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 구인 광고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김아름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영난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유가와 환율, 원자재 등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 지금 인건비도 현재 사업장 규모에서 부담이 돼 하루 12시간 이상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매달 적자를 기록하는데 인건비(최저임금)를 더 높인다고 하면 문을 닫으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부천·편의점 점주·김모 씨)
# 마트 장보기도 겁날 정도로 물가가 올랐다. 이런데 전기세, 가스비 등도 곧 인상한다고 한다. 월급만 보고 사는 직장인들 입장에선 물가상승률보다 1%라도 더 높게 임금을 받아야 하지 않나.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만 놓고 보면 임금이 줄었다고 생각하게 된다.(서울·직장인·황모 씨)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460(5.0%)원 오른 9620원으로 결정됐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이 같은 결정에 각각 다른 이유로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노동계는 급격한 오름세를 보이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제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업종·지역별 구분 적용 등 방안이 추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30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위는 법정 심의기한인 지난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제8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3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공익위원 단일안인 시급 9620원으로 표결 끝에 의결했다.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9160원)보다 5.0%(460원) 오른 시간당 9620원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영계와 노동계는 즉각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편의점 등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편의점을 비롯한 자영업자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해 ‘을과 을’의 갈등을 유발한 결정"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편의점업계 측은 올해 편의점 월평균 매출이 4357만원으로 점포가 가져가는 평균 점포이익은 약 915만원이다. 여기서 인건비·임대료·가맹수수료 등을 지불하면 점주가 가져가는 소득은 마이너스를 기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성길 한국편의점주협의회 정책국장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최소 31만원에서 최대 44만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게 되면서 편의점주 60% 이상이 적자를 낼 것"이라며 "편의점주가 5일간 매일 14시간을 근무해야 80만원 수준의 소득을 가져가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논평에서 "이번 최저임금 결정은 주요 지불 주체인 소상공인의 절규를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로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과 현재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절대 수용 불가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고 말했다.
소공연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소상공인 측이 가장 높다. 소상공인 41.1%가 매출액의 30% 이상을 인건비로 지출하고 있다. 대기업(9.87%), 중소기업(17.79%)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규모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이날 논평을 통해 중소기업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한 결정이라며 강한 분노를 드러냈으며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역시 "기업의 경영 애로를 가중시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활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2018년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의 고용 불안에 따른 소득 저하가 확대되고 수많은 영세 소상공인을 비롯한 경영계의 애로가 크게 가중된 자명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의 불만도 크다. 공익위원안으로 결정된 최저임금안이 현재 물가 상승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정부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올해 물가상승률 평균을 4.5%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 전망치가 무색하게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증가했다. 여기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최근 6∼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계는 고물가 시대에 최저임금 5.0% 인상은 사실상 임금 삭감이라는 입장이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수준"이라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까지 더해 저임금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업종별 최저임금을 달리하는 ‘구분(차등)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에 따라 업종별로 구분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현재 최저임금법은 업종(사업)에 따른 최저임금 구분적용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을 제외하고 한 번도 구분적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팀장은 "업종 특성과 사업주의 지불 여력, 생산규모 등을 전부 따져서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지불 능력이 떨어지는 수많은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릴 것이 자명하다"면서 "아울러 저숙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복지재정으로 돌아가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또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어려운 일을 기피하고 쉬운 일만 찾으려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결국 한편에선 구인난에, 또 다른 쪽에선 구직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어느 정도 올리면 우리나라 일자리가 얼마나 사라지고,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높고 낮고 국가가 생각하는 적정 최저임금 수준은 얼마며 우리의 정책 목표는 어디까지 가느냐’ 등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결정으로 업종별 구분 적용의 필요성은 더욱 뚜렷해졌다"며 "정부는 업종별 구분 적용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내년 심의 시에는 반드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역시 "현재의 최저임금 제도가 취약층을 지원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는 적절한 정책수단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책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