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공 아시아평화경제 이사 |
하지만 미국의 전설적 발명왕 에디슨이 세운 100년 전통의 가전기업이 중국으로 넘어갔다며 호들갑을 떤 언론과는 달리 국내 관련 업계의 반응은 차분했다. ‘미스터 세탁기’로 알려진 조성진 LG전자 사장은 "중국 하이얼의 GE 가전사업 인수가 북미 가전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4분기 전체 북미 생활가전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서병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은 2016년형 에어컨 발표회에서 삼성전자가 북미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군은 GE나 하이얼과 다르기 때문에 당장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2005년부터 기업 변신에 열 올리고 있는 GE가 알짜사업은 품은 채, 힘이 떨어진 사업 부문을 하이얼에 비싼 값으로 떠넘겼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안간힘을 써야 하는 우리 기업이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 자본이 유명 글로벌 기업을 인수했다는 대목이 아니라 IT 기반사업으로 변신하려는 GE가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털어내려는 환골탈태 전략이라는 점이다.
GE는 지난 10년간 플라스틱, 미디어, 금융 서비스 등 비핵심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 왔다. 그와 함께 에너지와 환경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체 사업을 성장시키는 친환경 성장시책인 ‘에코메지네이션’을 주창하고 있다. 에코매지네이션은 환경과 경제를 의미하는 ‘에콜로지(Ecology)’와 ‘이코노미(Economy)’의 ‘에코(Eco)’에 GE의 슬로건인 ‘이매지네이션 앳 웍스(Imagination at works, 현장에서의 상상력)’을 합쳐 만든 신조어다.
또 같은 의미에서 ‘헬시메지네이션(healthymagination)’을 내세워 고령화 시대의 과제인 보건의료 문제에도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수처리, 풍력발전, 가스엔진, 태양광, 생명 과학 등 21세기 미래 성장 사업과 기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항공, 에너지, 헬스케어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 역량을 키워 왔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작년 9월 한 컨퍼런스에서 "GE는 2020년까지 세계 톱10 소프트웨어 기업이 될 것"이라며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 기반의 마음과 기계(Mind & Machine)라는 스마트하고 소프트하며 친환경적인 기업 생태계로의 변신을 강조했다.
언뜻 보기에는 GE가 제조업을 떠나 IT 산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GE는 제조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의 제조업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즉 모든 제조업을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로 만든다는 의미다. 스마트 팩토리 구현을 위해서는 다양한 설비와 센서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과 이를 통해 수집한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다루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23일 막을 내린 올해 ‘다보스포럼’이 제시한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라는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기계와 사람, 인터넷을 연결해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체계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공장 내 모든 설비를 관리해 최상의 생산 효율을 달성하는 제조업 패러다임의 진화를 일컫는다. GE가 100년 넘게 보유했던 전통의 가전사업 부문을 왜 하이얼에 매각했을까. 경쟁력이 다한 사업은 과감히 털어버리고 새롭게 산업인터넷 시대의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우리 기업들은 이미 제조업 규모 면에서는 중국 기업에 눌리고, 신사업 개척에서는 혁신 선도 기업에 치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잘 나가는 수출 상품에만 매달리지 말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획기적인 신사업 개척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애플,·구글, 테슬라 등 혁신기업이 지나간 자리에서 떨어진 이삭만 주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