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신율의 정치 칼럼]민주당의 비명계, 그들의 운명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 징역형이 선고된 이후,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언급이 세간의 질타를 받고 있다. 비명계들이 움직이면 당원과 함께 나서서 죽이겠다는 언급도 있었고,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인용하며, 이재명 대표를 '신의 종', '신의 사제'에 비유하기도 했다. '명상록'을 SNS에 올린 의원은, 자신은 이재명 대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이재명 대표를 두고 '신의 사제', 혹은 '신의 종'으로 비유하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대다수 국민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 대표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교하는 민주당 의원도 있다. 이런 언급들은, 이재명 대표가 징역형을 선고받자, 진심으로 화가 났거나 감정이 복받쳐서 나왔을 수 있다. 그 이유야 어떻게 됐든, 분명한 것은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는 비명계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재명 대표의 당 장악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차기 대선 구도를 예측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해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으면, 대선 주자로써의 이 대표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겠지만, 설사 피선거권 박탈 형이 확정되더라도, 비명계 대권 주자들이 '현재의 민주당'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현재 비명계 대선 주자급으로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전 총리, 김두관 전 지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상당한 장점을 가진 인물들이다. 김동연 지사의 경우, 미국에서 경제학으로 학위를 했고,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자 대학 총장을 지낸, 그야말로 학문과 실무 경력 모두를 겸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부겸 전 총리는 중도층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김두관 전 지사는, 이장부터 시작해 민선 군수를 거쳐 경남 도지사, 장관을 두루 거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친화력은 정치권에서 유명하다. 이런 쟁쟁한 인물들이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며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2심에서도 이재명 대표에게 실형이 선고될 경우, 당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필자 개인적 견해로는 이런 예상에 동의하기 힘들다. 만에 하나 대법원에서조차 이재명 대표에게 실형을 선고한다고 하더라도, 이 대표는, 민주당 막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이재명 대표가 '지원'하는 친명 주자가 대선 국면에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친명 주자가 대선 후보가 되고, 본선에서 이기면, 이재명 대표를 사면 복권 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차차기 대선에 이재명 대표가 출마할 수 있다. 현행 대통령제는 단임제이기 때문에 이런 시나리오는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만일 4년 중임제라면,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 한 번 더 대통령을 하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에, 이 대표에 대한 사면 복권에 소극적일 수 있지만, 단임제이기 때문에 자신 다음의 대통령으로 이재명 대표를 밀어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특히 이재명 대표의 강성 팬덤이 계속 건재하다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다. 민주당이 현재 추진하려는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 개헌은 보류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이재명 대표의 재판 상황을 보아가며 개헌을 추진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25일에 있을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판결은 그래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당 판결은 민주당의 전략 수정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율

[이슈&인사이트]그린벨트 해제와 수도권 신규택지 조성은 신중한 접근 필요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에 걸친 총 4개 지역, 5만 호 규모의 신규택지 후보지를 발표했다. 이는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8.8)의 후속조치로서 현재진행형인 3기 신도시의 일환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는 사안이다. 신도시를 계획할 때 필수적인 교통대책도 함께 제시되었다. 이미 지난 2월에 제시된 비수도권의 그린벨트 해제는 '지역전략산업'의 추진을 요건으로 삼았던 반면 이번 그린벨트 해제는 주택용지 확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그린벨트 해제까지 포함한 목적은 시장심리의 안정이지만, 세간의 기대와 달리 강남권의 그린벨트 해제는 외곽지 일부에 한정되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추가적인 해제를 예상하지만 한정된 신규공급으로 서울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킬 가능성은 제한적이서 지금으로선 실현가능성을 확신할 수만은 없다.정책을 다루는 측면에서는 '의도한 정책목표를 얻어낼 수 있을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그린벨트를 해제한 신규택지로 공급가능한 물량이 실제로 시장안정을 이끌어내고 그 효과를 확산시켜 장기간 지속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 그간의 유사한 경험으로는 쉽지 않은 사안이다. 서울의 모 대단지 규모가 약 1만 세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신규택지의 규모와 해당 지역에 미치는 효과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다. 2029년에 분양(2031년 입주)을 시작한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당장의 시장안정보다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적절하다. 더구나 현실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정책이 시장심리에 우선적으로 반영되므로, 무주택 실수요자를 가정했을 때 2029년의 첫 분양을 기다리는 수요층이 얼마나 될지에 따라 시장안정효과는 달라진다. 