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가 보험약관대출 판매의 일부 중단에 나섰다. 불황형 대출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환경 속에서 업계 1위의 결정 배경에 시선이 모이는 한편 업계에선 리스크 관리상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가 내달 26일부터 순수 보장성 상품 5종의 보험약관(계약) 대출 판매의 중단에 나선다. 약관대출은 상품 가입자가 가입한 보험의 해약환급금 범위 내에서 대출을 내주는 제도다. 별도의 대출 심사가 없고 중도상환 수수료나 연체이자가 없는데다 은행권 대출과 비교해 금리차가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대상은 무배당삼성80평생보험, 무배당삼성80평생보험Ⅱ, 무배당삼성80평생보험Ⅲ, 무배당삼성80평생보험Ⅳ, 무배당 유비무암보험이다. 이들 상품의 약관대출 가능 비율은 해약환급금의 30%였으나 이를 0%로 줄이면서 약관대출 판매가 사실상 중단될 예정이다.
앞서 삼성화재는 약관대출 가능 비율을 꾸준히 낮춰왔다. 지난 2022년 6월 대출 가능 비율은 해약환급금의 60%에서 50%로 낮췄고 지난해 6월에도 30%로 내렸다.
삼성화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약환급금이 감소하는 것과 보장성 계약이탈 등과 관련해 리스크 관리에 나서는 것이란 설명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현재 유지 중인 대출은 만기까지 가져가는 것이며 신규 대출자 대상으로 중단되는 것이기에 사실상 축소 규모가 크지 않다"며 “전체 잔액으로 따져도 0.7% 수준이기에 소비자에게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이 나가면 환급금이 없어지는 구조의 상품이기에 계약이탈방지 등 리스크 관리 차원이다"고 부연했다.
업계에선 약관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이를 감당하기 위한 현금 대비도 부담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화재는 보장성보험 판매가 많은 만큼 약관대출에서 금리연동형 취급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저축성보험 약관대출은 금리확정형이 많다. 실제로 약관대출 차주 중 다중채무자나 저신용등급층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보험사로선 잠재적인 부실 가능성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불황형 대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삼성화재의 이번 행보가 업권에 영향을 주게 될 지에도 시선이 모인다. 약관대출 판매 규모가 큰 보험사의 경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규모를 관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근 고금리와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주로 서민이 이용하는 '불황형 대출'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1금융권에 이어 저축은행 등 2금융권 대출 문턱마저 높아지며 서민 급전창구로 불리는 보험 약관대출에 대한 수요도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68조830억원가량이던 약관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70조9533억원으로 증가했다. 2022년과 비교해서는 3조원, 전분기 말 대비로는 1조원 늘어나며 빠른 증가 추세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생명보험사 22곳의 보험약관대출 잔액만 61조1345억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4.9%(2조8283억원) 늘어나기도 했다.
다만 현재까지 삼성화재의 이 같은 방침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약관대출은 해지환급금을 사실상 담보로 설정해 받는 대출로 보험사가 받게 되는 리스크는 사실상 크지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저신용자가 카드사의 카드론을 이용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카드사의 경우 이자율이 매우 높아 저신용자들의 연체율이 높아지면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지만 보험사가 제공하는 약관대출은 은행권 대출과 이자율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데다 어차피 주게 되는 해약환급금에서 빠져나가는 개념이기에 대출 규모 증가가 곧장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삼성화재가 이자율 하락에 따라 수익성 방어상 전략을 취하는 것일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최근 상생금융 차원에서 올 상반기 대형 생보사가 일제히 약관대출의 이자를 내리거나 납입 유예 제도를 시행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다만, 불황이 계속되면서 약관대출이 보험해지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은 보험사들로선 우려할 만한 점이다. 연체가 발생하게 되면 가입자들의 보험 해지로 연결될 가능성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2월 22개 생명보험사에서 고객이 해약하거나 효력이 상실된 보험은 114만7369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같은 기간에는 90만3754건이었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12만4224건을 기록해 매년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