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법 앞에 선 관세의 좌절, 멈추지 않는 보호무역의 파고

2026년 2월 20일, 미연방대법원은 6대3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이른바 '상호관세'를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비상경제권한은 외환통제와 자산동결 등 긴급조치에 한정되는 것이지 광범위한 관세 부과라는 사실상의 조세권 행사까지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이로써 관세주권이 의회에 귀속된다는 헌법적 원칙이 재확인된 동시에 “미국은 전 세계와 전쟁 중이 아니다"라는 다수 의견의 문구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 통상정책에 한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통상정책에 대한 판결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였다고 보기엔 이르다. 우리경제에 일시적 안도가 될 수는 있지만, 이로써 폭풍이 멎었다기보다, 오히려 미정부의 보호주의무역 정책의 방향이 선회하였다 신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연방대법원은 판결에서 IEEPA가 무제한적 세금부과를 위한 수단은 아니며, 국가안보나 국제수지 위기라는 엄격한 요건과 직접적 연계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곧장 '플랜B'로 대응하며 태세전환을 꾀하고 있다. 무역법 122조(국제수지 위기 대응)를 근거로 10~15%의 '글로벌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곧바로 서명하며 우회경로로 선회한 것이다. 이로써 통상정책의 폭풍은 '법적 근거'의 정당성 다툼에서 '장기적 법정 공방'과 '입법·행정의 우회 전략'의 제2라운드에 돌입하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 관세와 무역통상정책의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그 형식적인 모습만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산업별 영향은 명암이 교차할 것이다. 반도체·화학·제약은 상호관세가 무효화 된에 따라 단기적으로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15% 수준의 관세가 10% 이하로 낮아질 경우 가격경쟁력 회복과 마진 개선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대미수출 비중이 높은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등 특수화학 소재 기업에는 실적이 개선되는 가시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효과가 '상호관세'에 한정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철강은 여전히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안보관세의 틀안에 묶여 있다. 이러한 품목별 관세부과가 지속되는 한, 완성차와 고급 강재를 생산하는 산업에 나타날 실익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변수는 관세환급(refund)의 이슈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납부된 관세가 약 2,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미정부를 상대로 관세를 소급하여 환급해달라는 소송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계약조건이 이슈가 될 것이다. 즉 DDP(관세지급인도) 방식으로 수출한 기업은 관세를 직접 부담했을 가능성이 크고, FOB 조건 기업은 수입자가 부담했을 여지도 있다. 따라서 환급소송에 승소하였을 경우에도 환급의 청구주체와 회계처리, 세무상 이익귀속 문제까지 복합적인 문제가 얽히게 되어 실효성을 가능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도 이번 판결을 통해 시험대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위법한 압박에 의한 합의"라는 명분론을 제기하지만, 국가 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장기협력의 틀을 훼손할 경우 우리가 감당해내야할 후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에 우리정부는 기존 약속은 원칙적으로 이행하되, 투자의 이행 속도와 그 방식측면에서 유연한 전략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번 투자는 장기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므로, 이를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하여 세제 등에서 인센티브를 확보하는 한편,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보조금 확대, AI 등 기술협력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방안을 통해 실리적인 외교를 추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과 EU 역시 유사한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것이므로 해당 국가의 정부와의 공조를 통한 다자 압박을 병행하여 우리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가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결국 통상전략은 기존과 달라진 것이 없다. 관세장벽은 낮아진 것이 아니라 명분의 측면에서 형태를 바꿨을 뿐이다. 이번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레버리지 삼아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되 전략적 인내는 여전히 요구되며,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는 더욱 정교한 협상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법의 그림자가 멈춘 지점에서 치열한 외교전략이 태동해야 할 시점이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관세 전선 재편…한국, 민간 중심 대미투자로 돌파구 찾아야”