또한 제조업과 달리 일관된 생산환경의 설정과 유지가 어려운 건설업의 특성상 처음 설정한 공기보다 실제 공사기간이 연장될 수 있어, 예정된 분양과 입주시점이 상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토지수용과 보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공사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돌발변수가 최소화되면서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실행이 맞물린다면 일정준수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으로 서울(서리풀지구) 공급물량의 55%인 1.1만 가구를 배정하는 것은 저출산대책의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저출산문제의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향후에도 지속적인 활용이 가능하도록 분양전환없는 장기임대주택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2기 신도시보다 서울에 가까운 위치에 3기 신도시가 들어섰던 선례에 비추어본다면, 이번처럼 1기 신도시보다 서울에 근접한 신규택지가 사회적 이슈의 하나인 신도시 재건축에 긍정적일 것은 없다. 지역에 따라서는 베드타운이 추가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고, 재건축 선도지구같은 정비사업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의 재건축사업은 과거처럼 인허가가 아니라 개별 조합원들의 자금여력이 관건이다. 사업추진속도는 부촌을 중심으로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지역적이고 국지적인 양극화로 연결될 여지가 크다. 그렇다면 신규택지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린벨트의 고밀개발은 사업지별로 세심한 조정이 요구된다. 고밀개발을 통해 주택공급을 늘리자는 것이 지난 정부부터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한강이 가리든 남산이 가리든 집이 없으면 무조건 높게 건물을 올려서 많이만 만들면 된다'는 식의 주장이 그린벨트 해제지역에까지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간 우리 사회가 축적한 바람직한 도시경관의 구축이라는 방향성이 흔들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은형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2기, 에너지 분야 정책 변화에 따른 우리의 대응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7대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과 정책 방향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대선공약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종전과는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어 우리의 대응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존 정책 및 세계 각국의 정책 방향과는 달리 주로 화석연료 산업의 규제 완화와 에너지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화석연료 생산 확대이다. 트럼프는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해양 및 육상의 새로운 시추 허가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이는 미국 내 에너지 생산을 증가시켜 에너지 독립을 강화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해양 시추와 공공 토지에서의 시추를 확대하여 에너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둘째는 재생에너지 보조금 폐지이다. 트럼프는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이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전통적인 화석연료 산업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려는 의도이다.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산업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셋째는 파리기후협약 탈퇴이다.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약에서 다시 탈퇴할 것을 공약하였다. 이는 미국이 기후 변화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자국의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겠다는 의미이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규제 철회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넷째는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폐지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세액 공제 혜택을 포함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법을 폐지하고, 관련 혜택을 철회할 계획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에 제동을 걸 수 있으며, 화석연료 산업에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할 것이다. 그밖에 전기자동차 의무화 계획 폐지, 원전 사용 확대도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대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이에따른 정부의 대응 전략의 첫째는 에너지 외교 강화이다. 미국과의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다른 에너지 자원 부국과의 협력을 확대하여 에너지 수급의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둘째는 재생에너지 정책 지속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고, 기술 개발 및 인프라 확충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관련 국제 협력을 강화하여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셋째는 에너지 효율성 제고이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관련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산업계와 협력하여 에너지 절약 및 효율성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한편 한국 기업들은 첫째가 시장 다변화가 우선이다. 미국 외의 다른 시장으로의 진출을 모색하여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확대해야 한다. 둘째는 기술 혁신이다.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성 관련 기술 개발에 투자하여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탄소 배출 저감 기술 및 친환경 기술 개발을 통해 글로벌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셋째, 현지화 전략이다. 미국 내 생산 및 운영 시설을 강화하여 현지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현지 규제와 정책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현지 전문가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은 정책 변화에 대한 꼼꼼한 모니터링이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이에 따른 리스크 관리 및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정책 변화에 따른 시장 동향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 전략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문형남

[이슈&인사이트]그들만의 조지 오웰식 ‘국어사전’

