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Energy&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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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전환은 에너지변환에 달려있다

에너지전환은 에너지변환에 달려있다

인류 문명의 도약은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변환(Energy Conversion) 기술의 등장과 궤를 같이했다. 불을 사용하며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꿨고, 증기기관을 통해 열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며 산업혁명을 일궈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전기 문명 역시 화석연료가 가진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꾸는 에너지전환(Energy Transition)이 지상 과제가 된 것이다. 여기서..

[EE칼럼] 마찰의 실종

마찰의 실종

우리 사회에서 마찰(摩擦)은 대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 간의 마찰은 불편한 요소이고 피곤한 요소이다. 기관 간의 마찰도 다르지 않다. 불편하고 피곤하다. 심지어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마찰이 없다면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밀고 당김이 있어야만 균형점이 찾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사업자와 규제자를 보자. 사업자는 어떻게 하면 값싸게 잘 만들지가 관심사이다. 반면에 규제자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만들지, 사회에 악영향을 기치지 않을지가 관심사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관심사는 상충된다. 여기서 규제자가..

이슈&인사이트

[Issue&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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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중금리 대출 확대와 국민경제의 선순환

중금리 대출 확대와 국민경제의 선순환

최근 금융위원회는 중·저신용 계층을 위한 중금리 대출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번 대책은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의 협력을 기반으로 중금리 대출의 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보증 연계 및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금융회사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신용평가체계의 고도화를 병행하여 기존의 정형화된 신용 평점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보다 정교한 위험 기반 접근을 도입하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단순한 대출 확대 정책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 내에서 '중간 신용계층'을 흡수하고 금융시장 구조를 정상화하..

[이슈&인사이트] 나프타 수급 위기는 도시유전 개발 절호의 기회

나프타 수급 위기는 도시유전 개발 절호의 기회

나프타는 '산업의 쌀'이라고 해서 일상용품의 기초가 되는 원료다. 그러나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합성 섬유, 페트병, 화장품 용기, 비닐봉지, 배달 용기와 같은 포장 용품, 스마트폰 케이스, 장난감,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외장재와 같은 생활용품, 타이어, 차량용 내외장재, 건축용 단열재 및 파이프 등의 플라스틱의 원료가 나프타인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최근에 호르무즈 사태로 쓰레기봉투 투매가 나서야 나프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품귀가 났을 때, 산유국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서 해결하려고만 하지 자국의 도시유전을 개발해서 조..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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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중금리 대출 확대와 국민경제의 선순환

최근 금융위원회는 중·저신용 계층을 위한 중금리 대출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번 대책은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의 협력을 기반으로 중금리 대출의 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보증 연계 및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금융회사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신용평가체계의 고도화를 병행하여 기존의 정형화된 신용 평점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보다 정교한 위험 기반 접근을 도입하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단순한 대출 확대 정책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 내에서 '중간 신용계층'을 흡수하고 금융시장 구조를 정상화하려는 전략적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중금리 대출 확대는 여러 긍정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가계의 이자 부담 완화를 통해 소비 여력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던 차주들이 중금리 대출로 전환할 경우 평균 차입 비용이 하락하게 되고, 이는 고신용자 대비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중·저 신용 계층의 소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거시경제적으로 이는 내수 진작 및 경기 안정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경로로 작용한다. 둘째, 금융 포용(financial inclusion)의 실질적 진전이다. 기존에는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제도권 금융 접근이 제한되었던 계층이 합리적인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의 분배적 기능과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된다. 이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경제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구조적 효과를 지닌다. 셋째, 비제도권 금융 및 불법 사금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점도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중금리 대출 시장이 충분히 형성될 경우, 이는 고금리 대출과 저금리 대출 사이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기능하며, 금융 취약계층이 비제도적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지한다. 넷째, 금융산업의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금융회사는 보다 정교한 리스크 기반 가격결정(risk-based pricing)을 구현해야 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신용평가모형, 데이터 활용, 핀테크 기술의 발전을 촉진한다. 미국 사례는 상기 중금리 대출 정책 방향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참고 사례이다. 미국에서는 커뮤니티 은행과 핀테크 기업이 협력하여 중금리 대출 시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다. 특히, 렌딩과 같은 플랫폼 기반 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안 데이터(예: 소득 흐름, 소비 패턴,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가 활성화되었다. 이는 전통적 신용평가로 포착되지 않던 차주들의 상환 능력을 보다 정밀하게 반영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규제 측면에서도 과도한 금리 통제보다는 투명성 제고와 경쟁 촉진에 방점을 두었으며, 결국, 중금리 대출은 금융 포용을 확대하는 동시에 시장 기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국내의 금융 정책 설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물론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 과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중금리 대출의 금리 범위와 정책 기준을 시장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준금리 및 조달 비용이 변동하는 환경에서 경직된 금리 기준은 금융회사의 참여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중금리 대출의 금리 구간을 일정한 고정값이 아니라, 기준금리, 신용스프레드, 기대손실률 등을 반영한 '연동형 밴드'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준금리 + 일정 스프레드 범위'와 같은 방식으로 상·하한을 조정하면 시장금리 변화에 자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리스크 기반 가격결정이 가능해져 공급 유인이 유지된다. 둘째, 신용평가 인프라의 획기적 개선이 요구된다. 비금융 데이터 및 대안 정보의 활용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데이터 결합 및 활용에 대한 규제 합리화를 통해 평가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통신 요금 납부, 공과금, 플랫폼 거래내역, 소득 흐름, 고용 형태, 심지어는 사업자 매출 데이터와 같은 비금융·대안정보를 체계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데이터가 단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형태로 결합·분석되어 예측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데이터 결합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안전한 데이터 결합을 지원하는 인프라(예: 데이터 전문기관, 가명정보 활용 체계)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금융당국의 중금리 대출 확대 정책은 단순한 서민금융 지원을 넘어 국민경제의 질적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이다. 금융 접근성 개선은 소비 확대, 창업 및 경제활동 참여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이다. 향후 금융당국은 중금리 대출의 공급 확대 뿐 아니라,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 혁신, 규제 체계의 정교화, 시장 참여 유인 설계 등을 통해 중금리 대출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bienns@ekn.co.kr

