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0일(토)
[이슈&인사이트] 겉멋만 부리는 산업안전, 안전 걸림돌돼서야

“산업재해 예방은 과학이자 예술이다." 산업재해 예방의 아버지가 불리는 하인리히가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1931년)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말이 무색하게 우리나라에서 안전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이론은 필요치 않고 경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학계의 안전에 대한 몰인식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조장하고 있다. 하인리히가 살아나 우리의 현실을 본다면 적잖이 실망할 것 같다. 고용부부터 안전 비전문가 일색이다. 직렬, 채용경로에 관계없이 안전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관리직을 중심으로 전문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태부족하여 이를 높이기 위한 조직 차원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문성이 등한시되는 분위기이다 보니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 위반 적발을 많이 하는 자가 전문가로 평가받는 분위기마저 존재한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매질로 존재감을 보이려 하는 것이다. 비전문성의 폐해는 진정성의 결여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꼼수 부리기와 치장하기로 일관한다. 법정책을 개악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이유이다. 고위정책담당자가 안전문화는 캠페인이라는 저급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위험성평가 제도를 더 이상 위험성평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해화시키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한답시고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공동안전관리자 정책을 펼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법정책에 대충주의와 보여주기가 난무하는 건 겉모습만 다를 뿐 정권을 불문한다. 20세기 유명한 과학철학자 포퍼는 “진짜 무지는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학습의 거부이다."라고 일갈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둘러싼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경구이다. 학습하지 않는 건 정부만이 아니다. 안전이론을 선도하고 견인할 학계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학계가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론적 전문성도 떨어지는 웃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고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특히 안전학회는 학문적 업적이나 학술활동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어 친목단체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패거리 카르텔로 멍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자성하는 모습은 통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전문성 부족을 넘어 학자적 양심에 대해서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오죽하면 안전의 적폐라는 비판까지 나오겠는가. 학계의 전문성 부족은 학생들이 안전에 대해 잘못 배우는 심각한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교수들부터가 안전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다른 학과나 학원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나 가르치고 이론서 없이 알량한 ppt로만 강의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상당수의 안전 종사자들이 책을 읽지 않고 이론적 학습을 게을리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안전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의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데도 전체적으로 학문적 역량과 자질이 형편없는 것에 대해 학계는 학생들과 사회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컨설팅기관 또한 이름값 못하는 건 도긴개긴이다. 안전의 기초이론조차 제대로 학습하지 않은 사람이 어설픈 경험만으로 컨설팅을 하는 난센스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공포분위기에 기대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현상에 편승해 어쭙잖은 자격증과 같은 무늬만으로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염불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컨설팅기관이 수준 이하인데도, 많은 기업들이 처벌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고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이들 기관에 농락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컨설팅기관 입장에서는 전문성이 없어도 기업에 쉽게 먹혀들어 가는 걸 보면서 굳이 학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안전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도해야 할 정부와 학계, 컨설팅기관이 겉멋 부리는 데 혈안일진대, 이들이 변하지 않으면 비용만 많이 들 뿐 우리 사회의 안전 발전은 기대난망이다. 안전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차라리 없느니보다 못하다. “전문성과 열정이 없는 자들은 현재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베버가 1917년 독일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유명한 강연에서 힘주어 한 말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에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다. 정진우

[이슈&인사이트] 생성형 AI 활용, 비즈니스 혁신에 필수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생성형 AI(GenAI)의 급속한 발전은 기업의 업무 효율성 향상과 비용 절감 가능성을 제시하며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나아가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실질금리 상승 압력으로 나타날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이 혁신적인 기술의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최근 기사 “Why Adopting GenAI Is So Difficult"(생성형 AI 도입이 어려운 이유)에서는 ChatGPT(오픈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언어모델) 출시 1년이 넘도록 기업들은 이 기술을 처음 접했을 때와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GenAI 도입의 어려움이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는데, 우선 많은 기업들이 전통적인 AI 기술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새로운 GenAI의 도입을 더욱 어럽게 만들고 있다. 또한 GenAI는 방대한 텍스트 생성 등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정형화된 데이터 입력 등 전통적 AI가 쉽게 처리할 수있는 간단한 작업에는 오히려 취약한 가운데 특정 목적에 적합한 GenAI 활용 비즈니스 사례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GenAI의 장기적 비용과 이용 측면에서의 규제 환경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Gen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GenAI의 현재 역량과 미래 발전방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복잡한 경영 과제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GenAI를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업에게는 상당한 보상이 기다릴 것이다. HBR 기사의 저자들은 “GenAI 도입은 단순히 기술 투자가 아니라 근본적인 비즈니스 과제"라고 강조하며, “장기적 목표와 지속가능한 통합 전략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 사고로 GenAI에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기업이 Gen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GenAI 도입을 위한 명확한 목표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GenAI가 해결할 수 있는 비즈니스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 도입에 따른 기대 효과와 잠재적 리스크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GenAI의 핵심 요소인 모델, 데이터, 프롬프트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이들 세 요소는 상호의존적으로, 자동차로 비유하면 엔진, 연료 그리고 운전자라 할 수 있다. 