심에 풋살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공 한 번 차자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어느 누가 가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규제 대상에 편입시켜면 이용자들이 풋살경기 중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 지 의문이고, 소음과 조명이 문제이면 해당 기준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접근법과 발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또다른 의원실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과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냈다. 현행법이 안전인증기관의 지정 요건에 대해 구체적인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신뢰성과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영리법인을 배제하고, 비영리 법인만이 이에 해당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법안 요지다. 이 경우도 비영리법인 자체가 이익집단이 될 것이고 돈벌이 수단을 갖게 될 것이 명약관화해 보인다는 점에서 사실상 시민단체에 이권사업 진입을 가능케 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사뭇 의심스럽다. 국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경쟁적으로 법안들을 '찍어내기'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공청회나 토론회와 같은 현장에 나가보면 이미 효력을 갖고 시행 중인 법률 때문에 울고 아파하는 국민들이 많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처럼 한 번 만들어진 법은 개정하기도 쉽지 않고, 폐지하는 건 더욱 그러하다. 국회의원 개개인 모두가 입법기관인 만큼 당위론도 좋지만 국민생활에 미칠 영향을 세심하게 고려하며 신중을 기해주길 바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E칼럼] 북극항로와 에너지 이슈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북극항로(NSR·Northern Sea Route)가 이번 새 정부 들어 에너지고속도로와 함께 에너지 분야의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과해 아시아(특히 동북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로를 말한다. 우리나라가 속한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보면 미국/캐나다 위를 지나 유럽으로 가는 북서항로와 유라시아 대륙(주로 러시아) 북쪽을 지나 동쪽으로 베링 해협까지 가는 북동항로 등 2개로 나뉜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신북방정책의 추진을 위하여 러시아 위를 지나는 북동항로의 미래 가능성을 논의하였으며 여러 싱크탱크에서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 중국, 일본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국제학술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로 북동항로의 가능성이 낮아지자 잠잠해지던 북극항로 논의는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및 그린랜드에 대한 소유권 주장으로 북서항로에 관심을 보이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재명 정부는 북극항로 사업을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 리스트에 올리고 추진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와의 협력은 우리나라의 여러 정부에서 추진해 왔으며, 이때 에너지, 특히 LNG 운반선을 통한 천연가스 무역은 언제나 한-러 협력의 중심에 있어 왔다. 그러나 북극항로는 단순히 LNG뿐만 아니라 무역의 새로운 항로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특히 러시아 위를 지나는 북동항로에 주목한 것은 짧은 수송시간 및 크게 낮아질 물류비용 때문이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한국이 유럽과 동북아시아를 잇는 물류허브 기지로 부상한다는 기대감이 높았다. 2013년 5월 한국은 북극이사회 옵서버 자격을 취득한 직후 상업 운항 테스트를 시행하였다. 또한 국내 조선사들은 북극항로를 지날 수 있는 천연가스로 운항하는 쇄빙선을 만들고 LNG 운반선을 만들어 러시아에 수출하였다. 우리나라와 함께 북극이사회 옵서버가 된 중국은 다롄항을 북극항로의 허브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역시 쇄빙선 및 LNG 운반선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일본은 홋카이도의 도마코마이항을 북극항로 중심 항구로 만들고자 하는 등 한․중․일 모두 북극항로 동북아 물류허브를 노리고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해운 항로 중 현재 이용하고 있는 남방 항로(수에즈운하 통과)는 약 2만 2천 km인 반면 북극항로는 단 1만 5천 km밖에 되지 않는다. 즉, 기존 항로 보다 30% 이상의 해운물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북극항로가 관심을 받는 진짜 이유는 바로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북극의 얼음이 계속 녹아 2030년이면 북극항로를 최소 6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운송량은 해마다 늘어 COVID-19 직전에는 약 3,500만 톤까지 증가했다. 