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英 버진 애틀랜틱 “대한항공 연계로 환승 시너지…韓 인천 장기 취항 의지 확고”

14일 오전 11시, 영국 국적 대형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Virgin Atlantic)'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 터미널에서 런던 히스로-인천 직항 노선 취항 기념 기자 간담회를 개최해 한국 시장 진출 일성을 알렸다.. 이날 행사에는 코넬 코스터(Corneel Koster) 버진 애틀랜틱 최고경영자(CEO)와 데이브 기어(Dave Geer) 최고상업책임자(CCO) 등 영국 본사의 핵심 경영진이 한국을 직접 찾아 노선 운영 계획과 비전을 제시했다. 코스터 CEO는 환영사를 통해 양국 간 시너지를 높게 평가하며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국은 기술·혁신·창의성의 글로벌 리더이자 전 세계에 영감을 주고 있는 K-컬처의 중심지"라며 “지난 10년간 한-영 양국 간 무역 규모가 64% 증가해 약 160억 파운드(약 27조 원)에 달하는 만큼, 두 글로벌 수도를 연결하게 된 것은 엄청난 특권이자 영광"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1984년 리처드 브랜슨 경이 설립한 버진 애틀랜틱의 혁신적 DNA를 한국 시장에 선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코스터 CEO는 “당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과 이코노미석 아이스크림 제공 등 항상 차별화된 프리미엄 풀서비스를 추구해 왔다"며 “런던-인천 노선에 보잉 787-9 드림라이너를 투입해 연간 18만 석을 공급할 예정이며, 매 항공편마다 3명의 한국인 승무원을 배치해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스카이팀(SkyTeam) 내 유일한 영국 거점 항공사로서 파트너사인 대한항공과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어 CCO는 초기 운항 실적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신을 런던 내 대표적인 한인 타운인 '뉴 몰든(New Malden)' 거주자라 소개한 그는 “취항 첫 달부터 80%가 넘는 탑승률을 기록하며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강력한 수요를 확인했다"며 “취항 발표 이후 영국발 수요는 70% 이상, 한국발 수요는 40% 이상 급증했고 레저·비즈니스·교민 등 고객층이 매우 다변화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세션에서는 버진 애틀랜틱의 △아시아 노선 운영 전략 △재무 건전성 △지정학적 리스크 극복 방안 등과 관련한 심도 있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버진 애틀랜틱의 인천 취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른 영국 경쟁시장청(CMA)의 슬롯 7개 배분 조건으로 성사됐다. 그러나 버진 애틀랜틱은 도쿄·상하이·홍콩 등 주요 아시아 노선에서 철수했던 이력이 있다. 이에 본지는 의무 운항 기간 3년을 채운 상태에서 슬롯만 챙기고 수익성이 높은 타 지역으로의 철수 계획과 의무 운항 기간이 지난 후에도 런던-인천 노선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 질의했다. 코스터 CEO는 단기 운항 우려를 일축하며 장기적인 투자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장거리 직항 노선에 새로운 경쟁자가 필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당사가 슬롯을 배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당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에 취항하기를 강력히 열망해 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이 노선은 훌륭한 포인트 투 포인트(Point-to-Point) 직항 수요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파트너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동북아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탁월한 환승 연결성을 제공한다"며 “단기 아닌 아주 오래 한국 시장에 머물 것이며, 매우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편 버진 애틀랜틱은 작년 세전 2억500만 파운드(한화 약 4100억5125만 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고, 최근에는 주력인 미주 노선의 수요 둔화 우려까지 제기됐다. 이처럼 재무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막대한 초기 마케팅 비용과 운영 손실이 불가피한 극동 아시아 장거리 노선 확장이 다소 무리한 행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 본지는 런던-인천 노선의 초기 적자 구간을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와 해당 노선의 흑자 전환 시점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는지도 물었다. 코스터 CEO는 “당사의 재무 성과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정확한 지적"이라며 “수익성 격차를 좁히기 위해 네트워크 최적화·스케줄 조정·생산성 향상·간접비 통제 등 전사적인 개선 작업을 연초부터 추진 중"이라고 했다. 또 “신규 기재 도입이나 객실 서비스 등에는 지속적으로 투자하되, 할 수 없는 부분은 과감히 긴축하며 운영 결과를 개선하고 있다"며 “다행히 올해 1분기 영업 실적은 당초 계획과 전년도 실적을 훨씬 뛰어넘는 긍정적인 흑자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 세계적인 항공유 가격 상승 등 거시적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중동 지역을 경유하는 환승 경쟁이 줄어들면서 역설적으로 당사의 직항 노선 수요가 매우 견조해졌다"며 “인도 노선의 경우 올여름 하루 6회로 증편할 예정이며, 한국 노선 역시 취항 첫 달 80% 이상의 탑승률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인 '후행 예약' 트렌드까지 고려하면 탑승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어서 시장의 예약 호조가 당면한 과제와 초기 시장 진입 비용의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게 코스터 CEO의 입장이다. 아직까지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영공 통과는 여전히 제한된 상태다. 이 탓에 런던행 귀국편 비행시간이 14시간을 훌쩍 넘는 상황에서 유류비를 포함한 운영 비용 압박은 상수가 됐다. 과거 아시아 노선들에서 철수했던 이유 역시 수익성 문제에 기인한다. 기어 CCO는 “처음 서울 취항을 결정했을 당시부터 이미 러시아 영공을 크게 우회해야 한다는 제약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향후 수년 간의 모든 사업 계획을 그와 같은 전제 아래 수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런던-인천 노선의 결정적인 차별점은 바로 대한항공을 비롯한 스카이팀 파트너사들과의 압도적인 '환승 연결성'"이라며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레저와 비즈니스 등 매우 다변화되고 풍부한 여행객 수요 믹스(Mix)를 창출해 내고 있으며, 이것이 과거의 수익성 문제를 극복하는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진 내외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는 지정학적 위기와 항공 화물 부문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중동 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에 따라 우리 정부는 에너지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관한 영국 취재진의 질의에 김범호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직무대행은 “정부 차원에서 공공부문의 에너지 절약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며, 당사 역시 항공사들의 유가 부담을 분담할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답했다. 