고성능 언어모델 확보를 위해 내부 개발과 외부 솔루션 도입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아울러 대량의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주력해야 한다. 특히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모델이 처리하기 좋은 형태로 최적화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역량 강화를 위해 전담 인력 육성과 모범경영방식(best practice) 공유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GenAI 활용을 위한 조직문화 혁신과 거버넌스 체계 정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GenAI가 기존 업무 프로세스와 유기적으로 연계되려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수용과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전사적 교육과 변화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GenAI 활용에 따른 윤리적, 법적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관리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GenAI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한다. GenAI는 기업 단독으로 완결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다양한 파트너사, 스타트업, 학계와의 협업을 통해 기술과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산업 내 GenAI 활용 사례를 공유하고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컨소시엄 구성도 고려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GenAI 도입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 GenAI는 단순히 기존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전혀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GenAI 기반 콘텐츠 생성, 맞춤형 고객 경험 제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적 서비스 개발이 가능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GenAI가 자사의 비즈니스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Gen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다각도의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기술, 데이터, 조직, 파트너십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추구할 때, 기업은 GenAI가 열어줄 새로운 성장의 지평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Gen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도입 이상의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GenAI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김한성

[이슈&인사이트] 인플레이션의 까꿍 놀이

아기와 놀아줄 때 흔히 까꿍 놀이를 한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까꿍' 소리와 함께 얼굴을 보여주면 아기는 즐거워하며 환하게 웃는다. 까꿍 놀이는 아기에게 보이지 않는다하여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대상영속성을 가르쳐주는 놀이로 알려져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사라지는 듯 하더니 다시 나타나는 까꿍 놀이를 하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반갑다거나 인플레이션 까꿍 놀이가 즐겁지만은 않다. 인플레이션은 국내총생산(GDP), 실업률과 함께 3대 거시경제지표이다.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며 이를 역으로 이해하자면 실물로 측정한 통화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이다. 지낸 해에 비해 올해 통화의 가치가 비슷하다면 우리들은 통화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나 해마다 그 가치가 10%씩 떨어진다면 1년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보유하는 것이 편치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수중에 돈이 들어온다면 이를 실물로 바꾸려는 수요가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 통화의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 있으며, 어느 시점에는 누구도 통화를 보유하지 않으려는 혼란이 발생한다. 이러한 급격한 화폐가치 하락을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자국의 화폐를 발행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정책목표인 중앙은행이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2% 내외 수준에서 지속되기 원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다. 인플레이션이 통제범위를 벗어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통화이탈' 현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의 1면을 장식하는 인플레이션은 국가경제활동의 성적표인 GDP, 생계와 직결된 노동시장의 지표인 실업률과 달리, 수년 전만 해도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 중반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한 놈만 패' 전략을 택한 이후 최근까지 2% 내외에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무역관계의 변화, 전쟁 등에 의한 원자재 수급차질과 공급망 단절, 기후변화에 의한 농산물 생산 변화 등 공급요인들에 의해 인플레이셔이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3% 전후로 하락하며 예전의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자연히 금융시장의 관심은 미연준의 금리인하가 언제 시작될 것이며 올해 몇 번 인하할 것인가에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인플레이션은 쉽게 하락하지 않는 끈적한 특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유래없는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으로 이제는 물가목표인 2% 수준으로 돌아가야할 때도 되었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인플레이션이 과거 30년간 보여준 것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통해 억제하는 인플레이션은 주로 수요측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경기가 좋아 수요가 증가한데 주로 원인이 있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금리를 올려 수요를 감소시킴으로써 그 원인이 사라지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하락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은 전쟁, 기후, 글로벌 무역관계 변화 등 공급측면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중앙은행이 수요를 억제한다고 하여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빅스텝, 자이언트스텝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고 한들 지정학적 요인 등 공급측 요인에 변화에 의해 언제든지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으로 향후 상당기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을 목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잠시 눈 앞에서 사라진듯한 인플레이션이 우리에게 '영속성'을 가르쳐주듯 까꿍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현

[신율의 정치 칼럼] 3지대 정당들의 몰락! 왜?