미국 연방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부과한 이른바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1, 2심의 위법 판결 기조를 유지한 것이다. 대법관 9명 가운데 '위법' 6명, '합법' 3명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우세한 연방 대법원의 구도지만, 지난해 11월 이루어진 구두 변론 과정에서 위법 입장을 보인 대법관이 많아 트럼프 패소가 예상되었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근거로 삼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엄청난 무역적자를 이유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 세계 무역 상대국에 부과한 10%의 기본관세와 그것 위에 국가별 차등세율을 더해서 매긴 상호관세의 법적 기반이 붕괴되었다. 이번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트럼프의 대표적인 정책을 무효화시킨 것으로, 트럼프의 막가파식 행동과 정책에 철퇴를 가한 강력한 조치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2년 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외교적으로도 세계 각국에 압박을 가하는 가장 강력한 위협 수단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곧이어 15%로 인상하겠다고 공언했다. 무역법 122조 등 대체 수단을 동원해 고강도 관세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글로벌 통상 환경에 불확실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IEEPA를 대체하는 트럼프의 조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역법 122조는 대통령이 국제수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최장 150일간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150일 이후 이 조치를 계속하려면 의회가 연장을 승인해야만 한다. 상원이 공화당 의원 4명의 이탈로 '트럼프 상호관세 중단'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서도 '캐나다 관세 철회 결의안'이 통과되는 등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해 의회 내 반감이 커지고 있다. 무역법 122조에 따른 조치를 의회가 연장 승인해 준다고 장담할 수 없다. 미 연방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직후 뉴욕증시의 3대 주가지수가 상승했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의 예봉이 꺾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 연방 대법원의 관세 판결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은 여야의 '대미투자법'을 통과 합의 여부와 상관 없이 우리로서는 다행스런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고 크게 떠들 필요가 없다. 미국과 새롭게 무역합의를 체결한 국가들은 눈치보기를 할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과 합의를 했던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상황에 따라 최적의 판단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미투자법은 서두르지 말고 보류하되, 대미 투자는 철저히 민간 중심의 상업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동시에 품목관세 등 추가 압박 가능성에 대비해 산업별 리스크 점검과 시장 다변화를 병행하고, 한미 FTA 틀 안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미간에는 핵잠수함 건설 등 여러 가지 현안이 있을뿐더러 미국은 한국이 개척할 여지가 많은 거대시장이다. 대미 투자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 기업 위주로 철저히 상업적 베이스로 추진하면 된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어록 제조기 시대의 종말

돌아보니 어록 제조 시대였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또 “수사로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냐"라고 해서 많은 이를 설레게 했던 사람은 '별의 순간'을 잡았다는 때부터 기실 일생의 최대 암흑기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실록 윤석열 시대』를 읽다 보면 실로 욕설이나 격노가 이어졌다. 그중 압권은 “니가 뭔데 내가 인사하는 거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냐!"라며 “나는 대통령이야!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내 마음대로!"라는 말이다. 인수위 시절 안철수 의원을 따라다니던 이태규 전 의원에게 쏘아붙인 말이다. 공사를 구분 못 해 구설수가 끊이지 않자 대선 전 2021년 12월 김건희는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라고 대중에게 목소리를 알렸다. 울먹일 듯 내뱉은 사과와 달리 김건희가 실제로는 공동정부의 대주주였고 그의 권력 서열은 윤석열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그는 “이 사람은요, 나 때문에 대통령이 된 거예요! 이 사람은 저 아니었으면 힘들었어요!"라고 국무위원들 앞에서 일장 훈시도 했단다. 법무부 장관을 통해 자신의 수사를 무마했고, 몇 사람과는 명품 및 보석과 관직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김건희 때문에 재판에 넘겨진 사람만 무려 76명이란다. “야 이 XX야, 너 뭐 하는 놈이야!"라고 인수위 시절부터 김건희가 직접 공무원들을 밤낮으로 부렸기 때문에 계엄이 터진 뒤 관심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가 김건희 합작인지 여부였다. 윤석열은 계엄이 해제된 뒤 “내 처도 모른다. 아마 집에 가면 화낼 것"이라고 어록 한 줄을 남겼다. 언론은 당시 부부의 싸움은 대단했고 김건희가 “너 때문에 다 망쳤다"라고 했다고 확인했다. 김건희가 “저게 멍청해도 말이라도 잘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살지, 저런걸 누가 같이 살아주겠어요?"라고 이미 어록에 달아 놓았으니 윤석열이 구속 만료 뒤에도 집에 갈 생각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에서도 어록을 하나 더 보탰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는 말이다. 하지만 계엄 2년 전부터 술을 마시면 “싹 쓸어버려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단다. 취임 6개월 만인 2022년 11월 25일 국민의힘 지도부 앞에서 “비상대권이 있다. 