그가 '짠'하고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이름의 발음을 놓고 많은 혼선이 있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참여'란에는 한 네티즌이 그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정중하게 물었다. “대통령의 이름을 부를 때에 '윤서결'이 아닌 '윤성렬'로 불러도 '학문적' 국어에 아무런 '결함'도 발생치 않는지를 물으니 답변을 바라겠습니다. 현재 거의 모든 방송에서 대통령에 대해 '윤서결 대통령'이 아닌 '윤성렬 대통령'으로 바보처럼 부르고 있습니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답변했다. “개별 인명의 표준 발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문의하신 인명은 일반적인 발음 규정에 따른다면 '윤서결'로 발음할 수 있겠고, 관행적으로 '윤성녈'로 발음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후 국립국어원의 답변에 따라 어떤 이들은 그의 이름을 윤서결로, 또 어떤 이들은 윤성녈로 부르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의 솔로몬식 답변 덕에 최고 권력자의 이름이 두 가지로 불리게 되었으나, 일반 국민은 늘 혼란스럽다. 그에서 헷갈리는 것은 그의 이름뿐 아니다. 그가 화려한 화술로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의 진의(眞意)도 아리송하다. 검찰총장 사직의 변(辯)에서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그가 부르짖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헷갈린다. 끄떡하면 검경 권력을 동원해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사상의 자유를 짓밟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하는 악의 무리를 응징한다고 강변한다. 입만 열면 그가 강조하는 공정과 정의, 카르텔 해체와 민의중시도 그와 그의 휘하들에게는 기이하게 적용된다. 공정과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공권력을 총동원해 반대세력에겐 온 집안 식구와 친척 일가를 풍비박산하는 멸족지화(滅族之禍)를 일삼으면서도 정작 자신과 휘하 사람들의 불법에 대해선 끝까지 엄호한다. '오로지 조직에만 충성한다'는 그의 멋진 수사(修辭)는 조폭의 언어가 분명함에도 마치 그를 공정과 정의의 화신처럼 보이게 하는 주술적 언어로 작용했다. 그와 같은 조직의 '짠밥'을 먹은 집단은 검찰과 법원, 법무법인, 기타 온갖 국가권력 기관의 책임자로 견고하게 엮여 사리사욕을 채우는데도, 그가 그토록 핏대를 올리며 강조했던 카르텔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중용의 인재들이다. 국가권력과 자본의 독점세력을 가리키는 카르텔은 결과적으로 권력의 기침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는 LH 같은 산하기관 직원들을 때려잡는 용어로 변질된 셈이다. 그는 또한 얼마 전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의 뜻을 중시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이 쩍벌남의 거만한 자세로 2시간 이상, 숱한 변명과 자기 자랑으로 일관했다. 기자회견장이 끝날 무렵에 “무엇을 사과하셨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 어느 기자의 푸념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애매하거나 모순된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고 풍자했다. '불경기' 대신 '경기 순환'으로, '가격 인상' 대신 '가격 현실화'로,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로 둘러대는 게 바로 '오웰식' 언어라고도 불리는 이중화법이다. '오웰식' 언어는 그의 화법에서도 자주 발견되지만, 특히 최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내 김건희 여사에게 제기된 의문에 대해 “(부인이) 남들한테 좀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 그런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좀 다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 것은 평소의 그다운 화법이다. 궁금증이 많은 한 네티즌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정말 김건희 여사의 행동을 국정농단으로 칭할 수 없는 것인지 공식입장을 요청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에 질문은 진지했다. “표준대사전에 따르면 '국정'은 '나라의 정치',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헌법상 어떤 지위도 가지지 않은 영부인이 선거와 국정에 개입한 행위는 '국정농단'이 아닌가요?" 하지만 며칠 뒤에 달린 국립국어원 답변은 최고 통치자의 발언만큼이나 모호했다. “온라인 가나다는 어문 규범, 사전 내용, 어법에 대하여 간단히 묻고 답하는 곳이므로 어떤 특정 행위가 문의하신 표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답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표준대사전을 편찬하는 국립국어원이 침묵하는 가운데, 갈수록 기이한 '그들만의 국어사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조지 오웰식 이중화법으로... 성일권

[이슈&인사이트]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교(內交)를 생각해야 할 때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글쓴이는 최근 동유럽 어느 국가에 국제학술대회 참석을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이 국가를 1970년대 세계 최초로 올림픽에서 10점 만점을 받은 체조 요정을 배출한 국가로 기억하고, 1980년대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 나오는 강렬한 곡과 '외로운 양치기'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곡을 '팬플루트'로 연주한 음악가로 기억하기도 한다. 구소련 체제가 무너진 1990년대에는 이 국가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가 전 세계로 방송되기도 하였다. 당시 이 국가는 동유럽의 여러 국가와 함께 자유화와 체제의 변화를 경험하였고, 한국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중동부 유럽에서 비교적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를 보유한 루마니아이다. 루마니아는 최근에 유럽 내에서 자유로운 자연인의 이동을 보장하는 쉥겐조약을 부분적으로 적용하여 더욱 활발하게 다른 유럽 국가와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루마니아는 한국 사회의 관심을 많이 받는 대상이 아니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루마니아에 관하여 많이 알지 못한다. 루마니아가 유럽을 주도하거나 경제 또는 정치적 영향력이 큰 주요국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국가도 아니다. 