지정학적 긴장 완화 분위기에 따른 러시아 영공 개방·통과 기대감에 대해 코스터 CEO는 “영공을 우회하지 않으면 연료와 비행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이는 매우 복잡한 지정학적 문제이기에 전적으로 영국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어서 “아시아 또는 중동 항공사들과 달리 영국을 비롯한 유럽 항공사들이 우회 비행을 해야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하지만 당사는 정부 지침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따르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영공 재개방을 촉구할 계획은 없으며, 당분간은 우회 항로를 전제로 안정적으로 운항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런던-인천 노선의 화물 적재 효율성과 물류 네트워크 흡수 전략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코스터 CEO는 “화물은 여객 비즈니스에 이은 당사의 '두 번째 핵심 사업(Second core business)'이며, 영국-미국 노선에서 화물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에 투입된 보잉 787-9 기종은 화물 적재 능력이 매우 뛰어나 현재 한국발 항공편에 반도체·데이터 센터 부품 등 하이테크 화물과 화장품·의약품을 매일 12~15톤가량 적재 중량 끝까지 가득 채워 운송하고 있다"며 “당사의 뛰어난 정시성을 바탕으로 양국 간의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 물류 수요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기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대 한국 국적사와의 차별화 전략 구사 여부도 관심거리였다. 기어 CCO는 “취항 초기 공격적이고 매우 경쟁력 있는 항공권 운임을 제공하고 있고,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집중된 맞춤형 기내 서비스와 영국식과 한국식이 조화된 맞춤형 기내식, 히스로 공항의 최고급 라운지인 '클럽 하우스' 경험이 기존 항공사들과 차별화되는 핵심 경쟁력"이라고 역설했다. 코스터 CEO도 전날 기내에서 젓가락을 사용해 고추장을 곁들인 농어 요리와 소주, 김치를 즐겼다며 한국 고객을 위한 섬세한 서비스를 강조했다. 그는 “당사는 스카이팀 내 유일한 영국 기반 거점 항공사로서 에어프랑스-KLM, SAS 등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의 유연한 환승 일정과 마일리지 교차 적립 및 사용 혜택을 완벽히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HMM 본사 부산 이전은 ‘강제 이주’다

“제 두 살 아기에게 엄마의 품은 온 세상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회사와 정부는 제게 아이의 세상을 포기하라고 종용합니다. 부산으로 본사를 옮기는 건 그저 수백 킬로미터 이동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 아이들에게서 엄마, 아빠의 품을 빼앗아 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트럭에 실어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공장 기계가 아닙니다." 지난 2일 청와대 사랑채 앞, 13년 차 직장인이자 21개월 아기를 둔 엄마인 김 모 매니저의 절규가 매서운 봄바람을 갈랐다. 전체 조합원 776명 중 638명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져 나온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HMM 지부의 총력 투쟁 결의 대회 현장. 기자가 직접 마주한 그곳에는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화려한 구호에 짓눌려 졸지에 타향살이는 물론 가족과의 생이별을 강요하는 정부와 회사를 향한 근로자들의 눈물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현재 정부는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이 당시 대선후보 공약으로 내걸었던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걸고 맹렬한 속도전을 펴고 있다. 명분은 지역 발전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다가오는 6월 3일 지방 선거 승리라는 얄팍한 '정치적 셈법'이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이 현업자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행동대장 삼아 민간기업의 경영 자율권을 침해하는 '폭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본사 이전의 절차적 정당성이나 노사 간의 신뢰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노사 협의를 지켜보겠다"던 해양수산부 장관의 며칠 전 취임사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한낱 기만극이었음이 드러났다. 사측은 회사 창립 50주년 비전 선포식에서 “모든 성과는 임직원의 노고 덕분"이라며 샴페인을 터뜨린 직후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고 본점 소재지 변경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안건을 통과시켰다. 앞에서는 100년 기업을 운운하며 근로자를 치켜세우고, 뒤에서는 삶의 기반을 통째로 뽑아버리는 기습 양동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근로자의 삶을 체스판의 말처럼 소비하는 이러한 행태는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수출입을 책임지는 국가 핵심 산업의 치명적 자해 행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글로벌 해운업은 단순한 선박 운항을 넘어 고도화된 물류 네트워크와 첨단 IT 기술이 결합된 총성 없는 전쟁터다. 무리한 강제 이전에 반발해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물류 IT 핵심 인력들이 대규모로 이탈한다면 이는 곧바로 해운업 본원적 경쟁력의 추락을 의미한다. 이날 현장에서 한 직원은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퇴사를 고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결국 서비스 질 하락과 글로벌 해운 동맹의 균열, 나아가 국가적 물류 대란이라는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자 전국사무금융노조는 500여 명의 간부에게 1주 이상의 HMM 주식 매수 지침을 내리며 주총장 물리적 봉쇄라는 초강경 연대 투쟁을 천명했다. 일방적 이전 계획 중단과 투명한 정보 공개와 성실한 협의, 고용 안정 보장·강제 이전 금지 명문화라는 노조의 요구는 거창한 특혜가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과 일터를 지키기 위한 상식적이고 절박한 생존권 선언이다. 기업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서류상의 주소지나 거수기 경영진이 아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험난한 해운 불황의 파고 속에서도 밤낮없이 땀 흘려 지금의 HMM을 일궈낸 평범한 '사람'들이다. 정부와 사측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소수 근로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맹목적인 폭주를 당장 멈춰야 한다. 가족의 해체를 막아달라는 아기 엄마의 눈물을 짓밟고 세운 모래성 위에서는 그 어떤 거창한 국정 과제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명심해야 할 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대한항공, 비상경영에도 날아올랐다…1분기 영업익 5169억 ‘분기최대’