총살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 싹 쓸어버리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임기 초부터 대통령으로서 정당과 국회를 이끌어 국민을 통합시킬 생각은 않고 권력 소꿉장난으로 허송세월한 것이다. 윤석열은 계엄 뒤 일부 국민의힘 의원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하여 전화했다고 한다. 판사가 “급박한 상황인데 고생 많다 말하려 전화"했냐고 물으니 윤석열은 “그때 뭐 저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라고 어록 한 줄을 또 더했다. 대통령다움이라고는 전혀 없다. 재판 중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이 “피고인, 부하한테 책임 전가하는 것 아니죠?"라고 해도 어색한 웃음만 짓는다. 김형기 육군특수전사령부 제1특전대대장도 재판장의 마지막 질문에 자기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해도 유구무언인 것이다. 되돌아보면 명태균의 어록도 기록할 만하다. 그는 “내가 구속되면 대통령이 한 달 안에 탄핵이 되거나 하야할 거“라고 했다. 현실은 얼추 그의 예언대로 흘러갔다. 평소 국정보다는 술에 가까운 사람이, 포토라인 앞에 서서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인정한 사람과 함께 꾸민 일들이 그의 말대로 바깥에 나가면 안 되는 '앉은뱅이 주술사'가 칼잡이 '장님 무사' 어깨에 올라타서 벌인 한바탕 소동 같다. 더 이상 대통령이 한순간의 바람으로 뽑히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교훈이 필요할 정도로 한가한 시절이 아니다. 대통령은 원래 이상한 어록 제조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성과 제조기로 뽑아야 한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대부업 위축 소비절벽, 제도 개선으로 내수 회복 돌파구 찾자

최근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와 대출 규제 강화가 가계부채 급증 억제 측면에서 정책적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 문턱이 높아지며 실수요자·취약계층의 자금 수급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은행과 제2금융권은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신용도·소득 요건을 강화하고, 저신용·소액 대출 대상은 사실상 대출의 '대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해당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가계 여건은 가계지출 축소, 의료·교육 비용 유예, 소비 연기 등으로 나타나며 내수 회복 속도를 둔화시키는 구조적 리스크로 증가하고 있다. 대부업의 경우 정부가 2021년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인하한 이후 전체 대출 잔액과 신용대출 공급 규모가 감소했다. 대부업권의 경우 차주의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반영한 대출금리 인상에 한계가 있어, 담보대출로 전환하면서, 저신용 개인 차주의 금융 접근성이 약화되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고객 수는 2019년 177만 명에서 2025년 상반기에는 71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일본의 대부업에 해당되는 대금업은 1990년대 이후 은행의 대출 문턱을 높이는 상황에서 금융소비자에 대한 무담보 대출 공급을 통해 금융지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금 협회 중심의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과대대출과 고금리 대출 공급을 경계하면서, 은행 대출 공백을 메우는 안정적 소액 무담보 신용공급자로 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대금업은 저신용 차주에게 안정적 소액 신용대출을 제공하며 소비 여력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유럽·미국 등 선진국 일부에서는 법정 최고금리나 고위험 대출에 대해 시장금리 연동제·유연한 금리 상한 구간을 마련해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 차주가 만기 연장을 통해 파산이나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지하는 정책적 시도가 있었다. 즉,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 차주가 만기 연장을 통해 일시 상환 압박을 피할 수 있도록 법정 최고금리나 금리 상한을 시장금리에 연동해 유연하게 조정하였다. 또한, 고위험 대출의 경우 만기 연장, 상환기간 분할, 금리 재조정 등의 조건을 허용해 파산이나 사채 시장으로의 내몰림을 줄이는 정책적 시도가 있었다. 현재 연 20%로 고정된 법정 최고금리제도는 대부업자들이 대출을 줄이거나 저신용 차주를 배제하는 '역설'을 만들었다. 이로써, 금융시장에서의 금융사의 조달금리 변동분을 반영해 최고금리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시장금리 연동형 최고금리' 제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동 제도는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 차주가 제도권 대출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고, 만기 연장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한편, 대부업의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조달 방법을 다원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은행 대출이 대부업의 주요 자금조달 경로지만, 이를 유동화증권(ABS)으로 다양화하면 발행금리를 낮추어 대출금리 인하 여지가 커진다. 최근 금융당국이 서민금융회사·중견·중소기업에 대해 ABS 발행 대상 및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의 자산유동화 관련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즈음해서, 대부업도 은행 또는 여신전문금융업체 수준으로 공모 및 자산유동화 구조 측면에서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 즉, ABS 발행 요건, 기초자산 범위, 금리 구간(저금리 대출 비중 의무) 등에서 규제 완화시 대부업의 조달비용 절감은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금리 연동형 최고금리 도입과 ABS 발행 규제 완화를 통해 대부업의 조달비를 절감할 경우, 저신용·저소득 취약 차주에게도 낮은 금리·합리적 만기 구조를 제공할 수 있다. 