러시아는 2030년 해당 항로의 물동량이 1억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2035년까지 북극해 항로 구간에 액화천연가스 터미널과 석유/석탄 터미널 등을 건설한다고 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은 제조업이 중심인 비슷한 산업구조와 석탄 중심의 부존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구가 많아서 자체적인 에너지전환 노력만으로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 확보는 물론 기후변화 협상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한․중․일과 러시아 및 몽골을 모두 아우르는 동북아시아 지역 간 협력체를 구성한다면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러시아와 몽골은 재생에너지 및 화석에너지 모두 풍부하여 한․중․일과 에너지 공급망을 연계한다면 이 지역의 에너지 안보 달성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 시베리아지역은 인구가 적고 개발의 필요성이 높아 온실가스 감축 사업 가능성이 커서 기후변화협약 목표 달성에 크게 도움이 되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에너지 부문 고민거리를 일거에 해결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이 다시 한번 앞서갈 수 있는 새로운 수출 인프라의 건설이자 동시에 에너지 이슈를 일거에 해결할 방법으로 거의 유일하기에 다들 북극항로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를 맞아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북극항로 정책은 에너지가 국제적이고 지정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임을, 우리나라는 여전히 90% 이상의 에너지와 전략 광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북국항로 정책 추진에 기대가 크다. 허은녕

[기자의 눈] ‘자갈밭’ 빠진 車보험, 수입·지출 중 하나는 정상화해야

영화 'F1 더 무비'에는 트랙 바깥쪽에 조성된 그래블을 밟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그래블은 차량의 트랙 이탈을 막기 위한 자갈밭으로, 이 곳에 들어서면 부품 훼손 또는 타이어 펑크로 움직이지 못해 크레인으로 '구조'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국내 자동차보험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료 인하와 보험금 지급 증가 등으로 손해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제도적 지원사격도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올 1~7월 손해보험사 6곳(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한화손해보험)의 누적 손해율은 84.0%로 집계됐다. 1~6월도 82.7%로 손익분기점(BEP)에 육박했으나, 7월 92.0%를 기록하면서 수치가 더욱 나빠졌다. 차보험은 장마철 침수사고 증가, 여름휴가철 차량 이동 확대 등으로 통상 하반기 손해율이 상반기 보다 높다. 올해 적자가 불을 보듯 뻔하다는 분석이 중론인 까닭이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솔루션은 족족 좌초되고 있다. 자동차 사고 수리시 순정부품 대신 품질인증부품을 우선 쓰도록 하는 방안은 업계에서도 '무리수'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수리비를 낮추면 보험금 부담도 완화될 수 있지만, 대체부품의 사용률이 극히 낮고 중고차 가격 하락도 감안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문제는 일명 '나이롱 환자'를 방지하기 위한 법 개정도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의 이익이 환자의 기본권에 앞설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업계가 그간 데이터 수집을 통해 도출한 통상적인 치료기간을 넘어서는 경우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가입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다. 1년에 100회 이상 도수치료를 받는 일부 환자가 전체 실손보험료를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일을 막아야한다는 것이다. 물가관리를 이유로 보험료가 4년 연속 인하된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같은 기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70% 가까이 올랐고, 최저임금도 15% 가량 인상됐다. 이는 결국 제품값에 반영되면서 물가 상승을 촉진했고, 최근에는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요금도 올랐다. 인상 요인이 있었다는 점은 같았으나, 결과는 달랐다. 일각에서는 대형사가 반기에 수천억원, 중형사도 수백억원 상당의 당기순이익을 내는데 차보험 손익까지 챙겨야하냐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시장경제에서 어느 한 쪽의 영리활동을 억제하면 소비자후생 저하 등 다른 쪽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정부도 밸류업과 코스피 상승을 추구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제도 개선을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데스크칼럼] ‘노인을 위한’ 정부는 없나

정년 나이인 만 60세를 넘겼다. 정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몸과 마음의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정규직 급여를 받는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또한 우리 사회에 늘 고마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멀지 않은 시점에 정규직에서 물러난 이후 어떻게 노후생활을 건강하게, 소박하게 영위해 나갈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 시행하거나 사라지는 노인 복지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의 모습도 종종 발견한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시내 서점에서 숱한 서적들 가운데 책 한 권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는 제목의 책으로, 표지를 둘러싼 띠지의 광고 문구 중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 '자신의 나이를 잘 사용할 줄 안다면 즐거움이 가득 찰 것이다'는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72세에 이 책을 집필했다는 스위스 태생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이 나이에도 무엇을 하고,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바라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노년기의 자유'라고 갈파했다. 