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공식적으로 대한항공의 자회사가 됨에 따라 인수 추진 4년 여만에 한진그룹의 일원이 됐다. 고용 보장과 동시에 '글로벌 메가 캐리어'로의 도약이 기대된다. 하지만 동시에 커진 규모 만큼이나 우려 섞인 시선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날부로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제하게 됐다. 전날 유상증자 대금 1조5000억원 중 계약금 3000억원과 중도금 4000억원을 제외한 8000억원을 투입해 지분 63.88%(1억3157만8947주)를 취득했다. '신주의 인수인은 납입 또는 현물 출자의 이행을 한 때에는 납입 기일의 다음 날로부터 주주의 권리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상법 제423조 제1항에 따라서다. 한진그룹은 앞으로 2년여 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다 합병 작업을 거쳐 '통합 대한항공'을 이루되, 정부와 한국산업은행 측과 긴밀히 협의할 방침이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국적 유일 풀 서비스 캐리어(FSC) 지위를 38년 만에 확보하게 될 예정이다. 대한항공 측은 기업 결합의 기본 취지인 국내 항공 산업 구조 개편의 사명감을 갖고 통합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대한항공의 역사는 50여년의 대한민국 항공 역사와 맥을 같이해왔다. 1962년 6월 19일, 정부는 막대한 자본이 요구되는 항공 운송업을 영세한 민간 자본으로 운영해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설립했다. 대한항공공사는 의욕적으로 출범했지만 비행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정부의 납입 자본금 불입이 늦어져 항공기 도입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고, 창립 자본금 5억원이 1966년에야 겨우 마련돼 국제선 취항이 늦어졌다. 또 국내 최초 제트기인 DC-9의 엔진 파손으로 7개월 간 운항을 못했고, 기존 기재는 노후화돼 결항률은 전세계 항공 역사상 유례가 없는 17.5%에 달했다. 결국 대한항공공사도 출범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정부는 항공 운송업 재건을 위해서는 민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1968년 6월부터 8월 사이 인수 능력이 있을 법한 재계 유력 인사들과 접촉하며 의사를 타진했다. 대한항공공사의 민영화 문제를 놓고 정부가 고심하는 동안 한진그룹의 모태인 '한진상사'는 1956년 미군과의 수송 계약 체결로 급성장해 1960년에는 가용 차량이 500대에 이르렀다. 마침 한진상사는 1960년 세스나 항공기를 이용한 에어 택시 사업을 시작으로 그해 11월 '한국항공(Air Korea)'을 설립해 정기 항공 운송 사업 면허를 취득한 경험이 있었다. 이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조중훈 한진상사 사장을 대한항공공사 인수 적격자로 낙점해 청와대로 초대했고, 1969년 2월 27일 한진상사는 14억5300만원에 정부와 수의 계약을 체결했고, 다음날 주주 총회에서 경영권 이전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공사의 민영화가 확정됐다. 같은 해 3월 1일, 민간 항공사인 대한항공 주식회사가 출범해 본격 대한민국 민항 시대가 열렸다. 대한항공은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발판으로 꾸준히 국제선을 늘렸다. 또 조중훈 사장은 서울을 전 세계 하늘길의 중심에 두고 글로벌 노선망을 구축해 대한항공을 아시아의 지역 항공사가 아닌 세계적 항공사로 만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미주 노선 개설을 통해 국제 항공사로 도약 위한 승부수를 띄웠고, 또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유럽으로 가는 하늘길도 개척해 세계 일주 노선망 구축에 한발 더 다가섰다. 한편 1980년대 유가·금리·환율의 '3저 호황'으로 경제가 고도 성장을 구가하고, 정부의 해외 여행 자유화 방침으로 항공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제2 민항'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부는 1988년 2월 12일 금호그룹에 사업 기회를 부여했다. 같은 해 2월 17일 금호그룹은 '서울항공' 설립 등기를 마쳤고, 8월 11일 사명을 '아시아나항공'으로 바꿔 본격 사업에 나섰다.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에 국내선에 이어 국제선 허가를 연달아 내줬고, 두 항공사는 노선 배분과 취항 지역을 놓고 치열한 대결을 벌이며 5대양 6대주 노선망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쟁 구도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영 부실로 무산됐고, 아시아나항공은 부채 비율이 2000%를 넘는 등 재무 회복 불가능 수준의 치명타를 입었다. 이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2020년 11월 16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공식 선언해 만 4년 여만에 13개국의 승인을 받고 무사히 계획을 마쳤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항공기 230여대를 보유한 '글로벌 10위권 메가 캐리어'로의 본격 도약이 기대된다. '규모의 경제' 논리에 따라 각종 단위 비용도 낮출 수 있어 수익성 증대도 예상된다. 이 외에도 단순 기업 결합에 따른 외형 확대를 넘어 고용 안정성까지 지켜낸다는 점에서 창업 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사회적 의미도 크다는 평가다. 두 회사를 합치면 2만4831명, 에어부산·에어서울·아시아나 세이버·아시아나IDT·아시아나에어포트까지 포함하면 한진그룹 직접 고용 인원은 4만121명이나 된다. 국토교통부도 양사 결합에 맞춰 통합 FSC와 진에어를 중심으로 한 통합 LCC의 항공 네트워크를 개선해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원 사격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자 AOC와 운영 기준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 회사가 되면 동일 내지는 유사 조직 통합에 따른 운영 체계·안전 관리 시스템·운항 절차·정비 방식 등 다방면에서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기준에 따라 항공사는 주요 변경 사항이 있을 경우 신규 AOC를 취득해야 한다. 