다만,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의 무력 충돌에 더하여 유럽 국가들의 방위산업 수요가 증가하면서, 몇몇 동유럽 국가처럼 방위산업 분야에서 루마니아와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이 진행되어 여론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양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기반으로 서로의 국민이 상대방에 대한 더 많은 인식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글쓴이와 동행한 연구진들이 루마니아를 방문하는 동안 따뜻하게 맞이해주며 여러 현실적 이야기를 들려주신 대사관 관계자분들은, 최근 진행되는 방위산업 분야 등의 양국 협력을 언급하시며 외교활동을 위한 여러 자세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국가를 대표하는 이가 스스로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상대국에 한국의 이미지를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잔에 물이 반쯤 채워진 것을 보고 사람마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오랜 국제무대 경험에서 비롯된 깊이 있고 강렬한 철학을 담고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많은 국익을 얻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특정 분야 전문가들의 정보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며, 우리는 이것을 '공공외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즘 한국인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기술력이나 대중문화의 파급력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하고 출장을 다니면서, 또는 외국 기업이나 기관과 협력을 하면서 많이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정부와 기업의 국제적 활동에 윤활유처럼 작용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견고한 '소프트파워'를 보유하려는 목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를 위해서 국내 사회의 구성원도 국제사회와 다른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국제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많은 국가와 사회가 여러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일반인도 국제사회 또는 다른 국가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국내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를 해주어야 국외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작업에 탄력이 붙는데, 국내에서 다른 나라에 무관심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것을 외교의 반대말로 '내교'라고 재미나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은 여전히 일부 국가나 특정 이슈에만 관심을 가지며, 다른 이야기들에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로는 외국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 외교관과 기업인이 오히려 국내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리는 숙제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내교활동'이 되는 셈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이들이 지나친 에너지를 이 내교에 소비하지 않도록 국내에서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러한 도움이란 국민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른 나라와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관심을 두는 단순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김봉철

[이슈&인사이트]브래들리 효과와 해리스의 패배

2024년 미 대선 결과는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선거결과는 너무 싱겁게 트럼프 시대의 재개막을 알리면서 금세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민주당 전당 대회 이후 해리스가 크게 앞서다가 선거 막바지에는 7개의 경합주에서 트럼프와 동률을 기록했지만 전국적으로는 트럼프가 판세를 다시 뒤집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느닷없이 해리스가 뒷심을 발휘하여 재역전에 성공했고 심지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선거 직전에 해리스가 두 자리 숫자의 득표율 간격으로 트럼프를 이긴다는 예측까지 내보냈다. 경합주에서 박빙의 여론조사 결과가 오래 이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개표과정이 길어지고 법적인 소송까지 고려하면 최종 선거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씩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사후적으로 해리스의 참패 원인에 대하여 해설이 분분하다. 미국 경제가 나빴다, 민주당 이민정책에 대한 심판이다, 해리스의 상품성이 높지 않았다, 해리스가 바이든과 차별화에 실패했다, 역시 샤이 트럼프가 많았다, 백인 노동자가 집결했다, 유색 인종이 해리스 지지에서 이탈했다, 민주당의 전략 실패다 등등등. 이러한 진단은 선거실패 자체에 대한 원인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상당 시간 동안 해리스의 지지율이 전국적으로도 트럼프와 큰 차이가 없었고 특히 7개의 경합주에서 거의 동률 또는 오차범위 안으로 유지되었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데 도움이 못 된다. 2024년 대선과 같이 여론조사와 선거결과의 차이가 컸던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을 함께 비교하면 두 개의 가설이 설득력 있다. 첫째, 미국에서는 아직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가설이다. 힐러리도 유리 천장을 깨지 못했고 해리스도 마찬가지다. 특히 선거 막바지 오바마는 해리스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유세를 다니면서 주로 흑인 남성을 꾸짖는 연설을 해서 주목을 끌었다. 오바마는 흑인 남성들에게 해리스가 여성이라고 투표를 안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이번에 흑인과 라티노의 해리스 지지율은 과거 대선 다른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보다 줄어들었다. 둘째,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여성이자 유색인종인 해리스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 차원에서 그렇다고 말한 유권자가 더러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유명한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흑인인 브래들리 후보의 지지율이 상대 백인 후보보다 상당히 높게 나왔다. 그러나 막상 선거에서는 백인인 공화당 듀크미지언이 이겼다. 이번에 해리스 측은 여론조사의 높은 지지율에 취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당선 확정 소식은 전 세계 언론매체에서 크게 우려했던 부정선거 시비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선거 직전에 트럼프는 선거승리의 사활이 걸린 경합주 가운데 펜실베니아에서 이미 부정선거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 측은 2024년 선거 전에 선거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건수가 무려 2020년 선거 때의 3배를 넘었다. 또 선거 당일에는 전국적으로 부정선거 사례를 모으는 자원봉사자를 투표소마다 대거 배치했다. 트럼프가 이겼던 2016년 대선 때도 부정선거 논란이 없었는데 2024년에도 신기하게 부정선거 시비가 자취를 일거에 감추었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 패배하자 대법원까지 부정선거를 심판해달라고 소송을 걸었고 2021년 1월 6일에는 부정선거를 선언하고 의사당을 점거하도록 선동했던 것과 천지 차이다. 이렇게 부정선거 주장이 사라진 현상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배경에는 사전투표가 여전히 많이 이루어졌다는 통계가 있다. 2020년 대선에는 전체 투표자의 70%인 약 1억 1백만 명이 사전투표를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우편투표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2024년 대선에는 약 8천만 명 이상이 사전투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공화당도 한국의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그랬듯이 사전투표를 많이 독려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사전투표가 활발해져도 부정선거 시비가 사라져서 다행이다. 이준한

