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8일(일)
에너지경제 포토

강현창

khc@ekn.kr

강현창기자 기사모음




달라진 주주 눈높이…SK·두산·한화 “생각대로 안되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7.28 11:34

대기업 구조 재편에 잇따른 제동

소액주주 반발·당국 규제에 차질

‘업글’된 주주 태도에 기업들 ‘긴장’

1

▲분당 두산타워.

대기업들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재편 관련 정책들이 소액주주들과 당국의 '브레이크'에 걸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소액주주들은 기업의 경영적인 판단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투자한 회사의 결정에 참여하려는 주주도 많아지고 있다. 당국도 이제 관망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최근 한화, 두산, SK 등에서 추진하는 분할·합병 과정이 쉽사리 진행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로 분석된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재편, 소액주주 반발에 제동


28일 금융투자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들이 성장과 지배구조 개선이 목표라며 추진하는 전략들이 주주들의 반발과 당국, 그리고 시장의 냉담한 반응을 마주하는 추세다.


먼저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나타난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하고 두산밥캣을 옮겨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계획은 모두 합법적인 틀 안에서 짜여졌다. 먼저 두산에너빌리티는 존속회사와 신설회사로 분할된다. 이때 신설회사는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 46%를 그대로 받는다. 분할비율은 사업부분 0.76대 투자부분 0.24다. 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라면 사업부문(존속) 76주, 투자부문(신설) 24주를 받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두산에너빌리티 투자부문 신설회사는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된다. 이 과정에서 두산로보틱스는 신설회사 주주들로부터 지분을 넘겨받는 대가로 신주를 발행해 지급한다. 합병비율은 1대 0.13이다. 투자부문 24주가 소멸하고 로보틱스 3주가 주어진다.


이후 밥캣 일반주주들과 로보틱스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 진행된다. 일반주주들이 밥캣 지분을 로보틱스에 주면 로보틱스 신주로 바꿔준다. 밥캣 주식 1주는 로보틱스 주식 0.63가 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가 되고 상장폐지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현재 멈춘 상태다. 이 내용을 담은 증권신고서가 최근 금융감독원에 의해 정정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계열사 간 지배구조 재편의 목적과 기대 효과 등을 상세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 작업으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손해가 우려되는데도 금감원이 신고서를 수리한다면 금융 당국의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SK

▲SK그룹 서울 종로구 서린동 본사 사옥.

◇한화에너지 공개매수 저조…주주들 '신중한 판단'


한화도 냉담한 주주들의 반응에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한화는 한화에너지가 (주)한화의 보통주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목표 수량의 약 65%만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한화에너지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근 1개월 평균가 대비 12.9%, 공개매수 전일 종가 대비 7.7% 할증한 3만 원으로 공개매수가를 결정했다.


그러나 많은 주주들이 공개매수 가격을 적정하지 않다고 평가했거나, 한화의 미래가치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에 응모를 꺼렸다. 주주들이 단순히 회사가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보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추진 중인 SK그룹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며 긴장하는 중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합병을 통해 자산 100조원, 매출 88조원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으로 변모할 계획이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역시 합병비율이 문제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상장사로서 거래량 가중 산술 평균 종가의 산술평균을 적용해 기업 가치 약 10조8000억원으로 평가했다. 반면, 비상장사인 SK E&S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평균한 본질가치를 기준으로 약 6조2000억원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합병비율은 거의 1:1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두 회사의 수익성과 규모는 큰 차이가 난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매출은 77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 수준이지만, SK E&S는 지난해 매출 11조1600억원, 영업이익 1조3300억원에 불과하다. 자산규모는 SK이노베이션은 약 86조원, SK E&S는 약 19조원 수준이다.


한화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달라진 주주·당국 시선


대기업들이 지배구조를 재편할 때 주주의 우려와 당국의 제재를 받는 경우는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실제 과거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재편안은 큰 무리없이 소액주주들의 찬성을 얻던 사안이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도 대부분의 소액주주는 주주권을 회사 측에 일임했다. 당시 삼성도 기관투자자들의 설득에 집중하고 소액주주들에 대해서는 정족수 충원 외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주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주주들은 물론 당국의 눈높이도 함께 올라갔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합병비율은 적법하다고 항변하자 주주들은 계열사 합병에는 10%의 할증이나 할인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찾아내 반박하는 등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전과 달리 최근 주주들은 회사의 결정에 대해 보다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당국도 보다 엄격하게 들여다보는 추세라는 점을 기업들이 체감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