이에 입각해 항공안전법 제90조 5항은 '항공 운송 사업자는 최초로 AOC를 받았을 때의 안전 운항 체계를 유지해야 하고 국토부 장관이 실시하는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못박아두고 있고, 동항 5호는 항공사업법 제22조에 따라 '사업을 합병한 경우'를 거론하고 있다. 이처럼 ICAO와 국토부가 이와 같은 같은 조치를 요구하는 이유는 합병된 항공사의 안전 운항 능력을 재평가해 승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또한 새로운 AOC를 통해 통합 대한항공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고, 항공 당국의 관리 감독 기준 재설정이 기대된다. 이 밖에도 최종적으로 급여·복지 문제와 결부되는 '시니어리티(특정 항공사에서 조종사가 근무한 기간)'에 따른 스케줄·기종·근무지 선택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두고서는 대한항공 내부적으로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항을 담당하는 조종사들은 회사 운영의 핵심 인력들인 만큼 이들 조직에서 갈등이 생기면 곤란해질 것이 명약관화해 어떻게 마찰 없이 화합을 이뤄낼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한진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품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다. 우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 자체에는 영구 전환 사채(CB)와 신주 인수에 각각 3000억원, 1조5000억원 등 총 1조8000억원이 들었다. 한진칼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교환 사채 발행으로 8000억원을 확보해 대한항공 유증에 참여함으로써 두 회사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했다. 조원태 회장은 “무엇을 포기하든 반드시 합병시키겠다"는 뜻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영국 경쟁시장청(CMA)과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의 요구에 따라 인천-런던(1개 노선, 7개 슬롯)과 △서울-베이징 △서울-상하이 △서울-선전 △서울-시안 △서울-장자제 △서울-창사 △서울-텐진 △부산-베이징 △부산-청도(9개 노선, 49개 슬롯)을 내줬다. 이 같은 이유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APU)와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OZ Union)을 포함한 M&A 반대론자들은 “온전한 통합일 수 없는 항공판 매국 행위"라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항공 운수업이 규제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 운수권과 슬롯이 항공사의 자산으로 인식돼서다. 아울러 EC의 승인과 미국 연방 법무부(DOJ)의 반 독점 소송을 의식한 듯 대한항공 이사회는 에어버스와 보잉의 신형 여객기를 각각 23조8241억원, 30조원 총 53조8241억원 어치를 주문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순수 M&A 비용인 1조8000억원의 약 31.35배를 쓰게 된 셈이다. 2023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대한항공 영업이익은 1조7901억원으로 파악된다. 또 금융 정보 업체 에프엔 가이드에 따르면 올해에는 2조1555억원, 2025년 2조2462억원, 2026년에는 2조2408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비용 집행이 모두 끝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평가다. 또 3분기 기준 199.23%인 대한항공 부채 비율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완료로 인해 오를 것이어서 꾸준한 재무 관리가 필요하다. 안도현 하나증권 리서치 센터 연구원은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한 2025년 연결 추정 실적 기준 대한항공의 부채 비율은 270% 수준으로 추산돼 기존 대비로는 상승하나 글로벌 항공사 평균을 감안하면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M&A에 따른 항공권 가격 인상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인천국제공항에는 한 국가의 항공사가 상대국의 공항을 경유해 제3국으로 다시 운항할 수 있는 권리인 '제5 자유 운수권(이원권)'이 적용된다. 그렇기에 대한항공이 가격 인상을 시도하면 외항사들이 좌석 공급에 나서 대체재로 나설 것이라는 옹호론이 존재한다. 반면 대한항공이 좌석 수를 줄이고 좌석 단가를 인상하면 자연스레 항공권 값이 오를 것이라는 비관론도 공존한다. 이 외에도 두 회사의 마일리지 산정 공식과 비율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의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대한항공이 납득할만한 움직임을 보여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무제표상의 이연 수익은 1대 1 비율로 합치되, 카드사를 통해 쌓은 마일리지의 경우 시장 가치에 따를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 관련 시정 조치 내용을 변경·구체화 했다고 밝히며 4년에 걸친 심사를 종결했다. 두 회사는 기업 결합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마일리지 통합 방안을 공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앞서 공정위는 2022년 2월 23일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국제선 26개, 국내선 14개 시장에 대해 구조·행태적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 중에는 2019년을 기준으로 각 노선별·분기별·좌석 등급별 평균 운임을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인상하지 못하게 하고, 각 노선별 공급 좌석 수를 90% 미만으로 축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또 좌석 간격·무료 기내식·무료 수하물·기내 엔터테인먼트·라운지 이용 등 소비자 제공 서비스의 주요한 내용과 각사 마일리지 제도를 기준 년도보다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을 금하는 문구도 명시돼있다. 공정위는 국토부와 항공·소비자 분야 전문가로 이뤄진 이행감독위원회 꾸려 시정 조치 점검에 나선다는 입장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