이로써, 취약계층의 상환 부담이 줄어들게 되면 취약계층의 가계 소비가 회복되는 등 내수진작 효과가 기대된다. 2024년 발표된 캐나다 중앙은행 보고서는 대출금리 인상 시 중·저소득 가계의 소비가 크게 줄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동 보고서는 한계적 가계일수록 이자 부담 증가에 대해 소비 감소 효과가 크다고 지적한다. 또한, 반대로 대출금리 인하 등 채무부담 완화가 이루어지면, 중·저소득·이자부담 비중이 큰 가계에서 좀 더 소비가 민감하게 회복된다는 미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아티프 미안(Atif Mian) 교수의 연구도 제시된 바 있다. 결론적으로 가계부채 규제 강화와 최고금리 인하로 대부업이 위축되며 취약계층의 자금 공백과 소비 위축이 내수 회복을 저해하고 있다. 시장금리 연동형 최고금리 도입과 ABS 발행 규제 완화를 통해 조달비 절감→낮은 대출금리 제공→취약 차주의 상환 부담 완화→가계 소비 회복의 경로를 열어야 한다. 대부업을 취약계층의 금융 안전판이자 내수진작을 위한 정책 축으로 재정립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bienns@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제명 정치의 역설: 국민의힘은 왜 약체가 되는가

지난 2월 10일, 국민의힘 장동혁 전 최고위원이 마침내 제명당했다. 한동훈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제명된 인사다. 현재는 친한계로 분류되는 배현진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이다. 상황이 이러니 '정적 제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적인 정당이라면, 다른 의견을 개진하거나 당 대표나 당권파를 비판하더라도 이를 '소수 의견'으로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은, 이런 비판을 '소수 의견'으로 수용하기는커녕,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는 식의 '해석'을 남발하고 있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제명 결정과 관련해 당 윤리위는 “당 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으로 구성된 정당을 대표하는 기관이며, 단순한 자연인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정당 기관에 해당한다"며, “당의 리더십과 동료 구성원, 소속 정당에 대한 과도한 혐오 자극성 발언은 정당한 비판의 임계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이는 당 대표를 하나의 '기관'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논리는 근대 초기에 존재했던 '국가 유기체론'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 유기체론이란, 국가는 살아있는 생명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군주가 국가를 가시화하는 존재라는 사상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가 유기체론이 '정당 유기체론'으로 탈바꿈한 것 같다. 설령 당 대표가 하나의 '정당 기관'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 기관에 대한 비판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논리의 근거가, 당 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이기 때문이라면, 이는 군사 권위주의 시절의 '국가 원수 모독죄'를 연상시킨다. 장 대표가 지금 보여줘야 할 것은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이다. 그러나 그는 징계나 수사라는 비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스스로 정치력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것임과 동시에, 자신의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윤리위나 감사위 등을 활용해 당내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당을 운영하면 결국 국민의힘을 약체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약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거 한나라당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친박계와 친이계가 공존하며 권력 투쟁을 벌였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대 계파를 제명하거나 당 밖으로 축출하는 극단적 방식은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공천 학살'과 같은 정치적 보복은 존재했지만, 징계나 수사 의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적을 제압할 때 정치적 수단을 주로 활용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에 극단적인 징계 수단을 자제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친박과 친이가 번갈아 당권을 장악하고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내 계파가 번갈아 가며 당권을 확보하면서 국민에게 '정치적 신선감'을 제공했고, 이런 '신선함'을 통해 '정권 재창출'을 '정권 교체'라고 국민이 인식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장 대표처럼 상대 계파를 아예 당 밖으로 축출할 경우, 국민의힘은 획일적인 강성 집단으로 전락해, 국민들에게 전혀 신선함을 제공할 수 없는 정당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제명하지 않았는데, 한동훈 전 대표는 제명했다는 이유로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종혁 전 최고위원을 제명하고, 배현진 의원을 징계하려 하니, 중도층은 국민의힘을 더욱 외면할 것임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다가올 선거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그것이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비트코인, ‘21세기 로마 금화’가 될 수 있는가