[EE칼럼] 에너지전환은 에너지변환에 달려있다

인류 문명의 도약은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변환(Energy Conversion) 기술의 등장과 궤를 같이했다. 불을 사용하며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꿨고, 증기기관을 통해 열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며 산업혁명을 일궈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전기 문명 역시 화석연료가 가진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꾸는 에너지전환(Energy Transition)이 지상 과제가 된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핵심이 있다.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은 결국 얼마나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변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전환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다. 태양과 바람은 인간의 필요에 맞춰 발전하지 않는다. 전기가 남을 때는 버려지고, 부족할 때는 다시 화석연료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에너지변환 기술이다. 실제로 덴마크는 전기-열 변환(Power-to-Heat)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바람이 강해 전력 생산이 넘칠 때, 남는 전기를 히트펌프를 가동해 열에너지로 바꾼 뒤 이를 난방용 온수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기는 저장이 어렵지만 열은 보온 탱크에 담아 보관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는 버려질 전기를 실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필자도 방문이 적이 있는 덴마크 에스비에르(Esbjerg)항은 1970년대까지 어업과 오일·가스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이들 산업의 쇠퇴로 소멸 위기를 맞다가,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지원 항만으로 변모했다. 에스비에르 항은 전남, 울산 등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지역들에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에스비에르는 2024년 12월부터 기존의 석탄화력 열병합 발전소 대신 70MW급 해수 히트펌프를 통해 연간 약 28만 MWh의 친환경 열을 2만 5천 가구에 공급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인근 해상풍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하여 지역난방의 탈탄소화를 이루어낸다. 미국, 호주, 영국 등에서 활성화된 가상발전소(VPP) 모델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변환의 정수를 보여준다. 테슬라는 자체 ESS인 파워월(Powerwall)과 전기차 배터리 등의 형태로 분산돼 있는 에너지 자원을 정보통신기술로 통합해 하나의 발전소인 것처럼 전기를 공급한다.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VPP 플랫폼에 연결된 ESS나 전기차 배터리의 방전을 유도해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한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생산이 급증할 때 ESS나 전기차 등이 잉여 전력을 최대한 흡수한다. 이는 전기가 필요한 시점에 맞춰 에너지의 흐름을 전환함으로써 거대한 화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낸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이미 존재하는 에너지를 필요에 따라 효율적으로 변환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주와 호남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수요를 초과해 발전을 강제로 중단하는 출력제어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변환 기술과 함께 전력시장의 변화가 필요하다. 전기가 남아돌 때와 부족할 때의 가격 신호가 실시간으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기업이나 개인이 ESS를 설치하거나 에너지변환 기술에 투자할 경제적 유인이 약하다. 에너지를 변환하는 기술적 효율만큼이나, 수요와 공급을 잇는 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시스템적 변환 효율이 절실한 시점이다. 진정한 에너지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력망에 갇힌 에너지를 열, 운동, 화학 에너지 등으로 자유롭게 변환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전기가 쌀 때 사용하거나 저장하고, 비쌀 때 소비를 줄이는 수요유연성을 발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에너지는 그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때 비로소 가치가 극대화된다. 에너지변환 기술을 보급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설계할 때, 에너지전환은 거창한 구호를 넘어 경제적 기회이자 일상이 될 것이다. bienns@ekn.co.kr