이번 총선의 특징으로, 첫째, 야권이 192석을 획득했다는 점, 둘째, 제3지대 정당 상당수가 '몰락' 수준으로 참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제3지대 정당의 몰락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국혁신당이 12석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을 과연 3지대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조국혁신당과 다른 3지대 정당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미래나 개혁신당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주류에 반기를 들며 만든 '독립적'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 양당과의 차이점이 선명하다. 녹색정의당 역시 독립성이 분명한 이념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다르다. '지민비조'라는 용어가 상징하듯이, 조국혁신당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민주당과 연대나 협력이 가능한 '민주당 유사 정당'이다. 즉, 민주당에서 파생된 정당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조국혁신당의 주된 지지층이 양당에 반대하는 중도층이 아니라, 야권 지지층 중 이재명 대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국혁신당의 지지기반은, 기존 거대 정당인 민주당의 지지기반에서 파생된 '일부'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3지대 정당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과 합당이 가능한 정당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상징하는 인물을 견제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확고한 당 장악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친명 위주의 공천을 했는데, 이런 과정을 상기하면, 조국 대표와 손을 잡아 새로운 불씨를 만들 이유가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는 친문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과거 이 대표 본인이 당내 비주류로 있을 당시, 주류인 친문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장에 모습을 나타냈을 당시에도, 이재명 대표는 이를 달가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이 방문했던 지역 대부분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의 유세 현장 등장을 오히려 선거 방해 요소로 생각할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문 정권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며 보수들이 결집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런 측면을 봐도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 혹은 친문들을 반길 리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표는 조국 대표와의 합당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을 함께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견제와 경쟁의 대상, 그리고 언젠가는 힘이 빠지게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필요하면 연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길 수는 있다. 조국혁신당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국혁신당은 다른 3지대 정당과는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른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찐 3지대 정당'들은 왜 참패를 면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이렇다. 과거 3지대 정당들 중 성공한 사례는, 고(故) 정주영 회장이 만든 통일 국민당, 고(故) 김종필 전 총리가 창당한 자민련 그리고 안철수 의원이 주도했던 국민의당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정당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이들 정당 모두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하지 않았을 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3지대 정당이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사표 방지 심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미래는 1석, 개혁신당은 3석의 의석 확보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들 정당이 이런 의석만을 가지고 계속 정치활동을 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정당 간의 이합집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인데, 새로운미래와 개혁신당이 다시 합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미래가 조국혁신당과 연합 혹은 합당할 가능성은 있다. 새로운미래 구성원 대부분이 친문이라고 할 수 있고, 조국 대표는 친문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조국 대표는 자신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정당의 규모를 늘려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고 할 텐데,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미래와의 연대 혹은 합당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변수는 조국혁신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만일 민주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 기준을 10석으로 낮춘다면, 조국혁신당이 의원 영입에 전력을 다할 이유는 없어진다. 하지만, 만일 교섭단체 기준 하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조국혁신당은 민주당 내부의 비명 의원들 영입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총선 직후지만, 다시 한 번의 정계 개편이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대만 강진은 반도체 허브 육성의 기회다