최근 글로벌 자산 시장은 마치 거대한 폭풍을 만난 듯 요동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의장 후보로 '매파적 실용주의자' 케빈 워시를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통적인 안전 자산인 금과 은값은 물론, 기세등등하던 비트코인마저 줄지어 하락 곡선을 그렸다. 시장은 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그 원인은 명확하다. 케빈 워시는 과거부터 '강한 달러'와 '재정 규율'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그가 이끌 연준이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고 달러의 가치를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지자, 인플레이션의 대안이자 '달러의 적수'로 꼽히던 금과 비트코인의 매력이 단기적으로 위축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 변동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달러의 권위가 서슬 퍼런 이 시대에, 비트코인 같은 무형의 자산이 과연 역사적 생존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에서 '돈'은 늘 눈에 보이는 '쓸모'를 담보로 해왔다. 고대 사회에서 금과 은이 화폐로 선택된 이유는 희귀성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장신구가 되거나 권위를 상징하는 실질적 유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이 번영할 수 있었던 기반 중 하나인 '아우레우스' 금화 역시 금이라는 실물 가치에 기반한 강력한 화폐 권위를 가졌다. 하지만 로마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는 지배자가 통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화에 동을 섞어 화폐의 순도를 낮추기 시작했을 때다. '실질적 유용성'이 권력에 의해 오염되자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졌고, 결국 제국의 경제 시스템도 붕괴했다. 오늘날 비트코인에 대한 열광은 어쩌면 무분별한 법정 화폐 발행으로 인한 '현대판 금화 오염'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일지 모른다. 물론 형태도 무게도 없는 디지털 코드에 가치를 투영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여전하다. 손에 잡히는 실체만이 안전하다는 수천 년의 생존 본능이 무형의 자산 앞에서는 의구심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케빈 워시의 지명으로 달러가 일시적 강세를 보인다고 해서 화폐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현대 경제에서 자산의 가치는 이제 '물리적 실체'에서 '신뢰와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이라는 물질이 가치를 보증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수학적 알고리즘과 전 세계가 참여하는 보안 네트워크가 가치를 보증한다. 비트코인은 특정 중앙 권력이 임의로 찍어내어 가치를 희석할 수 없도록 설계된, 인류 최초의 '시스템적 신뢰 자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실체 없는 '밈 코인'들이 난무하는 모습은 170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2000년대 닷컴 버블의 잔해 속에서 구글과 아마존이 살아남았듯, 지금의 혼돈 속에서도 '디지털 금'으로서의 비트코인과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서의 이더리움은 제도권 금융의 핵심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우리는 어떤 판단기준을 가져야 할까? 첫째, 단기적 변동성과 자산의 본질을 구분해야 한다. 케빈 워시의 정책 기조에 따라 가격은 출렁일 수 있지만, '해킹 불가능한 2,100만 개의 희소 자산'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둘째, '물리적 실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되 '시스템의 투명성'을 살펴야 한다. 미국이 규제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달러와 연동되어서가 아니라, 언제든 실물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검증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화폐의 역사는 결국 '인간이 무엇을 믿기로 약속했는가'의 기록이다. 금에서 종이 화폐로, 다시 디지털 코드로 형태는 변해왔지만 '조작 불가능한 희소성'을 향한 인류의 열망은 변하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기 수단으로 치부하기엔, 그것이 담고 있는 '탈중앙화된 신뢰'의 기술이 현대 경제의 거대한 빈틈을 메우고 있다. 단기적인 시세 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화폐가 걸어온 유구한 역사의 궤적을 복기해 볼 때다. 정답은 늘 '물리적 쓸모'를 넘어선 '신뢰의 네트워크' 속에 있었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한국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지난 1월20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아시아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한국, 일본과 합의를 타결하면서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참가하지 않을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반대 뜻을 밝혔음에도 미국은 일방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발표했다. 다만 한국은 미국과 관세 협정에 따라 3천5백억 $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조선업에 배정하기로 한 1천5백 $를 제외한 2천억$는 사용처를 정하지 않았는데 이를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쓰겠다는 일방적 선언이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반대할 경우, 한미 정상이 합의한 관세율 인하를 환원할 수도 있어서 한국 정부 입장이 난감하다. 트럼프의 요구를 “황당한 요구", “막무가내", “강도질", “미친 요구" “타코"(TACO,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는 뜻의 신조어) 라고 치부하기에는 한국의 어려움이 예측된다. 트럼프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 공감과 분노의 동원에 능숙하다. 