[신연수칼럼] 한국은행이 교육에 참견하는 이유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요소는 지리적 조건이나 인종적 특성이 아니다. 정치나 경제 같은 제도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은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 사는가'에 천착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라는 책에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며, 개인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포용적(inclusive) 제도를 만든 나라는 번영한다. 그렇지 못한 나라는 가난해진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남한의 경제발전과 북한의 폭망 역시 정치·경제 제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남한을 콕 집을 만큼, 한국은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동북아의 용(龍)에서 헬조선이 된 한국 그러나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심상치 않다. 성장률은 쪼그라들고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떨어졌다. 젊은이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또는 '헬(hell)조선'이라며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떠나겠다고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지옥 같은 경쟁에 내몰리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저출산으로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의 존립마저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사회에 역동성, 특히 계층이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이 활기차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깡촌 출신도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었고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서울 강남 출신과 비강남 출신이라는 새로운 신분제도가 생겼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용어가 상징하듯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세습사회가 되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좋은 대학을 갈 수 없을뿐더러, 대학을 가더라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느라 학점을 못 딴다. 학점이 나쁘니 좋은 회사에 못 들어간다. 이래서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강조한, 다수의 일반 대중이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펼칠 인센티브가 넘치는 사회, 창의성과 기술혁신이 왕성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재능과 열정이 있지만 배경이 없는 젊은이는 좌절하고, 우리 사회는 잠재적 인재들을 잃고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다수 국민에게 기회가 넓어지는 사회로 가야 한국은행과 이창용 총재가 교육문제에 대한 쓴 소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한은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서울대 진학생 10명 중 1명이 강남 3구 출신이라는 통계를 내놓았다. 서울과 비서울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92%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 등을 포함한 '거주지역 효과'에 기인한다고도 했다. 이는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로의 이주 수요를 촉발해 수도권 인구 집중의 원인이 되고, 서울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며, 가계대출까지 증가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한은은 대학입학에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상위권 대학들이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신입생을 선발하자는 것이다. 이창용 총재는 한술 더 떠 서울 강남 출신 학생들에 대해 상위대학 입학 상한선을 둬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자 '한은이 금리정책이나 잘하지 웬 오지랖이냐'는 비판부터 '위헌'이니 '강남 학생 역차별'이니 하는 반발이 일었다. 지금의 대입제도는 필답형 지식- 상위권 대학-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좁은 문을 향한 지나친 경쟁으로 학생과 부모를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죽이는 과거형 교육제도다. 나아가 한은의 지적대로 수도권 인구집중, 부동산 가격 상승, 가계대출 증가 등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을 올려 서울 집값을 잡으려다 실패했고, 윤석열 정부는 늘어나는 가계대출을 잡으려 함부로 금융시장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책 자체도 문제가 있었지만 경제정책만으로 안 되는 한계도 있다. 한은의 교육 참견이 일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수도권 집중과 서울 집값 상승이 교육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자리와 생활인프라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교육문제가 핵심 요소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한때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동력이었으나, 이제는 청년들의 행복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좋은 제도가 아닐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주목한 것은 경제정책만이 아니었다. 좋은 경제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제도와, 일반 대중이 균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중시했다. 한국 경제가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해야 하는 지금, 좁은 의미의 경제정책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이슈&인사이트]민주노총의 경쟁 없는 무상교육, 왜?

