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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바쁜 車업계, 노사 갈등에 미래 전략 ‘흔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1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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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협력사 모임인 한국지엠협신회가 한국지엠 노조의 파업 결정을 비난하며 부평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노조가 파업을 진행하면 협력업체는 줄도산 위기에 놓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완성차 업계가 노조와의 갈등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기술을 놓고 글로벌 업체간 사활을 건 각축전이 펼쳐지고 기술개발과 생산시설에 막대한 자본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노조리스크’에 발목을 잡혀 꼼짝 못하고 있다.


◇ 기아차, 한국지엠 파업 결의···르노삼성도 ‘살얼음판’

국내 완성차 업계는 최근들어 ‘줄파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기아차와 한국지엠이 파업을 결의한 상태고 르노삼성도 노사간 대립이 깊어지며 언제라도 파업으로 번질 기세다.

기아차 노조는 쟁의대책위원회(쟁대위)를 열고 오는 24∼27일 하루 4시간씩 단축 근무하는 방식의 부분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아차 노조는 2011년 이후 9년 연속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 형제기업인 현대차가 올해 일찌감치 무분규 합의를 이뤄낸 점과 비교된다.

사측은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파업하지 않을 경우 성과급 150%와 코로나 특별 격려금 120만원, 재래시장 상품권 20만원, 우리사주 등을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면서도 고용안정 방안, 정년 연장, 잔업 30분 임금 보전 등을 원하고 있어 의견 차이가 극심한 편이다. 노조가 나흘간 부분파업을 벌이면 기아차는 약 1만 1600대의 생산 손실을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군산공장 폐쇄의 아픔을 겪은 한국지엠은 노조의 몽니 탓에 또 ‘철수설’에 휘말렸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달 30일부터 부분파업을 시작해 오는 23~25일에도 쟁의행위를 이어갈 방침이다. 전반조와 후반조 근로자들은 이 기간 4시간씩 파업하고 지난달 23일 시작한 잔업과 특근 거부도 이어가는 식이다. 노조 대의원 71명과 간부들은 20일부터 한국지엠 부평공장 조립사거리에서 무기한 철야 농성에 돌입했다.

르노삼성의 경우 강경 성향인 박종규 현 노조위원장이 지난 9일 연임에 성공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노조는 일단 사측의 정비지점 매각 추진에 반발하고 나서며 강경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노조 측은 르노삼성이 최근 7년간 1조 9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음에도 회사측은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현장상황을 방치한채 인력 줄일 생각에만 골몰하고 비난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는 이미 지난 2년간 노조를 이끌며 ‘묻지마 투쟁’ 분위기를 조성했고, 해마다 완성차 업계에서 가장 늦게 임단협 교섭을 타결하며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르노삼성의 올해 임단협은 지난 9월 6차 실무교섭 이후 교착된 상황이다. 노조는 이미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 갈 길 먼데···노사 갈등에 기업 경쟁력 하락 우려

문제는 글로벌 완성차가 현재 처한 상황이 노사 갈등에 매달려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는 코로나19 위기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노조의 잇단 파업은 협력업체 경영을 벼랑으로 내몰고 이는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지엠 노조가 강경 투쟁을 계속하자 한국지엠 협력업체 모임인 한국지엠협신회는 피켓시위와 함께 ‘살려달라’는 호소문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생산 차질이 생기면 유동성이 취약한 협력업체는 부도 발생 등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해 한국지엠 부품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지금도 일부 협력업체는 전기세는 물론이고 직원들 급여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는 역시 지난 20일 호소문을 내고 "완성차 업계의 연이은 파업이 현실화하고, GM의 한국 사업 철수설까지 나오면서 경제 회복의 가느다란 희망마저 철저히 무너지는 듯한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노조의 파업으로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 전략에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대주주가 각각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프랑스 르노인 외자계 회사다. 한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사업을 펼치는 이들 입장에서는 ‘노조리스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게 사업을 접을 명분일 뿐이다.

실제 GM은 지난 2018년 군산공장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볼모로 한국 정부를 협박해 수천억원의 혈세를 가져갔다. 전국민의 혈세를 투입해 살려놓은 회사 노조가 무조건 자기들 임금을 올려야 한다며 투쟁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지엠은 지난 6년간 5조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스티브 키퍼 GM 해외사업부문 대표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조의 행동 때문에 한국에 추가적인 투자나 새 제품 할당을 하기 어렵다"며 "이는 한국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고 한국에서 투자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GM이 한국에 배정되거나 할 예정인 물량을 중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로 돌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르노삼성도 마찬가지다. 회사 노조리스크가 심해지자 프랑스 르노는 부산공장에 수출생산 물량을 계속해서 주지 않으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현대차·쌍용차 노조가 협력을 도모할 때도 르노삼성 노조는 나홀로 투쟁을 계속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며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신기술 개발까지 병행해야 하는 기아차 역시 노조와 갈등을 힘을 소진하면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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