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실적을 두고 업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미비한 HBM시장 성과가 이번 실적 부진의 원인도 아니라는 점이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인공지능(AI)의 급성장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반도체업계 내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는 게 이번 실적 발표를 지켜보는 관계자들의 걱정이다.
9조원대 영업익…시장 예상 크게 밑돌아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은 9조1000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동안 국내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은 넘으리라고 예상하던 중이었다.
그동안 삼성전자 주변에서는 HBM사업의 부진이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을 어둡게 한다는 분석이 쏟아지던 상황이다.
하지만 사실 이번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의 원인은 HBM 사업의 부진이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23년 기준 HBM이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번 삼성전자의 3분기 총 매출 79조원 중 다바이스솔루션(DS) 부문 매출을 증권가 추정치의 중간값인 23조원으로 가정하고, HBM이 DS 부문 매출의 15%를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HBM의 매출은 약 3조원대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매출의 약 4% 수준에 해당한다. HBM 사업이 아직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 적도 없다는 얘기다.
어차피 큰 도움이 되던 것도 아닌 사업이 부진한 점이 전체 사업의 부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HBM 넘어선 위기…주력사업 전반 흔들
실제로 삼성전자의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기존 주력 사업인 범용 메모리(DRAM, NAND) 부문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 가격이 전월 대비 17.07% 급감했다.
이는 PC 및 스마트폰 시장 침체로 인한 수요 둔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주기적 특성을 고려할 때 예측 가능한 부분이지만 삼성전자는 대응에 실패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부문 부진도 우려하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부문은 3분기에 약 4000억~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1위 TSMC와 달리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주문 확보에 실패하고, 낮은 수율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삼성전자의 이번 실적 부진은 범용 메모리 시장의 주기적 침체와 같은 전통적인 악재에 대한 대처능력 부재와 미래 HBM과 파운드리 사업 같은 중장기적인 전략 부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AI와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의 선제적 투자와 기술 개발이 부족해서 그 결과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의 체질개선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재도약 의지 밝힌 전영현…근본적 혁신이 관건
이에 대해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장 부회장은 이번 실적 부진에 대해 사과하며 재도약을 위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번 실적발표와 함께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의 개선'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향후 반도체 산업 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주기적인 침체가 아닌 삼성전자 자체적인 구조적인 침체에 빠질 수 있다"며 “미래 전략과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기로 여겨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