지난 3일 대만 동쪽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7.2도의 지진으로 인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의 일부 반도체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TSMC 측은 3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첨단공정 시설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도 8∼15시간 가동이 멈췄다고 밝혔다. EUV 노광장비 등 주요 기계는 손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공장의 정상 가동에 수일이 소요된다. 특히, 반도체는 정밀하게 만들어져 있어 작은 충격에도 취약한 특성을 가진다. 때문에 생산시설의 복구에 대한 우려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한다. 인공지능(AI)·전기차 등에 필요한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90% 이상을 점유한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뒀다. 강진이 최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집중된 대만을 강타하면서 TSMC 공장이 멈춰서자 전 세계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는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일찍부터 제기돼왔다.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이 문제가 거론됐다. 특히 2022년 8월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무렵 중국이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한 뒤 그 문제 제기는 더욱 빈번해졌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핵심은 기술패권 경쟁이고 그 핵심은 반도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제어를 위해 기술과 장비 수출 통제 고삐를 조이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 중국이 대만을 통제하게 되면 최첨단 장비와 고급 기술 인력을 한꺼번에 확보하게 돼 일약 반도체 산업 강자로 도약하게 된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이 TSMC를 폭파하고 반도체 인력을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해 강진이 발생하면서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허브로서 적합한 지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2차 공급처로 꼽히는 삼성전자가 주목을 받고 있다. TSMC의 고객사들이 삼성전자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1위 TSMC와의 큰 격차를 보이지만 시장 점유율 14%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지진에 안전하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용수 확보도 대만에 비해 쉽다. 그만큼 입지 조건이 좋은 편이다. 공교롭게도 TSMC는 생산 다변화 차원에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그런데 일본 역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한국이 반도체 산업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마침 정부가 2023년 3월 용인시 남사면 710만㎡(215만 평)에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의 우수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팹리스 등 최대 150개를 유치한다고 발표했다. 국회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기업이 설비투자를 할 경우 세액 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또 올해 1월 622조원의 민간 투자를 통해 2047년까지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판교·수원 일대에 반도체 생산 공장 13개, 연구시설 3개를 신설한다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계획'도 내놓았다.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 9일엔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를 열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동향 및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추진현황'을 논의했는데, 그 자리에서 '첨단산업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법 개정은 전력, 용수 등 기반시설 설치에 협조하는 인근 지방자치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추진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인근 지역의 반대로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반도체 공장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경쟁국들의 투자 유치 정책에 대응해 보다 과감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특히, 우수한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업계는 인력 부족에 대한 우려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에 5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재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학 정시모집에서 서울 주요대학 반도체 학과에 합격한 학생들의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하고 의대를 선택한다고 한다. 우수한 인력은 한정돼 있다. 저출산 상황도 심각해지는 추세다. 때문에 적절한 인력 배분이 매우 중요하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의대생 증원 추진의 경우에도 마땅히 이러한 점을 고려했으면 한다. 인력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면 아무리 단지를 조성하고 인센티브를 준다 해도 반도체 산업 허브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은행의 상생금융에 대한 새로운 접근

