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傳貰 )사기가 급증하면서 전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월세 대신 목돈을 임대보증금으로 주고 받는 전세는 다른 나라에는 없고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주택 임대 형태다. 1970년대 정착될 때만 해도 세입자·집주인은 물론 건설산업 활성화·주거 서비스 안정화 등에 큰 역할을 했다. 저금리 현상 고착화 등으로 월세 선호 현상이 강해지고 사기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사회적 이익보다는 폐단이 더 커지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전세 제도를 폐지해야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고 집값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설 기세다.
“전세대출이 사라져야 전셋값·집값이 떨어져 하향 안정화가 될 것이다". 대표적 전세 폐지론자인 한문도 서울디지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의 말이다. '애물단지'가 된 전세 제도를 없애야 우리나라의 집, 즉 주거 환경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때 한국만의 독특한 주택 임대 형태로 세입자·집주인·건설업체·국가 모두 효용성을 인정했던 전세 제도가 어떻게 이같은 '천덕꾸러기가 됐을까?
◇ 유래와 역사
전세는 1970년대 중반,중공업 육성과 수출, 중동 건설 붐 등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살림살이가 나아진 서민들이 좋은 집을 찾기 시작하면서 태어났다. 민간 건설사들은 부지런히 아파트 공급을 늘렸다. 1975년 9만여 가구였던 아파트는 1980년 들어 약 37만여가구까지 증가했다. 문제는 집값이 급격히 오르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값이 오르니 사람들은 자기 돈 만으론 집을 살 수가 없게 됐고, 세입자들은 높은 월세에 시달렸다. 이때 등장한 전세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집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세입자로부터 목돈(전세보증금)을 받아 보탰다. 세입자는 비싼 월세를 아끼고 맡겨둔 목돈을 훗날 내 집 마련에 사용할 수 있어 좋아했다. 건설사들은 집을 팔기 수월해졌고, 사회적으로도 건설 경기 활성화·안정적 주거 환경에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태어났지만 전세는 사적금융제도라는 한계 때문에 툭하면 사회적 이슈가 됐다. 1기 신도시가 조성되기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 넘쳐나는 주택 수요로 인해 집값 상승과 함께 '전세대란'이 발생했다. 전셋값이 폭등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했다. 반대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집값과 함께 20~30% 동반 폭락하면서 정반대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 현상이 벌어져 곳곳에서 곡소리가 났다.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떨어지니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2000년대 초반 부동산 시장 호황기가 오자 전셋값은 오히려 크게 상승해 집 값 폭등에 큰 역할을 했다. 결국 2010년대에는 전셋값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는 '깡통주택'(집값과 전셋값이 갭이 줄어드는 주택)을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전세 제도가 전반적으로 쇠퇴 일로를 걷고 있긴 하다.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서 주택금융이 발달하다 보니 집주인이 월세를 더 선호하게 된 지 오래다. 그러나 2016년 이후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따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가 강화되며 주택 매매보단 전세 거래비중이 늘어나 전셋값이 폭등했다. 규제로 인해 부동산 투자자들이 자금을 은행이 아닌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조달한 것도 가격을 키우는 것에 일조했다. 여기에 2020년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까지 겹치며 전세매물 감소가 우려되자 유례없는 폭등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고금리와 자금경색 등이 맞물려 급격히 식었고, 현재는 역전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사기의 수단으로 전락
최근 몇년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전세사기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면서 전세 제도 폐지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특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없어 무분별한 대출이 가능하다 보니 무자본 갭투자가 성행하게 했다. 계획사기도 눈에 뛰게 증가했다. 공인중개사와 짜고 실제보다 금액을 높인 '업계약'을 하거나, 감평사와 짜고 고액감평을 통해 전세금액을 높게 받고 잠적하는 전형적인 전세사기 수법이 횡행하고 있다. 2022년 말부터 '수도권 빌라왕 김모씨', '강서 빌라왕 정모씨', '청년 빌라왕 송모씨', '건축왕 남모씨' '화곡동 빌라왕 강모씨' 등 전세사기범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피해로 인정받은 사건만 1만건이 넘는다. 부동산 중개업소 한 관계자는 “경기 화성 동탄의 한 피해자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바람에 파산하고 말았다"며 “1년째 집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아 수억의 전세자금이 공중에 묶인 채 하루하루를 약으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해서 피해자 구제에 나섰다. 집주인의 전세보증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강화해서 전셋값을 하향 안정화할 수 있도록 했다. 집주인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안심전세 앱이 출시됐고, 집주인의 이력을 동의없이 세금 체납액 등을 확인할 수 있게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는 지속될 것이다. 이미 전셋값이 크게 오른 2023년초 계약한 세입자들의 목을 짧게는 내년, 길게는 2026년까지 조여올 것이다.
◇“대출 없애 전세 씨말려야"
전문가들이나 시민 사회 내에선 전세 제도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전세 대출 규제 등 제도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세자금대출에도 기타 부채까지 확인하는 DSR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토부의 전국 주택 임대차 거래 중 전세 비중은 2019년 60.7%에서 지난해 44.6%까지 떨어졌다. 한 교수는 “전세 재도 개혁을 위해선 정치권의 노력이 간절히 요구된다"며 “또 필요에 따라선 사회단체 결성 등을 결성해 전세대출을 완전히 폐지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식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