대한항공이 올해 1분기 역대급 여객 탑승률과 인공 지능(AI) 관련 하이테크 화물 수요에 힘입어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47% 이상 뛰며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회복했다. 다만 1500원대를 훌쩍 넘긴 고환율과 고유가 등 중동발 복합 위기 전운이 짙어짐에 따라 4월부터 전격적인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해 수익성 방어에 사활을 걸고 있다. 13일 대한항공이 공시한 별도 기준 올해 1분기 잠정 영업 실적에 따르면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4.1% 증가한 4조 5151억 원을 기록하며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수익성 지표도 대폭 개선됐다. 영업이익은 516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3% 급증했고 영업이익률은 11.4%로 전년 동기 8.9% 대비 2.5%포인트(p) 상승했다. 당기순이익은 2427억 원으로 25.6% 늘었다. ◇“빈 좌석 없이 날았다"…유럽·중국 노선 약진에 항공우주 사업도 '효자' 이 같은 '어닝 서프라이즈'는 여객·화물·항공우주 등 전 사업 부문이 고르게 성장한 결과다. 1분기 여객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2조6131억 원을 기록했다. 비수기로 꼽히는 1분기임에도 전체 여객 탑승률(L/F)은 전년 대비 3.4%p 상승한 88.4%에 달했고, 수익성 지표인 일드(Yield·1km당 운임)도 130원으로 3.3% 올랐다. 특히 노선별 맞춤 전략이 빛을 발했다. 중국 노선은 한중 관계 개선과 중일 관계 경색의 반사이익으로 매출이 19% 뛰었다. 유럽 노선(18%↑)은 중동 전쟁 여파로 타 항공사들의 우회 경로가 늘어나면서 대한항공의 직항·환승 수요로 몰렸다. 동계 성수기 공급을 10% 늘린 일본 노선 매출도 12% 증가했다. 화물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한 1조 906억 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AI 관련 투자 확대로 △반도체 △서버 랙(Rack) △배터리 등 고부가가치 항공 화물 수요가 쏟아진 덕분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성과도 눈에 띈다. '기타 수익' 부문은 811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4.0% 급증했는데, 이 중 항공우주사업본부의 매출이 2522억 원을 차지하며 전사 외형 성장에 큰 힘을 보탰다. ◇환율 1513원 돌파에 외화 환산 손실…선수금 유입으로 현금은 '두둑' 외형은 화려하게 성장했지만, 재무제표 이면에는 1500원 선을 뚫은 고환율 등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의 타격이 고스란히 담겼다. 1분기 말 기준 원·달러 평가환율은 1513.4원으로 작년 말 1434.9원 대비 78.5원 5.47% 급등했다. 이로 인해 장부상 순 외화 부채(약 55억 달러) 평가에 따른 외화 환산 차손실이 3895억 원이나 발생했다. 연료비의 경우 단가 상승과 환율 악재 속에서도 항공기 운영 효율화를 통해 연료 소모량을 절감, 전체 연료비(1조812억 원)를 전년 대비 1.2% 줄이며 선방했다. 재무 건전성 지표에는 다소 변동이 있었다. 부채 비율은 작년 말 244%에서 1분기 말 266%로 22%p 상승했다. 이는 보잉 787-10 2대와 에어버스 A350 1대 등 신형 중대형기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금융부채가 늘어난 데다 유류 할증료 인상 등에 대비해 여행객들이 항공권을 미리 사두면서 선수금(영업부채)이 작년 말보다 17%(9506억 원)나 급증했기 때문이다. 다만 선수금이 대거 유입된 덕분에 현금성 자산은 4조3648억 원으로 25.0% 넉넉하게 확보됐다. ◇4월 1일부 '비상 경영'…스마트 물류·해외 환승객 유치 총력전 대한항공은 미국-이란 갈등 등 중동발 리스크 장기화로 2분기 고유가·고환율 파장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4월 1일부로 전사적인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 안전 운항을 최우선으로 하되 내부 비용 효율화에 착수했다. 2분기 수익성 방어를 위한 세부 핀셋 영업 전략도 본격 가동한다. 여객사업본부는 고환율로 인한 한국발 아웃바운드 수요 정체에 대비해 미주 여름 방학 시즌을 겨냥한 한국행 인바운드 수요와 중동계 항공사 이탈에 따른 환승 수요 유치에 역량을 집중한다. 대한항공은 고유가 지속과 국가간 보호 무역주의 확산 기조에 따른 불안정한 시장 환경을 전망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국-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고유가 환경이 글로벌 교역 성장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우려가 존재한다"며 “미국 관세 조치 관련 불확실성과 각국 보호 무역주의 기조 강화로 글로벌 공급망과 항공 화물 수요 변동 가능성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화물사업본부는 북미발 체리 등 마진이 높은 계절성 물량을 선점하고 AI와 K-뷰티 등 신성장 산업의 항공 수요를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발맞춰 핵심 거점인 인천 화물터미널과 북미 대표 지점인 뉴욕 화물 터미널의 시설을 현대화하고 스마트 물류 체계를 구축해 장기적인 운송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대한항공, 1Q 영업익 5169억원…전년 동기비 47.3%↑

대한항공이 올해 1분기 여객과 화물 사업의 고른 성장에 힘입어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하고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나는 호실적을 거뒀다. 다만 중동 정세 불안 등 고환율·고유가 악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13일 대한항공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2026년 1분기 매출 4조5151억 원, 영업이익 5169억 원, 당기 순이익 2427억 원을 기록했다고 잠정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4.1%, 영업이익은 47.3%, 당기 순이익은 25.6% 증가했다. 이 같은 호실적은 여객과 화물 부문이 동반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1분기 여객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76억 원 증가한 2조613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2월 설 연휴 기간 견조한 수요가 유입됐고, 유럽 및 주요 환승 노선을 중심으로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1분기 화물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6억 원 증가한 1조906억 원으로 집계됐다. 고정 물량 계약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수요가 강세를 보인 미주 노선에 부정기편과 전세기를 추가로 운영하는 등 탄력적인 노선 운영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화려한 1분기 성적표 이면에는 짙은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2분기부터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고유가·고환율의 파장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율과 유가 상승 등의 여파로 1분기 말 기준 대한항공의 부채 비율은 265.7%로 전년 말 대비 22%포인트(p) 상승했다. 부채 총계는 29조6499억 원으로 9% 늘었고, 자산 총계는 40조8077억 원(+6%)을 기록했다. 비용 급증 우려가 커지자 대한항공은 이달부로 전격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유가 변동에 단계적으로 대응하며 전사적인 비용 효율화를 강력히 추진 중이다. 대한항공 측은 “이를 통해 재무 구조적 체질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지는 기회로 삼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분기 수익성 방어를 위한 구체적인 영업 전략도 세웠다. 여객 사업은 고환율 등에 따른 한국발 수요 정체 가능성에 대비해 해외 출발 및 환승 수요 유치에 역량을 집중한다. 화물 사업은 시즌성 화물 물량을 선점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 관련 산업, K-뷰티 등 성장 산업의 항공 수요를 적극 유치하고 시장 변화에 맞춘 탄력적 노선 운영으로 수익성을 확보해 나갈 방침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中 조선 점유율 70% ‘독식’…K-조선 ‘기술 우위’도 흔들

글로벌 조선시장에서 중국의 '그립(Grip·장악력)'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 저가 수주 중심의 양적 팽창을 넘어 이제는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시장까지 집어삼키며 사실상 글로벌 조선업의 지배력을 굳히는 모양새다. 반면에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로 맞서온 한국 조선업은 압도적인 물량을 앞세운 중국의 규모의 경제 앞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수주 점유율은 물론 남은 일감을 뜻하는 수주 잔량에서도 초격차로 뒤처진 우리 조선업계의 딜레마가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면서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70% vs 20%, 굳어지는 점유율 격차…'10개월 연속 1위' 중국의 질주 13일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와 업계 통계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1758만 표준선 환산 톤수(CGT)로 전년 동기 대비 40.3% 폭증했다. 글로벌 선대 교체 사이클과 맞물려 시장에 쏟아진 이 거대한 발주 물량을 쓸어 담은 승자는 단연 중국이었다. 