최근 은행의 상생금융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다. 이는 지속되는 고금리 기조하에서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둔 은행 사회공헌에 대한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은행권의 사회공헌 행태는 은행별로 큰 차이는 거의 없는 편이다. 서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이자 환급, 저금리 대환상품 제공, 사회공헌 기금 출연 등으로 은행별 차별성은 크지 않다. 더욱이, 서민금융, 지역사회 기여, 학술·교육, 환경 등의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ESG 평가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더욱 유사해지고 있다. 최근 은행권의 사회공헌 활동 총액은 1조원을 상회하는 등 지난 2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에도 은행에 대한 사회 여론이 그리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 ELS의 대규모 손실로 막대한 배상 책임을 떠안게 되어, 올해 1분기 은행 순이익도 급감할 전망이다. 막대한 규모의 사회공헌에도 불구하고, 실적부진과 함께 호의적 사회여론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국내 은행의 현주소이다. 대체로, 사회공헌이라는 것에 대한 국내 은행의 개념 정립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상생(相生)이란 은행과 금융소비자가 함께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일종의 Win-Win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어야 한다. 은행별로 수익을 창출하는 주력 사업이 다르기 때문에, 은행은 수익창출에 기여하는 금융소비자 대상으로 잠재적 금융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금융 수요를 이끌어 내야 향후에도 꾸준한 영업이익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의 사회공헌은 상생금융이란 이름으로 진행중임에도 은행별로 대동소이하며,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하다. 세계적 금융전문지인 유로머니(Euromoney)는 최근 2023년 지역별 우수은행을 발표한 바 있다. 유로머니가 선정한 주요 은행들의 특징은 주력 사업과 연관된 소비자 대상 사회공헌 활동을 특색있게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머니가 선정한 북미권의 대표적 우수은행인 토론토 도미니온(TD) 은행은 소수인종에 대한 금융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 중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TD 은행은 은행거래 이력이 많지 않은 'Thin Filer'에 대한 사업확대 차원에서 흑인 차주 대상 대출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흑인 기업 및 가계의 금융지원을 위해 자선단체에 후원하고, 흑인 기업가의 사업 성공을 위한 각종 금융컨설팅도 제공한다. 특히, 흑인 기업가를 위한 맞춤형 대출프로그램인 BECAP(Black Entrepreneur Credit Access Program)을 운영한다. BECAP을 통해 이자감면, 대출설정 수수료 면제, 대출심사에서 탈락한 흑인 차주에 대한 2차 검토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TD 은행은 흑인 차주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를 토대로 잠재적 금융 수요 창출, 영업실적 개선, 사회적 평판 획득이 가능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 실제로 TD 은행의 상생금융 영업전략은 우수한 재무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대출성장률이 약 10% 늘어나며, 영업수익(revenue)이 전년대비 약 56%나 증가했다. 시장경쟁이 치열한 북미권 은행 시장에서 거둔 우수한 재무성과는 최근까지 꾸준한 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TD 은행은 세계적 마케팅 정보서비스 회사인 J.D. Power의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2019년 1위, 2023년 3위를 기록하는 등 사회적 평판 측면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시현중이다. 2000년 미국에 진출한 TD 은행이 미국의 3대 상업은행들인 BOA, Wells Fargo, J.P Morgan Chase를 제치고, 우수한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TD 은행만의 흑인차주 대상 독특한 상생금융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지용

[이슈&인사이트] 부동산PF위기와 부동산정책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부동산PF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연초부터 일부 중견 건설사들의 부도가 현실화되면서 하도급업자들과 건설근로자, 수분양자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4월 총선 이후 건설사들이 대거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부동산PF로 인한 건설업계의 위기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위기설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진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만큼 위기감이 커 사태 수습에 우선순위가 놓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복잡성 때문에 어쩌면 매우 단순할 수도 있는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위기의 본질은 갚을 여력이 없는 과도한 PF 부채의 문제고, 갚을 여력의 부족은 그 동안 추진돼 온 사업들의 사업성 감소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왜 사업성이 갑자기 감소했는가 하는 것이다. 사업성이 없었다면 애초에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위기를 시장의 실패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지금의 위기를 촉발시킨 사업성 감소가 단순히 금리나 공사비 상승에 의해 벌어진 것일 때에만 타당성을 가진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개발사업들이 좌초돼 시행사와 건설사,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는 것은 당연하고, 공공부문에서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필요성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내 부동산시장과 관련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의사결정구조와 그로부터 주기적으로 발생해 온 정책실패의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부동산가격 급등기 도입됐던 수많은 부동산규제와 그에 따른 시장에서의 혼란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들은 최근에 도입된 것들이 아니다. 과거 고도 경제성장기에 나타난 급격한 도시화와 부동산가격의 주기적 폭등과정 속에서 지금의 규제장치들이 이미 1980년대까지 거의 대부분 마련됐고,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시점이면 정부는 어김없이 이러한 규제장치들을 동원해 왔다. 그런데 과거 시장과 정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 있다. 