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이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현장 경영'을 펼치고 있다. '복합 위기'로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기에 위기대응 능력을 갖추는 차원이다. 사업장과 고객사 등을 직접 살피는 수준을 넘어 해외 협력사 동향까지 살피고 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6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오버코헨에 위치한 자이스(ZEISS) 본사를 방문해 칼 람프레히트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과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자이스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기술 관련 핵심 특허를 20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광학 기업이다. 삼성전자 협력사인 ASML의 EUV 장비에 탑재되는 광학 시스템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장 입장에서는 독일에 있는 2차 협력사를 찾은 셈이다.
이 회장은 자이스 경영진과 반도체 핵심 기술 트렌드 및 양사의 중장기 기술 로드맵에 대해 논의했다. 자이스의 공장을 방문해 최신 반도체 부품 및 장비가 생산되는 모습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해외 일정을 다수 소화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을 찾아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와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 회의는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4회 한중 고위급 경제인 대화'에서 논의된 안건들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올 하반기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제5회 대화' 의제 설정을 위해 마련됐다. 최 회장은 다음달 중 일본 도쿄를 방문해 한국-일본간 경제협력을 위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지난 24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핵심 공급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인도로 갔다. 정 회장은 지난 23일 인도 하리아나주 구르가온시에 위치한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현대차·기아의 업무보고를 받고 양사 인도권역 임직원들과 중장기 전략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정 회장은 작년 8월에 이어 1년 사이 인도를 두 차례나 찾으며 신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이번 출장길에서는 현지 직원들과 타운홀미팅을 갖고 직접 대화를 나눴다. 정 회장이 해외 사업장 구성원들과 타운홀미팅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회장은 “인도 시장에 특화된 전기차 개발과 전기차 인프라 확충을 통해서 전동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되는 2030년까지 인도의 클린 모빌리티를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말레이시아 사라왁주 쿠칭에 위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스마트팩토리를 찾아 이차전지 소재 사업을 점검하고 현지 임직원을 격려했다. 지난달 롯데이노베이트 자회사 이브이시스(EVSIS)의 청주 신공장을 방문해 전기차 충전기 사업 현안을 직접 챙긴 이후 연이은 신사업 경영 행보다.
신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말레이시아의 입지적 장점을 활용해 원가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세계 최고 품질의 동박을 생산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국내에서 직원들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5일 여의도 한화생명 본사를 방문해 한화금융계열사의 임직원을 격려하고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혁신과 도전을 주문했다. 앞서 7일에는 경기도 판교 한화로보틱스를 찾아 기술 혁신을 제안하고, 1일에는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연구개발(R&D) 캠퍼스로 향해 간담회를 가졌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28~29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 특별회의'에 공동의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세계경제포럼은 전세계 저명한 기업인, 경제학자, 정치인,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국제 민간회의다. 글로벌 경제 현안과 문제에 대한 각종 해법 등이 함께 논의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