[기자의눈] ‘고위험 저수익’…누가 담합 신고하겠나

내부고발 시장에서 신고는 투자다. 그것도 직장과 인간관계와 가족 생계를 원금으로 집어넣는 고위험 투자다. 고위험 투자에는 고수익이 따라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고민하는 내부고발자 입장에서 보면 가진 게 용기이고, 그 용기를 짜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계산이다. 담합이 의심되는 정황을 알고 있지만, 입증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이미 위험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회사에 들키면 끝이다. 업계에서 이름이 돌 수도 있고, 보복 소송에 휘말려 수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가족의 생계를 걸어야 한다. 그렇게 모든 걸 걸고 신고를 한다. '양심의 호가'는 얼마일까. 공정위가 책정한 답은 이렇다. 잘하면 5억, 못하면 100만원.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정위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4~2025년 2년치 포상금 지급 건수 70건을 뒤져봐도 5억원 이상은 딱 1건이다. 절반 이상은 100만원을 넘지 못했다. 1억원 이상 고액 지급은 전체의 7.1%인 5건에 불과했다. 건당 평균 지급액은 2024년 3823만원, 2025년 3962만원이었다. 직장과 인간관계와 가족 생계를 담보로 잡히고 받아 든 수익률이 이 정도다. 부동산으로 치면 실거주 의무에 양도세까지 떼이고 손에 쥔 게 없는 꼴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포상금이 가장 많이 나가는 건 담합 사례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신고자의 계산법은 단순해진다. “걸리면 인생 끝, 안 걸리면 4000만원." 그 계산은 곧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진다. '큰 담합 아니면 돈 안 된다', '입증 못 하면 아무것도 없다', '괜히 나만 손해다' 주식으로 치면 고위험 저수익 종목이다. 기관도 외국인도 안 사는 종목을 개미더러 사라는 격이다. 이 계산이 합리적이라면, 제도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이 시장의 수익률이 낮은 건 과징금이 작아서다. '억 소리 나는 로또급 포상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에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징금 자체가 낮게 책정돼 있는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답했다. 위험에 상응하는 보상이 없다면 '결정적 제보'는 나오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 말대로 정말 “로또보다 나은 신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야 한다. 그 믿음 없이는 담합은 계속 은밀하게 이뤄질 터다.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물가로, 납세자가 세금으로 떠안는다. 지금처럼 100만원~5억원짜리 호가를 고시해놓고 매수세를 기다리는 나라는, 담합의 청구서를 훨씬 비싸게 받아든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이슈&인사이트] 나프타 수급 위기는 도시유전 개발 절호의 기회

나프타는 '산업의 쌀'이라고 해서 일상용품의 기초가 되는 원료다. 그러나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합성 섬유, 페트병, 화장품 용기, 비닐봉지, 배달 용기와 같은 포장 용품, 스마트폰 케이스, 장난감,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외장재와 같은 생활용품, 타이어, 차량용 내외장재, 건축용 단열재 및 파이프 등의 플라스틱의 원료가 나프타인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최근에 호르무즈 사태로 쓰레기봉투 투매가 나서야 나프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품귀가 났을 때, 산유국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서 해결하려고만 하지 자국의 도시유전을 개발해서 조달할 생각은 못 한다. 최근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6회 심의 회의에서 '국가 전략기술 체계 고도화 방향'과 '제6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심의·의결했다. AI 전환 선도, 통상·안보 주도권, 미래 혁신 기반이라는 3대 임무 아래 10개 분야 55개 기술을 제시하고 있는데 도시유전 개발 과제는 어느 곳에도 없다. 5년간 60조 원 이상을 투자할 동 계획은 인공지능, 첨단로봇·모빌리티, 차세대 보안·네트워크,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 바이오, 차세대 전지, 우주항공·해양, 혁신·미래 소재, 미래에너지·원자력, 양자가 포함됐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2025년 세계 64개국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을 비교한 '기후변화대응 지수'(CCPI)에서 한국이 산유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인 63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꼴찌인 이유로, 불확실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 탈화석 연료보다는 오히려 신규 석유·가스 사업을 늘리려는 투자 의지 등을 꼽았다. 작금의 호르무즈 사태는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는 거대한 투자의 기회이자 도약의 기회이다. 그것이 바로 도시유전의 개발이다. 한국의 연간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약 1,100만~1,200만 톤이다. 이 중 실제로 녹여서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물질 재활용은 18%에 불과하고, 35%가 에너지를 회수하는 소각이다. 그리고 나머지 45%는 에너지 회수 없이 단순히 태우거나 매립(12%)한다. 도시유전은 재활용을 제외한 폐플라스틱에서 나프타를 뽑아내는 공정이다. 한국 도시유전은 연간 천만 톤의 폐플라스틱에서 7백만 톤의 나프타가 채유 될 수 있다. 한국 나프타 수요의 15%다. 15%의 자급자족 의미는 폄하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도시유전 개발의 성공 사례로 ㈜도시유전이 개발한 RGO 기술을 소개한다. RGO 핵심 기술은 폐플라스틱을 고열만으로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 세라믹 촉매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로 폐플라스틱의 탄소 고리를 끊는다. 전자파로 분자 결합구조를 깨트려 분자의 특정 운동을 유도하는 방식은 전자레인지의 원리와 비슷하다. RGO 기술은 500°C 이상의 고온을 쓰는 고온 열분해 방식과 달리 250°C의 저온에서 작동한다. 저온이라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 배출이 없고 에너지소비량도 적다. 수율은 70% 정도다. 전자파로 분자 고리를 끊기 때문에, 생성된 기름의 품질이 균질하다. 라벨 제거, 세척 등 전처리가 필요 없어 공정 비용이 절감된다. 2025년 정읍에 상업 플랜트(웨이브 정읍)를 준공하여 연간 수천 톤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하고 있다. 기술 원천국인 한국보다는 영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큰 관심을 보인다. ㈜도시유전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생산 원가가 수입가에 비해서 높으나, 여기에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까지 더해지면 환경성과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유류로 환원시키는 유화 환원 기술이 선진국에서 연구돼 산업현장에 적용됐으나 대부분 실패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공정 기술도 중요하지만, 폐플라스틱의 수집, 운반 등 자치단체. 시민 등의 기업 외적 제약이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름에서 나온 것을 다시 기름으로“ 만드는 도시유전 기술은 국가 전략기술 중의 기술임을 지적한다. bienns@ekn.kr