경험적으로 부동산가격을 촉발시킨 것은 거의 언제나 경기침체기에 정부 재정확대로 인한 시중자금의 팽창이었고, 가격상승은 다시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해 가격 상승폭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상적 산업활동을 옥죄는 각종 규제로 인해 경제성장세가 둔화되고 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정책금융을 통해 가계부채를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부족한 구매력을 지원해 왔다. 이는 다시 시중자금 확대와 부동산가격의 폭발적 상승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개발이익을 쫓은 개발사와 건설사, 금융사들의 개발시장 참여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도입된 부동산규제다. 부동산경기 호황기에 개발사업에 뛰어드는 경제주체들은 계획수립 당시 예상되는 이익을 보고 사업에 참여하지만, 준공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와중에 도입되는 수요와 공급 두 가지 측면에서 전방위적으로 도입되는 규제들은 개발사업들의 수익구조를 완전히 왜곡시켜버린다. 특히 (적정 가격수준이 어떠한 것인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함에도) 부동산가격 안정화라는 모호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입되는 분양가상한제 등 가격규제는 개발사업의 수익성을 급감시켜 참여자들 사이에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업추진을 지연시킨다. 이는 결과적으로 개발사업들이 외부환경 변화에 극히 취약해지게 만들고, 실제로 인플레이션 억제 등을 위한 금리 인상 등 외생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개발사업들의 동시다발적인 부실위험에 노출된다. 실제 이것이 우리의 부동산개발산업과 금융산업이 동시에 직면해 있는 지금 위기의 촉발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무엇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경기활성화 목적으로 이뤄지는 과도한 재정지출과 정책금융지원, 이후 벌어지는 부동산가격 상승에 대응한 가격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전방위적 규제가 현재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이다. 그 이면에는 다시 기업의 정당한 수익 추구 활동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시각,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이익으로부터 소외되는 적지 않은 국민들의 불편한 마음, 그리고 그를 이용하는 강력한 정치적 의사결정구조가 존재한다. 결국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앞으로 보다 큰 위기가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위기를 촉발시킨 이러한 원인들에 대한 진단과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과거의 정책실패가 초래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토대로 '경기활성화'와 '가격안정화'라는 기존의 실패한 부동산정책의 목표를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 활성화'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시장에의 개입방식 역시 인위적 경기부양과 과도한 규제 대신, 민간 자율로 시장가격 변화에 따라 공급과 수요가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돼야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돼 온 정책실패와 그에 따른 지금과 같은 혼란을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김정주

[이슈&인사이트] 전기차 초격차 기술 확보한 벤처기업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소장 이륜차는 구조적으로 일반 자동차보다 매우 단순하다. 크기나 구조가 단순하다보니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장치를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나아가 실제 운용측면에서 작은 크기로 인한 비용 절감과 함께 이산화탄소 배출 등 친환경 요소 측면에서도 일반 자동차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주차공간 등 유지비용도 훨씬 적게든다. 내연기관차를 대신하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이륜차의 전기차 전환도 예외가 아니다. 전기차 전환을 이륜차가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쉽게 관련 기술을 적용해 성능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륜차를 많이 이용하는 인구대국인 인도나 중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수십억대가 돌아다닐 정도로 전기 이륜차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륜차도 전기차로의 대세 전환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은 몸체 탓에 장착할 수 있는 배터리용량이 적다는 점이다. 전기이륜차에는 일반적으로 3Kwh 정도 배터리가 기본 용량으로 장착되는 데 이 배터리 용량으로 운행할 수 있는 거리는 50~60Km로 일반 이륜차(150km)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전기이륜차의 배터리 용량을 늘리려면 전체 비용 대비 배터리 비용 부담이 훨씬 커져 경쟁력이 떨어진다. 여기에 전기차의 특성상 고속으로 운행하다보면 모터가 과열돼 주행이 자동 정지되기도 한다. 이륜차는 일반 자동차와 같은 냉각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 출발할 때 급가속으로 인한 안전사고 사고발생 우려가 크고 노출되는 공간이 적은 만큼 탑재 공간도 없다. 그만큼 전기이륜차는 일반 전기차와 달리 주어진 조건이 까다롭다. 문재인정부에서 공약으로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이륜차들도 실제 운영에 이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전기 이륜차를 가장 잘 만든다는 중국과 대만의 전기이륜차도 주행거리가 50~60km에 불과해 택배용으로는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판매되는 연간 2만~3만대의 전기이륜차가 높은 보조금을 받으면서 실제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만의 글로벌 이륜차 제작사인 고고로가 국내에 전기이륜차의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동시에 배터리 교환형 시스템도 함께 보급한다고 한다. 물론 배터리 교환 시스템은 같은 전기이륜차를 사용하여 용량이나 형태 등이 같은 배터리를 사용해야 가능하다는 한계성이 있다. 