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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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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앙 위기] 갈수록 잦아지는 팬데믹…400만년 얼었던 북극 해빙의 또 다른 위협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2.21 10:47

[재앙 몰고오는 기후변화④] 1부 자연의 역습=바이러스·질병 확산

코로나

▲의료진들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종사자와 시설 이용자를 대상으로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 미래의 어느 날. 북극기지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동료들의 연락이 끊기자 마이클과 루서는 직접 북극기지를 찾는다. 그 곳에서 둘은 어떤 물질에 노출된 뒤 사람 피를 빨아먹는 흡혈 욕구를 느낀다. 점차 흡혈 바이러스는 퍼져나가고 이들은 스스로를 ‘블러드’라 칭하며 점차 세력을 넓혀간다.

지난 2019년 말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된 ‘브이워’(V-War)라는 미국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북극 빙하가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면서 아주 오래 전 묻혀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드라마의 성공 여부를 떠나 빠르게 확산하는 정체 불명의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이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로 변신한다는 설정은 지구온난화가 몰고 올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한 경고를 준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이 최근 희망을 주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높다. 코로나19는 극복되기보다는 기존 감기와 같이 인류와 함께 공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가 끊임없이 시작될 팬데믹의 전초일 뿐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와 유사하거나 더 독한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끊임없이 위협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특히 앞으로 10년 안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위험요소는 전염병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1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위험요소 35개 가운데 전염병의 영향 정도가 5점 만점에 4.13점으로 가장 높았다. WEF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나 기후변화 대응 실패 등 기후 관련 문제가 인류에 실존적인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전염병들은 모두 무분별한 자연 훼손에 의한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됐다. 끊임없는 개발과 개척으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과 바이러스가 인간의 주거지로 자리를 옮기면서 감염병이 인류에게 퍼졌다. 자연 환경을 훼손하면서 탄소흡수력이 약해진 지역에 기후 상승이 지속되면서 바이러스가 창궐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

최근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적인 감염병이 5개나 발생하는 등 팬데믹 빈도수가 잦아졌다. 에볼라와 사스, 돼지플루,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빈도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기후 위기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늘어나면서 지구온난화에도 속도가 붙는다.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폭염 일수 증가와 서식지 변화, 해빙으로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 등의 위기가 초래한다.

폭염일수가 증가하면 일사병과 열사병 등 온열질환 환자가 늘어나고 돌발해충들이 출현해 식물 전염병을 옮기면서 생태계를 파괴한다. 식중독에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은 일상이 된다.

서식지 환경이 바뀌면 동물로부터 전이된 감염병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퍼진다. 열대 곤충 등이 온대지방까지 서식지를 넓혀 풍토병도 옮겨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50년에는 한반도에서도 뎅기열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폭염 일수 증가로 온열질환·해충·식중독 일상화 

 


기온 상승으로 나타나는 폭염과 열대야 등 고온 현상은 인간에게 열사병·열탈진·열실신·열경련 등의 질병 등 신체적 피해를 줄 수 있고 유병률과 사망률을 높인다. 유럽에서는 지난 2003년 6월에서 8월 동안 40도가 넘는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이상 고온 현상으로 3만500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기후요소가 온열질환자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나라의 연평균 폭염일수는 10.1일 수준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처럼 증가할 경우 21세기 후반기(2071∼2100년)에는 연평균 폭염일수가 40.4일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단순 온열질환에 그치지 않는다. 돌발해충을 유발시켜 식물 전염병 등 식량과 생태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에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던 지난 2018년 미국선녀벌레와 꽃매미 등 ‘돌발해충’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 돌발해충들은 무서운 번식력을 발휘하며 동시다발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과수와 삼림에 큰 피해를 끼쳤다.

돌발해충들은 주로 산림지역에서 번식해 농가와 과수원 등으로 내려와 주요 과수 작물과 나무에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먹어 말려 죽이고 단맛을 내는 분비물을 배설해 그을음병 등을 유발한다.