[EE칼럼] 마찰의 실종

우리 사회에서 마찰(摩擦)은 대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 간의 마찰은 불편한 요소이고 피곤한 요소이다. 기관 간의 마찰도 다르지 않다. 불편하고 피곤하다. 심지어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마찰이 없다면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밀고 당김이 있어야만 균형점이 찾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사업자와 규제자를 보자. 사업자는 어떻게 하면 값싸게 잘 만들지가 관심사이다. 반면에 규제자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만들지, 사회에 악영향을 기치지 않을지가 관심사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관심사는 상충된다. 여기서 규제자가 일방적으로 승리한다면 가장 안전한 사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가 이기면 가장 경제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이 둘이 마찰을 일으킨 결과 균형점이 잡힌다면 그 지점은 최적의 안전성과 최적의 경제성을 가지는 작품이 될 것이다. 바로 이 균형이 국민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이 균형을, 당사자간 마찰을 거치지 않고, 정치인이 잡는다면 대부분 마찰의 결과로 나타날 균형점과는 다른 지점으로 귀결될 것이다. 마찰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는 사업자나 규제자에게 편안한 상태가 된다. 마찰의 결과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사업자나 규제자 모두에게 불편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문제는 이 둘이 편안한 선택을 하는 경우이다. 규제자가 사업자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거나 사업자가 규제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 저항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악의적 편안함이다. 그러는 동안 국민과 국가는 희생되는 것이다. 마찰이 실종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국민에게도 국가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최근 국회는 여야가 크게 불균형하고 있다. 마찰이 있을 수 없다. 일방의 생각대로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되겠지만 국민에게는 그리 바람직한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공청회를 가봐도 별 이견이 없다. 반대의견이 없다. 발표 듣고 나면 그만이다. 반대의견이 없다면 공청회를 개최할 이유가 없다. 공청회 없이 진행해도 동일한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구성하는 여러 가지 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반대의견을 개진할 인사를 집어넣지 않는다. 마찰이 없다. 조용하고 일방적이고 만장일치로 진행된다. 그럴거면 위원회를 왜 만들었나? 다른 생각들을 들어보고 정책의 그늘이나 이행에 문제가 생길 것을 미리 살펴보려는 것 아닌가? 회의 결과가 만장일치라는 얘기는 회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수기만 모였다는 것이 아닌가? 학생이 공부를 마치고 문제집을 풀어봤을 때 모든 문제를 다 맞췄다면 문제집을 푼 시간은 100% 시간낭비이다. 문제집을 푸는 이유는 공부한 것 가운데 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틀리거나 애매한 문제가 나와야지 자신이 확실히 모르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다 맞았다는 것은 모르거나 애매한 부분을 찾는데 실패했다는 뜻이 된다. 만장일치의 완벽한 회의록, 기안자에서 최종결재권자까지 한 번도 수정되지 않고 서명된 문서는 문서를 보지 않고 결재를 했거나 마지막에 문서를 다시 작성해서 그렇게 짜맞춘 것일 뿐이다. 기안자에서 결재권자까지 누가 어떤 수정을 했는지를 완벽히 은폐한 서류일 뿐이다. 위원구성의 면면을 보면 그 위원회가 어떤 결론으로 끌고갈 요량으로 구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위원회라는 형식요건은 갖추었지만 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내용적 당위성은 저버린 것이다. 담당자가 일을 쉽게 풀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독재를 잘 도와줄 분들만 모신 것이다. 반대의견을 자주 내면 위원이라는 감투가 떨어진다. 그럼 전문가들은 간사의 눈치를 보고 대세를 보고 총기를 감춘다. 뻔히 문제점이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런데 그게 국민에겐 좋은 게 아니다. 이제는 위원회를 구성한 담당자가 왜 그런 성향의 위원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기안자에서 결재권자까지 누가 어떤 위원을 추천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서류를 꾸밀 수 있으니까 잡아낼 수 없을 것이다. 지식과 요령은 사람을 착하게 만들고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우리를 더 교활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마찰을 피할 방법을 찾아준다. bienns@ekn.kr