중국은 1분기 수주 점유율 약 70.5%(1239만 CGT)를 기록하며 사실상 시장을 독식했다. 한국은 20.3%(357만 CGT)에 머물렀다. 2025년 1분기 양국의 점유율 격차가 22%p(중국 48.8%·한국 26.8%)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1년 만에 격차가 50%p 이상으로 크게 벌어진 것이다. 최근 집계된 데이터에서도 중국은 10개월 연속 글로벌 수주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월별 데이터를 뜯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은 2025년 2월 수주 점유율이 11%까지 떨어지며 부진을 겪었던 반면, 당시 중국은 80%에 육박하는 점유율로 물량을 독식했다. 한국 조선사들을 작년 누적 247척의 수주 페이스를 보이며 질적 성장에 집중했지만 연초부터 시작된 중국의 공격적인 '밀어내기식' 수주 공세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올해 1분기에도 한국의 점유율은 20%대 초반 박스권에 갇히고 말았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중국 조선업계가 수주하는 질적 수준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벌크선과 소형 컨테이너선에 집중했던 중국 조선소들은 이제 한국의 독무대로 여겨졌던 대형 액화 천연 가스(LNG) 운반선과 메탄올 등 친환경 이중 연료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까지 수주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양으로 밀어붙이던 중국이 질적인 역량까지 끌어올리며 K-조선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형국이다. ◇182.07 고공행진 신조 선가의 역설, 달콤한 과실은 중국 몫 수주 물량을 뺏기는 와중에도 글로벌 선박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현재 조선시장의 가장 큰 역설이다. 올해 3월 말 기준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182.07을 기록 중이다. 역대 최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수준(약 187)에서 소폭 숨을 고르고 있으나, 2021년 3월(130.2)과 비교하면 여전히 40% 이상 폭등한 수치로 극강의 하방 경직성을 띠고 있다. 선종별 척당 가격을 살펴보면 고부가가치 선종의 대명사인 대형 LNG 운반선은 2억4850만 달러,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2억6000만 달러,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은 1억2950만 달러를 기록하며 굳건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 고공행진하는 선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조선업계로서는 마냥 웃을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난다. 현재의 선가 방어가 한국의 압도적인 기술적 해자 덕분이라기보다는 중국이 막대한 물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도크(건조 공간)를 싹쓸이하면서 형성된 철저한 '공급자 우위 시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사들은 당장 배를 지을 공간을 찾지 못해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슬롯을 확보해야 하는 처지다. 결국 시장 가격의 결정권마저 현재 도크를 무기로 쥔 중국 조선소들로 넘어가면서 선가 상승의 과실을 압도적인 물량을 확보한 중국이 고스란히 가져가고 있다는 뼈아픈 분석이 나온다. ◇한계 부딪힌 '선별 수주'…원가 경쟁력 가르는 '후판'의 딜레마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 3사는 제한된 도크 상황 속에서 척당 환산톤수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화력을 집중하며 수익성을 방어하고 있다. 한국이 수주한 선박의 척당 CGT는 약 4만2000으로, 2만6000 수준인 중국을 앞선다. 그러나 수주 잔량의 거대한 격차는 이 '질적 승부'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전 세계 수주잔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물량은 1억2095만 CGT로 약 64%에 달한다. 한국은 3635만 CGT(약 19%) 수준으로 양국의 일감 차이는 3배를 훌쩍 넘어섰다. 제조업인 조선업의 특성상 압도적인 물량 차이는 선박 건조 원가의 20%를 차지하는 후판 등 주요 기자재 구매 협상력의 차이로 직결된다. 수년 치 엄청난 일감을 확보한 중국은 자국 철강사·부품사와의 대량 구매 협상을 통해 파격적인 단가 인하를 이끌어내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 조선사들은 국내 철강사들과 매 반기마다 치열한 후판 가격 협상 줄다리기를 벌여야만 원가를 보전할 수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양적 팽창을 넘어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마저 확보하는 임계점에 도달해 한국의 고육지책이었던 선별 수주 전략도 서서히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美 USTR 제재와 IMO 규제, 2026년 하반기 반전의 마지막 분수령 독주체제를 굳혀가는 중국을 제어할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대중국 해운·물류·조선업 제재 움직임과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를 꼽는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북미·유럽 선주들의 이른바 '탈 중국' 리스크 분산 움직임은 한국 조선업이 노려야 할 틈새다. 미국의 우방국 공급망 재편 기조 속에서 K-조선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탄소 배출 규제에 맞춘 노후 선박들의 친환경 교체 수요는 생존을 위한 핵심 타깃이다. 암모니아·수소 등 차세대 무탄소 연료 추진선 시장은 중국이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격전지다. 지난 9일 HD현대중공업은 울산 조선소에서 이중연료(DF) 엔진이 장착된 4만6000㎥급 암모니아 추진 중형 가스운반선 2척을 세계 최초로 건조했고, 마무리 작업을 거쳐 오는 5월과 7월 말 각각 선주사에 인도한다. HD현대중공업이 자체 기술로 설계 및 제작한 암모니아 운반선(길이 190m, 너비 30.4m, 높이 18.8m)은 미래 무탄소 해운 시장의 핵심 병기로 주목받고 있다. 이 선박은 3기의 고성능 화물창을 탑재해 암모니아와 LPG 등 액화가스 화물을 안정적으로 운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회사는 추진 엔진의 회전력을 전력으로 변환하는 축 발전기(Shaft Generator)와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를 장착해 환경 규제 대응력을 높였고, 암모니아의 특성을 고려한 실시간 가스 감지장치·배출 회수 시스템 등 독보적인 방재기술을 적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했다. 한화오션도 지난해 8월 '노르쉬핑 2025'에서 한국선급(KR)·노르웨이선급(DNV)과 3건의 MOU를 체결하며 △15만 CBM급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개발 △LNG 운반선 설계 최적화 △맥티브(MCTIB) 연료 탱크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화오션은 친환경 선박 기술을 선점하고 탄소중립 기술 상용화를 가속화할 계획이다. 친환경 연료인 암모니아(NH3)는 영하 253℃의 극저온이 필요한 액화수소와 달리 가압(약 8bar)이나 저온(-33℃) 환경에서도 보관이 가능하며, 동일 부피당 저장 밀도는 수소보다 1.7배나 높아 대규모 장거리 운송에 최적화된 에너지원으로 평가받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50년 탄소중립 로드맵에서 해운 연료 내 암모니아 비중이 46%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함에 따라 압도적 기술력을 갖춘 암모니아 추진선·운반선 수요는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조선업의 성패는 다가오는 '친환경선박 교체' 슈퍼 사이클에서 누가 주도권을 선점하느냐에 달렸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안주하기에는 중국이 쥔 시장의 그립이 단단한 만큼 한 발짝 앞선 초격차 기술력을 통해 차세대 선박시장의 표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국 조선업은 중국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현장의 위기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재벌승계지도] HD현대 정기선, 증여세 실탄 확보·경영능력 입증 ‘숙제’

