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핵잠 시대 (하)] 핵연료 저농축·비확산 투명관리로 ‘국제사회 빗장’ 푼다](http://www.ekn.kr/mnt/thum/202606/news-p.v1.20260602.61684f5f94b044f981d5b55ce1adf812_T1.png)
독자적인 첨단 기술력을 확보하고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한다 할지라도 대한민국 핵추진 잠수함 획득을 가로막는 진정한 '최종 보스'는 따로 있다. 바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 외교 무대와 전 세계를 촘촘히 옭아매고 있는 '핵 비확산(Non-proliferation) 체제'다. 핵무기가 아닌 순수한 추진 동력으로만 원자력을 사용하려 해도 민감한 핵물질인 우라늄이 군사 장비에 탑재되는 순간 국제사회는 필연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자칫 국가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제재를 부를 수도 있는 사안이다. 국방부가 지난 5월 26일 '대한민국 핵추진 잠수함 개발 기본 계획'을 전격 발표하며, 군사적 당위성 못지않게 “국제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높은 수준의 핵비확산 의무 이행"을 거듭 천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미·영식 고농축(HEU) 포기한 국방부…저농축(LEU) 프랑스식 '솔로몬의 지혜' 잠수함의 심장인 원자로를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연료로 쓰일 우라늄의 '농축도'다. 이 결정이 잠수함의 운명과 작전 교리를 통째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강기식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초빙 교수와 우승민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부교수가 공동 집필한 논문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도입의 기술 동향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국가들의 우라늄 운용 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세계 최강의 원잠 전력을 자랑하는 미국과 영국은 전통적으로 농축도 90% 이상의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HEU)'을 쓴다. 90%대 HEU를 사용하면 원자로 노심 크기를 극단적으로 줄이면서도 잠수함의 수명인 20~30년 내내 '핵연료 교체'를 할 필요가 없어 작전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압도적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번 발표에서 개발 제1원칙으로 “원자로의 핵연료는 저농축 우라늄(LEU)을 사용하며 핵연료 교체를 최소화하도록 장주기 운전이 가능하게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작전 효율이 높은 미국식 HEU 모델을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강 교수팀은 논문에서 “우리가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제한될 뿐만 아니라 언제든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어 자칫 '핵무장'이라는 국제적인 오해를 사 치명적인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팀은 가장 현실적이고 훌륭한 롤 모델로 '프랑스식 저농축 해법'을 제시했다. 미국과 달리 독자 모델을 개척한 프랑스는 상용 원전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약 7~7.5% 수준의 저농축우라늄을 잠수함 연료로 사용한다. 이 경우 HEU 대비 원자로 부피가 커지고 대략 10년마다 핵연료를 교체해야 하는 단점이 발생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단점을 역발상의 기회로 삼았다. 연구팀은 “어차피 프랑스 원자력 안전 규정상 군용 원자로도 10년마다 정기 유지·보수와 안전 검사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프랑스는 이 시기에 맞춰 비좁은 잠수함 선체 일부를 절단해 내부 주요 전투 체계와 센서를 최신형으로 개조하면서 원자로 구획을 열어 핵연료 교체 작업을 병행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고 설명했다. 군사 기술이 급변하는 현대전에서 무교체로 30년을 버티는 것보다 10년마다 최신 전투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며 핵연료도 교체하는 '프랑스식 실용주의'가 우리의 저농축 원칙과 정확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저농축 기반의 장주기 운전'을 선언한 것은 국제적 수용성과 작전 지속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적 타협안인 셈이다. ◇ “핵무기 개발 아니다"…NPT·IAEA의 사찰·통제 '바늘구멍 뚫기' 아무리 저농축 우라늄을 선택했다고 해도 국제 외교의 모든 빗장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핵 확산 금지 조약(NPT)에 가입한 비핵 국가로서 모든 평화적 핵 활동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과 통제를 받아야 한다. 군사 무기에 핵을 싣는 것 자체가 조약의 정신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핵무기도 보유·개발하지 않는다 △미국과 긴밀한 소통하에 우라늄 확보 전반의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다 △IAEA와 공동으로 잠수함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안전 조치 체계'를 구축한다 등 세 가지 확고한 약속을 천명했다. 강기식·우승민 교수팀은 논문을 통해 IAEA의 깐깐한 감시 체계 안에서 군사용 핵잠수함을 합법적으로 운용할 합법적 돌파구로 'IAEA 전면 안전 조치 협정(CSA, INFCIRC/153) 제14조'를 지목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핵잠수함은 폭발 목적의 무기가 아니므로 관행상 '비폭발적 군사적 이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제14조는 '핵물질이 금지되지 않은 추진 동력 등 군사 활동에 쓰일 경우 핵무기 전용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한 검증 조건을 IAEA와 합의한다는 전제하에 일시적으로 통상적 안전 조치(사찰) 적용을 제외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오커스(AUKUS) 동맹을 맺고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는 비핵국가 호주가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IAEA와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연구진은 “이는 안전 조치 체제에서 완전히 도망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군사 활동 기간 동안 핵물질이 철저히 추진 목적으로만 쓰이고 폐기 시 다시 안전 조치로 복귀함을 보증하는 촘촘한 특별 검증 약정을 맺는 것"이라며 우리 역시 호주의 선례를 벤치마킹해 당당하고 투명한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 한미 원자력 협정의 오해와 흔들림 없는 '핵잠 생태계'의 완성 외교의 또 다른 중대한 축은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다. 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인 김홍유 경희대 교수는 칼럼 '보이지 않는 억제력, 한국형 원자력 잠수함의 전략적 의미'에서 “복잡한 외교·법적 절차를 '기술 주권 확보'와 '국제 신뢰 구축'이라는 양면의 균형 전략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가장 큰 걸림돌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꼽으며 이를 개정해야만 핵잠수함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강기식·우승민 교수팀은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 제13조는 철저히 '평화적 목적(원자력발전소 등)'을 전제로 맺어진 조약이므로, 핵물질의 어떠한 군사적 목적 이용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군사적 목적인 핵잠수함 추진을 이 평화 목적의 원자력 협정 테두리 안에서 무리하게 풀려 하거나 조약 개정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대신 연구팀은 “별개의 군사 협정을 통해 도입할 수 있는 체계"라며 한미 원자력 협정 밖에서 한미 국방 당국 간의 새로운 '군사·안보 협정'을 타결해 연료를 수입하는 투 트랙(Two-track) 우회 방식이 올바른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국방부가 기본계획에 “미국과 긴밀한 소통하에 투명하고 확고하게 이행하겠다"고 콕 집어 명시한 것 역시 이 별도의 외교적 안보 담판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잠수함만 건조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핵잠 생태계(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방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법령에 따라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강 교수팀은 미국의 세계 최강 핵잠 함대를 일군 리코버 제독의 조직관리 체계를 거론하며 강력한 인프라를 주문했다. 연구팀은 “프랑스식 10년 주기 핵연료 교체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려면, 방사능 노출을 완벽히 차단한 채 압력 선체를 자르고 거대한 장비와 연료를 교체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 전용 유지·보수 조선소'가 국내에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설계자나 군 운영자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민간 규제 기관이 군용 원자로의 전 수명 주기 안전을 엄격히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법제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전에 대한 투명한 관리가 전제돼야 국내의 사회적 갈등을 막고 진정한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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