기온 상승은 식중독 위험도 높인다. 기후 변화로 온도가 상승하면 식중독 원인균과 곰팡이균의 활동량이 증가하면서 식중독 환자들도 늘어난다. 평균기온이 1.2도 오를 경우 온도에 민감한 세균이나 기생충에 의한 식중독 발생률은 약 6% 증가한다. 해충이나 세균을 박멸하고자 농약을 사용하더라도 화학물질에 따른 또 다른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권원태 APEC 기후변화센터 원장은 "기후 변화와 건강 문제를 논의할 때 폭염 문제를 빼 놓을 수 없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니 폭염일수가 늘어난다고 예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폭염 현상이 증가하는 건 온열질환과 해충, 식중독 등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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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독일 베를린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흰줄숲모기 서식지 확대 대응 수칙’ 공고문을 게시하고 있다. 사진출처 그린피스

 

서식지·생태계 환경 바뀌며 인수공통감염 확대 

 


지구온난화는 단순한 기온 상승 그 의미를 넘어선다. 지구 전체 기온이 오르면 기후가 바뀌면서 동물들의 서식지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야생 동물, 가축, 병원체 간의 접촉이 많아져 바이러스가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서 빠르게 이동한다.

‘수의학 저널’(Veterinary Science)은 지난 80년 동안 유행한 전염병들은 인수공통감염병에 해당하며 약 70%가 야생동물에서 파생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1980년대에 유행한 에이즈 바이러스는 유인원, 2004~2007년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는 새, 2009년에 발생한 신종플루는 돼지에서 비롯됐다. 또 사스(SARS)와 에볼라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옮겨왔다.

코로나19도 대표적인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코로나19가 사스와 매우 유사하며 사스처럼 박쥐에서 발원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엔 산하기관인 IPBES(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포유류와 조류 등에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170만종의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이 가운데 최대 85만종이 인간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열대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기로 인한 전염병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균 기온이 1도 오를 경우 모기 발생은 27% 늘어나고 최근 지구온난화로 열대 지역의 범위가 해마다 반경 48km씩 확대되면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될 경우 전 세계에서 36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열대성 전염병인 말라리아 위험에 노출된다. 지난해 경기도 파주에서 보건당국이 채집한 얼룩 날개 모기류에서 말라리아 원충 유전자가 확인됐다.

말라리아 뿐 아니라 열대병으로 취급됐던 뎅기열에 대한 위험도 높다. 현재 전 세계에서 뎅기열이 창궐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40억 명에 이른다. 더운 지역에서만 사는 모기의 서식지가 늘어나면서 바이러스도 전 세계로 퍼지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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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의 베스트피요르드 빙하. 거대한 빙상 주변에 해빙이 흩어져 있다. NASA/연합뉴스

 

고대 바이러스+동식물 전염병…신종 전염병 위험 높아 

 


인류가 역사적으로 겪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을 경우 빙하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들이 대거 대기권으로 방출돼 예상치 못한 신종 전염병이 퍼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400만년 동안 얼어있는 북극 빙하에는 그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미생물과 박테리아들이 갇혀있어 인류에 또 다른 위협이 된다는 지적이다.

수 십 만년전 유행했던 바이러스들은 당시 인류에는 면역이 생겨 일반적인 바이러스가 됐을 수 있지만, 현재 인류에게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시베리아 빙하 속에 천연두와 페스트균 등 수많은 바이러스가 갇혀 있다고 추정한다. 알래스카에서는 1918년 발생했던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시베리아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고대 동물들의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75년 전 탄저병으로 죽은 순록이 노출되면서 탄저균 포자가 방출됐다. 이로 인해 약 2300마리의 순록이 떼죽음을 당하고 소년 1명이 사망했다.

김백민 부경대 대기환경학과 교수는 "1년 내내 얼어있는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녹기 시작하면서 갇혀있던 고대 바이러스들이 깨어난다는 과학적 연구가 많이 진행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바뀌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동물들의 이동 반경도 달라지면서 동물 바이러스 전염 위험도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철새의 이동이 바뀌면 조류바이러스 발병지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동물 질병국 후안 루브로스(Juan Lubroth) 국장은 철새의 이동과 조류독감 확산이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후안 루브로스 국장은 "철새 이동으로 몇 년간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생하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 불가리아, 루마니아, 네팔, 몽골에도 바이러스를 확산시켰으며 이들 지역도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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