HD현대그룹은 다른 대기업들과 비교해 지분 승계에 대한 고민이 없는 편에 속한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한데다 2세 경영인인 정몽준 HD현대 아산재단 이사장이 지주사 지분을 충분히 보유했기 때문이다. 3세인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증여세 '실탄'을 마련하는 숙제만 풀면 된다. 경영권 측면에서는 '정기선 시대' 초입에 들어서 있다. 37년간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끝낸 만큼 정기선 회장이 경영 능력을 더 보여줄 필요가 있다. 조선업 등 주력 사업 성장을 이끄는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신성장동력도 직접 발굴하는 성과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수직계열 지배구조 완성…총수일가 지주사 지분으로 그룹 통제 HD현대그룹 지배구조는 깔끔하게 구성됐다. 지주사인 HD현대가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형태다. 총수 일가는 지주사인 HD현대 지분을 소유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선과 건설·기계 부문은 각각 중간지주사도 두고 있다. 정점에는 HD현대가 있다. 이 회사 최대주주는 정몽준 이사장(26.6%)이다. 정기선 회장은 6.12%를 들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3.9%), 아산나눔재단(0.49%)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37.19%가 된다. 국민연금공단(6.87%)을 제외하면 주요 주주는 없다. 자사주가 10.5% 있다는 점 정도가 관전 포인트다. HD현대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는 HD한국조선해양(35.05%), HD현대사이트솔루션(100%), HD현대오일뱅크(73.85%), HD현대일렉트릭(35.74%), HD현대마린솔루션(55.32%), HD현대로보틱스(81.82%), 아비커스(100%) 등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 역할을 한다. 핵심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69.23%)을 비롯해 HD현대마린엔진(35.05%), HD현대삼호(81.5%), HD현대에너지솔루션(53.57%) 등을 거느리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100% 자회사로 HD현대엔진과 HD현대엠엔에스를 두고 있다. 당초 HD한국조선해양 아래에 있던 HD현대미포는 올해 1월부로 HD현대중공업에 흡수됐다. 건설·기계 부문 중간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HD건설기계 지분 37.59%를 보유하고 있다. HD건설기계는 올해 초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가 합병해 탄생한 기업이다. 정유사인 HD현대오일뱅크 밑에는 HD현대케미칼(60%), HD현대쉘베이스오일(60%), HD현대OCI(51%), HD현대E&F(100%) 등이 있다. 지배구조 수직계열화가 뚜렷하다보니 그룹 지배력에 대한 총수 일가 고민도 사라진다. 정몽준 이사장은 지주사 외에 다른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다. 정기선 회장은 HD한국조선해양 544주, HD현대일렉트릭 156주, HD건설기계 152주 등을 소유했지만 지분율이 0.0%로 계산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같은 지배구조 체제에서 총수 일가 경영·소유권 관련 변수가 생기기는 힘들 전망이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정기선 회장이 정몽준 이사장 지분을 물려받기 위한 증여세 '실탄'만 마련하면 된다. 자사주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관심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3차 사업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총수 일가가 다른 선택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사주 10.5%를 모두 소각한다 해도 지배력에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시장이 주목하는 점은 HD현대가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미 '자사주 마법'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현대중공업을 인적분할하면서다. 당시 지주사로 새로 태어난 현대중공업지주(현 HD현대)는 사업회사들 주식을 배정받으면서 자사주에도 신주를 발행했다.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등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주식 스와프로 본인이 가진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사에 넘겼다. 대신 증자를 통해 마련한 신주를 받아 현재의 지분율을 확보했다. 자사주를 활용한 덕분에 총수 일가는 지주사 지분율을 극대화하고, 지주사는 계열 사업회사 영향력을 확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정몽준 이사장 입장에서 보면 자금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도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두 배가량 키운 셈이다. 이 때문에 HD현대그룹은 자사주 소각을 비롯한 정부의 밸류업 정책을 대부분 정직하게 지킬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서 연결되는 이슈는 중복 상장 논란이다. 현재 지주사인 HD현대, 자회사이자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 사업회사이자 알짜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 등이 모두 상장돼 있다. 자회사뿐 아니라 손자회사까지도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이례적인 예다. 정부는 자회사 중복 상장을 사실상 금지하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일단 추가 기업공개에 대한 허들을 높이고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미 중복 상장이 된 그룹사에 대한 패널티를 명령할 수도 있다는 게 시장의 예측이다. 특히 손자회사까지 포함된 경우에는 일정 수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손자 위치에 있는 HD현대중공업의 상장폐지 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사재를 쓰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다만 거론되는 어떤 형태의 입법이나 정책·규제도 총수일가→HD현대→각 계열사로 이어지는 고리를 흔들기는 힘들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 정기선 자금줄은 배당·보수…수조원대 증여세 납부 준비 '몰두' 정기선 회장은 증여세 납부를 위한 자금 마련에만 집중하면 된다. 당장 수조원을 손에 쥐기는 힘들지만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배당을 받으며 보수까지 더해 차근차근 3세 경영 체제를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그룹은 그동안 지배구조를 간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위한 작업이긴 했지만 HD한국조선해양을 출범해 조선 부문을 한 데 묶었다. 올해 들어서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합병해 국내 최대 건설장비업체를 만들었다. 당초 두 회사로 쪼개져 있던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 역시 하나로 합쳤다. 이같은 지배구조 특성상 정기선 회장은 '자금줄' 역할을 해줄 계열사가 따로 없다. 다른 대기업처럼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비상장사 몸집을 불리는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HD한국조선해양(544주), HD현대일렉트릭(156주), HD건설기계(152주) 3사 지분을 들고 있지만 6일 종가 기준으로 각각 2억210만원, 1억3946만원, 2265만원 규모에 불과하다. HD현대(483만7985주) 지분 가치가 1조1756억3036만원에 달한다는 점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정몽준 이사장이 소유한 HD현대 지분은 5조1000억원이 넘는 수준이다. 증여세로 2조~3조원을 낼 수도 있다. 정기선 회장은 최근 5년간 매년 100억~200억원 정도 배당금을 받고 있다. 세금을 감안하면 10년을 모아도 1000억원대에 머물 것으로 추산된다. HD현대는 매년 꾸준히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2023년에는 현금배당성향이 98%를 넘긴 적도 있다. 