이런 형태는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다. 중국의 경우 규모의 경제적 장점을 활용하여 단일 전기이륜차에 배터리 교환시스템을 함께 보급하여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법이다. 앞선 언급과 같은 경우 하루에 두 번 정도 충전된 배터리를 사용하면 주행거리가 약 150Km 정도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다양한 여러 전기이륜차가 시장을 누비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분명히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즉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 전기이륜차가 당장 발등의 불이 된 상황에서 분명한 해결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유일한 방법은 전기이륜차용 자동변속기의 도입이다. 현재 전기이륜차에 사용하는 변속기는 대만산 전기이륜차로 3년 전 판매가 시작된 2단 변속기가 유일한 양산형 기종으로 효율은 향상됐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이런 한계점을 극복해 11년 전부터 미래형 전기차용 변속기를 개발한 국내 벤처기업이 있다. 현재 양산형 전기이륜차용 7단 자동변속기를 개발한 상태로 하반기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간다. 앞서 이 자동변속기는 지난 1년간 인도네시아의 여러 제작사에서 시험을 통해 3Kwh의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이륜차에 이 변속기를 탑재해 주행거리가 약 100Km에 이르고 등판능력은 획기적으로 상승하면서도 모터의 온도는 약 60도 정도에 머물러 아예 냉각장치가 필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벤처기업은 초격차 기술로 해외 여러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 기술은 더 나아가 일반 전기차에 적용가능하다는 것이다. 전기차에 적용하는 방법도 이미 고안돼 여러 제작사와 접촉 중이다. 미래 전기이륜차는 물론 전기차의 미래를 결정짓는 게임체인저 기술이라는 뜻이다. 이미 일반 전기차에도 포르쉐 타이칸과 아우디 E트론에 2단 변속기가 양산형으로 판매되고 있다. 물론 이 정도 적용에도 적지 않은 효율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대용량 변속기 회사인 '이튼'의 경우도 2022년 전기버스에 개발한 4~6단 변속기를 탑재할 예정이다. 국내 벤처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일무이한 초격차 기술의 7단 변속기 개발과 양산형 진행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우리 기술로서의 발전을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여러 해외 기업에서 접촉 중인 만큼 우리 기술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 목을 겨누는 과오를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한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기술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전기이륜차의 한계 극복은 물론 미래 전기차를 책임지는 전기차용 변속기가 더욱 빛을 발해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확실이 잡기를 바란다. 김필수

[주원 칼럼]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캐즘 뿐일까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사대우 '캐즘(chasm)'이란 신제품이 시장에 크게 상용화 되기 직전에 발생하는 산업의 침체기를 의미한다. 지질학에서는 '아주 깊은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다. 1991년 실리콘 밸리의 제프리 무어 박사가 기업의 성장 과정을 연구하면서 신기술·신산업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캐즘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마 기술 개발에서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벤처기업들이 실패한다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는 용어와 같은 의미라고 판단된다. 최근 전기차와 그 핵심 부품인 2차전지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는 모습에서, 이를 캐즘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러한 해석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보면 전기차 시장은 대세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전기차 시장은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이제 막 기술을 선보이고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초기 시장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신차등록 기준으로 15% 내외 정도로 높아진 전기차 시장을 캐즘이나 죽음의 계곡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힘을 얻고 있다. 우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유지비가 싸다. 연비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소모품 교체 주기나 비용에 있어서 내연기관차에 비해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동급의 내연기관차에 비해 출고 가격 자체가 많이 높다. 이 부분에 대해 그동안은 구매보조금으로 일정 부분 커버되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통해 가격경쟁력이 유지되었던 바가 크다. 또 하나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주의(環境主義, Environmentalism)의 정치화가 상당수 국가에서 받아들여지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내연기관차의 퇴출을 공언한 바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이 두 가지 추진력이 약화되는 움직임이 있다. 우선 전기차 구매 시 지원되던 주요국의 보조금이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재원 부족이 그 원인이다. 또한 전기차 시장 성장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동력도 약화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환경 이슈에 대한 피로감과 반작용이 나타나면서 전기차에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6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와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정치권력이 이동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크게 축소하는 상황이다. 