또한, 자신을 65세에서 84세 사이인 제3의 인생기에 속하는 '젊은 노인'이라고 정의했고, 70대가 인생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시기라고 말했다. 아직 책장의 절반도 넘기지 못한 수준이지만, 책을 언급한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부터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0% 이상를 차지한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의 젊은 노인들 가운데 스스로 '가장 만족스럽다'고 여기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 만족도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발표 2023년 기준 40.4%(66세 이상), 우리나라 국가통계연구원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보고서(2025년 3월)의 2023년 기준 39.8%로 조사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OECD 38개 회원국 노인빈곤율 순위 1위, 세계 평균 노인빈곤율(16.1%)보다 약 2.5배 높다. 그렇다보니 정년 이후에도 안정된 노후를 즐기지 못하고 저임금 단순직의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의 노인 경제활동 참가율이 2023년 37.3%로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지난주 '먹사니즘'을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2026년도 정부 예산안이 공개됐다. 하지만, 고령층 복지 예산을 찾아본 결과 '곁다리식' 시혜성으로 와 닿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기껏해야 노인 일자리를 올해 110만개에서 5만 4000개 더 늘리는데 2004억원, 신규 예산인 어르신 스포츠강좌 프로그램 지원 75억원 증액한 내용이 눈에 뛸 정도였다. 5년 뒤인 2030년에는 국내 노인 인구 비중이 약 25%에 육박할 전망이다. 전체 인구에서 4명 중 1명이 노인인 셈이다. 출생률 저하, 인구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노인 인구의 노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정책입안 과정이나 사회 통념에서 여전히 '나이 듦'의 잣대로 노인 문제를 사회적 비용 요소로 고려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저출산에 치중돼 있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에서 고령화 정책기구를 분리해 별도기구로 신설해야 한다. 더이상 노인 정책을 시혜성 시각이 아닌 생산성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책에서 피력한 '노인세대의 유연성과 창의성'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윤석헌 시평] 금융감독체계 개편 마무리해야

“이번엔 되는 줄 알았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해 한 말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기대를 모았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대통령의 주담대 6억원 규제 칭찬 후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인사 후엔 방향성과 추진 여부까지 헷갈린다. 핵심인 금융위 해체설은 약화되고 소비자보호기구 분리설만 명맥을 유지하면서, 초심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수차례 반복된 금융감독개편 논의가 빛을 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모피아(재무부+마피아의 약자를 합성한 조어)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사고와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던 이유 역시 모피아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금융위를 해체하여 관치금융을 단절하고 모피아 낙하산을 중지하는 것이 소비자보호 강화 및 금융산업 발전의 첩경이라 할 것이다. 금융위 체제를 유지하면서 소비자보호기구만 분리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격으로 소비자보호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해 기대가 높았던 데는 새 정부 역량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몇 가지 배경논리가 작용했다. 첫째, 한국경제 선진화 과정에서 국내 금융권은 중개역량을 키워 경제 선진화를 지원할 소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된 관치금융과 모피아 낙하산 등은 경제 성장기 역할에 불구하고 국내금융에 무능력과 무책임이라는 후과를 남겼다. 금융사는 정부 보호막 뒤에 숨어 위험을 부담하지 않았고 중개역할 수행보다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부실 상품을 불완전 판매하면서 정부의 허가를 핑계댔다. 감독당국은 자신들의 집행책임은 제한적일 뿐이란다. 금융위는 산업진흥과 감독 간 최적 선택을 했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금융권에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자리잡았는데, 이를 개혁하지 않고 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둘째, 국내 금융산업은 IMF 체제 이전에는 정부 지시로 기업금융을 수행했고, 이후에는 정부의 금융산업 건전성 우선 정책 하에 위험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면서 위험관리 역량이 자라지 못했다. 그 결과 카드사태, 저축은행사태, DLF사태, 사모펀드사태 및 최근 홍콩ELS사태 등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계속됐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의 산업진흥정책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데, 감독체계 개편 반대론자들은 하드웨어를 건드리면 시장이 불안정해지고 불필요한 혼란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앞뒤가 바뀐 논리다. 