갈등을 조성하고 그 중심에 서는 전략을 쓴다. 예를 들면 주한미군의 철수 등 한국을 투자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한국을 희생양으로 쓸 가능성이 있다. 이에 국익을 유지하면서 트럼프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왜 트럼프가 알래스카주의 LNG 사업에 정치적 생명을 거는 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는 면적은 154만 ㎢로 남한의 15배나, 인구는 75만 명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주민은 백인이며, 원주민은 10% 정도다. 트럼프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집착하는 것은 75만 명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다. 알래스카가 트럼프의 정치적 생명줄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는 인구가 적어서 하원은 1명, 상원은 2명이 배정된다. 하원은 전체 439명이라서 영향력이 미미하나, 상원은 100중에 2명이기에 영향력이 크다. 특히 공화와 민주가 50대 50으로 양분된 상태에서는 절대적 변수다. 알래스카는 지금까지 남부 해안의 쿡인랫 지역의 가스생산에 의지해 왔는데, 가스전이 고갈되어 대체공급원이 필요한 상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북부 가스전에서 남부 니키스키까지 1,300km의 가스관을 건설하고 액화 처리시설 등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총사업비는 약 4백40억 $로 예상된다. 배증 된다 해도 한·미 간에 약속한 2천억 $ 범위 안에서 해결하면 되기에 문제가 없다. 영구동토층을 지나는 파이프라인 건설은 환경 파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극지방의 혹독한 기후로 공사 기간 연장 등이 예측되나, 이미 건설된 송유관을 따라 가면 되기에 기술적 문제는 없다. 다만, LNG 공급 과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체 소비가 연간 3백만 톤에 불과해서, 생산량 2천만 톤의 판매처가 난제다. 판매처만 해결되면, 글렌파른, AGDC, 베이커휴즈 등 참여하고자 하는 미국 기업은 많다. 트럼프가 이 프로젝트에 동북아 3국인 한국, 일본, 대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이유는 지정학적 이점 때문이다. 3국은 모두 LNG 대량 수입국인데 알래스카와 가깝다. 대만은 기본 의향서를 통해 연간 6백만 톤의 LNG 구매와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일본은 1969년부터 알래스카 산 LNG를 수입해 왔으며, 5천5백억$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은 연간 5천만 톤의 LNG를 수입하기 때문에 알래스카산 LNG 구매에 문제가 없다. 다만, 한국이 알래스카산 LNG 사업에 참여한다면 인프라 건설을 포함해서 판로를 보장하는 그랜드 바겐을 예상한 시나리오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산 LNG는 생산원가 면에서 불리하다. 그러나 물류비와 장기 확보 차원에서는 절대 유리하다. 철강·조선업계 입장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분명 기회 요소다. 트럼프의 타코 전술에 휘둘리지 않고 한국민의 국익을 최대한 살리는 묘책을 마련한다면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결코 한국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bienns@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 5년간 세금 0원…청년창업 감면의 함정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실핏줄이다. 정부는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하고 초기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혜택은 바로'청년창업 중소기업 세액감면'이다.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밖에서 청년(15~34세)이 창업할 경우, 5년간 법인세나 소득세를 100% 감면해 준다. 5년 동안 버는 족족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온전히 수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달콤한 혜택 뒤에는 '창업'의 정의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숨어 있다. 지난해 10월 조세심판원에서 내려진'강릉 유명 꼬막 맛집 1호점 사건은 이 기준을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사건의 발단은 강릉의 명소로 자리 잡은 유명 꼬막 맛집의 자녀들이 인근에 1호점과 2호점을 내면서 시작된다. 첫째 아들인 A 씨는 전직 복싱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서 활약한 독특한 이력이 있었다. 그는 선수 은퇴 후 어머니가 운영하는 본점 인근 건물에서 어머니의 레시피와 상호를 사용해'1호점'을 개업했고, 청년창업 감면을 신청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소득세를 100% 감면받았다. 둘째인 B 씨 역시 같은 방식으로'2호점'을 열어 감면 혜택을 받았다. 이들은 “본점과 별도로 사업자 등록을 했고, 회계도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직접 직원을 채용하고 경영했으므로 명백한 독립된 창업"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A 씨는 자신이 운동선수 출신으로 어머니의 사업과는 무관한 새로운 경영 주체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관할 세무서를 감사한 국세청 감사관실의 판단은 달랐다. 국세청은 이들의 사업장이 독립된 창업이 아니라, '어머니 사업장의 확장(별관)'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조세특례제한법" 제6조 제10항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타인의 사업을 승계하는 경우'는 창업으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심판원은 결국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심판원은'원시적인 사업 창출 효과'가 있었느냐를 핵심 쟁점으로 보았다. 심판원은 결정문에서 “본점과 1·2호점은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간판과 메뉴, 가격이 동일하며, 대기 시스템을 공유하여 고객을 인위적으로 배분했다"라고 지적했다. 