[데스크 칼럼] 안보자원으로 떠오른 ‘재생나프타’ 법제화 서둘러야

중동전쟁 여파로 플라스틱 제품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가 자원 안보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나프타 수급불안은 석화업계는 물론 식품, 유통 등 생활경제 전반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8일 나프타 수급불안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을 위해 '탈플라스틱 순환경제 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생원료 사용을 늘려 2030년 폐플라스틱 배출량을 당초 전망치 1000만톤에서 700만톤으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계획은 중동전쟁을 계기로 정부가 내놓은 종합적인 탈플라스틱 계획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긴박한 상황 속에서 마련된 대책이 무색할 정도로 구체적인 계획이나 시행 일정이 결여돼 있다. 특히 중동전쟁으로 수급 불안이 커진 나프타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핵심인 '재생 나프타' 활용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이 계획은 '재생원료로 나프타 수입을 대체한다'며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으로 만든 식품·화장품 용기, 비닐류를 재생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업계와 논의해 목표율을 설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언제까지 얼마의 사용량을 의무화할지 등 세부 내용은 없다. 특히 나프타에서 직접 생산되는 제품이 아닌 페트(PET)병 재생원료 의무사용이나 경찰복의 재생 폴리에스터 재사용, 장례식장 일회용기 사용 감축 등 다소 지엽적인 실천계획이 나열돼 있다. 바이오디젤, 지속가능항공유(SAF) 등 '재생연료'에 비해 재생 나프타 등 '재생원료'에 대한 법제도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이유는 고품질 재생원료 생산기술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아 그동안 법제도로 규율할 만큼의 제품이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폐플라스틱·폐비닐을 열분해해 재생유로 만드는 업체가 약 20곳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산하는 재생유는 모두 중질유 수준의 저급 품질로, 나프타분해시설(NCC)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나프타급 재생원료가 되지 못하고 정유시설에서 원유에 섞어 정제하는데 그칠 뿐이다. 순도가 낮은 만큼 가격도 싸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국내 한 벤처기업이 폐플라스틱·폐비닐을 전기로 열분해해 NCC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고품질의 '나프타급 재생원료'를 상용 생산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 기업이 생산하는 나프타급 재생원료는 유럽의 글로벌 자원 트레이딩 기업 T사로부터 NCC에 직접 투입 가능한 수준이라는 품질 테스트 결과를 받기도 했다. 더욱이 이 기술은 기존 열분해유 생산업체들이 사용하는 고온 열분해 방식이 아니라 전기를 사용하는 저온 열분해 방식이라 온실가스·대기오염물질 배출이 없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그러나 세계 유일의 기술로 만든 재생유다보니 이 제품을 다루는 품질 기준이나 의무 사용 규정 등이 전무하다. 이 제품은 품질상 나프타급이지만 법적으로 기존 중질유급 재생유와 똑같은 제품으로 분류된다. 저급 재생유와 같은 가격이 책정되고 의무사용 규정도 없으니 기껏 개발해 놓은 기술이 적극 활용되기 어렵다. 법제도가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신기술 발전을 반영해 기존 저품질 재생원료가 아닌 나프타급 재생원료에 대한 법제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재생유 품질기준을 세분화해 재생연료, 일반원료, 나프타급 재생원료 등을 명확히 구분하고, SAF나 바이오디젤에 적용되는 재생연료 의무사용 제도를 고품질 재생원료에도 도입해야 한다. 이밖에 국가산업단지에 재생나프타 생산시설 우선 설치, R&D 지원 등을 통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나프타 수급 문제에 보다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투숙객 ‘국적’ 따지는 숙박규제, ‘얼마나·어디서’로 바꿔야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79%는 서울 이외 지역 방문을 원하지만, 실제 66%는 여행기간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다. MZ세대 잠재 여행객 34%는 적절한 숙소가 없을 경우 방한 자체를 재고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 3월 에어비앤비가 9개국 4500명을 조사한 결과다. 외국인은 지방에 가고 싶고 지방엔 빈집이 넘치는데, 14년 묵은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 규제가 그 사이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외래 관광객은 1893만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1인당 지출액(1155.8달러)은 2019년보다 줄었고, 면세점 외국인 매출은 178억달러에서 65.6억달러로 급감했다. 관광수지는 연간 107.6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3년 연속 100억달러대 적자 늪에 빠졌다. 반면 고부가가치 의료 관광 소비는 2019년 대비 5.3배 성장하는 등 '체류형 경험' 수요는 폭발적이다. 낡은 단체 쇼핑 중심 관광에서 벗어나 체류형 소비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도록 숙박 인프라를 혁신하는 것이 수지 개선의 핵심 열쇠인 이유다. 2011년 도입된 외관민박업은 부족한 객실 확충을 위한 우회로였다. 당시 사회적 맥락에 묶여 '내국인 투숙 금지'와 '호스트 실거주'라는 족쇄를 찼다. 14년이 흐른 지금, 시장은 '동거형'보다 '독채 임대' 위주로 완전히 재편됐지만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다. 등록 업체(3059곳)보다 미신고 불법 업소(약 6만곳)가 20배나 많은 현실은 법이 시장의 수요를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글로벌 관광 대국들은 '국적' 대신 '영업일수'와 '입지'를 핵심 변수로 관리한다. 일본은 2018년 주택숙박사업법을 통해 연간 180일 영업을 허용하되 지자체 조례로 구역별 제한을 둔다. 프랑스 파리는 2025년부터 단기 임대 한도를 120일에서 90일로 강화했다. 대도시 주거권 보호를 위한 조치일 뿐, 손님 국적을 따지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내국인 허용 및 '도시민박업' 명칭 변경을 건의했고, 정부는 2026년 법 개정을 거쳐 2027년 제도 전면 시행을 준비 중인 정도다. 농촌·인구감소지역 빈집은 5만7000채를 넘어섰다. 이제는 국적이라는 낡은 잣대를 버려야 한다. 대도시는 영업일수를 관리해 정주권을 지키고, 숙박 인프라가 절실한 지방은 규제를 과감히 풀어 체류 인구를 늘리는 '지역별 차등화'가 해법이다. 14년 된 규제의 족쇄를 풀어야 비로소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K-관광 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김한성의 AI시대] AI 시대, 누가 판단을 설계하는가

