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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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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 vs 치적”…광화문 초대형 태극기 논란 재점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6.30 10:33

서울시, 광화문 광장에 오는 2026년까지 100m 높이 국기 게양대 조성
‘애국심 고양’, ‘국가상징공간 조성’ 차원
시민들 “주변 국가 상징물 많은데” 수백억원 혈세 낭비 비판
대선 출마 염두해 운 오세훈 시장 ‘치적쌓기’용 지적도

광화문 광장 일대 모습.

▲광화문 광장 일대 모습.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초대형 태극기 계양대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예산 낭비, 주변 경관 훼손, 안전 우려 등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치적 쌓기용' 수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는 지난 25일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오는 2026년까지 100m 높이 국기 게양대와 영원한 애국과 불멸을 상징하며 꺼지지 않는 불인 '꺼지지 않는 불꽃'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의 '워싱턴 모뉴먼트(워싱턴 기념탑)',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에투알 개선문', 아일랜드 더블린 오코넬 거리의 '더블린 스파이어'처럼 역사·문화·시대적 가치를 모두 갖춘 국가상징 조형물을 만는다는 것이다. 광화문광장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국가상징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국기 게양대의 높이는 100m로 주변에서 가장 높은 외교부 청사(92m)보다 높다. 태극기 크기는 가로 21m, 세로 14m이며, 게양대 아래엔 15m 높이의 전광판과 영원한 애국과 불멸을 상징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도 설치할 예정이다. 올해 8∼11월 통합설계 공모를 거쳐 2025년 4월까지 기본·실시 설계를 진행한다. 이후 5월에 착공해 2026년 2월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예산은 약 110억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주변 경관을 해치고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미 광화문광장에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고 주변에도 경복궁, 정부서울청사,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청와대 등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차고 넘치는 만큼 수백억원을 들여 국가상징 조형물을 또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광화문 광장을 이용하고 있는 한 40대 시민은 “불경기의 수백억원을 들여 국가조형물을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차라리 그 예산을 청년들의 일자리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광화문광장 국가상징 조형물 조감도.

▲광화문광장 국가상징 조형물 조감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야 할 곳에 국가주의적 조형물을 조성하는 것이 광장의 민의의 기능을 축소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일각에선 “대형 깃대는 전체주의와 국가주의를 상징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판이 있다. 실제 대형 게양대를 가진 나라의 경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중인 202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세계 2위인 높이 175m 게양대를 세웠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북한 등 독재·왕정 국가들이 많다.


안전성 우려도 있다. 100m가 넘는 높은 기둥에 거대한 태극기가 펄럭이면 헬리콥터나 무인기, 도심형 항공모빌리티(UAM) 등의 운행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도 바로 옆 정부서울청사 옥상에 긴급시 요인들이 이용하는 헬기 이착륙장이 설치돼 있다. 또 추후 청와대가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쓰일 경우 대통령이 탄 '공군 1호 헬기'가 이착륙시 방해받을 게 뻔하다. 국가안보·군사적 위협도 된다. 적국의 원거리 폭격시 정확한 목표물이 되기 때문이다. 미관상 문제도 제기된다. 광화문광장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국가 문화재인 경복궁 등 종로 일대의 경관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건축물이 아니라서 고도제한을 받지 않고 관련 규정 등을 검토했는데 특별히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내걸자는 제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5년 당시 국가보훈처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시가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지난달 서울시의회가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게 하는 조례를 통과시키자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내년 착공, 2026년 완공 등 일정을 감안할 때 2027년 대선 출마를 꿈꾸는 오 시장이 보수 진영 대표 주자로서 자리잡기 위한 애국심 마케팅에 나섰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오 시장이 광화문 광장에 수백억원을 들여 태극기 게양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행보로 해석된다"며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나아가 태극기 세력 등 강성 보수까지 껴안으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태극기 사랑과 애국심 고양에 대한 긍정적 여론도 있는 만큼 다양한 견해를 수렴해 신중이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담은 국가상징 공간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여러 논란이 있는 만큼 공론화 작업을 거치고 국민 의견을 경청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시 관계자는 “민원식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전자투표 제도도 있다"며 “공청회 대상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형식을 빌려 시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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