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이슈&인사이트] 전기차 배터리에 계영배 시스템을 설계하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8.21 11:02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라고도 한다. 술잔의 이름은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들이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에서 유래되었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 의기에는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새어 나가게 되어 있었다.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스스로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 조선에는 도공 우명옥이 만든 계영배가 있다.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전기차 배터리에 계영배 시스템을 제안하는 이유는 전기차를 안심하고 사용하기 위해선 폭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과충전을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들에게는 '가득'이라는 단어에 대한 선호 현상이 있다. 술도 가득히 넘쳐야 상대를 배려한다고 생각하고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주입할 때, '가득히(만땅)'를 선호한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전기차도 과충전한다. 벤츠를 비롯해 전기차 판매 기업 다수는 충전 상한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80% 이상 충전 시에는 충전 속도를 늦추거나, 계기판에 나타나는 충전 상태보다 실제로는 더 적게 충전되게 하는 등의 기능도 제공 중이다. 그러나 장거리 주행이 필요하거나, 자주 충전하기 어려운 운전자의 경우, 더 높은 수준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려 한다. 이때, 충전기가 배터리 잔량 정보를 확인하고 과충전을 차단하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해결책 중 하나다. 이것이 바로 전기차 배터리의 계영배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PLC는 전체 충전기 19.4만기의 89.4%인 완속 충전기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 청라 풍경채 아파트 지하 주차장 벤츠 EQ 전기차 화재로 23명이 다치고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린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번 화재로 인해 정전이 발생하면서 480여 세대의 전기와 물 공급이 끊겼다.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환경부 주관으로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이 참여하는 관계 부처 긴급회의를 열고 내달까지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단순히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를 진입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충전기의 지상 이전과 같은 피상적 방안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에 전기차 화재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과충전이 지목되자 아파트 등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배터리 잔량이 90% 이하인 전기차만 출입하도록 바꿔나가겠다고 한다. 이것은 누가 어떻게 90% 이상 충전된 차를 점검하고 차단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없다. 국립소방연구원이 2023년 발간한 전기차 화재 대응 가이드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 차량 1만대 당 화재 발생 비율은 내연기관차가 1.84대, 전기차가 1.12대로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최근의 전기차 화재 사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설픈 정부 대책으로 캐즘에 포비아까지 가뜩이나 어려운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기차는 한국이 반도체 이후 국가 경제의 큰 축인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을 이끄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탁상공론이 아닌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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