또 “본점 매출 감소분이 자녀들의 사업장 매출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거나 고용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창업'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결국 자녀들이 감면받았던 수억 원의 세금은 다시 추징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거나, 프랜차이즈 형태를 빌려 사업을 시작하려는 예비 청년 창업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법에서 말하는 '창업'은 단순히 사업자 등록증을 새로 내는 행위가 아니다. 기존 사업과 차별화된 독립적인 자산, 인력, 그리고 경영의 실체가 있어야 한다. 특히 가족 간의 사업 분리나 확장의 경우, 외형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금의 출처, 경영의 독립성, 그리고 사업장 간의 명확한 경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세금 0원'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부모님 가게 옆에 내 이름으로 가게 하나 내면 세금 안 낸다더라"라는 카더라 통신만 믿고 창업에 뛰어들기에는, 세무 당국의 검증 시스템은 훨씬 정교하다. 진정한 창업의 가치는 '세금 회피'가 아닌, 나만의 독창적인 '가치 창출'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전쟁은 비즈니스다

중동의 긴장이 고조되는 요즘, 예상과 달리 워싱턴의 펜타곤보다 재무부의 불이 더 늦게 꺼진다. 미국이 중동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변화의 기저에는 베네수엘라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셰일오일(경질유)이라는 창에 이어 베네수엘라 석유(중질유)라는 방패까지 손에 넣으면서, 미국이 에너지 완전체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어도 미국은 역사적으로 이라크나 베네수엘라식의 해법을 피했다. 미국의 인내심이 깊어서가 아니다. 개입에 따른 비용이 너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호전적인 트럼프의 미국은 어떨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유가 폭등과 자국 정유 산업의 마비 공포를 걱정한 과거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은 다르다. 셰일석유가 넘쳐나는 미국은 베네수엘라산 중질유 수입으로 공급 안정성을 되찾았기에 이란이 해협을 막아도 미국 내 주유소 가격은 과거처럼 요동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대(對) 이란 전략엔 아쉬울 것 없는 자의 여유가 묻어 있다. 철저한 장사꾼인 트럼프는 막대한 전비와 인명 피해를 감수하며 이란을 폭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훨씬 저렴하고 잔인한 방법인 고사(枯死) 작전이 훨씬 남는 장사이기에 그 길을 갈 확률이 높다. 미국의 고사 작전은 이란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카드를 활용한 유가 조절과 금융 제재는 이란을 포함한 반미 연대 전체를 타격한다. 우선 이란은 끓는 물 속의 개구리로 만들려고 한다. 베네수엘라 원유가 시장에 풀리면서, 이란산 밀수 원유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이란은 베네수엘라만큼은 아니지만 중질유와 중간 등급 원유 비중이 뚜렷하게 높은 산유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라는 대안을 가지고 이란의 자금줄을 차단할 수 있다. 미국은 외부 공격이 이란 국민을 단결시킨다는 것을 안다. 극심한 경제난을 유도하여, 이란 내부에서부터 정권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도록 기다리는 게 효과적이다. 이란 지도부 입장에서는 폭격보다 더 두려운 시나리오다. 중국도 때린다. 중국은 그동안 제재 대상인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국제 시세보다 배럴당 20~30달러 싼값에 독점 수입하며 제조업 원가 경쟁력에 보탰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장악하면서 헐값에 중국에 넘어가던 베네수엘라 물량은 미국으로 간다. 미국은 또한 중국의 대형 은행과 국영 석유기업이 이란산 석유에 손도 대지 못하게 금융망을 감시하고 있다. 중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유가를 지불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능력은 고유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미국 셰일오일과 베네수엘라 중질유가 동시에 시장에 풀리는 등 국제 유가는 하향 안정화 추세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에 머물면서 러시아의 석유·가스 재정은 분명한 압박 국면에 들어섰다. 총알 한 발 없이도 서방의 제재와 탈(脫)고유가는 러시아를 전비 부족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미국의 전통의 우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에너지 자립이 달가울 리 없다. 미국이 중동 안보에서 발을 뺄까 두려워하며, 중국과 밀착하면서도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복잡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란과 미국의 대치 속에서 이처럼 주요 당사국들은 자국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주판알을 두드리고 있다. 중동 위기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장악 이후 미국에게 훨씬 유리한 게임이 된 게 사실이다. 트럼프의 기질을 반영하여 잇속의 관점에서 보면 따라서 중동 위기는 높은 긴장 속에서 관리되는 지속적 위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다만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서 동원(mobilization of sentiment)'이 전쟁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할 때 '관리'의 실패는 두려운 일이다. 언제나 평화가 해법이긴 하나, 가장 선호도가 낮은 해법인 게 흠이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AI로 인한 사회적 충격과 정부의 역할