또한 반대론자들은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 비유가 견제와 균형을 의미함에도, 운전자 입장에서 둘을 함께 운영하는게 편리하다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소비자 피해의 지속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글로벌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금융의 지나친 양적성장이 위험을 크게 확대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한국경제도 관치 덕분에 양적성장을 이루었으나 이제는 질적성숙이 필요하고 민간금융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 즉 앞으로 정부는 시장에 직접 개입과 참여를 자제하고 금융제도와 정책 수립 등으로 시장의 예측가능성 제고에 주력해야 한다. 이제 민간 중심 금융감독체계 전환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민간기구의 공권력 행사 문제다. 금융위설치법상 금융위사무처는 '금융위원회의 사무 처리 및 설치법에 규정된 업무'를 수행한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소속기관에 대한 업무 지원'과 더불어 '검사 및 제재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검사 및 제재 업무'는 금감원의 고유업무이고, 그 외는 양자간에 실질적 차이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금융위사무처 업무를 금감원으로 합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음, 감독정책의 공적 민간기구 이양 과정에서 시장의 불안정 발생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법과 제도로 꼼꼼히 준비하여 시행하면 문제될 게 없고 이행과정에서 금융선진화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영국, 호주, 네델란드 등 공적 민간감독기구 운영 국가들의 사례를 참조할 수도 있겠다. 이제와 개편작업을 접는 것은 관치금융 지속을 시그널하는 의미가 있다. 금융소비자 피해가 지속되면 금융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바닥날 가능성도 우려된다. 국회 산하에 TF를 구성하고 그간 제시된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여 올바른 개편방향을 찾는 노력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래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계기로 한국금융이 관치를 벗고 한국경제 선진화 동력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윤석헌

[이슈&인사이트] 국익 외교의 성과, 이제는 경제에 올인할 때

우려와 걱정이 많았던 한-미 정상회담이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났다. 젤렌스키 등 트럼프와 만났던 세계 정상들이 그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한국과 특히 한국 좌파 정권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을 홀대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무사히 성공적으로 첫 상견례를 마쳤다. 우리와 미국은 동맹이지만 여전히 사대주의가 우리 몸에 배여 있어 기성세대와 보수 세력들의 시각은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회담 분위기와 성과를 마치 과거 조선 시대 왕들이 중국 황제에게 책봉을 받는 의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회담을 앞두고 우리가 걱정했던 것들은 우리 대통령이 홀대를 받지 않을까였고 한미 방위분담금을 GDP 대비 5%까지 올리라고 요구할 지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다시 우리에게 추가적인 투자와 관세협상 시 우리가 제시한 3,500억 달러의 구체적 명세표를 달라고 하지 않을까였다. 특히 회담을 몇 시간 앞두고 트럼프가 트루스 소셜에 올린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거기서 사업할 수 없다"라는 글로 인해 한미 정상의 만남이 무산 내지 파투가 나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이런 오해는 정상간의 만남에서 풀렸다. 트럼프가 항상 정상들과 만남 전에 쓰는 고도의 전술인지 모르지만 평택 기지 소유권을 얘기하려고 밑밥을 깔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트럼프가 우리 조선산업에 관심을 보여주면서 미국내에서 제조한 군함 외에도 한국에서 제조한 배를 사 주기로 한 것은 영내 건조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의 법 개정과 동시에 좀 더 많은 배를 우리 땅에서 만들 수 있게 해 줘 우리 조선 업계에게는 커다란 선물을 준 셈이다. 앞으로도 조선 산업은 우리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계속해서 사용할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도 보잉 항공기 100대 추가 구입과 한국 기업들의 1,500억 달러 투자를 선물로 가지고 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또 다시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을 위한 조인트 벤처를 트럼프가 다시 꺼내 어떻게든 일본과 같이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에 발을 담가야 할 것이다. 현재는 경제성이 떨어지지만 앞으로 열릴 북극항로와 연계한 사업으로 발전시킨다면 새옹지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농수산물 추가 개방과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관세협상 타결 시 우리가 제안한 3,500억 달러에 대한 구체적 명세표 요구를 받지 않은 것도 크나큰 성과다. 