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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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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환경 고려 못해”…쏟아지는 공항시설법 개정안 졸속 입법 우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1.06 15:40

박용갑, ‘조류 충돌 방지 시스템’ 도입안 제출

민형배·김예지, 시설 장비·설치물 기준 법률화

이해민, ‘항행 장비 파손성 조건 충족’ 명문화

“운용인력·공항규모 등 미비… 도입 신중해야”

참사 발생 이전의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설치 상태. 사진=카카오맵 캡처

▲참사 발생 이전의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설치 상태. 사진=카카오맵 캡처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과 계기 착륙을 돕는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해둔 것이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 대참사의 기여 요인이라는 관점이 우세하다. 이 가운데 국회에서는 사고 직후 현장 시설 고도화를 법률로 명문화 하자는 공항시설법 개정안이 4건이나 제출됐지만 자칫 졸속 입법 가능성이 있어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6일 본지 취재 결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공항시설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총 4건 제출됐다. 이 중 3건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접수됐고, 나머지 1건은 접수 처리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29일 버드 스트라이크로 엔진이 고장나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진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공항에서 활주로에 동체 착륙을 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179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 직후 발의된 것이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31일 가장 먼저 국회 의안과에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인천국제공항·김포국제공항·김해국제공항 등 국내 15개 공항 중 단 한 곳에도 조류 탐지 레이더가 설치돼있지 않은 상태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공항시설법 제2조 제17호와 제43조 제1항을 개정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각 공항에 조류 탐지 레이더·열화상 카메라 등 국토부령으로 정하는 조류 충돌 방지 시설을 설치하도록 해 조류 충돌 사고 위험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자 함을 골자로 한다.




박 의원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당시 무안공항 관제탑에서는 조류 충돌 주의 경보를 사고 고작 1∼2분 전에 항공기에 통보할 수 있었고,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해 조류 퇴치 활동을 전개하는 등 사전 조치도 미비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개정안을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공항 시설 장비·설치물 적정 기준을 법률로 규정하자는 내용을 담아 공항시설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킹팔로 공항 로컬라이저(상단). 활주로 말단과의 거리는 동쪽 225m, 서쪽은 286m다. 사진=구글어스 캡처

▲남아프리카 공화국 킹팔로 공항 로컬라이저(상단). 활주로 말단과의 거리는 동쪽 225m, 서쪽은 286m다. 사진=구글어스 캡처

민 의원은 “무안공항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이어져 대통령령·부령·예규 등에 명시된 공항·비행장 시설 설치 기준을 법률로 상향 조정해 실효성을 거두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민 의원의 안과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담아 김예지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또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3일 장애물 충돌 시 항공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취약성'을 정의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공항 장비·설치물이 국제민간항공조약(ICAO)와 그 부속서(Annex)에서 채택된 취약성 요구 조건을 충족하도록 법률로 상향 입법한다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아 대표 발의했다. 아울러 로컬라이저 등 항행 안전 시설과 이를 지지하는 구조물의 경우 설치 위치와 무관하게 취약성 요구 조건을 준수하도록 규정했다.


이 의원은 “ 항공 장애물 관리 세부 지침에 따르면 공항 장비·설치물은 항공기 충돌 시 부서지기 쉽도록 설치돼야 하지만 국토부는 활주로 종단 구역 밖에 대해서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 심각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여야 3당이 공통적으로 공항 시설에 의한 참사가 생겨났다고 보는 만큼 법 개정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법률로 상향 조정하면 구속력 강화로 이어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일부 문구 수정과 기존 지침의 법률화에 그칠 뿐이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선 박용갑 의원의 조류 충돌 방지 시스템 도입안은 기술 도입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 절차·인력 훈련 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고, 공항 규모나 특성에 따른 차등적 적용 방안이 미비하다는 분석이다.


민형배·김예지 의원의 개정안은 ICAO·FAA 등 국제 기준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다양한 공항 환경을 고려한 유연한 적용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쉽게 부서지거나 변형이 일어나도록 설계'에 대한 구체적 수치 등의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법으로 못박아둘 경우 기술 발전에 따른 유연한 기준 적용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ICAO 부속서를 연구해본 결과, 현실적으로 다 지킬 수는 없다"며 “국제 기준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실정에 맞는 적용 방안에 대한 고려가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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