서울 정동에 사는 필자는 늘 광화문이나 시청 앞, 정동길 등 시내를 산책하곤 한다. 토요일의 시내는 항상 시위로 복잡하지만, 정겨운 덕수궁 돌담길은 외국 관광객을 비롯해 많은 시민이 찾는 명소이고 그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은 적은 적어도 필자가 기억하는 한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날은 웬일인지 덕수궁 돌담길의 앞뒤를 차량으로 막아 놓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플래카드를 보고 구호를 들어보니 시위의 주체는 민주노총이고 주제는 교육이었다. 그들은 대학 교육 무상화와 경쟁 없는 입학 등을 주장하고 있었다.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무상화와 입시 없이 모두 입학시키자는 주장을 하며 시위한다는 것에 처음 놀랐고,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엄청난 스피커 볼륨에 두 번 놀랐다. 주말의 덕수궁 돌담길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북적인다. 버스킹을 하는 거리의 악사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고 시민들은 그들의 연주를 즐기는 등 자발적인 문화 활동이 빈번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대규모 시위 집회를 허용한 당국의 무지함에 세 번째 놀랐다. 경쟁 없는 대학 입학과 대학 교육의 무상화는 생각해 볼 만한 정책 이슈다. 특히 저출생으로 국가소멸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데, 부모들이 걱정하는 입시경쟁으로 인한 과다한 교육비를 없애고 등록금 걱정 없이 누구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면 더 많은 젊은이가 출생을 고려할 수도 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무상교육과 무경쟁 입학을 한다고 과외가 없어지고 국민이 만족할까. 누구나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여전히 SKY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명문대학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입시를 없애면 '운빨'로 명문대학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에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노력과 능력이 아닌 뺑뺑이로 명문대를 갈 수 있다면 그게 공정한 사회인가. 대학들은 어떤 형태로든 우수 학생을 유치할 방법을 강구할 것이고, 입시는 없어질 수 없다. 입학정원보다 지원자가 적어진다고 입시가 없어질까. 문을 닫는 대학이 늘어나도 입시가 없어질 수 없는 이유는 경쟁 없이 대학, 특히 명문대학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보편적 상식과 본능에 반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누구나 더 노력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남보다 더 잘먹고 잘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 자식을 더 나은 대학에 입학시키고자 하는 부모의 욕심은 그것이 자식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 없이 대학에 들어가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이 원초적 본능을 무시하자는 것이다. 한때 대학 등록금을 받지 않던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이미 이를 포기한 지 오래다. 1960년대 유럽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만 나오고 취업했기에 대학 입학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지만, 1970년대 경제난을 겪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가장 우수한 대학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무경쟁 무상교육을 시도한 적도, 얘기해 본 적도 없다. 지금도 명문대학의 입학 사정에서 지원자의 97%가 불합격되는 놀라운 경쟁상태에 있고, 그런 경쟁을 통해 성장한 사람들이 각 분야의 리더로 국가와 사회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교육감 선거 이후 진보적 교육감이 당선된 광역자치단체에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필고사나 학력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와의 합의로 경쟁 자체를 없애기로 했고, 경쟁을 없애려니 학력평가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평가 없는 교육이 계속되다 보니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진보적 교육감들의 정책 중에도 좋은 것이 많지만 학생들의 평가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그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고 나라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만일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학생들의 교육에서 경쟁과 평가를 없앤다면 혹시 모르겠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가면 사회는 경쟁 속에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도 경쟁 없이 들어가고 평가도 없으면 공부는 왜 하나.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대학의 무경쟁 입학과 무상교육이 왜 현실화될 수 없는지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민주노총이 이런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답을 해보라. 홍성걸

[이강윤 칼럼] 이대로면 ‘후반전’을 끝까지 치를 수 있을까?