조선업 호황으로 이 회사 배당 여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정기선 회장 입장에서 호재다. HD현대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023년 2조316억원, 2024년 2조9832억원, 지난해 6조996억원 등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7858억원, 1조9302억원, 3조6755억원 등으로 늘어났다. 배당 외 정기선 회장이 기댈 곳은 보수다. 그는 지난해 HD현대(13억61만원)와 HD한국조선해양(10억9342만원)에서 24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았다. 더불어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보수 수억원 정도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긁지 않은 복권도 있다. 정기선 회장은 HD현대에서 장기성과인센티브(LTI)를 받는데 그 금액은 지금 단계에서 예상하기 힘들다. 이 LTI는 2023년~2025년 권리 부여분에 7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31~2033년 받게 된다. 조직평가 및 누적 당기순이익 등을 고려하는데 수백억원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황이 좋은데다 회사의 의사결정체계에 정기선 회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나온 숫자다. ◇ '소유' 부담 없지만 '경영능력' 입증은 숙제…HD현대마린솔루션 행보 주목 재계에서는 범현대가 3세 경영인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기선 회장의 처지가 완전히 상반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의선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입증해 회사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 소유 측면에서 주력사 지분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고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난제도 풀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정기선 회장은 증여세 재원 마련 문제를 제외하면 소유와 관련해 잡음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반면 HD현대그룹이 37년간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본인이 끝냈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경영 능력 입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기선 회장은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2011~2013년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한 이력도 있다. 2013년 현대중공업 부장, 2015년 기획실 부실장, 2018년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 2021년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2023년 부회장, 2024년 수석부회장, 지난해 회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며 현재의 '정기선 체제'를 구축했다. 관건은 HD현대마린솔루션의 행보다. 이 회사는 정기선 회장이 직접 출범을 주도한 해양산업 종합 솔루션 기업이다. 그룹 신성장동력을 점찍고 진두지휘했다는 점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을 첫 번째 시험대로 꼽힌다. 정기선 회장은 이 회사 대표이사를 직접 맡기도 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23년 1조4305억원, 2024년 1조7455억원, 작년 1조9827억원 등으로 우상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15억원, 2717억원, 3501억원으로 늘었다. 분사 후 첫해인 2017년 매출액이 2403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적 측면에서 순항하고 있는 셈이다. 사업 비전은 신조 인도 이후 선박의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겠다는 것이다. 선박부품·서비스의 공급, HD현대그룹 건조 선박의 유·무상보증 대행으로 구성되는 'AM(After Market) 설루션', 인도 선박 출항유 공급 및 운항 연료 제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벙커링',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조공사를 수행하는 '친환경 설루션', 선박의 디지털 전환과 관련되는 '디지털 설루션' 등이다. 업계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HD현대마린솔루션의 실적이 더 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기선 회장은 이밖에 소형모듈원전(SMR), 수소연료전지, 해상풍력 등 미래 에너지 사업 기틀도 다져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주력 사업을 더 키운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최대 20억달러(약 3조원) 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교환 대상은 HD한국조선해양이 보유한 HD현대중공업 주식 561만3704주(5.35%)다. 국내 증시 호황 등으로 HD현대중공업 주가가 크게 오른 만큼 이번 기회에 투자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HD한국조선해양은 확보한 자금을 친환경 사업 확대,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추진 등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정기선 회장은 작년 말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2030년 매출 100조원'이라는 미래 성장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이를 실현할 방안으로는 △친환경·디지털·인공지능(AI) 전환 가속화 △핵심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신성장 분야 육성 등을 내세웠다. 우선 조선 분야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건설기계 분야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건설기계 사업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 정유·석유화학 사업 원가경쟁력 회복 노력 등을 기울일 것으로 관측된다. 로보틱스, 자율운항, 전기추진, 연료전지, SMR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미-이란 휴전] 한숨 돌린 산업계…‘업황 회복’ 기대 속 ‘전쟁 불씨’ 우려

미국과 이란이 전쟁 발발 39일만에 휴전에 합의하면서 국내 산업계도 얼어붙은 기업 심리가 회복되길 기대하고 있다. 원유 및 파생상품 공급이 제한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안도 속에서 향후 협상 양상 등을 눈여겨보며 대응책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미국과 이란은 7일(이하 현지시각) 앞으로 2주간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는 조건이다. 에너지 가격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다음달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휴전 사실이 전해진 이후 전장 대비 10% 이상 급락했다. 하락률이 한때 19%를 넘기도 했다.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거래가 역시 전날보다 15% 안팎 떨어졌다. 우리 기업들은 일단 안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 시한이 끝나기 직전 양측이 합의점을 찾으면서 종전 가능성도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월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 산업계는 '에너지 대란' 등을 걱정하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271개 기업을 대상으로 '2분기 제조업 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전분기 대비 1 포인트(p) 하락한 '76'이 나왔다고 8일 밝혔다. BSI가 기준선인 100 이상이면 해당 분기의 경기를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100 이하면 그 반대다. '중동 리스크' 노출도가 높은 정유·석유화학(56)과 철강(64) 등에서 부정적 전망이 많았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달 발표한 '4월 전망 BSI' 집계 결과도 비슷했다. 