우리도 일본처럼 투자금 중 상당부분은 금융과 담보 제공의 형식으로 끌고 갈 예정인데 이번에 미국이 이런 간접투자 말고 공장을 세우는 것과 같은 직접 투자를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본과 EU와 동조를 맞출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고 이 또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과 부를 가지고 있는 정통 보수 세력들이 우려하는 것은 변치 않는 한미 동맹과 결속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찬사를 받고 미국의 완전한 지원을 받을 거라는 트럼프이 말을 듣게 된 이상 정통 보수 세력들의 우려와 걱정도 한꺼번에 날려 버린 성과가 되었다. 정치적 변수를 제거했으니 이제 다시 경제에 올인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생지원금 지급에도 불구하고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은 0.8-0.9%로 끝날 거라 예상된다.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AI 산업에서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제 성장율은 주변국인 대만과 일본 그리고 OECD 평균에도 많이 뒤쳐진다. 내수를 진작시켜야 성장율을 높일 수 있다. 가처분 소득을 끌어 올려야 한다. 결국은 부동산이 해결의 열쇠다. 최용

[EE칼럼] 알뜰폰처럼 ‘알뜰전기’? 전력시장 혁신이 열어갈 길

전력 구매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독점적 공급 구조에 길들여져 있던 기업들이 더 이상 안주하지 않고, 직접 거래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이 여수공장에서 도매시장을 통해 전기를 사들였고, SK어드밴스드가 제도 첫 신청자가 되면서 포문을 열었다. 세아베스틸은 한화큐셀과 20년 계약을 맺어 장기 직거래의 신호를 보냈다. 한화솔루션이 뒤를 따를 기세이고, 코레일 같은 공기업까지 눈길을 주니, 변화는 산업 전반으로 번질 태세다. 이는 단순히 거래 방식의 변주가 아니라, 전력시장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웅변하는 장면이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의 시선은 여전히 '전기요금 인상 여부'라는 눈앞의 변수에만 매달려 있다. 그러나 요금은 어디까지나 결과일 뿐, 본질은 전력시장의 지배구조다. 독점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요금만 억지로 눌러 놓는 방식은 손해 보는 집단과 이익을 챙기는 집단을 갈라치기 하는 단순한 제로섬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해법이 나올 수 없다. 이제는 일반 소비자의 차례다. 통신시장을 떠올려보자. 한때 KT의 독점이 굳건했던 통신산업은 이동통신 도입과 함께 SKT·KT·LG의 경쟁 구도로 재편됐다. 알뜰폰 사업자들이 우후죽순 뛰어들면서 소비자는 요금을 스스로 고를 권리를 손에 넣었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요금은 내려갔고, 서비스는 개선됐으며, 시장은 혁신의 길로 들어섰다. 전력시장도 예외일 수 없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종착역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통신도 애초에 국영 독점에서 출발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KT가 사실상 전 영역을 지배했지만, 1990년대 들어 국제 압력과 국내 규제 완화의 흐름이 맞물리면서 균열이 생겼다. 1991년 다콤, 1997년 온세텔레콤 같은 신생 사업자들이 등장하며 국제전화 시장에 경쟁이 열렸고, 이어 장거리와 시내전화까지 개방이 확산됐다. 독점이 무너지고 다층적 경쟁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며, 통신시장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었다. 물론 경쟁 사업자의 진입이 곧장 효율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7년 개인휴대통신 사업자들이 출범하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단숨에 다섯 개 업체가 뒤엉켜 경쟁하는 구조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지국을 비롯한 인프라가 과도하게 증설되며 중복투자와 과잉투자 논란이 불거졌다. 고용 불안정 문제까지 뒤따르며 산업 전반이 흔들렸다. KT 역시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9년 민영화라는 길로 들어섰지만, 기존 지위를 지키려는 저항은 완강했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표출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통신시장의 경쟁 체제는 이런 난관을 뚫고서야 비로소 뿌리를 내렸다. 전력시장 개방을 둘러싼 논의에서 늘 방어 논리로 제기되는 망 중복투자 문제, 기존 독점 사업자의 저항, 기술적·비용적 부담을 이미 통신산업은 고스란히 겪고 극복해낸 셈이다. 그 결과 소비자는 요금 선택권과 서비스 다양성이라는 실질적 혜택을 손에 넣었고, 산업은 경쟁을 통해 혁신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특히 알뜰폰(MVNO: 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제도는 통신시장의 진화를 잘 보여준다. MVNO는 자체 망을 보유하지 않고 기존 이동통신사의 망을 임대해 독자적인 요금제와 서비스를 설계해 제공한다. 막대한 망 투자 비용을 감당하지 않고도 서비스 혁신과 가격 경쟁을 촉진할 수 있었기에, 소비자는 SKT·KT·LGU+라는 3대 이동통신사의 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수십 개 알뜰폰 사업자가 내놓는 다양한 요금제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소비자 권리를 확장하고 시장 효율성을 높인 대표적 성과였다. 전력망은 물리적으로 중복 구축이 불가능하다. 송전과 배전은 국가 차원에서 통합 운영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전형적인 자연독점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이 송배전망을 토대로 공급과 판매 주체를 다양화한다면, 통신시장의 MVNO 구조와 유사한 경쟁 원리를 전력시장에도 도입할 수 있다.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전력중개사업자(aggregator)다. 