김한성 투비유니콘 최고철학책임자(CPO) 2026년, 우리는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동료'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으로 업무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AI. 한국은 같은 시기 세계 최초로 AI 기본법을 시행했다. 기술과 규제가 동시에 움직이는 이 순간,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이제 AI는 검색, 금융, 행정, 정책 결정 전반을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OS)"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운영체제를 누가 설계하고, 누가 통제하는가 이다. 존 L. 오스틴은 말했다. “말하는 것은 곧 행동이다." 이제 프롬프트는 입력이 아니라 실행이다. 한 문장이 정책을 만들고, 판단을 내리고, 여론을 움직인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듯,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니체의 통찰은 더 근본적이다. 권력은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다. AI가 판단하는 순간, 그 의미를 해석하는 권력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 권력이 이미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매일 그 판단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속에서 다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권력은 지금도 우리의 일상을 통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어떤 뉴스가 먼저 보이는가, 누가 대출을 승인받는가, 어떤 정책이 채택되는가, 어떤 콘텐츠가 확산되고 어떤 의견이 사라지는가. AI는 매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은 다시 사회의 방향을 만든다. 이때 질문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 판단 기준은 누가 설계했는가. 그 기준은 누구의 가치에 기반하는가. 잘못된 판단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판단에 개입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한다. 바로, 정책의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AI 정책은 주로 기술 경쟁력 확보와 위험 규제에 집중해 왔다. 물론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AI 시대의 본질은 단순한 위험 관리가 아니라 판단 권력의 배분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AI 도입 속도와 기술 수용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판단 구조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다. 기업이 설계하고, 정부가 규제하며, 시민은 사용하는 구조. 이 구조에서는 의미를 결정하는 권력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다음 단계의 정책은 명확해야 한다. 핵심은 하나다. '판단력의 사회적 분산' 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설명 가능한 AI'에서 '참여 가능한 AI'로의 전환이다. 지금의 정책은 알고리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설명은 이해를 돕지만,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시민이 알고리즘의 판단에 질문하고,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필요할 경우 수정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공 AI 시스템에 대한 시민 감사권, 알고리즘 결정에 대한 공식 이의 제기 절차, 정책 AI에 대한 공개 피드백 플랫폼 구축이 가능하다. 이는 기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 둘째, 'AI 리터러시'에서 '판단력 교육'으로의 전환이다.현재 교육은 AI를 잘 사용하는 법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중요한 것은 사용 능력이 아니라 AI의 결과를 해석하고,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능력, 즉 판단력이다. 국가 교육 시스템은 AI 출력 평가 기준의 표준화, 에이전트 기반 토론 수업, AI 편향 분석과 수정 실습 등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학생은 더 이상 사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AI 판단에 개입하는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셋째, '데이터 경제'에서 '의미 거버넌스'로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정책은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력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통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참여형 데이터 신탁(Data Trust), AI 학습 방향에 대한 집단 의사결정, 그리고 '알고리즘 배심원제'와 같은 제도적 실험이 필요하다. 이는 데이터를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판단 기준 자체를 사회가 공동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세 가지 전환은 하나로 수렴된다. AI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판단 과정에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다음 시대의 정책이다. 기술은 점점 완벽해질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시스템은 위험하다. 질문을 멈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술은 답을 만든다. 그러나 문명은 질문을 만든다. AI 시대의 정책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국가 경쟁력의 기준도 바뀐다. 더 빠른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더 공정하고 참여적인 판단 구조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AI를 잘 쓰는 나라를 넘어, AI의 의미를 함께 결정하는 나라. 그때 우리는 기술의 사용자가 아니라 문명의 설계자가 될 것이다. bienns@ekn.kr