전쟁 발발 이전 조사한 3월 전망 수치는 기준선을 넘긴 '102.7'을 기록했지만 4월 전망치는 85.1로 급락했다. 한경협은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원유 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기업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휴전 소식이 전해지며 대부분 업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유가 급등으로 '비상 경영'을 선언했던 항공 업계는 향후 유가 추이 및 연료 수급 상황을 면밀히 확인할 계획이다. 소비심리 위축을 걱정했던 여행 업계 역시 일단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 국면 등을 지켜보며 마케팅 활동을 전개한다는 구상이다. 석유화학 업계는 향후 협상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위기 대응책을 세워놓고 계속해서 바뀌는 정세를 살피고 있다. 정유 업계 역시 대체수급로 확보 등 기존에 준비하던 체질 개선 작업을 계속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는 '슈퍼 사이클'에 찬물을 끼얹을 변수가 하나 사라졌다고 인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원유 부산물인 헬륨·브롬 등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우리 기업들은 반도체 제조에 사용하는 헬륨의 65% 이상을 카타르에서 수입해왔다. 다만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산업계 표정이 100% 밝아지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고 중동으로 향하는 수출이나 여객 수요가 정상화돼야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고차 업계는 중동 수출길이 막히면서 현금 흐름에 타격을 입고 재고가 쌓이는 고민을 안고 있다. 우리 정부는 맞춤형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있는 우리 유조선의 통항 가능 여부를 확인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중동전쟁 일자리 충격을 점검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행동에 나선 사례도 있다.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대기업들은 그룹 차원에서 차량 5부제 등을 시행하고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HD현대는 선박 건조 핵심 원재료인 에틸렌, 도료 원료 등을 협력사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중소 협력사들의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고 경영 안정을 돕기 위해서다.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에틸렌 2000t을 수급해 요청하는 회사에 제공하는 식이다. 에틸렌은 선박 강재 절단 등에 사용된다. 미국과 이란은 오는 10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나 전쟁 관련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양측이 서로의 요구를 일정 수준 수용하며 휴전에 돌입한 만큼 종전 관련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음주 비행 없는데 신고 의무화라니”…조종사협회, 김희정 의원 법안에 ‘강력 반발’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항공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두고 현업 종사자들과 정치권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항공 안전을 위해 음주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원실 측과 현장의 음주 차단 시스템을 무시한 과잉 규제라는 조종사 단체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일 김희정 의원은 항공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헸다. 이번 개정안은 항공 종사자의 음주 행위에 대한 항공사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항공운송사업자는 항공 종사자 및 객실 승무원이 업무에 종사하는 동안 주류 등을 섭취하거나 사용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수사 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신고 의무를 위반하거나 거짓으로 신고한 항공운송사업자에게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음주 운항 등으로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된 날부터 10년 이내에 다시 같은 죄를 범한 경우 해당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한다. 김 의원은 “현행법상 항공사가 자체 음주 측정을 통해 내부 징계만 내리고 수사 기관에 알리지 않을 경우, 해당 종사자가 형사 처벌을 피하게 되는 허점이 있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는 이번 법안이 항공 현장의 특수성과 기존 안전 시스템의 실효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며 공식 입장을 냈다. 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모든 항공사는 국제 기준에 따라 비행 전 음주 측정을 실시하며, 기준 초과 시 즉시 업무에서 배제한다"며 “이러한 사전 차단 시스템으로 인해 음주 상태에서 실제 비행에 투입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제도가 '사후 처벌'이 아닌 '사전 예방'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취지다. 특히 협회는 “단순 적발 단계에서 수사 기관 통보를 의무화하는 것은 예방 중심 시스템과 중복되는 규제"라며 “과도한 형사적 접근은 자발적인 보고 문화와 안전 중심 조직 문화를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일선 조종사들의 반발도 거세다. 고경력 기장 A씨는 “김희정 의원실의 법안은 마치 조종사가 음주 비행을 한 뒤에 나중에 적발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며 “실제로 음주 비행을 한 사람은 아예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장 B씨 역시 현장 측정 시스템의 실정을 언급하며 법안의 비현실성을 꼬집었다. 측정기에서 '페일(Fail)'이 뜨면 그 즉시 팀장과 운항본부장 등 모든 보직자에게 문자가 발송돼 은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B 기장은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가글이나 초콜릿, 구취 제거제 사용만으로도 수치가 감지된다"며 “항공사들은 법적 기준인 0.02%보다 낮은 0.01% 수준의 수치에도 안전을 위해 비행에서 배제하고 자체 징계를 내리는 등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조종사들은 이와 같은 오탐이나 사내 관리 단계의 사안까지 모두 수사 기관에 신고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김희정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이 타 운송 수단과의 형평성을 맞추고 공적 감시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철도안전법에도 동일한 취지의 법안이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라며 “철도 운영자가 종사자의 음주 사실을 적발하고도 신고하지 않아 처벌이 어려웠던 사례가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바 있다"고 밝혔다. 항공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신고 의무를 부여해 음주 사실이 내부적으로만 소화되고 은폐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업무 종사 전 적발' 이슈에 대해서도 의원실은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관계자는 “법안에 '업무에 종사하는 동안'이라고 명시돼 있으며, 이는 출근 시점부터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조종사 단체의 '운항 이후 전제' 주장을 일축했다. 이번 갈등은 항공 안전을 위한 '공적 감시 강화'와 현장 시스템의 '예방 문화 존중' 사이에서 발생한 만큼 향후 입법 과정에서 치열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日 피치항공 “중장거리 노선으로 ‘Pitch up’…유할 0원 유지, 운임 현실화 검토”