특히 애플은 전기차 시장으로의 진출을 포기했다. 반면 우리 전기자동차와 이차전지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계속 진행하면서 오히려 전기차로의 전환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기업들의 시장 전략은 우수한 내부 인력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많은 검토가 이루어진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 자동차 기업들과 이차전지 기업들의 공격적인 전략을 존중한다. 다른 경쟁국들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기술력과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은 미시적이고 재무적인 분석에는 뛰어나지만, 거시 경제 여건과 정치·제도적 환경 여건에 대한 분석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시대 변화에 둔감한 경우가 종종 있다. 만에 하나 유럽의회가 우경화되고 전기차 산업에 대해 지극히 적대적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전기차 시장은 캠즈가 아니라 최소 5년 동안의 장기 불황 국면에 빠지게 된다. 어느 산업이든지 시장이 그러한 장기 불황에 빠지면 잘나가는 그 어느 기업도 버틸 재간이 없다. 기업의 성장과 도약도 중요하지만, 작은 가능성이라도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을 여지는 없는지 우리 주력 산업의 전략을 세심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원

[이슈&인사이트] 로스쿨 제도 근본적 재검토할 때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2009년 미국식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지 15년이 지났다. 일본에선 우리보다 5년 빠른 2004년 도입됐는데, 제도경쟁력 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완패했다. 한국 로스쿨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시점이 왔다고 본다. 현행 한국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병폐는, 이 제도가 70년 역사의 법과대학 교육 인프라를 일거에 무너뜨려 법학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온 것이다. 국가적 재앙이라 할 만한 손실이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전에는 매년 1만3400명의 법학도가 대학에 입학했다. 현재는 전국 25개 로스쿨에 2000명만이 입학하고 있고, 법학과는 소멸 중이다. 일본에선 기존 약 3만여 명의 법학과 학생을 그대로 두고 로스쿨에 매년 5000명 이상이 입학해 법학의 저변이 확대됐다. 한국에서 매년 2000명 정도의 학생만이 로스쿨에 입학하는 동안, 법학생 수의 급감, 법학연구자의 급격한 축소로 법학 후속세대의 양성이 불가능하게 됐으며,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붕괴됐다. 법학 교과서는 희귀하게 됐고, 수험가의 얄팍한 요약서가 범람한다. 공무원 시험과목에서 법학과목 퇴출이 심화됐고, 법학개론이나 생활법률 과목이 대학 교양과목에서 사라졌다.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법 경시 풍조가 가속화되고, 법치주의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망국적 현상이 진행 중이다. 궤변을 일삼는 법기술자가 여럿 출현했고, 특히 정치인이 된 법기술자들의 죄의식 저하가 극심하다. 로스쿨들은 학교마다 특성화를 실시하고 소크라테스(Socrates)의 문답식 교육방식을 채택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특성화는 완전 실종이고, 문답식 교육은 온데간데 없다. 학생들은 변호사시험 대비 판례암기 공부로 로스쿨 3년을 보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실력의 양극화도 극심해져, 변호사시험 합격자 실력의 균질성이 사법시험 합격자에 비해 추락했다고 법조계에서는 말이 많다. 일본 학생들은 대학 입학으로부터 빠르면 5년(법과대학 3년 조기졸업 + 로스쿨 2년), 정상적이면 6년(법과대학 4년 졸업 + 로스쿨 2년) 후 사법시험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선 7년(대학 4년 + 로스쿨 3년) 이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대학 조기 졸업 외에는 없다. 일본에선 로스쿨 재학 중에도 사법시험을 볼 수 있으나, 한국은 반드시 로스쿨 3년 수료자만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선 로스쿨을 다니지 않더라도 '예비시험제도'에 합격하면 바로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2023년 사법시험에서 명문 도쿄대학 로스쿨 졸업자의 68%, 교토대학 졸업 응시자의 59%, 히토쯔바시대학 졸업 응시자의 67%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예비시험에 합격한 후 응시한 자의 92%가 합격하여, 예비시험 합격자가 로스쿨 졸업생보다 월등하게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다만, 예비시험 합격률은 겨우 3~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양만식 교수 제공 자료). 한국은 장기ㆍ고비용ㆍ저효율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경로인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변호사시험을 볼 자격이 생긴다. 이는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매우 나쁜 제도라고 할 것이다. 일본처럼 예비시험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로스쿨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고 이는 로스쿨의 기득권을 뺏는 것이므로 전국 로스쿨 교수들과 재학생들이 저항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처음부터 들어왔어야 했는데 실기했다. 장차 이를 도입하려면 5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 다만, 필자는 로스쿨 졸업도, 예비시험도 필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대학 법학과에서 50학점 정도 최소한의 필수과목 학점만 이수하면 바로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사면허시험과는 달리 변호사시험은 독학으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로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국민이 행복해진다. 누구든 어떤 방법으로든 열심히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최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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