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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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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칼럼] 의료개혁, 윤정부 스타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9.10 11:34
신연수주필

▲신연수주필


의정(醫政)갈등이 8개월 되었다. 의료현장의 혼란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민들마저 의료계가 나쁘니, 정부가 나쁘니 갑론을박 중이다. 분명한 건 정책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국민은 경제정책이든 의료정책이든 정책을 하라고 세금을 내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고, 공무원 월급을 주는 것이다. 환자 치료가 본업인 의료인들에게 정책 대안을 내놓으라는 정부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정부가 의료인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해 정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작금의 의정갈등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 추진 시기부터 내용까지 미심쩍은 정책


첫째 정책 발표 시기.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이 처음 발표된 것은 4·10 총선을 앞둔 2월초였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당 승리가 예상되던 때였다. 윤 대통령이 2월 6일 국무회의에서 “의사 인력이 2035년까지 1만5천명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 뒤 같은 날 보건복지부가 내년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전국 대학에 신청을 받아서 3월 20일 대학별 증원 배분 결과를 발표했다. 의대 정원을 현재의 3058명에서 무려 65%나 늘리는 정책이 선거 직전, 불과 한 달 열흘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이다.


둘째 정책 시행 과정. 정부는 '4대 의료개혁 패키지'를 추진한다고 했다.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이 포함돼 있는데 정작 2월 6일 발표에는 2천명 증원 외에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다만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개혁의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제야 개혁 방안을 논의할 회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한 셈이다. 그리고 그 위원회에서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이 나온 것이 8월 30일이다.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은 4월에야 연구 용역을 시작한다고 했고, 응급실 수가 인상은 응급실 대란 위기가 커지자 9월 들어서 발표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의료개혁이라고 주장하지만, 무조건 의대 증원부터 발표하고 실제 개혁의 내용은 그 다음부터 채워나가는 중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셋째 정책 내용. 대통령과 정부는 2천명 증원이 과학적 근거를 통해 나왔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이제 이것을 믿는 국민은 별로 없는 듯하다. 정부는 발표 직전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했다고 했지만,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많은 우려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냥 발표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복지부 장관은 “급속한 고령화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 등을 감안할 때 2035년까지 의사 수가 1만5천명 부족할 것이란 수급 전망을 토대로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수요 예측이란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사실은 경제학 박사인 복지부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숫자만 늘린다고 의사들이 지방과 필수의료로 갈 것인지, 우수 인력을 전부 의대로 흡수하면 반도체 AI 등 미래 경제를 이끌어갈 첨단 산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종합적인 고려는 아예 없다.




◇ 사교육 카르텔, 연구개발 카르텔. 의료계 카르텔…, 다음은?


정부가 의대증원을 밀어붙인 과정을 보면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했던 때와 비슷하다. 지난해 대통령이 느닷없이 “연구개발 카르텔 타파"를 지시하자 올해 연구개발 관련 예산을 10% 이상, 26조 원 넘게 줄였다. 비판이 거세지자 내년엔 연구개발비 예산을 원상 복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연구개발 생태계에는 깊은 상처가 났다.


이번에는 코로나 영웅이었던 의사들을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 집단으로 낙인찍어 국민 분열과 의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의 의사 수는 선진국 모임인 OECD 평균보다 적지만 의사들의 부지런함과 효율적 시스템으로 한국의 의료접근성과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족한 분야는 세심하게 보완해야지 100일 전투하듯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지금 2026년 증원 유예냐, 2025년부터 유예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유급된 의대생을 포함해 내년에 7500여 명, 평소의 2배 이상의 학생들로 의학교육이 파행을 겪고, 이런 엉터리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해칠 것을 생각한다면 2025년도는 증원이 아니라 입시 중단을 하는게 맞지 싶다. 이게 다 정부가 개혁이란 미명 아래 즉흥적이고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한 탓이다.


이젠 정부가 또 무슨 개혁을 추진한다고 할지 겁난다. 연금개혁은 중장년층을, 노동개혁은 노동자를 기득권 카르텔로 낙인찍어 세대간, 계층간 대립을 부추기고 공연한 소란만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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