이강윤 정치평론가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반환점을 맞아 지난 7일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민심은 악화일로다. 회견 당일 발표된 NBS(전국지표조사) 조사는 국정 긍정평가 19%(부정 74%)로 4회 연속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루 뒤 발표된 갤럽 조사는 더 심각하다. 긍정평가 17%로 출범 후 최저치. 갤럽 조사는 7일까지 진행돼 기자회견이 반영됐다. 대통령은 회견 때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숙여 사과했지만 의혹과 국민적 분노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부의 처신 잘못에 대한 포괄적 사과였지, 어떠어떠한 점에서 잘못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진정성 논란을 종식시키는 사과는 아니었다. 사과가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통령이 팩트를 다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럴거면 뭐 하러 번거롭게 회견을 했나. “휴대폰 안 바꾼 탓", “부부 싸움 많아지겠다"고도 했다. 국민들 복장을 뒤집어놨을 것이다. 대통령은 서운하다고 하겠지만, '심각한 중병인데 소화제 한두 알 내민 꼴'이었다. 굳이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말은 사고체계의 반영이다. 근본 생각과 인식이 잘못 돼있으니 말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은 스스로 신뢰자산에 파산선고를 내린 셈이다. 검사 시절 국정농단특검에 참여해 성가를 드높였으면서 “특검은 3권분립에 반한다"고 한 것 역시 자기 모순이자 자기 부정이다. 현 정부의 최대 문제는 '신뢰 위기'다. 정치-정무적 차원이건 정책 차원이건 신뢰가 깨졌다. 개인간에도 그렇지만 “더 이상 못믿겠다"는 건 모든 것의 끝장을 의미한다. 4개 여론조사 기관이 언론사 제휴 없이 자기들 돈으로 여론을 조사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게 있다. NBS다. 특정 언론 의뢰가 아니어서 이른바 '하우스 이펙트'(특정 언론사의 논조가 여론조사에도 일부 반영된다는 추정)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기에 유심히 보는 조사 중 하나다. 그 NBS의 10월 둘째 주 발표를 보면 “현 정권의 국정운영을 신뢰하지 않는다"가 67%였다(신뢰한다 26%). 이게 대통령 담화 당일 발표분에서는 73%로 7%p나 급등했다(신뢰한다 24%). 두 발표 사이에 명태균 파동이 있었고, 대통령과 명 씨의 육성 통화가 공개됐다. '신뢰도 항목'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국정운영 평가가 여지껏의 국정에 대한 채점이라면, 신뢰도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평가/예측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도 수치가 그렇게 나온다는 건 신뢰 파산상태라는 얘기다. 국민들의 마지막 신호이자 경고라는 정치적 의미부여가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김 여사 관련 여러 의혹에 대한 불기소 등 법적 처리와 3년 째 지속중인 야당 대표와의 대선연장전 때문에 정치-정무적 신뢰가 상실됐다. 여야의 잘잘못이 몇 %인지 계량하기는 쉽지 않지만, 국정 최종책임은 정부여당이 진다는 점에서 정치-정무적 신뢰상실의 귀책점은 용산과 여당 몫이다. 정책 차원에서도 평가는 야박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종식 이후로도 지속중인 고물가-고금리로 서민은 물론 중산층 상당 수도 민생고에 허덕인다. 정책의 최대 난관은 의료불안이다. 의료개혁을 기치로 내건 의대생 증원은 초기만 해도 지지 여론이 70%를 넘나드는 등 이 정부 출범 후 거의 유일하게 지지받았던 사안이다. 그러나 의료계 저항으로 표류했고, 응급실대란 불안이 확산되면서 지지 여론이 40%대 중반까지 떨어져 교착 상태다. 의료계 저항은 충분히 예견됐기에 정밀하고도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시작했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다. 무능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연금개혁과 노동개혁도 비슷하다. 그러는 와중에 정부 인사마다 이념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극한 대립이 무한 확대재생산돼왔다. 신뢰를 잃었기에 '동해 석유시추'건도 “과연? 정말?" 하는 정도의 긴가민가 대접밖에 못받고 있다. 입이 아프지만, “국정운영의 최종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정치학 교과서 구절을 거듭 밝힌다. 무망해보이지만 제안한다. 국정운영 기조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대로 후반전이 지속되면 경기 참패는 물론, 후반전 경기시간을 다 채울 수 있을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비단 대통령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불행이다. 그간 투여된 기회비용의 매몰이고, 시간 허실이다. 공정과 상식 법치가 윤석열 후보의 핵심공약이었다. 김 여사 문제를 포함, 모든 사안에 그 3원칙을 지키면 된다. 또, 거국내각 수준의 인사대탕평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가시적 조치가 없으면 불신을 걷어낼 수 없다. 대통령의 처절한 자기 부정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공짜 점심은 없다.한 자기 부정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공짜 점심은 없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특별기고]트럼프 승리 원인과 한국이 직면할 위기에 대한 대처 방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승리했다. 당초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트럼프가 경합주를 모두 쓸어감으로써 압승을 거두었다. 