무연고로 사망하는 분들에 대한 장례를 지원해 온 한 단체에서 지원했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 정리한 자료를 보면 놀랍게도 2020년대에 들어서도 가족 등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무연고로 사망한 분 중 상당 비율이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로 인해 발생한 실업이나 사업 실패로 인한 가족 해체의 당사자들이었다. 대한민국을 부도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외환위기의 상처는 무려 2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치유되지 못한 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놀라울 정도다.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과물의 수준이 높아져 분야에 따라서는 인간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정도다. 인공지능 이용자는 업무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이점을 누리게 되고, 사회적 편익도 증가하여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는 인공지능의 수혜를 누리게 된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과거 컴퓨터나 인터넷처럼 사회 모든 분야에 보편적으로 도입되어 필수재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 활용도가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니 사실상 이용이 강제되기도 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업무 효율화 내지는 혁신은 그 결과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작년부터 인공지능 업계의 화두는 목적 달성을 위해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물리적 실체를 전제로 공간 속에서 행동을 수행하는 피지컬 AI였다. 기본 개념이나 성격만 보더라도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사무직을, 피지컬 AI는 생산직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도 그 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압박해 대한민국에 큰 고통을 안겼던 IMF의 총재조차 비록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어 세계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지만, 수년 이내에 세계 전체 일자리의 40%, 선진국의 경우 60%에 달하는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특히 청년층에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한 충격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IMF의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평가되었던 전문직인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업계에서도 인공지능 활용으로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면서 실무 수습도 하지 못하는가 하면,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으로 평가받는 로봇 제조회사를 자회사로 둔 현대자동차그룹이 향후 공장에 로봇을 배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실업을 우려하는 노조의 반발도 거세다.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어나면 이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는 직업군과 이와 반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거나 증가하는 직업군이 생기게 된다. 사회 전체를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실업과 새로운 직업의 출현이 동시에 발생하겠지만, 그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개인은 불안한 미래로 고통받게 된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문명의 도래라 할 정도로 큰 변화의 물결인데, 이러한 물결에 휩쓸린 개인이 사회·경제적 변혁 앞에서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긴 어렵다. 정부는 최근 사회 전 분야에 인공지능 도입을 장려하고, 공공부문에서는 소버린 AI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공지능으로 인한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실업 문제도 응당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는 예측도, 대책 수립도 없는 상황에서 맞았지만, 인공지능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와 이로 인한 실업 발생은 그 규모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지라도 발생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다만, 전 세계와 경쟁하는 개인이나 기업에 인공지능 도입을 늦추거나 거부해 경쟁력 약화를 수용하라고 할 수는 없다. 개인과 기업은 자신의 길을 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과 고통을 완화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대책으로는 인공지능 활용 교육 강화, 신규 직무교육 지원부터 디지털세, 로봇세와 연계한 기본소득까지 그 폭과 깊이가 다양할 수 있다. 프로이센의 부국강병을 이끌어 독일 통일을 이룬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1880년대 의료보험, 산재보험, 연금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마련한 후 벌써 1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혁명적 변화를 맞게 된 인류는 변화된 사회·경제 질서에 맞도록 기존 사회안전망과 세제까지 포괄한 광범위한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중대한 위기가 목전에 닥치기 전에 정부는 미리 전문가들과 사회 각 계층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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