다수의 발전사업자와 신재생에너지 설비, 가정용 태양광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분산형 전원을 하나의 '가상발전소(VPP)'로 묶어 전력시장에서 거래하거나 소매시장에 공급하는 구조다. 개별 소규모 전원이 시장에 직접 참여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중개사업자가 대신 메워주는 것이다. 둘째, 소매사업자(retailer)다. 이들은 송배전망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전력 도매시장에서 확보한 전력을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 인증 전력 상품,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 맞춤형 요금제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설계해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한다. 즉, 송배전망은 공공적 독점으로 두되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개방하고, 그 위에서 전력중개사업자와 소매사업자가 경쟁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자는 지금처럼 한전만 상대하는 획일적 구조에서 벗어나, 통신시장에서 알뜰폰을 고르듯 자신에게 맞는 전력 공급자와 요금제를 고를 수 있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적 서비스의 도입을 촉진할 뿐 아니라,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새로운 전력시장 질서를 열게 될 것이다. 전력시장 거버넌스를 개혁하지 않는 한, 요금 논란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정부는 전기료 조정이라는 미봉책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력시장에 아예 공을 넘겨 스스로 그 책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소비자들도 더이상 '전기세'라며 인상 마다 정부를 탓할리도 없고, 원자재 가격 하락때는 전기료도 하락하는 난생 겪어보지도 못한 호사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에너지 위기와 요금 갈등을 동시에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유종민

[EE칼럼] 정답을 찾는 사람 vs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지난 8월 18일자 영국 가디언지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34세 소설가 리에 쿠단이 ChatGPT를 활용해 쓴 소설 『심파시 타워 도쿄』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작품의 5% 정도가 AI로 작성하였다는 사실을 작가 스스로가 알리면서 일본 문단은 물론 전 세계에서 텍스트 문예 전문가 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상황을 보며 나는 다른 질문을 하게 됐다. 관심의 초점이 “AI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맞춰져 있는 동안,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는가"였다. 리에 쿠단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I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 과정을 반영할 수 있다." 그녀는 AI를 단순한 글쓰기 도구가 아닌, 사고를 확장하는 대화 상대로 활용했던 것이다. 나아가 리에 쿠단은 더 이상 출판사나 평론가가 원하는 답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정말 알고 싶었던 것—현대 일본 사회의 동정심 문화, 언어 변화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AI와 함께 탐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질문들이 수상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AI 시대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 우리는 더 이상 남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알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정답 찾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이 문제의 답이 뭐지?" 아이들은 선생님이 원하는 정답을 맞히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문제집을 푼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더 치열해진다.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교실에 앉아 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지만, 이번엔 취업이라는 새로운 정답을 찾아야 한다. “면접관이 원하는 답이 뭘까?" 자기소개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작성되고, 면접 답변은 인터넷에 떠도는 '모범 답안'을 외우느라 바쁘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원하는 게 뭘까?" “이 프로젝트의 성공 기준은 뭘까?"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MBA를 밟고, 각종 자격증을 따고, 업무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다. 퇴근 후 시간과 주말까지 반납하며 끊임없이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는 지식을 쌓아간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또 다른 정답 찾기가 시작된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서를 읽고, 부모 교육을 받고, 아이 교육비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아이에게도 같은 길을 걷게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정답을 향해. 그런데 이 모든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10년 전 열심히 딴 컴퓨터활용 자격증, 지금은 쓸 일이 없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 지식의 70%는 실무와 거리가 멀다. 