피치항공이 기존 단거리 위주의 단일 기종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중장거리 기종을 도입하는 '투 트랙(Two-track)' 기단 운용 전략으로 사업을 다각화한다. 과거 파격적인 노이즈 마케팅으로 굳어진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대대적인 리브랜딩에도 속도를 낸다. ◇A321XLR 도입으로 중장거리 정조준…호주·인도 취항 목표 7일 피치항공의 한국 총판매 대리점(GSA)인 에어피스코리아는 전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향후 경영 전략과 노선 운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피치항공은 기단 운영의 핵심이었던 '원 트랙(단일 기종)' 전략을 대폭 수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존에는 사고 발생 시 정비사 투입이 용이하고 기재 대체가 쉽다는 이유로 단거리 기종만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장거리 비행을 통한 매출 증대를 목표로 '투 트랙' 전략으로 선회했다. 전선하 에어피스코리아 대표는 “최대 11시간까지 비행이 가능한 신규 기종 에어버스 A321XLR(Extra Long Range)을 도입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호주나 인도 등 중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에어버스의 A321XLR(Extra Long Range)은 협동체(Narrow-body) 항공기 중 최장 항속거리를 자랑하는 A320neo 패밀리의 최신 파생형 모델이다. 기체 후방에 통합 연료 탱크(RCT)를 탑재하고 랜딩기어를 강화해 최대 이륙 중량(MTOW)을 100톤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최대 4700해리(약 8700km)를 10~11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어 아시아-호주나 대서양 횡단 같은 중장거리 노선에 투입이 가능하다. 구형 중형 광동체(Wide-body) 항공기 대비 좌석당 연료 소모율을 약 30% 절감해 압도적인 경제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객실 내부에는 에어버스의 최신 '에어스페이스(Airspace)' 디자인이 적용돼 넓은 수하물 공간(오버헤드 빈)과 기내 와이파이, 개선된 조명 등을 제공한다. 업계에서는 A321XLR이 대형 허브 공항을 거치지 않고 중소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to-point)' 비행 수요를 충족하며 글로벌 항공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기종이 언제쯤 도입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우걸 상무이사는 “작년 12월경 발주를 진행했지만 현재 에어버스 측의 인도 지연 문제로 인해 실제 도입까지는 2~3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답했다. 아울러 취재진이 중장거리 비행 시 기존의 좁은 좌석 간격에 대한 고객의 우려를 제기하자 이들도 이에 깊이 공감했다. 전 대표는 “단거리 노선에서는 좁은 간격을 참을 수 있지만, 11시간을 비행하는 장거리 노선에서 동일한 좌석을 유지하면 큰일이 날 것"이라며 신기종 도입 시 좌석 편의성 개선이 동반될 것임을 시사했다. ◇소도시 대신 거점 공항 집중…유류 할증료 0원 기조는 유지 일본 내 지방 소도시 취항 계획을 묻는 질문에 피치항공 측은 명확히 선을 그었다. 강경화 이사는 “국내 LCC들이 일본 소도시에 취항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지자체들이 인바운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외국 항공사에 보조금을 지원하기 때문"이라며 일본 국적사인 피치항공은 이러한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피치항공은 오사카·나고야·나리타 등 조종사·객실 승무원 거점이 있는 주요 공항을 중심으로 비행편을 집중시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친다. 새로운 목적지에 취항해 승무원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김포-오사카 노선에 하루 4편을 집중 투입해 상용 수요를 성공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한편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한 고유가 상황 속 수익성 악화 우려에 대해서는 기본 운임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피치항공은 2015년부터 승객들에게 유류 할증료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전 대표는 “이러한 정책은 저유가 시대였기에 가능했고 현재의 고유가 기조가 이어지면 영업이익 하락 등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취재진이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해야 하지 않냐고 묻자 전 대표는 “유류 할증료를 안 받는다는 기조는 유지하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유류 할증료 대신 기본 항공료를 일부 인상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밖에도 피치항공은 단거리 왕복 비행과 40분이라는 극도로 짧은 지상 체류 시간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인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사 차원에서 정시성 확보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노이즈 마케팅 시대 지나 '성숙기' 진입…브랜드 쇄신 총력 설립 초기부터 피치항공을 따라다녔던 '피치 못할 때 타는 비행기'라는 부정적인 별명과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김 상무는 “해외 온라인 여행사(OTA)를 통해 환불 불가 조건으로 발권한 승객들이 규정상 환불이 안 되자 불만을 표출하면서 그런 말이 굳어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 한국 시장 진출 당시 대형 항공사(FSC)의 풀 서비스에 익숙했던 국내 승객들에게 물조차 유상으로 판매하는 피치항공의 철저한 수익 모델이 거부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강 이사는 과거 본사 경영진의 입장을 언급하며 “초창기에는 저비용 항공사(LCC)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적인 수식어라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회사를 알리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피치항공은 과거 기내에서 폭스바겐 자동차를 판매하거나 비트코인 결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전략이 수정됐다. 강 이사는 “회사가 발전기에 접어든 만큼 이제는 긍정적인 브랜드로 리브랜딩하자는 논의가 본사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 노선 운항편이 늘어난 만큼 적극적인 홍보 예산을 본사에 요청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상무 역시 “최근에는 부정적인 기사 대신 '피치를 올리자'는 긍정적인 방향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본사 직영 지사가 아닌 총판매 대리점(GSA) 형태로 운영되는 에어피스코리아의 특징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지사 형태가 본사의 관리를 받기에 더 유리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영진은 GSA 체제의 독립성과 유연성을 강조했다. 김 상무는 “직원 입장에서는 지사 형태가 항공권 지원 등 복지 혜택이 더 많을 수 있지만, 실적이 좋을 때 본사의 규정과 별개로 한국 법인 자체적으로 직원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줄 수 있는 것은 GSA 체제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선하 에어피스코리아 대표는 “한국 법인의 경우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비중이 91~95%에 달해 여행사 중심의 B2B 영업 인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며 “노동조합 등 주요 이슈가 발생했을 때도 한국 법인 대표가 독립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