[EE칼럼] 트럼프 리스크와 중동 전쟁: 에너지 질서 재편의 출발점

브렉시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사태 등 이미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많은 상황에서 다시 등장한 트럼프는 관세 압박, 베네주엘라 대통령 납치, 그린랜드 강제매입 시도, 캐나다 합병 협박 그리고 미·이란 전쟁으로 세계적인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키며 동맹과 통상, 에너지 시장에 추가적인 변동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며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에너지가 있다. 에너지는 더 이상 단순한 산업재나 시장재가 아니다. 안보, 통상, 금융, 기술, 외교와 군사전략을 관통하는 국가전략의 핵심 요소다. 특히 최근의 관세 정책 강화와 동맹·국제기구에 대한 압박 및 거리두기는 글로벌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약화시키며 에너지·안보 질서를 급변시키고 있다. 이제 국제사회는 정책 자체보다 정책의 방향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구조화된 불확실성"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동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긴장은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을 재확인시킨다. 하루 수천만 배럴의 원유와 글로벌 LNG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이 지역을 통과하는 현실에서, 해상 리스크는 곧 세계 경제를 흔드는 구조적 변수다. 에너지 인프라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고 전략적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에너지 갈등은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 국가 간 이해가 충돌하는 구조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는 공급 통제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자생적 에너지 확보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럽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한 지역이다. EU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급격히 낮추며 공급망을 재편했고, 독일은 LNG 터미널 확충을 통해 새로운 수입 구조를 구축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원전 확대 정책을 통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으며, 수소 인프라 역시 장기 전략으로 추진 중이다. 이는 에너지를 시장 논리가 아닌 국가 전략 차원에서 재정의한 대표적 사례다. 중동 역시 변화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에너지 수익을 기반으로 글로벌 투자와 청정에너지 전환을 병행하며, 미국·중국·유럽과의 균형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해상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대체 수송망과 내륙 인프라 구축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 중동은 단순한 자원 공급지를 넘어 글로벌 질서의 균형을 조정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에너지, 안보, 그리고 AI 기술의 결합이다. 전력망과 데이터는 전략 자산이 되었고, 에너지 인프라 보호는 사이버보안과 군사 기술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무인 시스템과 실시간 감시·정찰 기술이 결합되면서 에너지 협력은 안보 협력으로, 다시 에너지·방산·AI 공급망 경쟁으로 이어지는 통합 전략으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는 미국 1극체제에서 다극화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고, 중동은 균형 외교를 확대하며, 미국은 선택적 개입을, 아시아는 공급망 중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이익 중심의 실용주의는 국제정치를 관통하는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질서 재편은 한국에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특히 원전·방산 분야에서 미국 의존 일변도의 기술·연료·공급 구조를 보완하고, 유럽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통해 다변화된 에너지 안보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공급선 분산을 넘어, 한국이 새로운 질서의 설계자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전환이다. 더구나 한국은 에너지와 방산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능력을 갖추고 있다. 원전, 전력망, BESS, 수소, 방산, 반도체, AI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역량은 장기간의 투자로 형성된 경쟁우위다. 앞으로의 국제질서에서는 에너지 안보, 방산 역량, AI 공급망이 하나의 전략 자산으로 통합되며, 위기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기술과 공급능력을 가진 국가가 질서를 주도하게 된다. 이제 한국은 유럽의 제도와 기술, 중동의 자본과 지정학, 한국의 기술력과 실행력을 연결하는 에너지·방산·AI 공급망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 앞으로의 국력은 단순한 경제 규모가 아니라 에너지와 기술, 안보와 파트너십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결합하고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은 수동적 대응의 시대가 아니라, 선제적으로 판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다. 한국이 에너지·방산·AI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수행할 때, 실질적인 G7 수준의 전략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김병헌의 체인지] 삼성전자에 쏠린 성과급 압박, 혁신 동력 흔든다