트럼프가 여러 가지 도덕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이민·안보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반면에 해리스는 낙태 반대 외에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정책이 없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 임기 동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경제 형편이 나빠진 데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컸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 장기화도 해리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백인 남성 트럼프 대 흑인 여성 해리스의 대결에서 해리스가 완패한 것으로서, 백인 남성이 주류인 미국 사회가 여성 대통령, 게다가 흑인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정서가 표출되어 백인 남성표가 결집한 것도 트럼프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로서 해리스가 러시아 푸틴, 중국 시진핑 같은 강경 권위주의 지도자들에 대처하기에는 약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바이든의 책임이다. 고령에 건강도 좋지 못한 바이든이 TV 토론에서 패배하여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시간적 촉박으로 인해 경선을 통해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출하지 못했다. 또한, 트럼프 찬조연설자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라고 표현하여 푸에르토리코 출신 유권자들이 발끈하면서 해리스가 호기를 잡았으나, 바이든 대통령이 쓰레기는 그(트럼프)의 지지자들이라고 말하여 오히려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집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무분별한 이민자 수용, 중국 저가품 물량 공세, 세계 경찰 역할을 큰 문제로 지적하고, 이민 통제, 관세 부과, 전쟁 종식을 공언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구호를 내건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제사회와 한국은 바이든 시대와는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우리로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첫 번째는 한미동맹과 방위비 분담 문제다. 트럼프도 중국을 최대 전략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한미일 정상이 합의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 협력의 틀을 유지해 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의무를 보다 강조하고 동맹국으로서 미국 부담은 줄이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주한미군인데. 단지 북한 위협으로부터 방어뿐만 아니라 중국 견제 등 미국의 아태 전략으로 역할이 확대되어 있기 때문에 주한 미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트럼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트럼프는 한국에 주한미군 배치에 대한 비용을 더 청구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는데, 방위비 마찰이 우려된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한국에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6000억 원)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미 양국은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체결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언급한 100억 달러는 한미가 타결한 2026년 방위비 분담금(1조 5192억 원)의 9배에 달하는 액수다. SMA 협정은 미국에서는 의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행정 협정'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통령 의지에 따라 폐기될 수 있다. 더구나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해 트럼프가 마음먹으면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부담할 새로운 방위비 분담액은 일본이 분담하는 방위비 수준과 비슷하기 때문에 과도한 요구에 대처가 가능하므로 너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금물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는 보편관세를 매기겠다고 하고, 미국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세계 유명 반도체 기업의 생산 기지를 미국 내에 세우도록 하는 반도체과학법과 기후변화 대응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혜택에 대한 조치를 공언하였다. 관세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동맹국에도 부과하겠다고 하고 있어 우리의 대미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보조금·세제 혜택을 축소하거나 폐지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외국기업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트럼프도 잘 알 것이고 사업가이다 보니 보조금을 막무가내로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며, '거래적 관점'에서 타협점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정부와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 이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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