몇 백만원을 들여 수강한 마케팅 과정에서 배운 내용들, 요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 더 충격적인 건 AI의 등장이다. 미국에서 ChatGPT는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10% 성적을 기록했고, GPT-4는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했다. 우리가 밤새워 외운 지식들을 AI는 몇 초 만에 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AI 시대의 전문성은 더 이상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리에 쿠단이 아쿠타가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기존 문학 지식을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누구도 묻지 않은 질문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의사도 이제 의학 지식을 많이 외우는 것보다, 환자의 복잡한 상황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정교한 질문으로 변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변호사도 판례를 많이 암기하는 것보다, 복잡한 법적 상황을 AI와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질문 설계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수동적 학습에서 능동적 질문 창조로 전환할 수 있을까? 첫째, 나만의 궁금증을 찾아라. “취업에 도움이 되려면 뭘 배워야 할까?" 대신 “내가 정말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일까?"를 물어보자. 리에 쿠단처럼 자신만의 관찰과 경험에서 출발한 질문이 가장 강력하다. 둘째, 구체적 맥락을 더하라. “성공 방법을 알려주세요" 같은 추상적 질문이 아니라, 나의 상황, 제약 조건, 목표를 구체적으로 담은 질문을 만들어라. 그래야 내게 맞는 맞춤형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셋째, AI와 대화하듯 질문하라.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 같나요?" “제가 놓치고 있는 관점이 있을까요?" 같은 식으로 협력자로서 AI의 다양한 관점을 활용하라. 넷째, 질문을 계속 발전시켜라. 첫 번째 답변에 만족하지 말고,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같은 후속 질문으로 탐구를 심화하라. 80년간 지속된 '정답 찾기 경쟁'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수동적으로 지식을 쌓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을 위해 능동적으로 질문을 만들고, AI와 함께 답을 찾아가는 시대가 왔다. 오늘부터 우리도 시작해보자. “남들이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대신 “정말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질문을 만들어야 할까?"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쌓인 나만의 질문들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전문성이 되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질문하는 자가 미래를 주도하는 시대, 이제 시작이다. 김한성

[기자의 눈] 새로울 것 없는 유통 트렌드 ‘도긴개긴’

유통업계 기사를 쓸 때 지겹도록 마주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트렌드'이다. 유행에 민감한 업계인 만큼 시류를 잘 포착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비슷한 사례가 반복돼 진부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팝업이 대표 사례다. 짧은 시간 내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어 팝업은 갈수록 유통가의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팝업스토어 전문 업체 스위트스팟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운영된 팝업 스토어 수는 1488건으로 전년동기 680건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만큼 식상하다는 평도 많다. 천편일률적 구성으로 새로운 느낌을 주는 척하는 팝업들이 쏟아져서다. 공간 전환이 용이한 백화점업계만 봐도 팬덤이 두터운 인기 IP(지적 재산권) 위주로 팝업 경쟁을 벌이고 있다. IP 관련 굿즈 전시·판매, 포토존 구성의 팝업 수준이지만, 팬덤 충성도를 발판으로 '행사 기간 기대치 이상의 모객 효과를 거뒀다'는 소식이 흔하게 들린다. 상품 판매 전략도 닮음꼴이 많다. 앞서 다이소가 저가 뷰티·건강기능식품 시장을 개척한 이래 올 들어 일부 편의점·대형마트도 관련 사업을 본격화했다. 가격대마저 5000원 이하 균일가를 앞세운 다이소를 벤치마킹한 듯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하며 견제에 나섰다. 전통적으로 식품에 강점을 보였던 이들 유통업체가 '다이소 따라잡기'라는 수식어를 불사하고 유사한 전략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돈이 돼서다. 특정 제품군에 집중하는 '카테고리 킬러' 전략을 벗어나 사업성 높은 품목으로 상품 다각화에 나선 것이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짙어지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업계 중론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일로로 치닫으면서 유통업계도 사업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시간 대비 인지도 제고 효과가 높은 팝업을 택하거나, 공들인 제품 연구개발보다 박리다매형 초저가 건기식·뷰티에 눈을 돌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트렌드를 빌미로 흥행 보증된 것만 시도하는 속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만큼 특색 있는 콘텐츠가 주목받을 가능성도 높다. 갈수록 트렌드 수명이 짧아짐에 따라 독창적인 콘텐츠를 적극 육성하고, 이를 지속가능한 성장 열쇠로 연결짓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