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 기초체력이 약해지며 고환율 국면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이에 대한 수혜를 입고 있다. 원화 약세 효과에 힘입어 반도체·자동차 등 업체들이 1·2분기 호실적을 올리고 있다. 유가·물가 등 부담이 더 커지면 수요 위축이 우려되는데다 일본 엔화가치가 역대급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 당장 웃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관련기사 6면>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연결 기준 6조606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전날 공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31.87% 증가한 수치다. 시장 예상치 역시 뛰어넘는 수준이다. 반도체 사업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회복으로 2022년 4분기 이후 5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덕분이다.
메모리 감산 효과로 D램과 낸드의 가격이 상승한 데다, 재고평가손실 충당금 환입이 반영되면서 이익이 뛴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말~올해 초 120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던 달러-원 환율이 1300원대 중반 이상으로 뛴 것도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 측은 환율 상승에 따른 추가 이익이 3000억원 가량인 것으로 추산했다.
SK하이닉스 역시 1분기 기대치를 크게 웃도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이 회사의 1~3월 영업이익은 2조88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했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을 살짝 넘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환율이 예상보다 가파르게 뛰는 등 이익 개선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44.3% 뛴 12조4296억원이다.
반도체 업계는 2분기에도 훌륭한 성적을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2분기를 넘어 하반기에도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곳을 중심으로 수요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올렸던 현대자동차·기아 역시 환율효과 등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현대차·기아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6조983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7조6409억원)에 이어 분기 기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매출액 역시 66조8714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68조4939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들어 작년에 비해 판매량이 감소했음에도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 비중을 높이고 환율 수혜를 입어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전용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라인업 확대, 신규 하이브리드 모델 보강 등을 통한 친환경차 판매 제고 △생산 및 판매 최적화를 통한 판매 극대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및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의 믹스 개선을 통한 점유율 확대 및 수익성 방어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수출 대기업들은 대부분 환율 헷지를 하지 않는다. 대신 변동성이 너무 커지면 해외 사업장 자금 이동, 투자 관련 결정 등에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 원자재 부담이 커지고 소비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 기업들이 '슈퍼 엔저'를 등에 업고 있다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1달러당 엔화 가치는 최근 160엔선까지 터치하며 역대급으로 낮아진 상태다. 원화 가치가 낮아진 상황에서 이에 따른 긍정적 효과만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