평택 캠퍼스 앞, 긴장감이 공기를 가른다. 확성기 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노조의 구호는 더욱 단단해진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최고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파업을 밀어붙이고, 경영진은 물러서지 않는다. 협상은 멈췄고, 대치는 깊어졌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이 장면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한국 산업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반복된 바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진 논쟁은 지금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다. 엔비디아의 급성장은 곧바로 '누가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젠슨 황은 AI 반도체 초호황 속에서 천문학적 보상과 주식 평가이익을 거머쥐며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그의 부는 혁신의 보상이었지만 동시에 불평등의 상징으로도 소비됐다. 여기서 논쟁은 단순한 시기심을 넘어 구조적 질문으로 확장됐다. 기업의 성공이 개인의 성과인가, 아니면 사회 인프라와 생태계가 함께 만든 결과인가라는 문제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초고액 자산가 과세 논의였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세금이 추진되며 기술기업 경영진이 직접 겨냥됐다. 젠슨 황은 세금을 회피하기보다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은 훨씬 냉정했다. 투자자들은 세금 증가가 결국 기업의 투자 여력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혁신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기업과 인재들이 세 부담이 낮은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떠올랐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조차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하며 신중론으로 돌아선 이유다. 분배를 강화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성장 기반을 흔드는 역설, 이미 한 차례 경험한 셈이다. 이제 시선을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자. 삼성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조의 요구는 직관적으로는 설득력을 갖는다. 사상 최대 실적, 그에 걸맞은 보상. 그러나 문제는 요구의 방식이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하겠다는 발상은 기업 경영을 경직시키는 구조로 이어진다.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의 낙차가 극단적이다. 지금의 이익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한 완충 장치이기도 하다. 이 변동성을 무시한 채 '현재의 몫'을 고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기업의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익의 성격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노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의 인프라 투자, 협력사의 기술 축적, 수많은 주주의 자본, 그리고 시장 전체의 수요가 얽혀 있다. 그럼에도 특정 집단이 선점적으로 분배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파업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파업은 권리이지만, 동시에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협상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노조의 정당성마저 약화시킨다. 그렇다고 경영진의 태도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버티기'는 전략이 아니라 방어적 습관에 가깝다. 왜 지금 투자가 중요한지, 왜 성과급 확대에 신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업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면 불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수십조 원의 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침묵은 오히려 오만으로 해석되기 쉽다.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재무적 여력이 아니라 설득의 언어다. 반도체 산업의 현실은 냉혹하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경쟁자들은 이미 다음 세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미세공정 경쟁, AI 반도체 주도권, 공급망 재편까지 어느 하나도 늦출 수 없다. 공장 하나에 수십조 원이 들어가고, 기술 격차는 한 번 벌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지금 쓸 것인가, 미래를 위해 남길 것인가'라는 선택으로 귀결된다. 이 지점에서 해법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성과급은 단기 성과의 보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약속이 되어야 한다. 이익이 클수록 보상이 늘어나는 구조는 유지하되, 그 증가분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로 이어지도록 설계된다면 갈등의 성격은 달라진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덜 받는다'가 아니라 '함께 키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고, 기업 역시 투자 여력을 지킬 수 있다. 동시에 기업은 이익의 흐름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숫자를 숨기지 않고, 어디에 쓰이는지,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순간 분배 요구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여기에 정부가 강제적 개입 대신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는 환경을 만든다면, 이익은 자연스럽게 사회로 환원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만들고 지속 가능하게 나눌 수 있느냐다. 지금의 파업과 버티기는 모두 절반의 해법이다. 노조는 명분을 소모하고 있고, 경영진은 신뢰를 잃고 있다. 반도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쟁자는 이미 다음 공정을 돌리고 있다. 선택은 분명하다. 더 크게 싸울 것인가, 아니면 더 크게 성장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시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